시티 헌터 - 긴급생중계 긴급생중계!! 흉악범 사에바 료의 최후
- 감독
- 오구와키 마사하라
- 제작년도
- 1999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중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본 원고는 필자의 개인적 견해에 기반해 작성됐으며, 기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함을 안내드립니다. * 이 글은 2024년 12월에서 2025년 12월까지의 한 무명 영화평론가의 도전기다. 다 쓰고 보니 비평에 관한 고차원적인 통찰은 없는 것 같다. 그걸 논하려면 실력적으로 좀 더 여물어야 한다. 그전에 평론가로서 생존해야만 했다. 이 글은 그 과정에서 만난 영화들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걸어온 길은 나를 다른 관점으로 좋게 보아온 이들의 눈을 통해서 [1] 만들어졌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Intro 바퀴가 되던가 바퀴에 깔리던가 난 다른 차선에 세우고 깜빡이 켜놔 - 이센스, <쉬게> “보안정책에 의해 차단 되었습니다.” 2026년 상반기에 잠시 일하는 곳에서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기로 한 영화를 예매 취소하려고 로그인하니 떡하니 보였던 문구다. 차단, 배제, 초대받지 못함 등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차단은 상당히 신선했다.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갑자기 일을 하게 돼서, 평소에 가던 평일 오후 2시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주로 하는 언론배급 시사회는 당분간 못 가게 됐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에 가기가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 퇴근 후 노트북으로 영화를 파편적으로 보거나 주말을 이용해 밀린 숙제처럼 영화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긴다. 내가 취소하려고 했던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 아마도 악마가 >(1977)였다. 손에 넣으려고 하면 언제나 그랬듯이 도망간다. 영화와 잠시 멀어졌지만, 근무지에서 사람들을 대하며 오히려 영화적인 순간을 최근 체험했다.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꼭 그러면 만난다. 하나는 친했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마주쳤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신세라 친구와 담배 하나를 같이 필 수 없었다. 아쉽게 손 인사만 하고 그를 떠나보냈다. 잠시 마주친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친구와의 마지막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다른 하나는 답답해서 사무실을 나와 찬 공기를 마시는데 두 명의 영화배우가 지나갔다. 작년 《씨네21》 ‘프런트 라인’에 합류해 처음 쓴 비평이 두 배우가 나온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잘 움직였던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도로에 멈춰 선다. 그는 차 안에서 담배 하나를 피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지금이 나에게 그런 시기 같다. 하는 일이 끝날 무렵, 시네필들이 안 좋아하지만 나는 애정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신작 < 오디세이 >(2026)가 아마도 용산 아이맥스관에서 시사회를 열 것이다. 놀란이 매달리는 ‘귀환’이라는 화두처럼 나는 다시 영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사회 인원수 제한에 컷 당하지 않고 무사히 입성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비평, 안녕하십니까? 글쎄 전혀 안녕하지 못하다. KMDb의 “비평, 안녕하십니까” 코너에 나는 언제 써보나? 영자원에 자주 가는 건 소용없다. 이들의 눈에 띄려면 어디서 놀아야 할까? 쟨 뭔데 50주년 리스트를 썼지? 왜 난… 이런저런 불만 섞인 질문들이 쏟아졌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점점 마음이 꼬여갔다. 늘 위기인 비평과 < 기생충 >(봉준호, 2019)으로 정점을 찍고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직격탄을 맞은 후 급격하게 추락 중인 한국영화보다 내가 더 걱정이었다. 그곳에 기생하는 존재라 숙주가 위기일 때 가장 먼저 떠날(능동) 혹은 떨어져 나갈(수동) 이들은 누구일까? 래퍼 이센스의 <A-G-E>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와중에 버는 놈들이 타짜지.” 그런 타짜들이 부럽다. 나도 타짜가 되어 전국을 누비며 한몫 챙기는 영화평론가를 꿈꿨지만, 지금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다. 타짜가 되기엔 애매한 재능 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악마의 저주일까? 이런 상황에서 영화와 비평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내겐 사치다. 위기라고 상정하고 파국이 된 그곳을 사유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안전거리가 확보된 이들에게 허락된 고상한 일은 아닌지 생각도 해본다. 그러기엔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 간단하게 말해서 일이 없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겠는가. 영화 시장이라는 곳에서 나는 스스로를 내보이곤 있지만 매칭이 잘 이뤄지지 않는 매력적이지 않은 매물인 것이다. 비평가 자체가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다. 대(大) 인플루언서 시대에선 더욱이 말이다. 등단 이후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는데) 콩고물이 떨어지길 기대했던 것이 오산이다. 요즘은 등단 없이 혹은 등단 제도에 콧방귀를 뀌며 등장한 평론가들이 오히려 내가 원했던 그 자리에 더 빨리 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를 써준 분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완성형 시네필로 등단한 케이스가 아니다 보니, 지금도 나를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선 시네필-평론가들이 학창 시절부터 영화에 쏟아부었던 시간만큼 나 역시 영화에 투자해야 한다. 적게 잡아도 10~15년. 하지만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잡지는 싸움의 장소라기보다는 매칭 애플리케이션이 되었다. 크림처럼 실패한 비평가이자, 실패한 산문가는 오늘날에 잡지에서 그렇게 환대받는 작가는 아닐 것이다. 크림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엄숙한 비평 스타일에서 탈피, 구어적이고 생생한 언어로 비평을 썼지만, 그의 지위는 어중간한 평론가로 머물며, 독자에게 호응받지 못했다.” 강덕구 평론가가 한예종 웹진에 기고한 “ 잡지의 전성기에 관한 영원한 수다 ”란 글의 한 부분이다.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실패한 평론가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신기한 행보로 비칠 수도 있다. 근데 그 누군가는 어디에 있을까? 아예 안 되진 않는다. 뭔가 되기는 한다. 그게 저주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원하는 타이밍이 아닌 뒤늦게, A를 바라면 B나 C를. 확실한 건 직행 티켓은 없다는 것! 우회를 거듭하며 돌고 돌아 영화라는 왕국에 잠시 머물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감질나게 맛만 보고 말이다. 2024년이 시작하고 《씨네21》에서 주는 리뷰만 쓰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다. 나이는 차고 ‘젊은’ 시네필-평론가들이 새롭게 씬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나는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 끝난 느낌을 받았다. 리부트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거창한 계획은 없었다. 뭔가를 도모할 동료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내게 남은 선택지였다. 또다시 등단을 시도해야만 했고, 단편이 아닌 장편을 만들어야만 했다. 도착 지점은 다름 아닌 영화제. 여태 안 불러줬는데 내년이라고 다를까… 이런 허무함이 나를 뒤엎을 무렵, 안 불러주면 ‘내가 직접 간다’라는 밑도 끝도 없는 오기가 작동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뭐라도 만들어서 도전해 보고 그러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그래야 후회가 덜 남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영화제에서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그 정도야 나도 안다. 그 천운이 내게 안 떨어지는 걸 어떡하겠나. 뭔 수를 써서라도 그 근처라도 가는 수밖에. 내가 찾은 틈새는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전. 부산영평 출신 평론가들이 부산국제영화제 크리틱b상 심사위원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 우회로. 물론 그해 공모전 주제였던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좋아해서 쓴 것은 맞지만 앞서 설명한 저 욕망이 없었다면 글은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2025년. 김칫국을 드럼통째로 마시고 있었는데 연락은 없었다. 갑자기 《씨네21》의 김성훈 기자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왔다. -이번에 부산 내려가시죠? -안 불러줘서 못 가요. -(다 함께) 하하하 30주년 기념으로 씨네21상이 신설되면서 심사위원으로 선정됐다는 반가운 섭외 전화였다. 왜 뽑혔는지 나름 예상은 했지만, 핵심은 작년에 부산영평에서 등단했다는 것. 글을 안 썼으면 열리지 않았을 문이다. 우회에 우회. 그렇게 부산에 내려가서 12편의 영화를 보라는 미션이 떨어졌다. 1. <아코디언 도어>: 월경(越境)의 이미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부문의 한국독립영화 12편 중 씨네21상은 손경수 감독의 < 아코디언 도어 >(2025)에게 돌아갔다. 위에서 하이라이트한 부분은 모두 이 영화의 대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우선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스크리너를 친히 내준 손경수 감독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영화제 심사 때 쓴 “CINEMA”라 적힌 노트를 다시 꺼내 봤다. 그때 미처 보지 못한 것을 영화를 다시 보며 발견했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아코디언 도어>에 왜 끌렸을까를 생각해 봤다. 작가(Writer’s Block) 한예종 전문사에 입학하면서부터 글 쓰는 캐릭터에 나도 모르는 새 빠졌던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 버닝 >(2018)의 종수를 시작으로 이지은 감독의 < 비밀의 언덕 >(2022)의 명은이, 그 누구도 기회를 주지 않을 때 GV 모더레이터 데뷔를 시켜준 천재 김홍기 감독의 < 익스트림 페스티벌 >(2022)의 래오, 홍상수 감독의 <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 >(2025)의 시인 동화 그리고 <아코디언 도어>의 지수까지. 영화평론가가 다양한 활동을 한다지만 기본이 되는 것이 결국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와 비평이 내 삶에서 멀어지려고 할 때, 작가의 형상이 아른거리는 영화를 마주하면 더 눈길이 갔다. 캐릭터들의 고민이 그 시기의 나의 고민과 공명한 것도 한몫한다. 초기엔 뭘 써야 할지(<버닝>),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지(<비밀의 언덕>)를 고민했다. 그러다 최근엔 좀 더 현실적인 고민에 접어들었다. 글을 안 쓰고 있는 나의 게으름(<익스트림 페스티벌>)과 나이는 먹어가는데 평론가로서 자리를 못 잡고 있는 현실(<그 자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런 나의 초라한 상황과 상반되게 영화제는 너무나 화려했다. 그곳에서 본 <아코디언 도어>의 한 문장이 내 가슴을 후벼팠는지 노트에 많이 적혀있었다. “어차피 평범해질 운명이었다.” <아코디언 도어>에 대한 작품 비평은 이 영화의 개봉을 고대하며 뒤로 미루고 싶다. 대신에 이 영화의 전환점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수직의 움직임을 말하고 싶다. 타임라인 상 가운데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하늘 높이 풍선을 띄운다. 소제목에도 썼듯이 <아코디언 도어>는 경계를 넘는 이미지로 넘실대는 영화다. 크게는 지구와 우주,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도달하는 이 영화는 그 사이에 낀 ‘재능’이란 녀석을 주목한다. 물에서 뭍으로 사진: " 아코디언 도어 ", 부산국제영화제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과학 괴짜 종윤이가 우주 풍선을 쏘아 올린다. 성층권 33km까지 도달한 풍선, 그곳에서 내려다본 지구. 한계에 다다랐을 때 풍선은 터지고 지구로 추락한다. 지구에선 지수( 문우진 )가 강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 물에 빠진 건 이때뿐인데 <아코디언 도어>가 그리는 세계는 마치 수면 아래의 세계 같다. 영화 내내 간간이 들리는 파도 소리와 귀가 먹먹한 사운드 효과는 물의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영화를 다시 감상하며 지수가 마치 물고기처럼 느껴졌다. 영화 속 인물들이 처한 상태 역시 물과 관련됐다. 예를 들면 무언가에 심취(心醉)한, 몰입(沒入)한, 사랑에 빠진(fall in) 등등. 이는 모두 물과 관련된 혹은 연상되는 표현들이다. 그러한 물의 세계와 작별을 고하고 뭍으로 넘어온 지수는 대전환을 맞이한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유튜브에서 보고 적어둔 글귀가 있다.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는 것은 인간이 산소통 없이 달에 간 정도의 놀라운 기적.” 물에서 건져진 이후로 지수는 키가 자라고 털이 나기 시작한다. 일종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는 육체적 성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능만 믿고 까불었던 지수는 새롭게 다가오는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지수는 빵을 만드는 마이스터고에 진학한다. 글 쓰는 것과는 상관없는 곳에서 지수는 무탈하게 지낸다. 그리고 글을 조심스럽게 다시 쓰기 시작한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거리감이었다. 매몰되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글의 내용이 내레이션으로 나오고 여러 장면이 몽타주된다. 몇몇 장면에서 감독 본인이 지수의 어른 역으로 등장한다. 그가 출연한 사실 또한 영화를 다시 보며 엔딩크레딧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나오는 그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까지의 부침(浮沈)의 시간이 느껴졌다. <아코디언 도어>는 감독 자신을 영화에 각인시킨 에세이적인 면모를 지닌 흥미로운 픽션이다. 영화제에서 볼 때는 몰랐지만 해가 바뀌고 지수와 엇비슷한 상황에 놓여 영화와 잠시 멀어진 상태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묘했다. <아코디언 도어>는 내게 미래의 한 조각을 미리 보여준 셈이었다. 물 안에서 지수가 봤던 익사한 남자는 최악의 경우 나의 자화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잠시 아찔했다. 내시현상(內視現象) - 내 눈에만 보이는 벌레 사진: " 아코디언 도어 ", 부산국제영화제 / ⓒ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재능이란 기생충을 CG로 선보이는 방식보다 지수의 시점 숏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놀라웠다. 영화제 때는 발견조차 못했던 장면이다. 그 장면은 지수가 잠에서 깰 때 등장한다. 무언가가 내 눈에만 보이는 내시현상, 의학 용어로 비문증(飛蚊症)으로 볼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기생충이 지수의 신체 내부에 있는 실체인지 아니면 환영인지는 알 수 없다. 둘 중 어느 쪽으로도 환원시키고 싶지 않다. 그 두 개의 영역이 중첩된 숏이라 말하고 싶다. 기생충이 지수의 눈에서 잠시 모습을 드러낼 때의 조건이 흥미롭다. 무매개적인 조건이 아니라 빛과 커튼이 필요하다. 잠에서 깬 지수가 빛을 머금은 커튼을 바라볼 때 기생충의 모습이 잠시 등장한다. 영화의 영사 원리가 떠오르기도 한 장면이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와 달리 기생충은 지수 눈에만 보인다. 기생충이 몸에서 빠져나간 이후에 지수의 시점 숏이 같은 조건에서 다시 등장한다. 더 이상 지수에게 기생충이 떠다니는 불투명한 필터는 없다. 맨눈이 된다는 것의 두려움. 지수는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아물지 않은 어떤 상처가 이제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에도 지수의 시점 숏이 나온다. 이 영화의 엔딩은 여전히 내게 미궁으로 남아있다. 지수의 흐느낌, 멈춰버린 그의 몸, 시끄러운 기계음. 밀폐된 공간 속에서 시청각적으로 구성된 이 감각적인 엔딩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장에 비평의 언어로 재단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몽타주하고 싶은 것은 현재 지수의 멈춘 뒷모습과 그가 다시 쓰기 시작한 글에서 표현했던 미래의 자신의 뒷모습이다. <아코디언 도어>는 두 뒷모습 사이의 간극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2.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수인(囚人)의 이미지 두 뒷모습은 현실과 픽션의 간극처럼도 보인다. 현실은 잠시 멈춰있지만, 미래에는 좀 더 자유로워지길 바라며 써 내려간 희망의 픽션. 나 역시 현실의 고민을 픽션에 투영해 바라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기사 한 줄 없이 주목도 못 받았지만 그래도 영화제에 흔적은 남긴 지옥의 영화 <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2025)이다. 이것은 희망의 픽션은 아니다. 무언가를 내려놓지를 못하는 나를 산 정상에 올려다 놓고 장대비를 맞게 한다. 절벽 끝으로 몰아붙이는 느낌으로 말이다. 계속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하산할 것인지. 질 들뢰즈가 말하는 ‘사유’가 영화의 끝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내리는 비라는 사건은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것과의 우발적인 마주침” [2] 이다. 원래 엔딩은 “CINEMA”라 적힌 노트를 봉수대에 넣고 태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뻔해 보였다. 찬물을 끼얹고 싶었다. 그래서 빗소리를 붙여봤다. 썩 마음에 들었다. 기껏 노력해서 무언가를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는 느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영화제에 가기 위해 200자 원고지 50매 이상을 썼다. 이번엔 장편 분량의 에세이 영화를 만들었다. 어떤 평론가가 이럴까 싶지만, 방법이 그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감독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없다. 평론가로서 나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을 뿐이다. 그게 과연 통했을까? 프랑수아 트뤼포의 명언이라고 잘못 알려진 ‘시네필 3법칙’을 등단한 이후에 몸소 실천했다.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고, 영화 비평을 쓰고, 직접 영화를 만들기.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영화와 좀 더 멀어진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중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부산 무사이극장에서 당연히 만들면서도 알았고, 실제도 다 만들고 나서는 더욱 더 난감했다. 이걸 받아 줄 만한 영화제가 있을까? 어느 영화제에 붙여놔도 안 어울렸지만 그냥 일단 다 출품해 봤다. 그래도 받아 줄 만한 곳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였다. 당연히 떨어졌다. 그것에 낙담한 적은 없다. 떨어질 만한 영화기 때문이다. 서울독립영화제 빼곤 남은 카드가 없었다. 연락이 없는 걸 보니 떨어진 것 같았다. 때마침 부산의 김영광 평론가가 운영하는 1인 시네클럽 ‘시네마 언노운’에서 상영작 공모가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에서 홍보 게시물을 보자마자 바로 보냈다. 그렇게 다시 부산에 가게 됐다.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이 끝나고 바로 다음 주 화요일인 9월 30일에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하게 된 것이다. 부산 무사이극장에서 진행된 상영회에서 김영광 평론가는 3시간에 육박하는 GV를 진행했다. 그는 ‘뉴웨이브’가 올 것 같냐고 물었다. 그것은 초청된 모든 감독에게 물어본 공통 질문이었다. 그때는 이걸 왜 물어보나 싶었다.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는 3월 7일에 열리는 ‘뉴웨이브 전초전’이란 대규모 행사를 그때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당시 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당분간 뉴웨이브는 안 올 것 같다. 지금은 기획자를 원하는 것 같다. 저런 거(<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 만들지 말고, 영화를 틀어야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시네마토그래프의 ‘이윤영’ 씨가 지금 스타다. 비평계에선 ‘김병규’ 평론가가 스타고 그 이후엔 없다. 등단하고 나서야 안 것이지만 이미 학창 시절부터 시네필이고 파워블로거고 그 집단을 끌고 들어왔다는 점, 다시 말해 인터넷 인간들을 우군으로 끌고 왔기에 리더다. 밑도 끝도 없이 온 나의 경우는 지지기반이 아예 없는 거고… 지역 기반이 있거나 혹은 업계 사람들을 많이 알아서 일을 따가고 잘 나가도, 그처럼 아이콘은 될 수가 없다. 래퍼 더 콰이엇의 명언이 이곳에도 적용된다. “스타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시대가 원해서 나타나는 것에 더 가깝다. 근데 스타가 안 나온다는 것은 그걸 안 원한다는 거예요. 이 시대가… 근데 때가 되면 나타날 겁니다.” 비평이라면 그것을 소비하는 블로그, 커뮤니티, SNS 사용자를 끌고 와야 하는 것인데, 다음은 어떤 매체일까? 비평을 담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 블로그가 아니었을까. 혼자서는 버겁다. 잘난 사람들도 뭉치는 판이다. 아이돌 그룹처럼 모여서 팀으로 활동한다. 소리그림, 키니마 등등. 현장에선 얼추 비슷하게 말했던 것 같고 상영 이후에 정리한 말들이다. 평론가의 역할이 좀 더 확대되고 있었다. 나 역시 상영 기획을 해야 하나, 영화를 수입/배급해야 하나 별별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의 다음 단계가 있다면 그것은 감독이 아니라 프로그래머나 수입/배급업자가 아닐까? 활황인 관객 프로그래머와 시네클럽들. 프로그래밍의 외주화. 영화제와 영화관은 이들과 손을 잡고 ‘멋(hip)’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이를 통해 기획, 상영, 비평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융합형 인재가 양성되고 있었다. 새로운 종의 출현인 것이다. (새로운 것은 아닐 수 있다. 잠복기를 거쳐 다시 부상한지도 모르겠다. [3] ) 나는 단종된 이전 모델의 길을 걷고 있는 퇴화하는 평론가의 종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러한 압력은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어떤 영화를 어떻게 쓸 건지보다는 어떻게 상영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생존에 유리해졌다. 글도 잘 못 쓰는데 시장에선 그런 사람들을 더 반기니 말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선 이러한 시류를 반영이라도 하듯 ‘클럽 시네마’란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소리그림과 키니마가 그 첫번째 주인공으로 참여해 시네토크를 했다. 여태 이 글을 읽었거나 혹은 영화제를 간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나는 해당 영화제에 영화로도, 평론가로도 초대받아 일해 본 적이 아쉽게도 없다. 작가로서의 평론가만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점검하게 됐다. 과감하게 집어던지고 건너편으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비평은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 된 것은 아닐까?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나는 그 스킬을 익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게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은 영화를 보러온 동지들(김영광, 강원우 평론가, 마산영화구락부의 김준희)과 화명역 근처에서 새벽까지 소주 먹고 대단원의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마지막 남은 한 발이 먹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식 발표 하루 전날 서울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전화가 왔다. 페스티벌 초이스 장편 쇼케이스 부문에 선정됐다는 전화였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시네마테크KOFA 기획전 “영화로 영화쓰기” 중 섹션 “오진우 단편선”(상영작 중략) 그전에 7월 15일에 “오진우 단편선”이란 제목으로 그간 만든 영상들을 틀 기회가 있었다. 다른 평론가들이 상영 기획으로 저변을 확대하며 예비 프로그래머로 성장할 때, 나는 영상을 만들어왔다. “ 영화로 영화쓰기 ”라는 프로그램 안에서 내 영상들이 가장 이질적이었다. 다른 상영작들과 어울릴 수 없는, 그래서 단독으로 꾸려졌을 것이다. 특색이 있다지만 일종의 갈라파고스. 나도 다른 창작자들과 교류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도마 위의 생선이 되겠다는 것이다. 평론가와 프로그래머는 칼을 들고 도마 위의 영화라는 생선을 바라본다. 일종의 게이트 키퍼로서 영화를 선별한다. 나도 그렇게 남의 영화를 바라보고 싶었는데 스스로 생선이 되었다. 비평의 세계에서 영화 창작의 세계로. <아코디언 도어>의 지수처럼 나 또한 물고기 같았다. 지수는 변화한 환경에 적응했다. 나는 이것이 진화인지 아니면 퇴화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후자에 마음이 쏠린다. 애초에 내가 평론가로서 잘 풀렸다면 영화까지 만들었을까? 아닐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타입의 영화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계속해서 비평의 끈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비평을 놓아버리고 건너편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미련하게…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KMDb에 이렇게 글을 쓰기 전에 웹진 아카이뷰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또한 우회. 그 글 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비디오 에세이와 에세이 영화는 내게 고치지 못한 습관 혹은 만성적인 질환처럼 남게 됐다. 이 증상으로서의 시네마 를 발견해 준 담당 프로그래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 향후 미래에 다시 누군가가 이 분야를 디깅했을 때 재발견되어 한국 영화비평사의 B-Side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날까지, 설령 그날이 안 와도 영화로 가는 길을 계속 걷는 수밖에 없다.” “오진우 단편선”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나를 최초로 발견한 은인 황민진 프로그래머님의 제안 덕분에 성사된 일이다. 좀 더 강단 있고 잘나가고 예술적인 평론가였다면 행사의 흥행을 위해서 고사를 했을 텐데, 아쉽게도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보통 일이 들어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네, 가능합니다.” 황민진 프로그래머가 쓴 노트를 살펴보자. “오디오비주얼 필름 크리틱, 비디오 에세이,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뮤직비디오를 아우르는 오진우 감독/평론가의 작업은 단일한 규정으로는 묶이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저 모든 걸 안 하고 있기도 하다. 정확히는 못한다. 저 장르로 나아가 아예 감독이 돼서 뭘 만들 줄을 모른다. 자본화되지 않는 기술력인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감독을 꿈꾼 것도 아니고, 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제작 워크숍을 경험한 적도 없다. 평론가로서 다급해져서 만든 성과일 뿐이다. 내 영상은 그간 본 것들의 총합이다. 다양한 것들을 가져와서 믹스하는 것이다. 황민진 프로그래머가 분석한 나의 작업의 특성은 유운성 평론가가 정의한 ‘에세이 영화’의 형식과 공명한다. 유운성 평론가는 에세이 영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에세이란 고전적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부정하는 대안적 형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포괄하고 자신의 특수한 사례들로 만드는 보편적 형식이다.” [4] 에세이에 관한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실제로 에세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와닿는 정의가 바로 저 문장이다. < 영상자료원 가는 길 >(2022)과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저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오진우 단편선”을 본 몇 안 되는 관객 중 유운성 평론가님이 계셨고 유일무이하게 리뷰를 남겨주셨다. 글의 일부분을 옮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상) <영상자료원 가는 길> / (하)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 사진: “ jinu montage ”, 유튜브 / “ MUBI ”, 유튜브 “(…) 최근작인 <홍상수: 중력과 은총>(2025)은 비평적 몽상의 발걸음이 홍상수 영화를 일렁이게 하는 은밀한 저류와 짜릿하게 만나면서 그것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다만, 이전 작업들에서 두드러졌던 ‘캐릭터로서의 비평가’는 여기서 훨씬 은근한 형상으로, 수줍은 자취로만 감지된다.” 바로 직전 작업인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에서 ‘캐릭터로서의 비평가’를 전면에 내세워서 반작용이 있었던 걸까? 하긴 이 영화에서도 내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직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이 영화 또한 직접 보러 와주신 유운성 평론가님은 다음 작품에서는 본인이 직접 출연해 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나는 숨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사라지고 싶었던 것일까. 어디로부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상자료원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도 영화제 맛을 본 작품이다. 여기에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라는 비디오 에세이는 해외 영화제에서 상영 후 MUBI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됐다. 나름 괄목할 만한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아시다시피 기사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은 부산을 찍고 서울에 입성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내가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서울독립영화제의 자랑인 ‘독립영화 매칭 프로젝트: 넥스트링크’란 프로그램이 있다. 보통의 영화들은 개봉이 목표다. 서독제의 넥스트링크는 배급사와의 미팅을 주선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 장편 상영작 중 배급사 미정인 작품이 이 프로그램의 자격 조건이다.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이 조건을 갖췄으나 (양심적으로) 개봉이나 배급사를 둘 정도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이 영화가 내가 바라는 다음 스텝을 위한 땔감이 되길 희망했다. 마침 그런 장면이 이미 영화 안에 있기도 했다. 이 영화를 통해 얻은 것은 감독의 자리. 내가 바라고 원했던 자리는 평론가의 자리인 모더레이터가 앉은 저 자리. 장편 분량의 영화를 만들고 고작 바라는 게 그것이냐고 묻는다면, 당장은 그렇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여기서 일단 마무리가 됐다. 이 영화를 통해서 영화제 측에 나를 처음으로 알렸다.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를 말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영화만 틀고 끝날 수도 있다. 개막식 때로 시간을 돌려보자. 개막작 < 무관한 당신들에게 >(2025)를 기획한 문주화 평론가님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일은 저렇게 보는 거다.” 지난 1년간 내가 걸었던 길이 구태(舊態)라고 느껴졌다. 그녀는 최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프로그래머로 발탁됐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관객석으로 그리고 엉뚱한 사무실로 점점 영화와 멀어졌다. Outro 이것이 나의 지난 1년 간의 이야기다. 손경수 감독이 쓴 <아코디언 도어>의 연출 의도가 떠오른다. “잘해서가 아니라 좋아해서 계속할 수 있다는 단순한 답은 계절처럼 한 템포 늦게 찾아왔다.” 비록 잘한 적도 없지만 좋아해서 계속할 수 있다는 단순한 답은 아직 내게 도착하지 않았다. 올해는 어떻게 될까? 그 사이 계절은 겨울에서 봄이 됐다. 영화에 대한 사랑보단 돈… 거짓말이라도 돈 말고 영화를 사랑한다고 외쳤어야 했다. 모든 것이 내가 자초한 일이기에 별다른 변명도 할 수 없다. 많은 분의 도움으로 영상자료원 로그인 차단은 해제되었다. 차단 해제 이후 영상자료원에서 처음 본 영화는 오구리 코헤이의 < 진흙강 >(1981)이었다.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명작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진흙강>은 인물들 간의 거리감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우동집 아들 노부오는 창문을 통해 강 건너편에 정박한 배 한 척을 본다. 그것은 그에게 신기한 매혹의 세계였고, 잔혹한 진실의 세계였다. 비가 퍼붓는 날 다리 위에서 노부오는 배에 사는 키이치를 만나 친구가 된다. 배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하나는 남매의 방으로, 다른 하나는 어머니의 방으로. 배는 벽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됐지만,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세계였다. 들어도 못 들은 척 고통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세계 속에서 남매는 살아간다.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식사 장면이다. 키이치와 그의 누이 긴코는 우동집에 초대를 받아 밥 한 끼를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긴코가 즐겁게 노는 동생을 쳐다보는 장면이 있다. 그녀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잠시 누린 이 행복이 내 것 같지 않은 느낌. 다른 하나는 마지막 장면이다. 진실을 목격한 노부오는 남매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다음 날 배가 떠나기 시작한다. 노부오는 강을 따라 배를 뒤쫓기 시작한다. 그는 연신 친구 키이치를 불러보지만, 배는 무심하게 아무 말 없이 떠난다. <진흙강> 중 / 사진: <진흙강> 중 (“ Doro no kawa ”, IMDb) * 지난 여름과 겨울에 제 영화를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 감독님들, 평론가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영화제 이후 자신의 영화를 내어준 < 관찰자의 일지 >(2025)의 임정환 감독님과 < 겨울날들 >(2025)의 최승우 감독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글을 쓰지 않고,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볼 수 없었던 길이기에 그저 꿈만 같다. “영원히 꿈을 꾸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5] 이제 꿈에서 깰 시간. *** [1] 배우 권해효의 멘트를 문장에 맞게 변형해서 사용했다.( 링크 ) [2] 질 들뢰즈, 김상환 옮김, 『차이와 반복』, 민음사, 2004, 313쪽. [3] 한국영상자료원의 “1990s 시네마테크의 필름들”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세대가 다른 시네필들이 만났다. 비슷한 연장선상에서 읽히는 “영화서클”은 지금 활황인 시네클럽의 부상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전 세대의 시네클럽은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추적하는 고고학적인 방식의 프로그램 같다. [4] 유운성 평론가는 장 뤽 고다르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 인디아 >(1959)에 대해 남긴 짧은 글로부터 ‘에세이’라는 형식을 다음과 같이 도출한다.(유운성, 『유령과 파수꾼들』, 미디어버스, 2018, 310쪽.) [5] <관찰자의 일지>에 나오는 대사다. 영문 자막이 흥미롭다. “… Dreams can’t last forever … is the theme.” 비평, 안녕하십니까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오진우(영화평론가) l 2020년 《씨네21》 영화평론상으로 데뷔했다. 이후 2021년 한국독립영화협회, 2024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전에서도 수상한 바 있다. 에세이 영화 <영상자료원 가는 길>(2022), <서울아트시네마 가는 길>(2025)과 비디오 에세이 <Hong Sang-soo: Gravity and Grace>(2025)를 만들었다.
이장호 는 70년대 '영상시대' 활동과 더불어 ‘청년영화의 기수’였으며 ‘최초의 스타감독’이라고 불린 시대적 문화 아이콘이었다. 특히 80년대는 이장호의 전성시대였다. ‘80년의 봄’, 4년여의 공백을 깨고 발표한 < 바람 불어 좋은 날 >은 당시 청년 영화인들의 교과서였다. 당대 발표된 ‘80년대 한국영화 베스트 10’에는 그의 영화가 4편이나 선정되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 과부춤 >과 더불어 그 목록에 포함된 영화가 바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다. 85년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이제하의 단편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85년 영화제작 자율화 시행 이후 그가 설립한 판영화에서 제작하였는데, 87년 어렵게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을 했으나 관람 숫자는 미미했다. 당대의 지배적인 한국영화 관람 체험 속에서 이 영화는 낯설었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는 편안한 관람 행위를 허하지 않는다. 수려하지만 그 수려함을 세피아톤으로 톤 다운시켜 놓은 강원도 산길을 익스트림 롱 쇼트의 롱테이크로 찍은 화표면은 마치 정지된 스틸의 그것 같다. 화면 왼쪽으로 원경에서부터 쭉 뻗은 길로 남자와 여자가, 그리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러나 화면 앞 가장 가까운 거리에 도달할 때 까지도 그들은 식별되지 않는다. 아울러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다른 내재적 사운드가 소거된 상태에서 마치 보이스오버처럼 원근감 없이 들려오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 소리는, 현재 그들이 나누는 대화인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이미지와 비동조화된 사운드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인과법칙에 기초하지 않은 서사의 진행, 행위에 대한 동기와 설명의 희박함,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지우는 쇼트의 배열, 극적 흐름과 맥락을 단절시키는 몽타주 시퀀스들은 시공간적 통일성과 연속성의 감각을 흩뜨리면서, 샤머니즘적인 운명론적 세계관의 묘사와 맞물려, 종국에는 불가해한 재현의 지점에 다다른다. 영화는 크게 황토 빛 모노크롬과 푸른 빛 모노크롬으로 처리된 두 개의 의미 계열체로 구성되어 있다. 몇 개의 시간적 재배치가 있으며 간헐적으로 현실과 환각의 경계를 허무는 주관적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황토 빛 모노크롬의 세계는 대체로 3박 4일의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적 현재를 재현한다. 반면 그 황토 빛 시공간을 절단하고 틈입하는 푸른 빛 모노크롬의 의미 계열체는 인물들의 회상, 주관적 플래시백, 의식의 흐름, 운명적 암시 같은 현재 시제를 벗어나, 충돌하며 운동하는 이미지들의 배열이다. 이장호는 <바보선언>에서 실험했던 즉흥적이고 연상적인 연출법을 재도입하는데, <나그네>에서 그러한 연출 방식은 명확한 좌표 없이 강원도를 떠돌며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직면하는 인물들을 그리는 데에는 더없이 잘 맞아 보인다. 개성이 고향인 사내와 전쟁 통에 고향이 어딘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아내, 휴전선 부근 월산이 고향인 노(老) 회장 모두 전쟁으로 인하여 이산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속초, 원통, 강릉, 경포, 인제에 이르는 영화적 공간에서도 원통, 속초 등은 분단과 그 결과인 휴전선 아래 마을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공간의 지정학적 의미를 예민하게 포착한다. 예컨대 여행 첫날 사내가 아내의 유골을 바닷가에 뿌리려다 군인에게 제지를 당하고 결국 철수하는 것이라든가, 강릉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회를 파는 전주식당의 사장이 "전쟁 통에 나같이 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냐"고 반문하는 것 등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몇몇 장면은 자유연상과 자동기법으로 이러한 역사적인 지정학적 트라우마 의미를 기입한다. 백사장에 놓은 가방 속 아내의 유골을 바라보던 시선이 “고향이 원산은 아니라예”라는 아내의 목소리 사운드와 연결되면, 강릉 앞바다 위로 포화와 피난 행렬을 담은 한국전쟁 당시의 뉴스릴이 오버랩 된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 시선의 주체를 알 수 없는 일련의 국도 이미지의 몽타주 시퀀스 끝에, 우리는 국방 한계선과 상판이 없이 끊어진 다리와 마주하게 된다. 그러한 시도들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담대하다. 영화 전체에 걸쳐 산포되어 있는 분단의 트라우마가 영화적 주요 배음을 이루고 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샤머니즘적 운명이라는 또 다른 배음이 날 선듯한 감각으로 강화된다. 사내의 주체의 중심 없음 혹은 부유(浮遊)함은 실향(失鄕)과 상처(喪妻)의 중층 결정의 결과물이다. 실향의 감각은 아내의 죽음과 이중 노출되어 있으며, 그와 연합된 상실감과 죄책감은 노정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성매매 여성과 ‘색시’, 그리고 ‘미세스 최’에게 투사된다. (아내, ‘색시’, ‘미세스 최’는 모두 이보희 가 연기한다) 서사가 진행될수록 영화는 최가 몇 해 전 받았던 점괘, 즉 “나이 서른에 물가에서 관을 세 개 짊어진 남자를 반드시 만날 것, 그가 전생의 남편”이라는 운명론적 예언을 향해 가는데, 기실 색시와 최는 모두 아내의 더블들이다. 그와 간밤에 관계를 가졌던 ‘색시’의 죽음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환시(幻視)로 대체된다. 최가 고향을 언급하며 “아우라지강을 아세요”라고 언젠가 죽은 아내가 했던 말을 똑같이 사내에게 건넬 때, 최는 정확히 아내의 도플갱어로 확증된다. ‘미세스 최’란 인물은 철저히 대리보충적인데, 그녀는 지난 2년간 중풍환자 회장의 ‘인간 핫 팩’으로서 그가 결여한 혹은 상실한 온기, 활력, 고향의 따스함을 대리보충 해왔다. 그 역할은 사장 아들이 특파한 상무에게 끌려가면서 회장이 손에서 놓아 버린 낡은 사진과 기능적으로 같다. 또한 그녀는 남자에게는 죽은 아내의 대리보충이며, 마지막에는 오구굿 중 신내림을 받음으로써 영혼에게 몸을 주는, 사령(死靈)들의 대리보충 역할이 된다. 결국 남자의 주체성의 위기는 복구되지 않으며 파국을 맞는데, 그것은 죽은 아내의 대리보충으로써는 온전한 애도작업을 완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완수되지 못하는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인 애도작업은 신내림의 형태로 최에게로 전이되며, 민족적 해원의 무게는 그녀의 무속 연행에 맡겨진다. 이장호의 80년대 작품 연보에는 사회적 참여의식이 강한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들과 대중추수적인 흥행 영화들, 그리고 작가의식이 녹아든 영화들이 교차했다. ‘황토빛 모노크롬 영화 한편 찍고 싶다’는 로망을 실현하고자 이장호가 직접 제작한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처음부터 지방흥행업자들의 투자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 결과 그의 작품연보에서 그리고 한국영화사에서 아주 낯설고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내었다. >>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고화질 VOD 보러가기 <<
(첫 번째 쪽) 가을 학기가 되자 oo일보사에서 주최하는 학생 계몽운동에 참가하였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 각처에서 모여든 대원들을 위로하는 다과회가 그 신문사 누상에서 열린 것이다. 오륙백 명이나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에는 전 조선의 방방곡곡으로 흩어져서 땀 흘려가며 활동한 남녀대원들로 빈틈없이 들어찼다. 폭양에 그을린 그들의 시커먼 얼굴! 큰 박덩이만큼씩 한 전등이 드문드문하게 달린 천장에서 내리비치는 불빛이 휘황할수록, 흰 벽을 등지고 앉은 그네들의 얼굴은 한층 검어 보였다. 만호장안의 별처럼 깔린 등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도록 사방의 유리창을 활짝 열어젖혔건만, 건장한 청년들의 코와 몸에서 풍기는 운김이 우거진 콩밭 속에 들어간 것만치나 후끈후끈 끼친다. 정각이 되자, P학당의 취주악대는 코넷, 트럼본 같은 번쩍거리는 악기를 들고 연단 앞줄에 가 벌려 선다. 지휘자가 손을 내젓는 대로 힘차게 연주하는 것은 유명한 독일 사람의 작곡인 ‘쌍두취행진곡(雙頭鷲行進曲)’이다. 그 활발하고 장쾌한 멜로디는 여러 사람의 심장까지 울리면서 장내의 공기를 진동시킨다. 악대의 연주가 끝난 다음에 사회자인 이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안경을 번득이며 점잖은 걸음걸이로 단 위에 나타났다. (...) 라고 심훈 이 1935년에 쓴 장편소설 <상록수>는 시작한다. 애플북스 「상록수」 소설가 심훈 은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는 내내 경성에 살았으며 그때 거기서는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심훈은 단지 시네필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1926년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고, 그런 다음 영화를 배우기 위해서 이듬해 일본에 가서 영화감독 무라타 미노루(村田實) 밑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고 한다. 여기서 공부했다, 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관한 자료가 내게는 없다. 무라타 미노루는 영화학교 선생이 아니라 영화감독이다. 그에게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연출부를 하는 것인데도 구태여 자료에는 공부를 했다, 고 되어있다. 한국영화에서 도제제도라는 방법이 식민지 시대의 영화현장에서 해방 ‘이후’에 남겨진 일본영화의 전통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약간의 추론. 쇼오치쿠 영화사는 1921년 쇼오치쿠 배우학교를 개조하여 쇼오치쿠 키네마 연구소를 만들었다. 여기에 아직 이십 대였던 무라타 미노루도 가세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그 첫 번째 영화로 니콜라이 고골의 소설 <밑바닥>을 각색하여 <거리의 영혼>을 찍었다. 이 영화는 (다소 놀랍게도 ‘이미’) < 인톨러런스 >의 영향을 받은 평행편집기법으로 연출되었다. 노엘 버치는 이 영화를 본 다음 감격하여 프릿츠 랑의 < M >이나(1930년) 칼 드레이어의 < 잔 다르크의 수난 >의 단계에(1928년) 이미 이르렀다고 썼다. <거리의 영혼>이 두 영화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점을 셈에 넣어주기 바란다. 그런 다음 닛카츠 영화사로 옮긴 무라타 미노루는 1924년 요시다 겐지로의 소설을 각색한 <세이사쿠의 아내>를 만들었다. 거의 결정적인 걸작. 이 영화는 마스무라 야스조가 1965년에 훌륭하게 다시 만들었지만 비교는 어림도 없다. 심훈이 1926년에 무라타 미노루 밑에서 ‘영화를 공부했’을 때 그는 <춘희>를 찍고 있었다. 심훈은 왜 무라타 미노루를 선택했을까. 심훈은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아쉽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런 다음 돌아와서 심훈은 < 먼동이 틀 때 >를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였고 이 영화는 단성사에 개봉하였다. 한국영화사가 (프린트가 사라진) 걸작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아마 흥행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심훈이 이듬해 조선일보에 기자로 입사했을 리 없다. 하지만 심훈은 영화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 상록수 >를 쓴 이듬해 1936년 심훈은 이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것이 심훈의 마지막 행보이다. 그는 그해 9월 16일 장티푸스로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1926년 11월 29일 동아일보, 심훈「탈춤」 나는 하스미 시게히코가 아니다. 그는 플로베르에 관한 글을 쓰면서 마치 영화감독을 다루듯이 <마담 보바리>를 바라본다. 물론 ( 심훈 가까이 살았던) 현진건이나 이효석을 읽고 있으면 종종 어떤 문장의 수사들이 마치 이미지를 만지는 것만 같다는 인상을 받지만 그 대목들이 영화적으로까지 옮겨간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마찬가지로 <상록수>를 읽으면서 심훈이 영화감독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무라타 미노루의 영화를 보았고 심훈의 (사라진) 영화는 (당연히) 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심훈이 이 소설을 어떻게 영화로 옮길 계획이었는지를 알 수 없다. 이루지 못한 심훈의 소망을 1961년 신상옥 이 영화로 만들었다. 주연은 최은희 와 신영균 . 두 사람이 채영신과 박동혁을 연기했다. 그런 다음 1978년에 임권택 이 다시 이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새로운 커플. 한혜숙 과 김희라 . 물론 1978년은 이 소설을 다시 만들기에 좋은 시기였다. 나는 이 말을 부정적으로 하는 중이다. 거의 절정에 이른 새마을 운동. 농촌 계몽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소설. 게다가 그때는 영화진흥정책에 따라 반공영화, 새마을영화, 문예영화로 나눈 우수영화에 선정되면 외국영화 수입 쿼터권을 나눠주던 시기였다. 제작자들은 영화가 농촌에 가기를 희망했다. < 삼포가는 길 >을 새마을 영화로 둔갑시킨 마지막 쇼트를 기억하라. 교과서에 올라온 심훈이라는 이름. 누구나 읽어야 하는 소설의 명단. 일제 식민지의 탄압과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농촌 계몽에 온몸을 바친 선남선녀의 이야기. 민족주의와 근대의 (기괴한) 결합. 그해에 임권택은 < 족보 >와 < 상록수 >를 찍었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두 편의 반공영화(라기보다는 차라리 실험영화처럼 보이는) <가깝고도 먼 길>과 <저 파도 위에 엄마 얼굴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 네 편의 영화 중 오직 <상록수>만이 우수영화에 선정되지 않았다. 나는 그 선정과정에 얽힌 우여곡절을 알지 못한다. 아마도 임권택은 몹시 당황했을 것이다. 가장 안전한 선택. <상록수>는 새마을영화이면서 문예영화였다. 양수겸장. 그런데 빗나간 예상. 거기서 느꼈을 어떤 위기를 상상해주기 바란다. 그때 임권택의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개봉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영화는 간판은 걸려있지만 영화는 상영되지 않았다. 사라져 가는 경력. 외부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 한국영화의 많은 감독들이 그때 자신의 경력을 거기서 끝냈다. 미미해지는 잔존의 영역.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있을 때 거기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에서 제외될 때의 사라져가는 존재의 기분. 그 곁의 예. <족보>는 미처 개봉도 하지 못하고 재개봉관으로 향해야만 했다. 하지만 제작사의 관점에서 <족보>는 제 임무를 다했다. 버려진 영화들. 수 없이 많은 1970년대 영화들은 그 과정을 따라갔다. 그 과정에서 허용된 미학적 성취들. <족보>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숨겨놓은 놀라운 미학적 경지에 가 닿았다. 거기에 담겨있는 힘. 거기서 다시 한 번을 원하는 의지. 이 말을 반복해서 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임권택이 1970년대 국책영화의 폭력적인 요구 안에서 가까스로 끌어낸 예, 라는 긍정의 힘과 의지의 새로운 조화. 오직 그의 영화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긍정의 구도. 정확하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상록수>가 또 다른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978년은 임권택에게 모든 점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상록수>의 첫장면 아마, 어쩌면 아마도, 임권택 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몽의 서사로 따라가는 대신 신파의 감흥으로 가득 찬 비애극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그의 독서 체험은 < 장군의 아들 2 >에서 나온다. 김두한이 출판사 앞을 지나가다 계용묵 선생으로부터 자네 김두한이지, 책 좀 읽고 다녀, 라는 핀잔을 들은 다음 자신이 머무는 종로 운당여관에 두 청춘남녀 학생을 부른다. 문맹이었던 그는 그들에게 심훈 의 <상록수>를 낭독시킨다. 대낮에 시작하여 밤늦은 시간까지 듣던 김두한은 죽어가면서 채영신이 박동혁을 그리워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훔쳐 닦으면서 중얼거린다. 죽여주는구나. 죽을 만큼 슬픈 이야기. 그런데 이상하게도 임권택의 < 상록수 >는 슬프게 찍히지 않았다. 단지 관객의 슬픈 감흥을 불러내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슬프게 접근하지 않았다. 구태여 이 영화의 기분을 설명해야 한다면 차라리 우울하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물론 슬픔과 우울을 엄격하게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이를 우울증이 가로막아 나서고 있고 그 둘은 그 상태로 불투명한 채로 남는다. 슬픔은 종종 자아가 텅 비었는데 주체가 남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 말을 빌려서 우울은 이미 잃어버린 대상 앞에서 즐기는 주체의 외설적 긴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상실. 임권택은 <상록수>에서 어떤 승리도 거둘 생각이 없다. 그는 일단 이야기를 찌그러트리고 그런 다음 두 주인공의 운명을 따라가는 척하다가 완전히 바꿔놓는 쪽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데로) 박동혁과 채영신은 교육을 받고 개화한 다음 각자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 개혁에 몰두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두 사람의 고향 이야기를 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채영신은 몸이 아파서 그만 먼저 세상을 떠난다. 남은 박동혁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더욱 힘을 모은다. 그래서 “... 오호, 너희들은 기나긴 겨울에, 그 눈바람을 맞구두 싱싱하구나! 저렇게 시푸르구나!” 라고 감탄을 한 다음 상록수 그늘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하지만 임권택의 <상록수>에서 박동혁은 일본의 토지개혁정책에 동조하지 않아 음모에 빠진 채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완전히 실성한 채 풀려난다. 그러는 동안 채영신은 소설 그대로 점점 몸이 아파 죽어간다. 마지막으로 채영신이 박동혁을 만나지만 그건 아무 의미 없는 작별이다. 채영신은 죽어가고 박동혁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절반은 심훈을 따라가지만 남은 절반은 심훈을 버리는 결정을 내린다. 채영신과 박동혁의 작별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내가 무언가 소설을 잘못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4개로 나눈 이야기에서 12번째 장(章) ‘천사의 임종’부터 다시 읽었다. 만일 이런 식으로 말해도 괜찮다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영화였다. 물론 그것이 영화의 잘못은 아니다. 소설을 빌려온 영화가 어느 대목부터 원작을 버리는 예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흔하다. 아니, 차라리 이것이 소설과 영화가 맺어온 우정의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낱말이 이미지 안에서 반대로 활동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만을 따라간다면 둘 사이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이 비애극적인 연인들이 죽음의 위력 앞에 던져졌을 때 심훈 은 거기서 그것을 뛰어넘고 승리하는 계기를 찾으려고 한다. 반대로 임권택 은 무기력하게 그걸 받아들이면서 움츠러들고 마침내는 견디지 못해 부서져 나가기 시작한다. 좀 더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심훈은 슬픔의 충만함에 만족한 다음 그걸 대가로 하여 그 너머에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임권택은 희생의 셈에 실패한 채 아무것도 얻지 못하면서 우울한 상태에 젖어들어 거기에 그냥 머문다. 나는 지금 그 둘 사이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둘 사이의 운명의 서사적 차이가 아니라 그 운명의 시간적 차이이다. 무엇이 반복을 봉쇄하는가. 나는 그 사이에 어두운 바탕이 있다는 기분이 든다. 채영신과 박동혁이 살았던 시대에 이 소설을 쓴 심훈이 운명 안에서 가까스로 희망을 보려던 신비한 합리화로부터 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서 임권택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재현하면서 운명의 윤곽이 어떻게 역사를 대상으로 자신을 유지하는지를 쳐다본다. 이때 영화는 일제 식민지 강점 하를 다루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새마을 운동의 시대를 우울하게 비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복하는 운명극의 기분. 공허해진 세계. 그들은 어린 상록수를 키워야 한다는 의무감을 맹세하듯이 몇 번이고 말하지만 세계는 여기에 응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심훈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상록수>를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임권택은 새마을 운동시대에 < 상록수 >를 이렇게 찍을 수밖에 없다. 같은 이야기 안의 차이. 차이 안의 차이. 그 차이의 유기적 재현을 한 번 더 만날 때, 그래서 그사이에 놓인 매개의 요구가 반복이라는 복종을 요구할 때 우리는 거절해야 한다. 내가 영화 <상록수>에서 보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한 번 더, 라는 반동의 의지이다. 임권택은 심훈의 <상록수> 앞부분을 성큼 건너뛴 다음 70쪽에서부터 시작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어디를 자를 것인가. 장편소설을 만나면 영화는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기 시작한다. 소설은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삼 개월 뒤 긴 가뭄 끝에 비가 내린 다음 날로 되어있지만 영화는 그저 화창한 초여름 어느 날로 시작한다. (소설) 이윽고 파아란 뺑끼칠을 한 똑딱이가, 선체를 들까불며 들어온다. 갑판 위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가 보인다. 동혁은 손을 높직이 들며 허공을 저었다. 조가만 거루는 선객과 짐을 받아 싣고, 선창으로 들어와 닿았다. 동혁은 반가운 웃음을 얼굴 가득히 담고, 영신의 손을 잡아 뭍으로 끌었다. “이번 비, 참 잘 왔죠?” 한 마디가 첫밗에 하는 영신의 인사였다. “잘 오구말구요. 그래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허셨에요?” 하며 동혁은 얼굴빛을 살핀다. 상상하던 것보다는 나아도, 어글어글하던 눈이 전보다 커다래 보이는 것은, 그 복성스럽던 얼굴의 살이, 그만큼 빠진 탓일 듯. 드러나 반가운 김에 상기가 되어 그런지, 혈색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위선 안심을 했다. (중략) 소설은 채영신과 박동혁이 만나는 데서 시작해서 그 두 사람이 농촌 계몽운동에 뜻을 모으고 연인으로 발전한다. 영화는 그 두 사람이 연인으로 만나서 자신들의 감정을 확인한 다음 (거기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연인으로 머문다. 임권택 이 심훈 의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러나 소설 안의 균형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상록수>를 다시 읽어나간다. 이때 임권택은 이 파란만장한 이야기의 굴곡을 거의 없애버린 다음 마치 제자리를 뱅뱅 도는 것만 같은 방식으로 두 연인을 가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박동혁의 고향인 한곡리를 하나의 원으로 하고 채영신의 고향인 청석골을 다른 하나의 원으로 한 다음 두 사람이 번갈아 두 개의 원 사이를 오가는 왕복운동만이 반복적으로 진행될 뿐이다. 각자의 원은 각자의 운동을 하면서 지리적 경계를 두고 채영신과 박동혁을 사이에 둔 교집합이 있긴 하지만 어떤 교환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곡리와 청석골은 다소 대조적이긴 하지만 그 둘 사이의 대비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두 개의 원의 운동에 대해서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임권택은 이상할 정도로 채영신과 박동혁의 동선을 따라가지 않았다. 한쪽을 진행하다가 잠시 후에는 다시 다른 한쪽이 진행된다. 그래서 마치 두 개의 원이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이다. 물론 끝까지 그 둘을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순간에 그 둘을 수렴시킬 것인가. 임권택은 여기서 갑자기 두 개의 원을 두 개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놓는다. 수렴에 관한 거의 결정적인 순간이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다. 비애의 순간. 임권택 은 희극의 순간에는 언제나 실패하지만 비애의 순간에는 그것이 품고 있는 병든 감상주의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역사의 고통스러운 상실을 불러낸다. 비유의 시간. 하지만 무엇에 대해서? 대상을 괴상한 의미의 노예로 삼는 시간. 그때마다 임권택의 주인공들의 몸이 부서지거나 기관의 일부가 훼손되거나 때로 감각의 일부를 상실한다는 것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 상록수 >는 그중에서도 가장 처참하고 아름다운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영화는 소설에 전혀 없는 부분을 찍어나가기 시작한다. 면회 채영신은 병색이 짙은 몸을 끌고 비를 맞으면서 멀리 떨어진 경찰서 지하실에 붙잡힌 채 고문을 받고 있는 박동혁을 만나러 간다. 채영신은 마음을 조리며 그를 만나러 지하실 방에 들어선다, 라고 해야겠지만 영화는 그 반대로 찍혔다. “3분 동안만 면회를 허락하겠소. 증거가 없을 뿐 이 자의 죄과를 잘 알고 있소. 순순히 자백을 하면 가벼운 처벌을 받게 해주겠다는데도 끝내 자백을 않고 우리 취조관 진을 빼놓고 있소. 약혼자 되시는 분이 잘 타일러서 우리도 이 자로부터 손을 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소”라고 형사가 채영신에게 말하지만 그 말은 화면 바깥에서 (voice_off) 주인 없는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이때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형사의 언질은 그렇게 장면 위에 내리 누르듯이 놓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목소리는 어떤 저항도 불가능한 절대적인 권력을 얻게 되고 목소리는 마치 전체의 상황을 요약하는 하나의 지배적인 쇼트(master_shot)처럼 기능한다. 채영신이 고문실에 들어설 때 영화는 채영신이 박동혁을 보는 대신 고문을 받고 지친 박동혁이 고문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지금 막 들어서고 있는 채영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이 신scene을 시작한다. 나쁜 시작. 여기서 갑자기 동선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런 다음 마치 조건반사적인 기계적인 작동처럼 쇼트들의 순서는 채영신을 따라 고문실에 들어선다. 그런데 갑자기 마치 다시 시작하기라도 하듯이 박동혁에게로 옮겨 들어서는 채영신을 바라보는 자리에로 옮겨간다. 이때 가장 이상한 것은 두 사람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기울어진 구도이다. 갑자기 잃어버린 균형. 이제까지 < 상록수 >는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장면을 반듯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정면과 45도를 번갈아 진행시켰으며 두 사람 사이의 어떤 감정적인 동요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평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박동혁이 균형을 잃고 앉아있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카메라가 수평을 잃는다. 이 장면은 심리적인 표현주의를 따르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잃어버린 균형이 아니라면 동선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킬 수 있었을까. 그 방은 매우 단조롭다. 텅 빈 사각의 방. 길게 줄을 늘어뜨린 채 매달린 전구. 가운데 놓인 책상. 가장 간단한 미장센. 고문실에는 더할 게 없다. 거기에 앉아있는 박동혁. 그저 한눈에 보기에도 그동안 심한 고문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모습. 물론 어떻게 말문을 꺼내 들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채영신에게 갑자기 박동혁은 돌아가라고 말한다. “빨리 돌아가요, 돌아가서 청석골 학원의 어린나무들을 돌봐요. 긴긴 눈보라를 맞고도 시들지 않는 싱싱한 상록수가 클 때까지 쓰러져선 안 돼요. 이자들은 내가 죄인이 될 때까지 죄인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거요. 이게 모두 나를 빼앗긴 설움이오” 채영신은 그 말을 멈추게 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여기서 이상한 장면이 갑자기 나타난다. 쇼트는 말하고 있는 박동혁과 듣고 있는 채영신 둘 사이를 단순하게 등 뒤에서 오간다. (over_the_shoulder_shot) 그러다가 갑자기 박동혁을 바라보는 채영신의 얼굴을 왼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다음 마치 카메라의 오른쪽이 주저앉은 것만 같은 구도의 쇼트가 이 일련의 연쇄 속에 침입한다. 이 쇼트는 박동혁과의 물리적 거리와 둘 사이의 심리적 거리 양쪽 모두로부터 탈구되어 있다. 얼핏 보면 단지 박동혁의 등 뒤에 찍던 채영신의 얼굴을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 다가간 것처럼(close_up) 보이지만 이때 상상선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진행하고 싶었다면 채영신의 얼굴은 오른쪽에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프레임에서 왼쪽으로 온 그 얼굴은 심지어 거의 화면 바깥으로 빠져나갈 것만 같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차라리 영화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고 요구하듯이 그렇게 가까스로 거기 그렇게 잠시 머물 때 나는 이 쇼트를 침입이라고 불렀다. 새로운 힘. 복종하기를 거절하는 반동적인 힘. 파졸리니라면 훨씬 잘 설명했을 그 힘. 어떻게 반동적인가. 여기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표현의 속성을 지닌 상태가 생겨난다. 우선 첫째, 이 쇼트는 문법적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에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 순간 채영신의 얼굴은 이 신 안에서 갑자기 하나의 고정점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빠져나온 쇼트가 연쇄망 안에서 이미지가 된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지금 쇼트가 아니라 이미지라고 말했다. 쇼트에서 이미지로의 후퇴. 연쇄망 바깥에서 일어나는 작용. 말하자면 이 신 전체의 작동방식에 마치 채영신의 얼굴의 이미지가 침입하는 것처럼 이루어질 때 그건 단지 하나의 쇼트가 아니라 이 신의 얼룩이 된다. 두 번째, 서로 교환하던 두 사람 사이의 연쇄적인 쇼트에서 이 난데없는 쇼트는 채영신을 갑자기 박동혁으로부터 빼내듯이 관계의 바깥으로 데려간다. 주고받던 쇼트가 연속성을 중단하는 순간 박동혁의 계열의 쇼트와 채영신의 계열의 쇼트는 서로 분리된다. 이때 이 분리는 이제까지 진행되어 온 이야기의 계열과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미지의 계열이라고 불러보고 싶어진다. 처음에는 이 둘 사이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았지만 여기서부터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차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 평행하게 서로 분리된 두 개의 계열이 공존하기 시작한다. 세 번째, 여기서 갑자기 이루어진 파괴는 그것을 대가로 하여 이야기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영화가 감상하고 있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감정과 감상의 차이를 충분히 음미해주기 바란다. 박동혁의 진지한 표정, 웅변적인 대사에 어울릴법한 채영신의 경청하는 쇼트 대신 그 말을 조금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듯한 카메라의 태도는 마치 그 둘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개입하고 있는 것만 같은 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갑자기 그 둘 사이가 묶이지 않는 것을 한데 묶어놓은 것 같은 어긋남을 보여준다. 이때 그 틈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두 개의 쇼트가 단지 문법적으로 어긋났을 뿐만 아니라 그 둘 사이에 어떤 시간적인 진공상태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이 동시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박동혁을 채영신이 사후적으로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착시가 벌어진다. 암전의 반복 하지만 이 순간이 길어지면 영화는 부서질 것이다. 그 둘을 다시 강제적으로 하나로 묶기 위해서 하나의 통일된 행위가 필요해진다. 지켜보던 일본 형사는 그런 박동혁을 채영신의 눈앞에서 무자비하게 때라고 걷어차기 시작한다. 임권택 은 이 장면을 단순하게 찍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장면 단순한 공간에서 형사가 박동혁을 때리기 시작할 때 매달려있는 전구를 건드리고 그 전구가 좌우로 진자운동을 시작하자 빛과 그림자가 번갈아 나타나고 사라지면서 갑자기 이 공간 전체가 바로크적인 미장센으로 바뀐다. 일그러진 공간. 어둠 속의 사라짐과 나타남. 이때 핵심은 이 장면이 채영신의 눈앞에서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형사가 채영신에게 면회를 허락한 것은 어떤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동혁과 함께 일본의 조선반도 식민지 정책에 반대하면서 계몽운동을 하는 채영신에게 고문을 전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채영신 앞에서 박동혁은 나타나고 사라진다. 연속된 행위 안에서 이미지의 비연속성. 그녀 앞에서 박동혁은 마치 포르-다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여 진다. 면회 후 새로운 계열은 새로운 장면을 출현시킨다. 박동혁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채영신을 영화가 멀리서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은 너무 이상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기는커녕 그 장면 자체가 마치 그 무언가에 대한 표현처럼 보인다. 단순하게 이 장면을 상징의 예술적 표현이라거나 알레고리의 기술적 압축이라고 부르기에 망설여지는 그 어떤 것이 거의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것만 같은 이 신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장면이 무언가를 환기시키고 그 안에 이미 운명을 예고하는 것만 같은 인상을 단번에 붙잡아낸다. 채영신은 언덕에서 걸어 내려오고 그 오른쪽 곁에 나무 몇 그루가 무심하게 서 있을 뿐이다. 카메라는 휘청거리면서 그 언덕길을 걸어 내려오는 채영신을 돌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마치 그녀가 쓰러져도 할 수 없다는 듯한 거리. 멈추어선 카메라. 그 언덕길을 채영신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보지 않고도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길. 이때 구도는 화면 대부분을 하늘이 차지하고 있다. 구름 낀 사이로 조금 드러난 파란 하늘. 그렇게 언덕길을 내려오던 채영신은 그만 지쳐 쓰러지고 만다. 아무도 없는 들판과도 같은 언덕. 쓰러진 채영신이 고개를 들어 보는 것은 구름 낀 하늘이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박동혁의 목소리가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마치 (구슬픈) 합창처럼 그 목소리 뒤에서 들려오는 (박동혁이 작곡한) ‘애향가(愛鄕歌)’. 채영신의 희미한 미소. 하지만 이 노래가 그녀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는커녕 생명을 앗아가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가까이 다가온 죽음. 몰락해가는 기운 속에서 잠시 동안 바라보는 구원의 빛은 죽음의 표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말하자면 어떤 약속. 이제 당신은 할 만큼 했어요. 그러니 부디 짐을 내려놓아 주세요. 카메라가 채영신을 도와주는 대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저 멀리서 지켜볼 때 내가 느껴보는 것은 이 소설을 이미 읽은 자의 측은지심이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 장면을 그렇게 쇠락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때 여기서 보는 것은 어린 상록수들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쇠락해가는 역사 안에서의 수난의 시간이다. 채영신은 청석골에 돌아와 박동혁의 말을 전하고 그냥 쓰러진다. 그날 밤 박동혁은 고문으로 인해 완전히 실성한 채로 풀려난다. 그런 다음 영화는 박동혁이 실성해서 머물고 있는 한곡리와 채영신이 몸져누워있는 청석골을 단순하게 오간다. 채영신은 의사로부터 “알릴 데가 있으면 기별하시오”라는 마지막 통보를 받는다. 하지만 박동혁은 여전히 고문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한다. 채영신은 마지막 가는 길에 박동혁을 보고 싶어 하고 그래서 먼 길 제자인 원재 청년이 달려가 청석골 마을 사람 한 명과 함께 박동혁을 데려온다. 소설은 채영신이 도망치듯이 일본에로 떠났다가 심신이 더 쇠약해져서 청석골로 돌아와 다시 농촌계몽사업을 하지만 각기에 맹장염이 도져 미처 아직 경찰서에서 풀려나지 못한 박동혁을 보지 못하고 숨지는 것으로 다한다. 그런 다음 오일장을 치르는 가운데 사흘째에야 박동혁은 옥에서 풀려난다. 그가 소식을 듣고 청석골로 달려와 마주치는 것은 학교 ‘교단 위에 검정 보를 덮고 가로누운 영구’이다. 소설과 반대로 영화에서 채영신과 박동혁은 만난다. 하지만 채영신은 죽어가고 박동혁은 실성한 채로 만난다. 나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할 것이다. 여기에는 원작과의 대결관계나 반대로 가까스로 해피엔딩을 만들겠다는 의도 따위는 없다. 그래서 반대, 라는 표현 대신 소설과 상관없이, 라고 설명하고 싶다. 상관없다는 말. 임권택 은 원작에서 무얼 꺼내 들어서 이야기의 어떤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거기까지 따라온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어 한다. 나는 이미 경찰서 고문실에서부터 이 영화가 두 개의 계열로 진행된다는 말을 했다. 쇼트의 계열과 이미지의 계열은 서로 만날 수 있을까. 하나가 만나고 싶어 할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하나가 보고 싶어 할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잡아당길 때 다른 하나가 그걸 알지 못한다. 여기서 채영신과 박동혁의 만남이 그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채영신과 채영신이 만나보고 싶어 하는 박동혁과 자신이 박동혁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고문에 의하여) 잃어버린 박동혁 이 세 사람이 함께 만나는 자리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너무 쇠약해져서 이제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채영신은 자기 앞에 도착한 사람이 박동혁이라는 건 알아보지만 지금 그가 실성해버렸다는 건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 앞에 와 있는 이 사람이 눈앞에 몸만 와 있을 뿐이지 텅 빈 대상이라는 것을 모른다. 마치 인형과도 같은 박동혁은 자발적인 의지로 아무 것도 못하고,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아무런 태도도 보여주지 못한다. 임권택은 이 장면을 단순하게 찍었다. 박동혁은 마을 사람의 손에 이끌려 방에 들어와 앉는다. 채영신은 방에 들어서는 박동혁을 바라본다. 하지만 박동혁은 실성한 채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 그래서 이 신에는 박동혁의 시선 쇼트(point_of_view_shot)가 없다. 반면 박동혁이 실성한 것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깊은 병색인 채영신의 죽어가는 시선 안에서 세상은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채영신의 시선에 별다른 기술적 조작을 가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 두 시선의 교환은 단지 기계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박동혁과 채영신 두 사람 사이는 일종의 부등가 교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박동혁은 이 방에 들어서서 이 자리에 앉았지만 채영신을 그저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박동혁의 쇼트는 채영신의 쇼트를 마주 보지 않는다. 아니,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다. 채영신은 박동혁을 알아보지만 쇠약해진 그녀의 시선이 고문 후유증으로 실성해버린 박동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저 간절하게 박동혁의 쇼트에 말을 걸고, 또 걸고, 또 걸 뿐이다. 대답해주세요, 제발 대답해주세요. 그러므로 이 둘 사이는 한쪽의 오해를 기반으로 한 관계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때 박동혁의 계열은 완전히 중단된다. 혹은 쇼트의 진행이 더 이상 안 된다. 반대로 채영신의 계열은 완전히 고립된 것이 되어버린다. 그녀가 말을 걸지만 박동혁은 그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하는 말은 사실상 그녀 자신에게 돌아오는 말이다. 이때 쇼트의 성질로 말하면 채영신은 일종의 재귀 대명사의 반복처럼 보인다. 그래서 신 안에서 박동혁과 채영신이 함께 만나지만 그 둘의 쇼트는 각자의 계열을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임권택은 그 사실을 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저 단순하게 반복적으로 둘 사이의 쇼트를 오고 간 다음(shot_reverse_shot) 채영신이 대사를 시작하자 그저 그녀를 바라본다. 아니, 그저 그녀에게 머문다. 이때 수수께끼 같은 시선은 채영신이 박동혁의 손을 붙잡고 긴 대사를 시작할 때 그녀를 박동혁이 바라보는 대신 박동혁의 등 뒤에서 바라본다는(over_the_shoulder-shot) 것이다. 누워있는 그녀를 그렇게 찍으면 그녀 쪽에서는 다시 마주 볼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했다. 두 개의 쇼트는 그렇게 마주 볼 수 없는 불가능의 자리에 가야만 하는 것일까. 그녀가 애처롭게 대사를 낭독하기 시작했을 때 무언가 이 쇼트는 그렇게 등에 걸린 채 느리게 다가가는 렌즈의 운동 때문에(zoom_in) 무언가 머뭇거리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대답이 아니다. 채영신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아이들을 부탁해요”라고 한 다음 “약속해주세요”라고 반복한다. 하지만 박동혁의 대꾸는(reverse_shot) 아무 말 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무표정한 침묵뿐이다. 알지 못하는 채영신은 다시 한 번 “약속해주세요”라고 거의 꺼져가는 목소리로 힘겹게 요구한다. 이때 갑자기 다시 한 번 박동혁의 얼굴로 돌아가는 대신 박동혁의 뒤로 가서 앉아있는 그의 등 전체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치 쇼트의 구도 안에 침입하기라도 하듯이 (옆에 앉아있던 박동혁의 마을 친구의) 왼손이 그 등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행여 들킬세라. 느리게 박동혁의 뒤통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간다. 손은 지금 무엇과 결합하려는 것인가. 누구라도 이 손이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운동. 이 갑작스러운 손의 운동은 누구라도 깜짝 놀랄 만큼 아름답고 슬프다. 그렇게밖에 달리 말할 수 없다. 그런 다음 이 손이 박동혁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이때 이 긍정은 단지 채영신을 만족시키려는 목표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긍정의 힘은 이제까지 두 개의 계열로 나뉘어 진행되어 온 이미지의 계열의 부름에 쇼트의 계열이 응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임권택이 여기서 힘들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신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을 공존시키면서 파토스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모든 영화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한순간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 상록수 >를 언제나 < 족보 >와 함께 보아야 한다. 두 편의 영화가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했거나, 혹은 원작소설을 각색했거나, 또는 같은 해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아무 관계가 없다. 두 영화가 같은 여배우 한혜숙 을 주연으로 해서 만들었다거나 두 영화가 농촌을 무대로 진행된다는 사실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이때 임권택 은 두 편의 영화에서 조심스럽게 쇼트의 성질에 대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나를 감동시킨 두 가지 예. 박동혁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 손. (<족보>에서) 어느 초여름 날 무심하게도 포풀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길을 따라 걸어오는 설진영 노인을 바라보는 쇼트. 나는 약간 망설이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싶어진다. 이제까지 임권택은 쇼트가 결합하여 신이 어떻게 하나의 사건을 만드는지를 물었다. 그 사이의 조화. 그들 사이의 화음. 하지만 하나의 차원. 여기서부터 하나의 신이 두 개의 차원을 얻기 시작했다. 이때 쇼트는 종종 신 안에 침입해 들어오는 불순물을 허락하거나 혹은 쇼트 자체가 갑자기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신 안에서 쇼트는 어떤 원근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기엔 쇼트가 바라보는 영화와 영화가 바라보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생겨났다. 임권택은 그 간극을 그냥 내버려둔 채 자기의 방법을 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벤야민은 내게 간명하게 충고한다. 인식에 있어서 방법이란 영유대상을 획득하는 길이지만, 진리에 있어서 방법이란 제시 자신의 제시이다. 방법의 대가들. 어쩌면 영호욜뇩예疫萱?역사이다. 좀더 단순하게 말하겠다. 방법이 결과이다. 간단한 예. 오즈의 방법. < 오차즈케의 맛 >. 로셀리니의 방법. < 유럽 51 >. 혹스의 방법. < 몽키 비즈니스 >. 1952년의 세 개의 방법. 이때 지성은 방법을 통해서만 영화를 구성하는 표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표현이라는 쇼트가 그때 방법의 속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방법을 정식화시키기 위해서 먼저 방법을 작동시키는 장면을 만나야 한다. 나는 임권택의 방법으로부터 임권택이라는 방법에로 옮겨가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것이 목표이다. (계속) 추신_ 인용한 대목은 애플 북스에서 ‘한국문학을 권하다’ 전집 중 다섯 번째로 2014년 6월 16일에 나온 판본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사용된 쪽수는 모두 이 판본에 따른다. 또한 인용 판본에 따라 1936년에 쓰인 일부 당시 문장을 2014년에 독자를 고려하여 고친 대목도 역시 그에 따랐다. 그러나 문단 나누기는 임의로 이어 붙였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로 명기하지 않았다. 1978년 105분 컬러 1.66 감독 임권택 화천공사 각본 김강윤 촬영 이석기 조명 정덕규 편집 김희수 음악 정민섭 한혜숙 채영신 김희라 박동혁 이일웅 김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