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명기 오백화
- 감독
- 임권택
- 제작년도
- 1973
- 출연
- 박노식, 신성일, 고은아, 태현실, 김지수, 최정민, 사미자, 유연희, 독고성, 최남현, 채영, 황백, 박기택, 최성호, 남방운, 전숙, 임예심, 남성훈, 이기영, 이운규, 임해림, 윤일주, 김기범, 추봉, 박종설, 이석구, 진왕현, 최민규, 이승일, 김우석, 김웅, 최재호, 장인한, 지계순, 박태훈, 박양미
임권택 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혹은 영화라는 우정의 이름으로 나눈 대화 (1) 영화에서 우정이란 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여기서 철학에서 사랑을 말하는 것처럼 이 말을 개념적으로 꺼내든 것이 아니다. 그저 우정에 대해서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지금 당장 내 안에 가득 찬 사랑의 감흥이 막 넘쳐나고 있어서 그걸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말이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군가와 마주치기 싫어진다. 지금 막 보고 나온 영화에 대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분? 물론이다. 나는 이 말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중이 아니다. 약간 핵심을 벗어나고 싶다. 영화를 마주 대할 때 가장 당혹스러운 사실 중의 하나는 이 모든 것이 지나칠 정도로 기계군의 집합과 규칙으로만 이루어져있다는 어쩔 수 없는 결론이다. 노엘 버치는 좀 더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는 영화감독이나 분석가들, 비평가들이 사용하는 영화 용어를 보면 영화에 대한 그의 사유를 알 수 있다고 선언하듯이 장황한 영화의 요소들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 그의 저서 「영화의 실천」의 첫 문장)을 시작한다. 기술의 수사학들. 테크놀로지의 개념들. 그 안에서 만들어진 미학적 계보.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때 우리는 이 기계군의 인간성을 증명해야 하는 다소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비평의 투쟁은 이 자리에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한다. 한편으로는 영화라는 기계군의 리듬이 만들어내는 선과 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 리듬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다시 생명의 개념으로 옮겨놓아야만 한다. 이때 우리는 파국적 진술을 주의 깊게 경계해야만 한다. 잠시 게을러질 때 이 둘 사이에 있지도 않은 서사를 만들어 하나로 봉합시켜버리고 싶은 유혹이 단숨에 우리를 삼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 중에서 이미 만연한 프로젝트는 다른 데서 가져온 시도를 내세운 다음 거짓 화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도로서의 서사. 이때 서사는 이상할 정도로 논리적이거나 과잉에 가득 찬 정치적 파토스로 넘쳐나거나 때로 허수아비의 정신분석이라는 불장난에 걸려든다. 자기참조의 동어반복이라는 함정. 우리는 원래의 자리에로 돌아가서 계속해서 물어보아야 한다. 내가 막 보고 나온 이미지와 사운드의 카오스 속에서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가 닿기 위해서 이 질문을 반복하고 싶다.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낭만적인 메아리.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는 호소. 이때 우정은 지금 보고 나온 영화에 대한 진리를 공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을 나누려는 사람들은 좀 기이한 몸짓을 보여줄 때가 있다. 나는 지금 그 순간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 스트롬볼리 >(1950), < 리오 브라보 >(1959) 나는 이 자리에 차례대로 친구들을 호명할 생각이다. 아마 임권택 은 좋은 참조점이 되어줄 것이다. 당신께서는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자리를 만든 것은 임권택이라는 이름,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신화적인 재창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를 그런 과정을 생산할 수 있는 담론들과 단호한 거리를 유지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 혹독한 비판을 견딜 수 있는 지에 대한 비평적 시련을 제공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다면 친구들은 무슨 역할을 요구받을 것인가. 영화를 만나는 시간에 각자가 경험하는 사건 안에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게 될 것이다. 나는 영화가 공동체 문화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커다란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반복해서 한 편의 영화 안에 함께 거주하는 것에 대한 내 바람이 지나친 이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그래서도 안 된다는 믿음을 갖는 쪽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좀 미묘한 문제가 있다. 우선 영화라는 사건과 마주칠 때 각자에게 도래하는 힘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 그런 다음 다시 개념으로 옮기는 작업, 종종 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을 놓고 대차대조표를 만든 다음 자신이 만들어놓은 전체의 지도 안에 다시 기입시키려 들 때 이루어지는 수정 작업에 이르게 되면 가끔 우리는 서로의 대화의 교차점이 어딘지에 대해서조차 어리둥절해 질 때가 있다. 지금 금방 떠오르는 두 가지 예. 나는 로베르토 롯셀리니의 < 스트롬볼리 >를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별달리 이 영화가 걸작인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곧장 결론에로 달려가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들 앞에 섰을 때 내 기대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선택에 대한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관객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유별난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우리들 사이에 놓인 간극을 생각해야만 했다. 물론 둘 사이에 놓인 차이를 과도하게 단순한 도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이 둘 사이에 어떤 종합화를 시도하는 것은 이론적 폭력이 될 것이다. 그 둘은 그 자체로 각자의 힘을 소유하면서 공존의 화음을 서로의 노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일시적으로 분쟁을 피하려는 거짓 화해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그런 의심으로부터 누구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스트롬볼리>를 설명하면서 어느 순간 문득 관객 앞에 외롭게 무대에 서 있던 나는 이 간극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려야만 화음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정확하게 화음은 하나의 발명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두 번째는 학생들과 하워드 혹스의 < 리오 브라보 >를 서로 논쟁하듯이 의견을 나누는 수업 중에 일어났다. 다소 신기한 것은 그 중에 대부분은 이 영화를 그 전에 본 적이 없었으며 심지어 하와드 혹스의 영화를 처음 본 학생도 있었다. 질문을 열심히 듣고 있다가 우리들의 대화가 완전히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지 여기에는 지식의 차이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하워드 혹스의 영화를 보면서 미장센의 투명성이랄까, 말하자면 일종의 투시도법과도 같은 방법에 대해서 일종의 영화적인 기적이라는 리베트의 지적에 완전히 감명을 받은 다음 그 위에서 벌어지는 교환의 운동에 심취했기 때문에 무언가 거기서 출발해서 그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투명성이라는 말이 증명되기를 원했다. 이때 여기에는 의미의 논리나 장면의 수학적 배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도약의 차원에 대한 공감이라는 결정적 요청이 있다. 이를테면 오즈의 필로우 쇼트가 그저 풍경을 찍은 사진적 장면의 연결이라고 받아들일 때 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도 상대방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 그건 히치콕의 <사이코>에서 마리온을 샤워 룸에 데려가기까지의 동선을 설명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때로 주석을 길게 달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반대로 직관의 순간이 사유를 건드리고 그런 다음 거기서 울린 공감의 진동판이 비로소 만남을 열어줄 때가 있다. 물론 나는 간극 사이에 놓인 긴장을 즐긴다. 어떤 경우에는 끝내 좁혀들지 않는 거리를 통해서만 서로를 존중하면서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나는 이제까지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호의를 지닌 수많은 지지자들을 만났지만 나와 동일한 방식의, 말하자면 체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기쁨, 그 안에서 영화가 만들어낸 효과와의 접촉,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진정한 의미의 긍정적인 좌절과 희열에 가득 찬 패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 아마 나도 그들에게 반대편에서 동일한 자리에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이럴 때는 나의 지지에 동의하지 않는 친구를 만났을 때 비로소 더 많은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친구란 살아있는 하나의 범주이자 서로 다른 견해의 선험적 존재이다. 영화에서의 우정. 말하자면 내가 영화를 본 다음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은 어떤 경우에도 나의 분신을 대면함으로써 나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허문영 문화평론가 첫 번째 초대한 친구는 허문영 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지난해 부산 영화제에서 (한국영상자료원 바깥에서는) 처음으로 임권택 전작 회고전을 했기 때문이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허문영의 영화에 대한 견해에 항상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건 그도 그럴 것이다. 나는 처음에는 그걸 거의 의식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그의 첫 번째 비평집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의 추천사를 쓰기 위해 1998년부터 2009년에 이르는, 말하자면 거의 십년간에 걸쳐 서 있는, 58편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들이 서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오해한 것인 지도 모른다. 단지 서로 다른 영화를 지지한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같은 영화에 대해 우리는 서로 다른 감각의 바탕 위에서 각자의 개념 제작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충돌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자주 만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종종 서로의 견해를 궁금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매번 확인한 것은 (심지어 바로 옆자리에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서) 같은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일 지라도 그 안에서 전혀 다른 영화적 순간의 비탈(傾斜)에서 각자 서로 다른 참을 수 없는 기쁨과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허문영은 영화에서 욕망이 활동하는 반경 거리를 측정하는데 언제나 예민했으며 때로 매혹되었고 그런 만큼 그 활동에 대해서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를 썼다. 이때 허문영이 사용하는 욕망은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용법이 아니다. 종종 남근을 영화의 중심으로 끌어당기고 그 안에서 성숙하지 않은 소년성에 대해서 주목을 하고 막(膜)의 신비로운 장벽과 폭력적인 파괴에 대해서 다루긴 하지만 은유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욕망을 꺼내들 때 거기서 그는 영화적인 순간이 하나의 힘으로 집결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에게 힘의 화음은 소중한 속도이며, 거기서 외부와 접촉하는 쟁점들은 단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예술과 세상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이며, 종종 그 흔적들과 변주는 위대한 영화를 위한 조건이다. 허문영이 존 포드를 위대하다고 느끼는 장면은 여기에 있다. 수 없이 주문처럼 되풀이해서 불러오는 존 포드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분명히 거기 있는데 가 닿을 수 없다. 가 닿을 수 없는 욕망. 닿을 수 없는 데도 마치 사이렌처럼 잡아당기는 힘. 둘 사이의 긴장. 사로잡힌 존재의 시선. 사로잡힌 자의 시선. 그 존재와 미칠 듯이 접촉하고 싶은데도 만질 수 없을 때 겪는 결핍 안에서의 시련. 그가 ‘랜드스케이프’를 풍경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존 포드의 풍경은 영화 용어이기 때문이다. 다소 도식적으로 내가 이해한 것이긴 하지만 그는 가끔 욕망과 의지를 섞어서 사용한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이 설명으로 허문영을 니체(-푸코)주의자라고 손쉽게 부르기 위해서 서둘러 정의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런 방식이라면 (허문영 자신은 별로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리노프스키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그는 영화 안에 들어가서 살면서 체험을 하고 그런 다음 그것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 말하고 싶어진다. 허문영은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든 영화비평가들 중에서 촬영 현장의 자리에 가는 것을 가장 즐기는 관찰자이다. (일종의) 인류학을 방불케 하는 태도. 마치 현장탐사와도 같은 참여. 심지어 그는 홍상수의 <밤과 낮>에서 연출부를 하기도 했다. 꼼꼼하게 지켜보는 카메라의 위치와 이동. 그 안에서 스텝들의 활동. 아니, 말 그대로 공기의 리듬. 그런 다음 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주 바르뜨의 에로티시즘에 이끌렸다. 현대 영화이론은 그를 전혀 매혹시키지 못했으며, 다소 거슬러 올라가서 앙드레 바쟁을 자주 참조하긴 했지만 때로 경계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거리를 유지했다. 조나단 로젠바움을 존경하지만 그건 시네필의 태도에 한정해서일 뿐이며 그의 문제의식을 자기의 글 안으로 끌어들이진 않았다. (최근의 글로 한정지어) 제한적으로만 말한다면 토마스 엘세서와 D. N. 로도윅의 그림자를 읽지만 허문영은 이론과 불장난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런 다음 당연히 미처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그림자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언제나 그는 영화 안에서 자기를 불러 세웠던 욕망 주변으로 흩어져있는 개념들을 배열하려고 애를 쓴다. 애를 쓴다? 그렇다. 바로 그 태도가 그의 영화 비평을 읽을 때 다소 음란하게 논쟁을 전개되고 있을 때조차도 예의바르게 느껴지게 만든다. < 천년학 >(2006) 영화에 관한 우정의 대화를 빨리 시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제목들을 호명하는 일이다. 나는 여기서 허문영 을 설명하기 위하여 그가 작성한 두 개의 명단을 내놓을 것이다. 먼저 그 하나는 영화 주간지 씨네21에서 2008년 창간기념호에서 1995년부터 2008년까지 당신에게 10 베스트 영화는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을 때 한 대답이다. 허문영은 다음 열편을 썼다. (공동) 1위 < 아버지의 깃발 >과 <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 (클린트 이스트우드). 2위 < 엘리펀트 > (거스 반 산트). 3위 < 밤과 낮 > ( 홍상수 ). 4위 < 스틸 라이프 > (지아장커). 5위 < 천년학 > ( 임권택 ). 6위 < 폭력의 역사 > (데이빗 크로넨버그). 7위 < 남국재견 > (후 샤오시엔). 8위 < 멀홀랜드 드라이브 > (데이빗 린치). 9위 < 우주전쟁 > (스티븐 스필버그). (공동) 10위 < 일상적인 연인들 > (필립 가렐), < 행진하는 청춘 > (페드로 코스타). 나는 이 명단에서 임권택만을 물어볼 생각이다. 1995년에 임권택은 < 태백산맥 >을 만들었고, 2007년에 <천년학>을 만들었다. 그 사이에 < 축제 >와 < 춘향뎐 >, < 취화선 >, < 하류인생 >이 있다. 그런데 허문영은 그냥 간단하게 <천년학>을 선택했다. 배치는 구조나 체계, 혹은 과정이 아니다. 두 번째 명단. 한국영상자료원은 2014년에 40주년을 맞으면서 영화비평가들과 영화학자들, 기자들, 영화제 프로그래머들에게 앙케이트를 돌렸다. 당신의 한국영화 100편은 무엇입니까? (아마 전체 명단은 이 토크가 소개될 무렵에 공개될 것이다) 여기서 허문영은 임권택의 영화를 15편이나 선정했다. 아무리 1950년 이전의 영화 프린트 상당수가 사라졌다 할지라도 이건 한국영화사 전체를 놓고 100편을 결정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허문영은 어떤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처럼 결정했)다. 현재 볼 수 있는 임권택의 영화중에서 허문영은 < 두만강아 잘 있거라 >,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 < 족보 >, < 만다라 >, < 짝코 >, < 길소뜸 >, < 티켓 >, < 씨받이 >, < 개벽 >, < 서편제 >, <축제>,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천년학>을 추천했다. 나는 이 목록 사이의 여백을 채워나가거나 혹은 간격 사이의 빈칸을 파고들거나 (같은 말이지만) 거기 있지 않은 제목을 호명하여 상속의 위계질서를 세우려 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이 목록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이 명단에서 놀란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미 말한 것처럼) 숫자이다. 일백편의 목록 안에서 그저 우글거린다는 표현 이외에 달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임권택의 영화들은 허문영의 한국영화의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 한국영화사에서 백번의 사건 중에서 열다섯 번의 의미의 매듭. 다른 하나는 반대로 그 안에서 임권택의 영화들에 대한 표준 판본의 선택에 머물기 위해서 이상할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간단한 비교. 허문영은 김기영 의 이름으로 물론 < 하녀 >를 추천했다. 하지만 그런 다음 갑자기 < 이어도 >와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에로 옮겨간다. 김수용 의 < 안개 >는 걸작이다. 그러나 < 화려한 외출 >이 김수용이 그려낸 소시민 인정극을 대신할 만큼 중요한 영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견해이다. 신상옥 은 < 지옥화 >도 없고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도 없고 < 로맨스 빠빠 >도 없고 < 폭군 연산 >도 없다. 단지 < 다정불심 > 단 한 편만이 있을 뿐이다. 반대로 이만희 의 목록을 만들면서 < 생명 >과 < 04:00 -1950- >를 포함시킨 것은 단지 역동적일 뿐만 아니라 과격한 인상을 자아낸다. 목록을 쳐다보는 내 감상은 이렇다. 허문영은 자신의 목록에서 계속해서 균형을 무너트리고 자꾸만 열어놓은 다음 그 무언가와 접속하려고 시도한다. 나는 그 접속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윤곽 전체가 부서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만희는 허문영의 한국 영화사 안에서 벗어나려는 동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대로 임권택은 그 안에서 역사를 옹호하려는 듯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왜 그럴 필요가 생긴 것일까. 우리들의 대화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나는 이것을 우정이라고 믿는다. 말하자면... 정성일_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한국극영화의 개벽, 거장 임권택 의 세계_ Fly High, Run Far, The Making of Korean Master IM Kwon-taek’이라는 제목아래 전작전을 한국영상자료원 바깥에서 가장 큰 규모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행사의 프로그래머셨는데, 행사를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적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 장군의 아들 > (1990) 허문영_ (망설이지 않고) 그냥 기억에 깊게 남았던 장면 하나는, 사실 제가 그 자리에 있지는 않았지만, 류승완 감독이 < 장군의 아들 >을 보고나서 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그때 제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류승완 감독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말을 했는지는 듣진 못했고, 나중에 감독과 통화를 했어요. 류승완 감독이 굉장히 들뜬 목소리로,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액션영화 전문 감독으로 알려져 있고, 그리고 <장군의 아들>은 임권택 감독님의 가장 완성도 높은 액션 영화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의 액션영화 중 한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선택해서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게 좋다고, 고민하지 않고 선택을 했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본 <장군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액션영화라기보다는 풍경의 영화다, 혹은 무드의 영화다. 이 영화는 액션을 풍경처럼 다뤘다. 정통 액션이 벌어지는 순간보다 그 액션을 둘러싼 무드로 찍은 영화다. 어떻게 이 영화가 당대 상업영화로 인식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모든 걸 떠나서, 나도 이런 영화를 찍고 싶다. 이러한 말을 들었어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류승완이라는 젊은, 지금은 그렇게 젊지도 않죠(일동 웃음) 어쨌든 임권택 감독에게는 열혈 청년 액션 매니아 감독이라고 인상지어진 류승완이라는 후배 감독이 십여 년 만에 임권택 영화를 다시 보면서 거기서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보았고, 그 새로움에서 임권택 감독의 어떤 비밀을 본 것 같은 인상의 말을 했을 때, 그때 이것은 이 회고전의 멋진 순간 중의 하나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더 재밌는 건 제가 그 말을 임 감독님께 전해드렸어요. 감독님, 류승완 감독이 그러는데요, 이거 상업영화 아니래요. 거의 마치, 고도의 예술영화를 본 것처럼 얘기 하던데요. 그때 임권택 감독님은 충격을 받으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러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장군의 아들>은 장사하려고 만든 영화다. 물론 개인적인 궁금함이 있긴 했지만, 예전에 찍었던 다찌마와리 영화들에 대해, 남성성, 남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보는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지만, <장군의 아들>은 철저히 상업영화로 기획되고 맞춰서 찍은 거다. 근데 그게 무슨 소리냐, 하시는 거예요. 굉장히 충격을 받으신 거죠. 이 장면은 굉장히 재밌어요. 실제로 제가 <장군의 아들>을 이번에 다시 본 느낌은 류승완 감독의 것과 비슷해요. 저도 이 영화를 굉장히 잘 만든 우아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 영화를 지금 2013년에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왜 상업영화였지? 그 해 흥행 1위였잖아요. 아마 서울에서만 60만이 본 영화죠. (<장군의 아들>은 1990년, 67만 9천명의 관객 동원하며 흥행 신기록을 세웠고, 그 이전 최고 기록은 < 겨울여자 >로 58만6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해할 수 없는 거죠. 대대적인 흥행 기록을 세운 거죠. 여기에는 액션영화가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액션장면의 화려함, 격렬함이 없어요. 두 번째, 비극적 결말도 없어요. 남성영웅의 비극적 최후도 없고 그렇다고 화려한 승리가 있는 것도 아니죠. 게다가 90년대 이후 모든 한국의 액션영화가 갖고 있던 로맨스도 없어요. 하다못해 남성간의 로맨스도 있거든요. 90년대 이후 한국액션영화에는 남성 공동체, 의리의 파토스 같은 게 있는데. 물론 남자주인공과 여자와의 로맨스가 반드시 끼어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로맨스, 사랑의 파토스 같은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상업영화가 될 수 있지, 생각했어요. <장군의 아들> 하나만 가지고도 임권택 감독님의 작품 세계를 완전히 되짚어 봐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죠. 다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임권택 감독님의 반응은 생각을 해봐야 겠다, 라고 하셨어요. 내 의지는 철저히 상업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당신들이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알 수 없다. 그걸 충격이라고 말씀하신 건, 뭔가 자기의 의지를 벗어나 작품에 투영된 중핵이 따로 있다는 거죠, 그걸 감독님도 생각해보실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임권택 감독이야말로 인터뷰를 통해 알기 가장 어려운 감독이 아닐까 하는 건, 그가 말을 아끼기 때문이 아니라, 종종 자신의 의지를, 의도를 벗어나는 영화적 순간을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요. 정성일_ 그렇다면 이번 임권택 감독님 전작전을 통해 재발견을 했거나, 재평가했거나, 말하자면 생각이 바뀐 작품들이 있습니까? < 상록수 > (1961) 허문영_ 저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동을 받았던 건 < 상록수 >였어요. 정 선배가 그 영화를 미지의 보석중의 하나로 추천하시기도 하셨지만, 저는 그전에 그 영화를 보지 못 했어요. 줄거리는 진짜 너무너무 뻔한 계몽영화인데, 이 뻔한 계몽영화를 만들면서, 저는 정 선배처럼 쇼트 단위로 기억을 하지는 못하겠어요. 기억이 안돼요. 그냥 그 영화를 보고 즉각적으로 받은 느낌은, 이것은 사무치는 기다림의 영화다. 사무치는 기다림의 어떤 순간을 끝내고자하는데. 그걸 다 알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고, 만든 사람도 알고 있고, 심지어 (영화 속의)인물들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그런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장(場)에 놓인 사람들이 그냥 기다리는. 그게 너무 사무치는 느낌. 그 사무치는 느낌은 단순히 하나의 쇼트를 잘 찍어서도 아닌 것 같고 연기를 잘 해서도 아닌 것 같고, 뭔가 카메라와 인물과 감독이 그냥 어떤 순간에 어떤 시간으로 만났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밖에 생각을 못하겠어요. 임권택 영화를 종종 보고 나면 분석하고 해명을 하고 싶은 의욕을 잃어버리게 만드는데, 그냥 그 느낌 자체에 빠져있게 되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상록수>가 그런 영화였어요. 끝나고 나서 그냥 멍하게, 멍하게 있던 기억이 나요. 정성일_ 이 마음의 상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네필처럼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데, 말하자면 이건 지금의 마음의 상태가 < 상록수 >를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게 한 건데 올해 본 새로운 동시대 영화중 베스트는 무엇입니까? 허문영 선생의 심리적 상태를 알아봐야 하니까요. (웃음) 과거 영화는 무조건 존 포드가 차지하고 있으니 궁금하지 않잖아. (일동 웃음) < 풍경 > (2013) 허문영_ 과거영화를 얘기해야한다면 (존 포드의) < 선 샤인 브라이트 The Sun shines bright >(1953년)를 얘기하려고 했지만. (웃음) 그냥 인상적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망설이다가) 이미 평가받은 영화들은 재미없으니까, 제일 최근에 본 영화가 말씀하시니까 막 떠오르는데, 저는 장률 의 < 풍경 >이었어요. 저는 (씨네 21에 실린) 정 선배의 인터뷰를 보니, 이걸 장률의 걸작으로 꼽고 있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근데 저는 이 영화가 걸작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를테면, 그냥 사람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도록 해주는 구나. 그냥 사람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을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나, 그 사람이 놓인 사회적 처지나 운명이나 뭐,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 곤경, 그 사람의 개인적인 소망. 그런 거와 아주 무관하게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 그게 우리가 못해오고 있었던 일이었구나. 그렇게 영화를 많이 보면서도, 우리의 생활자체는 점점 타인의 얼굴을 외면하고 살도록 되어가잖아요. 심지어 카페에서도 얼굴대신 스마트 폰을 보고, 생활이 그렇게 흘러갈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그런데, 근데 이 영화는 얼굴을 보도록 권유하고 있구나. 아니, 보는 것이 좋은 일이고, 보는 것이 괜찮은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구나, 이런 느낌. 저는 영화 보면서 그게 드문 일이었어요. 그게 다큐여서 가능한 일이고, 장률이라는 사람이 어제 꾼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라는 질문을 잘 선택하기도 했고, 이게 영화적으로 훌륭하다, 아니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저는 그런 점에서 <풍경>이 올해 최고의 영화는 아니어도 굉장히 특별한 영화라고 머리에 남을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정성일_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기 전부터 임권택 감독님은 영화를 만들었잖습니까? 영화를 보면서 처음에는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이 영화를 찍은 사람이 누구지, 하고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처음 확인하게 된 영화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권택 감독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 첫 번째 영화는 무엇이었습니까? < 짝코 >(1980) 허문영_ 저는 정 선배보다 훨씬 늦은 나이에 그런 순간이 있었던 거 같아요. 물론 극장에서 개봉한 임권택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은 잘은 기억은 안 나지만 <만다라>였던 거 같아요. 그게 대학 1학년 즈음 됐겠죠. < 아제아제 바라아제 >도 극장에서 봤었고. 물론 < 만다라 >이후부터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모를 수가 없죠. 하지만 제가 20대부터 영화를 의식하고 공부하고 찾아보고 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전에 직접 뵙기도 했었죠. 70년대 말인가, 80년대에 아버지를 따라 뵌 적도 있었던 거 같아요. ( 허문영 씨의 아버지는 영화평론가인 고 허창 선생이다) 학생시절에 OB 베어즈에 가서 뵈었던 거 같아요. 아버지가 당시 영화진흥공사에 계셨던 시절에, 그때 임 감독님을 가끔 뵌 거 같은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따라가서 인사를 드렸던 거 같아요. 막연히 그때는 <만다라>이후 임권택 감독님은 한국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거장 감독이라고 평판이 굳어졌기 때문에 그 평판의 영향아래 영화를 보았던 거 같고, 영화로 감독님의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라는 느낌을 받은 건 그 뒤였던 거 같아요. 80년대 말인지 90년대 초인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1990년 즈음 < 짝코 >를 비디오로 우연히 보았을 때였습니다. 개봉할 때는 못 봤고. 물론 그 영화가 임권택의 영화라는 건 표면적인 지식으로 알고 있는 상태였고, 이 어른이 이런 영화도 만들었네, 뭐지? 하고 본거 같아요. 이 영화가 얼마나 정교한 플래시백의 기법을 구사하고 있는지는 그 뒤에 다시 한 번 봤을 때 느꼈고,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제 머릿속에 남은 건 이 영화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무대는 1980년 현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의 배경은 6.25이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좀 심원한 비극성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굉장히 마음이 아픈데, 이건 역사적인 어떤 허깨비를 쫓는 거잖아요. 평생을 바쳤는데 그게 허깨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 그 허망함의 무게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그거였어요. 정교한 플래시백보다 훨씬 기억에 남아요. 두 사람이 탈출하고 나서 싸우는 데, 세상에 그렇게 비루하고 그렇게 초라하고 어이없는 싸움이나 액션이 도대체 어딨나, 심지어 카메라가 계속 찍지도 않아요. 둘이 계속 싸우는데 카메라 (프레임) 밖에 나가요. 둘이 빠져나가는데 카메라는 그냥 가만히 서있어요. 사실 아무것도 아닌 걸 잡고 있는데, 여기 지금 찍히고 있는 게 뭔가라는 생각. 카메라가 대체 뭘 찍고 있나. 그런 기억. 뭐, 이런 저런 이유로 이걸 만든 사람은 참 특별한 사람이다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훌륭한 감독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다. 임권택 감독은 참 특별한 사람이구나. <짝코>를 90년대에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정성일_ 임권택 감독님의 무슨 영화 다음에 < 짝코 >를 보았습니까? 허문영_ 아마 < 아제아제 바라아제 >와 < 씨받이 >를 띄엄띄엄 보고 보았어요. 정성일_ 1989년 전후가 될 텐데 그때 허문영 씨가 심취했던 영화들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걸작의 명단이라고 움켜쥐고 있던 그런 영화들, 그때는 사실 애매한 시절이었죠. 비디오가 쏟아진 것도 아니고 DVD가 도착한 것도 아닌 시절. < 화이트 히트 >(1949) 허문영_ 그때는 영화를 열심히 본 시기가 아닌데, 한동안 제가 그 시기 3-4년 정도 완전 사로잡혔던 영화는 < 화이트 히트 >였어요. (감독) 라울 월시의. (주연배우) 제임스 캐그니의 정유 공장의 마지막 시퀀스는!! “Mom, I'm on the Top!”하고 불타버리는 장면은... 아, (깊은 한숨) 세상에... 남자의 심금을 울리죠.. 오우삼? 너는 라울 월시의 손자다. 손자라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또 당연히 그때는 우리가 홍콩영화에 혼절할 때가 아닙니까? 다 봤죠. 열심히 봤죠. 그때 (필름 포럼을 운영하는) 임재철이, 너 그런 이상한 영화를 보지 말고 이런 영화 좀 봐, 하고 영어 자막 캡션이 달린 영화를 보라고 주더라구요. 아, 영어 자막 피곤한데,.. (하고 집에 가서 본 다음) 그날로 형님, 월시 형님! (일동 웃음) 오우삼이 최고의 남자 감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부터 월시 형님을 모시겠습니다, 했죠. 정성일_ 사실 많은 영화 비평가들, 혹은 연구자들이 겪는 일이기도 한데, < 짝코 >를 전후로 해서 임권택 이라는 이름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이전의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들과 이후의 영화들은 비평가들에게 내면적으로 어떤 불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허문영 씨께서는 앞의 영화들은 불완전하거나, 그 영화가 갖고 있는 다른 기준들, 그런 불화를 화해시킬 수 있었던 비평적 프레임의 변화랄까, 아니면 영화의 어떤 새로운 방점을 찍거나, 미학적이거나 영화의 존재론적인 방점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권택이 자신의 비평적 프레임워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 개벽 >(1991) 허문영_ 저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세계 전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해본 건 오히려 최근 들어서고 그전에는 계속 잘 모르겠다, 였던 거 같아요. 새로 만든 영화를 지속적으로 챙겨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90년대는 꾸준히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제가 90년대 겪었던 건 제가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는 계속 놓치게 돼요. 이를테면 < 개벽 >을 극장에서 봤거든요. 참 아름답다 근데 잘 모르겠다, 근데 그 영화가 비범한 영화란 생각이 든 건, <개벽>을 다시 본 건 2-3년 뒤에 TV에서였습니다. 그걸 보고 완전히 빨려들어 갔습니다. 그냥 아름답고 약간 비극적인 이야기가 좀 있는 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TV에서 <개벽>을 다시 보며 이 영화가 인물을 찍은 게 아니구나, 인물이 이 영화에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찍었구나, 라는 느낌. 일종의 패배의 이야기.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이 일본과 싸워서 졌다는 게 아니라, 인물이 서사 안에서 주인공이 되기에 실패한 영화구나, 그 실패가 어디서부터 온 건지 영화가 대답해주지는 않지만, 그 패배의 불가피성에 대해 풍경이 대답을 해야 하는데, 풍경은 침묵하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풍경이 사무치게 슬프다는 그런... (잠시 생각하고) 굉장히 특별한 영화구나. 그 격동기에 격렬한 역사적 사건 한가운데 있는 인물을 찍으면서, 그 인물의 역사적 문제가 아니라 서사 안에서 실패라는 것들. 그 풍경의 비애라는 것. 굉장히 특별한 영화구나. 근데 정선배도 (지금 이 ‘임권택 X 101’) 연재에서 여러 가지 다른 방식으로 지적을 하고 있으시지만, 임권택 감독의 다음 영화를 봤을 때 그 이전 영화의 가설이나 프레임이 무너질 때의 난처함. < 축제 >를 극장에서 봤을 때 또 놓쳤어요. 이 동화적인 화해의 서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철저한 실패를 다룬 감독이 왜 동화를 통해 화해를 하려고 하는가. 그 영화를 또 다시 보고 영화가 또 그게 아니구나, 깨달은 것은 몇 년 후 비디오로 보고서였죠. 임권택 영화를 보는 제 반복된 체험은 처음 봤을 때는 계속 놓친다는 겁니다. 두 번 봤을 때 새로운 영화를 보게 되고, 세 번 봤을 때 또 다른 영화를 보게 되고. 오히려 임권택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영화 전체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계기는 <개벽>에서 시작되었다고 봐야죠. 그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름은 굉장히 이상하다, 절대 한 번에 닿을 수 없는 세상. 계속 진격을 거듭하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 직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오히려 2000년대 들어와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좀 더 자주 보게 되면서 계속 느끼게 되죠. 딴 것 보다 임권택 영화를 보면, 너무 재밌어요. 어떤 영화를 골라 봐도 재밌어요. 심지어 두세 번 봤는데도 또 새로운 것이 펼쳐지기 때문에. 어떤 때는 그냥 계속 보기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_ 이렇게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막 영화비평을 시작하고 있는 세대와 우리 세대가 다른 것 중의 하나는 처음부터 한국영화를 좋아하기 힘들었던 세대이지 않았습니까. 왜냐하면 영화들이 너무 나빴으니까. 그 나쁜 한국 영화들을 끌어안게 된 계기, 의식적인 포섭, 그런 계기를 개인적으로 얘기해줄 수 있습니까? 전 사실 그 한국 영화가 너무 싫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고 그것을 끌어안는 게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의식적으로 보지 않았다면 훨씬 더 긴 시간 한국영화에 대해 더 무관심했을 거 같아요. < 칠수와 만수 >(1988) < 개그맨 >(1988) < 성공시대 >(1988) 허문영_ 저는 20대였던 80년대에 영화광으로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열심히 챙겨본 것은 아니었지만 꽤 많이 보았고, 의식적인 고민의 대상은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는 아니었던 거 같아요. 제게 임권택 은 한국영화에서 굉장히 예외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임권택이 한국영화 범주나 역사 안에 있다기보다는, 한국영화가 있고 임권택이 또 있어서. 이 사람이 만드는 것은 굉장히 특별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걸 깨준 건 사실은 코리안 뉴웨이브라고 봐야죠. < 칠수와 만수 >( 박광수 ), < 개그맨 >( 이명세 ) 그리고 장선우 감독의 < 성공시대 > 인거죠. 한국영화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준 것은 이 세 사람이었어요. 게다가 그 사람들이 만든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들까지도 굉장히 훌륭했기 때문에 88년부터 90년, 91년까지 이 세 사람이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놨어요. 이 세 사람이 또 전혀 다르잖아요. 사실은 코리안 뉴웨이브를 쓰는 게 가능한지도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특히 이명세를 거기에 끼워 넣는 건 굉장히 이상하죠. 하지만 한국영화에서 완전히 새로운, 없던 것들이 만들어지기도 했구나. 그 세대는. 정성일_ 조금 사적으로 질문을 해볼게요. 허문영 씨 경우에는 다른 비평가와 달리, 영화비평가 아버지를 갖고 있는 유일한 비평가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버님이 매우 눈이 밝은 분, 이런 얘기가 듣기 불편할 수는 있지만, 저는 살아생전에 아버님을 뵙고 영화에 관한 인터뷰도 했었으니까요, 눈 밝은 의견을 존중할만한 영화비평가이셨는데, 아버지와 영화 얘기를 하신 적이 있습니까? < 그들도 우리처럼 >(1990) 허문영_ 거의 없어요. 아버지는 얘기를 하려고 하셨는데, 제가 피했어요. 의견이 달라서가 아니라, 아버지란 존재 자체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하나 기억나는 건 있어요. 대화를 나눴다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으로 들은 건데, 좀 전에 말씀드렸지만 저한테 한국 영화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준 게 박광수 , 장선우 , 이명세 라고 말씀드렸는데, 90년에 < 그들도 우리처럼 >을 보고 말 그대로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냥 아, 이건 정말 걸작이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아버지가 그때 대종상 심사 예심을 할 땐가 본심을 하실 땐가 인데, 그때 잠시 같이 살았던 때인데, 피할 수 없이 얘기를 해야 하는 자리가 있잖아요, (웃음) 같이 밥을 먹어야하는 자리. 그때 <그들도 우리처럼>을 봤는데 그건 한국영화사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나는 이 영화가 대종상 본심에 올라오지 않은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심사를 안 하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과장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어요. 내 기억이 조금 과장되었을 수도 있는데,.. 제가 절대 피해왔지만, 일상적인 대화와 영화에 관한 대화를 피해왔지만, 갑자기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두 가지가 분명해졌죠. 이 사람이 나하고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완전히 공감을 하고 있구나, 그건 쉽지 않은 체험이잖아요. 영화 글을 찾아 읽었을 때도 아니니까. 또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은 비평가구나. 자기가 절대적으로 존중하는 영화가 존중받지 않았을 때 자신의 선택을 어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 비평가구나, 괜찮은 사람이구나... 이게 얼마나 사실에 근거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대화밖에는 내 머릿속에 남은 게 없어요. 자기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 영화가 대종상 본심에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서 대종상 심사위원을 거절한다, 정말 비평가적인 태도잖아요. 물론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계속 대화를 하지는 않았지만 (웃음) 여전히 아버지란 존재에 대한 부담, 무게가 버거웠으니까. 그래도 그때 그 말은 계속 기억이 나요. 정성일_ 영화 비평을 쓰거나 보거나, 영화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진전시켜 나가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자기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영화 비평가, 비평의 방법을 보여줬던 사람. 그 사람이 꼭 비평을 쓰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걸 전용할 수는 있는 거니까. 이 사람에게 영화에 대한 배움을 내가 구했지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김현 문학평론가 허문영_ 사유를 배웠다기보다는, 그 태도를 늘 떠올리게 한 사람은 김현이었어요. 우리 시대 제가 20대 때 많은 스승들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백낙청, 김현, 유종호, 김우창, 김치수도 있었고. 단순히 문학 평론가여서가 아니라 비평가란 말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죠. 그렇게 보면 인문학적 환경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김현이 좀 특별했다고 볼 수 있는 건, 한 사람의 작품을 말할 때 그 작품 안으로 기꺼이 들어간다는 느낌. 그게 애정일 때도 있고 비판을 위해서 일 때도 있지만, 보통 다른 글을 읽을 때는 작품 밖에서 얘기를 한다는 느낌인데, 이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그 작품 안으로 들어가서 그 작품과 함께 어떤 것을, 정 선배가 많이 쓰시는 말인데, 느껴본다, 아, 이 사람이 느껴보는 것 같아요. 제 표현으로 하자면 작품 안으로 기꺼이 들어간다, 그 안에서 헤매고 뭔가 바깥으로 나오는 줄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들어간다는 그 태도가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어요. 게다가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 글이 너무 아름답잖아요. 한국어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가 있구나. 김윤식 선생의 그 훌륭한 평론도 글의 딱딱함 때문에 질리게 될 때가 있잖아요. 김현은 자기 작품 안에서의 방랑, 방황의 과정을 너무 아름답게 표현하는 사실이 좋았고, 뭐, 무엇보다 그 사람의 태도가 첫 번째로 비평의 굉장히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뒤로 오랫동안 뭘 쓰다가, 그게 무슨 기사든지, 잡문이든지, 비평이든지 상관없이, 글이 막히면 김현 선생의 글을 아무 거나 읽으면 약간 뭔가 정화되는 느낌이 있어요. 직접적인 힌트를 준다거나 사유의 틀을 제공한다거나 하지 않더라도. 정화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정성일_ 다시 임권택 감독님 안으로 기꺼이 들어가겠습니다. (웃음) 당장 내일 바뀔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임권택 감독님의 최고 걸작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최근의 마음으로는 < 장군의 아들 >이에요. 영화를 다시 보는데, 영화에 걷잡을 수 없이 빨려들어 갔어요. 그 영화를 이전에 두세 번 정도는 봤었겠죠, 당연히. 정성일_ 우리 토크의 제목을 “결국 임권택 은 < 장군의 아들 >이다”라고 하면 어떠실까요? (웃음) 허문영_ 굉장히 안 좋아 하시겠죠. 이거는 뭐, 할 수 없습니다. 최근의 체험이기 때문에. 최고작이라는 질문은 사실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극장에 가서, 임권택 의 영화를 한 편 봐야 한다면 뭘 보고 싶으십니까, 라고 질문하신다면... (잠시 생각) 약간 황홀하다는 느낌, 그런 게 있었어요. 뭔가 기적 같은 영화다, 이런 느낌. < 춘향뎐 >이야말로 정말 기적 같은 영화긴 한데. < 장군의 아들 >은 전혀 다른 철저히 상업적인 기획 아래 태어난 영화고 그렇게 소비되었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다시 볼 때 이런 느낌을 준다는 게, 황홀감을 준다는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성일_ 그 대답을 보충하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더 하겠습니다. 단 한편의 한국영화라고 하면, 완전히 주관적으로 얘기할 때, 공식적이거나 객관적으로 말고. ‘한국영화는 무엇이다’라는 화법으로 얘기하면, 어떤 영화를 말하고 싶습니까? 허문영_ 사실 정 선배는 임권택 의 영화 세계를 고민하시면서 한국적인 쇼트, 한국의 영화를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저는 그 범주가 아직 제 비평적 생각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잘 못 잡겠어요. 그래서 어떤 영화를 볼 때나 그 범주는 먼저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는데, (망설임) 글쎄, 지금 그렇게 물어보신다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 개벽 >이에요. 정성일_ 임권택 이 아니어도 한국영화는 < 개벽 >이다. 이만희 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허문영_ ‘한국’이 붙어 있으니까... 한국의 최고작, 한국영화사의 최고작과는 다른 뉘앙스로 생각하게 되는 게, 이만희 영화에는 풍경에 대한 사유가 없어요. 장소에 대한 사유는 있는데... (망설이다가) 심지어 < 원점 >같이 설악산에 가서 찍은 영화도 풍경에 대한 사유가 없어요. 임권택 영화는 사유라고 표현하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풍경에 대한 깊은 감각. 존 포드의 서부극이 미국 풍경에 대한 깊은 감각이 있듯이, 그 감각을 가진 영화는 임권택의 영화 같고. 제일 내 머릿속에 깊이 남게 한 영화는 < 개벽 >이었던 거 같아요. < 취화선 >이나 < 춘향뎐 >이 굉장히 아름다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때 풍경은 장식적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했던 거 같아요. 장식이 아니라 거기 있는 풍경, 그 풍경과 나와의 거리, 되게 특별한 풍경에 대한 감동을 전해주고 내 머릿속에 남긴 것이 <개벽>이었습니다. 정성일_ 부록으로 두 번째 질문입니다. (웃음) 한국영화를 제외하고, 내일 당장 명단이 바뀔 수 있다 치고, 마음속의 단 한편의 영화는 무엇입니까? 마음속의 가장 큰 별이랄까, 자기 머릿속에 영화의 별자리를 짜고 있는 그 중심의 별이랄까... < 바람 >(1928) 허문영_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오기 싫었는데 (일동 웃음) 즉각적으로 그것도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기 때문에, 계속 오래 남아 있는 영화는 빅토르 쉐스트롬의 < 바람 The Wind >(1928년)이에요. 영화사에도 자주 언급되지도 않고, 시네마테크 프로그램에도 잘 안 들어오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전 그 영화의 굉장히 단순한 구도 안에 거의 모든 게 다 담겨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사람, 자연, 선택, 사랑... 게다가 그 무성영화 시대 말기의 영화들은 어떤 시대, 어떤 영화들보다 제일 시네마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1925년부터 1930년 그 5년 동안 나온 영화들은 어떤 영화보다 더 훌륭해요. 유성영화가 나왔을 때, 마치 무성을 고집하듯이 만든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시네마틱한 힘이라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한 힘, 에너지가 있는 거 같아요. 그 시대 많은 위대한 여러 영화들이 있고, 다 훌륭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훌륭하다는 건 <바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작품 자체로 치면 < 썬 라이즈 >가 더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썬 라이즈>는 워낙 오랫동안 표준화된 전범처럼 남아있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봤을 때 충격은 <바람> 쪽이 훨씬 셌어요. 바람이 스크린 바깥으로 불어오는 듯한 느낌. 어떤 특수효과도 없이 대형 선풍기만으로 그 바람을 만들었다는 거... 그거는 카메라가 혹은 만드는 사람들이 바람을 찍겠다가 아니라 바람과 대결하겠다는 방식으로 찍지 않았다면 그 느낌이 안 살아났을 거 같아요. 거의 원시림 안에서 자연을 찍는 다큐멘터리스트의 방식으로 찍은 게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바람이 주는 그 감각적인 느낌은 굉장히 셌어요. 굉장히 특별한 영화다, 라는 느낌을 갖고 있어요. 정성일_ 이렇게도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의 명장면은 어떤 것입니까? < 길소뜸 >(1928)의 장면들 허문영_ 사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재미없는 말이긴 하지만, 임권택 감독님 영화는 명장면 투성이에요. 이야기가 아무리 후져도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이상한 감독인데, 제가 지금 떠오르는 건 < 길소뜸 >에 관한 장면이에요. 간단하게 거기에 대해 쓴 적도 있는데 <길소뜸>에서 신성일 과 김지미 가 자기 아들로 추정되는 남자를 찾아가 하룻밤을 묵어야하는 상황이 나오잖아요. 신성일은 그 남자 집에 들어가자고, 김지미는 중산층이자 비교적 그 영화에서 상류층 계급인데, 김지미는 그 남자 집에서 잘 수 없어서 자기 차 안에 기대있어요. 그 남자, 한지일 은 술 퍼먹고 있다가 잔소리하러 나온 자기 아내를 평상 위에서 부부 사이인데도 거의 강간하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부인이 쌩하고 들어가 버리는 그 장면. 아주 짧은 장면이죠. 마누라가 쌩하고 들어가고, 한지일이 몸을 김지미 쪽으로 스윽 돌려요. 카메라는 그대로 서있고 차 안의 김지미의 시선으로 그 장면이 찍혀 있는데, 그 장면이 임권택 영화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 무서운 순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기억 속에는 어떻게 남아있냐면 한지일이 걸어오는 거예요. 김지미는 차를 빼고 어디론가 가버려요. 나중에 다른 숙소에서 잔 걸로 나오기는 하는데, 이쪽에 발기한 아들의 성기가 있고, 또 상류층 엄마가 있고. 나는 임권택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어떤 특별한 관심이 있다거나 그걸 주요 모티브로 찍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장면 같은 경우는 너무 사악하고 강렬한 성적 에너지로 가득한 장면이어서, 실제로 그 장면 없이도 영화는 성립되지만, 이 여인의 선택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 장면이 나온 후 김지미는 이 장면이 없던 것처럼 어떤 선택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한지일은 이미 낮에 차에 치어 죽은 개를 잡아먹었잖아요. 사악한 성기, 사악한 아들의 성기. 이걸 역사적인 맥락으로도 해석을 할 수 있고, 계급적으로 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이 장면에서 절대적으로 바로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악한 리비도로 가득 차있는, 그래서 <길소뜸>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소뜸>도 보면 앞에 처음부터 얼마나 구린 대사가 많습니까. (웃음) 그 구린 대사를 완전히 다 한방에 보내버리는 장면이었던 거 같아요. 1980년대 임권택 영화에는 이상하게 그로테스크한 정념의 쇼트들이 되게 많아요. 많다기보다 그런 장면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와요. < 티켓 > < 씨받이 > < 만다라 >도... < 안개마을 >은 그 자체가 모티브이고, 그 자체가 모티브가 아닌 영화도 리비도가 그 서사를 초과해 버려요. 정성일_ 허문영 씨의 자리에서 1980년대 임권택 의 영화를 ‘리비도’의 시대라고 다시 한 번 정의할 수도 있겠네요. 허문영_ 네, 저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어요. < 아제아제 바라아제 >도 굉장히 센, 정념, 리비도가 막 서로를 키워나가는 순간이 있고, 그게 어떻게든 수습되거나 차단당하면서 결말이 대부분 다 비극적이거나 우울하거나. 근데 임권택 스스로는 그런 장면들에 대해서는 늘 말씀을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정 성일_ 늘 피하시죠. 그냥 그런 장면도 필요한거요, 라고 대답하시죠. 허문영_ <길소뜸>의 그 장면은 너무나 강렬해서 다시 보니까 그 장면에서 한지일 이 김지미 차로 걸어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몸만 살짝 틀었는데, 그 튼 것만으로 성기가 막 다가오는 느낌인거에요. 그만큼 이 장면의 리비도가 센 거죠. 사실 잘못 기억된 상태로 있는 게 훨씬 더 이 영화를 정확하게 보는 거 같고, 보고 걸어온 건 아니었네, 라고 정리하는 게 오히려 잘못 기억하는 거 같고, 걸어오는 걸로 기억하는 게 이 영화에 대한 정확한 기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두만강아 잘있거라 >(1962) 정성일_ 좀 이상한 질문이긴 하지만 임권택 감독님의 첫 번째 영화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는 처음 개봉했을 때 볼 수 없었고 긴 시간이 흐른 다음 비평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본 영화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난 영화를 회고한다기보다는 이 영화를 마치 1962년에 만들어진 현대영화처럼 본 느낌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임권택 감독의 시작은 어떤 감독이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허문영_ 그 영화에 대해서는 정 선배가 잘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가 더 보탤 말은 없고 (웃음) 그 영화는 29살에 만드신 첫 영화인데, 제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감독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인상만으로는 감독이 마지막 장면만을 위해 만든 영화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지막 장면까지 이르는 이야기는 일종의 핑계처럼 느껴지고, 오직 마지막 한 장면에서 모두 죽었고, 정 선배가 전멸의 테마라고 말씀하신 걸로 기억되는데, 설원에 서 있는 건 나무밖에 없고 인간은 전부 가느다란 실이나 점처럼 누워있는 느낌. 그 영화가 충격을 주는 것은, 임권택 감독이 데뷔작부터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데뷔작에서부터 철저히 상업영화를 만들겠다고 한 사람이 만든 첫 영화에 순전한 죽음의 이미지로 시작한다는 건 도대체 어떤 시작일까, 어쩌자고 이런 것일까, 실제로 어떤 마음으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모든 영화를 제가 다 보지 않았지만 임권택의 대부분의 영화들은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한 느낌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어요. 실제로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느낌으로 흘러가고, 인물들도 끝이 아닌 척 하지만, 실제로는 알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느낌으로 행동하면서 말과 이미지가 계속 충돌해요. 굉장히 특별하고 괴기스러운 데뷔작이다, 란 생각이 들어요. 그게 임권택 영화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습작이 아니라 굉장히 의미 있는 출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정성일_ 두 번째 질문은, < 잡초 >가 블랙홀처럼 머물러 있긴 한데,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젊은 임권택, 작가 임권택이라고 이분화 시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시도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오랜 동안 저 자신이 반대해온 방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작전을 진행하면서 임권택이 임권택다워졌다고 생각한 그런 단락(短絡)의 지점은 언제였다고 생각됩니까? < 망부석 >(1963) 허문영_ 필모그래피가 워낙 울퉁불퉁해서 시작부터 어느 시점부터 명백히 임권택 적이라고 말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은데, 제가 받은 느낌은... (잠시 생각) < 망부석 >. 아마 그렇게 훨씬 앞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인거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그 이후 바로 임권택적인 세계가 자리를 잡아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의외로 너무도 젊은 나이, 64년 31세에 만든 작품인 <망부석>에는 임권택적이라고 말할 만한 게 많아요. 이 네 번째 작품에서 제가 그 이후의 임권택 영화에서 느끼는 게 여기 아주 많이 있구나하는 느낌. 이를테면 < 짝코 >에서 두 죽어가는 노인이 말도 안 되는 싸움을 프레임의 한 귀퉁이에서 벌이다가 프레임 밖으로 거의 빠져나는 그런 느낌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쇼트가 <망부석>에도 있어요. 혜경궁 홍 씨가 진짜 망부석처럼 서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데, 거기서 그 장면의 주인공은 혜경궁 홍 씨가 아니라 그 마당이고 정원이에요. 이미 자기의 네 번째 영화에서 어떤 예술을 찍겠다는 의도 없이 만들어진 전형적인 사극영화에서도 임권택의 쇼트가 등장하는구나. 되게 특별한 쇼트다, 라는 느낌. 물론 <망부석>은 이야기가 굉장히 울퉁불퉁하죠. 이후에 <요화 장희빈>만해도 <망부석>보다는 훨씬 세련되게 잘 짜여 졌어요. 그런데도 <망부석>은 이야기를 어떤 시점까지 끌고 가다가 자기가 찍고 싶은 쇼트를 그 순간에 등장시키는 어떤 연출의 힘이 여기 들어갔다고 생각됩니다. 정성일_ 비평가들의 습관이자 씨네필들의 버릇 중의 하나로 이해할 텐데, 임권택 의 영화를, 말하자면 다른 감독의 영향 관계 아래 놓으려는 시도, 노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끈질기게 임권택 감독을 미조구치 겐지의 계보 아래 놓으려고 한달까, 정작 임권택 감독 자신은 자기에게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빌리 와일더 이 세 사람을 얘기합니다. 좋아하는 영화로 꼽은 펠리니의 < 길 >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는데, 아마 그건 심정적인 공감일 것입니다. 결국 임권택의 영화에 영향을 준 것을 세 명의 할리우드 감독인데. 이 명단이 우리를 몹시 당황하게 만듭니다. 그 세 감독은 워낙 다른 사람이니까, 교집합을 찾자면 찾을 수 있겠지만, 영화사의 상식적인 교집합은 아니니까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우리 쪽의 질문인데, 영화사 안에서 임권택을 의식하든, 안하든 계보 안에 끌어들여 놓아야한다면 임권택 영화를 우리는 어느 계보 안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망설임) 솔직히 계보는 잘 모르겠어요. 해외 비평가들이 임권택 의 영화를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계보 아래 놓으려고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게 잘 동의가 안 돼요. 정성일_ 저는 임권택 감독님 영화 중 사실 미조구치 겐지의 영향을 받은 건 < 아제아제 바라아제 > 단 한편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문영_ 저도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정 선배가 생각하시는 이유는 다를 수 있겠지만, 해외 비평가들이 떠올리는 건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50년대, 미학화된 미조구치 겐지의 영화일 텐데, 그것과 임권택 의 유사성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임권택의 롱 테이크와 롱 쇼트는 장식적이거나 미학적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뭔가 다른 게 있어요. 그게 역사적 시간에 관한 것이든, 풍경의 침묵에 관련되었거나, 임권택의 경우 롱 테이크와 롱 쇼트는 장식적이지 않아요. 미조구치 겐지의 50년대의 카메라 워크는 거의 즐길 수 있을 만큼 장식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미조구치 겐지의 50년대 영화 못지않게 30년대 영화가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조구치 겐지는 어쨌든지 인물의 힘을 어떤 방식으로든 믿었던 사람이고, 그것으로 버텨내려고 했는데 임권택 감독은 믿지 않는 것 같아요. (망설이다가) 그냥 지켜보는 사람인 거 같아요. 이렇게 지켜보고 저렇게 지켜보고, 이 스산한 거리감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 같고, 그런 점에서 미조구치 겐지가 떠오르지는 않아요. 그 스산한 거리를 말한다면 차라리 존 포드가 가깝다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롯셀리니 이후의 모던 시네마에 정신적으론 더 가까울 수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모던 시네마는 역사적 시간에 걸쳐 있기 때문에 직접 연결시키기는 좀 힘든 거 같고 임권택 영화는 계보에 넣기에 참 까다로워요. 지금 우리가 보기에 < 춘향뎐 >과 < 축제 >는 거의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영화 아닙니까. 이 아방가르드 영화의 역사적 시간, 역사적 풍경, 역사적 소재라는 풍경, 인물이 있고 심지어 전통적인 서사가 있고 동시에 가장 비서사적인 음악적인 리듬과 공존해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당분간은 임권택 영화를 어떤 계보에도 포함시키지 않고 생각을 하는 게 차라리 더 낫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훨씬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정교하게 분석해서 언젠가는 누군가, 혹은 정 선배가 찾아내시겠지만, 저는 계보에 넣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을 하고, 저는 KMDb에 지금 연재하는 글의 제목을 '임권택 X 101'로 잡은 건 그런 뜻이라고 생각해요. 101명의 임권택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임권택이 101편을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101명의 임권택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어떤 틀이나 모델은 당분간 없는 걸로 하자, 그것이 억지로 찾아내는 것보다는 임권택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런 취지에서 이런 제목을 달았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정성일_ 그렇다면 이번에는 임권택 쪽의 질문인데, 존 포드, 윌리엄 와일러, 빌리 와일더, 그 세 명의 감독들로 부터 어떤 영향을 받은 걸까요? 사실 이게 더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계보를 짜는 건 주관적으로, 편의적으로, 실용적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짤 수 있지만, 임권택 쪽의 방법이 더 이해가 안된달까... 허문영_ 빌리 와일더 쪽은 잘 모르겠어요. 윌리엄 와일더나 존 포드 쪽에서는 (망설이다가) 너무 딱딱하고 진부한 표현일 수는 있겠지만, 공동체의 윤리라는 문제, 혹은 공동체적 제의? 공동체적 윤리라는 영화적 가치와 공동체적 제의라는 모티브는 임권택 영화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거 같아요. 존 포드의 영화에서는 그 윤리를 어쨌거나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임권택 영화에서는 그 실천이 사실은 늘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 다 그 문제를 끝끝내 붙들고 있었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윌리엄 와일러도 그런 점에서 비슷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나 < 작은 아씨들 >이 갖고 있는 공간의 드라마라는 게 있잖아요. 사람의 드라마, 사건의 드라마도 있지만 공간의 드라마틱한 배치라는 게 있잖아요. 굉장히 아름답고 영화적인 느낌을 그의 몇몇 영화에서 받습니다. 그 우아함이란 것도 임권택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요. 그 우아함, 고귀함이라는 가치. 임권택이 보통 한국의 전통 문화를 중시한다, 라고 하는데, 저는 그 말이 그렇게 정확하지 않은 거 같아요. 임권택은 오히려 전통 문화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아요. < 씨받이 > 같은 경우도 그렇고. 임권택이 갖고 있는 윤리적 질문은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 라는 오히려 보편적인 질문에 가까워요. 그것이 혹시나 전근대적인 혹은 종교적인 어떤 것에서 그걸 찾을 수 있는가 질문을 하고 있는 거지, 전통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고 하는 건 정확하지 않은 거 같아요. 반복해서 < 장군의 아들 > 얘기로 다시 돌아오면 화면도 굉장히 아름답지만, 그런 것들이 다 들어있어요. 윌리엄 와일러 적인 것, 존 포드 적인 것, 심지어 빌리 와일더 적인 것. 되게 훌륭한 영화라니까요 (웃음) 정성일_ 재평가하겠습니다. (일동 웃음) 허문영_ 그 영화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좋은 점 중에서 영화적인 요소가 아닐 수는 있어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예의에요. 예의라는 게 참 아름다운 거구나. 예의의 몸짓이라는 게 있잖아요. 싸우고 나서도 어떻게 예의를 지킬 것인가. 그게 사람을 되게 감동시키는 게 있어요. 영화적 훌륭함과 별개로. 예의라는 것, 공동체의 윤리라는 것, 우아함이라는 게 어쨌든 뭔가 연결되어 있는 거 같고 그게 < 장군의 아들 >이라는 영화에서 집약화 되어 있다는... 정성일_ 사실 대사를 할 때마다 굉장히 뭉클하죠. ''동생, 내가 졌소. 떠나겠소'' 허문영_ 그게 영화적으로 촌스럽다거나 대사가 후지다 그런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되게 가슴이 아픈... 정성일_ 마치 우리 시대가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점에서 일제 식민지 강점기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허문영_ 저렇게 해도 행위가 성립하고 얘기가 성립하는데 그게 지금은 마치 없는 것처럼 얘기가 만들어질까 싶은 거죠. 얘기가 성립하잖아요. 임권택 이 그런 세계를 보여주는 거죠. 예의를 지키면서 성립되는 세계. 정성일_ 장르를 갖고 얘기하자면 임권택 감독 자신은 수많은 장르를 찍었습니다만, 그 자신이 언급하는 것은 서부극 외에는, 많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장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말하자면 이제 KMDb에 '존 포드'를 연재하는 허문영 존 포드 매니아 덕후께서 (웃음) 임권택과 서부극이란 것 사이에서, 그가 만든 짧은 시기 만주 웨스턴이 아니라, 임권택 영화 전체를 놓고, 그런 다음 그 곁에 서부극을 놓고 임권택 영화와의 친화성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수색자 >(1956) 허문영_ 굉장히 도식적으로 대답하게 돼요. 왜냐하면 저는 개인적으로 서부극은 하나의 장르가 아니라 원형적인 장르라고 생각해요. 서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모든 장르들은 서부극의 하위 장르다, 서부극의 어떤 특정한 측면을 가져온 하위 장르다, 라고 까지 다소 지나치게 말하고 싶어요. 그게 원형적인 장르인 이유는 제가 아까 말씀드렸을 때 임권택 영화에서 발견하게 되는 세 층위가 있는데, 하나가 쉽게 말해서 인물의 시간이 있고, 인물이 하나의 얘기를 만들어가는 거죠. 또 임권택 영화에서 역사적 시간이라는 층위가 있잖아요. 영화에 끊임없이 역사적 인물을 끌어들이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역사적 시간, 또 다른 시간으로는 풍경의 시간, 전 이 점이 굉장히 특별한 층위라고 생각되는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가설은 임권택 영화는 이 세 가지 시간이 끊임없이 서로 긴장하는, 서로 서로 모습을 바꾸고 자리를 바꾸는 긴장과 자리바꿈의 영화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근데 이 세 개의 시간을 같이 담고 있는 유일한 영화가 서부극인데, 서부극은 미국의 역사적인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졌는데, 그 경험으로부터 신화적인 영웅이 태어나지만, 신화적인 영웅은 풍경에서 자유롭지 않죠. 풍경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심지어 이 두 개의 시간들을 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서부극이 갖고 있는 아주 원형적인 세 층위의 긴장과 대립이라는 게 임권택 영화에서 똑같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임권택 영화는 서부극적 이라고 생각해요. 정성일_ (잠시 생각) 음... 설득력이 있네요. 허문영_ 정확한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느낌으로 항상 세 층위가 같이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늘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고, 자리를 바꾸기도 하고, 어느 한쪽이 가려서 안보기이기도 하지만, 임권택 영화에서 늘 그 세 개가 항상 작용한다... 굉장히 도식적이죠. 정성일_ 느닷없이 질문을 하자면, 영화에서 고전주의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대체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저는 개인적으로 고전주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크 오몽에게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고전주의적인 영화가 있을 뿐이지, 고전적인 시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존 포드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그 이야기를 말할 생각인데, 존 포드는 고전적인 서부극을 만든 적이 없어요. 영화학자나 평자들에게 고전적인 서부극이라는 틀이 있지만, 그 틀에 맞는 존 포드 영화는 없어요. 서부극은 가장 고전적인 장르이고 존 포드는 서부극의 가장 고전적인 장인인데, 그가 고전적인 서부극을 만든 적이 없다면 고전기란 게 도대체 있었는가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무성영화가 얼마나 아방가르드의 천국이었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잖습니까? 정성일_ 그 관점에 따른다면 영화라는 건 모던 시네마, 울트라 모던 시네마, 포스트모던 시네마 같이 시기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네요? 허문영_ 그것들이 비중을 달리하면서 어떤 경향을 만들어 낸 적은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진화론적인 단계를 거친 적은 없다,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아직도 1925년에 만들어진 무르나우의 < 썬라이즈 >가 항상 영화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언급되겠습니까? 말이 안 되잖아요. 항상 다른 어법들이 명멸하고 진행되어 오면서 어떤 기법들, 어떤 방식들이 추세적으로, 경향적으로 우위에 선 적은 있지만, 고전적인 시대가 있고 모던한 시대가 있었던 적은 없었고, 심지어 가장 고전적인 것처럼 보이는 영화들조차 모던한 혹은 포스트 모던한 힘이나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_ 만일 그렇다면 영화란 결국 모던한 것이다, 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모던한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힘, 양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모던을 작동시키는 그런 힘? 허문영_ 시간과 풍경, 시간과 장소. 이건 영화 이론가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시간이라기보다는, 저는 개인적으로 영화만이 장소의 시간, 풍경의 시간을 담아낸다고 생각해요. 20세기의 영화만이... 풍경이나 장소는 사실 보통 영화에서 고정적인 것으로 등장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위대한 영화들에서는 항상 풍경이 승리하고, 장소가 승리한단 말이죠. 시간적 승리죠. 개인적 시간과 역사적 시간이 풍경의 시간과 장소의 시간 앞에서 어떻게 버텨내는가가 영화가 시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앞에서 위대한 영화들은 종종 결국 풍경의 시간과 장소의 시간 앞에서 승리를 하는 방식으로 끝나거든요. 모든 인간의 개인적 승리와 역사적 승리는 잠정적인데, 영화만이 그걸 했던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그런 영화는 1910년대, 20년대에도 있었고, 영화만이 아직 그걸 가능한 것으로 보여주는 매체이기 때문에 영화는 본질적으로 모던하게 찍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본질적으로. 아무리 고전적인 의도를 가진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영화를 찍는 순간 모던한 세계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장소가 나오고 풍경이 나오는 거죠. 정성일_ 우리 얘기로 돌아온다면, 그 주장을 따라가면서 임권택 영화를 가장 모던하게 만드는 시네마틱 모멘트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제가 어느 순간부터 임권택 영화에서 감동받는 것은 카메라가 갑자기 물러설 때. 사건을 찍고 있다가 카메라가 느닷없이 물러서면서, 심지어 그것을 정면으로 찍지도 않아요. 한쪽에 몰아놓고 찍는데, 누구의 시선도 아니죠. 오직 카메라의 시선이나 감독의 시선인데 그게 미학적인 선택이 아니라 임권택이 인물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사건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나 감각을 고스란히 한 표현인데, 그 표현이 저에게 그걸 굉장히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임권택의 롱 쇼트는 미학적인 선택이 아닌데도, 구도를 아름답게 한 것이 아닌데도 그자체로 너무 아름답지만, 물러서는 순간 굉장히 쓰라리고 뼈아픈, 슬픈 느낌이 동시에 들고, 인물이,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 아니구나. 임권택의 롱 쇼트가 갖고 있는 굉장히 특별한 힘인 거 같아요. 이를테면 롱 쇼트를 굉장히 아름답게 찍은 영화들이 많이 있잖아요. 하지만 임권택의 롱 쇼트만큼 슬픈 느낌을 주는 롱 쇼트는 거의 못 본거 같아요. 정성일_ 임권택 영화를 굉장히 모던하게 만드는 힘 중의 하나는 플래시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미 < 망부석 >에도 플래시백이 등장하고, 여러 가지 변주를 거쳐서 이제 < 짝코 >에서부터 의식적으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플래시백의 구조는 가장 영화적인 토픽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만, 플래시백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기억의 방식이기도 한 것인데, 임권택의 플래시백이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천년학 >(2006) 허문영_ 저는 임권택 의 플래시백에 대해서는 아직 정리된 견해가 없어요. 그냥 잠정적으로만 말씀드리면, 임권택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와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과거가 결별하기 위해 등장한다는 것이 제 잠정적인 가정입니다.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플래시백이 등장한 적은 없어요. 그렇게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최종적인 결말은 그 플래시백이 현재에 도달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끝나는 거 같아요. 굉장히 이상한 플래시백인거죠. 현재와 늘 불화한다는 게 참 이상한 건데, 그 불화라는 게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건 아닌데, 항상 그것을 등장시켜놓고 그것으로부터, 오늘을 설명하진 않아요. 아주 예외적인 경우 하나가 < 천년학 > 마지막 장면에서 송화가 등장해버리잖아요, 이것은 변형된 임권택의 플래시백이지 전통적인 플래시백은 아닌 거 같아요. 아 그래서 이렇게 됐구나가 아니라 튀어 나버린 거죠. 그렇게 보면 <천년학>도 매우 기괴한 영화인 거죠. 정성일_ 그렇죠, 매우 기괴한 영화죠. 카메라가 물러나는 것이 임권택 영화에서 감동적인 부분이라고 하셨는데, 임권택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허문영_ 흥미롭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재미있다고 보는 건 섹슈얼한 부분이에요. 임권택 감독님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하시지만. 성적인 것에 대한 관심? 성적인 에너지가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 재밌어요. 90년대 이후 영화에는 그런 게 오히려 절제되어 있는 편이긴 한데 < 장군의 아들 >도 다시 보면서, 여기에 노골적인 정사 장면이 있다는 걸 다시 보고 깨달았어요. 완전히 까먹었거든요. 노출이 다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장군의 아들이 게다가 조루라는 설정... (웃음) 심지어 하고 나서 벗은 두 남녀의 뒷모습이 보이고, 여자가 박상민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그거 너무 재밌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에피소드는 이 양반이 도대체 저 에피소드를 왜 넣었을까, 그 다음에 성적으로 성공한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 < 티켓 >같은 영화는 몰락하는 영화고 타락하는 영화고 그 몰락과 타락에 분노하는 영화인데, 이상하게 그 막내 다방 레지가 고객과 섹스를 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장면을 굉장히 구체적으로 찍어요. 그런 대목들이 임권택 영화의 균질성을 깨뜨린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걸 분노의 영화로 보면 그 장면은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거든요, 근데 그 장면이 있어요. 저는 임권택이 가지고 있는 정직함, 솔직함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도 모르게 드러난 솔직함일 수도 있고 설계된 솔직함 일수도 있는데 어느 쪽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질문을 드리면 그럴 수도 있지 않나요, 라고 틀림없이 반문하실 거 같아요. 정성일_ 대담무쌍하게 제가 27살에 딱 그런 맥락으로 질문을 했어요. (웃음) 임권택 감독님이 대답을 하다말고, 저를 30초 동안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시더라구요. 그러시더니 그건 정성일 씨가 더 살아봐야 아는 거요, 하시는 거예요. 그냥 멍한 표정으로 다음 질문을 잊어버린 거죠 (일동 웃음) 허문영_ 이를테면 < 천년학 >에서 백사 노인의 화려한 죽음도, 표면적으로 보면 화려함이지만, 그 이면을 보면 솔직함이거든요. 그 친일파가 호사스럽게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습니다. 그걸 이 영화가 거부합니까? 거부하기는커녕 어마어마한 방식으로 찬미하지 않습니까? 찬미한다는 표현이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을 수긍하지 않습니까? 그걸 수긍한다는 건 엄청난 솔직함, 정직함인 거 같아요. 정성일_ 그런 것이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흥미롭다면, 불편한 대목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허문영_ 불편한 대목들은 대사들이죠, 대사들. 어마어마하게 교훈적인 대사들. 저는 임 감독님께 직접 말씀드린 적은 없는데, 감독님이 < 짝코 >를 말씀하실 때 늘 삭제되어서 아쉽다고 말씀하시는 장면 있잖아요, 그게 뭐냐면 행려 감호소에 있는 TV에서 방영하는 내용인데, 거기서 아나운서의 멘트로 6.25는 열강들에 의한 대리전 이었다, 그걸 말하는 장면인데 그게 짤린 거에 대해 굉장히 아쉬워하시잖아요. 그 말씀을 두세 번 들었는데, 임 감독님은 그게 그 영화의 주제와 직결된 중요한 장면이라고 하셨는데 제 마음 속으로는 그 장면이 없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장면은 너무 설명적이고, 그 장면을 보고 두 사람이 깨닫는 건 말이 안 돼요. 두 사람은 이미 삶 자체로써 충분하고 그리고 상대방의 죽어가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거기에 무슨 새로운 각성이 필요해요? 그런 설명은 없어도 되는데, 말로 꼭 설명을 해줘야 애들은 알아먹어, 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 대목이 되게 많아요. 그 설명이 나올 때마다, 감독님 설명을 조금 줄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말하고 싶어요. 정성일_ 이를테면 허문영 씨께서 새로이 등극시킨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걸작, < 장군의 아들 >에서도 김두한과 김동회가 싸우는 클라이맥스의 순간에 김두한의 친구가 싸움판에 끼어들어 저놈은 일본의 개다, 라고 소리칠 때, 김동회는 나는 맞아죽어도 싸다, 라는 표정으로 일방적으로 맞을 때는 사실 김이 세죠. (일동 웃음) 허문영_ 자기가 생각하기에 이건 젊은이들에게 꼭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할 때, 그 대사는 늘 설명적이 되고 교조적이 돼요. 그때 저 장면이 빨리 넘어가면 좋겠다 싶어요. 정성일_ 우리가 임권택 감독님의 걸작의 시기만 얘기를 했었는데, 임권택 감독님의 68년에서 < 잡초 > 직전에 이르는 영화들, < 삼국대협 >, < 뢰검 >, < 비검 >... 참으로 장점을 말하기 힘든 영화라고 할까, (웃음) 말하자면 주어진 조건이나 상황에서 정말 어쩔 수 없었지만 하여튼 영화를 만들어야만 했던 이 시기의 영화를 바라보는 느낌이 어떻습니까? 허문영_ 그 얘기가 나왔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제가 질문을 드릴게요. 사실 제가 할 말은 특별히 없는데, 정 선배가 연재를 하시기 때문에 제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 선배가 쓰신 <장안명기 오백화>와 <뢰검- 번개칼>을 읽었습니다. 그 글을 보고 필사적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웬만하면 구원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건 구원비평을 넘어서 신을 사도가 방어하듯이 필사적으로 방어한다는 느낌이었어요, 한 사람의 작가를 방어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까지 했어야했나요? <삼국대협>(1972) 정성일_ (잠시 생각) 무언가 이 시기를 비평이 써야 한다는 것은 고통입니다. 아마 그건 허문영 씨께서도 동의하실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하면 더 미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영화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 영화들이 무언가 부서져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제가 본 것은 의도적인 자포자기였습니다. < 망부석 >을, < 법창을 울린 옥이 >를, < 황야의 독수리 >를,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를 만든 감독이었습니다. 심지어 < 삼국대협 >에서 대나무 숲에서의 검술 액션 장면도 그 자체로 어떤 영화적 쾌감이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걸 찍을 수 있는 사람이 한 영화 안의 마지막 장면에서 갑자기 적장 구로다가 명검을 휘두르니까 대결이 시작되자 마자 중국의 외팔이, 일본의 맹협, 조선의 일지매의 칼이 그냥 무 잘리듯 부러져나갑니다. 이건 대결장면 자체를 찍지 않겠다는 선언 같은 것입니다. 검술 영화가 클라이맥스에서 마지막 대결의 순간에 그걸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구로다가 명검을 두 번째 휘두르니까 외팔이의 팬티가 벗겨져서 그걸 추스르며 이 방 저 방을 도망쳐 뛰어다닐 때, 이건 그냥 이 순간을 마치 망쳐버리고 싶은 포기의 의지랄까, 긍정이 아닌 부정 안의 결단이 있을 때, 물론 저는 이것이 < 잡초 >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그때 막바지까지 와있는 임권택 을 보는 느낌이 있었던 거예요. 저는 구원하고자 한 게 아니라 자포자기를 묻고 싶었던 거예요. 이 시기에 제가 건드려보고 싶었던 건 자포자기의 연출이란 무엇인가, 이것도 하나의 개념이 되지 않을까. 한 번도 영화비평이 건드려보지 않았던 문제, 만약 이걸 이론적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면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갔었을 때 수많은 감독들, 이런 관점에서 이만희 를 구원할 수 있고 김기영 을, 또 유현목 을 새로운 자리에로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있는 거예요. 우리는 이 시기가 단지 폭력적인 검열뿐만 아니라 끔찍한 산업적 구조 안에서 영화에 어떤 기대도 없는 구경꾼에 가까운 관객들을 대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대의 감독들이 견디는 와중에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포자기의 연출, 의지가 아니라 할지라도 매우 부정적인 방식으로 말하자면 살아냄이랄까, 그런 것에 관한 하나의 서문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68년에서 79년에 이르는 이 시기의 한국영화를 위해서 누군가는 새로운 비평의 전술이랄까, 모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1960년대가 에덴동산이었다면 1970년대는 지옥의 연대기였습니다. 저는 지금의 영화 학자들이 하는 방식으로는 그 시기를 복원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어떤 실망감이 있습니다. 이건 절대적으로 비평가들의 임무 같은 것입니다. 이건 영화의 담론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영화의 형상이 부서진 것이니까요. 그런 생각이 있는 거죠. 너무 위험한가요? 허문영_ 약간은 이해가 되네요. < 뢰검 >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이건 너무 지나치다. 이 영화를 정 선배가 설명하는 방식도 오마주도, 그리움도, 그 시대에 대한 회복에의 의지도 없는 어떤 특별한 방식의 회상이다, 라고 말했을 때, 이 설명이 성립하려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인격과 기억이라는 완전히 영화 외적인 요소를 동원하지 않으면 전혀 설명이 성립하지 않잖아요. 이 감독의 인격과 영화적 경험을 동원해야지 설명된다면,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이 아니지 않은가, 이 감독의 평전이 아닌가, 이건 이 감독의 삶을 말하기 위해 영화가 끌려온 게 아닌가, 그래서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처음 이 연재를 시작할 때 모든 영화를 처음 보듯이 본다고 했는데, 그럼 처음 보듯이 봐야지 왜 임권택 감독의 개인사와 영적 고뇌와 기억을 영화를 설명하는데 끌어들여서 이 영화를 왜 그의 삶을 말하는 데 쓰고 있는가, 이건 본인 필자의 처음 약속과 다르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정 선배가 지금 하신 말씀은 이건 임권택 개인의 어떤 선택일 뿐만 아니라 그 시기를 살아온 감독들, 어떤 시기에 감독들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종의 패턴이고 양식이었다면 비평적으로 충분히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고 과도하다는 느낌 자체가 없어지진 않네요. 정성일_ 이제 제 질문에 답할 시간입니다. (웃음) 허문영_ (웃음) 저는 그 질문 외에는 정 선배의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는 게 없네요. 어쨌든 임권택 영화뿐만이 아니라 히치콕, 존 포드 영화에도 버려야 할 영화는 버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그걸 다른 평자가 선택해서 내가 못 본 걸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걸 내 눈으로 보기에 버릴 수밖에 없는 영화는 버려야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다 끌어안을 만큼의 힘은 없는 거 같아요. 그거는 인정을 해야 할 거 같고. 그래서 그 시절의 영화들, < 뢰검 >이나 < 장안명기 오백화 >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아요.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웃음) <하류인생>(2004) 정성일_ 알겠습니다. 이건 제 숙제이군요. (웃음) 임권택 감독님이 < 만다라 > 이후에, 혹은 < 씨받이 > 이후에, 혹은 < 서편제 > 이후에 < 취화선 > 이후에 비평가들의 환호를 받고 잘 받아들여진 것 같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비평가들이 가장 오해하고 있는 감독 중 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대표적인 게 최근작, < 하류인생 >에 대한 비평의 실패, < 천년학 >에 대한 비평적 무관심. 말하자면 곁에서 생각하기에 한국의 비평 담론이 임권택 영화에 대해 가장 오해하는 측면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허문영_ 저는 그 오해에 가장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 임권택 감독님 본인이라고 생각해요. 그 스스로 자신의 영화를 < 개벽 >에서 인본주의라고 말한 순간부터 저는 그 오해가 완전히 지배적인 게 되어서, 아직도 그 안에서 못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저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임권택 영화는 한 번도 인본주의적이지 않은 적이 없었고 이 세상의 모든 영화는 인본주의적이에요. 따라서 인본주의는 임권택 영화를 설명할 어떤 키워드도 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임권택 영화는 반인본주의적인, 통상적인 의미로 인본주의라고 말하는 것과 정반대이기 때문에 그가 영화적 순간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고 생각해요. 임권택 영화의 키워드를 굳이 말하자면 저는 반(反)인본주의라고 생각해요. 임권택 감독님 스스로 굉장히 공들여 찍었고 알아봐줬으면 하고 바라는 장면 중 하나인, 춘향이가 곤장을 맞을 때 카메라가 뒤로 휙 빠질 때 그게 인본주의적입니까? 그게 곤장을 맞는 춘향이의 아픔을 카메라가 지금 같이 겪고 있습니까? 전혀, 천만의 말씀이죠. 전혀 아니죠. 인간의 개별적 고통이라는 것에 영화가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걸 외면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거에 매달려서는 영화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본주의라는 틀로는 카메라가 뒤로 빠지는 순간을 볼 수가 없죠. 그게 보입니까, 안보이죠. 뒤로 빠지면서 그 영화는 무엇에 봉사합니까? 판소리의 리듬, 음악적인 어떤 조화의 순간, 아름다움.. 인간의 개별적 사연, 인간의 개별적 드라마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의 순간을 위해 개별적인 고통과 시련을 포기해버리잖아요.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걸 뒤로 밀어내면서, 카메라가 뒤로 빠진단 말이에요. 이 카메라는 반인본적인 카메라에요. 이 카메라를 선택한 사람이 자신의 영화를 인본주의적이라고 설명하는 순간 그걸 듣는 사람은 그런가 생각하고 그때부터 오해의 말들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장승업이 불가마 속에 뛰어 들어가는 장면이 인본주의적입니까? 전혀 아니죠. 장승업은 인본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한 사람이잖아요. 실패한데서 이 영화가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런 인간사와 다른 층위가 뭔가 있지 않을까하는 게 장승업의 최후의 선택이잖아요. 자기가 가마가 되고 자기가 도자기가 되고, 자기가 도자기 표면에 새겨진 그림이 되는 거잖아요, 흙이 되고 어떤 물질이 되는 거잖아요. 임권택의 영화는 끊임없이 자기도 모르게, 인간이 인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지만, 결국 그게 불가능하다면, 대신 어떤 고백을 계속 해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고백의 어떤 시점부터 말 그대로 미학적인, 어떤 비약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까지 결국 자기 영화를 밀고 나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 하류인생 >에서 다시 인간의 얘기로 돌아왔을 때 미학으로 나갈 가능성이 전무한 인간의 이야기로 돌아왔을 때, 그 모든 시간은 죽어버리잖아요. <하류인생>에서 주인공의 시간은 결국 다 죽어버리잖아요. 각성이 없잖아요. 각성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각성이 어떤 비약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죽어버려요. 죽어버리기 때문에 영화가 자막으로 보충하는 거잖아요. 그 자막이 뭡니까? 맑아질 조짐이 보입니다. 맑아졌다는 것도 아니야, 맑아질 조짐이 보인다는 것, 이 드라마가 얼마나 완전히 실패했는지를 이 자막보다 더 철저히 드러내주지 않아요. <하류인생>은 아마 제 생각에는 감독님이 이렇게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데, 만들다보니까, 아, 내가 더 이상 인간의 드라마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냥 깨달은, 스스로 만들면서 알게 된 영화, 그래서 마침내 그 영화를 어처구니없는 자막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는 영화, 마지막 그 몇 문장의 자막이 영화를 덮어버리는.. 그래서 난 이 오해로부터, 영화를 평하는 사람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임권택 감독님 스스로 표명하신 인본주의라는 키워드를 빨리 폐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 본인이 들으시면 굉장히 화를 내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기 때문에 임권택 영화를, 상식적인 의미와는 다른 반인본주의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고 볼 때마다 우리를 새롭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일_ 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비평가들이 정식화시킨다면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가 우리에게 준 영화적 유산이란 뭘까요? 너무 서두른 것일 수도 있지만. 허문영_ (망설이다가) 임권택 의 영화는 컨셉츄얼한 모던 시네마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거 같아요. 한 번도 없었어요. 한 번도 임권택은 컨셉츄얼한 모더니즘에 이끌린 적은 없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임시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임권택의 영화는 체험적인, 경험적인 모더니즘 영화인 거 같아요.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소재에서 시작을 하더라도 모던 시네마가 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그의 모던 시네마가 주는 어떤 감흥은 형식이 주는 감흥이 아니라 생(生)체험이 주는 감흥. 모던 시네마는 사실은 생체험이라는 게 키워드가 아니거든요. 근데 희한하게도 임권택의 모던 시네마는 생체험이 거의 절대적인 요소예요. 그게 임권택의 영화를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요. 스스로 만들면서도 그걸 새겨놓고 그걸 보는 사람에게도 전이시켜요. 아마 우리가 임권택과 같은 땅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걸 좀 더 잘 느낄 텐데, 해외 관객들에게 종종 알쏭달쏭한 영화처럼 비쳐지는 이유가 거기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굉장히 특별한 유형의 특별한 모던 시네마이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임권택이 어떤 형식의 모험을 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하더라도 어떤 미학적인 몸부림으로 느껴지기 이전에 그가 처음부터 자기 머릿속에서 떨어질 수 없는 공동체의 윤리라는 문제.. 일종의 탐구과정이라고.. 뭐 잘, 하나의 몇 가지 키워드로 잡힐 수 없는 세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해요. 공동체의 윤리가 사라졌다, 불가능해졌다라는 얘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데 그래서 모던 시네마는 그 이후에 찍는데, 임권택은 그 이후를 살면서 그 이전을 결코 잊지 못하는 사람.. 잊지 못한다는 자신과 눈앞에 보이는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세상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잖아요. 분열 자체를 그 영화가 계속 담고 있기 때문에 항상 위태위태한, 언제든지 분열 직전, 파열 직전의 모더니즘.. 그래서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 늘 아슬아슬한 느낌. 아슬아슬하게 넘어간다는 느낌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냥 미학적인 선택을 해버리면 되는데, 미학적인 선택에 만족을 못하거든, 그래도 혹시 라는 게 임권택의 영화를 위태롭게 만들고 그래도 정직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자기 분열을 방어하기 위해 장치들이 들어오고, 그 장치들이 혼란스럽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기적적으로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어느 경우든지 위태로운 느낌은 들어요. < 하류인생 >이나 < 천년학 >은 엄청나게 위태롭고 < 취화선 >도 위태롭고, <춘향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점에서 몸으로 버텨낸다는 게 어떤 감독에게도 찾기 힘든 진정한 미덕이라기보다는.. 뭐, 팔자고 운명이고, 그 운명이 그 사람을 만들기 때문에 영화적으로 영화라는 출구로 삐져나온 힘 같은 게 되는, 그런 느낌을 남겨주신 것 같습니다. 정성일_ 잘 들었습니다. 함께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를 생각해주어 감사합니다. 2013년 12월 26일 약간 비가 내린 다음 몹시 바람이 차가웠음 진행, 정리, 사진_ 이지영
보고 난 다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미 불이 켜진 다음이고 화면은 하얀 천을 드러내면서 영화가 끝났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극장은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이미 텅 비어있었다. 그때는 항상 그러했다. 나는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처음 보았을 때의 어리둥절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 숨은 걸작을 발견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무언가 이건 난처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 족보 >를 만든 다음, 이미 < 짝코 >를 만든 다음, 이미 < 만다라 >를 만든 다음에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 안개마을 >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나는 이 말을 단지 연대기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임권택 이 우진필름에서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찍을 때 화천공사에서 <안개마을>을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그냥 ‘충무로 식으로 말하면’ 두 편의 영화는 ‘가께모찌(掛持ち)’로 진행되었다. 한쪽에서는 <안개마을>의 촬영 로케이션 장소에 내려가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의 시나리오를 써가면서 강원도에서 충청도에 이르는 지역을 돌면서 촬영을 시작하였다. (내가 알기로) 이 두 편의 영화는 임권택의 마지막 ‘가께모찌’ 영화이다. 나는 이 방법에 대해서 공격할 생각이 없다. 이건 상황이다. 한국영화는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일정에 대해서 익숙해있었고, 많은 영화들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1982년 그해 가을에서 겨울 첫눈이 내릴 때까지의 이야기이다. 내게 말하기를 “<안개마을>은 첫눈이 내릴 때 즈음 촬영이 끝났어요”라고 했다. 그런 다음 임권택은 < 길소뜸 >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 티켓 >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 씨받이 >를 만들 것이다. 종종 임권택을 하나의 직선처럼 설명할 때가 있다. 그저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일직선처럼 이어지는 선. 앞의 영화가 뒤의 영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진화론적인 작가주의의 믿음. 그때 의도적으로, 이를테면, <나비 품에서 울었다>(와 같은 영화)를, 슬그머니 셈에서 빼고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영화의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무엇이 무엇을 포함하는가, 라는 질문이 있다. 숨어있는 사건. 우리는 선을 따라갈 때 종종 중간에 사라져버린 점을 놓칠지 모른다. 하지만 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구멍이 되어 그 안에 예기치 않은 역량들을 숨겨놓았을 때 우리는 결정체의 서사들 속에서 이리저리 빠져나가버린 새로운 감각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떤 가시적인 비정상성. 예기치 않은 구성. 거의 부서져버릴 지도 모를 지경까지 이르러도 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된 시퀀스들. 영화에서 가끔 그런 순간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나는 지금 힛치콕의 <염소자리 아래에서>를 떠올리고 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견디고 있는 화면들. 그런데도 더할 나위 없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감각. 예기치 않은 반응. 그 안에서 지각의 상황과 청각의 조건이 변화하기 시작할 때 거기서 나는 과거의 관습과의 긴장을 해결하는 새로운 기능의 가능성을 바라보게 된다. 가능성의 조건들. 상황을 열어 놓아야 한다. 상투적인 비평들은 <만다라> ‘이후’를 말하면서 임권택의 ‘완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이 게으른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주어진 영화 모두를 경험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매번 영화를 본다는 문제가 그 유일무이한 중간과정의 상황에 던져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작가주의 담론 안에서 헤게모니화 되지 않은 점. 그때 이 점을 파고 들어가 구멍으로 만든 다음 그 안에서 미처 전개되지 않은 가능성에 대해서 밀고 나가볼 용기가 비평에 있어야 한다. 블록을 무너트려야 한다. 펠릭스 가타리가 1965년 메어리 반스의 사례를 본 다음 한 선언. 그런 다음 여백에 무언가를 써 넣어야 한다. 데리다가 필립 솔레르의 소설을 읽고 난 다음 했던 그 작업. 이건 나의 배움이다. 단순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 임권택의 1980년대 영화들, 그러니까 <만다라>와 <길소뜸> 사이에,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 우스꽝스러운 제목에 대한 (다소 도식적인) 가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라는 제목은 누구라도 임권택 의 영화 목록을 정리하다말고 다시 그 이름을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나는 이 제목에서 어떤 시적인 기분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배경은 늦가을에 시작해서 이른 겨울로 향하고 있다. 아마도 영화가 끝나면 이야기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들, 이영하와 나영희 두 사람이 그렇게 돌아다녔던 강원도와 충청도의 낯선 공간에는 첫눈이 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 임권택은 안성기 와 정윤희 를 데리고 정일성 의 촬영으로 < 안개마을 >을 찍고 있었을 것이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와 <안개마을>은 두 편 모두 시나리오를 송길한 이 썼다. 이 영화는 봄에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단 한 장면에서도 나비를 볼 수 없다. 혹은 봄을 기다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라는 제목은 이 영화의 이야기, 장소, 인물, 에피소드, 미장센, 소도구, 그 어느 것과도 공명현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영화감독 정진우 의 영화사 우진필름에서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정진우는 임권택과 함께 정창화 밑에서 연출부 도제수업을 했으며, 그런 다음 그 둘은 1962년 거의 동시에 첫 번째 영화를 찍었다. 좀 더 정확하게 임권택이 < 두만강아 잘 있거라 >를 찍을 때 “그 영화가 대작이잖아요, 스타들도 많이 나왔고, 내가 첫 영화인데다가 아무래도 아직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으니 영화사에서 진우한테 좀 도와주라고 한 거예요, 그러면 진우가 데뷔할 때 내가 돕는 걸로 이야기를 했죠, 물론 그냥 이야기로 끝났죠, 아무래도 이미 감독이 된 사람이 현장에 와서 있으면 불편하니까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정진우는 그 이듬해 < 외아들 >로 데뷔하였다. 그 대신 임권택은 그 후에 제작사를 낸 정진우의 영화사에서 많은 영화를 찍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영화를 연출했다. (임권택 자신의 말을 빌리면) “가장 안 팔리던 시절”인 1973년 < 장안명기 오백화 >로 시작해서 두 편의 영화 < 연화 >와 < 연화 2 >(1974년), < 맨발의 눈길 >과 < 아내 >(1976년), < 임진왜란과 계월향 >, < 옥례기 >(1977년), < 아벤고 공수군단 >(1982년), 그리고 <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 >(1984년)까지 모두 11편을 만들었다. 정진우 자신도 1960년대에 쉬지 않고 영화를 연출하였다. 임권택과 다른 점은 (아마도) 1967년부터 그는 자신의 영화를 직접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영화사를 차렸고, 그는 자신의 영화를 거기서 연출하였고 그러면서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제작하였다. 이 영화사의 목록에는 김기영 의 < 화녀 >와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가 포함되어 있다. 나는 좀 더 제목을 열거할 수 있다. 김수용 의 < 화조 >. 정소영 의 < 나는 고백한다 >. 그러면서 정진우는 영화감독으로서 자신만의 목록을 만들어나갔다. 그 영화들이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하여튼 자기의 리듬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제작할 무렵 정진우는 그 자신이 제작한 일련의 영화들을 마치 연작처럼 제목을 지었다. 1980년에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를 만든 다음 그 이듬해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그리고 <나비 품에서 울었다>를 임권택이 찍고 있을 때 그 자신은 <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를 찍었다. (하지만 두 편이 동시에 진행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두 편은 모두 나영희 가 주연이며 동일한 계절이 아니다) 그저 제목만을 생각한다면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마치 정진우의 일련의 영화들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제목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제목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영화 안으로 이끄는 입구와도 같은 것이며, 때로는 영화 전체에 대한 일종의 다이어그램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라는 제목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영화를 (다시) 보고 난 다음에도 그렇다. 나는 여기서 영화와 제목 사이의 상호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를 처음 본 다음 느낀 난처함은 단지 그런 이유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느끼는 것은 위험한 혼합의 가능성이 종종 각자의 방법을 독립된 항목처럼 내세울 때마다 서로 분리되는 것만 같은 형태 안에서 매번의 표현이 매번의 다른 방향에서 제시된다는 데서 오는 기괴한 당혹스러움이었다. 내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단순히 서로 다른 것들이 함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상하게도 함께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서로 어떤 관계도 갖지 않은 채 기이하게도 서로가 서로에 대한 돌연한 근접이 계속해서 시도되었다. 이때 영화는 위계질서가 중요해진다. 이제 그것을 저것과 연결할 것인가, 아니면 주변에 놓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위 혹은 아래로 옮길 것인가. 영화에서 배치라는 문제. 이때 이것이 저것과 소통하느냐의 문제는 단지 미학적인 질문이 아니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보고 난 다음 무언가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 영화 안에서 무언가는 소멸해가고 다른 무언가는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 아마 나는 끝내 그 무언가를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스쳐 지나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를 붙든다. 다만 나는 여기서 몇 개의 씬들을 설명하는 대신 불규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그 안에서, 그 씬의 방법 안에 들어가서, 그것을 배열하는 구성의 원칙을 물어본 다음, 서로의 이질성을 존중하면서 재빨리 빠져나올 생각이다. 나는 이들 사이의 기능보다는 다소 제한적으로 그냥 그 씬이 활동하는 흔적만을 볼 것이다. 그 씬의 방법은 어디서 왔는가, 그런 다음 어디로 가는가. 같은 질문의 다른 판본. 어떻게 바깥은 안에 있는가. 끊임없는 분산. 이때 임권택 은 중심 없는 중심에서 어떻게 그것을 동여매는가. 매듭이라는 방법. 그저 인상적으로만 말하는 것을 허락한다면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어딘지 모르게 < 만다라 >의 다른 버전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물론 어떤 장면도, 어떤 이미지도, 어떤 줄거리도, 그런 연상을 불러들이지는 않는다. 나는 단지 임권택 이 연출을 하고, (<만다라>의 각색을 한) 송길한 의 시나리오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다라>는 영화가 시작하면 한 겨울 어느 시골길에서 시외버스가 멈춘 다음 거기서 두 승려가 내리고, 그런 다음 두 번 다시 그 두 사람은 차를 타지 않고 내내 걸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영화가 시작하면 늦가을 강원도 어느 호텔 앞에서 여자가 택시에 올라탄 다음 내내 이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와 함께) 돌아다니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때 둘 사이는 단지 걸어간다, 와 차를 탄다, 라는 동사의 차이가 아니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보는 세상과의 만남의 방식과 차를 타고 달리면서 지나쳐가는 세상과의 관계의 방식의 차이를 생각해야 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주제나, 테마나, 소재나, 인물이나, 대사나, (말하자면 그런 방식의 분류에 따르면) 서로 아무 것도 겹치지 않는다. 단지 한 가지. 둘 사이의 진행방식의 지각이라는 점(의 차이)에서만 동일하다. 이때 여기서 문제 제기를 하는 위상은 우리를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게 만든다. 영화가 세상을 지각하는 두 가지 방법. 신체적 지각과 기계적 지각. 이때 기계적 지각은 우리의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과 운동을 어떻게 연결하느냐, 라는 질문에로 이끈다. 당신은 누구보다도 지가 베르토프가 떠오를 것이다. 그런 다음 요리스 이벤스가 있다. 나는 여기에 장 마리-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이예를 더하고 싶다. 당신은 내가 지금 너무 많은 예를 들고 있다고 염려할지 모른다. 나는 이미 말했다. 원칙을 물어본 다음 그 안에서 다이어그램의 계보를 생각해보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먼저 지가 베르토프의 간격. 따로 떨어진 것은 끝내 서로 하나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 둘 사이에서 그 안에 있는 규칙을 따르는 대신 그 둘의 간격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예외적인 특징의 관계를 끌어내야 한다. 영화가 보여준다는 것은 세상의 틈을 드러내는 예외적인 시간의 이미지들이 행동한다는 뜻이다. (고스란히, 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무엇보다 간격의 영화이다. 거의 일제히, 라고 할 만큼 시퀀스들이 각자의 구성 원칙에 따라서 떨어져 나간다. 임권택은 그걸 이상할 정도로 느슨하게 연결시켜 놓은 다음 그냥 거기서 멈춘다. 심지어 어떤 장면들은 분리가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장면들은 계획 없이 찍혔으며, 많은 쇼트들은 그 장소의 조건에 기꺼이 따르고 있다.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구체적이라기보다는 개념적이고, 종종 어떤 장소들이 초현실주의적인 무대처럼 보이며, 때로는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상황 때문에 부조리하다는 인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말하기 위해서 < 나비 품에서 울었다 >가 진행하는 방식을 고스란히 따라가면서 그대로 그 방법을 복사하듯이 전달할 것이다. 한가로운 첫 장면, 설악산의 늦가을. 호텔 침대에서 막 일어난 여자가 잠시 풍경을 감상한 다음, 한껏 게으르게 그 시간을 누린다. 계절의 기호. 장소의 약속. 이곳에 이 시간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객들이다. 그러나 이 여자가 이상한 것은 이 장소에 혼자 왔으며, 그녀가(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냥 그녀는 한가하게 풍경을 본 다음 테라스에 앉아서 무언가를 생각한다. 자동적인 약속. 아마도 이 영화는 그 사연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여자의 이름을 한참 뒤에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아는 사람은 이 주변에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며. 자기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호명하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녀 스스로 자기의 이름을 말하기 전에는 나도 그저 그녀라고 부를 것이다. 체험된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기. 아마도 차례로 나타나게 될 장애물.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지식? 그렇다. 우리는 아직 이 영화의 목표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지 그녀에서 멈추지 않고 동시에 그 경로 자체에 대한 탐색이 될 것이다. 이때 이걸 어느 한 쪽의 이야기라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 순간 이 장애물들은 오로지 그녀이기 때문에 미리 결정지어진 장애물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어우얼바하는 매우 흥미로운 가설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율리시즈를 방해하는 괴물들, 마녀, 재난, 하여튼 그 모든 장애물들은 오로지 그가 율리시즈이기 때문에 그 앞을 가로 막고 나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그들은 율리시즈를 설명하는 존재들이다.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우리를 막아 나서는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만들어낸 장애물이다. 세상의 일부였던 내가 부분들 사이의 연결의 계기가 될 때 갑자기 세상은 마술적인 질서를 새로이 만들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 짜여지는 경우의 수. 무엇이 무엇을 대체한 것일까. 관점의 새로운 이동.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분리. 아마도 이것을 임권택 은 < 만다라 >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그는 이 분리를 다시 한 번, 그러나 다른 지각의 간격을 통해서 반복한다. 그저 다짜고짜, 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시작.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누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지, 혹은 만날 것인지, 누가 그녀와 동행할 것인지, 아니, 그 모든 것보다 먼저 여기가 어디인지, 미처 아무 것도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바깥으로 나온 다음 호텔을 나서서 그녀가 학동으로 가자고 했을 때 모두들 이 장소에 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거절의 제스처. 그때 그 거절은 장소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무언가 끊어진 것을 다시 이으려는 노력. 그런데 무엇이 끊어진 것일까. 그것을 다시 이어놓을 때 그녀에게는 어떤 이익이 돌아오는 것일까. 그녀가 처음 택시를 잡으려 들자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는 운전기사들은 고개를 가로 저은 다음 그녀 곁을 떠난다. 그녀는 지금 갈 수 없는 곳에 가려는 것이다. 가능하지 않은 장소. 아마도 지금 그녀를 태운 기사는 거기가 어딘지 잘 모르기 때문에 엉겁결에 태웠을 것이다. 택시 엔진에 문제가 생기자 정비소에 잠시 머물렀을 때 여기서 만난 청년은 운전기사에게 거기가 얼마나 먼 곳인지 아느냐고 핀잔을 준 다음 그 택시비로는 어림도 없다고 충고한다. 이때 우리는 이 장소가 이 이야기의 영감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두 번째 등장인물. 그녀의 여행을 위해서 운전하며 함께 목적지까지 가게 될 남자. 택시운전기사는 그녀의 길 안내를 하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그녀의 동선이 될 것이며), 그녀의 말 상대가 될 것이며, (그러므로 그녀의 상대 쇼트(reverse shot)가 될 것이며), 그녀에 관한 지식의 일부를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때 운전기사는 처음에는 택시라는 자동차와 거의 동일한 사물처럼 다루어진 다음 다시 자기의 인격을 얻게 될 것이다. 두 가지 단락. 첫 번째, 언제 운전기사는 택시로부터 분리되어 자기의 인격을 갖게 될 것인가. 두 번째, 그런 다음 어떻게 그녀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될 것인가. 아마도 그때 그녀는 그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혹은 반대로 그녀 아니면 그는 상대방의 세계로부터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녀가 택시에 타자 운전수는 오로지 그녀를 위해 라디오를 튼다. 이때 라디오에서는 영화 < 러브 스토리 >의 사운드 트랙을 편곡한 선율이 흐른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던 에릭 시걸이 쓴 베스트셀러를 아서 힐러가 1970년에 만든 미국영화. 하버드 법대를 다니던 백만장자의 아들과 프린스턴 대학교 여대생의 ‘러브 스토리’. 그 둘의 사랑은 여자의 불치의 병으로 끝나고, 남자는 눈 내린 센트럴 파크의 공원에서 “바하와 비틀즈와 나를 좋아한 다음 29살에 죽은 여자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을까요”라고 이야기를 시작한 다음 긴 플래시백을 하고 나서 그렇게 거기서 끝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러브 스토리>로부터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영화이다. 게다가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은 이 영화와 거의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영화가 다른 영화에서 이미 들었던 ‘지나간’ 영화 음악을 다시 들을 수는 있다. 그때 이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렇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라디오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마치 하나의 리듬처럼, 영화 바깥의 음악을 끌어당기고 있다. 이때 이 영화는 라디오에 가깝게 다가간다. 영화가 때로 미디어에 다가간 다음 자신이 그 자체가 되기를 원할 때가 있다. 더 할 나위 없는 예.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 비디오드롬 >. 마치 이 영화는 종종 라디오의 사연처럼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임권택 은 영화를 진행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음악과 풍경의 교차. 달리는 자동차. 그녀는 지금 풍경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녀는 여기에 이미 와 본 적이 있는 것일까.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영화는 대답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고의적이리만큼 그녀의 마음을 불투명하게 만든다. 여자는 풍경을 쳐다보다 말고 생각났다는 듯이 운전수에게 이 영화를 미국에서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칠년 동안 미국에 있다가 막 돌아왔다고 덧붙인다. 이 대답을 듣자마자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구태여 셈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 <러브 스토리>를 보았다면 이 여자는 한국에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영화에 거의 관심이 없었거나(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아니면 영화를 볼 수 없었을 만큼 바빴을 것이다. <러브 스토리>는 그 이듬해에, 그러니까 1971년에, 서울 국제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여자는 조금 전에 미국에 칠년 동안 갔다 왔다고 말했다. 지금은 1982년이다. 그녀는 1975년에 한국을 떠났을 것이다. 아직 세상에는 비디오가 없었고,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극장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 가지 가설이 더 남아있다. 그녀는 지금 그냥 떠오르는 대로 거짓말을 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라는 지각. 그것으로 어떻게 건드리고 싶은 것일까. 라디오라는 청각기호. 그것으로 무엇을 끌어당기려는 것일까. 물론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는 그녀가 옛 애인을 찾아가는 것이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잡아 이끄는 것일까.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이 그녀를 가로 막아 나서는 것일까. 그들은 마치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각자의 역할. 그들 각자의 은유. 택시가 고갯길을 넘어 학동에 다가가려 할 때 그들을 가로 막아나서는 사람은 그저 태워달라는 큰 짐을 옆에 낀 영감이다. 택시는 그냥 지나치려 하지만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듯이 자동차는 고개에서 뒤로 미끄러지고, 그걸 쳐다보던 영감은 학동까지 가는 지름길을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과 동행이 된 영감은 여행을 함께 하기에 좋은 동반자가 아니다. 이미 올라탄 영감의 보따리에서 생닭이 푸드덕 거리기 시작할 때 무언가 여기에는 어딘지 불쾌한 초현실주의적 기분이 감돌기 시작한다. 이때 무례한 영감과 그가 들고 탄 생닭은 무언가 그녀의 이 여행에 대한 기대를 깨트리고 있다는 인상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킨다. 무엇이 무엇을 망쳐버리고 있는 것일까. 마치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기분. 그걸 단지 환상 안으로 침입한 실재라고 간단하게 말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여기에는 정반대로 추상적인 미로 안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바깥과 안의 비대칭의 탈구. 그녀는 무언가를 음미하고 싶어 하지만, 그러나 정확하게 그 만큼 무언가를 일깨우려고 방해하는 자들의 노력. 그런 다음 듣게 되는 두 번째 음악. 다시 두 사람이 되자 택시운전기사는 그녀에게 말한다. “라디오를 틀어드릴까요?” 라디오를 켜자 그룹 이글스(Eagles)가 부른 <호텔 캘리포니아(Hotel California)>가 흐른다. 1976년의 노래.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 첫 번째. 무언가 이 영화의 선곡에는 동시대라는 느낌이 없다. 마치 여기에는 1970년대의 어디론가 시간적인 추락을 했다는 인상이 있다. 혹은 저 멀리서 다시 거슬러 올라온다. 두 번째. 처음 <러브 스토리>의 선율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여기서 음악이 영화에 무드를 제공한다고 얼핏 생각했다. 내가 틀렸다. <호텔 캘리포니아>는 지금 이 영화의 무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 혹은 서사에 어떤 모티브도 제공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이야기의 진행과 대칭이 되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호텔 캘리포니아>는 무엇을 위해서 흐르는 것일까, 혹은 누구를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라디오는 마치 자율적인 행동을 개시한 등장인물처럼 그녀의 마음 따위를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의 선곡을 시작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렇게 자꾸만 사슬에서 영화의 여러 기호들이 풀려나간다. 두 번째 오류 추론. 나는 학동에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곳에 끝내 도착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처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택시는 학동에 도착했다. 이미지만을 생각한다면 학동 장면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서 가장 인상적인 시퀀스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에서 가장 동떨어진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학동(鶴洞)이라는 지명을 들었을 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고즈넉한 옛 마을의 이미지. 그러나 여기는 탄광촌이다. 이제까지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던 것과 대조적으로 사방이 온통 시커먼 색으로 가득 차 있고, 거기서 살고 있는 가난한 아이들의 무리가 보인다. 그녀는 여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내내 자신이 떠도는 모든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기표이다. 그녀가 찾는 남자는 여기까지 어떻게 흘러들어온 것일까. 그러나 사무실에 찾아갔을 때 그녀는 그 남자가 불미스러운 일로 파면 당했다, 는 말을 들을 뿐이다.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알지 못한다. 그는 자꾸만 그녀로부터 달아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그의 행방을 멀리서부터 하나씩 다시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 더 이상한 점. 학동에 도착했을 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하여튼 여기서 머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그녀가 (이 곳에 단 하나밖에 없다는) 여인숙 앞을 서성거리는 장면만을 찍은 다음, 영화는 더 이상 그 앞에서, 그 안에서, 그 주변에서 진행되지 않는다. 그녀는 그날 밤 그 여인숙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인숙에 머무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 어떤 상상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이, 마치 거의 피하듯이, 영화는 단 한 쇼트도 이 장소에 할애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날 저녁 그녀는 낮에 헤어진 택시 운전기사를 다시 만난다. 그런 다음 그에게 남자가 범우사에 가서 스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건 우리가 사무실에서 들은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걸 그녀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왜 그녀는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때 나는 이 영화가 지금부터 남자의 자리를 놓고 일종의 수건돌리기와 유사한 게임을 시작한 것처럼 여겨졌다. 처음부터 빈자리. 그런 다음 차례로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 그 무언가가 동원되기 시작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거기엔 원래 아무 것도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목표는 사라지고 이 여행은 중단될 것이다. 그때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단지 그녀의 말뿐이라는 것을 당신은 환기해야 한다. 말이 채우는 공백. 말 속의 인물. 역설적으로 그녀와 그녀의 말 사이에서 정작 탈락되는 것은 그 대상으로서의 남자 그 자체이다. 도식적 설명. 환상과 상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이상한 전도가 보여주는 역설은 이때 그녀는 사실상의 빈자리에 지나지 않는 그 남자의 뒤에 숨어서 자기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는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 두 번째 날. 그녀와 운전수는 범우사를 가기 위해 강원도를 떠나서 충청도로 옮겨간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서 지역적 분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임권택 으로서는 드물게 지리적인 지표들의 모습도 거의 대부분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경계를 넘을 때 임권택은 작은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튿날 그녀가 운전수 옆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좀 더 가까워진 거리. 단지 거리만이? 이때 그 자리가 앞과 뒤에서 옆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함께 계산에 넣어야 한다. 평행의 자리. 새로운 관계의 시작. 이날 운전수는 라디오를 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 그녀와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그 어떤 기호도 그 둘 사이의 대화에 개입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듯이, 그는 라디오를 켜지 않는다. 우리는 첫날 라디오를 켠 사람이, 그녀(와 우리)에게 <러브 스토리>의 음악을 들려준 사람이, 운전수였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택시에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빈자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하지만 항상 예기치 않은 이들이, 그 여행 안으로 끼어든다. 그녀가 뒷좌석을 비우자 마치 그 자리가 비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문득 길 위에 선 스님이 그 차를 멈춰 세우고 동승을 부탁한다. 그런 다음 잠시 후에 무례하기 짝이 없는 통기타를 든 청년과 그의 애인이 더불어 남은 자리를 차지한다. 뒷좌석은 가득 차고, 택시는 과밀해진다. 그 안에서 청년은 자기 애인의 바지 안에 손을 넣고 성적인 제스처를 취한다. 이때 나는 그녀를 앞좌석으로 보낸 다음 뒷좌석을 비워놓은 것이 단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다. 이 자리의 핵심은 운전석 앞에 매달려 있는 백미러에 있다. 스님과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뒤에 탔을 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구태여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거울을 통해서 보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기능적으로 그녀와 운전수가 더 이상 친밀해지는 것을 그 자리에서 중단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들은 왜 나타난 것일까. 이 질문이 이상하게 여겨질지 모른다. 우리는 이 여행이 그녀가 자기의 과거를 찾으러가는 여행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질문을 바꿔보자. 그들은 왜 그녀가 과거로 가는 시간 여행 안에 끼어들었는가. 이 질문이 성립된다면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반대의 방법으로도 던져볼 수 있다. 왜 그녀는 지금 그들 각자의 여행길을 동시적으로 하나로 묶는 순간을 마련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우연의 계획이라는 네트워크에 대해서 말하는 중이다. 물론 이 계획은 임권택 의 배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대방향에서 바라보면서 그녀는 범우사에 가기 위해서 가던 길에 스님과 통기타 청년을 만난 것이 아니라 스님과 통기타 청년을 태우기 위해서 범우사에 가고 있었다고 사후적으로 설명하면서 배치에 관한 다른 의미의 네트워크를 건드려볼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스님과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은 인내심을 갖고 그 자리에서 오늘 여기를 ‘우연히’ 지나가게 될 그녀를 기다렸다고 말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말하자면 순환의 네트워크. 이 순환이 그녀의 과거에로 향하면서 만들어져가는 이야기라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때 그녀가 만난 스님과 그 곁의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은 길 위의 우연이라기보다는, 또는 우연이라 할지라도, 뒷좌석에 앉아있는 그들은 그녀의 그 남자와의 시간 속에서 불러온 과거 안의 미래와 과거의 과거 그 어느 순간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그 남자가 불교에 귀의하고 스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소 서둘러 보자. 그녀가 잠시 후 범우사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단 한 번 그 남자와의 과거를 짧게 플래시백으로 회상한다. 이때 그녀가 떠올리는 시간은 그 남자와 모닥불 캠프에 와서 텐트를 치고 보낸 그날 밤이다. 아마도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의 그 나이, 그 복장. 하지만 영화는 과거의 시간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스님이 먼저 내리고 그 택시를 떠나자, 마치 운이 다하기라도 한 것처럼 택시는 고장 나고, 뒤이어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그 차를 떠난 다음, 운전수는 도리 없이 자동차를 수리할 부품을 구하기 위해 여자를 혼자 남겨 놓고 떠난다. 저녁이 찾아오고,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차 안에서 혼자 기다리는 여자. 깊은 밤이 된 다음 돌아온 운전수는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수리할 정비차가 이곳에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 낯선 곳에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녀와 운전수에게 서로 더 다가갈 상황을 계속해서 만든 다음 반대로 이 상황을 방해하는 인물을 정확하게 그 순간에 제공한다. 그녀와 운전수가 비를 피해 한 밤중에 낯선 집의 작은 방에 머물 때, 그들 자신만의 시간을 시작하기 위하여 막 저녁을 먹으려고 할 때, 비를 피해 이 방에, 낮에 헤어졌던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이 다시 찾아온다. 망친 시간. 하지만 무엇을? 임권택 은 단지 그 둘 사이의 시간만을 망치지 않는다. 저녁을 먹은 다음 문득 통기타 청년은 기타를 들고 마치 답례라도 하듯이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가 두 번째 날 듣게 되는 유일한 노래이다. 호세 펠리치아노(Jose Montserrate Feliciano Garcia)의 <레인(Rain)>. 청년은 누군가를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다소 감동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의 목소리를 음미한다. 이때 (아마도 이 집의 주인으로 짐작되는) 옆방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서 이 노래로부터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한 표정을 지으면서 “잠 좀 잡시다”라는 말로 이 분위기를 망쳐 놓는다. 임권택은 이 여행에 어떤 무드가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확하게 그 무드는 그녀가 되찾고 싶어 하는 과거 속의 시간 그 어딘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억의 어떤 기호들이다. 왜 그걸 망치는 것이 중요해진 것일까. 이상한 장면. 그녀와 통기타 남자와 여자, 운전수는 (지금 열거한 순서대로) 차례로 누워서 불을 끈 다음 잠을 청한다. 상상하기에 따라서 몹시 외설적인 동침. 통기타 청년은 이불 속으로 그의 애인을 노골적으로 만지기 시작하고 그들은 곧 성적인 관계를 가질 것이다. 이때 이 둘이 애무를 시작하자 운전수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버린다. 이제 통기타 청년과 그의 애인, 두 사람과 그녀 사이에는 아무런 방어막도 없다. 그 두 사람은 망설임 없이 성적인 관계를 나누기 시작한다. 두 가지 이상한 점. 첫 번째. 이때 갑자기 이 상황이 비현실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의 누워있는 얼굴을 보여줄 때 상상선을 넘어간다. 나는 임권택 의 영화를 보면서 상상선이 거의 철의 규칙처럼 지켜져 온 것을 보아왔다.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그의 일흔 여덟 번째 영화이다. 이 데쿠파주는 그녀가 성 관계를 나누는 통기타 청년과 그의 애인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시선을 맞추기 위한 것도 아니다. 기술적으로만 설명하면 이렇게 찍기 위해서 그들을 반대 방향으로 다시 눕혀야 한다. 혹은 그녀가 반대방향으로 다시 누워야 한다. 말하자면 여기서 넘어간 상상선을 일부러 그렇게 찍어서 선의 체계 바깥으로 나간 것이다. 이때 이 넘어간 상상선이 기이하게도 두 남녀의 성적인 행위와 등을 돌린 그녀 사이에 마치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선을 그어서 저 쪽으로부터 이쪽으로 넘어올 방법이 없다는 듯웰옛錚?방어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상한 점. <나비 품에서 울었다>에는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녀가 그 남자를 생각하는 단 한 번의 플래시백이 나온다. 그때 그 남자는 텐트 안에서 무리하게 그녀의 옷을 벗긴 다음 성적인 관계를 갖고 싶어 한다. 그녀는 저항하며 가까스로 팬티만을 입은 채 자신의 젖가슴을 드러내고 텐트 바깥으로 나왔다가 주변 사람들 때문에 다시 돌아 들어간 다음 화가 나서 그에게 거절의 이유를 설명한다. 남자는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녀가 그 남자에게 떠오르는 (영화 속의 유일한) 기억은 섹스(에 대한 시도의 실패)이다. 그런데 이 순간, 섹스에 관한 광경이 바로 그녀 곁에서 펼쳐지고 있는데도, 그녀는 그걸 떠올리지 않는다. 작동하지 않는 플래시백. 기억의 지연. 그녀가 이걸 떠올리는 건 다음 날 범우사에 가서 한낮에 그 절에 놀러온 젊은 커플들을 보면서이다. 영화에서 작동하지 않는 기억장치. 그렇다면 그때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는 클로즈업의 표정 이미지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만일 그 표정에서 시간을 볼 수 없다면 우리가 읽어야 하는 감정의 기호들은 그녀 뒤편의 섹스로부터 무엇을 끌어내고 있는 것일까. 종종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는 분명한데도 무엇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 과도하리만큼 불투명해진다. 세 번째 날. 그녀와 운전수는 범우사로 간다. 그리고 여기서 그녀는 운전수에게 자기가 여기 왔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오현주라고 말해준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갑자기 둘 사이에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다음 동일한 상황의 반복. 남자는 이 절을 이미 떠난 다음이고, 오현주는 다시 운전수와 함께 그 남자를 찾아서 이 여행의 선을 계속 연장한다. 이 날도 장소를 이동하는 중에 한 남자를 만나고, 남자는 운전수에게 고장 난 자신의 자동차의 수리를 부탁한다. 잠시만 멈춘 다음 약간의 셈. 세 번의 반복. 매번 오현주(와 운전수)는 자신들을 방해하는 누군가를 길에서 만난다. 매번 그 남자는 거기에 없다. 반본 안의 차이. 오현주는 운전수에게 그만큼 다가가고, 그 만큼 방해를 받는다. 그때 이상한 것은 오현주가 찾으러 다니는 남자의 점에서 우리는 그들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삶의 선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현주의 말에 따르면) 폐병을 앓던 그 남자가 왜 갑자기 실종되었다가 탄광촌에 갔는지 우리는 어떤 단서도 거기서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 다음 범우사에 들어가서 스님이 되었다는 것과 탄광촌에서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났다”는 사실 사이에서 느끼는 당황스러운 인상은 그 둘이 전체 안의 부분이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기에 실패한 데서 오는 그 어떤 심연의 자리, 혹은 그 안의 한계와 부딪치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여행은 앞으로 밀고 나가면 나갈수록 미로 안에 들어간다기보다는 반대로 점점 더 신기루에 의해 채워지는 텅 빈 비일관성과 마주칠 따름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에 접근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판본. 같은 말의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드는 것일까. 이때 둘 사이의 간극은 오현주의 두 개의 시간에서 오는 엇갈림이다.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 사이의 틈새로의 여행. 그 여행을 하나로 묶는 것은 반대로 차례로 현재의 칸막이를 넘어가는 오현주와 운전수 사이의 성적인 이끌림이다. 우리는 이미 둘째 날의 비오는 밤에 (통기타 청년과 그 애인에 의해서) 망쳐진 그들만의 시간을 보았다. 세번째 날 오현주와 운전수는 함게 금정여관에 머물면서 거의 키스하기 직전까지 가지만 갑작스럽게도 검문이 있다는 핑계로 (그들의 안전한 방어막이었던 방문이 열리고) 임검경찰이 이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이들의 키스 사이에 끼어들어 그 둘 사이를 (이야기의 차원에서) 찢어놓는다. 나는 이때 이 방문이 반투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아마도 그 남자를 만날 때까지 오현주의 동선과 운전수의 동선은 겹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불확실한) 의심. 나는 왠지 < 나비 품에서 울었다 >에 원래는 진행할 생각이었다가 중간에 그만 둔 대목이 있다는 상상을 멈출 수 없다. 이상할 정도로 수많은 쇼트들이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있는 어떤 잠재성을 놓아둔 채 그냥 거기서 머뭇거린다는 인상을 줄 때가 있다. 가능한 사건. 그 안에 담긴 가능한 행위.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가능한 감정. 물론 이런 쇼트를 잘못 건드리면 그때부터 소설이 된다. 나는 그 위험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쇼트는 하나의 증거이다. 오현주와 운전수가 이제 그 남자를 만나러 강 위에 놓여진 다리를 건넌다. 그 다리를 건너기 직전 <나비 품에서 울었다>로서는 이례적으로 커다란 클로즈업의 쇼트가 나온다. 그 장면이 쇼트이기 때문에 안보고 싶어도 안 볼 수가 없다. 이 남자는 아마도 사진작가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리들과 함께 이곳을 걸어서 지나가고 있다. 쇼트의 진행은 단순하다. 그러나 이상한 자리에 이상한 순간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자리? 잠시만 거슬러 올라가보자. 오현주는 지금 막 강원도의 경계를 넘은 다음 충청도에 와서 그 남자가 있다는 (태안반도에 있는) 청산까지 왔다. 그리고 그 신문사 앞에서 거의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전수가 그를 부르러 간 짧은 순간에 오현주는 그 남자를 만나는 상상에 잠긴다. 그 남자의 첫 마디. “오랜만이군” 대답. “그렇군요” “우리 칠년 만인가?” “그래요” 그런 다음 오현주가 질문한다. “결혼은 하셨겠죠?” “아니, 현주는?” “좋도록 생각 하세요”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군” “저도요” 그러나 우리는 이 장면이 오현주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나가던 자동차 소리에 문득 깨어나면서 깨닫게 된다. 이때 이 모든 대화가 오현주의 환상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 대화에서 가장 이상한 부분은 오현주가 그 남자에게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의 결혼 여부라는 것이다. 오현주는 그 남자와 의 결혼을 허락받기위해서 칠년을 기다린 다음 미국에서 여기까지 온 것일까. 그런 다음 더 이상한 반응. 질문에 부정을 하자 오현주는 만족한 표정을 지은 다음 그 남자의 반문에 대해서는 좋도록 생각하세요, 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잠시의 틈새 사이로 들어온 찰나의 상상. 이때 그녀의 환상이 재구성하기를 바란 상상적인 상황은 누구라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으로 인하여 그 환상의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요구가 원하는 지위가 무엇인지 그 상황에서 달아나버린다. 왜 오현주는 자기의 환상 안에서조차 자기의 요구에 대한 대답과 타협하지 않는 것일까.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오현주가 환상에서 깨어나자 그 환상의 자리에 동일한 자세로 뛰어온 운전수는 (그가 왜 동일한 자세로 그 자리에 왔는지를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불길한 표정을 지은 다음 이 곳에 없지만 그 남자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면서 그 곳에 가기를 망설이는 말을 한다. 내가 지적한 쇼트는 그런 다음 등장한다. 영화가 갑자기 무드를 바꾼 다음 추락의 신호를 보냈을 때 마치 어떤 절단이 거기 있는 것처럼 그 쇼트가 등장했을 때 누구라도 거기서 어떤 방향 전환의 기호를 읽을 것이다. 하지만 그 쇼트는 그런 다음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설혹 그 장면을 찍었다 할지라도 편집실에서 그 쇼트는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얼룩처럼 그 쇼트는 그 자리에 그냥 남아있었다. 끝내 설명되어지지 않는 이 클로즈업은 우리에게 무엇의 소재를 알려주기 위한 것일까. <나비 품에서 울었다>는 마치 환상의 얼룩을 그냥 남겨 놓음으로써 영화의 기억을 보존하려는 방법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자리에 그 쇼트들이 그렇게 머물러 있다. 결국 마지막 시퀀스. 오현주의 환상이 그만 깨져버렸을 때 누구라도 그 남자가 환상 속에 머물러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물론이다. 우리는 이미 오현주의 여행에서 그 남자의 자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걸 눈치 챘다. 점점 희박해지는 기억의 자리. 끊임없이 차에 동승하기를 희망하는 인물들은 이미 그걸 경고하기 위하여 그 빈자리를 차지한 다음 도착을 조금이라도 미루도록 지연시킨다. 말하자면 이직 셈이 끝나지 않은 리비도의 경제학이 취하는 부채의 바리케이드. 왜 통행은 제한되는가. 그 남자를, 이제는 비루해져버린 그 남자를 그저 멀리서 보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라디오가 무언가를 대답한다.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가 1980년에 발표한 음반 <바보 같은 행동 (Foolish behaviour)> 두 번째 실려 있는 노래 <패션(Passion)>. ‘바보 같은 행동’, 그리고 ‘열정’. (어쩌면 ‘수난’?) 하지만 당신은 이 음반의 제목과 노래가 서로 묶이면서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설명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부터 시작될 시간을 경고하는 것인지 서둘러 결정하면 안 된다. 오현주가 이제 미국에 돌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운전수는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아 오겠냐”고 반문한다. 그게 누구냐고 반문하자 “최순호라는 남자”라고 대답한다. 물론 최순호는 운전수의 이름이다.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것은 작별밖에 없다. 사실상 영화는 여기서 끝났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갑자기 영화가 이야기 바깥으로 나와 버린다는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끝나야 할 데서 끝나지 않을 때 그것은 이후, 가 아니다. 새로운 가정. 말하자면 재구성. S#1 S#2 S#3 S#4 S#5 여기서부터 오현주와 최순호, 그 두 사람이 호텔에서 각자의 방에 머물 때, 마치 이 영화에서 이 시퀀스 전체가 이야기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온 다음 무언가 처음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진행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 그렇다. 이 영화가 막 시작했을 때의 장면으로 돌아간 다음, 미처 그 호텔을 떠나기도 전, 그 남자를 찾으러 가기도 전, 그러니까 오현주가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의 거의 그 순간 언저리 어딘가에서 다시 맴돌기 시작한다. 의미의 위치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먼저 임권택은 둘을 갈라놓는다. 오현주의 방에서 최순호를 내 보낸 다음 (S# 1) 최순호는 자기 방으로 할 수 없이 돌아온다. (S# 2) 다음 쇼트. 오현주의 샤워 장면. (S# 3) 이 변덕스러운 전환. 이때 이 장면이 현실적인 대구인지 아니면 최순호의 방 안에서 그의 뇌 속에서 진행되는 잠재적인 장면인지 이상할 정도로 모호하다. 그런 가정을 끌어내는 카메라의 좀 더 분명한 제스처는 마치 최순호가 그녀를 훔쳐보기라도 하듯이, 그 상상의 시선을 따라가듯이, 쏟아지는 샤워물길을 따라 과도하게 다가간 카메라가 오현주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 살결 위로 핥듯이 따라 내려온다. 사라진 욕실의 마스터 쇼트. 제 방으로 돌아온 최순호는 망설이다가 방문을 나선 다음 오현주가 머무는 208호실 문 앞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S# 4) 이때 작동하는 것은 환상의 안으로의 향유일까, 아니면 그 바깥에로의 접근일까. 이 위험한 움직임. 이 쇼트는 욕실 장면 바로 뒤에 따라오기 때문에 두 가지 양상, 두 가지 회로, 두 가지 선택 사이에 놓이게 된다. 하나는 두 개의 쇼트 사이의 시간적 동시성에 따라 샤워하는 오현주의 방 안으로 거의 유혹에 이끌리듯 빨려 들어가는 최순호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상상하는 장면에 사로잡힌 채 문 저편의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 안에 침입하는 것이다. 상상적인 전체에 잡아먹힐 것인가, 아니면 육체적인 사건에 사로잡힐 것인가. 최순호는 문 앞에서 저편의 소리를 들으면서 서 있다가 문 열쇠 고리 안으로 그 안을 들여다보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다음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고 되돌아온다. (S# 5) S#6 S#7 S#8 자기 방으로 되돌아온 최순호. 세 가지 기호. 최순호는 자기 방으로 되돌아올 때 자기 방문을 닫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반쯤 열린 문. 바깥으로 벌어진 방의 틈. 그 누군가를 초대하기 위해 배려한 듯한 통로. 그런 다음 최순호는 침대 위에 엎드려 눕는다. 마치 침대와 섹스를 나누는 듯한 그 자세. 몸이 무언가를 향하여 자기를 쓰고 있다. 상형문자와도 같은 제스처의 문장들. 그러다가 최순호는 수화기를 든 다음 교환에게 208호실을 연결시켜 달라고 한다. 그는 더 이상 망설임을 참지 못한다. 만일 그 전화를 받았다면 그는 도대체 무엇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교환은 금방 그 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세 가지 가정. 오현주는 벌써 잠든 것일까. 그렇다면 침대 곁에 있는 전화를 받지 못할 만큼 깊이 잠들어버린 것일까. 오현주는 아직도 샤워를 마치지 않은 것일까. 마지막 가정. 만일 오현주가 방에 없었기 때문에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대답. (S# 6) 오현주는 지금 최순호의 열린 방문 앞에 서서 그가 자기에게 시선을 돌리길 기다리는 중이다. 이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최순호의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치 어떤 입구를 지시하기라도 하듯 매달려 있는 이상하리만큼 불길한 베일이다. 마치 무대와 같은 장치. 만일 이 장면의 고정점이 최순호라면 오현주가 그를 앞지르기 시작한다. 반쯤 열린 이 문 안으로 들어온 다음 그 문을 잠그고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이중자물쇠의 열쇠소리를 채우는 클로즈업. 오현주의 손의 활동. (S# 7) 이상한 대사. “여긴 조용해서 좋아요, 살인이 나도 쥐도 새도 모를 거예요” 지금 두 사람은 동반자살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섹스에는 어딘가 모르게 죽음의 그림자가 감돈다. (S# 8) S#9 S#10 S#11 S#12 S#13 S#14 S#15 S#16 그런 다음 마치 장면들은 회상 안에 빠져든 것처럼 연속성 없는 단편들의 씬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억 없는 추억. 이것이 팽창된 환상인지, 반대로 수축한 시간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사건의 시간들은 지금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갑작스럽게 두 사람이 야외 벌판에 놓여진 택시에서 섹스를 나누는 장면으로 옮겨간 다음 (S# 9) 전혀 다른 공간인 일본식 적산가옥에서 아침에 일어나 다시 섹스를 나누는 장면으로 이동한다. (S# 10) 이때 의도적으로 임권택 은 이 시간이 아침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까치들의 장면의 인서트한 다음 그걸 오현주가 보게 한다. 다시 한밤중에 호텔에 택시가 들어선 다음 (S# 11) 방 안에서 오현주는 최순호의 신발을 벗긴다. (S# 12) 이 장면을 임권택은 의도적으로 침실로 들어가는 방문 바깥에 카메라를 세워두고 영화의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만든다. 이때 이 프레임은 처음 오현주가 최순호의 방 안으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보았던 베일의 반복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런 다음 우리가 마주치는 검은 페이드이다. (S# 13) 이 갑작스러운 신호. 무엇이 무엇에로? 마치 자기 뒤에 아직 세계가 있는 지 돌아보는 것만 같은 이 이상한 단절. 그런 다음 싸구려 욕실로 보이는 곁에서 시작해서 오현주와 최순호의 섹스가 이어지는 무아지경으로 옮겨간다. 이때 이 이부자리는 명백히 이 장소가 신발을 벗겨주던 그 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S# 14) 그런 다음 다시 페이드. (S# 15) 나는 이 장면을 순서대로 몇 차례를 보았지만 아직도 이 칸막이의 빗금 친 지층을 넘어가기 힘들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다음 장면. 마치 맨 첫 장면의 호텔로 되돌아온 것만 같은 장면. (S# 16) 원래로 돌아온 영화의 리듬. 처음으로 돌아온 장소. 나는 처음에는 이 장면이 영화 전체가 오현주의 회상을 알리는 출구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틀렸다. 깨어난 오현주 저 편의 침대에는 최순호가 아직 잠들고 누워있다. (주의. 약간의 스포일러) 전화하는 오현주를 엿들으면서 우리는 그녀가 유부녀이며, 남편이 잠시 동안 집을 비우자 강원도에 혼자 온 것이며, 그녀가 생각지 않았던 이른 일정으로 남편이 돌아오자 황급히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폭력적인 환상의 연기의 끝. 잠시 동안의 시간의 연출. 미처 우리가 어리둥절해서 기억의 셈을 끝내기도 전에 오현주는 잠든 최순호를 남겨두고 그에게 “고단하게 주무셔서 그냥 갑니다. 즐거웠어요. 안녕”이라고 쓴 다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장소를 떠난다. 사라진 최순호의 자리. 즐거웠어요, 안녕. 작별인사. 두 번 다시 우리는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끝난 시제. < 나비 품에서 울었다 >는 이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필요 이상으로 늘려놓을 생각이 없다. 뒤늦게 깨어난 최순호가 택시를 끌고 달려가지만 이미 떠나가는 기차를 그저 먼발치에서 보아야 한다. 돌아가는 길. 어디로? 원래의 그 자신의 삶에로. 옆 자리가 비었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그 자신을 위해서, 최순호는 라디오를 켠다.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진행자 중의 한 명은 모두들 고독, 고독, 고독을 말한다면서, 이제 앞으로는 고독이라는 말을 쓰면 사연을 소개하지 않겠다고 까지 말한다. 사라져가는 택시의 라디오에서 마지막으로 듣는 노래는 서바이버(The Survivers)의 <아이 오브 더 타이거>(Eye of the Tiger)>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 록키 3 >의 주제곡. 이 뜬금없는 노래. 이때 이 어처구니없는 노래를 의미로 쫓아간다면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나비 품에서 울었다>가 막 개봉할 무렵 이 노래가 히트곡이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영화 사이의 동시대성. 라디오에서 흐르는 노래는 최순호의 마음 따위에 아무 관심도 없다. 무기력한 행위에로의 이행. 이때 주인공의 실패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세상이라는 시간의 폭력인 제스처. 당신을 위한 매우 복잡하고 리얼한 심리적인 설명 따위란 없다. 마치 라디오의 음악은 먼 시간의 여행으로 시작해서 바로 지금까지 온 다음 그 시간의 끝에 도착하자마자 최순호를 보잘 것 없는 현실로 되돌려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자,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다. 그러나 여기엔 왠지 불현듯 끝나버린 난처함이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빨리 < 안개마을 >을 찍어야 한다. 이미 쫓기기 시작한 일정. 금방 첫눈이 내릴 것이다. 아마도 그때 임권택은 서둘러 함께 진행되고 있었을 그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1983년 83분 컬러 1.85 감독 임권택 제작 우진필름 각본 송길한 촬영 손현채 편집 김희수 음악 이철혁 나영희 이영하 한소룡 윤양하
“그때는 최고로 안 팔리는 감독이었어요, 그 무렵은 영화가 불황이었고, 하여튼 없었어요, 영화 하자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나도 그 시기에 크게 열을 내서 하고자 하는 의욕도 잃었고, 그래서 영화가 걸리면 그냥 적당히 하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러던 때였어요. 심리적으로도 힘들었고, 그 전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데서 안 해본 것도 해보고 했는데, 전혀 그럴 생각도 없고, 그 무렵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삶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마 내 삶을 자각하면서 그래서 만든 첫 번째 영화가 < 잡초 >(1973)일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가 이전에 만든 영화들 사이에 처음으로 어떤 공백 같은 것이 생겼어요. 그건 내게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단지 영화를 준비한다기보다는 심리적인 시간이라고 할까” 없었다는 말. 그 말에 감도는 차가운 감정. 거의 희미해진 기억. 마치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종종 외면하려는 듯한 제스처, 혹은 그로부터 취하려는 일정한 거리. 할 수만 있다면 더 멀리. 그렇게 그 이전 영화들에 대해서 시종일관 무뚝뚝하게 대답하다가 <잡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마치 맑은 정신이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씩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반문하듯이 질문했다. “그렇다면 50편의 습작을 만들었다고 표현해도 되겠습니까?”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단연코 습작이었어요” 1973년 그해 임권택 은 50번째 영화 < 잡초 >를 만들었다. 여기서 만들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 모두이다. 하나는 그 자신이 연출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이 제작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그 자신이 제작한 첫 번째 영화이다. (그때) 나는 질문을 하다 말고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 그런 다음 그 결정을 느껴보고 싶어졌다. 이미 49편을 만든 영화감독. 1962년에 첫 영화를 만든 다음 12년이 되던 해. 자신의 삶, 그 삶의 진동, 감독으로서의 자신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를 성찰해보기 시작한 순간과의 대면. 말 그대로 창조의 새로운 도약. 모든 예술가들이 그 자신이 예술가임을 자각하는 필연적인 시간. 말하자면 절대적인 요구. 그런 다음 자기가 만들어낸 창조의 세계가 홀로 서게 만드는 일.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잡초>를 볼 수 없다. 임권택 감독님 그 자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 이 영화의 스틸을 볼 때마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어디선가, 이를테면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서 동시상영을 보던 중에, <잡초>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 대신 나는 몇 차례이고 이 영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의 절망적인 상황. 비참한 지경. 그때 임권택 은 놀랍게도 자기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힘을 끌어당겼다. 영화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대결. 나는 그것이 단번에 성공적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영화는 비로소 영화가 되는가, 라는 질문. 임권택은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바닥에 내려앉았다고 판결문을 내린 다음 그 질문을 끌어안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 질문을 꺼내든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지금 자기의 자리를 부정하기 위해서 이 질문을 끌어당긴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공격하기로 결심하였다. 공격?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때 그가 공격하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제까지의 모든 습관. 습관?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종종 집을 세우는 일에 비유된다는 자크 리베뜨의 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프레임이라는 사각형. 그것 앞에 세워진 네 개의 면. 그 안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동선. 그때 어디서 어디를 보느냐의 문제. 방향. 그 안에 세워진 수많은 문들. 어느 문이 열릴 것인가. 어느 문으로 들어올 것인가. 그러나 이때 집이 세워지면 그 집은 동시에 연출의 감옥이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여기에 일단 갇히면 그때부터 이 집에서 맴돌기 시작한다. 예술에서 가장 두려운 말, 안주. 우리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종종 자기 집을 불태우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집을 끊임없이 세웠다는 이야기를 떠올려야 한다. 말하자면 모험. 그러나 대부분 그냥 집에 머물 것이다. 가까스로 세운 집. 자기가 세운 집. 하나의 집이 세워질 때 그 안에 들어서는 순간을 상상해보자. 이때 영화는 그 집에서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그리고 반복은 곧 습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예술에서 좋은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런 건 없다. 오로지 나쁜 습관만이 있을 뿐이다. 나쁜 습관과 더 나쁜 습관. 그때 더 나쁜 습관이란 무엇일까. 그건 자기 집에 살면서 남처럼 살고자 흉내 내면서 자기 집을 남의 집의 모습으로 끊임없이 고치고 부수고 그런 다음 자기의 집 위에 다시 남의 집을 세우면서 그 안에서 남의 집에 사는 시늉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순간 작동하기 시작하는 예속성. 그 무시무시한 힘. 두뇌와 의지 사이의 선을 잘라낸 다음 의지를 복종시키기기 시작하는 구조들. 이미 결정된 방. 임권택은 자기 집에 살면서, 그 집에서 48번, 혹은 49번이나 살면서, 점점 더 지쳐가면서, 이 집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그 자신에게 말했다. 살 수 없다는 말. 그때 그 말은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다는 뜻이다. 다시 한 번 1973년 그 해. < 잡초 >를 만들기로 결심하기 직전. <잡초>앞에 놓여있는, 하지만 같은 해에 만들어진 두 편의 영화. < 대추격 >, 혹은 < 장안명기 오백화 >. 나는 둘 중 어느 쪽이 먼저 인지 알 수 없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임권택이 48번, 혹은 49번째 살았던 그 집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가 정말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진 영화, 단지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그 집이 자기를 잡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어쩔 수 없이 만든 영화, 하지만 그런 다음 더 이상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영화. 어떤 기쁨도 없이, 심지어 고통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그 어디서도 힘을 끌어낼 수 없을 때, 그런 다음 삶이 무언가에 복종되어버린 자리. 나는 <장안명기 오백화>를 선택했다. 왜냐하면 <대추격>은 지금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라진 임권택의 24편의 영화중의 하나. 영화의 줄거리는 일제 강점하 경성의 유명한 요정 명월관에서 시작한다. 이 말은 1973년 한국영화들 사이에서 아무데서나 시작한다는 뜻이다. 아무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이름 명월관. 1909년 경성 종로구 세종로에 세워진 다음 1918년 5월 24일 화재로 소실된 이후 돈의동 139번지에 다시 세워진 요정. 1919년 기미독립선언 이후 종종 독립운동 지사들의 연락처로도 사용되었다고 알려진 장소. 하지만 사실상 영화 안에서 의미가 없는 지표. 다소 지루할 지라도 나는 약간의 첨언을 더해서 이 영화의 줄거리를 먼저 소개하고 싶다. 아니, 차라리 한국영화사의 저편에서 불러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임권택 자신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사라진 기억. 죽어버린 기호들. 몇 차례이고 질문했을 때마다 심지어 내가 그런 영화를 찍었나요, 라고 반문했던 영화. 오로지 그 시간에만 활동했던 이미지들. 기억으로부터 과거로의 추락. 현재와 공존하기를 포기한 영화. 그러나 역설적인 의미로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 잡초 >를 만들 수 있었을까. 나는 차라리 여기서 그 포기의 배후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힘을 알고 싶다. 그러므로 다시 이야기 안으로. 그저 이 영화가 요구하는 대로 볼 생각이다. 최칠용과 영국 최칠용과 현주 신운일과 정미 박노운과 기홍 명월관에는 그날 저녁 술시중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안의 한량들에게 자랑거리가 된다는 명기 오백화가 주름잡고 있다. 일제 강점하. 요정, 장안의 다섯 명기. 고백화 기홍, 태백화 정미, 김백화 현주, 최백화, 유백화. 그녀들은 아무나 수청을 들지 않는데 심지어 조선총독부 총독의 부름도 거절했다고 한다. 그녀들은 그날, 그러니까 이 영화가 시작되는 첫 장면의 그날, 사이토 경무국장의 술자리 수청을 들기 위해 그 모습을 보인다. 그런 다음 위기의 시작. 첫 도미노. 김백화 현주의 오빠 영국은 상해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인데 경성에 잠입해 들어왔다가 그만 체포되어 한국인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고문을 받는다. 독립군과 조선인 형사. 신념을 따른 희생자들과 배신을 한 앞잡이. 역사로부터 장르에로의 이행. 그 사이에 개입하는 균열. 차라리 드라마의 복선. 그런데 최칠용은 원래 학생시절 경성제대 법대를 다니며 훗날 변호사가 되어 조선인을 위해 일하겠다고 맹세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자신의 말을 따르면) “일본인보다 더 악랄하게 조선인을 괴롭히는” 고등계 형사가 되었다. 그래서 김백화 현주는 최칠용의 후배이자 음으로 양으로 조선인의 편에서 오백화를 돕고 있는 청년 신운일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아간다. 하지만 최칠용은 명월관의 술자리에서 그의 양심에 호소하는 신운일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번에는 신운일의 딜레마. 신운일은 친일파인 중추원 원로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친일행적에 분노하며 부끄럽게 여긴다. 아버지와 아들의 분열. 각자의 자리에서 마치 한 쌍처럼 이루어진 대립적인 인물들. 과도하리만큼 민족주의적 열정에 가득 차 있는 인물들. 결국 대의적 관점 아래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또한 그는 오백화 중의 한명인 태백화 정미와 연인 사이이며 그녀에게 결혼을 청하지만 정미는 자신이 기생의 신분이라 지금의 연인 관계에 만족한다면서 완곡하게 거절한다. 신분의 차이. 이제 막 조선시대가 끝났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근대. 물론 그것만으로는 이야기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이중의 곤란함이 여기에 개입하여 이 가련한 연인들의 결정을 재촉한다. 신운일은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집안이 친일의 충성을 맹세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본 여자와의 결혼을 강요당하고 있으며, 정미는 명월관에 드나드는 사이토 경무국장의 잠자리 수청을 종용받고 있다. 갑작스러운 새로운 인물. 이야기의 바깥으로부터, 그런 다음 바깥으로의 새로운 방향.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조선총독부 총독의 생일에 맞춰 창경궁에 모이는 중요인사들과 친일파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띠고 박노훈이 경성에 잠입했다가 총상을 입고 고백화 기홍의 집에 숨어든다. 모든 인물들이 곤궁에 빠져서 거의 빠져나갈 길 없을 것만 같은 일제 강점하의 경성에서 열린 새로운 도주의 선으로서의 상해. 그러자 갑자기 이야기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 모두에게 상해로 떠날 구실을 만들어주기 시작한다. 장황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우연들의 연속. 우여곡절 끝에 박노훈은 중국인으로부터 폭약을 구해서 신운일과 함께 창경궁에 잠입하고, 그 시간에 정미는 삼엄한 경계를 풀기 위해 책임자인 경무국장 사이토와 함께 온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그를 총으로 사살하고 그녀 자신도 자살을 하고, 최칠용이 사실은 이제까지 그의 고등계 형사 노릇은 조선인의 편에서 돕기 위한 그 자신의 고육지책이었으며 게다가 이 모든 행동이 김백화 현주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지만 그만 (최칠용 자신이 구해준, 그러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한 현주 오빠 영국의 손에 죽고 만다. 거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한 사건의 사슬들. 암살에 성공한 박노훈과 신운일은 죽은 정미를 제외한 오백화와 함께 상해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일본군의 추격 끝에 이들을 따돌리기 위해 신운일이 이들 모두를 위해서 대신해서 죽고 박노훈과 남은 네 명의 오백화가 배를 타고 상해로 떠난다. 한 남자와 네 여자. 멀어져가는 배, 혹은 새벽 강물에 실려 사라져가는 배. 말 그대로 난처한 입문. 이 줄거리를 몇 번을 다시 읽고 반복해서 영화를 보아도 결국 남은 인상은 기이하리만큼 그 안에서 서로의 인과관계가 거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이 영화의 전술적인 규칙들은 무엇일까. 거기서 무엇이 멈춘 것일까. 아니, 아무 것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서 저기로 옮겨가고 그런 다음 인물의 위상관계를 달리하여 저기서 여기로 옮겨올 때, 종종 느껴보는 하강과 상승, 추락과 도약 대신, 거의 모험담에 가까운 < 장안명기 오백화 >를 보는 내내 느끼는 거의 일관된 상태는 이 장면이 다음 장면들과의 관계 사이에서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재빨리 이 영화를 내려놓는 대신 1969년에 < 황야의 독수리 >를, 그리고 이듬해 < 속눈썹이 긴 여자 >, 그런 다음 1971년 < 원한의 거리에 눈이 나린다 >와 < 둘째 어머니 >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즐거움을 생각한다. 이 영화들이 표준적 관점에서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즐거운 영화들이다. (잠시만 기다리면, 나는 차례로 그 이유를 쓸 것이다) 말하자면 긍정의 힘. 바르뜨라면 누군가 말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어떤 변명도 하지 않으며, 지루하게 설명하지 않으면서, 종종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들이 거기 있다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 표현을 사랑한다. 이때 이 네 편의 영화는 서로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만주) 웨스턴. 스릴러. 다찌마와리. 신파 멜로드라마. 네 개의 장르. 네 개의 꼭짓점. 그들 사이의 교차점. 그런데 그 자리에 서 있는 <장안명기 오백화>는 우리를 단조로운 위치에 데려다 놓는다. 여기에는 그 즐거움이 어느 순간 고갈되어 버렸다. 이때 가장 따분한 설명은 여기에 창작의 열정이 고갈되어버렸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위험을 무릅쓰고 반대로 말하고 싶다. 혹시 열정이 가져온 의심이 즐거움을 고갈시켜버린 것이 아닐까. 의심? 그렇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나는 여기서 심리적인 분석의 기법을 빌려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본 것은 거의 모든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의심이다. 무엇에 대한 의심? 설명에 대한 의심.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영화적 효과들. 인물들의 대사. 그 대사를 둘러싼 표정. 표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카메라와 연기 사이의 거리. 이때 내가 인물이라고 말하는 대신 연기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임권택 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의 수많은 기호들을 연결하고 종종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개념들을 여러 가지의 경로를 빌려 결합시켜왔다. 말하자면 영화의 규칙 안에서의 활동. 이때 임권택은 문득 여기서 멈춘 다음 이 개념들이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영화를 다루기 시작했다. 갑자기 연결과 결합 사이의 영화적 효과들은 일시적으로 작동이 중단되었다. 나는 그것을 <장안명기 오백화> 안에서 기이한 감정을 안고 바라보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상한 상황. 그 안의 배치를 성립시키는 모든 요소들 사이의 조화 안에서 무엇을 어떻게 건드리면 어떤 효과가 생겨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아는 장인이 갑자기 자포자기 하듯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는 사실을 느껴볼 때 나는 이 행위 자체가 보는 쪽에 고통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사유를 시작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물론 이것은 <장안명기 오백화>를 위해서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상황을 한편으로는 앞으로 돌아보고, 이를테면 1969년의 영화들, 반대로 저 멀리 1978년 < 족보 >까지 끌어당겨보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했다. 관성적으로 오던 것은 여전히 빨리 가고 갑자기 어떤 것은 필요 이상으로 느리게 가기 시작했다. 임권택 은 서둘러 가는 것을 마치 남의 영화를 쳐다보듯이 내버려두고 있다. 반대로 그 안에서 무엇이 느리게 갈 수 있는 지를 건드려본다. 이제까지 접속되었던 방식을 바꾸려 하기 전에 무엇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를 마치 의아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순간들. 이때 멈춘 것은 다소 불투명하긴 하지만 대부분 장르의 신호들이다. 혹은 그 신호들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신호들은 계속해서 지시를 내리지만 기이하게도 장르의 기호들은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반응을 멈추었다고 말하고 싶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 이 중단은 단순하게 멈춘 것이 아니다. 자동적 반응의 중단이라는 문제. 나는 영화를 보기 전 제목만 슬쩍 본 다음 장안명기 오백화를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섯 명의 기생. 다섯 명의 여자. 다섯 개의 운명. 그녀들 사이에 던져진 사건, 혹은 인물. 던져진 돌. (그렇게 된다면) 원형으로 번져나가는 이야기의 선. 나는 틀렸다. 오백화는 이 영화의 중심에 있지도 않으며, 또한 오백화 사이에서 어떤 분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게다가 오백화가 이 영화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어떤 힘을 끌어내지도 않는다. 이 영화의 선은 도대체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영화를 보고 나면 줄거리가 어떤 법칙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는 하)는데 영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는 기이하게도 그 선이 자꾸만 제자리에로 돌아온 다음 어떤 새로운 차원에로의 이동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잡아당기기만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순간 끊어질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어떤 긴장이 생겨나지도 않는다. 줄거리의 경제학으로만 본다면 다섯 명의 장안 명기 오백화는 서로 그녀들의 우정을 나누기는 하지만 사실상 줄거리를 위해서라면 고백화와 태백화, 그리고 김백화 세 명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임권택 은 최백화와 유백화를 위해서 거의 어떤 시간도 들이지 않는다. 나는 영화가 끝난 다음 최백화와 유백화의 존재 자체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다섯 명의 스타의 얼굴의 순환.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이상한 것은 이 순환 자체가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를 본 다음 고백화 기홍을 연기하는 고은아 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잊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임권택은 고은아를 영화 안에서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 첫 장면에서 중심에 있었던 고은아는 줄거리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다음 영화가 끝날 때 그녀는 시작할 때와 반대로 단지 오백화 중의 한명이 된다. 사라져가는 무게. 줄어드는 빈도. 스타는 줄거리의 장르이다. 그러나 <장안명기 오백화>에서 고은아는 마치 이 영화에서 사라져가는 메시지처럼 점점 뒤로 물러난 다음 화면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자리를 옮겨간다. 그렇다고 해서 박노식과 신성일이 그 자리를 탈취하거나, 혹은 옮겨오지도 않는다. 그들은 제 역할을 한 다음 재빨리 물러난다. 여기에는 스타들 사이의 균형이 거의 무너져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인물들 사이의 민주주의적 배치에 따른 것도 아니다. 나는 다소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이들은 마치 공장처럼 작동한다. 기능적으로 배치된 다음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잠시 멈춘 다음 다시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인물들은 상황에 연결되어 있는 것만으로 자기의 존재를 증명할 뿐 그 어떤 다른 변수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상황이 그 존재에 변수를 부과하기 시작한다. 인물들에 대한 억압. 어떤 억압? 줄거리의 억압. 이때 이 억압을 무효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임권택 은 마치 이 억압에 순응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일일까, 라고 반문하는 것만 같다. 나는 여기서 이제부터 시작될 임권택의 영화에 대한, 영화를 향한, 영화에 의한 그 자신의 인정투쟁의 시작을 본다. 그때 줄거리의 무한한 계속으로부터 바깥으로 나오면 거기서 무엇과 만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삶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온, 또 살아가야 하는 삶. 나는 < 장안명기 오백화 > 다음의 영화, 임권택 자신이 그 ‘이전’의 모든 영화를 ‘습작’이라고 부른 다음 비로소 만든 < 잡초 >가 한 여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신운일과 아키코 박노훈과 기홍 물론 < 장안명기 오백화 >를 좀 더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종종 인물들 사이의 자기 자리의 수행은 때때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때 이 영화의 이상한 점은 그 뻔한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그 어딘가에서 부터 이야기의 결말을 소급해서 올라가서 재구성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기괴한 역설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우리는 줄거리의 소급이 사실상 이미 예정된 전제 위에서 진행된 결말로부터 나온 자연스러운 연쇄망의 잠재적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영화에서 느끼는 것은 시나리오와 영화 사이의 이상한 분리이다. 시나리오의 잠재적인 감정은 거의 진행되지 않고 그 줄거리의 행위들만이 차례로 나열된다. 시나리오는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 그러니까 고백화와 박노훈, 태백화와 신운일, 김백화와 최칠용을 하나의 짝으로 묶은 다음 다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임권택 은 거의 고의적으로 그들 사이의 끈을 느슨하게 만들어놓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아무리 진행되어도 그것을 잡아당겨서 긴장을 만들어내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풀려나가서 느슨해진다. 이 영화는 중심이 없는 영화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몇 가지 단락의 순간들. 신운일은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기무라 총독의 여식인 아키코와 결혼을 강요받는다. 그런 다음 이어지는 약혼식. 여기서 이상한 방식으로 구부러지는 분배의 방식. 신운일은 아키코에게 둘 만의 데이트를 청한 다음 갑자기 자기의 처지를 고백하면서 진정 사랑하는 태백화 정미와 결국 결혼할 것이며 당신과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동거는 하겠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떠나가겠다고 말한다. 잠재적인 대립의 수행. 그런데 이때 아키코가 예상치 않게도 신운일을 이해하면서 당신이 나와 같은 일본 여자와 결혼하는 조선인 남자였다면 오히려 경멸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할 때 여기서 진행되어야 할 어떤 긴장도 사라진다. 말하자면 무효. 그런 다음 아키코는 영화에서 어떤 설명도 없이 사라진다. 도대체 아키코라는 등장인물은 이 줄거리에 무엇을 봉사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일까. 혹은 신운일의 이야기와 평행하면서 (영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상해에서 보낸 독립 운동가들이 체포되고 (영화가 시작된 다음에) 조선총독부 총독 생일에 맞춰 전원 몰살하려 한 폭약을 구입하려던 군자금을 고등계 형사 최칠용에게 빼앗기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이제 어떻게 그 돈을 다시 구할 것인가.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돈이라는 역할의 표면 등록. 역할의 수행에 관한 인물들에 대한 기대. 교활한 중국인은 돈을 먼저 내놓으라고 박노훈에게 말한다. 이때 박노훈의 방법은 이상할 정도로 단순하다. 고백화 기홍을 찾아가 민족에 대한 사랑에 관해 몇 마디 웅변을 한 다음 그 돈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그 돈을 구하기 위한 고백화 기홍의 이야기. 생략된 장면. 그런 다음 (고백화가 아니라) 태백화가 경무국장에게 수청을 약속하면서 그 돈을 빌린다. 물론 돈의 순환과정의 아이러니. 총독을 지켜야 할 경무국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암살할 비자금을 구해준다. 궁금한 질문. 그런데 왜 고백화 기홍은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이 빚을 청산하듯이 어떤 요구나 대가없이, 하다못해 박노훈에 대한 사랑의 감정조차 없이, 그 돈을 구해주려는 것일까. 그런 다음 왜 그 임무를 태백화에게 떠넘긴 것일까. 마치 이 행위는 신운일이 자기의 뜻과 관계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일본 여자인 아키코와 약혼을 발표한 다음 그 축하연이 명월관에서, 그것도 태백화 눈앞에서 벌어진 다음 이어지기 때문에 마치 그녀를 완전히 자포자기시키는 요구처럼 보인다. 단지 부조화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 이때 이들 사이의 관계는 오로지 이야기의 골격에 따라 장르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사이의 교환은 어디선가 흩어진 다음 오로지 기능의 액션만을 남겨놓은 채 감정의 분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사라진 씬들이 에매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이를테면 거의 설명과잉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의 1960년대 임권택 의 사극영화들을 생각해보라. 그때 단지 이것이 인물들 사이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장르의 욕망의 경제학에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심층적 구조가 사라진 컨벤션들. 그러므로 어떤 불연속. 무엇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없어진 것은 무엇일까. < 장안명기 오백화 >에서 거의 완전히 붕괴된 것은 이 영화의 경제성이다. 그렇다면 임권택 은 교환과 분배 없이 무엇으로 이 규칙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임권택은 자기 영화 안에서 목표를 찾아가는 대신 목적을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는 목표가 사라진 영화이다. 어떤 목표? 장르에 따라 줄거리가 거두어야 하는 최종 목적지. 이 영화는 그 목적지가 마치 도달할 수 없는 헛된 목표인 것처럼 거기에 갈 수 있는 영화적인 방법의 경제학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목표가 헛된 대상이 될 때 이 영화의 모든 쇼트들은 갑자기 장르의 규칙 안에서 자기의 사용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지막 장면에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저 어울리지 않게 작은 배에 저 많은 사람들, 박노훈과 네 명의 백화가 새벽에 몸을 싣고 정말 그 머나먼 서해 바다를 가로 질로 저 멀리 상해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생겨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영화의 어디서도 아니에요, 이건 영화에요, 그러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상상해주세요, 라는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 그때 상해는 이 영화 전체의 헛된 최종 목적지에 대한 텅 빈 기표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시적으로 찍힌 유일한 장면. 그건 마치 어떤 작별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이건 지나치게 사후적으로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 잡혀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선언했다. <장안명기 오백화>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를 알고 싶은 대신 < 잡초 >를 만들기 직전, 그러니까 이제까지의 영화가 모두 습작이라고 단언해야만 했던 그 상황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때 여기서 내가 보는 것은 새로운 도약을 향한 어떤 약속의 증거가 아니라 정반대로 그 모든 것의 조화가 어지럽혀진 채 너무 많은 장면들이 스스로 의미를 포기해버린 얼룩들의 거의 망쳐버린 듯한 카오스였다. 나는 < 장안명기 오백화 >의 이상한 마지막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중이다. 일본군의 추적이 마지막까지 뒤따르고 네 명의 오백화와 박노훈, 신운일을 태운 병원 앰뷸런스 구급차는 그들을 태울 배가 있는 강변 가까이 도착한다. 신운일은 그들을 내리라고 한 다음 자신이 이들을 따돌리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살의 제스처에 다름 아니다. 그들은 무사히 탈출을 하지만 마치 예정된 것처럼 신운일은 일본군의 추적 끝에 총에 맞아 죽는다. 그가 죽어가면서 보는 것은 마치 대지가 기울듯이 흔들리는 시선이다. 물론 그것은 신운일이 쓰러지면서 보는 세상의 마지막 풍경이다. 그런 다음 일본군들은 마치 자기들의 일을 다 했다는 듯이 돌아간다. 눈 덮인 언덕 아래에서 고백화는 물어본다. “아니, 어떻게 된 것일까요?” 박노훈은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이 대답한다. “녀석은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아니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군” 멀어져가는 일본군. 그때 앰뷸런스 차 안에서 총에 맞아 구멍 뚫리고 금이 간 창문을 통해서 그들을 바라본다. 이 난처한 두 개의 쇼트 사이의 반복적인 쇼트와 상대 쇼트. 말하자면 성립되지 않는 시선의 교차.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과도하게 사후적인 설명이 동원되어야 할 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다. 마치 배를 타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박노훈처럼. 그때 눈물을 흘리는 박노훈의 얼굴. 눈물. 한 없이 이어지는 무심한 강물. 그들은 무사히 상해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이 길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 인생을 사랑하는 법. 그건 임권택 그 자신이 습작들과 작별하면서 내게 설명한 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사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계속) 1973년 98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우진필림 각본 신봉승 , 윤석훈 촬영 변인집 음악 전정근 미술 노인택 편집 현동춘 박노식 박노훈 신성일 신운일 고은아 고백화 기홍 태현실 태백화 정미 독고성 최칠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