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愛
- 감독
- 김태일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양동남, 주로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그것도 뭔가 내가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공상에 사로잡혀 있을 때일수록 기록하고 있는 인물이나 사건, 상황에 많은 의미들을 부여하게 된다. 소소한 내 기억이나 가족의 사연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나는 이 특수한 이야기를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장의 사실들을 미화하거나 작위적으로 그 의미들을 과장하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물론 창작자로서 재 현실들을 재가공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겠지만 그 정직한 수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스러우며 풀릴 것 같지 않은 숙제로도 보인다. 이런 고백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건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김태일 감독의 < 웰랑 뜨레이 >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광주민주항쟁 당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 오월愛 >를 시작으로 세계 민중사 10부작을 시작한 김태일 감독과 그의 가족(이하 “상구네”)은 그 첫 번째 나라인 캄보디아로 떠난다. 하지만 언어가 통하지도 않는 생소한 지역에서 누군가를 찾아 이야기를 기록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수개월이 지나고 상구네는 우연히 뜨레이 가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생존을 위한 뜨레이 가족의 노동만을 볼 뿐이며 이들과 같은 노동을 하며 살고자 하는 상구네의 일상만을 볼 뿐이다. 상구네가 예수교를 강요하지 않는 가족임을 알고 뜨레이 가족은 안심하지만 상구네는 여전히 이들의 삶의 역사를 카메라로 찍어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자화 되지 않은 체 구술로만 전승되는 그들의 전통과 역사를 존중하며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는 그들의 삶의 터전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묵묵히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설정하고 찍어야 할 텐데 상구네는 영화적 대상과의 관계에서의 한계만을 고백할 뿐이다. 솔직히 말해,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수소문 끝에 찾아낸 다음, 그들의 동의하에 적당하게 일상을 기록한다. 다음, 적당한 시점에 좋은 배경에 앉혀서 현지 통역들과 함께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기록한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눈물 찔끔 나게 유도해서 들었을 것이다. 영화의 서사를 위해 시간의 흐름이 있는 역동적인 사건이나 상황 또한 계획적으로 찍었을 것이다. < 웰랑 뜨레이 >는 이 기존의 방식과 닮아 있지 않다. 아니 애초에 방식이라는 것에 신경 쓰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가족과 가족이 첫 대면하는 그 순간으로부터 변화해가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는데 주력한다. 이는 어쩌면 영화적 대상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면대면으로 만나는, 실존하는 사람들을 내 몸으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 태도의 결과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함께한 자녀들에게 부끄럼 없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인민들의 살아있는 삶의 모습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뜨레이 가족의 삶을 스크린 안의 이미지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실재하며 현존하는 삶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다큐멘터리에서 현실과 사실이 나를 자극하는 진실이 되는 순간을 맛보게 되었다. 민중사 10부작을 통한 상구네 가족의 변화과정이 궁금해진다. 특히나 두 자녀들이 성장해가는 과정과 그 과정 안에 부모와 함께 그려낼 민중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긴 여행을 떠나며 첫 여정지인 캄보디아 인민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세계의 인민들에게 ‘우리 이 마음과 태도로 시작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며 “웰랑?(안녕?)”이라고 상구네 가족이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이 인사가 어떻게 진화, 발전될 지 더불어 그 깊이를 가져갈지 기대된다. 상구네 가족의 앞길을 큰 박수로 응원하고 싶다.
미래의 영화란 무엇일까? 실험적인 표현과 수사법으로 당대의 예술적 한계를 넘나드는 작품? 아니면 테크놀로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른바 대박을 치는 상품?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30년이 훨씬 지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낡은 형식의 대표격인 인터뷰가 깨알같이 이어지는 김태일 감독의 < 오월愛 >에서 미래의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518 광주민중항쟁(이하 518)은 이미 보훈처가 기념일을 관리하는 국경일이 되었다. 불의에 저항하고 공동체를 창조했던 민중들의 치열한 역사는 탈각시킨 상태이지만 말이다. 학살자 전두환과 그 일가족은 온갖 탈법, 위법으로 남부럽지 않은 호사로운 삶을 영위하며 뻔뻔하게도 여전히 광주 민중들의 항거를 폭도였다 떠들고 다니지만 말이다. 또 어떤가? 먼저 간 영혼을 위로하며 산자들의 부채감을 투쟁의 의지로 승화시켰던 ‘임을 위한 행진곡’보다는 ‘방아타령’이 기념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헐~(?) 스러운 상황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518은 30년이 지난 오래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의 모순을 치열하게 반영하는 거울로 남아있다. 이 거울 앞에 당신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이 역사의 거울 앞에 김태일 감독은 어설픈 양비론과 어쩔 수 없음의 현실인식을 버리고 < 오월愛 >를 시작한다. 거대한 국가폭력의 잔인함 앞에 하나의 물방울에 불구했던 민초들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과거와 그 거울의 속내를 들추어낸다. 난 당신들 편이고 내가 바로 당신들이라며… ‘맛있는 참외 오천원 어치만 주세요’. 시장 어귀 참외 파는 할머니에겐 오월만 되면 나타나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을 들쑤셔 넣고 총총이 사라지는 카메라가 참으로 귀찮은 존재였을 것이다. 김태일 감독은 이런 빛고을 광주시민들에게 조심스럽지만 참으로 집요하게 그들의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도매시장에 나가 과일을 떼어오고 리어커를 정리하며 시장 속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대인시장 과일 행상 할머니처럼 김태일 감독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방대한 양의 책을 읽으며 카메라를 들고 그들 한 가운데에 들어가 누구도 귀 기울려 주지 않았던 ‘민중들의 518’을 기록하는 일을 담담이 이어나갔다. 아침마다 들리는 커피행상의 아주머니들 사이로, 대인시장에 자리잡은 광주지역 예술가들 사이로, 도청 별관 안과 밖의 갈라진 5월 단체들 사이로 때로는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들어가며 그들의 속내를 눈치채고 드러낼 수 있게 지켜보고 기다리며 말이다. < 오월愛 > 안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평화반점 주인 부부, 양동시장 참외와 귤을 파는 노점 할머니, 대인시장 과일행상 할머니, 5월 화원 주인부부, 구두딱이 아저씨, 버섯농장을 하시는 아주머니, 대안학교 선생님,,, 이들은 518 당시 어떤 일을 했었을까. 계엄군도 있었고,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줬으며, 총을 든 시민군에게 밥을 해주면서, 시민들에게 518을 알려내는 역할들을 했던 인물들이다. 30년이라는 시간 만이 놓여 있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이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묵묵히 이 세상을 건너온 사람들인 것이다.(이중 계엄군/대안학교 선생님은 이질적인 변화를 겪은 듯 보이지만 그 역시 국가폭력의 희생자인건 자명하지 않은가) 이들을 묶어주는 역할은 김태일 감독의 분신과도 같은(실제로도 부부 관계인) 주로미 조감독과 지금은 전세버스 운전기사인 518 당시 기동타격대원인 양동남씨가 맡는다. 작품은 518의 ‘연대기’와 증언자의 ‘지금’이 부드럽게 오고 간다. 억지로 끼워 맞추듯 오디오와 비디오를 분리하여 시간을 ‘압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은 어차피 ‘하나’ 였음을 암시하듯 물 흐르듯 시간을 ‘해체’하여 현재하는 아픔 속에 과거를 바라보도록 우리들을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의 단락은 이야기의 재미를 쌓는 기능보다 작가가 선사한 주제의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기름기 하나 없는 스테이크 같다. 한 덩어리 천천히 씹어 제 맛이 날 때를 기다리면 다음 덩어리가 이어받아 결국에는 오랫동안 입 속에서 떠나지 않는 육즙의 향기가 진하게 남듯이 말이다. 여기서 오랜 기간 역사와 민중을 다루어 왔던 김태일 감독만의 완숙미를 확인 할 수 있다. 재미와 밀도라는 스토리텔링의 스킬에서 벗어나 익숙한 이야기를 바라보는 작각의 주제의식이 다큐멘터리에서는 더 힘이 세다는 것을 김태일 감독의 <오월愛>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무엇인가? 기록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민중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며 피곤한 삶을 건너가는 그 진짜 주인공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 다시 돌아가 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기록의 투쟁에서 518은 다시금 읽혀야 한다는 흔들리지 않는 선언이다. 5월만 되면 나타나는 당신들의 안락한 역사의식에 정면으로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 이른바 독립다큐멘터리는 이 사회에서 ‘영화’로서의 자기 지위만을 찾지 않는다.(이것을 포기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오해다) 누구도 지켜보지 않았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의 문제를, 로드킬 당하는 뭇 생명들의 처절한 현실을, 국책사업에서 밀려나는 이들의 생존권을, 최소한의 인권마저 짓밟히는 소수자들의 눈빛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상사람들에게 부담스럽고 무거운 이야기라 일컬어졌던 이 이야기들은 지금 방송과 주류미디어에선 당장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어 소통되어 가고 있다. 시장 속에 상품으로서 규정되는 ‘영화’로서의 자기 결정이 아니라 현실 운동의 변화와 함께 가야 할 자기원칙들을 점검하고 실행에 옮겼던 독립다큐멘터리의 역사가 보여준 결과인 것이다. 그 속에서 독립다큐멘터리스트는 변화의 주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감해 오면서 그 이슈와 거리가 먼 대중들과의 영화적 교감을 얻는 덴 실패했어도 주체들의 언어들을 남기고 근거를 기록하는 데에 성공한다. 이로서 그 이슈는 보편적인 문제로 사회와 소통하며 실질적인 변화에 한걸음 나아가는데 일조하게 된다. 이렇듯 난 ‘오월愛’가 몇 년 후, 518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논쟁에 어떤 식으로든 자기 역할을 할 것임을 장담한다. 미래의 가능성보다 당장의 살아남기에 급급한 독립영화의 풍토에서 미래의 영화란 어찌 보면 이렇게 발견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미래의 영화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역사에서 자기 역할을 해왔던 독립다큐멘터리에서, 그리고 바로 < 오월愛 >에서 증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