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윈도
- 감독
- 린 지퍼트
- 제작년도
- 2017
사진: 창비 박사학위논문 제출 기한이 약 1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점, 나는 여전히 명확한 주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남은 시간을 꾸준히 쓰기만 해도 눈사태처럼 쌓여 있는 백지를 채우기에는 준비해둔 것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마음속엔 무언가 가득했다. 그것은 대학원 시절 내내 또는 사회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로 계속 누적되었던 불만과 환멸, 분노와 냉소 같은 것이었다. 십여 년 동안 대학원의 골방에 묵으며 쌓인 이런 정념이 내가 가진 유일한, 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자원이라고 주문처럼 되뇌면서 대학에 들어온 이래로 보고 겪어온 장면들을 수없이 복기하곤 했다. 나의 대학 시절은 참여정부의 탈권위주의적인 기조와 더불어 월드컵 이후의 희망과 자신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입 등 변화에 대한 기대와 전망 속에 펼쳐졌다. 사회 전반의 자유주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학생운동 역시 아직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페미니즘, 장애인권, 신자유주의 비판 등 여러 진보적인 담론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유통되었다. 물론 이와 같은 ‘열린 사회’의 환상을 깨는 사건도 많았다. 이라크 파병과 노동자들의 죽음, 대학의 기업화, 한미 FTA 등. 주변에는 한나라당만큼이나 노무현을 싫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명박이 당선되던 날의 그 우울함을 기억한다. 숭례문 화재와 명박산성, 용산참사와 쌍용차, 노무현의 죽음, 4대강 사업과 천안함 의혹 등으로 점철된 5년. 그리고 이어서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는 이미 무너진 사회가 물에 잠기는 듯한 절망감이 들었다. 그런 이명박근혜 시대를 기어이 우리 손으로 끝내던 그때 그 광장에서 우리는 얼마나 오랜만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를 품었었는지. 그런데 드넓은 광장에 촛불이 물결처럼 넘실대던 그 ‘스펙터클’ 이후 한국사회는 과연 얼마나 더 좋은 사회가 되었는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어냈는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켜낸 공(功, merit)을 가져간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의 자녀는 어떻게 대학에 가고 어떻게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가? 그들은 여성 비서에게 무슨 짓을 하는가? 이토록 ‘민주적인’ 사회에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이 매일 같이 죽어가는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구의역 김군과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은 왜 죽었는가? 왜 동성애는 (심지어 ‘민주’당 대선 후보에 의해서도) 반대되는가? 왜 장애인은 아직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싸워야 하는가?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는 누구의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민주주의의 ‘민’에 속하는 이들은 누구이고 속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 민주주의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민주주의가 이대로여서는 안 되지 않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학문의 언어로 던지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시도를 가능케 한 것은 하나의 은유였다. 역사는 극(劇, drama)이라는 것. 가깝게는 지난 2024년 12월 하룻밤 사이에 계엄 선포와 해제가 휩쓸고 지나갔을 때도 국내외 언론에서는 K-드라마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했지만, 그 이전부터도 한국 현대사에는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법한, 그리고 이미 만들어져 관객들로부터 감동을 자아내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영화 같은 역사, 드라마틱한 역사를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은 한국인들이 전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 중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한 편의 드라마라는 이 은유를 단순한 수사로서가 아니라 진지한 발판으로 삼았다. 만일 역사가 극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러하듯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은 좋은 극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도 이런 극을 보며 감동해도 좋은가? 계속해서 이런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자랑스러워해도 되는가? (상) <오! 꿈의 나라>, <명성, 그 6일의 기록> 중 / (하) <꽃잎> 중 / © 이은, 푸른영상, ㈜미라신엔터테인먼트 이에 답하기 위해서 나는 먼저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 혹은 드라마가 어떤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봤다. 역사라는 극을 구상하는 작가로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장면을 기억하고 기대하는지, 그리고 극에 참여하여 연기하는 배우로서 우리가 어떤 장면을 상연해왔는지 살펴봤다. 1980년대를 한국 민주주의의 가까운 기원으로 설정하고, 이 시기에 생산되었거나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사진, 소설, 시, 그림, 노래, 수기 등을 되는대로 수집하여 보고 읽고 들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와 5․18기념재단 사진아카이브 를 매일 들락거렸고, 대학 도서관과 국회도서관, 유튜브,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등을 뒤져서 < 오! 꿈의 나라 >(이은, 장동홍, 장윤현, 1989)나 < 꽃잎 >(장선우, 1996), < 명성, 그 6일의 기록 >(김동원, 1997) 등을 보았다. 임철우, 공선옥, 김영현, 공지영, 권여선 등의 소설을 읽었고, 각종 도록과 온라인 갤러리에서 오윤, 신학철, 홍성담, 강요배, 임옥상 등의 민중미술 작품을 찾아서 보았다. 1980년대의 여러 일간지를 교차하여 훑어보고 나무위키까지도 활용하면서 각종 사건을 연도별·월별로 숙지했고, 사건의 장소를 지도와 영상에서 찾아보거나 직접 가보기도 했다. 길을 오갈 때는 꽃다지부터 안치환, 윤선애, 이성지, 그리고 김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온갖 민중가요를 들었다. 인용을 위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2017)나 『소년이 온다』(2014)를 다시 들춰볼 때면 책을 덮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일쑤였고 영락없이 눈물을 쏟곤 했다. 낮에는 이제 막 백일이 지난 아이를 돌보며 그 생명력에 감격하다가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에는 광주항쟁 희생자들의 훼손된 주검 사진을 보며 이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는 일은 연구를 위해 각종 표와 숫자로 이루어진 자료(data) 속에 파묻히는 작업과는 달랐다. 그것은 연구이기 이전에 한국에서 사회학을 하기 위해 알아야 하는 역사적 교양을 뒤늦게 습득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나보다 앞서 세상을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 역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면서 그로부터 또다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화적 과정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간혹 주변에서 나의 근황을 물을 때면 나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본다면서 ‘문화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볍게 답하곤 했지만, 그것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의미의 망(webs of significance)”에 동참한다는, 진지한 의미에서의 문화생활이었다. [1]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 나아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신념처럼 간직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보았거나 기억하는 장면들, 그리고 내가 본 다양한 자료의 페이지마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마다 등장하는 것은 어떤 몸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때로는 곤봉과 개머리판에 맞아 터지고 덜렁거리는 몸, 벌벌 떨며 밀실의 욕조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몸, 해체되고 허물어진 채 부패해가는 몸이었고, 때로는 뒷사람에 밀려 앞으로 앞으로 넘실대며 나아가는 몸, 주변의 건물을 울림통 삼아 웅장한 구호와 노래를 뿜어내는 인파의 거대한 몸집이었다. 그리고 이런 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이런 몸의 이미지를 보는 나의 몸 역시 차분할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언가 벅차오르기도 했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영화는 온몸으로 감상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이런 영화를 계속 이어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 민주주의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드라마이지만,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은 과연 살만한 것이었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김대중, 2009년 1월 7일 일기)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한다. 사진: 네이버 영화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네가 일기에 그렇게 썼대? 삶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해?” - < 박하사탕 >(이창동, 1999) 중 김영호( 설경구 ) 한국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 몸과 마음에 회복될 수 없는 흔적을 가진 이들이 부지기수이며,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도 허다하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숨을 잃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찬란한 역사였지만, 그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 역시 축복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자랑스러워도 이런 민주주의를 계속할 순 없을 것이다. 마냥 자랑스러워하기만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물론 무대에서의 죽음을 목격하고서 객석을 박차고 나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주역’들에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대단한 감동을 주는 자랑스러운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영화 < 1987 >(장준환, 2017)에서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져요?” 하고 냉소하던 연희( 김태리 )가 선배 이한열( 강동원 )의 죽음을 보고 회심하여 광장으로 달려나가면서 민주주의라는 극의 국면 역시 결정적으로 전환되었음을 현실에서 경험한 이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라는 극에 배우로서 참여하지도 않았고, 객석에서 이러한 극을 보며 감격하지도 않았던, 민주주의의 극장 밖에서 살아온 이들도 있다. 민주주의의 주역들이 민주화된 사회를 향유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고된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민주주의란 낯선 것이었고 남의 것이었다. 이들의 동등한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거나 부정하기까지 했던 자들이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의 주인공 아니냐’며 함께 무대로 올라가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자고 호소한다면 극장 밖에선 아마 이런 목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1987>, <극장전> 중 / 사진: 네이버 영화 , ㈜영화제작전원사 “영화를 정말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자긴 이제 재미 봤죠? 그럼 이제 그만, 뚝!” - < 극장전 >(홍상수, 2005) 중 영실( 엄지원 ) 모두의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그런 민주주의를 계속해나갈 수도,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라는 극의 작가이자 배우로서 우리는 죽음-결집의 레퍼토리와 함께 몸과 마음이 쪼개졌다가 커지기를 반복했다. 스펙터클로 점철된 이러한 영화가 주는 극적 쾌감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우리 삶의 보금자리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덜 자랑스럽고 덜 극적이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평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희망하며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내란과 탄핵을 겪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수호의 이력을 다시 한 줄 추가하게 되었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이 최근의 역사를 완전무장 하고서 국회로 쳐들어온 계엄군이나 맨몸으로 장갑차를 막은 시민들이라는 스펙터클로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겨울 광장에서 시민들은 소수자와의 연대, 성평등, 노동 있는 민주주의, 평화와 안전, 기억과 애도 등을 외쳤다. [2] 이러한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거기에 힘이 보태진다면, 크고 대단한 장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모두가 아끼는 삶의 터전이 될 것이다. 다른 민주주의를 향한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 *** [1] 막스 베버, 「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문화과학 및 사회과학의 논리와 방법론』, 김덕영 옮김, 길, 2021, 293쪽; 클리퍼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 문옥표 옮김, 까치, 1998, 13쪽. [2] 유현미․김이선․김정환․박상은․장진범, 「광장에서 만난 세계: 윤석열 퇴진 집회 시민발언문 분석」, 『경제와 사회』 146.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김정환(사회학자) l 문화사회학, 사회이론을 전공 분야로 삼고 있다. 『연구자의 탄생』(2022, 공저),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2020, 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신자유주의적 상상』(2026, 공역), 『사회론』(2015) 등의 책을 옮겼다. 사회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양한 문화 현상의 해석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전개와 변화를 탐구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2006년 2월 2일,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를 오픈했다. 그리고 오늘 2026년 2월 2일. KMDb는 2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는 KMDb를 기획·구축하며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 고민했다. 누군가 ‘무비씨’라는 이름을 제안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나고, 그러나 아무래도 어딘가를 따라 한 것 같지만 그 이상의 이름은 없다고 판단해 KMDb로 지었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은 kmdb.or.kr 도메인을 구매했다. KMDb에는 20년간 생겼다 없어진 콘텐츠와 기능이 많다. 초기에는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입력하는 기능도 상당했으나 생각보다 양질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관리가 어려워 하나둘 폐기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과 독립영화 전용 KMDb를 따로 만들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통합된 상태에서 최대한 간결한 기능과 콘텐츠로 운영하는 중이다. KMDb를 준비하며 호기롭게 “풀 크레딧을 가지고 갑시다!”라는 (제안을 내가 한 것 같고 그래서) 고생문이 활짝 열린 정책을 시작하며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로 인해 어디에도 없는 데이터를 보유하게 된 KMDb는 영화·영화인 DB 서비스뿐 아니라 VOD로 한국고전영화 스트리밍을 시작했고, 영화글로 다양한 필자의 글을 소개했으며 리스트와 컬렉션이 순차적으로 오픈해 지금에 이르렀다. 2006년 2월 1일. 오픈 전날 디지털정보화팀의 담당 세 명은 그제야 동명이인에 대한 이슈를 발견하는 사고를 친다. 비슷비슷한 나이의 정유미 배우가 하나가 아니고 무려 세 명이래! 라는 비명을 한밤중에 지르며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인물을 분리하며 밤을 지새다 퇴근해 다음 날 오픈시켰다. 그리고 그 동명이인 이슈는 지금까지도 완전하지 않다. 완전할 수가 없다. IMDb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이슈를 KMDb 라고 별수 있겠는가. IMDb 매니저는 이름이 짧은 한국 인명으로 동명이인에 대한 고충이 더 심하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성명이 “정유미”인 배우 3인에 대한 KMDb 영화인 정보 KMDb는 영화·영화인 데이터의 완벽함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며, 이제는 영화인이 자신의 필모를 증빙하기 위한 웹사이트로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문득 KMDb에 쌓인 데이터가 어떤 모양새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사용자들도 궁금해할까? KMDb 20주년 이벤트를 근사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데이터로 가득한 사이트의 20년 묵은 통계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축하가 아닐까 생각했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지난 20년의 통계 10선을 소개한다. 1.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극·비극) 의 수: 50,787편 2.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인 의 수: 83,279명 3. 가장 많이 접근된 영화인 페이지 정윤희(1위), 임권택(2위), 신성일(3위) / 사진: 전승열, 정기성 1위 | 정윤희 2위 | 임권택 3위 | 신성일 4위 | 김기영 5위 | 이상사 6위 | 김지미 7위 | 박노식 8위 | 김진규 9위 | 신상옥 10위 | 안성기 4. 작품 리스트(필모그라피) 가 가장 많은 영화인 1위 | 현동춘 | 편집 | 994편 2위 | 김희수 | 편집 | 863편 3위 | 최형래 | 음향효과 | 850편 4위 | 손인호 | 음향효과 | 793편 5위 | 김기범 | 배우 | 753편 6위 | 허장강 | 배우 | 687편 7위 | 임해림 | 배우 | 660편 8위 | 김재경 | 음향효과 | 657편 9위 | 윤일주 | 배우 | 650편 10위 | 최남현 | 배우 | 609편 5. 한 작품(장편영화)에 가장 많은 크레딧 을 올린 영화인 1위 | 노영석 | THE 자연인 (노영석, 2023) | 17개 공동 2위 | 박용철 | 싸이더:애,심 (박용철, 2019) | 16개 공동 2위 | 준오 | 휴게소 (준오, 2016) | 16개 ※ 노영석 감독은 <THE 자연인>에서 감독, 각본, 출연, 프로듀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미술, 의상, 동시녹음, 사운드(음향), 시각효과, 색보정, 예고편, 포스터, 기타스탭(캘리그라피)을 담당함. 6. 참여 스태프 가 가장 많은 영화 <한산: 용의 출현>(1위) 1위 |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2) | 1,665명 2위 | 백두산 (이해준, 김병서, 2019) | 1,612명 3위 | 안시성 (김광식, 2018) | 1,502명 4위 | 미스터 고 (김용화, 2013) | 1,492명 5위 | 신과 함께–죄와 벌 (김용화, 2017) | 1,487명 7. 상 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 1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58회 2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45회 3위 | 추격자 (나홍진, 2007) | 41회 4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40회 공동 5위 | 괴물 (봉준호, 2006) | 31회 공동 5위 | 벌새 (김보라, 2018) | 31회 ※ KMDb에서 관리하는 영화제·시상식에 한함 8. 리스트에서 본 영화로 가장 많이 체크된 작품 <올드보이>(1위), <괴물>(2위), <기생충>(3위) / 사진: 디씨어터 1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2,581명 2위 | 괴물 (봉준호, 2006) | 2,355명 3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2,178명 4위 |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 2,055명 5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 1,672명 6위 | 아가씨 (박찬욱, 2016) | 1,648명 7위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 1,574명 8위 | 마더 (봉준호, 2009) | 1,533명 9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1,515명 10위 |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1998) | 1,438명 ※ 박찬욱 감독 작품 4편, 봉준호 감독 작품 4편 9. 리스트에 본 영화 체크를 가장 많이 한 사용자 1위 | bo**** | 2,076편 2위 | ha**** | 1,865편 3위 | gs**** | 1,747편 4위 | ba**** | 1,696편 5위 | in**** | 1,636편 ※ ****는 ID의 글자 수와 일치하지 않음. 10. 가장 많은 조회수의 영화글 1위 | “ [시네필 안내서]서문: 시네필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은 당신에게 ” (영화천국 Vol.48) | 정성일 | 91,634회 사실 진정한 20주년 이벤트라면 올해 KMDb가 전면 개편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득하지만 어찌 됐든 2026년 말 새로운 KMDb가 문을 열 것이다. 오랜 KMDb 관여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20년이 지난 이젠 누구나 KMDb를 KMDb(b를 소문자)로 써주길 바란다는 것 정도.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필름포럼 은 이화여대 후문 건너편, 연세대 동문으로 가는 방향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위치에서 2012년 5월 개관하여 2013년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선정되었다. 필름포럼 영화관의 운영 주체는 ‘사단법인 필레마’로, 필레마는 ‘ 서울국제사랑영화제 (2003년 서울기독영화제로 시작)’ 운영도 함께 하고 있다. 예술, 독립, 기독 영화의 발굴과 상영을 추구한다. 본래 영화평론가인 임재철 씨가 종로에서 필름포럼 영화관을 운영하다가 2008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했고, 2012년 사단법인 필레마가 임재철 평론가로부터 운영권을 인수하여 법인 성격에 맞게 운영하기 시작했다. 필름포럼이 입주해 있는 하늬솔 빌딩은 건물 자체는 도로변에 있으나 영화관으로 들어오는 입구는 도로 뒤편 골목에 있다. 또한 인근에 대학교가 많고 자취생들이 많은 입지 특성상 자취하는 20대 대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실 거주인이 많지 않다 보니, 인근 지역 자체가 평일 낮에는 굉장히 활발하고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조용하다. 그러한 분위기는 필름포럼을 찾는 관객들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쳐, 청년들 같은 경우 혼자 와서 영화를 보고 가거나 여럿이 오면 세미나를 하는 등의 학구적인 모습이 많이 보인다. 필름포럼이 위치한 하늬솔 빌딩 20대 관객들 같은 경우,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등 명작들을 필름포럼 스크린에서 처음 접해보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인근 지역에 사는 50대 이상의 주민들 상당수는 그림 감상, 아카데미 강좌 수강 등을 이유로 방문했다가 카페도 이용하고 영화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한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극장 현재 필름포럼을 운영하는 인원들은 성현 대표와 조현기 프로그래머를 비롯해서 팀장, 카페 매니저, 카페 아르바이트 등을 포함하여 전체 10여 명 정도다. 성현 대표는 영화관의 전체적인 기획과 경영 및 프로그래밍에 대한 조율 업무를 맡고 있고 조현기 프로그래머는 상영작들의 큐레이션 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다. 프로그래머는 본래 2명이었는데 현재는 1명인 상태다. 상영관은 2개관으로 1관은 90석이고 2관은 52석이다. 연중무휴이며 광고 없이 정시에 시작한다. 외부 철제 계단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정원이 보여 지하인데도 지하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정원이 딸린 카페 같은 외관인데 유리문을 열면 로비가 펼쳐지면서 카페가 같이 있다. 카페는 갤러리 공간으로도 쓰이고 있고, 카페 계산대에 영화관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키오스크나 직원을 통해서 티켓 발권과 음료 주문을 한다. 전체적인 건물 평수는 약 500평 정도인데, 이중 상영관은 350평 정도 규모이고 나머지 공간을 카페를 겸한 로비와 세미나실로 구성하여 사용하고 있다. 필름포럼 로비 전경 상영 시스템의 경우, 개관 초기에는 필름으로도 상영을 했었지만 지금은 모두 디지털 영사기로 바꿨다. 1관은 디지털 시스템을 모두 갖췄고, 2관은 아직 국제인증을 받지 못해 한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서버를 갖추고 있다. 2024년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시설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2관도 1관처럼 디지털로 완전히 개편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영화관 로비가 카페이자 갤러리 역할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고 지향했던 필레마의 방향성이다. 실제로 관객들은 이 공간을 영화 상영 전 대기 장소로서뿐만 아니라 만남의 장소로서도 이용한다. 이 공간에서는 아마추어들에게도 전시 기회가 열려있는데, 운영자들이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들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관 상영관 내부 전경 관객과 함께 하는 공간 로비 중앙에는 출석부와 방명록이 놓여 있어서 관객이 참여하고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 있다. 영화 출석부의 경우 여러 횟수가 쌓이면 영화관으로부터 초대권을 받을 수 있으며, 평론가처럼 출석부에 본인이 본 영화에 대한 별점과 한 줄 리뷰를 남기게 되어 있다. 이는 관객 개인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로비에 오픈되어 있어서 해당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다른 관객들과도 나눌 수 있게 한다. 로비에 있는 ‘북 큐레이션’은 12권의 책을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서 소개하고 있는데 상영 영화는 물론 현재 동시대성을 띤 책들이 섞여 있어서 관객들로부터 호응도가 매우 높다. 필름포럼 출석부 강연장에서는 자체적으로 기획한 인문/문화예술/종교와 관련된 아카데미를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커뮤니티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처음에는 시네필 쪽에 포커스를 두고 강좌를 기획하고 운영했는데, 실제로는 예술영화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관객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시네마 브런치’는 월요일 오전 10시에 예술영화를 함께 보고 샌드위치 들고 영화관 안에 들어와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영화에 대한 해설을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큰 호응을 얻었다. 상영되는 모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큐레이션 된 영화들이다. 기획전 상영작들은 독립영화와 예술영화를 비롯하여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기독교 영화들도 많다.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들의 재방문율이 높은 편이며 예술가의 삶이나 회화에 관련된 영화 기획전도 많이 열린다. 엠네스티와 같은 국제단체를 비롯하여 단체나 학교, 지역주민모임, 서점이나 사진관 등과도 협업한 기획전을 종종 개최하기도 한다. 필름포럼 세미나실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성산로 527 하늬솔빌딩 A동 B1 2) 설립일 : 2005년 4월 22일 3) 대표자 : 성현 4) 규모 : 하늬솔빌딩 A동 1749.38m2 5) 극장 구성 (관수, 관별 좌석수, 훨체어석) : 1관 90석, 2관 52석, 총 142석 6) 운영시간 및 정기휴무 : 09:30~22:00, 연중무휴 7) 입장료 및 할인 정책 - 평일: 성인 10,000원, 청소년 9,000원,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 7,000원. 조조 7,000원 - 주말: 성인 11,000원, 청소년 10,000원, 경로/국가유공자/장애인 7,000원, 조조 8,000원 - 단체 할인: 10인 이상 1,000원 할인 / 30인 이상 2,000원 할인 8) 조직도 및 조직 구성 - (주)필레마 서울국제사랑영화제(극장운영주최) - 문화선교연구원(이론, 학술배경 제작) - 필름포럼(극장) 9) 구성원 : 성현 대표, 프로그래머, 조현기 프로그래머, 팀장, 매니저 취재 일자: 2024년 11월 19일 글/인터뷰 진행: 김문경 사진: 허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