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레이터
- 감독
- 로버트 리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브라이언 보스워드, 존 텐치, 레이첼 헤이워드, 제리 웨저먼, 테리 로더리, 밥 다우슨, 제니 클라크, 타라스 코스티억, 존 B. 로웨, 크리스토퍼 샤이어, 고든 메이
정광석은 1962년 데뷔해 2006년까지 170편의 한국영화를 촬영한 베테랑 촬영감독으로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 <땡볕>(하명중, 1984), <깊고 푸른 밤>(배창호, 1985),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1992),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명세, 1999)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다. 특히 그는 1980년대 주목받던 신진 감독들의 데뷔작에 단골 촬영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당시 그는 신인감독이 야기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제작자들의 신뢰를 얻을 만큼 빠르고 노련한 촬영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정광석 촬영감독은 1950년대 중반 <장화홍련전>(정창화, 1956)의 조명부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장화홍련전>에는 조명감독인 함완섭의 조수로 참여했는데 이때 임권택 감독은 이 작품의 제작부 막내 스태프로 소품을 맡고 있었다. (사진1) 1956년 4월 15일 <장화홍련전>의 촬영장 사진을 보면 가운데 한복을 입고 여장을 한 인물이 임권택 감독이다. 테스트 촬영을 위해 장난처럼 여장을 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오른쪽이 서병수 조명감독, 왼쪽이 정광석 촬영감독이다. 후에 임권택 감독과는 <왕과 상노>(1965)에서 감독과 촬영자로 다시 만났지만 촬영감독으로서의 자의식과 자존심은 임권택 감독에게 뷰파인더를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둘은 작품에 대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중간에 결별한 뒤 단 한 작품도 함께 하지 않았다. 정광석은 일본 유학파 출신 김영순 촬영감독의 권유로 촬영부 조수로 옮겨간다. (사진2) 1959년 <부부>(곽건, 1960)의 촬영 현장이다. 카메라를 잡은 이가 김영순 촬영감독이고 왼쪽에서 장갑을 끼고 렌즈의 포커스링을 만지는 이가 당시 촬영 제1조수 정광석이다. 삼각대 옆에는 여성 스크립터가 앉아서 기록을 위해 초시계를 잡고 있다. 당시 제1조수는 노출과 포커스를 책임졌고 흑백필름용 현상통을 가지고 다니며 촬영현장에서 테스트현상을 해야 했다. 2조수는 트래킹 쇼트 촬영에서 이동차 밀기, 제3조수는 촬영기자재 운반을 맡았다. 그나마 카메라 같은 고가장비는 제2조수가 운반했다고 한다. 이후 <비련의 섬>(정창화, 1958), <햇빛 쏟아지는 벌판>(정창화, 1960) 등의 작품에서 김영순, 이성휘를 비롯한 여러 촬영감독의 조수로 14편의 작품에 참여했다. 그리고 1962년 정광석은 이봉래 감독의 권유로 <새댁>을 통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한다. <새댁>은 김영수 작가의 KBS 인기 라디오 연속극을 영화화한 것이다. 당시 신문에는 <새댁>의 원작료를 30만원으로 밝히고 있는데, 정광석은 이때 촬영감독을 포함한 촬영부 전원의 인건비로 8만원을, 즉 천자 분량의 필름 세통 값과 비슷한 비용을 받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경향신문 1963년 12월 14일자 기사를 보면 당시 영화제작비 평균 중 총 촬영료는 20~30만원으로 여기에는 촬영기자재비용 12만원이 포함되어 있다 하니 그의 기억과 대체로 일치하는 금액이다. 이 조차도 주로 어음으로 받아 몇 달을 수입없이 기다리거나 급할 때는 많은 수수료를 떼고서라도 현금화시켜야 했기에 당시 많은 스태프들은 늘 빚을 지고 사는 형편이었다. (사진3) <새댁>(이봉래, 1962)은 흑백 시네마스코프 작품으로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리플렉스 카메라에, 공보부에서 비공식으로 빌린 250미리 줌렌즈를 장착해서 촬영했다. 당시 초점길이가 긴 줌렌즈는 신필름과 정부 홍보영화를 제작했던 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 밖에 없었기에 충무로 촬영감독들은 공보부에서 몰래 빌려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촬영 데뷔작인 <새댁>은 “물에 올라온 고기처럼 화면마다 생동이 퍼덕거리지만 시종 재미있다.”는 경향신문의 영화평처럼 3대의 대가족이 벌이는 에피소드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새댁>은 종로의 세운상가 3~5층에 위치했던 아세아극장의 개관작으로 1962년 12월 23일 개봉했다. 1965년에 그는 <성난 독수리>(김기, 1965)를 촬영한다. 이호영 공군 대령의 수기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빨간 마후라>(신상옥, 1964)가 대성공을 거둔 후에 만들어진 공군 전투영화이다. <빨간 마후라>는 비행장면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전투기 동체에 부착시켜 촬영했으나 제작비와 지원규모가 그에 못 미쳤던 <성난 독수리>는 정광석 촬영감독이 전투기 뒷좌석에 탑승해 비행장면을 모두 촬영했다. (사진4) <성난 독수리>(김기, 1965) 포스터 (사진5) <성난 독수리>(김기, 1965)는 원작자인 이호영 대령의 도움을 받아 대구 비행장에서 촬영되었는데, 실제 한국전쟁 때 사용한 전투기 T33이 이용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정광석 촬영감독은 전투복에 헬멧을 착용한 뒤 아리플렉스 ⅡC카메라에 필름이 담긴 200자 매거진 세 개를 여분으로 가지고 T33 뒷좌석에 탑승해, 핸드 헬드로만 항공촬영 전 분량을 촬영했다. 이 촬영으로 정광석 촬영감독은 25시간이 넘는 비행기록을 갖게 된다. 촬영감독은 촬영에 들어가기에 앞서 감독과 함께 화면의 비율을 결정해야 한다. 1968년에 개봉한 <황혼의 부르스>(장일호)는 정광석 촬영감독의 주장으로 스탠다드 화면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황혼의 부르스>는 일본을 배경으로 몰락한 일본귀족과 북한 간첩, 남한의 비밀요원이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여인을 둘러싸고 벌이는 첩보 액션영화이다. 1960년대 영화계는 TV와의 경쟁을 와이드 스크린으로 극복하고자 가로의 비율이 넓은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탠다드 사이즈로 이 영화를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화려한 컬러의 색감을 보여주고 다양한 렌즈를 이용한 역동적인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당시 시네마스코프 화면은 아나모픽 렌즈를 마스터 렌즈에 덧대어 구현했는데, 1960년대 후반 노후된 아나모픽 렌즈는 화면의 색감이나 선명도를 보장할 수 없었고 아나모픽 렌즈의 왜곡 때문에 사용 가능한 마스터렌즈의 구경이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파독광부 출신으로 독일에서 아리플렉스ⅡC 카메라를 구입해 온 신영필름 김태우 사장이 마침 정광석 촬영감독의 조수로 들어왔던 시기라 최신 카메라로 선명하고 깨끗한 화면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도 또한 더 해졌을 것이다. (사진6) 의사로 위장한 가네야마(오지명)기 여자주인공 시즈코(윤정희)를 도와 몰락한 일본 귀족인 가다키리 남작(박암)의 저택에서 도망치려는 장면이다. 망원렌즈로 인물들을 촬영해 전경의 배경을 흐리는 방식으로 인물에 집중하게 하는 것은 물론 윤정희의 심리적인 불안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했다. (사진7) 이 영화에서 박암은 몰락한 일본 귀족임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 내내 제대로 여미지 않은 유카타를 입고 있다. (사진8) 호텔 객실에서 윤정희는 원하지 않는 청혼을, 원치 않는 방식으로 받고 있다. 윤정희는 이유를 모른 채 남자들에게 결혼을 강요당하고 살인사건에 연류 되고 협박받는다. 이 모든 것은 그녀의 부친이 막대한 재산을 딸의 남편에게 주기로 했기 때문인데, 물론 그녀는 아버지의 존재도 모르고 있다. 오로지 ‘황혼의 블루스’라는 노래가 들리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뿐이다. 컬러영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60년대 후반의 컬러 작품에는 화려한 색감을 보여주기 위해서인지, 언제나 세 가지 색으로 구성된 꽃꽂이가 탁자 위에 놓여있다. 이 작품에도 회사, 병원 등의 책상과 탁자 위에는 어김없이 삼색 꽃꽂이가 놓여있다. (사진9) 말끔한 양복에 뿔테 안경을 쓴 신사 오지명은 안경을 벗는 순간 북한간첩이 되어 윤정희 가족을 북송선에 태우려 한다. 심지어 오지명의 날카로운 두 눈을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보여줘 긴장감을 갖게 했다. (사진10, 11, 12, 13) 이 작품은 액션영화이다. 오지명의 정체가 드러나자 북한간첩단과 몰락한 일본 귀족의 하수인들이 총격을 벌이고 남한에서 온 공작원 장동휘와 오지명의 화려한 결투장면이 등장한다. 한 간첩단이 윤정희를 찾으러 온 귀족의 하수인들에게 총질을 해대는 장면은 피격당하는 인물들의 화려한 리액션이 다소 단순한 동선을 무마해준다. 심지어 오른쪽 인물은 총에 맞아 엎어져 있다가 다시 총을 맞고는 일어나 휘청거리는 연기를 보여준다. 발포할 때마다 총구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는 90년대 <투캅스>(강우석, 1993)까지 등장한다. 장동휘와 오지명의 화려한 액션장면 중 장동휘의 공격에 오지명이 360도 회전하며 쓰러지는 장면은 설정 상 어두운 실내에서 촬영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1968년부터 정광석은 매년 10편 내외의 작품을 촬영했다. 현재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작품수인데 그는 두 가지의 이유에서 다작 촬영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첫째는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 따라가기. 신성일, 김지미, 남정임 등 당시 인기 있는 주연들의 작품을 촬영하면 두, 세 작품을 동시에 가케모치 즉 겹치기 촬영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제작자 또한 그런 겹치기 일정을 고려해서 주요 스태프를 고용했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후시녹음으로 진행했기에 촬영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후시 녹음이 미완의 영화를 어떻게 완성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성우 고은정, 오승환의 구술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광석 촬영감독은 1970년대에도 이러한 다작의 흐름을 이어갔다. 1971년에 개봉한 <쇠사슬을 끊어라>(이만희, 1971)는 만주를 배경으로 한 액션영화이다. 물론 영화는 전편 다 국내에서 촬영되었다. (사진14)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애국지사와 갱 그리고 밀정이 처음 만나는 황량한 만주의 술집은 워커힐 호텔이 보이는 한강 상류의 모래밭 위에 세운 오픈세트이다. (사진15) 주인공들이 스키를 타고 일본군을 유인하는 만주의 눈밭은 강원도 횡계에서 촬영했다. 아찔하게 따라오는 일본군 스키부대원들을 찍기 위해 사각으로 기울기를 조정해서 촬영했다. (사진16) 위 장면을 찍기 위해 바닥에 바짝 붙인 카메라를 틀어 앙각으로 촬영하고 있다. 바닥에 누워 카메라를 잡고 있는 이가 정광석 촬영감독이고 그 바로 뒤에서 사진 밖 피사체를 응시하고 있는 이가 이만희 감독이다. 이만희 감독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영화인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정광석 촬영감독 또한 영화에 대한 감각이 아주 뛰어났다고 평가한다. “앞뒤가 이러니까 이런 사이즈로 간다. 이게 아니라 한번 쭉 시켜본 다음에 그냥 나눠서 가니까.” (사진17) 장동휘가 촬영 중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로 구르게 되자 이만희 감독은 즉흥적으로 커트를 나눠 촬영해 사고로 NG가 난 장면을 살렸다고 한다. 콘티나 모니터 없이 즉석에서 머릿속으로 편집이 가능한 감독이었던 것이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라면 기세가 등등한 배우들도 어려운 액션장면을 군말 없이 직접 연기했다. 물론 배우들도 인물을 줌렌즈로 당겨 찍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배우 황해가 한 겨울에 한강에서 옷을 벗어 던지고 장동휘가 오토바이에서 넘어지는 정도의 위험은 그리 과한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과거 그가 촬영조수로 참여한 <햇빛 쏟아지는 벌판>에서는 정창화 감독이 총격장면에서 실탄을 사용했고 이만희 감독 또한 대단한 사격실력으로 때로 배우 근처까지 직접 총을 쏘며 촬영을 진행 했다는 무용담 같은 증언을 종종 들을 수 있다. 리얼한 장면에 대한 욕심과 부족한 안전장치로 인해 배우와 스태프들이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아찔한 시기였다. 그가 촬영한 전쟁영화인 <전우가 남긴 한마디>(이원세, 1979)에서도 군용보트를 타고 도강하는 장면에서 강 밑에 묻어놓은 TNT폭탄 위로 배우 장혁이 탄 보트가 지나가며 폭파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다행이 아무도 다치지 않아 며칠 쉬다 촬영을 재개했다고 한다. 정광석은 1960,70년대를 거치며 전광석화처럼 빠른 시간에 탁월하게 촬영을 끝낼 수 있는 노련한 촬영감독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다보니 1980, 90년대 신인감독들의 데뷔작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곽지균 감독의 데뷔작 <겨울나그네>(1986), 박종원 감독의 <구로아리랑>(1989), 이현승 감독의 <그대안의 블루>(1992), 김성수 감독의 <런 어웨이>(1995),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1998)등 이 시기 주목할 만한 감독들의 데뷔작에는 늘 그의 이름이 있었다. 특히 19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의 선두주자였던 배창호 감독과의 콤비로 유명한데 배창호 감독과는 <꼬방동네 사람들>(1982)부터 시작해 모두 8편의 작품에서 함께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판자촌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 호평을 받았는데, 그는 성공적인 헌팅이 빛을 발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꼬방동네는 고척동 그러니까 당시 영등포에서 시흥으로 가는 길의 좌측 둑 너머 외딴 고지대에 있던 판자촌이다. 벌판 쪽에 우뚝 솟은 철탑, 저수지 같은 분위기를 내는 뚝방 등 그 동네 전부가 이 작품에 적절하게 맞아 떨어져 세트 없이 영화 전편을 그 곳에서 촬영했다. 스태프들은 인근 여관에 숙소를 잡고 2개월간 머물며, 동네 주먹들의 방해가 있으면 술값을 줘가며 밤낮으로 촬영했다. (사진18) 주석(안성기)이 검은 장갑(김보연)을 따라가며 꼬방동네의 좁은 골목길을 유려하게 훑는 장면은 스테디캠 처럼 느껴지지만 정광석 촬영감독이 광각렌즈를 사용해 핸드헬드로 촬영한 장면이다. (사진19, 20) 꼬방동네에서 열린 환갑잔치에서 공옥진 여사가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 장면 또한 사진처럼 정광석 촬영감독이 핸드헬드로 촬영했음에도 유려하고 안정적이다. 사진20번에 카메라를 든 이가 정광석이고 사진의 왼쪽 끝 안경을 쓴 이가 배창호 감독이다. 정광석 촬영감독이 배창호 감독과 한 작품 중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작품은 <적도의 꽃>(배창호, 1983)이다. 아파트에 혼자 살며 이웃들을 망원렌즈로 훔쳐보는 미스터M(안성기)은 맞은편 아파트에 이사 온 오선영(장미희)에게 반해 그녀를 스토킹 한다. 미스터M이 아파트를 훔쳐보는 도입부는 히치콕의 <이창>(1954)처럼 촬영되었다. (사진21,22,23,24) 미스터M(안성기)의 시점쇼트로 표현하기 위해 팬으로 앞 동 아파트 두어 가구를 훔쳐 보다 아래에 이사 오는 오선영(장미희)에게 시선이 닿는 흐름으로 이어지는데, 현장에서는 이 모두를 한 컷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세트에서 촬영된 <이창>과 달리 <적도의 꽃>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여러 가구의 협조를 구하며 어렵게 촬영이 이루어졌다. 미스터M은 타락한 오선영을 구원하고자 그녀를 강으로 끌고 가 물에 빠트린다. 비정한 내용만큼이나 촬영 환경 역시 좋지 않았다. 구파발 근교의 일영에서 촬영이 이뤄졌는데 장마철에 물이 불어 있는 강에서 빗줄기가 잘 보이도록 역광으로 조명을 쳐야했다. 결국 조명 설치를 위해 10키로 조명기를 매고 강을 건너던 조명조수가 물에 휩쓸려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희생 속에서 만들어진 장면이자 작품이었다. <고래사냥>(배창호, 1984)은 2,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3년 11월에 촬영이 시작되었다. 삼영필름 명의로 제작자 황기성이 대명 제작한 작품이다. 병태 역할에 적합한 배우가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안성기가 김수철을 단성사 2층 다방으로 불렀다. 황기성 대표, 최인호 작가, 배창호 감독, 정광석 촬영감독 모두 그 자리에서 김수철을 병태로 캐스팅했다. 로드무비인 이 작품은 서울역 앞 사창가에서 시작해 과거의 창경원을 거쳐 대관령 너머 임계, 강릉 변두리 시장 등지에서 촬영되었다. 영하 20도 날씨에 염소차에서 내려 걷는 곳이 임계 읍내였고 춘자(이미숙)가 어머니에게 줄 안경을 훔치고 민우(안성기)가 이를 구출하는 곳은 강릉 변두리 시장이었다. (사진25,26) <고래사냥>의 강릉 변두리 시장 장면은 엑스트라 하나 없이 시장 사람들 그대로 촬영했다. 사진25의 오른쪽 하단 동그라미 친 부분에 안성기와 이미숙이 있다. (사진27,28) 춘자(이미숙)가 안경을 훔쳐 소동이 벌어지는 장면도 시장에서 엑스트라 없이 자연스럽게 촬영되었다. 주인공들이 포주일당에게 쫓겨 석탄차에 기어 올라가 기차를 타고 도망가는 장면은 카메라 한 대로 촬영이 이뤄졌다. 석탄차를 대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유를 두고 여러 커트로 나눠서 촬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사진29) <고래사냥>에서 석탄차를 타고 도주하는 시퀀스는 한 대의 카메라로 줌렌즈를 이용해 원경에서 접사까지 한 커트로 촬영을 끝내고 편집과정에서 여러 커트로 나눠서 사용했다. 물론 석탄차 위에서 안성기가 “잘 있거라 나는 간다.”포주들을 놀리는 장면도 접사에서 원경까지 한 커트로 촬영해 나눠서 사용했다. 과거 충무로 촬영감독이 갖춰야할 덕목 중 하나는 제작자의 입장에 서서 효율 좋게 촬영해 예산을 줄여주는 것이었다. 정광석 촬영감독은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의미 있는 장면으로 꼽는 것이 <땡볕>(하명중, 1984)의 한 컷이다. 시카고국제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땡볕>(하명중, 1984)은 일제강점기의 민족수난사를 다루고 있다. 무기력한 남성과 수탈당하는 여성의 신체가 수난의 알레고리로 영화 전편을 메우는데, 주인공 춘호가 죽어가는 순이를 지게에 지고 물길을 거슬러 가는 장면은 인물들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배치되어 잔인한 운명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임계의 산중턱에서 오후 4시쯤 촬영을 끝내고 철수 하는 중에 정광석 촬영감독이 우연히 바라본 풍경에 영감을 받아, 하명중 감독에게 제안하여 만들어 낸 장면이었다. 이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23회 대종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다음해도 연이어 대종상 촬영상을 수상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배창호 감독의 <깊고 푸른 밤>이다. 미서부에서 단시일 안에 올로케로 촬영했고 흥행에서도 성공한 작품이다. 모든 화면이 감각적이고 할리우드 작품 같다는 평을 받았는데 배창호 감독 또한 미국 수준의 기술력만 받쳐준다면 할리우드 만큼의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작품이라 말했을 정도로 촬영기술과 감각을 강조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제작비와 물량을 들이지는 않았다. 열다섯 명의 인원이 필름 4만 5천자로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데스밸리, 자브리스키 포인트, 산타모니카, 말리부에서 로케하며 40일 만에 촬영과 현상을 모두 끝내고 귀국한 작품이었다. 한때 배창호 감독의 전매특허였던 현기증 나는 360도 트래킹 쇼트도 할리우드에서 완성된다. (사진30) 호빈(안성기)과 제인(장미희)의 말리부 해변 키스씬을 360도 트래킹 쇼트로 촬영하기 위해 준비하는 현장이다. “그때만 해도 원형이동차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어요. 제일기공사라고 청계천에서 반원형 그니까 160도, 180도 돌아가는 이동차를 쓰는 경우가 있었고. 360도가 꼭 필요하다고 감독이 생각하고 찍으려하면 다 핸드헬드로 찍는 수밖에 없었다고. 정밀하게 원형이동차로 돌아가는 차가 없었어요. 근데 막상 미국 가서 기재를 다 렌트해서 썼거든. 카메라를 BL2를 썼고 거기서 원형이동차 360도 돌아가는 걸 갖다 찍을 때 아주 정밀하게 제작이 돼 있더라고. <깊고 푸른 밤> 보면은 서울에 와이프한테 영주권을 땄다고 전화하는 장면을 원형으로 이동을 갖다가 360도 두 번은 돌아갔을 거야. 마구 빙빙빙. 업 되는 감정으로 전화하는 상태거든, 안성기가. 그거를 원형으로 돌아주니까, 찍는 나부터도 감정이 올라가더라고. 그리고 말리부 해변가에서 둘이 키스하는 장면을 원형으로 360도 원형으로 쓴 게, 저렇게 원형이 되는 구나하는 걸 처음 느꼈을 거야, 아마.” 1990년 작품인 <꿈>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 촬영이 이뤄졌다. 낙산사 대웅전 촬영을 위해 강릉에서 양양으로 가는 길에 폭설에 갇혀 눈으로 허기를 채우며 20시간이나 걸려 촬영장소로 갔다. 폭설예보가 있었지만 스케쥴 미룰 경우 추가 경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촬영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기 위해 인내와 순발력이 필요했다. 강릉과 낙산사 사이 삼팔선 경계가 있는 곳에 마치 해금강을 떠올릴 것 같은 해변에 조신의 판자집을 오픈세트로 만들었다. 2, 3일 동안 눈이 오기를 기다린 뒤 동트기 직전 약 한 시간 십분 사이에 여덟 컷을 찍어야 했다. (사진31) 조신(안성기)을 찾아온 모례아손(정보석)에게 조신이 용서를 비는 장면으로 동 트기 직전, 순발력있게 촬영한 장면이다. 정광석 촬영감독이 처음으로 전 편을 동시녹음으로 촬영한 작품은 <베를린 리포트>(박광수, 1991)이다. 신철이 기획을 했고 오정완이 제작부로 파리 촬영에 동참했다. 사실 촬영진이 모두 파리에 도착한 뒤에도 시나리오는 완성되지 않아 파리 현지에서 스태프들은 열흘 넘게 박광수 감독이 시나리오를 탈고하도록 초조하게 기다렸다. 촬영현장에 미리 가 시나리오를 토대로 최적의 동선을 파악하는게 몸에 배어있는 정광석 촬영감독과는 작업방식이 잘 맞지 않았다. 스테디캠 장면은 독일 현지의 스테디캠 오퍼레이터를 고용해 촬영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박종원, 1992)은 <구로 아리랑>(1989) 이후 박종원 감독과의 두 번째 작품이다. 대동흥업의 도동환 대표가 제작했고 대부분 강원도 정선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영화의 절반을 정선의 국민학교에서 찍었는데 오픈세트로 진행된 엄석대(홍경인)의 아지트는 미술팀을 정선으로 데려오는 비용을 절감하고자 스태프들이 공간을 채워 만들었다. 기차가 달려오는 교각의 철로에서 오래 버티기 내기를 하는 인물들을 촬영하는 장면은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차가 달려오는 모습을 박진감 있게 잡기 위해서는 광각렌즈로 촬영해야만 했다. 누워있는 인물들의 시선에서 찍기 위해 교각으로 들어가 달려오는 기차를 핸드헬드로 촬영하는데 광각렌즈 특성상 피사체와의 거리감이 길어 보이니 기차가 바로 앞으로 올 때까지 버티며 촬영해야 했다. 그래서 달리는 기차에 옷깃을 스치는 긴박한 상황도 겪었다. (사진32,33,34) 달려오는 기차 앞에서 오래 버티는 내기를 하고 있는 엄석대(홍경인). 사진32와 33이 광각렌즈로 촬영한 커트이다. 1973년 정창화 감독의 <흑야괴객>촬영 현장에서 자동차 추격 장면을 가까이에서 촬영하다 질주하는 자동차에 부딪힌 삼각대에 머리를 맞고 결국 현장에서 숨을 거두고 만 최호진 촬영감독을 떠올릴 만하다. 1993년에 촬영한 <투캅스>(강우석, 1993)는 1990년대 코메디 영화의 부흥을 알린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제작은 이화예술필름이 시작해 어음으로 계약금을 받았으나 중간에 이화예술의 임상돈 사장이 제작을 포기한다. 그러다보니 제작경험이 있고 지방장사들과 안면이 있던 강우석 감독이 직접 제작을 진두지휘 하게 된다. 강우석 감독이 발행한 새로운 어음으로 계약을 진행하며 제작이 시작되었다. 이 작품의 촬영에 있어서 인상적인 장면은 악당과 투캅스가 싸우는 영화의 마지막 총격전이다. 몹씬이라 많은 엑스트라와 자동차, 경찰까지 동원되었고 TNT를 묻고 총기를 테스트 하는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장면이었다. 강우석 감독이 워낙 일을 빨리 하다 보니 하루에 120커트를 촬영하는 불가능한 일정으로 계획은 세웠으나 다음날로 촬영은 이어졌고 마침 폐공장인 촬영장소에 눈이 쌓이게 된다. 개봉날짜가 잡혀있고 촬영을 미루면 비용이 발생하고 어쩔 수 없이 모든 스태프가 눈을 쓸고 흙으로 묻어 촬영을 재개시켜 이틀간 총격씬 120커트의 촬영을 마쳤다. “왜 군에서는 무엇이든지 안 되는 게 없다고 하더니 영화인들도 마찬가지라고. 안 되는 게 없어들.” (사진35,36) 강형사(박중훈)와 조형사(안성기)가 악당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장면 중 일부로 눈이 쌓인 현장을 스태프들이 모두 치우고 촬영한 장면이다. 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촬영감독 정광석은 1962년 데뷔해 열악한 기자재와 제작환경 속에서도 저비용으로 순발력 있게 다양한 장르의 영화 한편을 촬영해내는 능력을 길렀다. 1980, 90년대에는 새롭게 대두하는 젊은 감독들이 믿고 작품을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2000년대에는 당시 한국영화계에서 생소했던 DP시스템을 시도한 원로 촬영감독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의 촬영담은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그가 촬영한 무수히 많은 작품들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사진37) 정광석 촬영감독이 아리플렉스 필름카메라를 잡고 있다.
영화 스태프로서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20대에서 시작해 벌써 30대의 중반이니 영화와 함께 자라온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첫 영화를 했을 때는 너무도 신기한 사회에 들어와 있구나 생각하며 적응해나가기 바빴지만, 현재는 현장 녹음팀으로서 지금까지도 현장의 소리들과 싸우며 지내고 있다. 아마 영화를 그만둘 때까지는 계속 싸울 예정이다. 현장 녹음팀은 대략 3~4명으로 구성되어있다. 4명일 때는 현장 녹음감독 밑으로 붐 오퍼레이터-세컨드 붐 오퍼레이터-붐 어시스던트 순으로 구성이 된다. 3명 시스템이라면 세컨드 붐 오퍼레이터가 빠지는 경우이다. 그중 나의 직책은 붐 오퍼레이터다. 붐 오퍼레이터란 붐폴이라는 긴 장대에 달려있는 마이크를 컨트롤 하여 녹음감독이 원하는 대로 수음을 할 수 있는 기술자를 말한다. 그리고 그 붐 오퍼레이터는 녹음팀의 제1 조수를 담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붐맨이라고들 하지만 정확히는 붐 오퍼레이터가 맞는 표현이다. 요즘은 여성들도 많이 하고 있으니 예전처럼 ‘맨’이라는 표현은 바르지 않다. 여느 다른 팀과 비슷하게 제1 조수가 되려면 어쩔 수 없이 오랜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기술적인 부분은 이론으로 배워서는 쉽지가 않다.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운 친구들이 오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이런 부분 같다. 교육 과정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수많은 경우의 수가 영화에는 여기저기 존재한다. 카메라의 앵글과 조명의 그림자, 배우의 동선을 항상 신경 써야 하고, 대사를 숙지하면서 주변의 소리를 신경 써야 하며, 오퍼레이팅을 할 수 있는 공간도 확보해야 하는 등 그야말로 신경이 아주 많이 쓰이는 일투성이인데, 이들을 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은 결국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경험해본 노하우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예를 들어 카메라 앵글사이즈를 가늠해 알맞게 마이크를 배치해 놓았다고 해도, 더 좋은 수음을 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배우와 근접해지는 위치에 마이크를 둬야 한다. 그러려면 조명으로 생기는 마이크의 그림자가 나오지 않게 해야 하고, 카메라 앵글을 잘 피해 가면서도 연기하는 배우 쪽 마이크가 더 정확한 위치에서 수음을 할 수 있게 항상 오퍼레이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순간도 같은 장면이 없는 영화현장에서는 그래서 더더욱 이론보다 경험이 중요해진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NG는 특히나 사운드에 의해 생기는 것이 많다. 언제 어디서 잡소리가 날지 알 수가 없기에 촬영 준비 중에 계속 체크해야 한다. 갑자기 비행기가 지나가거나, 동네의 개들이 짖어 대거나, 누구의 폰이 울리기도 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NG다. 평소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시계의 초침 소리나 냉장고, 환풍기 소리 또한 미리 체크하여 끄지 않으면 소리의 톤이 많이 달라져서 깔끔하지 못한 녹음이 된다. 그렇게 미리 체크를 했다 해도,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한 상황들로 웃지 못할 상황이 생긴다. 특히나 여름은 미리 체크를 해두어도 어디선가 날아온 매미들로 사운드가 고르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럴 때는 위에서 말한 현장의 노하우를 십분 발휘해 매의 눈으로 매미를 찾아 쫓아낸 후 다시 촬영에 들어간다. 생각보다 예민한 녹음 상황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스태프와 배우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덥고 추워도 에어컨과 히터를 항상 꺼야 잡소리가 없기 때문에 나 또한 매우 덥고 또는 매우 춥지만 에어컨과 히터를 내 손으로 꺼야 한다. 자주 발생하는 또 다른 NG의 경우는 배우들이 정해진 동선과 대사대로 연기하지 않고 애드리브를 친다거나 했을 때이다. 오른쪽으로 돌면서 대사를 치기로 했는데, 다른 쪽으로 돌면서 대사를 친다든지 해버리면 마이크는 약속했던 동선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다. 애드리브로 수많은 명장면이 나왔다곤 하지만, 현장에서의 애드리브는 재미있으면서도 당황스러운 존재다. 그런 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장르가 코미디이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 2012년 찍었던 < 사랑이 무서워 >란 작품이다. 임창정 배우와 김규리 배우의 연기도 좋았지만, 정말 김수미 배우의 현란한 애드리브 덕분에 현장 사람들 모두 웃지 않으려고 혀를 깨물어야 했다. 촬영 중에 터지는 나의 웃음 때문에 재미있는 컷을 망칠 수는 없는 일이니 정말 매 순간 정신을 다잡으며 집중을 했어야 했다. 애드리브 말고도 < 베를린 >이나 <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 등과 같이 외국어 대사가 많은 작품들도 오퍼레이팅 하기가 쉽지 않다. 마이크는 배우가 대사를 할 때, 그 배우와 매우 가깝게 있어야 하기 때문에 두 사람 정도가 대화를 하는 씬이면 마이크는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 가며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대본을 외워야 하는데 그 대본의 대사가 외국어가 되어 버리니 실수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실수가 없기 위해 외국어 대사라 할지라도 촬영 내내 대본을 계속 보며 외워야 한다. 해외 촬영 시에는 언어로 인한 어려움뿐 아니라, 주변 소리 통제도 쉽지가 않다. 일단 언어소통이 쉽지 않아 식당의 음악 소리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통제하려면 통역하는 사람을 불러 현지 제작부에게 설명을 해야 하니 빠른 진행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해외 촬영을 다니며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해외에선 사이렌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울린다는 것이다. 슛 중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NG이기 때문에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얼마 전 < 보안관 >을 촬영할 때는 그야말로 ‘바람과의 전쟁’이었다. 기장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영화라 늘 바닷가 근처에서 촬영을 하기 때문에 마이크에 바람 소리가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윈드젬머라는 바람 소리를 부수는 역할을 하는 커버를 마이크에 씌워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한계가 있다 보니 선배들의 경험에서 나온 나름 특수한 아이템을 하나 추가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스타킹이다. 스타킹을 씌우면 바람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어 생각보다 많이 바람 소리를 잡아준다. 그러나 현장에서 쉽사리 사기도 어려워 현장의 여자 스태프들에게 변태라는 놀림을 받으며 스타킹 구걸(?)을 해야 하는 정말 뜻밖의 어려운 점이 있었다. 사극 또한 녹음이 어려운 장르 중에 하나이다. < 방자전 > 때 섭외된 많은 장소들이 있었는데 그 중 민속촌 촬영 때에는 한옥 특유의 낮은 천장과 좁은 공간 때문에 녹음이 쉽지가 않았다. 마이크는 인물의 머리 위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낮은 천장 때문에 마이크의 높이가 낮아 화면에 마이크가 노출되는 NG도 많이 생겼다. 어느 정도 소리의 톤을 무시하고 인물 밑으로 마이크 위치를 설정해보기도 했지만 이 역시 좁은 공간 때문에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또한 사극 특성상 촬영 장소가 유적지나 관광지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멀리서 들려오는 도로 소음이 많은 문제가 되었다. 특히나 버스나 대형트럭 등이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NG가 나곤 했다. 그 시대엔 차량이 없으니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기가 무척 어려웠다. <방자전>을 촬영할 땐 배드씬이 많았는데, 그런 씬 들을 촬영할 때는 무척이나 긴장을 해야 한다. 현장의 자연스러운 소리를 얻으려면 모든 스태프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야 함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인원만 현장에 남아 슛을 간다. 베드씬은 배우들도 후시 녹음을 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나에겐 부담이 많이 되는 촬영 중 하나이다. 이렇듯 영화에서 자연스러운 소리를 담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실제 영화를 봤을 때 관객에게 배우의 숨소리까지 내 손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정확한 소리를 잡아내고 그 소리로 영화의 집중도를 더 높여 줄 수 있는 직업. 그것이 붐 오퍼레이터인 것이다. 물론 만들어지는 소리들도 있겠지만 좋은 소리를 녹음해야 결국 좋은 사운드 디자인도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려고 노력한다. 모두에게 자연스러운 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바로 내가 영화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음 영화에도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좋은 소리를 담을 수 있는 붐 오퍼레이터가 되길 희망한다.
김지운 감독의 < 악마를 보았다 >에서 발견된 건 비단 인간의 내재된 흉폭성과 잔인함 그리고 그간 터부시 되어왔던 고어의 미학뿐만이 아니었다. 이 영화로 처음 상업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 모그 ’라는 괴물 신인 영화음악가의 등장 또한 반겨야 했다. 그 진한 피칠갑의 향연 속에서, 또 뜨겁고 차디찬 복수의 공방 속에서 점점 악마가 되어가는 두 남자를 애달프게 지켜보고 대신 눈물 흘려야 했던 모그의 비정하면서도 감성적인 사운드는 쉽게 잊혀지지 않을 공명이었다. 이 논란 많은 영화에서 만장일치의 갈채를 이끌어낸 모그의 영화음악은 강렬하고 아름다웠으며 동시에 소름 끼치고 무서웠다. 이미 정점에 올라선 탁월한 베이시스트로서 특유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솜씨였다. 프로 연주자이자 아티스트였던 그는 재즈와 라틴, 록과 블루스, 일렉트로니카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리쉬하고 새로운 시도들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어려서부터 여러 환경 속에서 본능적으로 연주해온 덕택에 탄력적인 감성과 날카로운 직관을 지녔으며, 야성적인 그루브 밑에 숨겨진 애수와 특유의 서정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구사했다. 베이스라는 악기의 한계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그의 앨범들은 트렌디한 감각과 열정, 실험과 모험이 가득한 퓨전의 정수였고, 낭만의 끝이었다. 음악 시장이 눈에 띄게 개편되던 2000년대 중후반 몇몇 단편들과 다큐를 시작으로 영화음악에 뛰어든 그는 임필성 , 김지운, 장준환 , 황동혁 등의 감독들 눈에 띄었고, < 플래닛 비보이 > 이후 5년이 갓 넘은 시간 동안 착실히 필모를 쌓아가며 자신의 지장을 확실히 남겼다. 길이와 장르, 공동작업과 국적을 가리지 않은 전천후 행보였다. 모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Hot)한 영화음악가다. 2010년 <악마를 보았다>를 필두로 2011년 < 도가니 >, 2012년 < 광해 >, 2013년 < 화이 >로 데뷔 이후 4년 연속 국내 영화 시상식 음악상을 거머쥐었고, <도가니>와 <광해>는 도합 1,700만에 이르는 관객몰이에 성공하며 많은 공감대를 얻어냈다. 게다가 < 라스트 스탠드 >로 한국 영화음악감독 최초의 할리우드 상업영화 스코어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대중을 사로잡고, 영화감독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비밀이 궁금했다. 최근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하셨고, 역시나 꽤 센 영화입니다. 제가 예전부터 하드보일드와 스릴러 장르 영화들을 좋아했어요. 일로서 하려면 영화라는 거 자체가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잖아요? 진행되기 위해서 투자도 필요하고. 네임 벨류 있는 감독이 네임 벨류 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드림팀을 짜듯이 하게 되는데, 그런 식으로 처음 했던 게 <악마를 보았다>였어요. 그때 이런 배우와 이런 감독이 아니면 평생 못해보겠다 싶었는데, <화이>도 (마찬가지로) 시나리오를 볼 때 이런 조합이 아니면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캐스팅 전에 먼저 시나리오를 받아보신 건가요? 아뇨, 캐스팅이 어떤 어떤 분들이 되었다는 것만 대략 알고 (있었고), 그 전에 < 카멜리아 프로젝트 > 중 ‘러브 포 세일’을 장준환 감독님과 함께했었기 때문에 왕래가 간혹 있었어요. 근황을 묻다가 <화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책 보내줄게’ (해서 작업하게 되었죠). 장준환 감독님은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소개로 알게 되었어요. 홍경표 감독님은 영화 일 하기 전부터 지인을 통해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러브 포 세일> 때 소개받고 작업을 같이 하게 됐죠. 장준환 감독님과 작업은 어떠셨어요? 작업 스타일이나. 감독님들이 다 다르세요. 작업하면서 감독님들이 연기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것들이 있고, 음악에서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 디렉션을 어떻게든 잘 따르려고 많이 노력했죠. 기대치라는 게 생기니까, 그 영화의 기대치 때문에 더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상황도 생기는 거고, 제가 저를 더 괴롭히게 되죠. 이 정도면 됐는데 하는 지점이 점점점점 상향 조정 되다 보니까. 부담감이 좀 있으시겠어요. 그죠. 끝나고 나면 허탈해 하고. 장준환 감독님이 좀 천재과라 하잖아요. 꼼꼼하게 디렉팅 하시는지? 네, 되게 꼼꼼하신 편이에요. 장준환 감독님은 지점 지점마다 집착이 강하세요. 그래서 그 집착을 채워주는 게 제일, 늘 어려웠어요. <화이>에서는 한 번 보면 안 보이는 부분들이 되게 많아요. 저도 여러 번 보다가 발견한 지점들이 되게 많고요. 편집본을 보면서 여기서 왜 이 컷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이 소리가 왜 나는 건지. 소리까지도 (신경을 썼죠). < 지구를 지켜라! >때도 한번 보여주셨지만 상징적인 것들을 좋아하세요. 뭐 (예를 들어) <화이>에서는 탄피가 떨어져서 굴러가는 씬(중반의 병원)에서 보면 사운드 디자인하고 믹싱할 때 탄피 굴러가는 소리만 제가 몇 시간을 찾고 그랬어요. 그게 굴러감과 동시에 화이 생모를 죽이러 오는 살인청부업자의 휠체어 바퀴 소리가 딱 물리는, 그런 묘한 상징적인 지점들을 많이 만들어놔서요. 그 음향을 피해서 또 음악은 존재를 해야 하고. 괴물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괴물이 된 자와, 괴물이 되어가는 자가 싸우는 이야기인데. 그전에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어요. 음악이 전체적으로 강하고 파괴적일 거 같은데 그보단 애수 어리고 서정적인 거 같습니다. 의도하신 건가요? 감독님이랑 그런 것들을 끄집어내서 그 주제들로 두 시간 동안 화면 안에서 관객들에게 밀어붙이면 불편한 것들이 많이 생기고 그러니까, 음악으로 이런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거죠. 귀에 들리는 건 멜로적인 음악이 많이 들리는 거고, 그 사이 사이에는 미니멀한 음악이라든지, 제 나름대로 장치적으로 구성해놓은 음악들이 전체적인 드라마와 사건을 끌고 가는 데 힘을 보태주는 거죠. 처음에 설계를 할 때는 작정하고 비틀려고 많이 설계를 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극장에서 두 시간 동안 그 뒤틀림을 볼 때, 상업 장편영화다 보니 대중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어쨌든 <화이>라는 영화가 소년이 킬러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적으로 슬픈 인간의 모습이라 감정적인 지점을 계속 건드릴 필요도 있었어요. 관객들이 호응할만한 상황을 만들 필요도 있었고요. 주제가를 요조 가 작사 작곡을 했는데요, ‘앨리스 인 위어드 랜드(Alice in weird land)’요. 그건 어떻게 선택하게 된 건가요? 선택을 했다기보다는 제가 요조 씨에게 의뢰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빠져있던 70~80년대 영화에는 주제가라는 게 있잖아요. 아카데미에서도 주제가상이란 걸 따로 주고 스코어 부문이 따로 있는데. 제가 주제가를 작업한 적이 없는 거 같더라고요. 근작 중에도 007를 보면 잭 화이트가 주제가를 따로 작업하고, 스코어는 데이빗 아놀드가 맡고 했었는데, 그런 것처럼 곡을 써서 가수에게 주는 것 보다는 장면을 보여주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곡 작업을 해보자, 가사도 이렇게 써보고 하면서. 그래서 ‘위어드 랜드’라는 게 이상하다 못해 공포감을 주는거잖아요. 공포감을 주는 이상한 느낌의 영화 <화이>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앨리스’가 소년 ‘화이’의 얘기를 담아낸 거죠. 그 음악이 들어가는 씬에 그런 스타일의 곡이 필요했기 때문에, 요조가 작사 작곡을 한 것을 제가 편곡했어요. 그 장면과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전체적인 편곡이나 악기 사운드를 통해 배가하려고 했죠. 엔딩 크레디트의 그림들과 곡이 잘 어울렸어요. 장 감독님이 소년 감성을 놓치고 싶지 않아 했어요. < 아저씨 > 같은 영화 보면, 인간 감성이 별로 안 느껴지는데, ‘화이’라는 캐릭터는 그렇지만 항상 소년 감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킬러와 소년 감성을 교차하고 싶어 했죠.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교복 입고 그렇게 동년배 아이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보여주니까, 교복을 입고 총을 쏘는 장면 같은 것들도 뒤틀리고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생기는 거잖아요. <화이>는 음원으로만 출시됐어요. CD로는 발매 계획이 없으신 건가요? 결국은 CD를 사려고 돌아다녀도 살 곳이 없더라고요.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상점이 안 보이다 보니까 별로 그렇게 의미가 안 생겨서요. <화이> 같은 경우는 비매품으로 소량 만들긴 했어요. 사운드트랙 CD들이 말씀하신 대로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기가 힘들잖아요. <광해>같은 경우는 벌써 절판이 됐더라고요. < 회사원 >이나 < 남자 사용 설명서 >는 음원조차 없고요. 음원을 출시할까 생각을 했었는데요, 영화 자체가 어느 정도 흥행을 하고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동의를 해줘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회사원> 같은 경우는 그 당시에 음악저작권협회와 문제가 있을 때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 배급사에서 약간의 리스크가 될 수 있는 부분들은 하더라도 나중에 (하자 했어요). 근데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김지운 감독님과는 작업을 많이 하셨습니다. 단편부터 쭉 하셨는데요. 어떤 부분에서 호흡이 잘 맞는 거 같으세요? 제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공부가 많이 돼요. 영화적인 설명이나 디렉션을 굉장히 잘 해주세요. 상황 상황, 여기서 필요한 게 무엇이다, 라는 걸 잘 가르쳐 주시죠. 일단 제 영감이나 상상력에 맡겨 놓다가 그게 일치하는 부분은 그냥 가고, 어떤 부분들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프로페셔널한 것들을 체크해주세요. 저 같은 아티스트 베이스가 있는 영화음악감독들은 가다 보면 한없이 옆으로 빠질 수 있는데 그걸 잡아주시죠. 장영규 감독님도 김지운 감독님과 작업을 하셨는데, 굉장히 많이 들려주신다,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레퍼런스 같은 게 확고하신 듯하고요. 김지운 감독님은 음악을 평소에 이것저것 많이 찾아 들으시면서, 이런 류의 음악을 꼭 써보고 싶다, 클래식도 이런 건 어떤 장면을 찍을 건데, 거기 쓰면 좋지 않겠냐, 미리부터 염두하는 부분도 있어요. 찍어놓으시고 나서 이렇게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이런 것도 있고요. 상업 데뷔작이었던 <악마를 보았다>는 수위가 셌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으셨을 때부터 애초에 그렇게 센 수위를 예상하셨나요? 전 그게 그렇게 사람들이 그렇게 힘들어할지 몰랐어요. 제 입장에서는 인간의 내면을 미학적으로 다른 지점에서 다뤄주는 것들, 예전에 <시계 태엽장치 오렌지> 같은 것도 살육하는 게 적나라하게 나오진 않지만, 주인공의 악마와도 같은 패륜성을 끝까지 보여주잖아요. 그런 걸 현실로서 접할 수 없고, 문학과 같은 예술로 접할 수 있고, 또 그걸 비주얼의 세계로 옮겨오기도 하는데, 사진과 그림도 그런 게 많이 있죠. 그런데 유독 영화이다 보니까 더 생생하게 다가갔던 거 같아요. 이만하면 상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저도 점점 바뀌게 되는 거 같고요. 대중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나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절감하는 거죠. 그러니까 <악마를 보았다>도 피드백을 통해서 그게 세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못 보겠더라’ 하지만 난, 왜 못 보지? 그런 거랑 비슷한 거 같아요, 오페라를 지루한지 모르고 봤는데, 어떤 사람들은 보다 자기도 하듯이 사람들마다 예술을 이해하는 폭이 다양하고 다르니까요. 그럼 <악마를 보았다>를 통해서 감독님의 대중적인 수위가 일반 대중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신 거잖아요. 그 이후에 음악 작업에 있어서 영향이 있었던 건가요? 그죠, 작품을 보는 시각이 계속해서 저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 거 같고요. 계속 환경으로부터 생기는 학습이 쌓이니까요. 그래도 상업영화 첫 작품에서 그런 충격이랄까, 그런 게 왔었네요. 네, 전 잘 될 줄 알았어요. (웃음) 그 영화가 <아저씨>와 1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는데, <악마를 보았다>가 개봉하면 <아저씨>가 2위가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여자가 아니다 보니 원빈 씨가 그렇게 멋있다는 데이터도 없었고요. (웃음) 이 영화도 영화가 센 만큼 음악이 무척 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화이>처럼 감성적인 접근은 하신 게 있으신 거 같더라고요. 보사노바 음악도 사용되었고요. 음악 감독으로서 일반 고어무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어요. 시나리오 때부터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일반 고어무비와는 다른 지점들이었어요. 고어무비에서는 인간의 내면 같은 거 생각도 안 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주제는 결국 인간의 내면에서 샘솟아 나오는 처절한 복수심 때문에 잘근잘근 한이 풀릴 때까지 몰아붙이는 영화거든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악을 구체적인 형상화로 잘 만들어 놓은 영화였고, 그걸 전달해야 했어요. 어떻게 보면 내면이 가지고 있는 악도 슬픔의 한 종류죠. 그게 없으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면에서 그런 선과 악이 싸우기 때문에 그냥 법에 맡기자, 쟤도 인간인데, 그렇게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택하고 느끼는 지점으로 계속 복수하는 걸 찍은 거기 때문에 슬픔이 더 강하게 전달되도록 했고, 음악 자체가 멜로적인 끈적임을 많이 느껴지도록 했어요. 제가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의 제목은 <아열대의 밤>이었어요. 그래서 처음 음악 스케치 할 때는 열대의 후끈한 열기와 끈적함을 지점으로 삼았죠. 남미영화들 있잖아요. 전 시나리오를 받기 전에, 이런 영화를 꼭 해보고 싶었다라는 영화가 < 성스러운 피 >였거든요. 그 음악도 좋고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렬함을 좋아해서요. OST 속지를 보면 ‘스릴러의 백미는 영화음악’이라고 적혀있는데, 스릴러 음악이 관객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기능적인 음악일 수도 있는데요, 어떻게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전에 음악을 하면서 다다르고 싶었던 지점이 형이상학적인 음의 배열과 어떤 리듬과 화성 같은 부분이었어요. 항상 스릴러 영화, 특히 고전으로 갈수록 히치콕 영화 같은 데 보면 클래식 쪽의 현대음악, 컨템포러리 같은 그런 기법부터 해서 재즈 쪽의 프리뮤직 같은 스타일도 많이 쓰이니까, 그런 영화들을 보게 되면 제가 동경했던 음악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서 (흥미가 있었죠). 버나드 허먼의 < 택시 드라이버 > 음악을 들으면 되게 격조 높고 서정적인 멜로디 라인으로 가다가 갑자기 형이상학적으로 틀어지면서, 그때 주는 엄청난 충격과 파장이 있잖아요. 그래서 <악마를 보았다> 음악도 되게 서정적으로 가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뒤틀기도 하고요. 녹음할 때도 일반 클래식 녹음할 때 같이 따뜻하게 녹음되는 걸 최대한 피하려고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가 할 때 쓰이지 않는 마이크나 장치들을 사용했어요. 들을 때 뭔가 이렇게 기분이... 나빠진다기보다는 불편한 지점들이... 왜 그랬을까?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과도한 리버브 사용이라든지. 과도한 저음의 사용이라든지. 그런데 영화음악이 아니라면 제가 따로 음반 작업을 하면서 그런 작업을 하기는 힘들어요. 어떤 스릴러를 좋아하세요? 80년대 이전 스릴러들이 많이 참고가 되었다고 하셨던데요. <택시 드라이버>도 있고요, 히치콕 영화들 많이 좋아해요. 버나드 허만이 작업한 스코어가 있고 모리스 자르가 작업한 <토파즈> 같은 작품이 있는데, 전 버나드 허만 보다는 모리스 자르를 더 좋아했어요. (히치콕의) 후기 음악들이 어떻게 보면 더 낭만적인 부분들이 있어요. 그리고 < 프렌치 커넥션 >도 좋아해요. 그 영화에선 재즈에서 사용되는 악기들을 가지고 형이상학적인 음들을 많이 만들었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 큐들을 짧은 편입니다. 영화음악은 그런 식으로 시간의 제약이 강한데 그에 대한 한계나 불편함은 없으셨나요? 처음에는 불편하다 생각을 했는데요, 나중이 되니까 그에 대한 재미가 있더라고요. 도전이 생기니까요. 되게 짧게 큐를 구성해놓고 효과가 극대화될 때 내가 작업을 잘하고 있구나. (웃음) 40여 곡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요, OST에 다 실으신 건 아니시죠? 네, 엠비언스 같은 음악들을 많이 썼기 때문에 그런 곡들을 감상하시라고 내놓기는 좀 그렇죠. 시나리오를 먼저 받으셨죠?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에는. 보통 촬영 중에 편집이 끝난 다음에 작업을 하시는 편이세요? 아니면 시나리오 받자마자... 그것도 영화마다 다른 게, <악마를 보았다> 같은 경우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게, 상업영화로서는 심플한 상황도 아니고 김지운 감독님도 스릴러를 처음 도전하시는 거니까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작업을 하면서 감독과의 정서를 상의하며 여기선 유혈이 낭자한데, 이런 느낌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음악 설계가 먼저 들어갔죠. <라스트 스탠드> 같은 경우는 파이널 편집이 다 끝난 상태에서 (들어갔어요). 할리우드 영화 같은 경우는 특히 음악이 끊이지 않고 계속 들어가기 때문에 신나게 처음부터 끝까지 팝콘무비로 달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 음악도 마찬가지로 연속성 있는 느낌 필요했던 거죠. 영화마다 다 다른 거 같아요. 어떤 방식이 유리한지는 감독님과 제가 고민해서 정하게 되는 거죠. 그다음 작품은 좀 편한 작품을 하시나 했더니 <도가니>였습니다.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작품이었는데, 감정적으로 지치시지는 않았는지요? 음식도 그렇잖아요. 막 매운 걸 먹고 나서는 다신 먹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또 다음 날 되면... (웃음). 굉장히 징하게 작업을 하고 나서 한동안 허탈해 하다가 <도가니> 시나리오를 보는데, 내가 아직 완전 연소가 안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는 게 있구나. 결혼도 안하고 아이들과 가까이 있을 일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는데, <도가니>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까 이 안에서 막... <악마를 보았다>를 읽을 때 같은... (웃음) 또 다른 <악마를 보았다>를 보는 느낌. 감독님들은 다 다르신 데, 저 혼자 <화이>까지 ‘악마’ 삼부작을 작업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고발극이고 사회 드라마라서 톤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초반에는 스릴러 느낌도 나고, 후반의 법정 장면은 자칫하면 신파로 빠질 수도 있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과잉이 될 수 있는데, 음악이 절제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항상 음악을 부족하게 쓰는 영화가 좋지 않을까, 하는 편이에요. 특히 어떤 주제 자체가 엄청나게 센 파장이 있는 경우는 더더욱이요. <도가니>에서는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스타일로 스케치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도가니>는 피아노곡이 많던데요. 네, 너무 레퍼런스를 받은 게 있으니까 그걸 치환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걸 피아노로 치환하고, 기타라는 악기보다도 아이들과 매치시키기 좋은 악기가 피아노라고 생각해서 작업하고, 중간 중간에 약간씩 기타 연주를 넣었죠. 황동혁 감독님의 전작이 < 마이 파더 >였는데, 아무래도 신파에 대한 강박이 있었나요? <도가니>가 상업적으로 울리는 것도 필요한 작품이죠. 중요한 것은 실화를 다룬 거기 때문에 이 작품을 작업할 때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게, 그 사람들의 아픔을 우리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요. 어떤 부분은 다큐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음악이 존재감 없는 것도 좋겠다. 황동혁 감독님도 워낙 머리가 좋으신 분이라 수 싸움을 잘한 거 같아요. 다른 사회문제를 다룬 영화들보다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많이 만들려고 하셨어요. 원작에서 보면 조성모의 노래라고 되어 있었는데, 영화에서도 직접 조성모의 ‘가시나무 새’를 넣으셨어요. 감독님의 의견이셨나요? 그건 황동혁 감독님이 소통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대중가요가 여기선 필요한 시점인데, 원작 책에도 조성모가 있으니 가시나무 새’를 쓰는 게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했던 거죠. 제가 <남자 사용 설명서>같은 영화에서는 선곡에도 관여를 많이 하게 되는데 <도가니>에서는 워낙 대중과 소통하는 지점이 필요해 (감독님이 직접 하셨고), ‘가시나무 새’ 뿐 아니라 노래방 룸살롱 장면이 있는데, (교직원들이) 여자들이랑 술을 마시고 흥건히 취해서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부르는 장면도 모두 감독님의 선곡이에요. 가사와 정반대의 상황인 거잖아요. 실질적인 데뷔작은 단편 <멋진 신세계>였죠? 2006년에 작업하셨으니까요. 그땐 그런 스타일의 영화들이 나의 영화다, 라고 생각했었죠. (웃음) 그 영화가 개봉을 못 하고 < 인류멸망보고서 >로 묶이게 되었잖아요. 단편들을 모두 따로따로 작업하신 건가요? 네, 그 프로젝트가 변형이 많이 됐어요. 한재림 감독님까지 세 분의 감독님(김지운, 임필성)이 작업을 하게 됐다가 아무래도 일반 상업영화가 아니라 실험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성이기 때문에 투자가 흔들릴 때마다 상황이 많이 바뀌게 되었죠. 그래서 결국 <인류멸망보고서> 패키지로 나오게 된 거죠. 그럼 한 작품 끝나고 시간 지나서 또 한 작품을 하시고... 그럼 작품 간격이 굉장히 길게 있었겠네요. - 네. 뭔가 그런 영화들을 작업해야 내 삶이 진짜 예술을 하는 느낌도 들고, 몸도 더 건강해지는 거 같고. 회복도 잘되고... (웃음) 쉽지 않은 SF물, 좀비물도 있고 그랬는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때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것들이 매력적이었고요, 좀비물들, < 새벽의 황당한 저주 >를 보면서 이건 좀비물인데 이런 블랙코미디가 많이 생기고, 또 조지 로메로 감독의 <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 같은 좀비물들을 보며 거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들 뽑아서 (참고했죠).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 형사들의 칠판 보셨죠? (벽면에 사진과 메모가 붙은) 그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거든요. 작업이 다 끝나면 꼴도 보기 싫고 그래서 다 버리지만요. 집착증 환자처럼 보드에다 영화라든지 OST의 관계도들을 점점점 그려 나가요. <화이>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데가 아닌, 저만 볼 수 있는 벽장 안쪽에 보드를 설치해서 매일 그거 들여다보면서 작업을 했어요. 또 우리나라 흥행 영화의 데이터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도 놓고 이 영화와의 간극, 이것이 가지고 있는 요소들, 이런 걸 색깔로 해서 신파적인 요소가 강하다, 하면 빨강색. 이런 식으로 보드를 만들어 나갔어요. 감독님이 영화를 비주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지만 저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두 시간짜리의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한 큐가 끝나면, 쉼표를 길게 줄까 짧게 줄까, 아니면 끊지 않고 갈까를 설계를 해놓게 되죠. 여기서 여기까지는 최근 영화들이 클리셰들을 많이 써서 소통이 된 거 같으면 이번에는 클리셰를 좀 써주자. 그런 식으로. 단편작업을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장편하고는 많이 다른 데, 그런 부분들이 어떠셨나요? 장편은 항상 대중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방금 말씀드렸던 복잡한 관계도를 만들어 작업을 하게 되는데, 단편은 오히려 관계도 없이 리액션만 가지고 할 수 있으니까 덜 정치적인 작업을 하게 돼요. 음을 덜 정치적으로 쓰게 되는 거죠. 아무래도 상업영화는 무서운 게 소수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드는 영화는 거의 없으니까요, 단편영화는 그렇지 않으니까 소수만 볼 수 있는, 소수에게 그동안 내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툭툭 던질 수 있는 기회인 거죠. 거의 프리토크와 같은 작업인 거죠. 그림 보면서 한 번에 보고 끝내버리기도 하고. 오히려 그런 게 덜 정교해도 더 맛이 있는 지점도 있어요. < 사랑의 가위바위보 > 같은 경우는 특이하게 음원이 출시됐습니다. 그런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만약 장편이었으면 하다 지칠 수도 있는 건데 단편이라 즐겁게 할 수 있었죠. 어떻게 보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보다는 제 추억을 하나 남기는 걸로 (작업을 했죠). 그게 왜냐하면 <라스트 스탠드>로 김지운 감독님이나 저나 만신창이가 된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가볍게 해보려고 해서, (웃음) 풋풋한 느낌의 나의 기념품이 되었으면 하는 작품이었어요. 무엇보다도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있는데요, 특이하게 공동 작업이었습니다. 김준성 음악감독과 공동 작업이었는데, 어떤 계기로 하계 되셨나요? 장영규 음악감독님 작업하시는 걸 보면 달파란 음악감독님과 공동작업을 많이 하시는데, 그런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혼자 외롭기도 했어요. 그러다 김준성 음악감독님의 작품을 듣게 되었고, 저는 정식 음악 공부의 길을 걷지 않고 음악을 한 사람인데, 김준성 음악감독님은 클래식을 전공하셔서 뭐랄까... 저의 동경을 살 수 있는 분이었죠. 마침 저작권협회 관련 모임을 통해 친분을 쌓을 수도 있었고요. <광해>는 제가 먼저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저의 음악 포인트는 음악을 최소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의 기대치는 스펙터클의 끝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었고, 제가 해석했던 방향을 감독님과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다크 나이트> 와 같은 해외 대작 영화들이 개봉을 하게 된 거예요. 결국 음악이 너무 많이 필요한 작업이 되어 버린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저는 이걸 빨리 마치고 <라스트 스탠드>를 하러 넘어가야 했고, 그래서 이럴 때 공동작업을 해보지 언제 해보겠냐는 결론에 도달했고요. 원래는 김준성 음악 감독님께 부탁드리며,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한테는 제가 요 정도까지 했으니까 이러저러한 분이 작업을 하게 되셨고 전 이제 사라지겠습니다,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그냥 같이 공동작업 하는 상황이 되어서 클래시컬한 사운드를 김준성 감독님이 하셨죠. <광해> 인트로를 보시면 완전히 제 스타일이고요, 집도 절도 없이 떠돌던 악사들의 정서고, 중간중간 클래시컬하게 귀족 냄새가 나는 음악들은 죄다 김준성 감독의 작품이죠. (웃음) 영화 시작할 때 이병헌 이 손질 받던 장면에 나오던 음악도 꽤 클래시컬하게 들렸는데요. 그게 사실은, 전 그런 음악들은 그렇게 클래시컬하다고 생각 안하고요. 어떻게 보면 탱고나 유럽 변두리 지방 왈츠가 많이 가지고 있는 정서고, 정말 클래시컬한 건 오스트리아 느낌? 의 그런 음악들인 거죠. 맘 단단히 먹고 콘서트를 가야 할 거 같은 그런 음악이요. (웃음) 사극이었는데 애초에 국악은 전혀 고려 안 하신 건가요? 제 의도는 변두리 지방, 집시 클래식 느낌으로 다 밀고 가려고 했어요. 왜냐면 시나리오 자체에서 왕이 주인공이 아니라 광대가 주인공이고 광대가 왕의 자리에 앉으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전 그 재미를 음악적으로 배가시키려면 장중하거나 우리나라의 국악 같은 느낌보다는 약간 하이브리드가 필요한 게 아닐까. 제 해석은 그랬어요. 저는 이 작품을 사극이라 생각하지 않고, 일본 애니메이션 보듯이, 일본 애니메이션 보면 이탈리아 음악도 나오고 온갖 스타일이 나오고 그러잖아요. 어떻게 보면 할리우드 대작 느낌이 좀 들었어요. 클래시컬한 느낌. 김준성 감독님이 베이스가 단단하셔서 그런 걸 진짜 잘 잡으세요. 베이시스트였던 경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에 대한 감각이 좋으신 것 같아요. <화이>나 <도가니>, <악마를 보았다> 모두 현의 부분들이 굉장히 센 데, 오케스트레이터 작업은 따로 하시는 건가요? <악마를 보았다> 때는 제가 거의 다 했고요, 점점점 가면서 저와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과 나눠서 (하게 되죠). 저는 주로 피아노 건반에서 화성적으로 제가 구현하고 싶은 것들을, 일반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화성 진행을 눌러가듯이 만들고 그 후 현으로 치환하는 작업을 하게 되는데, 저와 같이 작업하는 음악팀 친구들 중에는 클래식 전공한 친구들이 있어서, 어쨌든 음악은 보는 관점이랑 접근하는 시선이나 지점에 따라서 다른 정서를 뿜어낼 수가 있으니까요. 처음엔 제가 작가주의적인 음악감독이 될 줄 알고 그렇게 살아야지, 하고 영화음악감독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너무 필요한 것들 많더라고요. 영화라는 게. 내가 좋다고 느끼는 지점보다도 남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는 게 많으니까요. 산업화, 기능화가 되어가는 거 같아요. 그렇죠. 점점 그게 더 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기능화에 대한 압박도 심해지고요. 그 스트레스를 어쩌면 단편으로 풀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단편으로 푸는 게 가장 건전한 방법인 거 같아요. (웃음) 이병우 음악감독님과도 약간 비슷한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음악을 시작할 때 많이 힘이 됐던 선배님들 중에 한 분이세요. 왜냐하면 그 분도 연주자였고. 연주자와 영화음악 모두 가장 호황일 때 활동하신 선배님이시죠. (웃음) 그런 선배 음악감독님들의 작업들을 많이 참고해서 작품마다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어서 작업을 하게 돼요. 이병우 감독님은 아티스트 베이스이지만 조영욱 감독님은 선곡과 프로듀싱 능력을 가지고 작업을 하시니까 그 분만의 시각을 작업하는 데 참고를 많이 하려고 하고 있죠. 달파란, 장영규 감독님은 또 다른 지점에서 오신 분들이고. 영화 나올 때마다 보면서 이런 한 수가 있었구나, 이런 것들을 확인하곤 해요. (웃음)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라스트 스탠드>에 대한 질문인데요, 결과만 놓고 보면 많이 아쉬웠어요. 이정도 참패하리라고 생각하셨나요? 처음에는 이렇게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못했어요. <라스트 스탠드> 개봉이 1월 이었는데,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개봉 전까지 수도 없는 총기사고가 일어나고 그 때 총기에 관한 모든 영화가 다 망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전주에 개봉한 영화 < 갱스터 스쿼드 >도 망하고 < 브로큰 시티 >도 잘 안되고. 그것 때문에 요즘 < 컨저링 >같은 영화의 붐이 일어난 것도 같아요. 더 이상 총은 사람들이보고 싶지 않다는... 제 입장에서는 어쨌든 총 쏘는 영화를 언제 해보겠냐 했었는데, 저도 서부영화를 동경하면서 자란 세대였고요. 그 영화 자체가 지극히 서부영화적인 상황이었어요. 말 없고 자동차 이런 식이었거든요. 메인 테마를 들어보면 정말 웨스턴 느낌이 납니다. 표현하고 싶었던 게, 21세기의 웨스턴 음악이란? 이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에 김지운 감독님이 영화에 대해 짧게 설명할 때, < 하이눈 >과 함께 비교해 주셔서 머릿속에 딱 들었던 생각이 옛날 서부영화음악 작곡가와 같은 스코어를 만들고 싶은데, 그런 스코어는 현대물에는 잘 붙이기 어렵기 때문에 전자음악과 잘 믹스된 새로운 웨스턴 음악을 해보자고 했던 거였어요. 흥행까지 잘 됐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웃음) 전체적인 음악을 들어보면 할리우드 음악 같아요. 큐들이 굉장히 길고, 스피디한 질주 씬에선 일렉트로닉도 나오고요. 엔딩 타이틀, ‘모그 심포니’에서는 오케스트라 작업도 하시고요. ‘모그 심포니’는 영화에 나오는 곡들의 하이라이트들을 다 모아서 리믹스 버전을 (만든 거죠). 요즘 음악 추세가 리믹스가 많이 나오잖아요. 예를 들면 다프트 펑크 앨범이 하나 나오면 리믹스 버전, 혹은 어레인지된 버전만 한 100개 이상 나오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쓰였던 큐를 잘 이어서 리믹스 버전 하나로 만들어서 마지막 엔딩롤 올라갈 때 쓰려고 ‘모그 심포니’를 OST에 집어넣었죠. 국내 영화음악과는 다른 거 같아요. 국내 영화음악은 큐들이 짧게 들어가는 데 할리우드 음악들을 길게 사용하고 있잖아요.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정서가 없잖아요. 그게 제일 힘들었던 건데, 워낙 그쪽 산업시스템이 글로벌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감정이란 것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동양에서 슬픈 것이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음악으로는 감정을 주는 것보다 속도감을 높여줘야 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리고 동기부여 같은 기능들이 필요한 거고요. 한국영화들보다 훨씬 더 기능적으로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거군요. 그렇죠. 한국영화들이 훨씬 더 음악의 오리지널리티 쪽에 가깝고 할리우드에서는 어차피... 제일 어려운 게 그거예요. 저랑 감독님이랑 이렇게 하자 해서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고, 특히 음악 같은 경우는 임직원분들 중의 관리하시는 분들이 다 컨펌을 해요. 할리우드는 말이나 음악을 들려주고 시작하는 게 아니고 제가 항상 문서를 만들어요. 질문사항이 딱 있으면, 큐 24-A의 시작점에 대해서 모호하게 생각한다, 그러면 반성문 쓰듯이 글짓기를 해야 해요.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해서 이런 건데 너희들의 생각이 그러면 요렇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그런 걸 다 글로 설명을 하고 작업을 해서... 완전히 논리네요. 논리적인 피드백을 거쳐서 음악이 나오게 되는. 그렇죠. 제가 그렇게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어요. (웃음) 아침마다 이메일을 열면 그런 몇몇 담당부서에서 답변을 달라는 메일이 와있어요. 그런 그 답변을 쓰고 작업실로 가면 낮 한 시쯤 돼요. 집에서부터 산타모니카에 있는 작업실로 가게 되는데, 한스 짐머의 작업실에 세 들어 있다 보니까 필요한 것들을 바로바로 오전에 이야기하면 오후에는 다 와있어요. 그.. 산업의 첨병에는 항상 유통이 있는 거 같아요. 보도 듣도 못한 기타도 관심이 있다고 하면 어디서든지 오후에 다 와있더라고요. 그런 좋은 것이 있는 반면에 수많은 글짓기를... (웃음) 작가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될 정도였죠. 어휘력과 글에 대한 한계를 매일매일 절감했거든요. 제가 스마트폰, 구글링, 어플리케이션 같은 거에 되게 경계가 많았는데 바로바로 번역을 해주니까 다 쓰게 되더라고요. 거기서는 음악감독이 아니고 그냥 컴포져잖아요. 뭔가 어떤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면 거리도 생기고, 존경심도 부르고 그렇게 되는데, 컴포져 composer, er은 별로 그런 걸 수반 안하는 거 같아요. (웃음) 그냥 직책인 거 같아요. <라스트 스탠드>는 국내에 사운드트랙이 안 나왔고요, 해외에는 나왔는데 조금 늦게 발매가 됐더라고요. 영화 개봉이 좀 지난 다음에. 그 영화가 마니아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있어서 DVD 같은 게 엄청나게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참 사람 욕심이 특이한 게 존 카펜터 영화 같은 경우는 극장에서 보고 싶진 않은데, 꼭 비디오나 DVD, OST를 다 사서 모으는 그런 사람들이 있잖아요. <라스트 스탠드>도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존 카펜터 영화처럼 그런 컬트 레전드가 되어가고 있다, 좋은 거다, 고 하더라고요. 전 뭐 좋을 수도 있죠. 아티스트가 볼 땐 제가 작업한 영화가 컬트 레전드야... (웃음) 옛날에 80년대 그런 영화들 많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나 제작사는 극장에서 수입을 만들지 못해서... 어디 OST 오덕들의 차트를 보니까 그런덴 워낙 게임 OST가 많아서 전체 순위는 100위 중에서 13위 였는데, 지난주까지 <라스트 스탠드>가 영화중에서 3위였어요. 감독이나 제작사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라스트 스탠드> 음악 작업한 게 있거든요. 컬트스러운, 일반 할리우드 영화음악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들이요. 씨네21 인터뷰를 보면 뮤직 에디터의 필요성을 지적하셨어요. 뮤직 에디터란 정확히 어떤 직책인가요? 작곡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곡에 칼을 잘 못 대요. 원곡이 있는데, 영화의 편집에 따라 순서를 바꾸는 게 영화적으로 도움이 된다, 하면 그걸 하는 거에 있어서 전 굉장히 거리감이 있고 불편한데 그걸 뮤직 에디터가 편하고 합리적으로, 음악 감독이 이해할 수 있고 또 감독이나 스튜디오에서도 이해하괏옥졀?큐레이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거죠. 또 제가 음악 작업을 하기 전에 템프 뮤직(편집자 주: 영화를 편집하고 작곡가에게 음악을 의뢰하기 이전에 감독이 의도하는 음악의 분위기를 지정해 주기 위해 임시적(Temporary)으로 사용하는 음악)을 필요한 곳에 적재적소 배치를 해서, 음악이 이런 형식으로 연결돼서 이어지는 효과를 스튜디오와 감독에게 보여주는 역할도 하게 되고요. 우리나라에서 현장편집과 같은 느낌이네요. 그렇죠. 미국은 현장편집이 없어요. 대신 뮤직 에디터가 있어요. (웃음). 재미있는 게 뭐냐면 암암리에 미국에서는, 할리우드에서는 음악의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을 하고,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현장의 중요도가 높고 후반작업의 중요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후반 쪽에 가면 미국에서는 에디터들 있잖아요. 총 슈퍼바이저 같은 역할을 해요. 믹싱하는 데까지 가서 소리도 지르고. 감독이 편집권을 못 갖게 되면 에디터가 왕이 되는 거죠. 그처럼 할리우드는 후반작업에 힘을 굉장히 많이 실어주고, 또 그쪽에 투자, 배분이 많이 되어있는 거겠죠. 미국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음악은 오케스트라 어디서 녹음할래, 그런 얘기들을 쉽게 해요. 베를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웃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은 아마 없을 거예요. 물론 시장의 사이즈 때문에. 그래서 저도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영어로 만드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가다 보면 언어적으로 전달 못하는 뉘앙스들을 사운드와 음악으로 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그런 쪽에 더 힘이 실리고 투자가 많은 게 아닌가 싶어요. 미국영화 말고 일본의 타케 마사로 감독의 < 에덴 >이란 작품도 작업 하셨는데, 영화는 못 봤는데, 게이 바의 드래그 퀸이 나오는 영화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건가요? 한국에서 씨네콰논 극장을 하시던 이봉우 대표가 오랜만에 제작하신 작품이고, 일본 영화도 작업을 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시기가 잘 맞아서 하게 된 거죠. <도가니> 딱 다음에 작업을 하게 됐어요. 제가 정말 모르는 다른 나라의 이상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죠.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셨어요. <플래닛 비보이>와 < 뒷담화 >. <플래닛 비보이>는 좀 더 다큐고, <뒷담화>는 페이크 다큐였죠. 어떻게 보면 장르적이지도 않고 내러티브도 없고, 캐릭터도 약간 흐릿한데 작업하실 때 극영화와 차이점이 있나요? 다큐멘터리는 덜 계획적으로 소스를 수집한 다음에 관객들이 가장 보기 좋은 지점으로 조화롭게 배열하며 만들어가는 거여서 해프닝이 많이 생겨요. 해프닝에 대한 재미가 있는데, 예상하고 작업하는 게 아니고, 마음가짐에 없다가 문득 이런 게 부각되면 더 재미있을 거다 그런 게 있죠. 함께 작업하는 스태프들이 내는 작은 아이디어들부터 고민을 하다 보면 하나의 큰 얼개가 나오게 되기도 해요. 좀 더 작업방식이 자유스럽네요. <플래닛 비보이>는 아무래도 미국 영화니까 템프 트랙을 깔고 시작하다 보니까 (그렇게 자유스럽진 못해요). 다큐멘타리인데도요? 네. 그런데 한국에서 이재용 감독님과 함께 작업할 때는 훨씬 자유스럽죠. 작업기간은 좀 더 길수밖에 없죠. 처음부터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작정을 하고 끌어가는 게 아니다 보니까. 촬영 전부터 콘셉트를 잡지 않고 후반에 하게 되는 건가요? 전체 콘셉트를 잡아놓는데, 중간 중간 계속 소스나 상황에 따라 이걸 더 부각시키는 게 괜찮겠다 하면, 처음 콘셉트와는 좀 다르게 되는 경우가 생겨요.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는 코미디를 하셨는데, 굉장히 음악이 많이 나오는 영화였어요. 약간 B스러운 코미디와도 잘 어울렸고요. 음악이 얼마나 사용되었나요? <라스트 스탠드>보다 더 썼을 거예요. 짧게 짧게 계속 쓰였거든요. 이원석 감독이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했고, 미국 B무비에 대한 동경이 많았어요. 사실 영화 자체도 한국에서는 구현하기가 힘든 상황의 영화잖아요. 결국 만들어내면서 미국 B무비를 하듯이 그런 주묍엔였?해서 음악 작업을 하다 보니까 거의 그만큼의 음악을 쓰게 된 거죠. 이 영화에서 보면 마카로니웨스턴에서 나올법한 음악들도 나와요. 어떻게 보면 더 <라스트 스탠드>보다 더 서부극 같은... 네, 아예 대놓고. (웃음) 그래야지 더 B무비의 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질펀함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으니까요. 모든 씬들의 오리지낼리티를 최소화 하다보면, 그 다음에 그런 것들을 모두 합쳐놓고 보면 오리지낼리티 있게 영화가 나오는 게 사실 B무비거든요. 그런 실험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동생으로 가깝게 지내던 감독이어서 그런 요구가 사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으면, 부드럽게 오는데 전혀 뭐... ''형 이거 우리 해줘야 돼!!'' 이렇게 와서 (웃음). 이런 거 있잖아요. ''아 왜 그거 그렇게 안돼~??'' (웃음) 이원석 감독님이 굉장히 상상력이 많으신 분 같아요. 웨스 앤더슨 같기도 하고 미쉘 공드리 같기도 하고. 그런 세계를 워낙 동경했던 감독이고,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있고, 음악도 많이 알고 좋아하고요. 이원석 감독이 재밌는 게, 어렸을 때 디제이도 했었어요.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낼 때, 파티들이 많으니까. LP 시절의 디제이를 하고, 아직도 그때 당시의 향수가 있더라고요. 사실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는데, 저와 작업하시는 감독님들, 김지운 감독님, 장준환 감독님, 이원석 감독님, 임필성 감독님. 영화감독이라기에는 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요. 너무 많이 알고. 그래서 그게 좋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디테일한 걸로 들어가다 보면 두루뭉술하게 할 수가 없는 (애로사항이 있죠). 김지운 감독님은 소리에도 굉장히 예민하셔서 제가 스트링에 톤만 조금 트래블을 올렸다고 하면 그걸 감지하시면서 고음이 좀 더 올라간 거 같애, 하시니까 그게 어떤 면으로는 섬뜩할 때가 있죠. (웃음) 되게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아니, 음악 하는 사람도 이런 건 잘 판단 못 하는 데. 그래서 제가 훨씬 더 치밀하게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저음부를 2Db를 올렸다면, 그걸 안 적어 놓으면 ‘저번엔 이렇지 않았다니까’ 이런 말을 듣고 되돌릴 때 힘들죠. <남자 사용 설명서>에서는 삽입곡도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나체로 활보하다가 검문 당했을 때는 ‘네순도르마’도 나오고요, 엔딩에서는 고리엘라의 ‘리가야’도 쓰였고요. 그럼 곡들은 디제잉을 하셨던 이원석 감독님이 선택하신 건가요? 저랑 그런 의견을 조율하는 거죠. ‘리가야’ 같은 경우도 저희 어렸을 때 클럽에 가면 (항상 나오던) 파티 음악이었거든요. (그 곡을 부른) 고리엘라가 듀엣인데 그 중 한명이 티에스토였어요. DJ였던 그가 데뷔한 그룹이기도 한데, 그런 것들 때문에 (사용하게 됐죠). 이런 음악들은 만드는 것보단 이 파티 음악을 그대로 쓰는 게 낫겠다고 감독도 강하게 주장을 했죠. 그런 선곡을 하면 항상 예산이 발생이 되기 때문에 제작자나 제작사 입장에서는 곱지만은 않은 (입장이에요). 사운드트랙이나 음원을 기대했는데 안 나와서 섭섭했습니다. 예, 저도. 원래 제작하셨던 대표님이랑 300만 넘어가면 OST를 내주시겠다 했었는데... (웃음) (흥행이란 게) 배급시기라든지 배급의 힘 등에 좌지우지 많이 되는 거 같아요. 그 영화는 어떤 극장에서는 첫날부터 교차 상영이 되기도 했었어요. 굉장히 코미디 장르도 잘 어울리실 거 같은데, 코미디가 거의 없으세요. 코미디를 하시고 싶은 계획이 있으신가요. <화이> 다음으로 하는 작품이 < 수상한 그녀 >라는 코미디에요. 심은경 , 나문희 선생님 주연작이고요. <남자 사용 설명서>와는 다른 지점의 좀 더 대중적으로 소통하기 좋은 작품이에요. 제가 우울증이 심하고 평소에는 정서 자체가 가라앉아있기 때문에, 조증이 갑자기 생길 때가 있어서 <화이> 작업할 때도 어떻게든 에너지를 조증을 만들면서 버티고 했었는데, 코미디 장르를 다음 작품으로 하니까 덜 가라앉아서 음악을 하게 되지 않을까. 굉장히 기대가 큽니다. 삽입곡 같은 경우도 보니까. <회사원>에서는 이미연 씨가 전직 가수로 나왔는데, 부르던 곡도 따로 작업하셨다고요. 네. 그건 제가 사이드로 아는 뮤지션 친구들과 습작 같은 작업을 해놨다가 영화와 매치가 잘 돼서 그걸 여기다 쓰자, 했던 거죠. 직접 이미연 씨가 부르신 건가요? 네, 이미연 씨가 부른 파트가 있고요, 어떻게 설정이 되느냐면, 전직 여가수의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구간은 이미연 씨가 부르시고, 몽타주로 이어지면서 영화의 느낌을 부각시켜줘야 하는 부분에서는 오히려 그런 게 튈 수가 있으니까 가수분이 불러주셨죠. 그걸 리믹스하듯이 절묘하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 작업할 때 조금 어려웠었죠. 음악이 좀 80년대 향수를 느끼게 하는 것 같았어요. <회사원> 영화의 그런 톤들을 감독이 만들고 싶어 했어요. 인터뷰에서 보면 좋아하시는 작곡가로 데이빗 샤이어나 랄로 쉬프린을 꼽으셨어요. 어떻게 보면 70년대 가장 핫했던 분들인데요. 장르영화들을 많이 하시던 분들이었죠. 제가 볼 때는 70~80년대가 영화음악의 황금기였던 거 같고요, 그 뒤부터 워낙 좋은 사운드 시스템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영화음악은 훨씬 더 입지가 좁아진 거 같아요. 사운드가 음악의 역할을 많이 대체하게 되는 상황이 되니까. 그분들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의 음악들은 한 큐 때문에 주먹을 불끈 쥐게 해주고, 또 그런 역할을 해주던 그 시기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죠. 정말 좋은 시절을 사셨구나. (하지만) 막상 저 같은 사람이 그 시기에 영화음악을 하라고 하면 못했겠죠. 이분들은 거의 악보를 탈곡기에서 뽑아내듯이 작곡을 해내시니까. (웃음) 자기 빅밴드와 오케스트라와 녹음하고 막. 또 빌 콘티와 같은 작곡가도 좋아했었어요. <록키>는 그냥 음악 나오면!! 개인적으로 좀 더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 있으신가요? 영화음악가 중에서요. 요즘에는 (소더버그와 작업한) 클리프 마르티네즈 같은 요즘 작곡가 좋아하고요. 미니멀한 작업하시고요. 산타올라야 같은 분도 좋아하고. 기타 하나 가지고... 한국 영화음악 하시는 분들의 음악도 많이 들어요. 한국 감성을 채우는 방식은 또 다르니까요.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꾸준히 작업하셨는데, 작업 속도가 빠르신 것 같아요. 그렇게 팀을 셋업을 해놨어요. 처음에 혼자 작업할 때는 정말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어떤 형태를 끄집어내기 전에 내가 그 형태를 잃어버릴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아예 팀을 셋업하고 파트를 나눠서 이쪽에서는 에디팅만 하게 하고, 이쪽에서는 소스만 컬렉팅하게 하고, 그럼 제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필하모닉 한 60인조 소스 좀 해줘, 그럼 빨리빨리 그게 나오니까, 금방금방 제가 근사치를 확인해볼 수 있으니까, 훨씬 빨라진 거죠. <악마를 보았다>는 거의 혼자 했어요. 오퍼레이터 하는 친구와 둘이 하다가, 아무래도 영화음악을 계속 하고 영화 사이즈가 점점 커지고, 영화라는 게 저와 맞닥뜨렸을 때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량과 인내심과 감정싸움이 필요하다 보니까, 그렇게 팀이 있으면 상처도 덜 받고, 덜 지치게 되더라고요. 모그에 있어서 영화음악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단독 개인앨범 작업보다는 점점 영화음악 쪽에 치중하시잖아요. 산업이 변화하는 것에 거스를 수도 없고요. 단독 작업이란 것 자체가, 앨범이란 것을 손에 쥘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공기처럼 떠다니게 하는 음악 작업이 힘들더라고요. 받아들이기가. 어쨌든 영화음악이란 작업은 제약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작업인 거 같아요. DVD라는 것도 만들 수 있고요. 손에 잡히는 결과물에 대한... 습관처럼 생긴 저의 집착인지도 모르겠지만, 예전에 연주하면서 세션을 할 때는 그게 다 크레디트에 남는 세상에 살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느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해도 그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살아야 된다는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음원을 보면 또 그런 게 안 나오죠. 그렇죠. 어떤 사람이 음악을 듣는데, 음반을 사서 그 안에 적혀있는 글부터 해서 이건 어디서 녹음을 했고, 누가 참여를 했고, 편곡은 어디서 했고, 이런 데이터들을 쌓고 음악을 들어왔다면, 요즘은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다는 것 자체도 되게 힘든 세상이라는 것 자체가 감당이 안 되거든요. 특히 전 베이스를 치던 사람이라서 이런 걸(스마트폰)로 음악을 들으면 베이스는 들리지도 않아요. 존재감도 없고요. 스펙트럼이나 다이나믹한 것들이 전혀 안 느껴지고, 질감 같은 것들이 무시되는 세상에 살게 되니까요. 사실 영화음악이 그것의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좋은 오디오 시스템에서 들을 수 있는 환경, 앨범이란 게 나올 때만 해도 아는 분들 중에서 마니아들이 있으면 좋은 앰프와 스피커가 구비되어 있으면 거기서 한 번 들어봐야지, 하면서 차 한 잔 마시며 음악을 듣곤 했었는데, 점점 그런 게 없어지죠. 음원이란 것도 정액제로 확 묶어놓다 보니 진짜 1회용이 되어버려서 사람들이 데이터(음원)를 넣었다가 공간이 차면 또 비워내고. 음원 공유 시스템 자체가 아티스트의 에고나 존재 자체를 지워놔 버려서요. 차라리 영화음악을 하는 게 그 아티스트 경계의 안과 밖에도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정말 아이덴티티가 안 생기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영화관이라는 좋은 시스템 안에서 음악을 들을 수가 있게 된 거네요. 그게 유일한 해소 지점이 된 거 같아요. 차기작으로는 어떤 작품이 있나요? 아까 말했던 황동혁 감독의 <수상한 그녀>가 내년 1월 중에 개봉할 거 같고요, 이재규 감독의 <역린>, 박흥식 감독의 <협녀>를 준비하고 있어요.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궁금한 게 많은지 정말 몰랐습니다. _ 인터뷰 : 문상윤 _ 정리, 사진 : 유성관 _ 2010.10.17, 미래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