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 감독
- 이승영, 김병수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류승룡, 박효주, 온주완, 안내상, 하재숙, 김무열, 이일웅, 김청, 김부선, 정규수, 서갑숙, 김용선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2000년 새해, 이창동 감독의 < 박하사탕 >이 던진 잔향은 크고도 묵직했다. 한 40대 남자의 자살을 시작으로 찬찬히 과거를 되짚어 올라가는 비선형적인 서사와 개인의 상흔을 통해 굴곡진 현대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담담하고도 대찬 시선은 지금껏 봐온 영화와 또 달랐다. 인생의 드라마틱한 변곡점보다 조금 더 흘러간 어느 일상을 통해 남자의 과오와 고통을 짚어내는 기억의 편린들은 잔인하지만 솔직하고, 메말라 버린 감정의 남자가 원래는 순수하고 평범했음을 고백하는 여정은 슬프지만 현실적이다. 이를 위로하는 건 중간 중간 거꾸로 가는 기찻길 풍경에 흐르던 이재진의 음악이다. 그의 찬란하고 애달픈 선율은 등장인물을 위로하고, 아픈 우리네 현실을 위로하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환멸과 기만이 가득했던 그 시절, 박하사탕처럼 하얗고 순수했던 모습을 찾아 보사노바 리듬은 부유하고 꿈을 꾼다. 갑작스런 등장이었다. 크레딧에 새겨진 그의 이름은 낯설고 새로웠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을 수학한 작곡가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재진은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하고 현장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음악가다. 이창동 감독과 함께한 기념비적인 데뷔작 <박하사탕>을 필두로, 자신의 영화적 동반자가 될 송해성 감독의 < 파이란 >과 국내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SF 대작 < 내츄럴시티 >의 음악을 담당하며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주목받았다. 필모그래피 초기에 위치한 그 작품들은 신인 영화음악가가 들려줄 수 없는 내공과 신기를 보였고, 또 놀랄 만치 다양한 스펙트럼과 폭넓은 궤적을 지녔다. 그 뒤 보여준 행보 또한 그의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의미했다. 다양한 상업영화들로 범주를 넓혀가면서도 그는 영화음악에 대한 본질과 이유를 잊지 않았고, 섬세하고 탁월한 멜로디와 풍부한 감성을 얹은 오케스트레이션, 치밀한 분석과 계산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나섰다. 이재진의 스코어는 일종의 영화에 대한 음악적인 모범 답안인 셈이다. 송해성 감독을 기점으로 이한 , 황인호 , 정지우 , 홍지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또 허진호 와 김대우 , 변혁 , 육상효 , 변승욱 , 김민석 등 다양한 감독들의 부름에 응했다. 여전히 뜨겁고 정열적으로 활동하며 영화와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았다. 먼저 최근 개봉된 < 인간중독 >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클래식컬한 사운드에 기조를 둔 작품이었어요. 바흐의 곡(오보에를 위한 현 콘체르토 Concerto In D minor BWV974)을 전면에 배치했는데, 이는 김대우 감독님의 의견이라 들었습니다. 네, 그 곡을 피아노와 기타로 연주했죠.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쓸 때 음악을 많이 들으시고, 또 영감이 떠오르곤 하셨다는데, 그 중 몇 곡의 레퍼런스가 있었어요. 그 음악들이 실제 영화에 그대로 반영될 순 없더라도,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시나리오를 쓴 부분이 있다, 그러니까, <인간중독>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은 이 음악에서 왔다, 그런 걸 알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바흐의 ‘오보에를 위한 현 콘체르토’는 마르첼로라는 사람의 곡인데요 그걸 바흐가 편곡해서 유명해졌죠. 그 중 글렌 굴드가 연주한 피아노 솔로 버전은 다른 버전에 비해 색깔과 질감이 완전히 달라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있는데, 감독님은 그 곡의 정서를 좋아하셨죠. 결국 그 곡을 영화의 어떤 부분에 붙인 상태로 편집실에서 넘어 왔어요. 이걸 무시하고 제가 다른 곡을 만들면 되는데, 그러기엔 너무 좋았어요. 뗄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감독님 이 곡은 (그대로) 가시는 게 좋을 거 같다. 중요한 장면에 쓰자. 그렇다고 두 번 반복해 쓰는 것 보다는 한 번은 피아노, 한 번은 기타로 하는 게 어떨까요, 했던 거죠. 차 안에서의 정사 씬에서는 기타로 했죠. 그런데 중요한 건 그냥 연주하면 글렌 굴드 냄새가 안 나요. 그의 연주 방식은 기본적인 클래식 어법에서는 어긋나는 방식이거든요. 그렇다고 글렌 굴드의 방식을 클래식 연주자에게 그대로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지인을 통해 부탁하게 됐어요. 결국 글렌 굴드의 연주 호흡과 똑같이 제가 메트로놈을 만들었어요. 글렌 굴드처럼 빠르게 느리게를 중간에 다 넣고, 그걸 들으면서 연주를 해서 더 유사한 느낌이 나도록 했죠. 기타도 그렇게 했고요. 그럼 글렌 굴드 버전을 그냥 쓰면 되지 않을까도 싶지만, 글렌 굴드 버전은 노이즈가 너무 많고요, 또 본인이 스캣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연주를 하거든요. (웃음) 그대로 붙이면 문제가 있었죠. 저작권 라이선스 푸는 문제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인간중독> 버전을 만들자, 그렇게 하는 게 영화와 너무 잘 맞는 거 같았어요. 공교롭게 그 장면 이후로 음악 감상실 장면으로 공교롭게 잘 이어지기도 했고요. 김대우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제가 전에 TV 드라마 할 계획이 있었어요. 규모도 꽤 있는 작품이었고요. 좋은 기회라 생각했고, 또 해보고 싶은 매체였는데 시스템 자체가 영화와 많이 다르더라고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까 완전히 다른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 화면에 음악이라 비슷할 거 같은데, 그래서 누군가는 영상음악 이렇게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건 결과물이고, 생산자 입장에서는 제도가 전혀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그래서 힘들었고, 결국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하겠다고 하는 순간 <인간중독> 제안이 왔고, 그래서 (감독님을) 뵀죠. 그런데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저를 아티스트로서 존중해주셨고, 저보다 연배도 많으시고 경력도 많으시지만 스태프로서 존중해주셨어요. 그러니까 제 입장에선 너무 좋았죠. 필모를 보면 멜로 장르가 두드러집니다. 물론 조금씩 다르긴 했는데 <인간중독>에서 고민한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필모 중에서 멜로가 끊긴 지점이 있어요. 아마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 <호우시절> 이후이죠. 그 이후에 우리 영화계가 많이 바뀌었어요. 템포를 중요시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스릴러 장르가 굉장히 많이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를 하게 됐는데, 전 개인적으로 멜로를 좋아해요. 많이 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리고 음악적으로 역할이 가장 큰 장르가 멜로인 것 같아요. 멜로라는 게 ‘멜로스’, 음악에서 온 게 아니냐는 말도 있으니까요. 다른 장르라고 해서 음악이 두드러질 수 없는 건 아니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며칠 전에 <고질라>를 봤어요. 전 (음악을)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했다고 해서 봤는데, 아쉬웠던 게 뭐냐면… 왜 <고질라>를 했을까. 굳이. 돈을 많이 주면 할 수 있겠지만 (웃음). 돈도 많이 쓴 거 같더라고요. 풀 오케스트라에... 첫 번째 이유. 물론 제 추론이에요. 자신의 한계성에 대해 주변을 의식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이런 거(장르)밖에 못하는 거 아니야? 이런 시선 때문에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 했을 수도 있다 라는 거죠. 그래서 그전의 필모와 약간 다른 걸 한 이유가,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어, 한스 짐머나 존 파웰처럼 할 수 있어, 이런 걸 보여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두 번째 이유, 본인의 한계를 스스로 시도해보고 싶었지 않았을까. 하나는 의식해서고 하나는 스스로. <색계> 이후로 음악들이 굉장히 비슷비슷해요. 특유의 멜로디와 코드 쓰는 방식이 항상 비슷해요. <색계>는 굉장히 신선하잖아요. <킹스 스피치>까지는 괜찮았나? 그다음부터는 비슷비슷… 하죠. 그래서 스스로 도전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 <고질라>는 실패다. (웃음) 하지만 옹호해주는 입장에서는 이래요. 누가 해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건 장르의 특성상 음악의 역할보다는 사운드의 역할이 큰 거죠. 관습에 의한 음악을 만들었다 뿐인 거죠. 장르 영화라는 게 관습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해도 특별할 게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나름 데스플라가 뭔가 해보려고 했던 시도가 보여요. 그게 중간중간 조용한 장면에서 음악이 삭 나오는데 상당히 언밸런스해요. 한스 짐머처럼 쉽게 쉽게 가면 되는데 본인의 특유의 냄새를 넣은 게 언밸런스해지더라고요. 아무튼. 멜로가 아닌 다른 장르는 그냥 관습으로 인해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멜로는 무조건 멜로디로 승부를 봐야 하는 거거든요. 그 하나가 귀에 꽂히거나 역할을 해야 하는 거기 때문에, 그리고 뭔가 마음에 있는 걸 표현해야 하고, 그래서 어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했을 때 쾌감이 훨씬 많죠. <우행시>에서는 이나영씨가, 거기선 유정이죠. 유정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강동원이 죽을 때, 음악 나오면서 사악 갈 때, 마무리될 때, 음악을 붙였을 때 쾌감이 있거든요. 그런 건 멜로에서밖에 못 느껴요. 그런 것 때문에 많이 했고 좋아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장르가 영화계에서 사실은 많이 안 만들어졌고, <인간중독>은 오랜만에 한 정통멜로였죠. 감독님도 그러셨어요. 음악감독님의 필모에서도 잊혀지 않은 대표적인 OST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힘이 됐죠. 자신 있는 장르였고요. 정사 씬에서 음악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두 번째 정사 씬이 벌어지는 경 대위의 집에서 음악적 쓰임이 인상적이었어요. 정적으로 음악이 없다 어느 순간 봇물 터지듯 음악이 터져 나오더라고요. 두 사람의 감정이 폭발하는 것처럼. 그리고 수류탄이 터지는 장면으로 넘어갔고요. 그러면서 삭 사그라지는 마무리도 인상적이었는데요, 계산이 있었던 건지요? 원래 콘셉트는 정사 씬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이 있는 거였어요. 근데 감독님께서 음악으로 쭉 가니까 신음 소리와 같은 사운드를 통한 미묘한 감정, 성적인 무드가 감쇄된다, 라고 하셔서 음악을 뒤로 완전히 밀어봤는데, 그러니 또 생각만큼 느낌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다시 앞으로 배치하고 중간을 비우는 방법을 택한 거죠. 신음소리가 나는 부분부터, 아마 팬티를 만지나? 그 부분부터 음악이 사악 없어지고 나중에 탁 잡으면서, “아!” 하면서 음악이 팍 터지죠. 음악 감상실에서 유해진과 송승헌 의 춤곡으로 쓰인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의 선곡도 감독의 의견이었나요? 네. 원래 거기도 쓰고 나중(춤추는 장면)에도 사용하려고 했는데, 제가 보니까 뒤에 두 사람이 춤을 추는 왈츠에서는 이 곡을 쓰기가 조금 곤란했어요. 앞 이야기에 로맨스를 보여주는 데이트가 없거든요. 절절하게 아름다운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이들의 춤이 굉장히 강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남몰래 흘리는 눈물’로 가려고 했던 걸 제가 만든 곡으로 하자, 했고, 아니다 맞다, 하다가 결국 제가 만든 왈츠로 하게 됐죠. 1969년이란 시대를 다뤘음에도 그 시대의 곡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독특한 분위기랄까. 관사의 폐쇄적인 특수성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유가 있는지요. 첫 번째 이유는 쓸 곳이 없었어요. 음악 감상실에서는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설정이었고, 뒤의 춤 추는 장면들은 창작으로 가는 거였고, 나오려면 두 군데, 의상실이나 미용실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렇게 사용하려면 7~8개 씬을 다 음악으로 해야 해요. 굉장히 많은 음악이 필요한 거죠. 한 번 할 거면 다 해야 한다는 거죠. 의상실이나 미용실의 첫 날은 음악이 있고, 둘째 날은 없고 그럼 안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작권료가 만만치 않은 거죠. 저작권과 음반 사용료까지 써야 하기 때문에 한 곡당 미니멈 1,500만원 정도 들어야 할 거예요. 그럼 그것만 해도 5곡이면 얼마예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이 영화가 꼭 그 당시의 음악으로 시대를 환기시켜야 할 만큼 시대 환기가 안 되고 있느냐. 아니다. 그럼 굳이 필요 없다, 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기존의 음악을 넣어보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잘 안 맞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대사를 계속 하거든요. 그냥 춤추고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이 안 들리다 보니까 과감히 빼자, 가 된 거죠. 처음부터 안 넣을 작정을 했던 거예요. 엔딩에서 배트 미들러의 ‘The Rose’가 나옵니다. 선곡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설마 음악감독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선곡을 하자고 하겠습니까? 딱 누가 봐도 몇천만 원 짜린데? (웃음) 저 같으면 제 음악으로 밀고 갔겠죠. 영화를 보면 한 번밖에 안 나오는 음악이 있거든요? 자살할 때 나오는 음악은 딱 한 번밖에 안 나와요. 그건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들어 하는 곡이고, 왈츠곡도 한 번밖에 안 나오는 곡이고. 그런 곡 편곡해서 쭉 가면 되죠. 그럼 더 좋아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계속 촬영하시면서 고민도 많이 하시더니 어느 날 ‘더 로즈’라는 곡 알지 않느냐, 그 곡을 한번 고민해봤음 좋겠다. 하시는 거예요. ‘더 로즈’ 딱 하는 순간에 가사가 그렇잖아요. 누군가는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사랑이 이렇다고 말하는 그 가사가 딱 가은이의 마음 같기도 하고. 이 영화에서는 온주완이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송승헌이 생각하는 사랑이 있고, 가은이가 생각하는 사랑이 있어요. 여러 가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그래서 노래는 잘 어울리는데, 배트 미들러의 버전은 아니고, 테시마 아오이의 ‘더 로즈’가 떠오르는 거예요.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요. 가수 중에 목소리가 악기인 사람이 있어요. 김현식 씨, 김광석 씨도 그런 사람이었죠. 어떤 노래를 불러도 그 사람 것이 되는, 테시마 아오이의 목소리가 저에겐 그래요. 그런데 테시마 아오이 버전 ‘더 로즈’의 편곡 중 안 좋은 부분도 있고, 당시 반일감정이라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죠. 그래서 ‘더 로즈’로 하되 새로 녹음하죠, 해서 가장 목소리가 비슷하다고 떠오르는 가수가 국내에 있어서 접촉을 해보려 했는데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감독님이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테시마 아오이도 훌륭한데? 해서 야마하 뮤직에 연락해서 테시마 아오이 버전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시군요.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데뷔작이 이창동 감독님의 <박하사탕>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약간의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웃음) 변승욱 당시 조감독님의 소개로 하게 됐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승욱이 형은 옛날에 음악을 했어요. 대학교 때. 한양대에서 (노래) 동아리를 만드셨어요. 제가 그 동아리에 들어가던 거죠. 그분은 나이 차도 많이 나는 대선배인 거고, 소위 말하면 레전드인 거잖아요. 실력도 상당히 좋으시고, 기타도 잘 치시고요. 그분이 음악을 그만두시고 CF를 찍으셨다가, 유학을 갔다가 촬영, 영화공부를 하시고 거의 다 끝나갈 때, 제가 보스턴(버클리)으로 유학을 간 거예요. 제가 영화음악 공부하는 걸 알게 되셨고, 그러다 승욱이 형의 아는 분을 소개시켜줘서 그 분의 졸업 작품 음악을 제가 했고, 그분도 만족하셨고. 그래서 어 쟤가 영화음악도 잘하네? 그러다 한국에 와서 <박하사탕> 연출부가 된 건데 연락이 저에게 온 거에요. 1999년 1월 1일이에요. 날짜도 잊질 못해요. 이런 작품이 있는데 네가 한번 해볼래? 그래서 시나리오를 받아서 보고 10곡을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어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 연락이 왔어요. 글쎄 특별히 말씀이 없으신데? 더 보내봐, 그러는 거예요. 전 감독님 이야기도 없고 그래서 막막하다 못하겠다, 그랬는데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하셨다는 거예요. 10곡을 또 만들어서 페덱스로 보냈어요. 아 당시 유학생에게 페덱스는 비쌌어요. 그러다 또 시간이 흐르고 3월이 됐어요. 연락이 없는 거예요. 아 형 이제 안 할래요. (웃음) 학교도 바쁘고 아직 학생이고 기회는 또 있겠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많이 관심 주는 영화다, 해서 좋은 기회다 해봐 라고 하는 거예요. 알았어요, 그러고 있다가 그때 중국식당에서 음식을 배달해 먹었는데 거기선 행운의 과자(포츈 쿠키)를 주잖아요. 저 그런데 굉장히 민감해하거든요. (웃음) 그래서 안 보려고 했다가 봤는데, 거기에 “당신은 지금 당신의 명성을 쌓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 거예요. 운명인가보다 해서 또 10곡을 해서 보냈죠. 연락이 또 없어요. (웃음) 4월인가 5월 즈음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이 너 들어오래. 그래서 짐을 싸고, 5월에 학기가 끝나니까 갔어요. 그때도 계속 음악을 또 만들고 또 만들고 그랬던 거예요. 커뮤니케이션은 특별히 없어요. 제 안에 숨어있는 그걸 다 꺼내는 거죠. 미치죠. (웃음) 전 촬영장 가서 잠깐 현장을 보고… 너무 힘든 거예요. 이 사람이 이걸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거. 그다음을 못 나가는 거예요. 악몽을 막 꾸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그러다가 최후 편집 끝나고 중간 중간 기차가 거꾸로 가는 장면의 브릿지 음악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OK가 많이 됐어요. 그런데 메인타이틀 하나, 엔딩까지 해서 그 하나가 계속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 최종 믹싱 전날 OK가 됐어요. 그런데 그 곡이 데모에 있던, 미국에서 보냈던 곡 중에 있던 거예요. (웃음) 다른 어떤 분이 팁을 주시더라고요. 감독님이 그 곡을 따라 부르시더라는 제보를 해준 거예요. 그래서 그 곡을 어떻게 해봐라, 힌트를 준 거죠.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그 곡에 보사노바 리듬을 얹어서 작업해 보냈더니 바로 OK가 난 거죠. 그날 밤에 녹음하구요, 다음 날 믹싱하고 내일 아침 갖다 줘야 하는 거예요. 밤 꼴딱 새고 음악 얹히고 붙이고 나와서… 화장실 가서 오바이트를 다 해버렸어요. 분명한 건 제가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영화를 굉장히 깊이 읽는 거라든지, 미장센 놓치지 않는 거라든지, 영화음악 하는 사람 보면 단순히 영상에 음악을 붙이는 작업, 음악을 만드는 행위에 대해서만 집중을 해요. 근데 놓치는 게 뭐냐면 영화 자체를 읽는 걸 소홀히 해요.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영화들도 있어요. 하지만 이창독 감독님의 영화는 쇼트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잖아요. 미장센도 훌륭하고. 상당히 많은 걸 배웠죠. 제가 음악을 많이 듣진 않아요. 근데 꽂히는 음악은 굉장히 오랫동안 많이 들어요. 그 음악 하나에도 작가의 수많은 히스토리가 있을 거 아니에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얼마만큼 아느냐가 중요한 건데, 그런 면에서 초기의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등은 지금까지도 밑천이 될 만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였어요. <박하사탕>, 기차길 브릿지 <박하사탕>의 메인테마에 보사노바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멜로디를 이용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계속 머리에 생각난 게 뭐였냐면 ‘기차’예요. 계속 기차 이미지를 떠올리며 작업했거든요. 기차가 간다, 뭔가 움직인다, 과거로 간다... 리드미컬한 게 무엇일까,를 계속 생각했고 개인적으로 보사노바를 좋아하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그쪽에 접목이 된 거예요. 그 작업 자체는 굉장히 금방 했어요. 멜로디는 있죠, 보사노바는 익숙하니까 그 작업은 하루도 안 걸려서 했어요. 해놓고 나서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일단 찾고 난 다음의 과정은 너무 쉬우니까, 허탈한 거예요. 이것 때문에…!! (웃음) <박하사탕>은 일반적인 영화와 다르게 음악이 쓰였습니다. 오프닝과 엔딩 그리고 챕터 사이사이 기차가 나오는 부분에만 30초 정도씩만 브릿지 음악이 주로 사용됐는데, 드라마 부분에서는 음악이 거의 절제되고 있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아, 일부러 안주는 거죠. 아마 그건 감독님의 의도가 큰데…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라는 게 아니었을까요? 중요한 건 제일 마지막.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기승전결이 있는데, 여기에 다 집중해주면 밸런스가 망가질 수도 있었을 거 같아요. 쉽지 않은 어법이니까요. 그래서인지 브릿지에서 감정들이 고조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브릿지도 브릿지마다 느낌이 좀 달라요. 점점 브릿지의 음악들이 아름다워질 거예요. 처음에는 패닉 같은 음악이었다면 나중 브릿지는 멜로적인 감성으로 가요. 왜냐면 점점 순수해지니까. 제7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해 대상이 나원주 씨, 금상이 김연우 씨이기도 한데, 대중음악으로 나갈 것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나요? 아 잘못 만난 거예요. 1등이 나원주, 2등이 김연우니까. 아 참나. (웃음) 원래 대중음악 하고 싶었어요. 지금 이 이력이 특이한 거고요. 고등학교부터 주말마다 친구들 만나서 노래 부르고 기타도 치고, 또 서로 가르쳐주고 그랬거든요. 그 당시 유행했던 게 동물원이에요. 딱 떠오르는 게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웃음) 아, 대학교 가서도 음악을 할 수 있구나, 그래서 대학교에 갔다가, 노래 동아리(소리로 크는 나무)에 들어가게 되었죠. 이것도 에피소드인데, 전 그 동아리가 공연을 하는 줄 알고 보러 갔었는데, 알고 보니 오디션이었어요. 그 당시에는 제가 오디션이라는 말도 잘 몰랐던 거죠. 그러다가 저도 오디션을 보게 됐죠. 그렇게 들어가게 됐는데, 넌 곡 쓸래 노래할래? 해서 전 곡도 쓰고 노래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했더니 우리는 같이 할 수는 없으니까 둘 중 하나만 택해. 해서 노래를 택했어요. 제가 만든 노래 부르면 되는 거니까. 당시 승욱이 형은 나이도 제일 많은 대선배였는데 어느 날 동아리 방에 와서는 너 곡 쓴다며, 한 번 해봐, 해서 기타 들고 한 거죠. 그런데 나를 굉장히 멋진 말로 칭찬해준 거예요. 그러고는 슥 나가는 거예요. 그러고는 꼭 나가. (웃음) 그러니까 거기 앉아있던 선배들이 우와~ 했던 거죠. 레전드한테 이런 칭찬을 듣다니. 그렇게 동아리에 있으면서 노래 만들고 각종 가요제도 나가게 됐던 거죠. 명지대 백마가요제, 광운대 월계가요제 등... 그러면서 인정받고 기성 작곡가들에게 칭찬받고, 그러니까 우쭐해지는 거죠.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는 여러 번 나갔어요. 그 가요제가 지금은 좀 다르지만 십몇 회까지는 작곡 작사 연주까지 다 했어야 하는 거였잖아요. 거길 몇 번 나가서 안 되다가 군대 갔다 와서 3번째 나가서 된 거예요. 그 가요제를 통해서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좀 지쳐있을 때에요. 군대도 다녀왔고. 그러다 유재하 가요제에서 된 다음 한 번 해보자가 되었는데, 한계 같은 게 오더라고요. 난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는데… 너무 훌륭한 뮤지션들을 너무 많이 본 거죠. 그래서 난 이들을 도와주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사운드 엔지니어링 프로듀싱을 하려고 유학을 갔죠. 거기서 피아노 레슨 하는 선생님이 제가 만든 음악을 들어보시고 나서,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하면 너 다시는 작곡 못한다. 이건 다른 거다. 너 곡 같은 거 안 써도 괜찮겠냐?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또 하고 싶더라고요. 그 분께 제 곡도 들려드리고 유재하 CD를 선물로 드렸어요. 그랬더니 유재하란 사람이 아직 살아있으면 버클리에 왔을 거 같고, 영화음악을 했을 거 같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른다. 너도 영화음악을 해봐라. 그때까지는 솔직히 영화음악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과 이름이 필름 스코어링이잖아요. 뭐 하는 과인지도 몰랐던 거예요. 결국 전공을 바꾸게 되었죠. 사운드 엔지니어링 쪽은 2학년 올라가기 전, 1학년 2학기 때 인터뷰를 보게 되어 있어요. 실습을 위한 부스 컨트롤 룸도 한정되어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파트라 해서 인성을 본다는 것도 있어서 인원 제한이 필요한 과였거든요. 인터뷰까지 통과하고 나서 2학년 올라가서 필름 스코어링, 영화음악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죠. 그때가 97년이었어요.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했는데, 당시 국내엔 영화음악을 전문적으로 전공한 작곡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에 대한 메리트가 있지는 않았나요? 반대죠. 없었죠. 제가 들어갔을 때가 막 버클리에서 사람들이 들어올 때였어요. 그때 버클리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었어요. 국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신선한 것을 기대하는 입장도 있었지만, 수구적이 입장에서는, 대단한 거 있겠어? 봤더니 뭐 별 거 아니데? 이런 이미지였어요. 그래서 영화음악도 별 거 없지, 그랬던 거고. (웃음) 제가 좀 더 특출 나고 잘하고 그랬다면 버클리 나온 후배들에게 더 좋았을 텐데 제가 더 잘하지 못해서 그건 좀 아쉽죠. 하지만 분명한 건 <박하사탕> <파이란> <오아시스> 초기 이 세 작품, 특히 <박하사탕>은 제가 겁이 없었어요. 어떤 작품? 누구? 이런 거에 대한 인식이 없었어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전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전 선례가 없잖아요. 사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의 영화음악이 어떤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비교할 대상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제 뜻대로 하게 됐죠. 그 첫 반응이 신선하다, 라는 것이었어요. 기존 한국영화음악에서는 보지 못했던 냄새인데? 라는 거였어요. 지금 보면 미국에서 공부하고 혼자 생활하고 한 게 반영된 음악이라 신선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국내의) 다른 음악가, 다른 영화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면 다른 음악이 나왔겠죠. 사실은 그런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머리 식히러 나갔다 올까 그럴 때도 있어요. 지금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잖아요. 두 번째 작품이 <파이란>이었습니다. 할리우드에선 자주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 작품을 시작으로 송해성 감독님과 파트너 쉽이 이루어졌어요.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5 작품을 함께 해왔는데. 감독과 작곡가 간의 협업이란 어떤 느낌인가요? 커뮤니케이션이죠. 이창동 감독님은 슬프지만 슬프지 않게, 기쁘지만 기쁘지 않게, 라고 하신단 말이죠. 하아… 네 (웃음) 그 당시 제가 29, 30살이었거든요. 지금도 잘 모르겠는데 당시는 정말 답답했을 거 같아요. (웃음) 그런 게 쌓이면, (파트너와 함께) 나이도 같이 먹어가고 연륜도 같이 쌓여 가면 어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갈 수가 있거든요. 송해성 감독님은 처음에 어 이게 뭐지? 무슨 말씀이시지? 이런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다 계속 같이 가니까 감독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알게 됐고, 그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어렵지 않다. 그다음은 디테일이잖아요. 그렇게 오랫동안 작업을 같이 하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버리고 그다음에는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죠.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거죠. 그런 게 좋은 거 같아요.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영화음악을 전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직업. 제 온 정열과 온 피와 땀을 쏟으면 좋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죠 분명히, 하지만 목숨을 바칠 정도로 저 이거 하지 않아요. 이건 그냥 직업이에요. 우리가 살았던 시기 동안에 같이 재미있고 놀았다. 뭔가를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켰고, 울고 웃겼다. 이런 거면 행복한 게 아닌가? 그런 거 같아요. 그러니까 단순히 감독과 음악감독으로 만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형과 동생으로 만나서 친해지는 거죠. <파이란>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박하사탕>을 보셨겠죠? 보시고… <파이란>의 프로듀서가 안상훈 피디, 지금 상상필름 대표고, 송해성 감독님도 한양대 나오셨고, 뭐 관계는 없지만 그래도 한양대 나왔다면서요? 그런 거 있잖아요. (웃음) 첫 날 만났을 때 근처의 허름한 호프집 가서 싼 생맥주 3잔에 소주 넣어서 말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했죠. 그러다 연락이 와서 하게 됐어요. 제가 음악 데모를 만들어서 영화사를 줬어요. 그때 제작 보고회라는 게 막 시작되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튜브(<파이란> 제작사) 쪽에서 뭘 보여줘야 하는데, 스틸들을 디졸브해서 보여줬고, 거기에 음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요즘 같으면 그걸 내가 왜 합니까? 하겠지만 본편도 아닌데 그걸 왜 해요? (웃음) 그때는 해서 줬어요. 송해성 감독님이 옆방에 있다가 그때 그 음악을 들으셨나 봐요. 저 음악이 뭐야? 해서 만든 음악이라고 했더니 굉장히 마음에 들었나봐요. 그 음악을 계속 들으시면서 시나리오도 마무리 하시고. 그래서 그렇게 하면 돼, 해주셔서 그렇게 작업했고, 그 음악들을 최민식 씨가 들으면서 감정 잡으시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프리 작업이 먼저 시작된 거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찍기도 하고. 민식이 형이 그러더라고요. 감정 안 잡힐 때 네 음악 들으니까 좋아. 그때는 민식이 형이나 공형진 씨나 에너지가 많을 때였잖아요. 그때 굉장히 가족적이었어요. 거의 같이 있고, 참 좋았죠. <박하사탕>과 달리 정통적인 스코어링을 구사한 첫 번째 극 영화였는데, 맞습니다.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는지요. 정서를 따라가는 거죠. 강재의 마음을 따라가고. 그때는, 벌써 13년 전이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안 했을 거예요. 훨씬 더 계산적이겠죠. 그때는 마음 가는 대로 했어요. 느껴지는 대로 했고. 아쉽고 불쌍해 보이면 그렇게 만들고, 장백지가 “세탁 세탁” 하면 그대로 화면 보면서 만들었어요. 편하게. 그래서… 감정 흐름에 주안점을 뒀고요. 들어보시면 테마라는 게 없어요. 테마를 만들어서 반복하는 방식은 절대 하지 않았어요. 그때그때 맞는 음악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 반면 <인간중독>은 테마가 있죠. 멜로디가 반복되는 게 있고. 계산적이지 않았던 거 같아요. <파이란>, 비디오 화면 속의 파이란 막문위가 부른 노래 ‘애정’의 선곡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요? 장백지가 마지막 장면(비디오 속)에서 그 노래를 부르잖아요. 어떻게 보면 ‘항해’라는 트랙하고 대구를 이루는 거 같거든요. 어떻게 선곡을 하시게 되었나요? 맞습니다. 잘 아시는데요? 그 선곡은 촬영 전부터 되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극 중에 파이란이 불러야 하니까. 지금은 얼마든지 외국 음반을 들을 수 있잖아요. 유튜브도 있고 아이튠즈도 있고 아마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중국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때는 한국에 락레코드라고 있었어요. 그게 대만 거였을 거예요. 국내에 유일한 통로가 되는 락레코드에 연락을 했어요. 당신네 음악 쓸 만한 게 있나? 그럼 (샘플러를) 주잖아요. (웃음) 지금은 안주죠. 락레코드에서 많이 가지고 온 거예요. 그걸 다 들었죠. 그러면서 막문위의 그 곡이 딱 걸린 거예요. 너무 좋았어요. 가사가 일단. 그래서 이걸 가지고 있다가 어떻게 했냐면. 리딩하는 날, 배우 다 오잖아요? 인사 하고… 나중에 민식이 형이 그러는 거예요. 음악감독님 계신데 여기서 파이란이 무슨 노래 부르냐? 그러 길래 아 예, 가지고 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걸 틀고, 가사를 프린트 해 왔어요. 그랬더니 다들 딱이네, 해서 진행한 거예요. 그러다가 문제 생겼죠. 막문위는 광둥어로 부른 거예요. 장백지는 북경어로 불러야 하거든요? 그걸 촬영 전날 안 거예요. 그래서 급하게 막 통역하는 분이 바꿔서 쓴 거예요. 마지막에 최민식 씨를 죽이러 지대한 씨가 들어갈 때 그때부터 스코어처럼 나오잖아요. 그러다 카메라가 안으로 들어가면 (그 스코어가) 이 노래의 반주가 돼요. 정확하게 반주로 맞아 떨어지다가, 그리고 노래가 딱 끝나면 공형진 씨가 “오! 남편이 좋아하겠는데”(비디오 속 대사) 그러면 반주(스코어)와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런 식이거든요. 계산을 하긴 했는데, 그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어요. 놀랐어요. 그걸 음악을 아시거나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거 어떻게 저렇게 갔지? 하시는데, 모르는 분들은 그냥 봐요. 다른 음악감독 초대해서 보여줬더니 저걸 어떻게 맞췄냐고 하더라고요. 사실은 우연찮게 잘 맞은 거죠. 소가 뒷걸음치다가 그런 거처럼 (웃음). 그때 음악 확인하려고 감독님이 노량진 제 작업실로 전화하신 거예요, 감독님, 음악 확인하러 오셔야죠, 어 그래, 내가 말야 음악 맘에 들면 고기 사줄게, 그러시더니 공형진 씨랑 같이 왔어요. 마지막에 눈물 글썽글썽하면서 야, 고기 먹으러 가자! 진짜 맛있게 고기 먹었어요. 삼각지에 진짜 고기 맛있는 데가 있더라고요. 지금도 그래요. 감독님 음악 마음에 드시면 고기 사주세요, 그래서 지난번 <고령화 가족>때도 고기 먹었어요. (일동 웃음) <파이란>은 아사다 지로의 『러브레터』란 소설이 원작이었어요. 이후에 작업한 < 모던보이 >나 < 주홍 글씨 >, < 완득이 >, < 우아한 거짓말 >, < 고령화 가족 >까지 원작이 있는데, 작업을 하는 데 있어 원작이 많은 도움이 되거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요. 참고로 전 원작을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아, <우아한 거짓말>은 읽었다. 근데 읽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이거 어떻게 만들지? 그러면서 다 잊어버렸어요. 그리곤 다시 보지 않았어요. 거의 안 봐요. 선입견 때문에요. 의도적으로 안 보는 거죠. 시나리오가 다라고 생각해요. 전 선입견을 받지 않기 위해 영화도 거의 최종 편집본만 봐요. 최초 편집본이 3시간이 넘어가고 그러잖아요. 그 버전을 편집하면서 드러내지는 장면들을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장면이 남거든요. 어떤 스태프들은 그 삭제된 장면들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기억 속에 남기는 거죠. 없는 데 느끼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죠. 그것 때문에 실수를 할 수가 있어요. 전 최종 편집본만 거의 보니까, 그들에게 남아있는 (드러내진 장면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죠. 그들이 느끼는 걸 전 모르는 거고. 제가 관객 입장이 되는 거죠. 그래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원작을 접하는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원작을 읽으면 너무 잘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영화에 없는데 느끼게 되는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이창동 감독님과 <오아시스>를 작업했습니다. 아쉽게도 음악은 문소리 씨가 부른 ‘내가 만일’, 춤곡, 탱고 풍의 메인타이틀인 엔딩곡 세 개만 사용됐어요. 원래 작업을 다 하셨는데, 다른 곡들은 반려된 건가요? 어떠신 거 같아요? 설마… 필요한 데 안 쓰셨을까요? 이창동 감독님은 그런 걸 포기하실 분이 아닌데요. 제가 <파이란>을 하고 났을 때, 감독님이 사람들에게 <파이란>을 보고 와라, 그랬다고 해요. 그 이유는 나중에 듣기로 음악 때문인 거 같다는 거예요. 그러다 연락이 왔어요. <파이란> 음악보다는 적고, <박하사탕>보다는 많을 거 같다, 가 <오아시스>의 음악 콘셉트였어요. 네 알겠습니다. 그러다 시나리오를 읽었어요. 전 시나리오를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요. 음악 생각이 나고 비주얼이 떠오르면서 진도가 잘 안 나가요. 근데 <오아시스> 시나리오는 읽고 있는데 음악이 안 들리는 거예요. 촘촘하게 붙어 있는 게 음악 들어갈 틈이 없어요. 음악이 없어도 될 거 같은 거예요. 이걸 어떻게 말씀드리지? 난 안 들리는데? 그래서 만났는데, 그날은 제가 출연을 하는 날이었는데… 아, 나오셨어요? 전 영화에 지금까지 많이 나왔어요. <박하사탕>에서는 의사, <파이란>에서도 의사, <오아시스>에는 닭갈비 먹고 있다가 경구 형이랑 말다툼 하는 일반 시민. 그러는데 감독님이 부르는 거예요. 시나리오 봤냐고. 네. 그런데 말야 내 생각에는 음악이 많이 안 들어갈 것 같애, 그러시는 거예요. 사실 저도 그 말씀 드리려고 했다. 음악이 안 들리더라. 그래도 만들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했어요. 그래서 음악을 처음부터 그렇게 많이 쓸 계획이 없었어요. 제가 10곡의 데모를 만들어서 들려드렸어요. 이번엔 음악이 다 좋다… 다 좋은데, 그 중에 난 요게 어때, 라고 집어주신 게 지금의 엔딩 타이틀이었어요. 그렇게 진행된 거고 ‘내가 만일’은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문소리 씨가 같이 생활하면서 (연기에 도움을 얻은) 장애인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좋아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문소리 씨, 한공주가 부르는 곡으로 그 곡이 어떨까 했는데, 그 곡이 (그 장면에서는) 안 어울리잖아요. 안치환 곡 중에서 더 생각하다가 ‘내가 만일’을 떠올린 거고요. 그때는 저작권자하고 비용적인 조율이 가능했거든요. 마침 저작권자가 우연찮게 아는 분이기도 했어요. <오아시스>, 청계천 고가도로에서 인도 음악과 함께 나오는 환상 장면 청계천 고가도로에서도 인도음악이 나오잖아요. ‘페스티발 송 오브 아썸’이라는. 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쌈차 페스티벌 음악이에요. 인도 음악이 시나리오에 있어요. 그러면 저도 또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모던보이> 때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음악들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선곡을 하더라도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 그때는 인도(음악)공부를 한 거예요. 그러다 음원을 찾아봤는데, 그때 마침 제가 1년 동안 BBS 라디오에서 영화음악실 패널을 했었어요. 친하니까 작가에게 부탁해서 라이브러리에서 빌린 거예요. 다 들으면서 5곡을 골랐어요. 그 중 한 곡이 그 곡이에요. 사실 이창동 감독님이 <밀양>에서는 크리스티안 바쏘의 곡을 사용했고, 이후 <시>에선 음악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음악감독의 입장에서 이런 음악의 최소한의 사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건 전혀 상관없어요. 이미 영화에 음악을 넣지 말자는 도그마 선언도 있었고요. 음악이 사족일 수 있다, 이런 의견은 있을 수 있죠. 저도 제가 감독이라면 때에 따라 음악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음악이 있어서 더 좋을 수 있는데 안 쓰였다면 아쉬울 순 있죠. 음, 전 의도적으로 음악을 배제하는 도그마 선언 같은 건 좀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도그마를 선언했던 감독도 뒤이어 음악이 풍부한 <어둠 속의 댄서>를 만들기도 했잖아요? (웃음) 피아니스트 이루마 씨가 <오아시스> 이미지 앨범을 작업하기도 했는데, 이는 전혀 관계없는 프로젝트였는지요? 그때 문제가 있었어요. 마케팅 쪽에서 진행했던 건데, 의견은 제가 냈었어요. 이미지 앨범을 내보자. 그런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3자와 이루어지고 있었고, 홍보가 나갔고, 기사에서는 이루마가 영화음악을 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오보가 나갔고, 전 정정을 해달라고 했고, 그런 오해들이 있었죠. 좀 안타깝죠. 그다음으로 작업한 건 국내에서 보기 드문 SF블록버스터 <내츄럴시티>였습니다. 당시 국내에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나오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다양한 장르에 대한 갈망이나 도전 의식이 있었는지요. 아니요. 순서상으로는 그때가 (<오아시스>보다 앞이었어요. 아직) 미국에 있었을 때에요. 이야기는 먼저 되고 있었나요? 네, 제가 데모를 먼저 만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음악 좀 부탁드릴게요, 해서 연락이 왔고, 미국에서(<박하사탕>을 마치고 버클리에 복학한 시기) 음악을 만들어서 보냈는데, 바로 콜이 왔어요. 민병천 감독님이 메인 테마를 듣고서요. 그래서 진행됐던 거고, 장르에 대한 욕심은 늘 있죠. 더 잘됐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죠. 체코에서 체코 필하모닉 멤버들과 레코딩을 했어요. 네 처음으로. 체코에서 이 작품과 <역도산>을 했죠. 체코도 일장일단이 있어요. <내츄럴시티>와는 잘 안 맞는 곳이에요. 그쪽 동유럽의 냄새가 SF와는 잘 안 맞는 거 같더라고요. 다음에 이런 장르를 한다면 체코는 안 갈 거 같아요. 오히려 <인간중독> 같은 영화가 체코를 가면 좋았겠죠. 굉장히 할리우드 스코어 느낌이 들었어요. <내츄럴시티>를 들어보면 대규모 스트링에, 격정적인 피아노, 혼과 같은 웅장한 금관악기가 어우러지며 한국에선 보기 드문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특히 낮은 피아노의 활용은 마치 제리 골드스미스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네 맞습니다. 이 작품도 레퍼런스가 한국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했었어요. 신선한 것들. 민병천 감독님하고 가까워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할 수가 있었는데, 제작과정이 길어지면서 엄청 오랫동안 작업한 거예요. 지쳤죠. CG가 늦게 나오기도 하고, 회사가 바뀌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하게 진행된 영화였어요. <내츄럴시티>에 처음으로 영화 주제가가 쓰입니다. ‘무요가’라고요. ‘낯선 사람들’ 출신의 차은주 씨가 불렀는데 주제가를 의도적으로 작곡하신 건가요? 그럼요. 제가 만들겠습니다! 해서요. (웃음) 만들고 싶었고. 제가 노래를 만드는 것이 못 다 이룬 꿈이잖아요. 그걸 영화를 통해서 이루고 싶었어요. 그래서 <내츄럴시티>에서 만들고, <화성에서 온 사나이>와 <그녀를 모르면 간첩>도 다 제가 노래를 만들었죠. 감독님도 듣고 좋아하셨고, 이제 가수를 붙이자 해서 차은주와 함께 한 거죠. 그때부터 제가 꿈에 그리던 세션맨들, 존경하던 뮤지션들, 앨범 자켓으로만 보던 분들을 제가 클라이언트가 되어 부른 거죠. 조동익 씨, 함춘호 씨, 박용준 씨, 신석철 씨, 이 분들과 함께 한 거죠. 좋았죠. (웃음) 세 편을 다 같이 그분들과 함께 했어요. 드림팀과 함께... 그쵸. 근데 동익이 형은 (세션을) 잘 안 하세요. 그런데 제가 유재하 출신이고 해서 흔쾌히 해주셨죠. 그 뒤 작업한 두 작품, < 화성으로 간 사나이 >와 < 그녀를 모르면 간첩 >은 약간 의외의 선택처럼 느껴집니다. 앞에 작업하셨던 것들에 비해서요. 아 그래요? 하하. 다 좋아요. 다 상업영화잖아요? 그렇죠.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더 그런데,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전 음악적으로는 좋았고요, 테마와 송도 모두 잘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고요. 어떻게 보면 <파이란>이나 <오아시스>보다 더 극단으로 간 영화였어요. 그렇죠. <그녀를 모르는 간첩>은 정말 제 필모에서는 튀는 영화죠. 감독이 제 고등학교 3학년 같은 반 친구예요. 어떤 영화사 개업식에서 우연히 만난 거예요. 어 너 여기 왜 있냐? (웃음) 그렇게 만났고, 그 친구가 자기가 준비하는 게 있으니까 도와줘, 해서 하게 됐어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은 굉장히 과장된 로맨틱 코미디였습니다. 말 그대로 간첩이란 설정이 이용돼서 여러 장르가 혼용돼 구사되고 있는데요, 첩보, 멜로, 코미디.. 작업은 어떠셨는지요. 좀 더 영화도 잘 나왔으면, 음악도 더 잘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죠. 작업 과정이야 친구니까 소통의 문제는 없었지만, 처음 결과물 자체가 좋질 않았어요. 다들 풀이 죽은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본인도 그걸 아니까, 풀이 죽어있고. 끝까지 그 상태로 갔어요. 아쉽죠. (감독도) 재기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재기해주길 바라요. (웃음) 이 작품은 송 트랙의 비중이 큽니다. 재즈가수 신예원, 김도연, 2BE, 김범수(김영국),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주제가를 부른 조성빈, 한동준 씨 등 여러 가수들이 참여했는데요, 프로듀서로 역할이 두드러져 보입니다. 맞습니다. 이런 인터뷰 처음인데요, 준비를 많이 해오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듀싱 개념으로 갔어요. 스코어 보다는 송으로 가자. 그래서 주변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이런 역할을 해봐, 이런 식으로 작업했죠. 여러 분들과 함께 작업 했죠. 김범수(김영국) 씨가 (앞에서 말한) ‘내가 만일’을 작사 작곡하신 저작권자분이에요. 재미있게 만들었어요. 다음이 변혁 감독님의 <주홍 글씨>입니다. 이 영화도 삽입곡이 많은 경우였어요. 아주 버라이어티 하죠. 삽입곡이 넘치는 영화죠. 배경 자체가 클래식 오케스트라고, 첼리스트(이은주)와 재즈가수(엄지원)가 나오고요. 심지어 한석규 씨도 첫 장면에서 클래식을 듣잖아요. 네, ‘신이여 평화를 주소서’, 그 곡이죠. 네 맞습니다. 선곡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일단 기본적으로 변혁 감독님이 클래식 마니아예요. 그래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감독님이 직접 지휘를 하시더라고요. 오 아셨네요? 왜 하셨는지… (웃음) 그런데 그냥 하신 건 아니고요, 변혁 감독님의 친형님이실 거예요. 실제 오케스트라 지휘자세요. 그 곡 큐를 드리고 지휘하는 걸 찍어서 똑같이 한 걸로 알아요. 그럼 감독님이 그 많은 곡을 다 선곡하신 건가요? 감독님도 하고 저도 하고 그랬죠. 그리고 엄지원 씨 첼로 치는 것도 거의 똑같아요. 하나도 못 켜시는 분이었는데, 그렇게 트레이닝 해서 촬영했죠. 이은주 씨가 바에서 노래하는 장면 있죠. 그 뒤의 밴드가 저와 많이 작업하던 밴드(재즈밴드 ‘더 버드’)에요. 그분들이 실제 연주하신 거예요. 레코딩까지. 처음엔 좋다고 하시더니 나중엔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故 이은주 씨가 부른 ‘Only When I sleep’가 화제였습니다. 마지막 곡이 됐죠. 아주 열심히 불러줬어요. 이은주 씨가. 그 곡을 세 번 불렀어요. 한 번 부르고 다 끝냈는데, 다음번에 좀 아쉽다, 해서 친구 바다 씨를 데리고 와서 같이 해보고 싶다, 그래서 또 하고, 그래도 아쉽다 해서 한 번 더 하고. 그렇게 3번을 했죠. 피아노도 잘 치시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쾌활했던 분인데... 많은 삽입곡들 사이에서 스코어는 어떻게 배치가 궁금합니다. 주로 성현아 씨와 관계된 사진관 사건에 스코어들이 몰려있는 듯 합니다. 다른 두 여자 캐릭터들은 재즈 가수와 첼리스트이기 때문에 스코어의 영향에서 벗어난 건지요? 음.. 글쎄요. 제 기억으론, 관심 자체를 이 사건과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거든요. 이쪽의 미스터리한 것을 액자의 느낌으로… 영화 속의 영화 느낌으로, 좀 더 영화적이라고 할까요? 나머지 두 인물들은 리얼리티 적이라면 그쪽은 약간의 판타지 느낌이 나잖아요. 혼자 이야기하고, 약간 연극 같고. 그걸 좀 더 강조하려고 조금 오바했다면 오바한 음악이 있었던 것도 같아요. 전반적으로 음악이 풍부한 영화잖아요. 송해성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은 < 역도산 >이었습니다. 제작비 100억대의, 일본과 합작한 큰 영화였는데. 음악적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는지요? 역도산에 대한 테마보다는 아야에 대한 노래가 더 부각된 것도 같습니다. 누가 봐도 아야가 불쌍하잖아요. 역도산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죽은 건데 거기서 무슨 페이소스를 느껴야 하나. (웃음) 그런 게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전 정서가 아야에게 많이 가더라고요. 그리고 보신 버전은 아마 국내 버전일 텐데 일본 버전은 중간에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역도산이 귀국해서 성공했어요. 그다음에 자전거 끌고 집까지 가요. 거기서 아야가 같이 들어가자고 했는데, 안 들어가요. 역도산이. 왜 안 들어가냐, 했더니 나 지금 들어가면 다시 못 나올 거 같아. 어떤 의민지 아시겠죠. 내가 지금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지금 집에 들어가면 책임질 가족이 생기고… 그러면 성공을 못 할 거 같다. 미안해. 그리고 가는 모습을 아야가 쭉 봐요. 그때 음악이 쭉 가죠. 그 장면도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전 아야에 정이 더 많이 가더라고요. 여배우 나카타미 미키가 허밍도 직접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엔딩 노래를 만들었어요. 만들 때부터 처음부터 허밍을 생각했었어요. 다 만들어놓고 제가 허밍해서 감독님께 들려드리고, 한 번 해봐 했던 거죠. 나카타미 미키와 하고 싶다고 하니까 데모를 일본에 보냈어요. 그게 OK가 나온 거예요. 제가 아침 첫 비행기 타고 가서 녹음실 정하고 녹음 다 하고 그날 밤 비행기 타고 왔어요. 다시는 그런 짓 안 해요. (웃음) 거기선 더 있으라고 했는데, 후반 작업이 남아 있잖아요. 제 입장에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하고 그다음 다음날 체코로 간 거예요. 프로레슬링을 처음 접하러 갈 때 흐르던 게르하르트 빙클러의 ‘에스파뇰라’는 어떻게 선곡하게 된 건가요? 몽타주를 보면 희극적인 무성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네, 제가 선곡을 했죠. 처음부터 웅장한 음악이 들어가기에는 좀 그래서... 다음이 정지우 감독님의 < 사랑니 >입니다. 작지만 섬세한 사랑에 대한 영화였어요. 감독님이 요구한 방향성이 있었는지요? 작업할 때, 우리 영화음악은 이랬으면 좋겠어 이런 분도 계시지만 그런 이야기 할 것도 없이 그냥 막 진행되는 영화들이 있거든요. <사랑니>가 그랬던 거 같아요. 정지우 감독님하고는 <오아시스> 끝나고 만났었어요. 차이가 한 3년 정도 나는데. <파이란> PD였던 안상훈 (상상필름) 대표와 정지우 감독님이 대학교 선후배 관계거든요. 제가 < 해피엔드 >를 너무 좋게 봐서 상훈이 형한테 정지우 감독 작품 해보고 싶어요, 그냥 그랬어요. 그랬더니 그래? 그럼 해. 그러는 거예요. 알고 보니 지금 진행 중인 작품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감독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다음번에 해봅시다. 그때 거기서 처음 진행했던 게 < 두사람이다 >였어요. 음악도 많이 준비했는데 엎어지고. 다른 시나리오가 나오고, 우여곡절을 겪었죠. 그러면서 (정지우 감독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 사이에 시나리오가 몇 개 더 있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인 영화인데, 리얼리티 속에 판타지가 있어요. 키스 씬 중간에 몸이 뜨든지 하는 장면도 있고요. <사랑니>는 먼저 곡을 많이 만들었어요. 음악을 많이 만들어 드리고, 정지우 감독님은 편집할 때 관여하시거든요. 그래서 편집할 때 음악을 붙이면서 작업하는 거였어요. 또 하나는 현재 영화에선 두드러지게 표현되고 있진 않지만 원래는 전화벨 소리가 큰 역할을 하는 영화거든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표현이 잘 안돼요. 전화벨을 위해서 곡을 많이 만들었죠. 전화벨 테마가 많아요. 이 작품에선 단출하지만 북촌이란 공간과 계절을 잘 드러내는 악기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나 캐릭터, 내용에 맞춰 악기 선택이 이루어지는 건가요? 또 주로 어떤 악기로 작곡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악기도 음악의 한 부분인 거죠. 최종적으로 완성될 음악을 어떤 악기로 연주할 것인가의 결정은 작곡의 한 부분이고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음악을 만들기 전에 악기 구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이것은 비단 한 큐의 음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의 톤 앤 매너에 관한 고민이기도 하죠. 송해성 감독님과 세 번째로 만난 < 우행시 >를 하셨는데요, <파이란>처럼 아슬아슬하게 신파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함몰되지 않고 절제미랄까 중용을 지키는 게 있는 거 같아요. 송해성 감독님 영화를 보면 멜로인데도 구구절절 풀지 않고 지점들을 잘 포착하시는 거 같거든요. 글쎄요. 일단, 송 감독님 영화를 보면 막 오바하고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절제하고 담백한 거를 좋아하시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악도 그렇게 가야 하는 거였고. 그래도 엔딩의 음악은 신파적으로 가잖아요? 그것도 사실 감독님의 원래 의도는 아니고 제 의도에요. 감독님은 훨씬 더 담백한 걸 원하셨어요. 그래도 여기선 울려야죠, 했고 주변의 수많은 설득, 그래도 감독님의 의지를 안 굽히셨어요. 감독님은 사실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원하셨어요. 전 안된다고 했고. 결국 음악 컨펌할 때, 사람들 불러놓고 비교를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한참 뒤에야 네게 낫다! (웃음) 그래서 가게 됐죠. <우행시> 같은 경우는 음악적으로 참 만족스러운 영화였어요. 영화음악적으로는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그런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시간과 공간을 엮는 듯한 음악. 이 영화가 제일 어려웠던 게 매주 목요일 1시에 만나야 해요. 그러면 그 사이에 뭘 채워야 하잖아요. 시간이 지나가니까. 그런데 그걸 채우자니 감정이 끊기고, 그냥 붙이자니 뜬금없이 그다음 날이 마치 바로 일주일 후 같지가 않고. 그런 게 많았어요. 그런 것들을 음악이 시간의 경과와 감정의 이음을 해주는 시퀀스들이 많아요. 그게 참 좋았고. 그리고 유정이에게는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엄마의 ‘월광 소나타’ 피아노가 계속 나오거든요. 그것도 굉장히 고급스럽고 좋았었던 거 같아요. 최창환 감독님의 < 울어도 좋습니까? >는 아직도 개봉되지 못한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영화인지 궁금합니다. 그 영화는 어떻게 아세요? 감독님이 제 선배 분이시라서요. 아직도 개봉 못 한 걸로 알고 있어요. 네 못할 거 같아요. 영화는 참 좋아요. 영화가 개봉하려고 준비할 때 즈음에 영화사가 넘어갔어요. 그럼 누가 사서 할(개봉)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사를 사 간 쪽이 영화와 전혀 관련 없는 곳인가 그럴 거예요. 그래서 영화도 매물인가로 취급되더라고요. 그래서 불가능하대요. 안타깝죠. 영화는… 이런 감독님도 우리나라에 활동을 쭉 했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섬세하고 따뜻한 정서가 좋았어요. 아쉬워요. 음악도 참 좋았는데. 다 만들어놓고. OST까지 다 나왔거든요. 출시를 못 한 거예요. 변준석 감독님의 < 에일리언 밴드 > 역시 일반적인 개봉을 하지 못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만 상영되었는데요. 밴드를 다룬 음악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업하신 계기나 방향에 대해 궁금합니다. 아, 잘 만든 음악 영화를 하고 싶었고, 그렇게 해서 진행됐죠. 하면서 느꼈던 것은 현재의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는 잘 만든 음악영화를 만들기가 참 쉽지 않다, 라는 거였어요. 작업하면서 그것들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최선을 다해 준 스태프들과 음악팀에게 감사한데 개봉이 안 된 것이 아쉬워요. 정지우 감독님과 두 번째로 작업한 <모던보이>도 규모가 큰 영화였어요. <역도산>처럼 일제 강점기를 다룬 시대극인데, 그 시기에 맞춘 재즈, 빅밴드 (그리고 왈츠) 사운드가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음악) 공부를 했죠. 당시의 상류층 음악이 뭘까? 했더니 의외로 재즈인 거예요. 그 당시에는 이미 재즈가 상류층에선 즐겨듣던 음악이고 심지어 놀란 건 이미 그 당시에 미국에서 지난해 유행한 게 우리나라에 1년도 안 되어 유행하고. 그 당시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상상을 초월하더라고요. 그래서 재즈를 기반으로 음악을 해도 문제가 없겠다. 재즈를 더 화려하게 하자. 그 당시에는 재즈가 상당히 화려한 음악이었을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했고, 또 하나는 카페에도 클래식이 나올 법한데, 그냥 클래식이 아닌 그걸 재즈로 편곡해서 하고 그렇게 했죠. 조난실이 부르는 노래(개여울)도 제가 선곡을 했는데요, 재즈로 편곡해서 영화에 쓰고. 그렇게 재즈를 기반으로 했어요. ‘개여울’이라는 곡 자체는 30년대 곡은 아니죠? ‘색채의 블루스’도 그렇고요. 네 맞습니다. 선곡을 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단 일본 노래여야 한다. 안 그래서는 가짜다. 음악이 그 당시보다도 더 화려해야 한다. 또 살롱 느낌이 나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곡들 중 하나가 ‘색채의 블루스’였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개여울’은 독립운동가 조난실이 불러야 하잖아요. 어떤 노래 부를까, 하다가 실제 있는 부를 법한 노래를 찾아본 거예요. 그걸 편곡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당시의 동요나 가요들 (작곡가들이) 거의 대부분이 다 친일 명단에 있어요. 그럼 도대체 무슨 노래를 해야 해. 하다가 김소월은 일찍 죽어서 친일 논란에 해당이 없으니까, 김소월 시를 가지고 노래를 찾아보자, 해서 ‘엄마야 누나야’ 부터 시작해서 뒤지다 보니 ‘개여울’이 있는 거예요. 1960년대에 작곡된 노래지만 뿌리는 여기에 두고 있지 않은가, 해서 선곡해서 재즈로 편곡한 거죠. 영화에는 일본어로 번안해서 트로트로 부른 버전도 있죠. 허진호 감독님과 함께 한 < 호우시절 >은 의외의 작품인데요, 그동안 조성우 음악감독과 오랜 파트너 쉽을 이뤄왔었는데, 감독님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 그래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조성우 음악감독님께서 그 당시 작업을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연락이 왔어요. 전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이 작품부터 조금 음악적인 색이 바뀐 것 같아요. 기존의 피아노와 스트링 위주의 스타일에서 기타가 많이 사용되어 또 다른 느낌입니다. 아, 기타가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요. 악기 선택은 일부러 써야지 이런 건 아니라 잘 어울릴 걸 찾는 거죠. 그 앨범은 다 기타 위주죠. 어쿠스틱 녹음이고. 앨범도 공을 많이 들였어요. 예전에 작업을 함께 하던 CJ 엠넷에 계셨던, 일 잘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퇴사를 하시고 독자 레이블을 만드셨어요. 그 회사에서 거의 초창기에 만든 앨범이 바로 이 <호우시절> 앨범이고요. 공을 많이 들였어요. 거기가 바로 지금은 유명한 인디 레이블인 미러볼이에요. 일 잘하셨던 그 분이 이창희 대표님이시고요. 그게 인연이 됐는지 지금도 종종 영화음악 앨범을 내기도 하더라고요. 이때 전까지는 대부분 스플래쉬 뮤직에서 냈어요. 그것도 어떤 연이 있었는데요, <박하사탕> OST를 못 냈어요. 아무도 안내준 거예요. 아니 노래가 없잖아, 이러면서. (웃음) 그때 어렵게 냈어요. 난장이라고, 거기 대표님과 연결돼서 어렵게 내긴 했어요. 그다음엔 너무 힘들어서 제가 고민하고 있는데 <오아시스>인가를 낼 때 그 분에게 연락이 왔어요. <박하사탕>의 어떤 곡을 한 앨범의 컴필레이션으로 넣고 싶다, 한 거죠. 그래서 OK 하고 <오아시스>도 내고 싶다, 했는데, 그 분도 퇴사(하고 스플래시 뮤직을 설립)하셨다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당신이 좋아서 연락한 거니까 계속 작업하고 싶다, 고 해서 그 분과, 스플래시 뮤직이 문 닫을 때까지 계속 거기서 냈어요. 의리가 있으시네요. (웃음) 사람하고 일하는 거니까요. 서로 믿고 맡기면 제가 편한 거죠. 배창호 감독님의 2009년 작< 여행 >은 단편 세 개로 이뤄진 옴니버스 작품이었는데, 단편 3개를 작업하듯 따로따로 작업하신 건가요? 배창호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창호 감독님의 < 기쁜 우리 젊은 날 >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안이 왔을 때 무조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만남은 너무 좋았구요. 기존 감독님들과 음악을 대하고 다루시는 방식이 많이 다르시더라고요. 많이 배웠죠. 단편 3개가 모두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에 각각에 맞춰진 작업을 했어요. 단편 작업들은 장편 상업영화와 많이 다른가요? 상업이란 표현을 빼면... 달라요. 그러니까 영화의 물리적인 길이라는 건 이야기의 함축과 표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음악도 그 호흡을 따라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음악 접근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상업과 비상업이 장편과 단편의 구분점은 아니구요. 그다음 김민석 감독님의 < 초능력자 >는 <내츄럴시티> 이후 모처럼만에 맡은 SF 계열 장르물이었습니다. 네, 그런데 좀 다르죠. 막 달리는 영화입니다. 처음부터 김민석 감독과 그랬어요. 달리자. 신나게 갑시다! 일렉트로닉이 사용됐어요. 네, 제 음악적인 콘셉트는 100% 일렉트로닉. 엔딩 음악은 잘 안 쓰는 음악도 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해봤죠. 신났어요. 감독님도 굉장히 신뢰해주고 했죠. CD는 안 그렇지만 음원으로 풀린 걸 보면 초인과 규남 버전으로 각각 앨범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건 이창희 대표의 아이디어였어요. 그러니까 20곡을 냈다고 하면 시기를 둬서, 투 탑 영화였으니까, 10곡은 초인(강동원) 버전으로 오픈하고, 며칠 후에 규남(고수) 버전으로 10곡을 시기의 차이를 둬서 오픈하는 거죠. 마케팅을 한 거죠. 원래 두 캐릭터에서 맞춰 스코어를 구분한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캐릭터에 맞춰 스코어를 작곡한 건 아니에요. 미러볼에서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송해성 감독님과 네 번째로 작업한 <무적자>는 < 영웅본색 >의 리메이크였습니다. 아 < 무적자 >... 그건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죠. 그래서인지 송해성 감독님과 한 작품 중에 유일하게 음원이 없어요. (시중에 발표된 <무적자> 앨범은 삽입곡들을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낼 수가 없어요. OST는 만들었는데, 복잡한 판권 문제가 있어요. 투자가 일본이잖아요. 그쪽하고 문제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내지 말자 이렇게 된 거죠. 고가휘가 작곡한 ‘당연정 當年情’이나 TV에 자주 나오는 오리지널 테마곡이 워낙 유명한데, 오히려 2탄의 주제곡인 ‘분향미래일자 奔向未來日子’가 사용되었는데요. 예 맞아요. 아… 말씀드렸지만 <무적자>는 제 영화라고 말하기가 애매한 뭔가가 있어요. 전체적으로 시스템 자체가 이상하게 어떤 힘에 의해서 막 흘러가는 거예요. 아쉬움이 많아요. 제 의견을 표현을 잘 못했고. 감독님도 좀 혼란스러웠던 거 같고. 그래서 그런 음악들도 감독님께서 쓰자고 하시면, 이 음악은 <영웅본색>의 후속작 음악이고 하면 충분히 쓸 수 있다. 영화사에서도 저작권 사겠다 그러니까 저야 방법이 없죠. 여러 가지로 이상한 힘에 의해 흘러가서 저도 뭐지? 했던 기억이 있어요. 뜨거운 감자와 같은 영화였죠. 이한 감독님의 < 완득이 >는 <호우시절>처럼 기타가 메인이 되는 스코어입니다. 청춘영화답게 경쾌 발랄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데요, 이는 특별한 서사구조나 악인이 없는 에피소드 구조의 영화에 음악으로 방점을 찍어주는 듯합니다.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건가요? <완득이>는 이한 감독님과 연이 있었어요.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함께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모던보이>를 하느라 여력이 없었죠. 감독님은 그래도 이 사람하고 해봐야지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연락이 왔어요. 감독님하고 정서가 유사한 게 있어서, 음악 작업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는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가 포인트가 있거나 그런 게 아니라 음악 넣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작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영화 자체가 좋았어요. 그래서 착하게, 엄마의 마음처럼 그렇게 했어요. 대신에 뛰거나, 권투 하거나 그럴 땐 음악이 몽타주처럼 들어가잖아요. 그땐 사실 노래를 넣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시 노래를 만들어서 하려고 보니까 우리말이잖아요. 그게 좀 안 어울릴 거 같아서 제가 직접 프로듀싱을 해서 영어로 노래를 만들었죠. 그래서 거기서 나온 노래들이 다 작곡된 노래들이에요, 선곡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은 영어노래 나오면 선곡인 줄 알잖아요. 그게 아니고 일부러 팝송을 만든 거예요. 제가 뮤지션들을 데리고 그 곡을 만들고 녹음도 하고, 뮤직비디오도 제가 제작해서 유튜브에도 올리고 그런 걸 제가 다 했죠. 굉장히 노래가 신나고 좋았던 거 같아요. 네, 그런데 미국 애들이 들으면 발음이 안 좋아서 잘 못 들어요. (웃음) 물어보니까 이게 무슨 영어 같긴 한데 잘 안 들린다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거야 일부러. (웃음) 황인호 감독님과도 작업을 하셨는데요, < 오싹한 연애 >와 < 몬스터 > 두 작품 모두 범상치 않은 영화들이었습니다. 모두 하나 이상의 장르가 섞인 퓨전 영화였는데 <오싹한 연애>는 로맨틱 코미디와 호러의 조합이었고, <몬스터>는 스릴러와 코미디의 조합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오싹한 연애>는 괜찮죠. 로맨스와 코미디가 붙는 건 원래 (로맨틱 코미디) 있던 거고. 거기에 호러가 있는데, 호러는 로맨스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존재하는 거라, 기본적으로 로코든 멜로든 결과가 비극이냐 희극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지위나 편견이나 장애물을 넘어가는 순간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여기선 호러가 그 역할(장애물)을 한 거죠. 그래서 믹스 같지만 어떻게 보면 믹스가 아닌 장르였어요. 굳이 구분하자면 호러로맨스코미디라지만 사실은 그냥 로맨틱 코미디에요. 그런데 굉장히 무서웠어요. 그런 영화치고는... (웃음) 그죠. 무섭게 찍었어요. 근데 <몬스터>는… 섞인 짬짜면이에요. 짬뽕 국물에 짜장 넣으면 못 먹잖아요. 두 가지 장르가 다 매력적이긴 하지만 황인호 감독님 입장에서는 <오싹한 연애>가 됐으니까 또 해보자 이렇게 된 거였죠. 남들과 똑같이 하는 건 싫다, 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비평가들 입장에서는 과했다, 섞임이 너무 과했다는 거였고요. 전 아무 정보 없이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죄송한데요, 이게 뭐예요?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런 분위기. (웃음) 근데 감독님은 그걸 의아해하고.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어요. 근데 아쉬웠던 게 많았죠. 가령 둘 다 몬스터여서, 몬스터 대 몬스터여야 하는데, 하나는 몬스터이기엔 캐릭터가 작아 보이고. (마침 카페 벽에 붙어있던 마동석 배우의 사인을 가리키며) 마동석 씨나 <황해>의 김윤석 씨가 하거나, 그래서 여자는 더 가냘픈 사람이 하거나. 그래서 딱 둘이 섰을 때 상대가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될 거 같거든요. 시작할 때 ‘개잡년이다’ 송이 나오는데요. 네 맞습니다. 감독님이 가사 쓰신 거예요. 제가 안 썼습니다. (웃음) 그걸 딱 써놓으신 거예요. 다 욕으로 구성된, 그런데 말이 안 되는 욕인 거죠. 그게 콘셉트에요. 그래도 그걸 맞춰보셨을 거 아니에요? (웃음) 제가 불러서 데모를 줬죠. 감독님, 가사가 이렇게 가야 해요? 감독님은 왜요? 좋다고… 심지어 감독님께서는 이걸로 마케팅도 가자고 하셨어요. 버전도 많아요. 한 4갠가 있어요. 사람들이 일명 텔레토비라고 부르는 할머니 태양 씬도 나오고요. 나중에 급하게 집어넣은 거예요. 가면 갈수록 혼돈이 생겼던 거죠. 음악 역시 그런 관용도에 있어서 고심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마찬가지죠. <오싹한 연애>에 이어 바로 진짜 호러영화, 변승욱 감독님의 <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 >와 <무서운 이야기>까지 하셨어요. 원래 승욱이 형 데뷔작인 <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을 했어야 되는데, 같이 못 해서 많이 아쉬웠고, 그래서 제가 막 뭐라 그랬어요. 다음 작품은 꼭 나랑 같이 해야 돼, 해서 <고양이>를 하게 됐는데, 잘 안 됐죠. (웃음) 저한테는 잊을 수 없는 은인이죠. 제가 거기에 대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는 건데, 승욱이 형 입장에선 그만 고마워하고 그만 부담 가져도 된다, 충분히 알고 있고, 결국 그 기회를 잡은 건 너였기 때문에 내가 그 기회를 주지 않았어도 너는 했을 거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호러를 연달아 하시게 된 이유가 있나요? 계속 들어왔어요. (웃음) 뭐 딴 게 있나요? 호러가 시기적으로 맞물려서 들어온 거죠. 음, 재미있게 작업하면 되게 재밌어요. 내가 어떻게 하고 안 하고에 따라 관객이 놀라고 안 놀라고, 수위 조절이 확실하거든요. 근데 작업할 때가 힘들어요. 대부분 호러영화는 개봉이 7~8월이잖아요. 그럼 작업이 3~4월부터 시작돼요. 그때 막 봄비 내리고 그러거든요. 그러면 작업하고 있으면 번개 치고 그러면 뒤돌아보고 그런다니까요. 안 좋아요. 심적으로는. (웃음) 호러는 음향하고 구분이 모호하기도 한데요? 그래서 혼동이 많이 되죠. 그걸 충분히 조율해야 하는데 조율이 안 될 경우에는 큰 문제가 생길 수가 있어요. 서로 안 할 수가 있는 거죠. 귀신이 나오는데 이건 음향이지, 이쪽에서는 이건 음악이지 그래서 안 해. 그런데 (무음 속에) 갑자기 귀신이 콩! 하고 나오는 거예요. 이건 누구 책임인가 하는 거죠. 그걸 미리 조율하고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시스템이 아직 그러질 못해요. 체계적이지 못한 거죠. 전문 조감독, 전문 제작실장이 빨리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그게 없잖아요. 가졌던 노하우가 다 없어지는 거예요. 답답할 때가 있죠. <해와 달>, 버스 안의 아이들 < 무서운 이야기 >에서 4개의 에피소드 중 정범식 감독님의 <해와 달>, 홍지영 감독님의 <콩쥐팥쥐> 음악을 담당하셨는데요. <해와 달>에서 버스 안에서 아이들이 부르는 부분을 정범식 감독님이 작곡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정범식 감독님이 피아노도 잘 치시고 노래도 부르시고. 제가 보기엔 음악 잘하시는 분이에요. 저한텐 자꾸 모르신다고 하시는데... 어느 날 갑자기 꿍짝꿍짝 만들어 오신 거예요. 이건 팀 버튼적으로 편곡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나온 곡이에요. 누가 봐도 그렇게 나온 곡 같잖아요. (웃음) <콩쥐팥쥐>에서는 결혼행진곡이 나오고요. 맞아요 맞아요. 결혼행진곡을 변주해서 갔죠.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결혼전야>를 같이 하게 된 거고요. 그러고 보면 < 결혼전야 >와 같은 코미디 영화도 많이 하셨습니다. < 어린 왕자 >나 < 청담보살 >, <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 < 미나 문방구 >도 모두 코미디인데, 다만 이들은 비평이나 흥행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작품 선택에 대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죠. 그리고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확인하고 지향하는 바에 대한 공감이 생기면 결정하게 돼요. 영화의 흥행과 비평만을 위해 결정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작품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시나리오를 받으시면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편집이 된 영상을 보고 나서 음악이 떠오르시나요? 작업방식에 대해 궁금합니다. 대부분은 처음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음악의 톤과 악상이 바로 떠올라요. 그래서 (<오아시스> 이야기 때 말씀드렸듯이) 시나리오를 읽는데 시간이 꽤 소요되는 편이에요. 그리고 어떤 경우는 화면을 보면서 즉흥적으로 음악 작업이 이루어지는데요. 매번 작업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죠. 하지만 일단 시나리오를 정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다시 코미디 영화로 넘어가서요. 이들 스코어에선 조금 과장되어 음악이 부각된다던지, 미키마우싱 효과들이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코미디 음악 작업은 어떠셨나요? 코미디 영화도 그마다 다른 음악적 접근이 있어요. 절제를 통한 반전의 웃음이라던가, 전통적 방식의 코미디도 있구요. 그 상황에 맞춰서 작업하기 때문에 코미디 영화라서 특별한 작업은 아니에요. 이진혁 감독님의 장편 다큐멘터리 < 링 >의 음악도 담당하셨는데 극영화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다큐멘터리는 처음이었고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제안이 왔을 때 흥미롭게 작업했어요. 크게는 차이가 없더라고요. 결국 영화를 보는 관람자들에게 정보 혹은 정서를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음악을 사용하기 때문인가 봐요.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꾸준히 해 볼 생각입니다. <고령화 가족>, 가족들 송해성 감독님과의 5번째 호흡을 맞춘 최근작이 < 고령화 가족 >입니다. <고령화 가족> 네, 참 좋은 영화인데. 역시 기타 선율이 두드러져요. 쿵짝거리는 집시풍의 스코어인데 어떤 콘셉트였는지 궁금합니다. 키치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하더라고요. 이 사람들에게는 어울리는 게 그거밖에 없겠더라고요. 막장까지 간 가족이잖아요. 피아노나 클래시컬한 걸로는 안 되겠고 약간 집시풍으로 했죠. 그래서 엔딩 타이틀에는 ‘초우(원작에서도 패티 김이 부른 이 곡이 잠깐 등장한다)’를 올리고 싶었어요. 누가 좋을까 하다가, 원래 ‘초우’는 엄마가 거기서 혼자 부르고 마는 거였어요. 그러다 감독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악어떼)’ 들어봤냐고. 한 번 들어보라고. 그래서 웃긴데요? 했더니 그걸 우리 엔딩으로 쓰면 어떨까 하시는 거예요. 아 이건 아닌 거 같은 데요 하다가 아 그럼 감독님 아예 ‘초우’를 이 팀에게 부르라 하면 어떨까요. 해서 또 미러볼 소속이니까, 리더인 조까를로스를 만났더니 좋다 해서 하게 된 거예요. 역시 최근작 <우아한 거짓말>은 <완득이>의 이한 감독님과 작업한 두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기타 위주의 <완득이> 때와는 달리 피아노와 스트링이 전면에 부각된 게 <우행시>나 <화성에 간 사나이>의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어떠한 점에 주안점을 두셨나요? <우아한 거짓말>은 음악의 톤을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여러 고민들을 한 결과 현재의 음악이 나왔죠. 하지만 몇 음악은 초기부터 확정되었어요. 가령, 만지와 엄마가 천지에게 달려가는 만지의 꿈 장면과 엔딩 타이틀이 그건데요. 이들을 기초로 설계하고 나머지를 짜맞추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더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데, 이 영화가 가진 본연의 색채와 의도를 최대한 맞추도록 했고 그것이 이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의 본래 의도라고 생각했죠. 영화 내용이 조심스러웠습니다. 2009년부터는 1년에 2~3편씩 꾸준히 하시게 되는데, 그때부터 시스템이 구축이 되신 건가요? 네. <모던보이> 이후부터 서서히 팀을 꾸려서, 사실 고 시기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폭삭 주저앉을 때였어요. 굉장히 어려웠을 때예요. 그 이후에 음악 개런티도 많이 내려갔어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분위기였던 거예요. 일단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이런 분위기였으니까요. 또 하나는, 조금 조금씩 하는 것 보다는 작품 수를 늘려가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천천히 팀을 만들어가면서 작품수를 늘렸죠.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은 크레딧 보시면 페임이라고 되어있거든요. 약자로는 Film And Music Entertainment인데 영화에서는 제 이름을 계속 쓰는데, 작곡팀으로는 페임으로 있고, 인디영화나 게임, CF, 다큐, 예술영화는 페임으로 갈 거 같아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친구들과 작업을 계속 하고 있고요. 그러면서 스펙트럼을 넓혀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기회가 되면 다른 나라 것을 할 수도 있고요. 제가 영화음악을 하다 보니까 창작 자체에 힘을 너무 많이 뺐던 거 같아요. 알고 보니 영화음악이란 건 창작 자체 보다는 음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활용하려면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가 한 컷 한 큐에 맞춰진 음악을 계속 만들다 보면, 힘들게 만들다 보면 나중에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제력을 잃어버려요. 그러면 감독이 빼자, 길이를 맞춰달라든지 음악 자체에 변형을 가하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해요. 이 음악이 아니다라고 하면 거기서 못 헤어 나와요. 한두 발 물러나야지, 빼볼까요? 잘라볼까요? 할 수도 있고, 그래야지 다양한 음악 작업이 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제가 창작도 계속 하지만, 전 멜로디만 주고 팀원이 편곡을 하거나. 전 그럼 일이 하나 줄잖아요. 그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여유가 생기는 거죠. 영화라는 게 10명만 보는 게 아니라, 천만까지도 볼 수 있는 거다 보니 객관화를 시켜야 하는 거거든요. 창작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꾸 내 음악인데, 내 음악을 왜 이해 못하지? 하는 혼란이 생겨요. 그런 것들을 컨트롤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죠. 국내 영화에서 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요? 장르요? 한 번도 안했던 거가 퓨전재즈. 퓨전재즈 영화음악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거랑 뮤지컬? 이런 것들. 하고 싶은데… 둘 다 음악이 강조 되는 영화죠. 당연히 음악감독으로는 음악이 빛나는 영화가 좋죠.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이런 영화 말고는 더 이상 (퓨전재즈가 잘 어울릴 수 있는) 도시적인 냄새가 나는 영화는 안 나오는 거 같아요. 감독님께서 직접 그런 스타일을 요구해 보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영화의 음악을요? 안 맞는다고 하겠죠. (웃음) 우스갯소리로, 예전 송해성 감독님과 작업할 때도 감독님, 여기선 이런 음악이 어떠세요? 하면 그건 네 영화 만들 때 해.(웃음) 그러는 거죠. 사운드트랙 발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009년 <호우시절>까진 꾸준히 발매도 하셨는데, 최근 음원 시장으로 바뀐 후엔 <완득이>, <오싹한 연애>, <고령화 가족>, <비밀애> 정도만 시장에 소개됐습니다. <결혼전야>는 발매가 되었지요.(웃음) 사운드트랙의 발매 여부를 제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겠죠. 물론 아쉽지만... 그것이 현재 한국 영화산업에서 사운드트랙을 바라보는 시각인 것 같아요. 작곡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요? 음… 가장 중요한 거? 영화를 위한 것? 절대로 음악이 먼저 나서지 않기. 음악은 확실히 주종관계에서 종이다. 그게 확실하거든요. 뮤직비디오랑은 정반대죠. 음악이 훨씬 돋보이고 영상이 서포트해야 하는데, 영화는 안 그렇거든요. 영상과 내러티브가 맞아야 하고 서포트를 음악이 해줘야 하거든요. 가끔 음악이 욕심을 내서 올리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그냥 자기 음악 하면 되거든요. 그건 전 좋은 어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영화음악으로 어디까지 작곡가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대중음악이나 클래식에 비하면 한계나 제약이 많을 텐데요. 이 질문은 아마 제가 영화음악을 그만 둘 때까지 하게 될 고민이네요.(웃음) 이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은 한 학기 동안의 수업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음악적으로 확신이 없고, 혼란스러워하는 감독님들도 많은 편인가요? 글쎄요. 아마 제가 감독이 되고 음악을 직접 만든다고 해도 그런 확신을 갖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을 혼란이라고 표현하는 것 보다는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이 맞는 것 같네요. 문제는 끝까지 그런 마음으로 작업을 마무리하느냐 아니면 그런 혼란과 조심 후 그것이 확신이 되어 마무리가 되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확신을 주는 것이 음악감독의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 불안을 해소시켜 주느냐죠.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가와 영향 받은 음악에 대해 골라본다면? 다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작품 때문에 좋아한다기 보다는 마인드가 좋아서 좋아하는 경우? 예를 들면 히치콕 영화의 버나드 허먼. 제리 골드스미스 같은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작품할 때마다 고민을 하거든요. 이 영화음악만을 위해서, 이 영화에 맞는 콘셉트를 잡아서 하잖아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배경이 있잖아요. 왜 이렇게 했는지. 그런데 그걸 이야기 못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냥 화면에 맞춰 한 거거든요. 저는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이야기꺼리가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다면? 분명하지 않은데 아마도 멜로가 되지 않을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10년 전인 2003년, 한국영화는 절정이었다. < 지구를 지켜라! >로 시작해 < 살인의 추억 >과 < 장화, 홍련 >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와 < 황산벌 > < 원더풀 데이즈 > < 바람난 가족 >과 < 싱글즈 > < 실미도 >가 함께 개봉됐던 해. 양적인 팽창뿐만 아니라 질적인 성공까지 이뤄낸 황금기였다. 그리고 그 정점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 올드보이 >가 있었다. 복수에 관한 지독하고 놀라운 영화. 연출과 연기, 각본, 촬영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 매력을 선사했던 건 다채로우면서 세련된 음악의 힘도 한몫했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3명의 작곡가에게 스코어를 부탁했고, 그중 가장 많은 곡을 매만진 심현정 은 이제 막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두 편의 상업영화에 참여한 신예 음악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유명한 장도리 액션 씬에 쓰여 처연한 인상을 남긴 대수 테마 ‘The Old Boy’와 유난히도 가슴 시린 슬픔과 아름다움을 선사한 미도 테마 ‘The Last Waltz’ 등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보이며 세상에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다. 다음 해 < 누구나 비밀은 있다 >로 영화음악가로 홀로선 그녀는 지난 10년간 영화와 TV를 부지런히 오가며 ‘유일한’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대표적인 여성 영화음악가가 되었다. 특유의 섬세한 서정과 귀를 사로잡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보는 이로 하여금 손쉽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심현정의 영화음악은 영상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포용력이 만나며 극대화된 결과다. 전국에 원빈 열풍을 불러일으킨 < 아저씨 >를 비롯해, 동화풍의 복고적 판타지 < 늑대소년 >뿐만 아니라 ‘눈물’ 시리즈로 명명된 일련의 MBC 고품격 다큐멘터리 < 북극의 눈물 > < 아마존의 눈물 > < 아프리카의 눈물 > <남극의 눈물> 등을 통해 흥행과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거머쥐는 기염도 토했다. 할리우드에서조차 드문 여성 작곡가라는 한계와 벽을 딛고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고히 구현하고 있는 그녀에게 대한민국에서 여성 영화음악가로 활발히 활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문득 직접 듣고 싶었다. 감독님 작품 중 가장 최근 개봉한 < 피 끓는 청춘 >은 코미디입니다. 그답게 음악이 굉장히 짧고 기능적으로 사용됐는데요, 그러면서도 < 그해 여름 >이나 <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처럼 서정적이고 복고적인 색채의 따뜻한 사운드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연우 감독님이 요구한 콘셉트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연우 감독님은 영화에서 음악이 주로 선곡 위주로 가길 바랐고, 작곡되는 음악으로는 피아노나 기타 솔로 정도의 깔끔한 사운드를 원하셨어요. 특히 작곡되어서 기능하는 음악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하면서도 효과적이고 깔끔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신경 썼어요. 기타나 아코디언 등의 향수를 자극하는 악기를 사용해 복고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 들도록 작업했죠. 스코어에서 특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요? 80년대라는 시대 배경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현시대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만드는데 주력했어요. 영화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단편적으로 사용되어 다른 역할을 하는데요. 추억의 아코디언, 일진의 일렉 기타, 라틴풍의 기타, 미니멀한 피아노 등 다양한 음악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시대와 배경을 뛰어넘고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음악이 필요했는데요. 특히 어린 시절의 애틋한 기억과 가족의 정이 느껴지는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가 중요했어요. 이는 영화 후반에 피아노와 기타 등의 악기로 변주되기도 하는데 짧지만 임팩트 있는 멜로디를 만들려고 노력했죠. 본격적인 (청춘) 코미디 장르는 거의 처음이셨는데, 어떤 지점이 어려우셨는지요? 역시 코미디는 제게 여전히 어려운 장르더라고요. (웃음) 코미디를 즐겨보기도 하고, 보는 건 재밌고 즐거운데 이를 음악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제겐 아킬레스건과 같아요. 앞으로 많은 연습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해요. (웃음) 이연우 감독의 전작인 < 거북이 달린다 >도 그렇지만 충청도라는 지역적 특색에서 오는 사투리와 독특한 코미디의 리듬이 있었는데요, 그런 점들이 음악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건 없었나요? 감독님의 전작을 매우 재미있게 봤어요. 충청도라는 영화의 배경이 풋풋한 농촌이어서 구수한 시골스러움도 중요했지만,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현시대의 젊은 세대도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대적인 느낌이 들도록 음악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음악으로 충청도 사투리의 느낌을 구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 같아요. (웃음) <그해 여름>처럼 <피 끓는 청춘>도 삽입곡이 많이 쓰였습니다. 김창완 의 ‘개구쟁이’나 ‘내게 사랑은 너무 써’,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녀’, 팝송으로는 엔딩에 흐르는 스타쉽의 ‘Nothing’s gonna stop us now’와 롤러장에서 나온 놀란스의 ‘I’m in the Mood for Dancing’, 소풍 갔을 때 데비 분의 ‘You Light Up My Life’나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 조이의 ‘Touch By Touch’ 등... 선곡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건가요? 이연우 감독님은 학창시절 대중음악을 좋아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을 직접 선곡하셨는데요. 그러다 보니 고액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하는 부담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풍성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했었죠. 선곡 음악은 주로 감독님께서 선정하셨고, 2곡 가량은 저희 음악 팀과 함께 리서치를 통해 선곡했어요. 작업하다 보니 80년대 음악에 또 심취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영화의 주제곡 ‘피 끓는 청춘’은 듀스의 이현도 씨 작업물인데요, <늑대소년>처럼 박보영 씨가 직접 주제가를 불렀고요. 주제가를 따로 의뢰하게 된 건지, 아님 <아저씨> 엔딩 곡처럼 아예 별개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건지 궁금합니다. ‘피 끓는 청춘’ 곡은 이연우 감독님과 친분 있는 이현도 씨가 영화를 위해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에요. 저와는 별도로 진행된 작업이었죠. 원래 같은 곡을 럼블피쉬가 불러서 영화 중 가능한 부분에 사용할 계획이었지만 딱히 들어갈 자리를 찾지 못했고... 그래서 엔딩 크레딧에만 박보영 씨 보컬 버전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노래가 매우 깔끔하고 서정적이어서 마지막을 잘 장식해준 거 같아요.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화음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 여쭤볼게요. 애초에 관심이 있으셨던가요? 제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취미로 치고 있긴 했지만, 중학교 때 다니던 성당이 재건축을 하면서 오르간이 기증될 때였어요. 오르간이라는 악기가 당시 흔하지 않다 보니까 미사 때 연주해줄 반주자가 필요했고, 성당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몇몇 지망생을 데리고 오르간 교육을 시킨 거죠. 그때 오르간을 연주하며 음악이 너무 좋아져서 전공으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처음 들었어요. 하지만 대학교의 오르간 학과는 모두 피아노로 시험을 쳤고, 피아노로 전공을 준비하던 사람들에 비해 실력이 떨어져 낙담하고 있을 때, 우연히 작곡과에 대한 권유를 받게 됐어요. 그때는 작곡과를 나와서 뭘 하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여성 작곡가’를 본 적이 없었는데, 레슨을 받고 공부를 하다 보니 매우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작곡과에 진학하게 됐어요. 4년의 학부를 마치고 졸업 연주를 하게 됐는데, 친구와 가족들을 잔뜩 초대해서 그동안 고생해서 만든 작품을 연주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안 좋은 거예요. 당시 조성이 아닌 무조의 현대음악을 작곡했는데 주로 공포 영화에 많이 들어가는 불협화음 류의 음악을 연주했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지금도 생소할 수 있는 거죠. 전 나름대로 고민해서 음악을 만들었는데 다들 편하게 와 닿지 않는 거예요. 그때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좀 더 사람들이 좋아하고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해야 겠다 하고 마음을 먹게 됐죠. 학사를 마치고 뉴욕대학교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마침 뉴욕대학교에 영화과가 있어서 그런지 영화음악 수업이 있더라고요. 수업을 듣고 과제를 발표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고 선생님과 친구들이 영상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뉴욕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치고 2000년에 한국에 들어오니까 영화산업이 막 붐을 타기 시작했고, 전문 인력도 필요했던 때였어요. 특히 영화음악 분야에 인력이 필요했고 때마침 알맞은 공부를 하고 와서 그런지 빨리 입봉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영화를 처음 시작하신 것은 < H >하고 < 밀애 >였어요. 스텝으로 참여하셨는데 쟁쟁하고 유명한 조성우 와 조영욱 음악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요? 조성우 음악감독님을 처음 소개 받았는데요. 제가 뉴욕에 있을 때 이명세 감독님께서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개봉하고 뉴욕에 오셨어요. 그때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의가 있었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영화를 찍으려면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 유학생들과 어학 공부도 하시던 중에 저와도 알게 된 거죠. 친구 분이 안무가이셨고 일인 무용 공연을 하시는데 감독님이 직접 연출을 담당하셨죠. 공연 시 음악이 필요했고 유학생 소개로 저에게 음악을 의뢰하시어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당시 이명세 감독님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비롯해서 조성우 음악감독님과 작업을 많이 하셨어요.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이명세 감독님이 조성우 음악감독님께 장문의 편지 즉 추천서를 써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성우 음악감독님 스튜디오에 가게 됐는데, 처음에는 그곳에 김준석 , 박기헌 , 최용락 음악감독과 같은 쟁쟁한 스텝들이 몇 년 동안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고, 저는 일종의 낙하산으로 들어가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조성우 음악감독님이 당시 영상원에서 강의를 하셨는데 학생들과 단편영화를 작업하는 기회를 주셔서 경험을 쌓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조성우 음악감독님의 스튜디오 M&F에서 < H >를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그러는 동안 제가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음악 강의를 했었는데 동료 시나리오 작가 강사분이 조영욱 음악감독을 소개해 주셔서 <밀애>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죠. <밀애> 에서 작곡은 한 곡했고 주로 클래식 음악의 편곡 또는 녹음진행을 담당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지는 작품 <올드보이>에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그러고 보니 < H >에서도 오르간곡이 있어요. 맞아요. 그 영화에 조승우 씨가 연기한 사이코패스 주인공이 있었고 종교적이거나 숭고한 느낌이 필요한 거 같더라고요. 급하게 조성우 음악감독이 작업하신 테마곡을 오르간 곡으로 편곡을 해서 영화에 사용했답니다. 그다음이 가장 유명한 <올드보이>네요. 어떻게 작업하시게 된 거예요? 얼떨결에 하게 됐죠. (웃음) 상업 영화음악으로는 <밀애>와 < H >에서 몇 곡밖에 작곡하지 않았는데, 조영욱 음악감독님께서 <올드보이> 시나리오를 주셨고 거의 메인 작곡가로서 일을 하게 된 거예요. 솔직히 작품 의뢰를 받고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굉장히 긴장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작품이 주는 영감이 컸기 때문에 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여지까지 공부한 걸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루에 잠도 4시간만 자면서 신나게 작업했나 봐요. 지금까지도 그렇게 열심히 작업한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웃음) 최승현 음악감독이 4곡정도 작업하시고, 이지수 음악감독이 5곡정도 참여했는데, 어떤 식으로 공동 작업이 이루어진 건가요? 최승현 감독은 당시 < 빙우 >를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고, 이지수 감독은 <실미도>를 작업하고 있었어요. 지수 씨는 재학생이었고 우진의 테마를 가지고 와서 영화에 여기저기 배치하되 조금씩 변형시켜서 입히게 되었어요. 두 사람 모두 각자의 작업을 병행하느라고 바빴지만 조금씩 서로 도와가며 <올드보이> 작업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제가 메인으로 작곡 작업을 하다 보니까, 막판에는 시간이 몰려서 친구에게 도움까지 요청해가면서 밤을 꼴딱 세며 악보 작업을 했던 기억도 있네요. 장도리 씬 ‘대수의 테마’는 장도리 씬에서 흘러요. 원래는 굉장히 많은 컷으로 이루어진 장면인데 롱테이크로 한 번에 찍으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합에 맞춘 음악이 아니라 느슨하게 진행되는데 처연한 장도리 신의 액션과 트럼펫이 잘 어울렸던 거 같은데 어떤 식으로 작업하셨는지? 그 시퀀스가 <올드보이> 영상물 중 가장 처음 받은 장면 중 하나에요. 그 시퀀스를 보면서 음악적 중심을 잡아나가기 시작하고 테마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죠. 장도리 액션씬을 보고 개인적으로 좀 어설프다 (웃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액션의 임팩트가 잘 안 느껴지고 주먹을 헛치는 대도 넘어지고 굉장히 길고 지루하게 싸움을 하는 듯이 느껴졌어요. 자기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끝도 없는 지리멸렬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게 처연하기도 하고 비장하기도 하다는데서 공감대가 형성된 거 같아요. 그래서 트럼펫을 선율로 하는 음악이 나왔고, 당시 제가 좋아했던 뮤지션인 린킨 파크와 필립 글래스의 느낌이 많이 묻어 나오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이지수 음악감독의 ‘우진의 테마’와 심 감독님의 ‘미도의 테마’가 모두 왈츠에요. 서로 다른 두 곡이 모두 왈츠인데 애초에 그렇게 의도하신 건가요? 왈츠라는 설정은 조영욱 감독님의 의도였고 초반부터 제시한 지수 씨의 음악 ‘우진의 테마’가 왈츠였기에 저도 쓰게 됐던 거죠. 작곡 후 박찬욱 감독님이 ‘미도의 테마’를 들으시고 영화의 개미 시퀀스와 엔딩에 넣으시게 된 거랍니다. 수록곡 하나하나가 색채감이 뚜렷한 영화인 거 같아요. 박찬욱 감독이나 조영욱 음악감독이 제시한 콘셉트는 어떤 게 있었나요? 조영욱 음악감독님이 당시 보기용 샘플 음악 몇 곡을 제시했는데, 저는 대체로 템프(temporary) 트랙 즉 참고용 음악들은 음악적 색깔 정도만 참고하고 제 임의대로 작업한답니다. 주로 영상에 맞춰서 제가 받은 영감으로 작업하는 편이죠. 그래서 음악을 제가 하고 싶은 데로 미니멀리즘으로 작곡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영화에서 굉장히 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수용하실 수 있었던 분이 박찬욱 감독님이셨던 거죠. 그런 음악은 일반적이지 않아서 영화에 잘 수용되지 않는 편인데 음악에 굉장히 조예가 깊으신 박찬욱 감독님은 잘 받아주시고 격려해 주셨답니다.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작곡과 출신이 아니신데, 보통 영화음악가 하면 작곡 전공을 떠올리잖아요? Composer와 Supervisor의 차이점인건지요?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뮤직 슈퍼바이저이신 거죠. 작곡은 안 하시지만 영화와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작곡자들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해서 영화음악을 만드세요. 그리고 그 전에는 < 접속 >과 같은 많은 영화에서는 최고의 선곡을 하셨죠. 예전에는 음악감독님들이 LP판을 잔뜩 가지고 와서 선곡하는 일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이를 뮤직 슈퍼바이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포져는 영상에 맞추어 음악을 작곡하는 일을 하죠. 요즘은 점점 할리우드식으로 변해 영상편집을 한 후에 음악을 작곡해서 입히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이 작업하신 최승현 음악감독과 이지수 음악감독도 영화음악가로 독립하시고, 심 감독님도 독립을 하셨는데, <올드보이>가 주는 의미가 남다를 거 같아요. <올드보이>는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그 작품 바로 다음 해에 입봉을 할 수 있었죠. (웃음) 30대 초반 너무 어릴 때에 홈런을 쳐서 그때는 나이 먹어 보이려고 나름 노력했던 거 같아요. <누구나 비밀은 있다>로 입봉을 하셨어요. 선 굵은 남성 멜로를 찍으시던 장현수 감독님이 연출 하셨는데, 특이하게 로맨틱 코미디로 하셨어요.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나요? 당시 < 이공 프로젝트 >라고 영화 아카데미 출신 감독들이 모여서 20분짜리 단편을 만드는 작업이 있었어요. 그 때 김의석 감독님의 단편을 작업하면서 장현수 감독님을 소개받고 알게 되었죠.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할리우드의 <어바웃 아담> 이라는 원작을 리메이크한 영화였어요. 감독님께서 영화의 음악을 할 수 있겠냐고, 자신 있냐고 질문하셨고 저는 자신은 없지만 한 번 해보겠다고 대답했는데 입봉을 하게 된 거죠. 지금까지 가장 공을 많이 들여서 만든 OST 중 하나로 기억되네요. 처음 입봉작이다 보니까 욕심을 가지고 음악 장르를 다 다르게 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과 작업하고, 처음이라 좌충우돌 힘들기도 했지만 매우 야심차고 뜻 깊은 작업이었답니다. 욕심이 묻어나는 이유가, 세 자매에게 각각 다른 장르를 주셨어요. 첫째가 탱고 살사와 같은 라틴, 둘째에게 클래시컬한 음악, 셋째가 재즈 가수였잖아요. 삽입곡도 굉장히 많은데 어떤 식으로 선곡하시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입봉작이라 경험이 부족해 뮤직 슈퍼바이저로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있었어요. 광고 음악계의 선배로 평소 알고 있던 분이었는데, 선곡과 녹음 또는 편곡자 섭외와 같은 도움을 요청했죠. 영화중에서 세 자매 중 유부녀인 첫째 추상미 씨에게는 살사나 탱고의 라틴 스타일, 공부벌레 둘째 최지우 씨에게는 클래식 음악, 재즈가수였던 셋째 김효진 씨에겐 재즈음악으로 음악 컨셉을 잡았어요. 당시 재즈가수로 분했던 김효진 씨는 이미 임희정 재즈 가수에게서 서너 곡을 사사 받고 연습하고 있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OST라고 할 수 있지요. 다음 작업하신 게 실질적으로는 < 사과 >였어요. 촬영이 2005년에 됐는데 3년이 미뤄졌어요. 힘드신 점은 없었나요? 이야기 자체는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조금 더 심각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에서 음악이 약간은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두드러지는 게 있어요. 소소한 일상의 관찰을 하는 영화이긴 하지만 밋밋하게 느껴질까 봐 음악으로 색을 강렬하게 팍팍 입혀준 거죠. 그때도 욕심을 내서 음악 공연장을 통째로 대관해서 현악기만 15명 이상 연주했고 제대로 멋진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영화가 핸드헬드로 찍은 화면이라서 음악하고 붙여 놓으면 잘 어우러지는 거 같더라고요. 촬영을 손수범 감독이라고 뉴욕대학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는데 지금은 < 페티쉬 >로 감독 데뷔를 하셨죠.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촬영을 잘 한다고 소문이 났었는데 한국에 와서 우연히 함께 작업하게 된 거에요. 영화전체를 다 핸드헬드로 작업해서 몸이 피로해 고생하셨다고 들었어요. <사과>에서 끝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쓰셨어요. 영화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클래식 곡이기도 한데 이 곡을 선곡하신 이유가? 그 곡은 제가 선곡한 건 아니고요. 감독님이 선곡하셨어요. 음악감독님으로서 감독님이 미리 곡을 선곡한 경우 어떠신지? 영화와 잘 맞으면 좋아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 영화랑 잘 안 맞으면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알려드리고 서로 최대한 의견 수렴이 잘 되도록 노력하죠. 그 영화(<사과>)에서는 직접 출연도 하셨어요. 오르간 반주자로 잠깐 출연했었죠. 정동교회에서 촬영하는데 바로 전날 촬영 일정이 결정된 거예요. 아침 일찍 촬영장에 갔는데 연주자 섭외며, 비용이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냥 제가 직접 성가 복을 입고 반주하게 된 거죠. 지금도 교회에서 반주를 하니까 실은 오르간 반주가 제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또 현장에서는 음악감독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지루하지도 않고 즐거웠답니다. (웃음) 현장에도 자주 가세요? 자주는 못 가는데 적어도 한 번은 가려고 해요. 가서 영화 분위기도 파악하고 감독님과 스텝들과 얘기도 하며 서로 친해지게 된답니다. 물론 후반 작업 때 감독님을 자주 보지만 음악 작업에 집중하다보니까 워낙에 예민하고 긴장해 있을 때라 촬영할 때 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없죠. 강이관 감독님하고는 < 시선 너머 >에서 <이빨 두 개>도 작업하셨어요. 호흡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이관 감독님도 음악을 일반적이지 않게 가고 싶어 하는 감독 중 한분이세요. <이빨 두 개>도 어떻게 보면 밋밋할 수 있는데 음악으로 색깔을 강하게 집어넣었던 거 같아요. 제가 당시 <늑대소년>을 하는 바람에 <범죄소년> 을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둘 다 제목이 ‘소년’이네요. (웃음) 그럼 먼저 의뢰도 왔던 건가요? 강이관 감독은 가깝게 지내는 영화인 지인중 하나예요. <사과>가 몇 년 동안 하도 개봉을 못 하는 바람에 스텝들이 친해지게 됐죠. 당시 만나서 술 마시며 서로를 위로하며 가까워진 거 같아요. (웃음) 다음이 조근식 감독의 <그해 여름>이에요. 보면 ‘해변으로 가요’ ‘흔들리지 않게’ ‘ 고개’ ‘Yesterday When I was Young’ 등의 곡들이 쓰였는데, 사운드트랙에는 실려 있지 않아요. 저작권 때문이었나요? 그렇죠. 거기서 가장 중요한 노래가 엔딩에 흘렀던 ‘Yesterday When I was Young’ 저작권 때문에 앨범에 실리진 않았어요.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매듭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곡이죠. 선곡 시 수십 곡을 가지고 열댓 명이 모여서 오랜 시간 회의를 하면서 이게 좋으니 저게 좋으니 망설이다가 마지막으로 결정된 곡이었어요. 개인적으로 강력히 지지하던 곡이었고 영화의 엔딩곡이 된 거죠. 보면 작품들이 모두 과거와 연관된 작품들을 많이 하셨어요. <올드보이>도 그렇고 < 더 파이브 >도 그러고 <아저씨>와 <늑대소년>도 보면 과거 장면들이 중요하고요. < 조용한 세상 >도 과거와 왔다 갔다 하고요. 그러네요? 전 들어오는 영화를 주로 하는 편인데... 어떤 분은 제 음악을 듣고 ‘서사적’이라고 표현하시는 분들도 계시는 걸 보면 그런 이야기가 처음은 아니네요. 그래서 감독님들이나 제작자 분들께서... 섭외를 저에게 하시나 봐요. 그러실 수도 있어요. 조의석 감독님의 <조용한 세상>을 다음으로 하셨는데요. 스릴러인데 스릴러 같지 않고 감성적인 부분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처음 좀도둑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코믹하기도 하고요. 어떤 의도로 작업을 하신 건지요? <조용한 세상> 영화는 음악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스릴러인데 감동이 들어간 스릴러라서 차가운 스릴러로만 갈 수도, 따뜻한 휴머니즘으로만 갈 수도 없는 영화였죠. 그렇게 감동 코드가 중간 중간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까 차갑고 이성적인 스릴러를 끌고 가기가 어렵더라고요. <올드보이> 영향 때문에 계속 이쪽 장르 제의를 받으시는 거 같아요. 그런 거 같아요. 보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나와요. 선곡은 어떻게 하셨는지? 그것도 감독님이 선곡을 해서 왔어요. 그래서 저작권 문제 해결하고, 편곡해서 합창으로 부르게 했죠. 합창곡도 사운드트랙에는 없더라고요. 그것도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죠. 다음 작품이 하명중 감독님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예요. 굉장히 의외의 선택이신 거 같아요. 하명중 감독님의 < 혼자 도는 바람개비 > 이후 17년 만의 작품이었는데요. 나이도 좀 있으시고. 어떻게 작업하게 되셨나요? 제가 유학을 마치고 와서 처음으로 연극 음악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이종사촌 언니인 전혜정 미술감독과 같이 작업했었고 <러브레터>라는 미국 원작의 연극이었죠. 주연배우였던 하상원의 아버지가 하명중 감독님이셨고, 또 M&F의 소개로 저에게 영화음악 의뢰가 들어왔어요. 연극 작업 때는 영화작업 때와는 다르게, 음악 작업만 한 게 아니라 번역도 하고 소품도 만들고 여러 가지를 해야했어요. (웃음) 또 연극 음악을 하고 싶으신 생각도 있으세요? 연극보다는 무용 음악 쪽을 하고 싶어요. 기회는 아직 안 닿았지만 예전부터 무용음악에 관심이 있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하고 싶더라고요. 하명중 감독님과 세대차이가 느껴지신다 거나 그러시진 않았나요? 해외 영화를 보면 거장이라는 호칭을 듣는 50대, 60대 이상의 감독들이 그 나이 대에 하실 수 있는 말씀이 있잖아요. 세상을 포용할 수도 있고 보는 시각도 좀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는 거 같아요. 세대 간의 협업이 잘 안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 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인호 씨의 소설이 원작이에요. 작업하면서 어머니 생각도 많이 하고, 할머니 생각도 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어요. 그리고 어둡고 슬플 수 있는 이야기를 발랄하고 경쾌하게 끌고 가서 음악작업을 하면서도 매우 즐거웠답니다. 특히나 시간과 세대를 초월하는 작품을 하게 돼서 저는 매우 기뻤고요. 배우와 스텝이었던 두 아들들이 감독님을 잘 도와줘서 작업이 잘 진행되었던 것 같고 지금도 제가 작업한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기억에 남네요. 곡의 분위기가 보면 < 인생은 아름다워 > 같은 게 있더라고요. 굉장히 슬픈데 음악은 또 밝고. 경쾌하고요. 어떻게 보면 눈물이 나는 영화잖아요. 그런데 밝은 톤으로 가게 된 이유가 있으신지요? 감독님께서도 이야기를 신파로 슬프게 하고 끌고 가고 싶지 않아 하셨고, 극에서 직접 연기를 하셨는데 아주 유머러스하게 푸셨죠.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말이죠. 영화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게 슬프게 보일 수도 있지만 슬픈 거보다는 좀 더 승화시킨 정서라고나 할까요. 저도 감독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본 지인들도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최인호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부모님 속 썩인 사람들은 영화 보면서 다 울었을 거라고. (웃음) 이때 즈음부터 다큐멘터리 음악을 맡기 시작하셨어요. MBC 다큐 <난징 대학살>부터 시작하셨는데, 어떤 제의로 하게 되셨는지? 보통 TV 쪽에서 제의가 오게 되면 드라마 음악을 하게 되잖아요. MBC 방송국의 조준묵 피디가 <올드보이>를 보고 음악이 하도 세서 <난징 대학살> 음악을 부탁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 난징에서 있었던 일본인의 만행을 고발한 책을 기반으로 만든 다큐인데요. 내용이 강하다 보니 강한 음악을 만들었던 저를 섭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영화 작업이 없었던 터라 감사히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게 되었어요. 다큐 음악이 극영화 음악과는 많이 차이가 있는 거 같은 데요? 많이 차이가 있어요. 다큐도 다큐 나름인데 제가 작업한 다큐는 주로 이야기의 스케일이 컸어요. 한 인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주로 다루는 영화보다 담고 있는 내용이나 촬영해온 영상의 크기가 달랐죠. 당시 한국영화에서 멋있는 자연의 그림이나 끝없는 설원 등 항공촬영으로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이 흔하지 않답니다. 영상음악을 하는 사람은 이런 멋있는 그림에 음악을 넣어보는 게 소원이에요. (웃음) 특히 ‘눈물 시리즈’는 영국의 BBC 다큐 항공촬영 전문팀에게 촬영을 맡겼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화면이 만들어졌던 거죠. 멋진 화면을 보니까 영감도 받고, 또 다루고 있는 내용도 제가 좋아하는 자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까 귀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신나게 작업했죠. 그것도 시리즈로 4년이나 연속해서 음악작업을 하게 되서 운이 매우 좋았던 거 같아요. ‘눈물 시리즈’를 보면 해외에서 작업을 하셨어요. 체코 프라하 심포니에타. 해외에서 레코딩하는 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눈물 시리즈’는 자연에 대한 거대한 이야기이다 보니까 음악도 스케일이 커야 했어요. <북극의 눈물>의 영상물을 처음 받아 보고는 매우 당혹스러웠어요. 북극에는 소리가 정말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작진은 클래식 악기구성의 음악으로 설원의 넓은 공간을 채워달라고 부탁했어요. 참고로 음악 작업시 TV용 음악은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녹음하지 않고 컴퓨터로 샘플 사운드를 만들어 작업합니다. 오케스트라 녹음을 하려면 파트별로 악보로 만들어서 연주자들에게 연주시키고 녹음, 믹싱, 마스터링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거죠. 영화와 비교해 장단점이 있는데 시간이 부족한 대신 간섭을 많이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어요. 시간에 맞추어 음악이 잘 나와 주면 다행인거죠. (웃음) 그런데 영화용으로 극장에서 상영될 때는 좀 다른 이야기에요. TV는 스피커가 작아서 실제 연주와 가짜 소리의 차이를 크게 구분하기 힘든데 비해서 극장은 5.1 사운드 시스템의 크고 좋은 스피커로 깜깜한 데서 집중하며 듣다 보니까 인공적인 컴퓨터 소리의 티가 너무 많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극장용 음악작업으로 제작비를 받아 오케스트라 녹음을 처음 하게 된 거랍니다. 곡이 나오면 바로 쓰는군요. 방송국에선 후반작업 할 시간이 없어서 선곡을 주로 해요. 부족한 시간 때문에 TV에서 음악감독의 역할은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장면에 맞는 음악들을 찾아서 영상에 집어넣는 업무를 담당하죠.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야심차게 기획한 다큐멘터리여서 음악 작곡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케스트라 곡을 완성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래도 덕분에 지금은 음악 빨리 만드는 선수가 되었답니다. (웃음) 2탄 <아마존의 눈물>과 3탄 <아프리카의 눈물>은 부족민 말소리도 있고, 환경적인 면에서 작업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아마존의 눈물>의 경우는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어요. 주로 원초적으로 생활하는 부족민의 이야기로 실제로 본적도 없는 몸에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는 태초의 인간들을 보는 것 같은 신기한 영상이었죠. 그러다 보니까 문명의 부산물인 클래식 악기보다는 자연에서 날법한 소리들을 사용하자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밀림이 습한 지대가 되서 그런지 소리가 울려서 새소리, 동물소리 등등이 비교적 시끄럽게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은 조용히 깔리되 현장 소리처럼 만들어 태초의 소리 같은 악기를 활용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컴퓨터의 샘플(실제 녹음된 소리)을 뒤져서 부족민들이 사용할 법한 악기들, 동물 울음소리 같은 음색을 찾아서 음악 작업을 했는데 내용과 잘 어울렸던 거 같아요.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작업상의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죠. 그럼 <북극의 눈물>에서 전혀 소리 없는 그림을 음악으로 채웠다면 <아마존의 눈물>은 완전히 반대인 거겠네요? 완전히 반대인 거죠. 아마존은 워낙에 말도 많고 주변 소리도 많으니까 음악을 줄이되, 악기도 그 동네에서 날법한 소리로 자연스럽게 느끼게 작업했어요. TV에서 PD와 불일치가 날 땐 어떻게 하나요? 부딪힐 시간이 없어서 잘 안 부딪혀요. (웃음) 그게 TV 작업의 좋은 면이에요. 다행히 함께 일한 피디님들이 저를 잘 신뢰해 주셔서 감사했답니다. 예를 들면 <북극의 눈물> 피디는 음악이 들어갈 자리를 잡아주곤 했는데, <아마존의 눈물> 피디는 음악 들어갈 자리를 안 잡아줬어요. 제가 내용을 봐가며 음악 큐를 잡는 거죠. 전문가에게 완전히 맡겨버리는 건데 TV는 시간에 쫓긴다는 단점을 제외하고는 일하기는 조금 더 수월했던 거 같아요. 그쪽의 전통음악이나 그런 게 들어갔나요? 전통음악, 예를 들면 <북극의 눈물>에는 이누이트들이 부르는 ‘쓰롯 싱잉(Throat Singing)’ 이라는 헉헉대며 특이하게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를 제작진들이 현장에서 녹음해 왔고 이걸 음악적으로 한번 활용하자고 하더라고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개썰매를 타고 신나게 사냥하러 가는 장면에 쓰이게 됐답니다. 초반에는 쓰롯 싱잉의 헉헉헉 소리가 나면서 기존의 악기인 마림바나 실로폰 같은 타악기가 함께 연주되는 음악이 되었지요. 그리고 또 다른 트랙으로 이누이트들이 북을 치면서 노래하는 행사가 있는데, 이 곡에 현악기를 함께 연주해서 오로라가 나오는 장면에 집어넣은 게 있답니다. 또 다른 전통음악으로 아마존에서 갖고 온 노래의 경우, 부족민들이 키우는 강아지 소리 등과 같은 주변소음이 많아서 짧게 OST에만 겨우 실을 수 있었고요. 쓰롯 싱잉이 생소한데요. 네 쓰롯 싱잉이라는 창법이 있더라고요. 재미있어서 OST에 수록했는데 이누이트들의 전통음악으로 사냥하러 갈 때의 흥분된 마음을 표현하는 노래라고 하더라고요. 김건 감독의 < 패밀리마트 > 작곡가가 아닌 슈퍼바이저 역할을 하셨는데, 어떤 차이점이 있으신지요? 슈퍼바이징 역할도 매우 중요해요. 작곡가와 감독님과 소통을 잘 해야 하고, 특정 음악장르 작업에 강한 작곡가를 분별해 작곡을 맡겨야 하죠. 음악이 들어갈 자리와 음악의 종류를 잘 파악해서 제시해야하는 건 기본이구요. <패미리마트>는 <아저씨>를 같이 작업하게 된 스텝들이 작곡했고 <페이퍼 로드> 다큐도 같이 작업했답니다. 팀의 개념인 건가요? 그렇죠. 영화는 주로 팀의 개념으로 작업한답니다. TV는 팀으로 일할 시간이 없는데, 영화는 혼자 하기에는 버거운 양이죠. 그래서 영화마다 다르긴 하지만 1~3명의 스텝과 팀을 꾸려 같이 작업하는 편이에요. 소상민 감독의 가 <피 끓는 청춘> 전까지는 유일한 코미디 같아요. 그나마 그것도 블랙 코미디에요. 독립영화 음악이었는데, 환경이 충무로와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그 친구가 아카데미 출신인데, 재기발랄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저는 슈퍼바이징을 담당했죠. 가끔 독립영화음악 작업도 하죠. 좋은 독립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많이 소개되고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다음이 이정범 감독님의 <아저씨>입니다. 액션영화였는데 할리우드에서도 여성 음악가가 액션영화 하는 건 거의 없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전 <올드보이> 때부터 그랬어요. 장도리 씬 등.. 개인적으로 액션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웃음) 어렸을 적에 무용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액션이 몸의 동작이 표현이 되는 거잖아요. 물론 총 쏴 죽이고 끝날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담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올드보이> 장도리 씬도 그렇고 <아저씨>의 터키탕 씬도 그렇고 3분짜리의 긴 시퀀스인데요. 요즘은 편집으로 다 짜깁기가 되서 그런지 3분을 한 음악으로 미는 영화가 거의 없는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기억에 남는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죠. 이정범 감독님이 딱히 요구하신 건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정범 감독님과는 마이클 만 감독을 이야기 하면서 < 라스트 모히칸 > <히트> <콜래트럴> 영화 이야기를 했어요. 특히 <콜레트럴>에서 특정 씬의 음악을 언급했는데, 일렉 기타가 사용됐어요. 또 LA 불빛이 인상 깊은 도시적인 느낌을 영화에서 참고로 하게 됐죠. <아저씨>에서는 기타 사운드로 ‘도시의 외로운 늑대’를 표현해보자는 제안을 하셨어요. 이 정도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전 생각 못 했어요. 정신없이 그것도 촬영이 끝나자마자 개봉까지 시간이 굉장히 짧았어요. 그래도 짧은 시간 내에 작업했던 것치고는 신나게 잘 작업했던 거 같아요. 삽입곡들은 작업을 하신 건가요? 엔딩 곡을 제외하고는 우리 음악 팀에서 작업을 했답니다. 엔딩 곡은 초반부터 작업을 미리 시작하긴 했지만 원하는 가수나 뮤지션 그리고 제작비 등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예고편 음악작업을 했던 팀인 매드 소울 차일드의 ‘Dear’라는 곡이 들어가게 됐죠. 그 뒤로 바로 작업하신 작품이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이에요. 이 작품도 성공을 했습니다. 1960년대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 현실이 아닌 판타지 이야기. 영화가 그런데요, 음악도 그렇게 접근하신 건가요? 그렇죠. 일단 판타지를 베이스로 했죠. 여기서도 체코에서 녹음하신 거 같아요. 극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잘 아시네요.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아직까지는 (웃음) 그것도 운 좋게 동료가 녹음을 하러 가는 김에 함께 좋은 조건으로 녹음할 수가 있었어요. 적어도 한 달 전에 녹음 예약을 해놔야 하거든요. 후반에 작업 시간이 좀 있으셨나 봐요. 작업 시간이 많진 않았어요. 영화음악 작업시간은 늘 많진 않다고 느껴요. 편집을 완료하고 나서부터 음악작업 기한을 길게 주지는 않는 편이죠. 그리고 일정을 예측할 수 없어서 녹음 작업을 제대로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주 우연히 김준석 음악감독이 녹음할 날을 예약해 놓고 있었어요. 거기에 추가로 덩달아 녹음하다 보니 가능할 수 있었죠. 덕분에 사운드가 훨씬 풍부해졌어요. 그때 김준석 음악감독은 어떤 작업 때문에 체코에 가신 건가요? TV 드라마였어요. TV 드라마는 녹음을 미리 해놓을 수 있어 일정이 가능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초반에 코믹한 느낌이 나요. 멜로디언도 사용되었고. 후반부는 퍼커션을 많이 사용해서 호러적인 느낌이 나고요. 음악의 폭이 큰데 균형 맞추기가 힘드셨을 거 같아요. 그게 힘들었어요. 전반부와 후반부의 영화 톤의 차이가 컸었죠. 작업이 쉽진 않았는데 주인공 두 사람의 러브테마를 초반부터 계속 가지고 가면서 전후반부가 다른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게 통일성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박보영이 부른 ‘나의 왕자님’이 메인 테마였잖아요. 조성희 감독님은 어떤 주문을 하셨는지요? 조성희 감독님은 이미 시나리오에 가사를 써주셨어요. 가사가 좀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는데 (웃음) 예전에 만든 음악 중에서 쟁여둔 걸 뒤지다가 지금의 ‘나의 왕자님’이 떠올랐어요. 멜로디가 단순하게 만들어진 게 아마추어가 만든 음악이라는 설정에 잘 어울리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가사를 붙이고 노래로 만들게 된 거죠. 이 음악은 영화가 들어가기 전에 만들어져서 박보영 씨가 두 달 동안 기타 레슨을 받아가며 연습을 했어요. 배우가 직접 연주한 건가요? 직접 연주한 거예요. 그렇게 많이 연습했는데도 촬영 날 되니까 배우도 떨더라고요. 그래도 여러 번 촬영한 것 중 하나를, 실수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영화에 편집해서 넣었답니다. 감독님은 약간의 실수가 나온 게 더 자연스럽다고 하시더라고요. 조성희 감독님은 어떠셨어요? 조성희 감독님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셨어요. 그래서 그런지 중간에 요구하시는 게 굉장히 디테일하시더라고요. 처음 감독님을 만났을 때 마침 길을 지나던 고양이를 보며 동물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제가 작업한 ‘눈물 시리즈’를 좋게 보셨고 그 안에 나오는 동물 이야기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거기서 공감대를 형성했던 거죠. 영화의 주인공도 어찌 보면 동물과 인간의 중간인 존재였잖아요. 작업하면서 나중에 스토리보드를 영화 러닝 타임과 똑같이 동영상으로 만들고 거기에 감독님이 직접 인물별로 대사도 입히고, 음악도 입혀서 보여주셨어요. (웃음) 참고가 되었지만 한국도 이제 할리우드처럼 작업하게 되나보다 했었죠. 그래도 한국 배경의 한국인들이 연기하는 그림에 맞추어 새로운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아까도 언급되었고, 방금 말씀하신 템프 트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템포러리 트랙(Temporary Track)이란 건데요. 할리우드에서 주로 작업하는 방식으로 ‘참고용 음악’인 거죠. 이 시퀀스엔 이런 음악, 저 시퀀스엔 저런 음악 등 보기가 되는 음악을 찾아와서 미리 붙어보는 거죠. 한국에서도 최근에 이런 방식으로 음악작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편집실에 음악 라이브러리가 구비되어 있어서 기존의 음악을 붙여보며 편집을 하기도 하죠. 편집본을 보고 오리지널하게 영감을 떠올려 작곡하는 게 아니고 비슷한 류의 데이터로 정리되어있는 라이브러리 음악에서 적당한 음악을 골라 편집본에 붙여 보는 거예요. 음악이 들어갈 위치 정하고 그럴 때.. 그렇죠, 음악이 들어갈 위치와 종류를 알려주는 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할리우드 영화는 워낙 기성화된 공식이 있고 비슷한 게 많아서 이 작업방식이 통용되어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점차 작업방식이 바뀌고 있는 거 같긴 해요. 그러니까 감독이 음악을 기존의 음악으로 보기를 주문하는 거겠네요. 맞아요. 음악이란 건 말로 표현하는 게 참 뜬금없잖아요. 예를 들어 특정 시퀀스에 ‘애틋한 음악’을 주문하다고 하면 이를 전달하기 위한 너무나도 다양한 음악적 표현 방식이 있으니 말로 설명하기가 너무 힘든 거죠. 그러니까 보기가 되는 음악을 직접 골라 와서 영상에 넣어보는 거랍니다.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너무 참고하다보면 모방이 되는 경우도 생기니, 나름대로 감독의 의도를 잘 알아듣고 새로운 접근 자세로 음악작업에 임할 필요가 있죠. <남극의 눈물> 음악을 들어보면 미니멀한 사운드가 있어요. 필립 글래스처럼. 그렇게 미니멀한 사운드를 쓰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미니멀 음악을 좋아해요. 대학교 때는 무조, 즉 조성이라는 중심을 탈피해서 음계를 만드는 음악사의 흐름을 공부했답니다. 낭만파 이후에 조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자는 움직임에서 나온 작곡법이었는데요. 그 이후 고전시대의 삼화음으로 다시 돌아가되 옛날 고전음악과는 다르게 변형이 된 형태의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를 미니멀리즘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현 시대의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기도 했고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됐던 거죠. 신세계를 경험한 거예요. 새로운 음악작풍이 좋아서 <올드보이>에도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박찬욱 감독님도 흔쾌히 좋아하시고, 이는 영화에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이후 다른 영화에서는 일반적인 조성음악보다 틔는 미니멀 음악을 소화하는 영상이나 영화를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눈물시리즈’ 특히 <북극의 눈물><남극의 눈물> 등에서 보이는 영상들이 떼를 지어 가는 동물이 많았어요. 순록 떼, 펭귄 떼 등 수많은 비슷한 동물들이 무리지어 가는 게 제가보기에는 미니멀한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음악도 미니멀하게 작곡했습니다. 작년 말에 방영된 다큐멘터리 <곤충 그 위대한 본능>은 ‘지구 시리즈’에서 벗어나서 약간 미시적인 게 필요하셨을 텐데, 어떤 느낌으로 작업하셨어요. 제가 벌레를 징그러워해서 음악이 잘 나올지 모르겠다고 고민했더니 피디님이 ‘벌레’가 아니라 ‘곤충’이라며 (웃음) 애정을 갖고 작업해달라고 부탁하셨죠. 그런데 막상 촬영본을 보니 아주 재미나더라고요. 곤충들의 먹고 먹히는 그들만의 생존방식을 마치 전쟁영화처럼 매우 비장하게 그렸죠. 제게 있어서 곤충의 세계는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았어요. 그래서 음악도 기존의 악기구성으로 나는 소리가 아닌 색다른 사운드를 시도했답니다. 곤충들의 미세한 날갯짓, 움직임에서 영감을 얻어 음악도 엠비언스적이면서도 일렉트로닉하게 작업했습니다. <아마존의 눈물>에서처럼 새로운 시도를 한 거죠. 기존에 작업하셨던 다큐멘터리 느낌과는 많이 달랐겠어요. 음악적으로 많이 달랐죠. 완전히 일렉트로닉한 음악으로 스코어 전체를 구성한건 첫 시도였어요. 그런데 재미있더라고요. 전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는데 많은 흥미를 느낍니다. 그런 면에서는 TV 다큐멘터리가 상업영화보다 더 용이했던 거 같아요. 상업영화에 비해 TV 다큐는 짧은 시간 안에 음악작곡을 완성해 주기만 하면 순조롭게 OK가 났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데로 신나게 작업이 가능했답니다. (웃음) 다시 극영화로 돌아오겠습니다. 작년 11월에 개봉한 <더 파이브>는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고요, 원작자이신 정연식 작가님이 직접 연출을 맡으셨는데요. 어떻게 작업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저 아니면 안 된다고 하기에.. (웃음) 감독님께서 시나리오 작업 때부터 비련의 여자 주인공 설정을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음악감독으로 같은 여자인 저를 이미 염두에 두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 음악을 하도 잘 봐주셔서 같이 기쁘게 작업을 하게 되었답니다. 감독님께서 콕 집어서 선택을 하신 건가요? 네. 저 같은 경우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와서 여러 편 중에서 하나를 열심히 고를 줄 아는데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때그때 시간이 맞춰 들어오는 게 인연인가보다, 하고 맡는 경우가 더 많아요. 시간적인 사정 때문에 또는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부득이하게 거절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주로 숙명처럼 받아들인답니다. (웃음) 이 작품이 웹툰인데요. 비주얼이 먼저 존재했잖아요.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작업하시고, 스토리보드를 작업하시는 과정에서 그게 발전한 것이 웹툰이었다고 하던데요. 작업을 진행하셨을 때 이미지가 미리 나와 있기 때문에 좀 편하셨을 것도 같아요. 그렇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설정상의 캐릭터와 어떤 배우가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죠. 시나리오와 그림으로부터 영화가 시작하기는 하지만 특정한 사람(연기자)이 영화에서의 특정 캐릭터의 옷을 입고 새롭게 탄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시나리오 때와는 완전히 다른 작업인 거 같아요. 누군가는 시나리오를 보고 테마음악을 작곡한다는데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더 파이브, 웹툰 영상을 먼저 보시고... 영상을 보고 작곡을 시작하게돼요. <아저씨>같은 경우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로 시나리오 상에 설정되어 있었지만 원빈이라는 배우가 그 캐릭터를 맡음으로써 완전히 다른 아저씨가 된 거죠. 그러다 보니 음악도 그에 맞추어 분위기가 달라져야 하는 거고요. 그래서 저는 일단 영상물을 보고, 배우의 연기 또는 이미지 등을 통해서 음악 작업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어떻게 그림이 찍혔는가에 따라서 음악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되더라고요. 작업시간이 많이 빠듯하시겠어요. 항상 빠듯하게 느끼죠. 특히 제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편집본 안에 없을 때 음악을 막 끄집어내려고 노력할 때 이래저래 소모가 많아요. 영상 안에 내용과 연기로 충분히 정보가 전달될 때는 영감을 받아서 작업도 빨리 진행되고요. 웹툰에서는 감독님께서 직접 사운드트랙까지 넣으셨어요. 그게 영향을 미치셨는지. 음악적으로 많은 걸 요구하실 거라고 짐작하고 그래서 좀 힘들겠구나. 걱정했었죠. (웃음) 그런데 이전 만화의 세계에서 나아가 영화라는 살아있는 세계로 다시 태어나는 거잖아요. 이야기가 좀 더 입체적인 차원이 되는 과정이니만큼 새롭게 영화적 접근을 하려는 노력을 했어요. 감독님께서는 전혀 영향을 안 주셨나요? 감독님께서는 참고로 들어보라고 감독님의 자작곡 음악을 들려줬고 스코어 음악은 전적으로 저에게 맡겨주셔서 순조롭게 음악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더 파이브>가 자신을 걸고 복수 하는 내용이었잖아요. 감정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굉장히 세고 불편한 부분들이 있는데, 전작들에 비해서 유독 소름끼치거나 음산한 사운드들이 많이 들리더라고요. 사이코패스 온주완 씨 캐릭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진행하셨는지요? 인물이 사이코패스이기도 하고 영상에 이펙트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도록 찍으셨어요. 초·중반 까지는 거의 음악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서보다는 효과성 음악만 쓰였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중후반부터는 대사보다는 음악이 극을 끌고 나가야 했어요. 이 영화가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가 작업한 전작에 비슷한 류의 영화들이 많아요. (웃음) 어둡고 뒤틀려있거나 불안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었죠. 그런데 <더 파이브> 웹툰을 원작으로 한 사이코패스 이야기는 의외로 그 인물이 현실적이지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덜 괴로운 것도 있었고요. <올드보이>의 경우는 좀 더 현실적인 인물이라 작업하면서 더 괴로웠던 거 같아요. <올드보이>가 정서적으로 인물을 이해하고 따라가서 음악으로 표현했던 것에 비해, <더 파이브>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간다기보다는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음악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작곡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진짜 필모에 진지하고 어두운 영화들이 많으세요. 코미디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러게 말이에요. (웃음) 어쩌다보니 주로 피가 나온다거나 19금의 영화들이 많아요. 그래서 어린 우리 조카들이 볼 수 있는 영화가 별로 없답니다. <아저씨>는 케이블TV에서 편집 등이 되어 방영되어서 그나마 저희 꼬마들이 볼 수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영화는 거의 없는 거 같아요. 그나마 ‘눈물시리즈‘ 다큐멘터리가 모두가 볼 수 있는 영화랍니다. 영화를 선택하시는 기준이 원래 그런 쪽을 좋아하신 건 아니죠? 의뢰 들어오는 영화가 주로 어두운 영화들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 코미디 영화 보는 걸 굉장히 즐거워한답니다. 그런데 코미디 영화를 작업할 때는 내용이 재미있으니까 웃으면서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은 반면, 음악을 작업할 때 재밌기로는 무언가 얽혀있는 이야기를 음악으로 풀어나가는데 매력을 느끼는 거 같아요. 제가 스릴러 장르를 딱히 선호하는 건 아닌데 초반부터 각인된 영화가 <올드보이> 이다보니까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의뢰받는 거 같아요. 재즈 가수 이소정 씨가 엔딩 주제곡을 불렀어요. 독특하고 몽환적이었는데, 그분을 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감독님께서 초반에 이소정 씨의 앨범 중에서 ‘쇼팽 앤 더 걸(Chopin And The Girl)’이라는 음악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본인은 이소정 씨 노래를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우연히도 저와 이소정 씨는 오랜 친구였답니다. 예전에 제가 한국에 와서 처음 영화음악을 시작할 때 이소정 씨도 M&F 회사 소속 가수로 앨범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알게 돼서 10년 이상 친분이 있던 지인이었죠. 그런데 인연이기도 하고 우연이기도 하게도 <더 파이브>로 드디어 함께 작업 할 수 있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감독님도 매우 좋아하셨고 우리 모두 즐겁고 기쁘게 작업할 수 있었답니다. <더 파이브>는 개봉한 지가 꽤 된 다음에 사운드트랙이 출반됐습니다. <피 끓는 청춘>과 다르게 음원뿐만 아니라 CD로도 발매가 되었는데, (거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지 않는 현실에서) 늦게 발매된 상황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 전부터 영화의 사운드 트랙은 디지털 음원만 발매하고 음반 발매를 하지 않는 추세로 변하고 있어요.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음반 시장을 의식한 거죠. 실은 저도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저의 경우, 물리적으로 소장할 수 있고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장인 정신과 노고를 확인할 수 있는 음반을 선호해요. 하지만 투자배급사가 영화 OST를 발매하는 환경에서 디지털 음원 시대의 전반적인 추세를 따라가 온라인 발매만 하다 보니, 뮤지션들의 음반을 귀중히 여기고 이를 수집하는 진짜 영화음악 애호가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실제 한 애호가로부터 <더 파이브> 음반 발매 문의를 받고 망설이던 마음을 굳혀 공이 더 들어가는 CD를 발매하게 되었죠. ‘대중’이 아닐지라도 ‘애호가’들이 있는 한 이들의 관심과 사랑이 영화음악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믿게 되었어요. 여성 음악가로서 국내에서 대표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데 한계나 편견이나 이런 것들과 많이 부딪히셨을 거 같은데요. 주로 남자들이 많다보니 저도 많이 남성화 되었죠. (웃음) 여자는 남자에 비해 비교적 추진력과 네트워킹에 약한 거 같아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술도 열심히 마시고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답니다. 그런데 실은 여성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어떻게 살아갈 지를 고민하는 게 힘든 거 같아요. 부딪혀보니 한국에는 예술가에 대한 개념이 대충 다른 인종쯤으로 보는 것 같아요. (웃음) 제천 영화제에서 만난 걸 계기로 독일에서 <올드보이> 영화를 상영해준 예술가 부부가 계신데요. 기타 연주자이신 마뉴엘 괴칭 Manuel Goettsching 과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일로나 지옥 Ilona Ziok으로 두 분 다 저보다 10~20살 많으세요. 그분들과 친분을 맺어 독일에도 다녀오고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하면서 가까이서 지켜보니 예술가는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는 참고가 되었답니다. 제6기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제천음악영화제에서 음악 아카데미를 맡아서 여러 감독님과 함께 영상음악전문가 과정을 하시는데, 어떤 커리큘럼으로 하시는지요? 지금은 우리나라가 영화와 실용음악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교육하는 거 같아요. 제가 처음 2000년에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영화교육을 하는 기관이 몇 개 없었어요. 기존의 전통적인 영화학교 즉 동국대, 중앙대, 한양대, 영상원이 새로 생기고 한국영화 아카데미 정도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영화과가 없는 학교가 없을 정도로 대학교마다 영상 및 영화과가 생겼고 더불어 실용음악과도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런 학과 과정과 다르게 제천영화제 아카데미는 일주일 남짓 하는 기간 동안 캠프 형식으로 단편 영화음악을 직접 작업해 보는 프로그램이랍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음악가가 하는 일이 뭔가, 또는 내가 이 길을 갈 수 있을까를 공부할 수 있는 거죠. 또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성 영화음악가와 인맥도 형성하고, 동료들도 알게 되고, 이 일을 하기 위해 자기가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지도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지금은 제가 추계예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영화음악을 하고 싶다는 친구를 만나면 아카데미를 추천해요. 수강생들 대부분이 여자들이 많답니다. 저와 비슷하게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는데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많이 지원을 하고요. 그 학생들에게는 감독님이 롤모델이겠네요. 70~80%가 다 여자이니까요. (웃음) 저의 경우 함께 일하는 스텝들을 주로 제천 아카데미에서 뽑았어요. 저한테 가끔 이메일로 영화음악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문의가 들어오면 제천 아카데미 참가를 권유하죠. 저뿐만이 아닌 현직 음악감독들도 아카데미에서 만나 인맥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지금 함께 작업하는 친구들도, 동료 음악감독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아카데미 출신이 많이 있답니다. 어떻게 보면 제천 아카데미를 통해서 영화음악 인재들을 발굴한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영화음악으로 어디까지 작곡가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한계가 있고 장벽이 있는데요. 음악가랑 기술인 사이에서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거 같습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작업은 자신과 뜻이 맞는 작품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기술이란 건 그 영화에 맞는 옷을 잘 입혀서 표현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서로서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어떻게 하면 잘 만나는가를 찾아가는 게 제일 중요한 거 같아요. 자기와 뜻이 잘 맞는 사람들과 또 자기가 공감하는 이야기의 작업을 하게 되면 가장 신나게 작업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 장면 가장 좋아하시는 영화음악가와 작품이 있다면요?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라스트 모히칸> 등등의 사운드트랙을 좋아하죠. 그중 엔니오 모리꼬네의 <석양의 무법자> 마지막부분에서 세 명의 총잡이들의 숨 막히는 ‘눈치 보기’ 씬이 있는데요. (웃음) 수업 교재로 보여주면서 저기에 음악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음악을 기본으로 하고 영상을 편집해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싶은 장면이에요. 이 OST에는 당시의 엔니오 모리꼬네의 재기발랄함이 들어있는 거 같아요. 말발굽 소리, 권총 소리, 휘파람소리 등을 활용해서 새로운 사운드를 창조한 거죠. 문서를 참조해보니 당시에 음악 제작비가 부족했다고 하더라고요. 오케스트라를 쓰고 싶었는데 제작비가 없으니까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런데 오히려 재치 있고 잊히지 않는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게 된 거에요. 엔니오 모리꼬네의 또 다른 주옥같은 OST <미션> 이 미국의 상업영화음악의 흐름을 좀 탔다면 <석양의 무법자>는 훨씬 작곡가의 개성이 넘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천사와 악마> 개봉당시 조선일보 주선으로 한스 짐머와 전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인터뷰 도중에 엔니오 모리꼬네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스 짐머는 모리꼬네 음악에 바흐가 있다고 언급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종교음악에 심취해 음악을 시작한 저도 모리꼬네의 그런 요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국내 영화음악 분야에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지점이 있다면, 이를테면 한계점이나 시스템의 제약을 고치고 싶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아쉬운 부분이 있지요.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커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각종 분야의 전문인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거 같아요. 조감독만 전문으로 하는 전문 조감독이 있는 게 아니라 감독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조감독이 존재하는 거죠. 예전에 <밀애>영화작업을 할 때 영화 조명 팀이 폴란드 분이 오셨데요. 그중에는 달리 즉 카메라 이동차를 전문으로 돌리는 장년(60대 가량) 분이 오셨는데 기계처럼 정확히 이동차를 옮기신다고 하더라고요. 한 명의 수장이 있고 나머지는 다 조수가 아니라 다양한 전문분야에 특정적으로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앞으로 한국 영화계가 더욱 발전하고 뿌리내리려면 영화제작에 참여하는 다양한 역할들을 알고 이를 전문적으로 인정해줘야 할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음악의 경우, <노팅힐> 과 같이 선곡이 많은 영화는 뮤직 슈퍼바이저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존 윌리엄스가 음악을 하는 영화의 경우에는 뮤직 슈퍼바이저의 역할이 없을 때가 많죠. 선곡이 아니라 작곡이 주가 되는 영화이니까요. 그런 경우 전문 오케스트레이터 (관현악 편곡자)가 필요해요. 최근 한국영화음악도 할리우드처럼 클래식 악기구성이 많은 추세이지요. 존 윌리엄스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영화음악 작곡가들은 항상 함께 작업하는 전문 오케스트레이터가 따로 있답니다. 시간과 비용이 모자란 한국 영화음악 제작 환경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테마음악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 변주되어야 할지 또는 어떠한 음악을 넣을지 참고음악을 넣어보는 역할 등을 하는 전문 음악 편집자(뮤직 에디터)도 필요합니다. 또 음악 녹음 시 연주자 및 유명 뮤지션을 섭외하고 녹음을 진행하는 코디네이터도 필요하고요. 등등 영화음악 제작에는 여러 분야가 있을 수 있는데 저를 비롯한 동료들을 보면 주로 음악감독이 이일을 다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한국은 할리우드의 영화산업과 규모면에서 비교가 되지도 않고 구지 그들과 똑같이 작업해야 하는 이유는 절대로 없어요. 하지만 영화산업이 뿌리 내리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들을 인정하고 양성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 같은 일반인들은 영화음악가 하면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같은 사람을 떠올리지, 그런 세세한 분야는 잘 모르겠어요. 많은 분들이 오케스트레이터도 생소해 할 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레이터는 관현악 편곡을 하는 사람이죠. 영화 엔딩 크레딧을 보면 한스 짐머가 음악을 하는 영화에서 오케스트레이터만 5명에서 7명이 올라가는 경우도 있어요. 클래식 악기 구성으로 웅장한 영화음악을 만들 때는 클래식 음악을 전문하는 사람이 편곡을 해야 하는 거죠. 악기라는 게 얼마나 공부해야 할 게 많고 소리가 다 다른데요. 작곡하는 사람, 편곡하는 사람, 프로그래밍 하는 사람 등등이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영화에 삽입곡으로 기존 곡을 쓸 경우, 담당 음악출판사와 연락을 취하고 승인을 받아내며 음악 저작권만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요. 또 템프 트랙(보기로 선곡된 음악)만 작업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이는 특정 장면에 어울릴만한 음악을 보기로 제시하는 거죠. 방송국의 음악감독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영상에 필요한 적당한 음악을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골라 영상에 집어넣는 일을 하죠. 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영화계와 대중음악계와 연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에요. 동료 음악감독들을 보면 대략 친분으로 대중 가수들과 OST 작업을 하곤 하는데 제작비의 제약 때문인지 인식의 문제인지 잘 연계가 되질 않습니다. 기타 등등.. 전반적으로 제가보기에 우리나라 영화제작 파트 중에서 음악분야에 대한 지식(관심 말고)이 가장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음악의 작곡이나 편곡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악보작업을 통해 연주되는지, 악기소리가 다른지, 연주자들의 녹음과 믹싱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등, 음악이 영상에 입혀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상대적으로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냥 완성된 결과물만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무쪼록 앞으로 제작자들의 많은 관심으로 영화음악 분야의 발전을 기대해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준비 중인 차기작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요. 프랑스 여류작가의 원작소설 ‘Woman of Straw’를 영화화한 <은밀한 유혹>이라는 작품을 하고 있어요. 할리우드에서 1964년에 이미 만든 영화의 리메이크 작인데요. 임수정, 유연석, 이경영의 주연으로 호화 유람선에서 벌어지는 돈을 담보로 한 애정 관계를 이야기하는 영화랍니다. 올가을 개봉예정이구요.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끝났어요? 어우. 끝이 나기는 나는구나. _ 인터뷰: 문상윤 _ 정리, 사진: 유성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