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블랙박스-오토바이 대형사고
- 제작년도
- 2009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 공간은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 온 시간의 레이어가 중첩된 결과물이다. 어떤 곳은 레이어의 층위가 그다지 많지 않아 과거의 모습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반면, 어떤 곳은 너무 많은 층위가 겹쳐 불과 수년, 수십 년 전 모습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서 사회·문화·정치·경제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서울의 도시 공간은 아마도 대부분 후자에 속할 것이다. 특히 서울 도심부는 불과 1세기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일제강점기, 광복, 6·25 동란, 군사정변과 산업화라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며 무수히 많은 시간의 레이어가 촘촘히 덧씌워져 왔다. 이러한 서울의 역사적 조건은 미시적인 변화상(예를 들면 1960년대 서울은 1950년대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가)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각각의 레이어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 주도로 제작된 <대한뉴스> 및 각 관청에서 촬영한 행정 기록용 사진들은 여전히 상당수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 기록은 ‘국가의 시선’에서 취사 선택되었다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대한뉴스>의 제작 목적은 국가 정책 홍보와 대국민 계몽이었으며, 관청 사진들 또한 행정 결과 보고라는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면 민간(시민)의 시선에서 날 것 그대로의 도시 공간에 가장 근접한 기록은 무엇일까? 당대 시민의 생활상을 담아낸 영화 작품이야말로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영화 < 마부 >(강대진, 1961)는 서울에 거주하는 서민 가정의 가장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그린 작품이다. 김승호 가 분한 가장 춘삼은 1960년대 서울에서 이미 전근대적 운송업으로 취급받기 시작한 ‘마부’이며, 그의 자식들은 당시 서울 시민 대다수를 차지했던 서민 가정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모든 등장인물이 서울 시내 각지를 방황하는 이야기 전개상 4.19 혁명 직후 서울 시내 곳곳의 모습이 명확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흑백 영화라는 시대적 한계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모습 때문에 첫눈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춘삼네 식구들의 희로애락이 투영된 장소가 지금도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서울 시내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60년 전 서울의 어느 서민 가정을 매개체로 하여 95분의 러닝타임 속에 담긴 60년 전 서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옥인길에서 촬영된 세련된 오프닝 시퀀스 <마부>의 오프닝 시퀀스는 춘삼의 작은아들 대업( 김진 )이 훔친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내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업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그 형태, 그리고 1960년 10월에 치러진 보궐선거(서울시의원 종로 제1선거구) 벽보와 배경의 산세로 보아 지금의 누상동·누하동의 옥인길로 추정된다. 시퀀스로 미루어 춘삼네 집은 옥인길 초입에서 5분가량 걸어올 라가면 나오는 옥인동 47번지 일대의 비탈진 곳에 위치했으리라 짐작된다. 지금은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인해 한옥과 판잣집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영세한 필지만큼은 춘삼네 가족이 머무르던 시절을 담고 있다. 장충동에서의 근대-전근대의 교차 다음으로 주목할 장면은 작은딸 옥희( 엄앵란 )가 남성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마차를 끄는 아버지 춘삼과 길에서 마주치는 씬이다. 숭정문이 저 멀리 내다보이는 가운데, 장충동의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근대의 문물(자동차)과 전근대의 문물(마차)이 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도로를 지배하는 교통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옮겨간 시대적 배경에서, 이는 춘삼이 겪는 가난이 사회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드러내는 씬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영동 성남극장 극중에서 춘삼과 수원댁( 황정순 )이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는 곳은 남영동의 성남극장이다. 1918년 세워진 ‘경룡관(京龍館)’을 전신으로 하는 성남극장은 서울의 수많은 초창기 영화관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극장 건물이 남아있는 드문 사례다. 한강로를 건너는 춘삼과 수원댁의 배경에는 서울전차의 원효로 분기선이, 교차로에는 221호 전차와 1950년대 후반 출시된 미제 닷지 트럭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우마차의 시대가 이미 종결을 고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은 트럭과 전차의 출연은 당시 서울의 교통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물류의 중심지, 서울역 마차를 끄는 춘삼과 수업( 신영균 ), 그리고 ‘서울소화물’이라 적힌 화물 오토바이를 모는 창수( 황해 )는 당시 서울역 북서쪽에 위치한 화물 취급소를 자주 찾는다. 트럭 운송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대부분의 장거리 화물은 기차로 서울에 옮겨졌고, 이를 시내 각지로 운반하는 영세 운송업자들은 자연스레 서울역 서쪽으로 모여들었다. 맞은편 북쪽에는 서울수산시장(1975년 노량진으로 이전, 現 서소문역사공원)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물류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찻길 옆 시가지, 청파동 춘삼은 기찻길 옆 돌다리 위에서 수원댁과 만나 담소를 나눈다. 오른쪽으로 기차가 지나가고, 개천이 흐르며, 왼쪽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점에서 이곳이 옛 만초천을 복개한 청파로 부근임을 알 수 있다. 이 일대가 서울역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임을 감안하면, 화물 취급소로 향하던 춘삼이 자연스레 수원댁을 만났다는 공간적 개연성이 확보된다. 수원댁과 헤어진 춘삼 너머로 보이는 높은 굴뚝은 1930년대부터 존재했던 철공소(청파동1가 183번지)의 것으로, 오랜 세월 청파동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마부> 촬영 이후에도 60년 가까이 살아남았으나 2019년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왼편에 철공소 굴뚝이 보인다. 해당 철공소 건물(1938년 12월 준공, 2019년 철거. 사진: 필자 제공) 불안한 해피엔딩, 중앙청 앞 율곡로 <마부>의 결말은 오프닝과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오프닝의 카메라는 누하동의 굽이진 골목길을 어지럽게 쫓아가지만, 결말의 카메라는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 춘삼네 가족이 중앙청 청사와 옛 경기도청 사이의 율곡로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큰아들 수업의 성공으로 춘삼네 가족이 더 이상 서울역 화물 취급소, 누하동 비탈길, 장충동 교차로를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간적 단절을 의미하는 듯하다. 다만, 과연 춘삼네 가족에게 그런 미래가 찾아왔을까? 현실의 서울에서는 수업의 성공으로부터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5.16 군사정변이 발발했고, 독재정권이 도시계획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서울 도시 공간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춘삼네 가족과 그들의 삶이 투영된 서울 또한, 결말의 줌 아웃을 끝으로 그 이전과 단절된 셈이다. <마부>는 95분의 러닝타임 동안 미처 글에 담지 못한 장소들(노들섬 한강대교, 문배동 오리온 제과공장, 충무로 대한극장 앞)을 포함해 서울 시내 십여 곳에서 직접 촬영을 진행하고, 이를 ‘어딘가에 존재했을 법한’ 서울 사람의 생활 동선으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부>가 첫 개봉으로부터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당대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으로 다시금 조명받는 데는 이러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 속 서울의 모습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작품 수에 관객 수를 곱한 것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읽어내야 할 과거 서울의 모습이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서울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여왔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시선과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 속 서울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이어지길 바란다. 김영준 연구원이 들려주는, <마부> 속 서울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국영화X공간] 영화 "마부", '1961년 서울의 삶' 클릭!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야심한 밤의 주유소, 프레임 오른쪽에 도열한 급유기들과 바닥에 무질서하게 그려진 흰색의 사각형, 후경의 도로 뒤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프레임을 수직으로 가르며 달려와 카메라 앞에서 멈춘다. 프레임 왼쪽에서 주유원이 프레임 인하여 주유구를 열고 기름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이 깊은 공간의 가장 앞쪽에서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예감을 주는 긴 쇼트가 지속되는 동안 주유가 끝나고 오토바이의 라이더가 시동을 걸자 카메라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선다. 넓어진 화각의 카메라는 축축하고 어두운 도로, 전반적으로 컴컴하고 듬성듬성 불이 켜진 건물들, 황녹색 신호등 사이를 달려가는 오토바이를 인도하는 것 같다. 하나의 쇼트로 서술되는 이 신에서 영화의 주인공 태훈(서준영)이 막 도착했고 관객들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될 것임을 짐작한다. < 회오리 바람 >(2009)은 기대감을 형성하는 설정의 기능을 통해 서사의 심부(深部)로 관객을 끌고 가는 인상적인 프롤로그를 제시한다. 플롯을 주재하는 모티프는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나다’ 구조이다. 태훈과 그의 동급생 여자 친구 미정(이민지)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속초여행을 다녀오는데, 이 일탈적 여행이 초래한 여파, 악화하는 관계의 추이가 내러티브의 골간을 이룬다. 서로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실현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한 소년 소녀에 관한 이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변주라고도 할 수 있는 익숙한 스토리이다. 이와 같은 유서 깊은 스토리 유형의 장점은 그 익숙함으로 인해 내러티브를 파악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들은 모두 그런 장면들이다. 장건재 감독의 성취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부유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요동하는 존재의 상태를 시청각적인 기술(記述)을 통해 서술해낸 것이다. 이를테면 프롤로그 이후 ‘3개월 전, 고2 겨울방학’으로 시간이 점핑하여 속초여행의 끄트머리로 향하는 플롯은 저들의 존재와 앞날을 암시하는 한 신을 제시한다. 속초고속버스터미널, 태훈과 미정은 각각 흰색 콘크리트 기둥과 쇠기둥 사이에 우두커니 서 있다. 쓰레기통에 담배를 비벼 끄고 프레임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태훈을 카메라가 따르는 동안 미정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를 외면하는 자세로 선다. 짙은 그림자가 잠식한 프레임 뒤편에서, 숨겨져 있던 쇠기둥들을 걸치고 태훈은 한 사내에게 “서울에서 올라왔는데 돌아갈 차비가 없다”며 여비를 구걸한다. 태훈은 서울로 돌아가 계좌로 빌린 돈을 붙여드리겠다고 청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 사내는 돈이 없다며 거절한다. 곤란한 표정의 태훈이 대합실 입구에서 안을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미정은 그가 다음 상대를 골라 프레임 왼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시 바닥으로 고개를 떨군다. 태훈은 일군의 젊은 여행자들에게 같은 요청을 하지만 용건이 끝나기도 전에 냉랭한 거절의 답을 듣는다. 다시 프레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대합실에서 나오는 중년의 여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할 때 상황이 반전된다. 태훈의 기색을 살피던 여인은 “얼굴이 아주 심각하구만”이라고 관심을 보이더니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는 듯, “붙여준단 소리 하는 학생은 또 처음 보네, 인상이 좋아서 꿔주는 거야”라며 지갑을 연다. 구제의 가능성이 보이자 “도착하는 대로 꼭 붙여드릴게요”라고 다짐하듯 말하는 태훈에게 이 구원자는 “믿어보는 거지 뭐, 진짜 줄래나 안 줄래나”라고 혼잣말을 한다. 태훈의 이동 경로를 따라 프레임 앞으로 슬그머니 이동한 미정은 콘크리트 기둥 뒤에서 태훈과 여인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관객의 관점을 공유한다. 물경 2분 20여 초 간 지속하는 기나긴 이동 쇼트는 불안한 구도와 기우뚱한 자세로 선 소년 소녀의 현재와 앞날에 대한 적확한 묘사이다. 호의를 보인 구원자의 바람과 달리 태훈이 빌린 돈을 돌려주었을 가능성은 없다. 태훈에게는 서울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여비가 있었으나 다만 초코바와 우동을 사 먹을 돈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 가벼운 배신의 삽화는 다소간 약삭빠른 태훈의 성격을 암시하는데, 이와 같은 캐릭터의 일관성은 PC방에서 마주친 건달들을 속이려다 숨겨둔 돈과 신발을 모두 빼앗기고 린치까지 당하는 장면(이 신은 마치 선의의 구원자를 배신한 이전 행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인다)에서 섬세하게 유지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태훈의 움직임과 그를 완전히 외면하지도 가담하지도 못하는 미정의 제스처를 한 호흡으로 담아낸 롱테이크 쇼트는 이후에 진행될 서사의 궤적을 지시한다. 저들은 이 즉흥적인 바다 여행을 빌미로 강제로 이별하게 될 운명이다. 소년은 변덕이 있고, 즉흥적이며, 괴팍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비해 소녀는 주변을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소년은 둘의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착을 보이지만 소녀는 이미 결단을 내리고 그를 외면한다. 태훈은 새로운 관계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집불통으로 미정의 침실 창문을 두드리거나 은밀하게 뒤를 밟아 알아둔 학원을 찾아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진다. 태훈의 불쾌한 행동과 그를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미정의 절교 선언은 겨울 바다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이미 예견된 바이다. 이 지점에서부터 두 사람의 선택은 미세하게 갈라지게 된다. 표면적인 이야기 너머를 향하면서 영화의 의미맥락을 풍부하게 하는 영화적 묘사의 힘은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보여주는 후속 신에서도 드러난다. 자식들의 일탈을 눈치챈 미정의 부모가 태훈과 그의 가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장면이다. 얼마간 거들먹거리는 성격을 가진 미정의 아버지(최효상)는 위스키를 마시면서 두 아이에게 각자의 행적을 적게 하고 서로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를 확인하려 한다. 범죄 조서를 꾸미듯 하는 조사가 이루어지고 저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 스토리를 적어 냈을 때 미정의 아버지가 갑자기 이성을 잃고 발목에서 칼을 꺼내 나무 탁자 위에 꽂는다. 핸드헬드 쇼트는 극도의 혼란을 전달하고, 점프 컷은 미정의 뺨을 때리고 골프채로 장식장 유리를 부수는 아버지의 광란의 퍼포먼스를 단속적으로 보여준다. 태훈을 향한 아버지의 욕지기는 별안간 텔레비전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괴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텔레비전 영화 정보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으로 연결된 것임이 밝혀진다. 상이한 타임 라인을 잇는 사운드의 연결 패턴은 이후에도 반복될 것이다. <회오리 바람>의 특이점은 소년, 소녀가 그해 겨울의 체험을 겪어야 했던 이전의 상황이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 자체에 내재해 있는 회귀적인 지향성에 근거하여 그들을 둘러싼 주변이나 세계와의 접점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로 표랑하는 열여덟의 특성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 상황, 캐릭터, 서사를 전달하는 연출의 스타일 전략, 디테일은 잘 조율되어 있으며 디지털 영화 제작의 가능성이 만개하던 시절 DV 캠으로 촬영한 이미지의 생생함, 시간과 주의를 낭비하지 않는 촬영, 섬세한 연기의 세트피스를 보여준다. 빈번한 롱테이크는 나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기여하고 상당한 현실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부 묘사는 반항심에 찌든 십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바람의 이미지, 텍스처는 거칠지만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미성숙한 시절에 관한 이 가슴 아픈 이야기의 무드와 잘 어울린다. 중국 음식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태훈의 오토바이가 행인을 친 뒤 급격히 암울해지는 분위기는 텅 빈 겨울 바다를 무대로 들려오는 태훈과 미정의 화면 바깥 대화와 대비를 이룬다. 지나 버린 시절의 격정 안에 영화가 포괄하고자 했던 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모습에서 확실해진다. 험준한 산길과 사막을 걷는 태훈이 모습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방황이 오래 지속될 것임을 말한다. 시간이 다시 점핑하여 ‘3개월 후, 열아홉’이 된 미정은 진즉에 상실을 받아들인 것 같지만, 체육관 벤치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목엔 태훈이 준 목걸이가 매달려 있다. 얼마 후 부드러운 파도 소리가 들리더니 바닷바람을 맞은 듯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두 사람의 미래가 완전히 암울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시간은 겨울 바닷가 여행이 시작했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바람의 이미지는 백사장을 덮은 눈밭 위에 발자국을 내며 태훈이 움직일 때 매섭게 부는 바람의 사운드로 이어진다. 미정 역시 태훈과 마찬가지로 잘 억누르고 있었을 뿐이다. 주유소, 터미널, 미정의 집, 바닷가 눈밭에서의 움직임과 정지, 동요는 영화가 묘사하고자 한 ‘바람’의 다양한 층위를 드러낸다. 바람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광기를 부리고, 차분하고, 들떠 있고, 안정을 주고, 불안하고, 차갑고, 따스하다. 정제되지 않은 시간과 존재를 흔드는 바람의 색깔은 열여덟의 고뇌와 황홀경, 삶의 혹독함을 이기는 기억을 생생하게 회상하는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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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집 >에서 방랑자 주인공 태석(재희)이 비어 있는 집들을 떠돌아다니는 스산한 세계부터 투명인간이 출몰하는 미스터리한 세계까지 서사의 순열은 이야기의 초점을 누구에게 귀속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을 현실로, 무엇을 상상의 세계로 규정할 것인지를 두고 서사가 길을 잃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는 플롯의 끝에서 장자의 다음과 같은 문구로 강조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 그 귀착지는 교도관에게 거듭 구타를 당하고도 상처를 입지 않고 죽어가는 태석의 꿈으로, 또는 남편과 공존할 수 있게 된 선화(이승연)의 꿈으로 인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에 세 번째 해석을 더해야 한다. 이미지는 실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태석은 투명인간이 되는 법을 학습하였다. 세 가지 해석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영화 안에 새겨져 있다. 표제어로 쓰이는 ‘빈집’은 장소, 공백, 고립이라는 관념을 전달하면서 존재하는 것보다 부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의 첫 번째 쇼트는 그물망 뒤 조각상을 보여주고 다음 쇼트는 보이지 않는 골프공이 그물망에 부딪히는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골프채 타격음과 함께 들린다. 이때 초점이 맞지 않는 조각상과 그물의 롱 쇼트는 시공간의 좌표에 대한 어떤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첫 쇼트에 등장한 조각상과 그물이 태석이 선화를 만나는 집에 놓인 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이는 사물이 전달하는 가치를 하나의 극에서 다른 극으로 전환하는 전형적인 김기덕식 수사학을 전제한다. 몰래 들어간 첫 번째 집에서 어린 아들이 태석이 수리한 장난감 총을 발사하여 엄마를 상해하는 장면에서도 이미지의 전환이 발생한다. 고생스러운 가족여행으로 불만이 가득한 엄마를 향해 소년이 플라스틱 총알을 발사하자 엄마의 비명소리가 들리지만 이어지는 쇼트는 창문 밖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떠나는 태석을 보여주는 식이다. 가족 간 불화와 폭력은 두 번째 방문지인 선화의 집으로 전이된다.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을 향해 태석은 골프공을 발사한다. 소년의 플라스틱 총알은 태석의 골프공이 되고, 그것은 소년-태석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학대를 저지하는 사물로 기능한다. 커플을 이룬 태석과 선화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여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한 권투선수가 태석을 폭행하는 장면에서도 카메라는 태석을 때리는 권투선수 대신 권투선수의 사진을 클로즈업한다. 남편이 선화를 학대할 때 분노한 태석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과 같은 패턴이다. 이처럼 우리는 두 주인공의 침묵을 채우는 것과 유사하게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사이의 간극을 채우는 이미지와 대면한다. 이처럼 <빈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침묵이다. 태석은 대사가 없지만 선화는 영화의 마지막 몇 분 동안 “사랑해요”와 “식사하세요”라는 두 마디 대사를 말한다. 대사는 없지만 다른 수단을 통해 의미가 전달된다. 예를 들어 웃음과 울음은 대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가혹한 폭행 뒤에 욕조에서 우는 선화, 골프 연습을 하다 무고한 여자를 피투성이로 만든 뒤 우는 태석의 모습 따위를 볼 수 있다. 누군가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방이 이에 반응하기 때문에 이 모든 장면은 대화의 기능을 한다. 때론 클로즈업이 이와 같은 기능을 대신한다. 클로즈업은 시공간의 좌표로부터 얼굴을 추상화하여 정서를 표현하는 기교이다. 태석과 선화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숙고해 보자. 대화는 없고, 서로를 응시하는 두 사람의 침묵하는 얼굴이 역전된 쇼트들을 통해 제시된다. 태석과 선화가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표정이 없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놀라움, 혐오감, 피곤함, 그리고 용서를 읽는다. 해석적 표면으로서의 얼굴의 위상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태석의 얼굴은 벽에 걸린 선화의 사진과 나란히 배치된다. 태석은 경찰의 심문을 받을 때 침묵을 유지한다. 심문이 끝난 후 경찰은 죽은 노인이 정원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는 선화가 심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태석 만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이다. 따라서 침묵은 일종의 내러티브 장치로 관객들이 텍스트의 폭정에서 벗어나 이미 말해진 레퍼토리들을 기초로 하여 스스로 빈칸을 채우도록 돕는다. 더 나아가 예측을 통해 관객은 사건의 과정을 설정하고 세계의 구조에 대한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태석과 선화가 빈집에 거주할 때 그들의 은밀한 동거가 들통날 것인지 아닐지를 추측하는 것도 이러한 매커니즘을 통해서이다. 텍스트는 관객의 예측을 확인하거나 부정하기 위해 작동한다. 따라서 두 방랑자가 권투 선수의 집에서 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집에 다가오는 자동차의 쇼트는 마침내 저들의 존재가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그렇게 되면 텍스트는 관객의 예측을 확인시켜준다. 이러한 침묵의 매커니즘은 영화의 초반부까지만 작동한다. 태석이 감옥에 갇히고 투명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면서 관객은 개연성의 세계에서 초현실적인 세계로 서사가 순환하는 것을 목격한다. 교도소라는 상징적인 헤테로토피아에서 태석이 투명 골프공과 투명 골프채로 연습하는 장면에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건, 특이점, 전환점이 있다. 1부에서 부재가 단순히 하나의 가치였다면, 서사의 세계가 순치된 2부에는 부재로 인해서 표시되는 것들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골프공과 클럽의 부재가 골프공을 타격하는 소리로 표시될 때 부재는 현전(現前)과 양면을 이루게 된다. 태석의 변신과 대칭을 이루는 선화의 변신에 대해 말할 수도 있다. 선화는 태석을 대동하고 자신의 사진을 찍어온 사진작가의 집을 점거한다. 사진 속 선화의 몸은 폭행으로 상한 그녀의 몸과 대조를 이룬다. 태석은 빈집에 침입하여 자신의 몸에서 빠져 나오지만 선화는 자신의 육체를 벗어나지 못한다. 선화가 사진을 벽에서 떼어내어 재구성하는 모습에서 상한 육체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과 좌절이 드러난다. 이 장면은 태석의 보이지 않는 골프 게임과 유사한 사건이자 주체성을 획득하려는 선화의 의지를 드러낸다. 다음 날 선화는 태석이 하는 것처럼 손빨래를 하고 있다. 태석이 감옥에 가는 동안 남편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 선화는 남자와의 관계를 거부하고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외출을 하는 등 이전과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선화가 살아남은 것은 반항을 통해서가 아니며 새로운 질서, 새로운 존재의 상태를 확립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새로운 존재의 모습은 폭력과 권력이 아닌 환대와 공존의 양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선화는 남편의 권력과 폭력을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남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잠시 침묵을 깨고 남편(실질적으로 그의 뒤에 있는 태석)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남편은 선화의 생경한 고백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태석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선화를 끌어안는다. 선화가 부정했던 상징의 도구로서 “사랑해요”라는 말은 이제 기만의 장치로 전락하였다. 선화가 터득한 생존 전략은 타인을 오류에 빠지게 하는 의미의 표면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태석이라는 투명인간을 모른 채 남편이 그 빈칸을 채우게 함으로써 세 사람의 공존이 가능해진 것이다. 태석의 손바닥에 그려진 눈의 형상은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 ‘잘못된 거울’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의 시각이 가진 한계와 속임수, 그리고 주관성을 초래할 수 있는 지각의 오류를 표현한 거울상은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나온다. 선화의 집에서 태석은 빈번하게 유리에 반사된 이미지로 재현된다. 태석은 투명인간이 됨으로써 바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법을 배운다. 아이러니하게도 태석은 교도관의 시선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카메라 자체의 시선, 그리고 관객의 시선에서도 벗어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인정해야 보거나 이해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교도관은 투명인간이 된 태석을 감지할 수 있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선화는 180도로 볼 수 있는 거울을 통해 그의 존재를 볼 수 있게 된다. 적대감을 화해하는 영화적 공간을 창조함으로써 새로운 지각의 차원이 우리들에게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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