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아이들과 호랑이
- 감독
- 문영미, 한문순
- 제작년도
- 2007
마지막 인간적 얼굴 영화의 기본 설정은 전형적이다. 홀로 짐가방을 손에 쥔 채 서울역에 막 도착한 여성을 보여주는 오프닝은 시골 여성의 도시 수난기를 시작하려는 것 같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짐작보다 노동에, 노동보다 노동 사이로 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영화임을 알게 된다. 우연히 같은 버스에 탑승한 세 명의 여성 주인공은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스 안내원 일을 관두는 결말을 맞는다. 영화의 주제가 노동의 불가능성 혹은 불가능한 상태로 지속된 노동으로 읽히는 이유다. 이영옥 이 연기한 영옥은 팍팍한 노동 현장에서도 유희를 소유한 드문 인물이다. 그녀는 터무니없이 적은 월급에 대한 저항으로 당당히 ‘삥땅’을 실행한다. 몸수색을 담당하는 직원과의 커넥션도 이미 형성한 터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하고 종국에 택시 운전사가 되어 탈주하는 진취적인 캐릭터다. 금보라 가 연기한 성애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노동 시장에 뛰어든 여성이다. 버스에서 만난 또래 남학생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으나, 계급 격차를 실감하며 사랑에 실패한다. 그녀는 정신적인 상처를 이기지 못한 채 노동 시장에서 퇴장한다. 유지인 이 연기한 문희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순결한 도덕군자다. 문희는 일하는 꿈을 꾸는 동료들을 어루만지고, 삥땅 없이 있는 힘껏 일한다. 문희의 고결함은 거꾸로 노동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루트를 돌고 복귀했을 때 다음 운행까지 쉬는 시간은 단 17분. 17분 동안 입금하고, 몸수색 당하고, 화장실 가고, 식사까지 해야 한다. 문희는 몇 숟갈 뜨지도 못한 채 식당 직원에게 자신이 먹던 음식을 남겨두라고 당부한 뒤 달려 나간다. 수금액이 다른 직원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경우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므로 어떻게든 손님을 몸으로 밀어 넣고 만원 버스에 끼어 탄다. 버스 기사의 텃세와 성적 유린의 위협 아래에 놓이며 때로는 손님으로부터 추행을 당하거나 잡상인 단속 일도 해야 한다. 문희는 쉬는 시간을 쪼개 동료들의 속옷을 빠는 허드렛일을 도맡으며 어렵게 돈을 모으지만, 도리어 관리자로부터 부정한 방식으로 돈을 축적했다는 오해를 산다. 노동 현실이 드러날수록 문희는 더욱더 비현실적인 인물로 보이고, (삥땅 없이)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결말은 아이러니하다. 문희가 강제 탈의의 수모를 당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굳이 남성 상관의 시선과 교차해 자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불만스럽지만, 일단 넘어가 볼 수는 있다. 참을 수 없는 건 몸수색에 항의하며 건물 옥상에 오른 문희가 회사 관리자들에게 (혹은 관객을 향해) 돈을 빼돌린 다른 동료들을 대신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동료들에게 더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자고 호소한 것이다. 문희의 마지막 행위의 이유를 ‘몸수색에 의한 수치심’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 물론 문희는 몸수색을 수치스러워하지만, 그녀가 옥상으로 내몰렸던 이유는 돈을 숨기는 동료들의 행위에 대한 수치심도 있었다. 문희는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는 것으로 노동 시장으로부터의 탈출을 상연한다. 그녀의 일화는 전설처럼 남아 모든 버스에는 ‘이문희를 기억하자’라는 문구가 새겨진다. 후배 안내원들은 이 문구를 보며 어렵고 힘들지만, 삥땅하지 않으리라 마음먹는다. 영화 속 폐쇄된 세계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 결론이 성에 차지 않음은 물론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삥땅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이들의 노동 환경이다. 그런데도 완료된 세계 바깥에 놓인 우리가 문희의 행동에 관해 오늘의 잣대로 비판할 수는 없다. 누구라도 문희처럼 세계 내부에 있을 때, 바깥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바깥으로 쫓겨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있던 세계를 똑바로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노동 투쟁은 대부분 끝없이 내몰린 상태에서 일어난다. 부당 해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노동자들은 대부분 참고 견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있을 곳이 여기 밖에 없다고 여겨지기 마련이며, 실패의 경험은 뼈아프기 때문이다. 문희가 도덕적 인물이어야 했던 이유는 그래야지만, 그녀의 고귀한 희생과 진심이 퇴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희가 맞은 결말은 세계 내부에 존속한 상태에서 가능한 투쟁의 극단이 결국 향하게 되는 장소를 가리킨다. 오늘의 시선 속에 낯설게 보이는 것은 요금함과 카드 인식기 대신에 탑승객과 일일이 접촉하는 안내원의 손이 있었다는 사실일 거다. 기계로 대체되기 이전에 그곳에는 사람이, 특히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 이들이 손과 몸으로 힘껏 밀어붙인 것은 단지 버스의 승객만이 아니다. 자본의 광풍 한가운데에 선 이들은 산업화와 자본의 속력 속으로 승객을 떠민다. 그렇지만 아직 그들의 얼굴에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표정이 남아 있었다. 노동시장의 말단을 깊이 체험한 ‘천사’ 문희의 외침은 무엇보다 시스템 도입 이전에 인간에 대한 믿음의 회복을 호소한다. 오늘날 사라진 직업인 버스 안내원을 비롯해 노동자가 있던 자리는 빠르게 무인 시스템으로 대체되고 있다. 문희의 외침에 대한 응답은 여전히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무인화된 세계에 일정 정도 편의를 누리면서도 사람이 사라진 자리가 인간을 향한 붕괴된 믿음과 이를 보충하는 감시의 증거는 아닌지 근심한다. >> 도시로 간 처녀 고화질 VOD 보러가기 <<
정창화 (1928~ )의 < 죽음의 다섯 손가락 >(1972)은 홍콩과 한국 영화계 간에 조성된 일대 흐름이 맞물려 빚어진 시대의 산물이었다. 60년대 초에서 70년대 말까지 한홍 합작영화의 활발한 제작으로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한상은 < 양귀비 >(1962)와 <무측천>(1963)과 같은 시대극을 한국 로케이션으로 찍었으며, 호금전은 <공산영우>(1979)와 < 산중전기 >(1979)를 해인사와 불국사, 설악산 등지에서, 장철은 <사기사>(1972)를 서울에서 촬영했다. 신상옥 감독이 이끄는 신필름이 홍콩 쇼브라더스 영화사와 손잡고 다수의 한국-홍콩 합작영화를 기획해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쉼 없이 다양한 영화를 찍어내면서 인력난에 시달리던 홍콩 영화계의 상황은 역으로 한국의 영화 인력이 홍콩 영화계에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 수업료 >(1940), < 자유만세 >(1946)를 만든 최인규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정창화 감독은 1958년부터 홍콩영화계와 꾸준한 교류를 가졌고, 첩보영화 < 순간은 영원히 >(1966)의 홍콩 로케이션 촬영에서 쇼브라더스 사장 런런쇼의 주목을 받아 1968년부터 5년 전속계약으로 기용되어 홍콩으로 건너가 활동하게 된다. 밀수꾼을 소탕하는 내용의 데뷰작 < 최후의 유혹 >(1953), 누아르의 장르적 색채가 진한 < 노다지 >(1961), 일제강점기 학도병의 이야기를 그린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 전통사극에 서부극을 끌어들여 검객물의 원형을 만든 < 나그네 검객 황금 108관 >(1968) 등, 일찌감치 한국영화 안에서 액션영화의 지평을 개척하던 정창화의 연출 성향은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무협, 권격 영화를 대량으로 양산해내던 홍콩 영화계의 필요와 부합되는 것이었다. 쇼브라더스 무협의 기법과 관습을 답습한 평작 < 아랑곡의 혈투 >(1970)와 < 래여풍 >(1971)의 시행착오를 경유한 뒤에 내놓은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정창화만의 개성을 무협영화의 역사에 각인시킨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왕우의 < 용호의 결투 >(1970)와 더불어 권격 영화의 유행을 일으킨 시효 격으로 꼽힌다. 그러나 영화사적인 의의에 비해 이 작품의 서사 자체는 지극히 평이하다. 제자 조지호(나열)의 재능을 아끼던 스승 송무양은 더 큰 성취를 위해 그를 상무국술관의 손금배 사부에게 보낸다. 주변의 질시를 견디며 묵묵히 수련에 정진하던 지호는 마침내 손금배의 인정을 받고 절기인 철장비법을 전수받게 된다. 함정에 빠져 손이 짓이겨지는 수난을 겪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무공을 회복한 지호는 국술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그러나 일본 낭인과 결탁한 상무국술관의 라이벌 백승무관의 주인 맹동산(전풍)이 지호의 두 스승을 모두 해치고, 분노한 지호는 철장비법의 위력을 발휘해 악한들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수련을 통해 고수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성장과 스승의 원수를 갚는 복수극이라는 천편일률적인 플롯과 모티브를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우직하게 답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기억될만한 컬트 걸작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연출의 차별성에서 드러난다. 장철이 슬로우 모션과 핸드헬드를 통해 유혈 낭자한 육신과 죽음의 이미지에 집중하고, 호금전이 유려한 수평 이동과 와이드 앵글로 자연과 공간, 그리고 인간에 흐르는 예민한 공기를 포착한다면, 정창화 는 광각렌즈를 중심으로 한 촬영과 컷 단위로 다듬은 편집, 명암과 색감이 두드러지는 조명 세팅으로 액션의 쾌감과 극의 분위기를 극대화하는데 주안점을 둔다. 지호의 스승 송무양이 불의의 습격을 받는 도입부 액션부터 각기 다른 앵글과 사이즈의 컷을 빠르게 이어 붙여 충돌시키고, 무술 안무의 합을 도중에 건너뛰는 점프컷으로 액션의 박력과 속도감을 끌어올리는 불균질한 편집의 기교를 엿볼 수 있다. 손을 망가뜨린 적들을 떠올리며 수련에 매진하는 지호의 플래시백에서도 나무를 때리는 타격음에 맞춰 (긴장감을 자아내기 위해 기울어진 앵글의) 컷을 번갈아 몽타주 하다 국술대회 참가인원을 선발하는 다음 상황으로 점프하는 등 시퀀스의 급격한 전환을 통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에 빠른 템포와 리듬감을 부여한다. “액션영화란 어른들의 꿈과 상상을 실현시키는 판타지라고 생각합니다”라 말한 감독 본인의 인터뷰 발언이 시사하듯,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을 통해 만개한 정창화 식 액션 연출은 영화가 줄 수 있는 오락적 쾌감의 경험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장르 감독의 본분에 입각한 것이었다. 술집에서 벌어지는 지호와 진랑( 김기주 )의 대결에서는 술 항아리를, 마음을 고쳐먹은 진랑이 지호를 대신해 일본 낭인을 막아서는 숲속의 결투에서는 잘게 부서지는 목재 소품을, 지호가 마침내 철장비법으로 일본 낭인을 처단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부딪치자마자 무너지는 벽을 배치하는 무대 세팅으로 타격감을 부각시키는가하면, 맹인이 된 한룡이 맹동산과 그의 아들을 급습하는 장면에서는 사물의 윤곽이 간신히 드러날 정도로 공간을 어둠에 파묻은 가운데, 인물의 두 눈에 슬며시 빛을 닿게 하며 명암대비를 극단화한 조명으로 누아르적인 분위기를 빚어낸다. 국술대회의 말미에 칼에 맞고 죽어가는 손금배와 일본 낭인에 의해 잘린 진랑의 목에는 별도의 녹색 조명을 비춰 죽음의 음울함을 강조하고, 지호가 철장비법을 쓰는 순간마다 펴진 두 손에 붉은 조명을 쏴 흥분과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등, 비현실적이지만 감정을 자극하는 조명의 표현주의적인 활용이 돋보인다. (철장비법을 쓸 때마다 사이렌 소리처럼 울리는 음향은 퀸시 존스가 TV 시리즈 <아이언 사이드>(1967)를 위해 작곡한 시그널 트랙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당시 홍콩영화계에서 흔히 있던 사례였다.) 처음에 정창화 감독이 염두에 둔 작품의 원래 제목은 < 철장 >(鐵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화권 관객의 취향을 의식한 쇼브라더스 사장 런런쇼의 입김에 의해 홍콩에서는 < 천하제일권 >(天下第一拳)이란 제목으로 개봉되었으며, 국내에서는 저가에 영화를 수입하려 한 신상옥 감독에 의해 한홍 합작영화로 위장되어 검열과 재편집을 거쳐 < 철인 >(鐵人)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에 걸리는 수난을 겪었다. 영화는 한국에선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한 채 묻혔다. 정작 액션 장인 정창화가 인정받은 건 고국이 아닌 서구 영화계에서였다. 이듬해인 1973년, 워너브러더스의 배급으로 로스앤젤레스의 차이나타운에서 소규모 개봉한 영화는 열화와 같은 반응을 얻어 확대 상영에 들어갔으며, 잠시 < 대부 >(1972)를 제치고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훗날 ‘헤모글로빈의 시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 킬 빌 > 2부작에서 철장비법을 구사하는 장면의 연출을 오마주하면서 영화는 다시 주목받았으며, 2005년 칸 영화제 클래식 섹션에서는 루이 말의 < 도깨비불 >(1963), 마틴 스콜세지의 < 라스트 왈츠 >(1978)와 함께 초청되었다.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은 명실상부한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액션 영화의 기술적 숙련도가 전에 비할 수 없이 높아진 오늘의 시선에서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의 액션은 철 지난 시대의 유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여전히 순수한 오락영화을 구현하고자 한 열정과 장르에의 매혹, 그리고 언젠가 세련된 형태로 다시 활용될지 모를 흥미로운 연출의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한국-홍콩 합작영화가 성행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에 대한 증언이자, 동시대 액션영화가 해낼 수 있는 표현의 저변을 돌파하려 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가치는 변함없이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