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리는 소녀
- 감독
- 타니구치 마사아키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나카 리이사, 나카오 아키요시 , 야스다 나루미 , 카츠무라 마사노부, 이시마루 칸지 , 아오키 무네타카, 이시바시 안나, 치요 쇼타
<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2019)은 이젠 거의 멸종위기라고 전해지는 ‘시네필’의 영화다. 시네필은 영화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순간, 장소, 인물, 움직임, 빛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에 빠질 만한 영화적 이미지와 조우하면 흘러가는 그것을 소유하고자 절박한 몸짓으로 반복적으로 관람하는 물신주의자다. 실제로 영화를 재생해볼 뿐만 아니라 기억에 각인된 강렬한 이미지를 꺼내 가상적으로 돌려보기도 한다. 시네필의 반복강박을 야기하는 영화적 이미지들은 파편적이고 비인과적이며 그래서 자주 서사와는 상관없이 떠오른다. 영화학자 로라 멀비는 그의 저서 『1초에/24번의 죽음』에서 이러한 시네필을 ‘소유적 관객(possessive spectator)’이라 칭한다. 필름 시대를 지나 디지털 환경에서도 시네필은 돌려보고, 뜯어보고, 반복해 보는 매체의 특징을 맘껏 누리며 “텍스트 본래의 응집력을 공격하면서 예상치 못한 감정으로 열리는 즐거운 회상을”(35) 가져오고 그 과정에서 사색의 여지를 마련한다. <남매의 여름밤> 역시 인과적이고 극적인 서사보다는 여름밤의 빛과 공기, 냄새와 소리를 감각하게 하는 것에 집중한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아빠(양흥주)는 살던 집을 빼고 옥주(최정운), 동주(박승준) 남매와 함께 할아버지의 오래된 이층 양옥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곧이어 부부 갈등 때문에 집을 나온 고모가 이들에 합류한다. 옥주와 동주, 아빠와 고모,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는 그렇게 여름 한 계절을 함께 보내게 된다. <남매의 여름밤>은 캐릭터에 대한 서사적 정보를 거의 주지 않는다. 아빠와 고모가 겪고 있는 경제적 곤란과 부부 갈등이 무엇인지, 왜 옥주는 엄마를 미워하는지, 할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옥주는 남자친구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의 사연은 극도로 절제된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공감각적이고 중첩적인 감각과 단편적 기억의 환기를 통한 다중적 시간성이다. 관객들은 여러 겹으로 이뤄진 감각과 시간의 미장아빔(mise en abym)에 포획된다. 그러면서 감각과 시간은 공간화 되고 관객은 남매와 함께 ‘영화-집’에 머물게 된다. <남매의 여름밤>에서 빛은 소리가 되고, 소리는 빛이 된다. 한낮의 뜨거운 빛은 끈적이는 장판에서 맨발이 떨어지는 소리가 되고, 서서히 열기가 식어가는 밤공기는 오래된 이층 양옥집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냄새가 되며, 환하게 열어젖힌 창으로 흘러나오는 저녁밥 냄새는 안팎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와 섞이고, 마당의 풀벌레 소리는 어두운 밤 잠 못 드는 할아버지가 켜놓은 낡은 전축 스위치의 초록색 전구불빛이 되고,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 소리는 할아버지의 삶과 그 삶이 가꾸고 거주해온 집이 된다. 그리고 커다란 마루 창문 덕택에 안이 훤히 다 보이는 집, 시시각각 다르게 빛이 들어오며 변신하는 집은 그 자체로 네모난 프레임의 영화가 된다. 그 ‘영화-집’에서 옥주와 동주 남매가 보낸 여름방학은 아빠와 고모의 지난 추억과 중첩되고, 그 시간이 옥주와 동주 남매가 성장해서 기억하게 될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라는 암시로 이어진다. 심지어 아빠는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장난(방학인데도 학교 갈 시간이라고 깨우기)을 동주에게 반복하고,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모실 요양원을 알아보고 오는 길에 옥주 남매가 자신이 병이 들면 동일하게 처리할까봐 걱정한다. 엄마가 보고 싶어 꾸었다던 고모의 꿈은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엄마를 만난 옥주의 꿈으로 반복되며 옥주의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 연극처럼 상연된다. 시간의 반복 속에서 차이를 각인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남매의 여름밤>은 삶의 시간을 담담히 관조한다. 하지만 시간의 반복을 통달하고 희미한 회한만 남은 노년의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오즈의 영화와 달리, <남매의 여름밤>에는 그 시간의 초입에서 허우적대는 생경함과 혼란스러움이 공존한다. 그 시간을 경험하고 바라보는 주체가 사춘기 소녀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흔한 짝패인 장난기 많고 철없는 어린 남자 아이가 아닌, 사춘기 소녀의 시선으로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한다. 이제 막 인생을 진지하게 성찰하기 시작한 옥주와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들어선 할아버지는 삶의 주기에서 가장 사색적인 시기를 살고 있는 이들이다. 옥주는 자신의 정체성뿐 아니라 자신과 타인의 관계, 그리고 그들이 거주하는 시공간에 대해 고민한다.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센 옥주는 자기 영역이 중요하다. 그래서 모기장으로 자기 영역을 확실히 주장하는 만큼, 할아버지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을 허락받았는지 아빠한테 반복해 확인하고 할아버지의 집을 아빠와 고모가 자신들의 편의대로 처리해버리려는 것에 반발한다. 옥주는 할아버지에게 호기심이 있고 도움을 주고 싶지만 독립된 개체로서의 그의 삶에 무례하게 침입하기를 원치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옥주 자신에게도 그렇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옥주는 할아버지의 시간이 깃들여 있는 공간을 존중하고 그의 존엄을 지켜주고 싶다. 그 집을 포함해 맨들맨들해진 재봉틀, 오래된 사진첩과 담금주, 사용하기 편하게 나무에 묶어둔 정원용 가위와 물뿌리개, 방울토마토와 포도나무, 낡은 액자와 전축은 그와 함께 나이 들어 온 것이다. 아빠와 고모는 나이가 많고 병든 할아버지의 시간을 앞서 계산한다. 할아버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계산하는 순간, 그의 현재는 덤이 된다. 하지만 옥주는 다르다. 현재 자기의 시간과 공간이 소중하듯이, 할아버지도 그렇다. 할아버지가 어색하고 낯설지만 잘 해드리고 싶은 옥주는 가족 중 유일하게 생일선물을 준비한다. 옥주는 할아버지가 생일선물인 모자를 쓸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옥주의 태도는 할아버지가 한밤중에 나와 홀로 낡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미련>을 듣고 있는 장면에서 특별한 순간을 만든다. 노래 소리를 듣고 이층에서 내려온 옥주는 거의 말이 없고 가족에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할아버지가 순수한 즐거움 속에서 자기만의 시간여행을 하며 노래를 감상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러나 옥주는 더 다가가지 않고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에게 보이지 않을 이층 계단으로 올라와 앉는다. 옥주는 그 노래를 함께 듣지만 그의 시간과 공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의 삶에 대한 존중이다. 할아버지가 소파에서 맥주 한 병을 탁자에 놓고 음악을 즐기는 방식은 그야말로 시네필적인 태도다. 앞뒤의 시간(서사적 맥락)을 계산하지 않고 그 순간을 즐기고 몰입하기, 타자가 들어올 여지를 주면서도 자기만의 이미지를 소유하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지나가버린 과거에 대한 회한 없는 시간을 만들기. 그것들은 설명이 필요 없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재생해 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내게 <미련>의 노래 소리는 전축에 켜진 작은 초록색 전구불빛과 전기 연장선 스위치의 주홍색 불빛으로 각인되어 있다. 나도 그 장면을 보지만, 그 불빛들도 나를 가만히 응시하며 여름밤의 공기를 전한다. 옥주가 자기 공간을 고집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고모와 동주에게 공유했던 것처럼 그리고 할아버지의 노래를 같이 들으면서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던 것처럼,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의 개방성과 투명성을 통해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소유적이면서도 공유적인 체험을 사색하게 한다. 낯선 거리를 두고 타인을 존중하면서도 그의 내밀하고 사적인 시공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영화 그리고 영화관이 새삼 그리워진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19세기 후반 외국인의 출입과 거주가 허용되면서 서울에 근대식 건축물과 일본식 가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곧이어 도로가 닦이고, 전기가 들어오고, 전차가 다녔다. 날이 갈수록 눈에 띠게 달라지는 서울에는 구경꾼들도 모여들어, 각지에서 온 ‘경성관광단’ 소식이 신문지상에 심심치 않게 보도되곤 했다. 구경꾼 무리 중에는 바다를 건너온 일본인 관광단도 있었다. 대륙으로 뻗어가는 제국의 위세를 확인하기 위해 만주-조선 시찰 중 식민 수도 경성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대개 일본 시모노세키(下關)와 조선의 부산 사이를 운행하는 관부연락선을 이용했는데, 부산항에 내려서 경부선 기차로 갈아타고 경성으로 오는 식이었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것이 산기슭에 자리 잡은 조용한 마을과 단조로운 농촌 풍경뿐이라 지겨워 졸고 있노라면 시끄러운 소음에 눈을 뜨게 되는데, 거기가 바로 가스등과 전기등이 빛을 밝히는 경성역이었다. 전차가 달리고, 자동차가 달리고, 인력거가 달리는 경성은 일본의 도시들을 부지런하게 모방하며 변해 가는 모습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경성에 도착한 그들은 번화한 일본인 거류지에 숙소를 잡고 고궁과 사찰, 유적지, 그리고 종로의 조선인 거리를 탐방한 뒤 다시 일본인 거류지로 돌아오는 식으로 관광을 했다. 자신들과 외모는 비슷하지만 말이 다르고 의식주가 다른 조선 사람들의 생활 풍속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한편으로,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의 식민 통치가 조선의 경관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는지 ‘흐뭇하게’ 눈에 담는, 제국주의적 욕망이 투사되는 관광이었다. 일본인 관광단에게 경성의 극장은 한번쯤 가 볼 만한 곳으로 여겨진 듯하다. 이들이 마치 조선에 대한 안내서인 양 읽었던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의 소설 『조선(朝鮮)』(東京日日新聞, 1911년 6월 19일~11월 25일 연재)에서도, 주인공이 종로의 조선인 거리와 기생집을 구경한 다음 극장을 찾는 대목이 있다. 일본인의 시선으로 조선의 극장과 공연 문화를 관찰한 이 대목은 당시의 극장 문화를 상상해 보는 데에도 유익한 자료가 된다. (아마도 1908년에 세워진 원각사를 떠올리게 하는) 극장 ‘원융사(圓融社)’에 방문한 주인공은 조선인 관객들과 함께 음악 연주, 기생의 춤, 그리고 중국인 마술과 곰 곡예를 구경하면서, 그러한 극장 연예가 일본과 어떻게 다르며 조선의 관객들이 무엇에 흥겨워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여행자에게 타지의 극장은 본국으로부터 떠나왔다는 고립감을 환기하는 동시에 이색적인 경험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림2. 곰 곡예 출처: 다카하마 교시, 『조선』 중에서 경성의 도시 경관은 계속 바뀌어 갔고, 극장은 그에 따른 풍속의 변화를 예리하게 감지할 수 있는 장소였다. 다카하마의 『조선』으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나, ‘대경성(大京城)’으로 확장된 경성을 소개하는 『신판 대경성 안내』(『新版大京城案內』, 矢野干城·森川淸人, 京城都市文化硏究所出版部, 1936)가 발간되었다. 이 안내책자는 “영화관 외에는 이렇다 할 놀 곳이 없는 경성인에게 영화 보기는 경성인의 최대 오락”이라며 경성의 여러 극장들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희락관, 낭화관, 중앙관, 약초영화극장, 송죽좌, 경룡관, 단성사, 조선극장, 제일극장, 우미관, 동양극장이 영화를 상영하는 시설이었으며, 조일좌와 경성극장이 연극을 상연하는 시설이었다. 『조선』의 일본인 여행자가 조선인 극장에서 조선인이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신기해 하며 관찰하는 태도를 취했다면, 『대경성 안내』는 일본인 관광객이 도시의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여러 소비 공간—카페, 바, 끽다점, 백화점—과 함께 극장을 소개하면서 소비자의 입장에서 유익할 정보들을 제공하는 모양새이다. 각 극장의 주요 프로그램이나 입장 요금, 영사 시설, 냉난방 설비 등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극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버스나 전차의 노선과 정류장으로 극장의 위치를 안내하는 것도 흥미롭다. 1936년 현재, 아직 명치좌(明治座)는 개관하지 않았지만 경성의 극장가가 한창 들떠 있는 듯하다. 이를 두고 『대경성 안내』는 경성의 영화 흥행계가 설비를 개선하고 신관을 건축하는 등 일본의 일류 도시에 버금갈 정도로 극장을 단장 중이라고 전한다. 그런가 하면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경성 영화가의 풍속도 빠짐없이 기록한다. 1935년 말 신설된 약초영화극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극장에 ‘극장 여급(お茶子)’이 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극장 여급은 입장한 관객을 좌석으로 안내하면서 방석과 화로 등을 거의 강매하다시피 판매했다.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은 ‘50전’의 입장료를 지불하고도 방석과 화로를 따로 구매해야 해서 실제로는 ‘65전’ 이상을 부담해야 했다. 필름 영사 중에도 담배를 필 수 있게 해서 극장 환경이 위험하고, 위생상 불결하다는 점도 관광객들을 불쾌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일본의 모든 극장이 고급한 설비를 갖춘 것도, 모든 일본인 관광객의 문화 취향이 고상했던 것도 아닐 테지만, 『대경성 안내』는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추고 관객의 편안한 관람을 방해하는 관행이 없어져야 ‘문화의 전당’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다고 전제하며 일본의 문화 수준에 미달하는 경성의 극장 정보를 이른바 ‘알아두면 쓸데 있는’ 관광 정보로 제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낙후되었다고 본 경성의 극장들에 대한 기록이 오늘날 경성의 극장 문화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셈이다. 상단그림1. 원각사를 모델로 한 '원융사' 출처: 다카하마 교시, 『조선』 중에서 <자료> 1. 다카하마 교시, 『조선』, 김영식 옮김, 소명출판, 2015, 74~79쪽, 부분 발췌. 극장 앞은 아직 번잡하게 보였다. 나는 한정 없이 환락을 쫓아 돌아다녔던 학생 시절의 기분을 환기시키면서―열한 시가 되건 열두 시가 되건 잠도 피로도 잊고 등불 있는 곳을 쫓아 돌아다녔던 그 당시의 기분을 불러일으키면서―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형의 건물은 서양풍을 가미한 것으로, 뒤로 갈수록 높아지는 좌석에는 많은 조선인이 조용히 구경하고 있었다. 무대에는 두 사람의 총각과 세 명의 요보 1 가 마주하고 있어, 잠시 들어보니 봉오도리(盆踊) 노래 같은 것을 합창하면서 각각 손에 들거나 목에 건 악기를 요란하게 치고 있었다. 홍 상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여기는 극장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은 대중연예장처럼 되어 있어 음악도 하고 기생 춤도 하며 중국인 마술 같은 것도 한다고 했다. 우리는 가장 뒤의 높은 곳에 빈 의자를 발견하고 앉았다. 그곳도 조선인이 앉아 있었으나 우리를 보고 자리를 양보했다. 둘러본 바, 일본인은 나와 고조뿐으로 장내의 조선인은 모두 신기하다는 듯이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또, 남녀의 좌석은 엄밀히 구분되어 있어 여자 쪽 자리에도 의외로 많은 부인이 얼굴을 나란히 하고 있었다. 홍 상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양반 등의 첩으로 정식 부인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무대의 요란한 전주는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홍 상은, “이건 참 따분하군요. 무언가 재미있는 것으로 빨리 바꾸면 좋을 텐데”라고 조바심을 냈다. 그렇지만 나는 무대보다도 관람석 쪽에 더 많은 흥미를 찾아내며 그들 조선인 남녀가 어떠한 기분으로 이들의 연예를 보러 왔는지 알고 싶었다. 그들은 정숙하게 멍하니 단지 그 음악을 듣고 있었다. 우리가 내려다보는 바로 밑쪽에는 아이를 업은 총각이 의자 위에 엎어져서 자고 있었다. 업힌 아이도 그대로 자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 앉아 있는 조선인은 손에 쥔 긴 담뱃대의 대통을 무릎 위에 얹고 때때로 입으로 연기를 내뿜으면서 계속 조용히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 좌석 쪽도 모두 딴 곳으로 보지도 않고 각종 색깔의 옷자락을 양손으로 여미고 일제히 무대 쪽을 보고 있었다. 그때, 지금 막 들어와서 뒤쪽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멀리 보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소담이 틀림없었다. (...) 과연 중국인의 마술은 재미있었다. 한 사람의 중국인은 이상한 큰 소리를 내며 뭐라고 하자 조선인은 모두 웃었으나 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저건 조선말입니까?”라고 홍 상에게 묻자, “그렇습니다”라고 홍 상은 대답했다. 이윽고 중국인은 하나의 큰 상자 같은 것을 꺼내 정면의 상 위에 놓고 그 상자 안을 관객에게 보이며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 후에 곧 그 안에서 이런저런 것을 끄집어내어 객석의 갈채를 받았다. 빈 상자 안에서 물건을 꺼낸다는 것은 일본의 마술과 다를 바 없었으나 단지 그 상자가 매우 큰 상자로, 그 안에서 끄집어내는 것도 커다란 화분이나 크고 더러운 항아리 등인 것이 일본 마술의 섬세함과 비교하여 대국적(大國的)으로 보였다. 특히 중국인은 더럽게 때가 낀 복장을 하고 있었으나 마지막에는 상의를 벗어 맨몸을 보이고 변발을 뱀처럼 목에 감고 그 끝을 입에 물거나 하며 분발하는 것이 특이하게 보였다. 반주는 징이나 북이 들어간 극히 살벌하고 요란한 것이었다. 단조롭고 유장한 조선인의 음악과 춤의 다음에 나와서인지 자극이 강한 이 반주나 연희는 매우 사람의 마음을 북돋았다. 그 다음은 다시 중국인의 곰 곡예였다. 잘 훈련된 한 마리의 곰이 중국인의 명령에 따라 양 발로 일어나거나 고개를 넘거나 봉을 들거나 하는 여러 곡예를 하면 그때마다 국자 한 잔씩 먹이를 얻어먹고 요상한 소리로 짖었다. 그 소리가 참으로 맹수적으로 왠지 기분 나쁘게 들렸다. 평생 사육을 당하며 약간의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여러 가지 곡예를 부리고 슬프게 울부짖는 맹수의 소리와, 그 맹수를 질타하는 중국인의 소리와, 그것을 기쁘게 환호하는 조선인의 소리가 뒤섞여서 이채로운 느낌을 주었다. 홍 상은 매우 흥에 겨운 듯 지금까지 별로 본 적이 없는 열띤 표정을 하고 열심히 무대를 바라보았다. 곰 곡예가 끝난 후, 다시 조선인 네다섯 명이 악기를 들고 무대에 나타나 단조로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고조를 깨워서 밖으로 나왔다. 달은 기울며 점점 환해지고 밤의 서늘한 기운은 피부에 한기를 느낄 정도였다. 2. 야노 간조․모리카와 기요히토, 『신판 대경성 안내』, 경성도시문화연구소 출판부, 1936, 184~187쪽, 필자 옮김. 영화관 외에는 이렇다 할 놀 곳이 없는 경성인에게 영화보기는 경성인의 최대 오락이다. 상설영화관만 해도 11개에 달하고, 1년의 입장 연인원은 쇼와 9년에 2,314,914명, 그 입장료 판매 수익은 13만 3천원에 이른다. 상설관을 열거해 보면, 희락관(喜樂館) 본정 1정목. 닛카쓰(日活) 영화 직영관, 웨스턴 재생기로 수은정류기(水銀整流器)를 설비, 영사 시설로는 부내(府内) 제일을 자랑한다. 봉절은 내지보다 1개월 정도 늦다. 입장 요금은 계상 70전, 계하 50전이 봉절 흥행의 표준. 때로 오래된 사진을 재상영, 대중석 20전으로 관람이 가능하다. 장소는 본정 한복판으로 부내 제일. 다만, 스팀은 있으나 엄동설한에는 조금 춥다. 낭화관(浪花館) 명치정. (전차는 명치정 입구 하차) 쇼치쿠(松竹) 영화 봉절. 이곳은 원래 양화 전문관이었던 것을 빌려서 신관이 생길 때까지 (쇼와 11년 7월 준공 예정) 가주거 정원 350명인 베이비관. 그런 이유로 1일 3회 흥행을 하고 있다. 단 제3회째는 교체한다. 재생기는 닙톤 직류이기 때문에 화면은 선명. 입장 요금은 계상 60전, 계하 40전이 표준. 스팀 설비가 있고, 관이 작아서 겨울에는 비교적 따뜻하다. 봉절은 대체로 내지보다 1개월 정도 늦다. 중앙관(中央館) 영락정. (전차는 황금정 2정목 하차) 신코(新興), 간(寬)프로, 2 반쓰마(阪妻) 3 영화 봉절, 때로 외국물도 봉절한다. 재생기는 RCA 포토폰. 개봉은 내지보다 2개월 정도 늦다. 입장 요금은 계상 60전, 계하 40전이 표준. 스팀 설비가 있고, 엄동설한에도 비교적 따뜻한 편. 1일 3회 흥행. 약초영화극장(若草映畵劇場) 약초정. (전차는 약초정, 버스는 본정 3정목) 철근 콘크리트 3층의 모던 건축, 내지와 비교해서도 정상급 신관이다. 재생기는 로얄. 방화는 PCL 봉절, 외국영화는 파라마운트 봉절을 중심으로 각 사 봉절 재상영도 하고 있다. 입장 요금은 계상 50전 균일, 학생 30전 균일. 온풍냉풍 설비는 있지만, 엄동설한에는 조금 춥다. 1일 3회 상영. 송죽좌(松竹座) 황금정 3정목. (전차는 황금정 3정목 하차) 이름은 송죽좌지만 이전 명칭을 그대로 쓰는 것으로, 현재는 마키노(マキノ), 교쿠도(極東), 다이토(大都), 워너를 봉절한다. 옛날에 황금관, 동아구락부 등으로 사용했던 오래되고 큰 관이지만, 현재 신관을 건축 중이다. 입장 요금은 계상 30전, 계하 20전이 표준. 1일 2회 흥행. 봉절은 비교적 빠르다. 경룡관(京龍館) 용산 연병정. (전차는 연병정 하차) 2류관, 쇼치쿠와 PCL의 재상영, 입장 요금은 20전이 표준. 1일 야간 1회 흥행으로 일요일과 휴일만 주야 2회 흥행. 단성사(團成社) 종로 3정목. (전차는 종로 3정목 하차) 모던한 신관으로 재생기는 RCA. 외국영화 전문관으로서 각 사의 우수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내선(內鮮) 쌍방의 고급 관객을 끌어 모은다. 입장 요금은 계상 60전, 계하 40전이 표준. 내지인들에게는 조선어 설명이 귀에 거슬리지만, 봉절도 상당히 빠르고 양화팬이 즐길 수 있는 관이다. 조선극장(朝鮮劇場) 인사동. (전차는 종로 2정목 하차) 외국물 봉절과 일본영화 재상영, 그리고 때로 조선연극을 상연한다. 재생기는 RCA. 한때는 단성사와 나란히 양화 봉절관으로서 내지인 관객도 있어 전성시대를 누렸으나, 단성사의 신축 이후 2류관이 되었다. 입장 요금도 저렴하다. 제일극장(第一劇場) 종로 4정목. 2류관으로서 일본영화를 재상영하여 조선인 대중을 부른다. 우미관(優美館) 종로 2정목. (전차는 종로 2정목 하차) 일본영화 재상영, 외국 대중 작품 봉절을 하여 역시 조선인 대중 팬을 노리고 있다. 동양극장(東洋劇場) 죽첨정. (전차는 서대문 하차) 조선인 측에서는 가장 새로운 모던 관으로, 외국물을 개봉하거나 조선연극, 레뷰를 상연한다. 이상이 경성의 영화관 개요이다. 그 밖에 현재 쇼치쿠영화의 봉절관으로 송죽좌 신관이 건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렇게 경성의 영화흥행계도 설비 개선, 신관 건축 등으로 면목을 일신하여 내지 일류 도시의 수준에 달하고 있다. 내외의 영화배급사도 지사나 출장소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다만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내지에서 온 사람들을 깜짝 놀랄 만큼 불쾌하게 하는 것은 ‘극장 여급(お茶子)’의 존재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유유히 들어가면, 에이프런을 걸친 무뚝뚝한 극장 여급이 안내하면서 방석과 화로를 강매한다. 방석은 5전, 화로는 10전, 따라서 가령 50전의 흥행이라고 해도 실제로는 65전이 든다. 물론 반드시 빌려야 할 의무는 없지만, 방석이 없으면 의자가 딱딱하고, 게다가 극장 여급이 퉁명스럽게 굴어서 더욱 불쾌해진다. 극장 여급 제도에 대해서는 각 방면에서 비난과 폐지의 소리가 있으나, 약초극장만 폐지했다. 그 외에도 흥행 취체가 불완전해서 영사 중에 제멋대로 담배를 피거나 하는 그러한 불쾌한 점들이 있는데 당국에서 드디어 취체를 강화하기로 했다. 극장 경성은 연극으로는 완전히 척박한 곳이다. 필름 1편으로도 족한 영화와 달리 규모 있는 극단을 부르게 되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부른다고 해도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입장 요금을 내야만 한다. 그래서 결국 순회 구파•신파 극단이나 만자이(萬歲, 漫才) 4 등으로 만족해야 한다. 다만 쇼와 10년에는 경성에 전례 없는 방문이 있었다. 만주황군 위문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치무라 우자에몬 일좌(市村羽左衛門一座)와 닌교조루리 분라쿠자(人形瑠璃文樂座)가 공연한 것이다. 이것은 경성의 연극애호가들이 대단히 기쁘게 했다. 경성극 흥행계의 고민은 그뿐만이 아니다. 훌륭한 대극장이 없는 것도 큰 결함이다. 현재는 조일좌 (朝日座, 본정 5정목), 경성극장 (京城劇場, 본정 2정목) 2곳이 있는데, 둘 다 내지의 3, 4류 도시의 소극장 정도이다. 경성부민들이 대망하던 부민관 대홀 (정원 1,800명)이 등장하여 이를 흥행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서 대극장 문제는 일단 해소되었으나, 공공건물이라서 부민들 간에는 순흥행적인 새로운 극장을 요망하는 소리가 높다. 조선연극 은 내지의 가부키나 신파에 비해서 수준이 매우 낮다. 현재 직업 극단으로서 신무대(新舞臺), 태양극장(太陽劇場), 신성좌(新星座) 등이 있고, 주로 조선극장, 동양극장 등에서 공연한다. 음악 방면으로는 내지의 일류 악인이나 외국의 내조자(來朝者) 지방 순회가 신문사 주체 등으로 이루어져 그 대부분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행이다. 이들의 공연장으로는 부민관 대홀, 경성공회당 (장곡천정, 상공회의소의 누상(樓上))이 사용되고 있다. 1) 조선인을 가리키는 말. ‘여보세요’의 ‘여보’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소설 『조선』에서는 ‘大人’, 즉 ‘어른’이라고 쓰고 ‘요보(ヨボ)’라고 병기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에는 조선인 성인 남성을 가리키던 ‘요보’는 점차 조선인을 멸시하거나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2) 아라시 간주로 프로덕션(嵐寛寿郎プロダクション)의 약칭. 3) 반도 쓰마사부로 프로덕션(阪東妻三郎プロダクション)의 약칭. 4) 원문 표기는 ‘만세(萬歲).’ 만자이(漫才)는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으며 진행하는 해학적인 화예(話藝)로 만담과 유사하다. 13, 14세기에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새해에 악귀를 쫓고 번영을 기원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쌀과 돈을 청한 사람들을 ‘만자이(萬歲)’라고 했는데, 이것이 만자이의 기원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