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tapa]22회 최용익 칼럼 - 현실 왜곡하는 대통령의 경축사
- 제작년도
- 2012
<최후의 증인> 중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10,000건 이상의 검열 행정자료들 중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것들을 선별하여 영화사적 배경이나 상황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글들을 통해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는 기쁨과 아울러, 한국영화사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랜 기간 한국영화사에서 검열이라는 주제는 진지한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전설 혹은 설화와 같이 다루어져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검열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례와 일화들이 전해져 왔지만, 그걸 뒷받침할 만한 자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문헌자료라고 해야 기껏해야 영화법 규정이나 시책 정도가 거의 전부였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2010년대 초 한국영상자료원이 영화검열 자료를 대량으로 공개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검열담: 창작자(감독)에 의해 만들어져 온 신화 그런데 이전 (그리고 지금까지도) 영화검열에 대한 일화들을 전달한 주체는 대부분 영화감독 들이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감독이 아니면 누가 그 영화의 검열상황을 알며, 증언해 줄 것인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 검열 절차의 직접적인 당사자는 감독이 아니라 제작사(외화의 경우 수입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감독은 제작사를 통해 검열 결과를 전해 듣는 입장이 된다. 1974~1975년, 1979년 검열 담당이었던 이남기 의 증언에 의하면 검열 결과는 공식적으로 제작자에게 통보되며 검열 주체의 의견이 감독에게 직접 전달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이남기 구술 장면 ( 구술채록문 링크 ) 게다가 검열실에는 감독은 물론 제작자도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검열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삭제 결정의 구체적 사유나 분위기, 뒷배경에 대해서는 감독과 제작자조차 직접적으로 알 수가 없는 체제였다. 다만 이 원칙이 절대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증언이 약간 엇갈린다. 이장호 감독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본인이 < 별들의 고향 >(1974) 검열 현장에 참석했지만, < 바람불어 좋은날 >(1980)에는 참석했던 기억이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남기에 의하면 본인이 근무하던 시기에는 결코 제작자나 감독이 참석할 수 없었다고 단언한다. 검열관이 입장하고 나면 검열실을 아예 폐문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본인이 근무하기 전에 제작자나 감독 등이 몰래 들어와서 시사를 참관해서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1] 또한 정진우 감독 역시 필자와의 대화에서 감독이 검열 시사실에 입장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본인은 한 번도 검열 시사에 동석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검열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주체로 인정받아 왔다. 감독들이 주로 특정 영화에 대한 증언을 해 왔던 관행 탓도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영화의 최종적 의미 담지자로서 감독에 대한 고정관념, 제작-검열-배급-상영-수용이라는 전 과정이 아니라 텍스트성(그것도 그 텍스트성이 감독에 의해 일방적으로 생산되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이나 작가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온 전통적인 한국영화사 연구 경향이 존재한다. 그러나 감독의 검열 증언은 전언에 의한 간접적 사실 인식, 기억의 부정확함과 본인의 인정 욕구가 복잡하게 작용하는 사후적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때로 감독은 검열에 대한 증언을 통해 자신의 미학적 실패를 검열 당국의 책임으로 미룰 수 있고, 자신이 당대 사회에서 핍박받는 존재였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리하여 시대와 불화하는 예술인이라는 신화적 상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 제작사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검열을 한 후, 검열 당국의 지시라 핑계 댈 가능성도 있다. 이 복합성의 한 사례를 < 최후의 증인 >(1980) 검열을 통해 살펴보자. <최후의 증인> 검열 과정 ▶ <최후의 증인>이 검열에서 잘려 나간 이유는 뭔가요? 이두용 감독: 6.25 전쟁의 후유증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동족간의 이념을 다룬 영화가 아니에요. 한 순진무구한 사람이 권력자들한테 모함을 당해서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그리고 전쟁 때문에 일생이 마모되어 가는 과정을 한 수사관이 수사를 하면서 드러나는 영화인데 이두용 감독 사상이 수상하다고 누가 청와대에 투고를 했어요. 옛날에는 영화를 만들 때 금기가 있었어요. 이념을 다룬 것은 물론 안 되고 공무원 부패를 다룬 것도 안 되고, 아주 많았어요. 그런 게 다 걸렸었나 봐요. 그러니 모조리 잘려버리니까 영화가 절름발이가 된 거죠. 그래서 개봉날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왔어요. 나와서 시간표를 보니까 그 영화가 2시간 40분짜리인데 1시간 40분으로 돼 있더라고요. [2] <최후의 증인>은 그 삭제 분량만으로도 한국영화사에서 혹독한 검열의 사례로 꼽혀 왔다. 제작 당시 160분이었던 러닝타임이 이후 정권의 검열을 통해 90분(혹은 100분, 이두용 감독의 증언이 엇갈림)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물경 40%가 넘는 분량이 삭제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두용 감독은 여러 자리에서 <최후의 증인>의 삭제 사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회고했다. 인용문에 언급되었듯 그에 따르면 이 영화는 청와대에 민원이 제기되어 정권에 의해 삭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증언은 당시 검열서류가 밝히고 있는 정황과 차이가 있다. 당시 검열서류에 따라 간단히 이 영화의 검열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최후의 증인>은 1980년 2월 12일 제작신고가 접수되어 2월 19일에 대본 심의가 이루어졌다. 심의를 맡았던 공연윤리위원회는 빨치산의 소녀 추행 장면 등을 포함 7개 장면에 대해 수정 혹은 삭제 판정을 했고, 이와 같은 제한 사항 그대로 문공부는 제작사에 영화제작 신고를 허용했다. 완성된 필름에 대한 검열은 제작이 완료된 후인 1980년 9월 16일에 이루어졌는데, 당시 공윤은 ‘공비들이 지혜를 윤간하는 장면’, ‘검사의 책상 위에 지폐 뭉치를 건네주는 금전수수 장면’ 등 총 네 개 화면을 삭제할 필요가 있음을 문공부에 통보했고, 문공부는 9월 18일, 이 내용 그대로 제한 사항을 둔 채 검열 합격을 통보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네 개의 장면의 삭제 길이는 총 56.8m(186.4피트)로 2분이 채 안 되었으며, 검열허가 서류상의 총 상영시간은 158분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로 볼 때, 장면의 연결을 감안하여 좀 더 길게 삭제했다 하더라도 154분 이상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좌) “영화검열 합격통보”(문공부→세경흥업, 1980. 9. 17.) / (우) 영화검열합격증(1980. 9. 17.)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우선 1980년 10월 8일에는 대검찰청 부장검사의 요청에 따라 검찰청 입장에서의 실사가 이루어졌다. 이는 이례적인 일인데, 이 영화에서 검사가 부정적으로 그려진 것에 대한 대응으로 추측된다. 검찰청은 검찰 혹은 교도관과 관련된 대사 및 장면 각 2개 처를 삭제하기를 요청했고, 이는 문공부에 의해 받아들여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정황은 재검열 이후 문공부 담당자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최후의 증인’ 제작 경위”라는 서류에 남아있다. “최후의 증인” 제작경위(문공부, 날짜 미상) 그런데 1980년 11월 10일 제작사는 돌연 문공부에 재검열을 신청한다. 신청서에는 “폐사에서 제작하여 검열을 필한 극영화 ‘최후의 증인’을 폐사의 직접, 간접적인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하여 별첨 자진삭제 작업표와 같이 그 내용을 재편집하였으므로 재검열을 신청”한다고 기재되었고, 상영시간은 종전 158분에서 무려 38분이 삭제된 120분으로 줄어있었다. 이 “불가피한 사유”의 정체는 문공부가 공연윤리위원장에 보낸 검열 심의 의뢰서에 나타나는데, 이 서류에 의하면 “상영시간이 길어 극장 상영 배정이 곤란”하다는 것이다. 결국 검열 결과 이 영화는 제작사가 제출한 최종 120분으로 확정되었고, 11월 15일 개봉하게 된다. (좌) “극영화 재검열 신청”(세경흥업→문공부, 1980. 11. 5.) / (우) 제작사의 자진삭제 부분 신 표시 이 영화가 종국적으로 이두용 감독의 회상처럼 90분이나 100분까지는 아니라도 120분으로 대폭 삭제된 것은 분명하나, 당시 서류에 의하면 그 이유는 감독 본인의 주장과 달리 국가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작사의 상업적인 동기에 의해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증언에 비해 검열서류와 같은 공식 문서를 더 신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는 없다. 공문서에 작성된 최종적인 기록 역시 부정확하고 조작 혹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감독의 증언과 같이 국가권력(청와대, 혹은 검찰당국)이 이 영화를 못마땅하게 판단했고, 상영허가를 철회하거나 대규모로 검열을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물의를 감안하여 제작사에 자진 삭제를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추정 역시 가능하다(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이두용 감독은 정확히 언젠지 특정은 하지 못하나 검찰로부터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는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경우 굳이 문공부가 대검찰청이 실사 검열을 통해 대사 삭제 2개 처, 화면 삭제 2개 처를 요청했다는 기록을 남겼을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삭제된 장면들이 정부에 의해 문제될 만한 분량 외 다른 장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감안할 때, 오히려 서류의 기록대로 영화가 너무 길어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한 제작사가 자진 삭제를 한 이후 감독에게 검열당국의 요구사항이라 책임을 전가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실제 1977년부터 1980년까지 한국영화 중 2시간 40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는 <최후의 증인> 외 1편( 안현철 의 < 세종대왕 >, 150분)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개봉되지 못했다. 비슷하지만 다소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제작사가 국가의 압력을 핑계로 상업적인 동기를 더하여 과도하게 삭제했을 수도 있다. 신화를 넘어서 해당 분량을 삭제한 것이 국가인가, 자본인가라는 질문은 한국영화 검열의 역사, 심지어 검열의 본질을 논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감독이 검열 과정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두용 감독은 본인 때문에 제작사에 피해를 주었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회사에 미안한 마음을 품었다고 하며, 해당 서류를 본 뒤로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감독이 검열 증언의 주된 발화자라는 점은 사실관계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점 외에도 또 다른 심각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가위를 든 국가와 희생당하는 무고한 창작자의 상을 확대재생산 함으로써 검열이 가지는 복잡하고 다양한 변수와 절차, 효과성을 가리며, 이를 좁은 의미의 정치적인 문제로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 제작사, 지방흥행사(배급사), 상영관, 언론, 나아가 관객 등 영화검열에 있어서 직간접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말하자면 텍스트의 생산과 의미 결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누락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검열 절차상 직접적인 피검열 당사자인 영화 제작사가 누락되어 온 것은 심각한 문제다. 제작사는 검열절차의 일선에서 검열관들을 상대하고 그들과 협상한다. 감독이 뇌물과 협박, 타협과 굴종이 뒤섞인 검열의 복잡하고 지저분한 협상 과정을 모르거나, 때로 (자신의 희생자성을 강조하기 위해) 알면서도 감출 때 후대 연구자들 역시 전통적이고 협소한 검열의 관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 *** ◦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 해서 분명히 밝혀두자면, 필자는 감독들의 검열 관련 증언이 허위라거나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소간의 과장이나 왜곡이 있을지언정 상당수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를 증명할 근거가 불명확하고, 그들 역시 제작사로부터 전해들은 정보를 전달하는 입장이라는 것, 무엇보다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 <최후의 증인> 검열서류 원문은 KMDb 컬렉션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 KOFA 검열서류 컬렉션 ) ◦ 이 글은 필자가 발표한 논문, 「한국영화검열사의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시론적 연구」(『한국극예술연구』 제59권, 2018)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 [1] 이남기, 채록연구 배수경, 「문공부 영화과 시선으로 바라본 1970년대 합작영화」, 『2015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합작영화 2, 김정란·이남기·구중모』, 한국영상자료원, 2015, 167쪽. [2] “ ‘뽕’ 이두용 ‘2시간 40분짜리를 1시간 30분으로 싹둑’ ”, 《노컷뉴스》, 2008. 1. 15.
한국영상자료원이 보유한 10,000건 이상의 검열 행정자료들 중 흥미롭고 주목할만한 것들을 선별하여 영화사적 배경이나 상황과 함께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글들을 통해 새로운 자료들을 발견하는 기쁨과 아울러, 한국영화사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국영화사에서 이만희 감독만큼 검열 이슈가 많았던 감독도 드물다. <7인의 여포로> 사건 으로 한국영화 감독 중 최초로 반공법 위반혐의를 받았고 옥고까지 치렀으며, < 휴일 >(1968)은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개봉조차 되지 못했다. 이 영화의 필름은 2005년, 거의 40년이 지난 후에야 대중을 만날 수 있었다. < 기적 >(1967)은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 영화를 표절했다는 이유로 거의 1년을 시달렸다. 심지어 영진공이 직접 제작한 국책영화 < 들국화는 피었는데 >(1974)조차, 영화가 충분히 반공의 이념을 담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당국과 갈등을 빚다 마지막 검열을 포기했다는 설까지 있다. 이 글을 통해 살펴볼 < 삼포가는 길 >(1975)은 그런 종류의 검열 이슈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종류”라는 것은 삭제, 제한, 공개 금지 등 네거티브한 규제, 즉 검열에 대해 통상적으로 가지는 인식의 범주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권장과 규제의 변증법: <삼포가는 길>의 사례가 보여주는 피검열자의 기예 그렇다면 <삼포가는 길>은 무엇이 다른가? <삼포가는 길>의 검열과 관련한 사건은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영상자료원이 2021년 <삼포가는 길> 블루레이 서플먼트로 인터뷰한 동영상에서 주연배우 문숙 님은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사안은 간단하다. 하층민 세 명의 우연한 동행을 담은 이 영화가 검열의 제약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제작사가 감독에게 새마을 운동 홍보가 될 수 있는, 그러니까 당시 한국의 발전상을 담은 장면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이만희 감독은 내켜 하지 않았으나, 제작사의 간곡한 설득에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해대교를 무대로 엔딩 장면을 촬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지막까지 이 장면을 넣지 않으려 했으나 그가 뜻하지 않게 영화 편집 중 별세하면서, 이후 제작사 쪽에서 이 장면을 넣었다는 내용이다. <삼포가는 길> 블루레이 출시 기념 주연배우 문숙 특별 인터뷰 "마지막 장면은 검열 때문에 들어간 거예요“ (16분 56초,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삼포가는 길>의 사례는 검열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로 우리를 이끈다. 검열하는 주체의 소망은 검열이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당연하게도 검열자가 검열을 싫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검열이 필요 없을 정도로 (검열 주체가 보기에) 바람직한 산출물만 나오는 세상을 꿈꾼다는 의미다. 그런 세상을 실현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산출물을 제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산출물을 권장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아래 서류들을 살펴보자. 1970년대 검열관들은 특정 영화에 대한 검열을 시행함에 있어 검열기준(영화법 시행규칙 제9조 영화검열기준)과 함께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을 참고해야 했다. 심지어 이들은 단순히 이를 참고할 뿐 아니라 영화가 어떤 항목에 해당하는지를 표시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검열기준이 아니라, 권장방향이다. 완성품을 대상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삭제하거나 제한하는 것만이 검열이라 보는 입장에서는 이를 통상적인 검열 절차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왜 “제작권장방향”이 주어졌던 것일까. 일단 이 서류가 시나리오 검열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것은 향후 제작될 영화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당대 검열이 단순히 제한과 삭제라는 부작위의 명령에 머무르지 않았음이 반증된다. 즉, 그것은 해당 영화뿐 아니라 영화 일반의 생산 주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리스트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이 리스트는 궁극적으로 검열이 도달해야 할 바를 가리킨다. 1970년대 검열관들이 참고한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 <삼포가는 길>의 제작자가 두려워했던 것은 단순히 하층민의 재현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낙후된 사회의 모습이 재현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박정희 정권 내내 검열적 금기였다. 한국영화 감독들은 빈민촌을 비롯한 낙후된 사회의 모습을 포착하는 장면에 대한 무자비한 삭제에 대해 빈번이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실제 검열기준에 이와 관련하여 삭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은 시행규칙 2호 “적성국가(대한민국과 분쟁중인 상대방을 포함한다)를 유리하게 할 우려가 있을 때”에서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 모호한 부작위 명령 규정보다 “국산영화제작권장방향”에서 더 나은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예컨대 기본방향 중 “1.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약진하는 한국의 발전상을 부각시킬 수 있는 내용”, 세부방향의 “2. 영화의 소재는 가급적 고속도로, 웅장한 공장, 새로운 주택가 등 발전하는 한국의 모습을 배경으로 할 것 / 3. 농촌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가급적 농업의 기계화, 새로운 농지정리 및 지하수 개발 등 밝은 농촌을 배경으로 할 것” 등이다. 이는 단순히 권장방향이 그 자체로 검열기준이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검열이라는, 흔히 생각하는 부작위의 명령에 내재하고 있는 작위의 요소들을 무의식 중에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검열자는 종국적으로 삭제를 전제한 검열기준보다 “제작권장방향”만이 남기를 바란다. 비가시성이 완벽히 가시성 속에서 지양되는 것, 그것이 검열이 최종적인 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의 의지는 현실 속에서 교활한 시장 주체들과 만날 때 교란된다. 피검열자들의 기예는 검열의 본성과 의지를 시험하고, 왜곡하고, 오도한다. 그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가 <삼포가는 길>의 남해대교 씬과 같은, 권장과 제한 사이의 줄타기다. 즉 권장 요소를 포함시켜서, 제한의 위험을 줄이는 것이다. 검열자가 원하는 것을 주면서, 검열자가 원하지 않는 것도 함께 포함하고자 하는 전략인 셈이다. 70년대 내내 검열자들은 “반공을 빙자한 폭력”, “반공을 빙자한 에로” 영화들에 넌더리를 내었다. 많은 제작자가 정책적 목표인 반공을 이용하여 폭력과 에로티시즘을 섞은 반공 아닌 반공영화들을 양산했던 것이다. “반공”이라는 정권의 제1 가치가 상업영화 제작자들로부터 조롱당했던 셈이다. <삼포가는 길> 마지막 장면(남해대교 씬)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테마 1990년대 이후 검열 이론을 전환시켰던 것은 검열이 단순히 부정적 규제가 아니라 생산적인 효과를 가진다는,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테마였다. 명백하게 푸코의 권력이론을 반영한 이 테제는 검열은 네거티브한 규제라는 인식을 전환했고, 보다 복잡한 절차와 효과들을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검열의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아직 어떤 합의된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논자마다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서 논의하곤 한다. 이 제한과 권장의 변증법 역시 검열의 생산성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권장과 제한의 변증법이 정책적으로 완벽하게 합일된 사례가 있다. 1980년, 영화검열을 담당하던 공연윤리위원회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검열위원들이 정부가 관장해 온 우수영화의 선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우수영화란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따라 우수하다고 판단한(그 세부 기준은 해마다 달라졌으나, 관제적인 영화에 미학적 완성도가 가미된 기준이라 볼 수 있다) 영화에 외화수입권을 포상하는 제도였다. 시기마다 다르지만 외화수입권의 이권이 한국영화 한 편의 제작비를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보니 우수영화에 선정되기 위한 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했고, 우수영화 선정 여부는 그해 영화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리고 정부는 이 제도를 통해 한국영화 제작사들을 통제했다. 말하자면 우수영화 선정 사업은 당시 한국영화 정책 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이러한 중차대한 국가적 진흥 사업의 임무가 검열기관에 주어졌던 것이다. 진흥기관인 영화진흥공사가 별도로 있었던 시절이었으니 더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물론 그 결정은 영화인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진흥공사가 심사를 공정하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작용한 결과였다. 또한 검열관들이 어차피 영화를 보게 되니 그 과정에서 우수영화를 선정할 수 있으리라는 문공부의 편의주의적 발상의 결과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편의주의적 결정의 이면에는, 어쩌면 검열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꿰뚫은 무의식적 사고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공윤이라는 검열기관이 부정적인 규제뿐 아니라 능동적인 권장 사업을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한 모순처럼 보인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당시 영화검열위원이자 공윤의 부위원장을 역임한 여석기는 “생산적”이라는 단어를 활용하여 이 모순을 해소하고자 시도하려 한다. 공윤이 맡아서 하는 일은 윤리규제이니까 그 자체로서 오히려 통념대로라면 규제란 뭔가 하지 말라는, 즉, 표현 내용을 자유롭게 허용하기는커녕 제한을 가하는 기능밖에는 없으니까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 굳이 「생산적」이란 용어를 쓰는 이유는 윤리규제가 양질의 문화를 생산하는데 간접적 기여를 할 수 있고 어쩌면 그런 역할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의 창의성을 침해하는데 최소의 작용을 하는 반면에 저질화를 막는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할 때 윤리규제는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윤리규제 그 자체는 비평 행위가 될 수 없고 대상이 되는 작품의 값을 따져야 하는 입장에 서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최소한의 「이런 것은 안된다」하는 주의 환기로서 끝나는 것이 그 본래의 기능일 것이다. 그러나 공윤이 우리사회에 뭔가 기여할 수 있는 적극적 능동적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규제가 육성으로 연결되는 점이 아니겠는가. - 여석기, "새시대 공연문화와 윤리", 《공연윤리》 53호, 1981. 1. 15. (강조는 필자) 여석기는 검열이 가지는 수동적 기능 혹은 부정적 규제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검열이 한국사회에 양질의 문화를 전파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기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인용문에서 흥미로운 점은 공윤이 우수영화의 선정과 같은 적극적인 어떤 행위를 작위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굳이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는 “비생산적”인 네거티브한 규제라 할지라도 그 자체에 충실할 때 생산적인 결과가 이어진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문장 속 “규제가 육성으로 연결되는 점”이라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되어야 하는”이 아니라, “되는”이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당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검열 규제가 육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것, 때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여석기는 시대를 앞질러, 검열의 궁극적 본질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겠다. *** 이 글은 필자가 발표한 두 편의 논문, 「한국영화검열사의 몇 가지 주제에 대한 시론적 연구」(『한국극예술연구』 제59권, 2018)와 「〈애마부인〉이 등장하기까지: 영화 풍속 검열의 변동 요인 분석, 1979∼1982」(『영화연구』 제104호, 2025)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폭설> 중 '실사'에 드리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선명해지는, 영화가 낳은(을) 새로운 감각과 지형을 발견합니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기술 발전에 조응하며 미학적, 산업적 변화를 거듭해 온 매체이다. 무성에서 유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아날로그 필름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기술사적 변곡점마다 영화 창작자들은 새로운 표현 가능성과 방법론적 도전에 직면해왔다. 최근 부상하는 인공지능(AI) 기술 역시 이러한 영화 기술사의 연장선상에서 주목해야 할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영화 제작 방식과 미학 전반에 걸친 또 다른 전환을 예고한다. 최근 필자가 제작한 단편 < 폭설 >(2024)은 AI를 기반으로 전체 제작 과정이 이루어진 코즈믹 호러 영화이다. 전통적인 촬영과 후반 작업 대신 인공지능 생성 기술을 전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기존 영화 제작 방식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했던 시각 요소들을 구현할 수 있었다. AI 기반 제작 방식은 물리적 세트나 대규모 시각효과팀이 없이도 연출자의 순수한 상상력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는 혁신적 가능성을 열었다. <폭설>은 종말을 앞둔 2009년 겨울, 설국(雪國)을 배경으로 구축된 디지털 세계이다. 주인공 소요는 어릴 적 친구인 유코를 기다린다. 작은 섬마을에서 벌어진 초자연적 현상은 종말로 확대되고, 소요가 유코가 남긴 수취인 없는 유서를 떠올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특히 ‘몬사로(漢字道)’라 불리는 초월체. 형이상학적 존재를 시각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비물질적이고 초월적 존재의 표현은 전통적 시각효과로는 구현하기 어려웠으나, 생성형 AI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시각적 표현을 달성할 수 있었다. <폭설> 제작에서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AI 기술을 다층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시나리오에서 묘사된 ‘몬사로’라고 하는, 형체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 형이상학적 존재의 시각화 작업은 정교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을 통해 점진적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작업을 안정화하기 위해 대규모 언어 모델인 Claude API를 활용하여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을 개발하였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AI 프로덕션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시나리오의 핵심 시각 요소와 정서적 톤을 분석하고 이를 이미지 생성 명령어로 변환하는 중간 매개체로 기능했다. 독백으로 전개되는 14분 분량의 이 작품은 대화 장면보다는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와 분위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러한 접근은 AI 영화 제작의 특성을 고려한 의도적 선택이었다. 당시 AI 기술로는 자연스러운 대화 장면과 입술 동기화를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내면의 독백을 통한 서사 전개 방식을 선택하고 시각적 요소에 집중했다. <폭설, 暴雪> 중 전체 설국 시퀀스 제작을 위해 직접 촬영한 눈의 텍스처를 학습시켜 AI로 생성된 설산 배경 이미지를 기본 레이어로 사용하였고, 특히 사실적인 표현과 초현실적 요소 사이의 균형을 세심하게 조정했다. 여기에 ControlNet을 결합한 워크플로우를 구축했다. 기본 배경 이미지에 ComfyUI 노드 기반 워크플로우를 적용해 시네마틱한 로그 프로파일을 구현했다. 이후, 35mm 필름의 할레이션 효과를 재현하고, ControlNet으로 아나모픽 렌즈 플레어와, 얕은 피사계 심도와 대기 원근법을 구축했다. 이후 후반 작업에서는 Film Grain 노드로 Pro-Mist 필터 효과를 시뮬레이션 후, 시네마틱 톤매핑을 완성하여 애너모픽 스퀴즈와 쿨-웜 색상 대비를 정교하게 조절하며 실제 영화의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본 단계들이 점진적으로 추가되었다. 특히 캐릭터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환경이 서서히 변화하는 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 변환 기술을 여러 단계로 적용하며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은 AI가 때로 예측하지 못한 창발적 결과물 을 생성한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이러한 ‘알고리즘적 우연성’을 오류로 인식했으나, 점차 이를 창의적 발견의 기회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접근법을 전환했다. 특히 설산 시퀀스 작업 중 한 번의 생성 과정에서 AI가 만들어낸 모호한 형체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본질적인 불안감을 자아내는 효과를 발견했다. 눈보라 속에서 형체가 완전히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신, 눈의 패턴 자체가 미묘하게 얼굴이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왜곡되는 효과가 우연히 생성되었는데, 이는 결국 최종 장면에 반영되었다. 이 경험은 단순히 계획한 이미지를 기술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 AI와의 대화적 창작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AI와의 협업을 통한 창발적 발견은 <폭설> 이후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현재 제작 중인 <어령(御靈)>은 <폭설>의 후속 이야기를 다루는 인터랙티브 영화로, 관객의 선택에 따라 서사가 달라지는 새로운 형태의 영상 작품이다. <폭설>에서 구축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되, 인터랙티브 요소를 통해 관객이 직접 서사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기존의 AI 영화 제작 기법에 더해 실시간 선택 분기와 동적 서사 생성이라는 새로운 기술적 도전이 추가되었다. 특히 관객의 선택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시각적 요소들을 AI를 통해 구현하는 것은 전통적인 영화 제작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실험적 시도이다. <어령>은 AI 기술이 단순한 제작 도구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영화적 경험을 창조할 가능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어령, 御靈> 중 <폭설>과 <어령>의 제작 과정에서 핵심 미학적 도전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얼굴 일관성을 유지하는 문제였다. 이를 위해 포스트 프로덕션 단계에서 ComfyUI 기반의 얼굴 일관성 파이프라인을 구축했다. 특히 AI 생성 영화에서는 동일한 인물이 장면마다 미묘하게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AI가 매번 새롭게 이미지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본질적 특성이다. 이러한 일관성 부재는 서사적 몰입을 저해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얼굴 치환 기술을 활용했다. 이 기술은 영화 중반부의 주요 장면에서 특히 중요했다. 이 장면에서 인물의 대화와 표정은 서사적 긴장감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미묘한 변화를 시각화하기 위해, ComfyUI의 얼굴 치환 기능과 함께 감정 표현 보존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이는 이미지가 지닌 감정적 뉘앙스는 유지하면서도, 얼굴의 미세한 형태적 변형을 통해 내적 변화를 암시하는 효과를 창출했다. 특히 인물의 얼굴이 대화 중에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미묘한 감정 변화를 표현하는 것은 관객들이 인물의 심리적 상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해결책이 아닌, 몰입적 요소를 강화하는 서사적 장치로 작용했다. <폭설, 暴雪> 중 공간 구현에 있어서는 Blender와 SketchUp을 기반으로 한 3D 모델링 작업에 더해, NeRF(Neural Radiance Fields) 기반의 공간 캡처 파이프라인을 접목하였다. 이는 AI 생성 영화에서 공간 연속성과 시각적 정합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기술적 구현 방식이었다. 장면마다 공간의 형태와 구조가 미묘하게 변화할 경우 시청자의 몰입감이 저하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이 부분은 특히 신경 써야 할 주요 과제로 설정되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먼저 3D 모델링을 통해 기본적인 공간 구조를 구성하고, 이후 NeRF 기반의 신경망 기술을 적용하여 실제 공간의 광학적 특성과 깊이 정보를 정밀하게 재구성하였다. 이렇게 구축된 3D 공간 데이터는 AI 이미지 생성을 위한 프롬프트의 기준점으로 활용되며, 결과적으로 전체 서사 내 공간의 일관성과 장면 간 구조적 연속성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어령, 御靈> 중 인물 표현에 있어서는 표정과 제스처의 자연스러운 구현이 중요한 도전이기도 했는데, AI가 생성하는 인물의 표정은 종종 부자연스럽거나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OpenPose 모델을 활용하여 인물의 자세와 제스처를 정밀하게 제어했고, 이를 통해 감정 표현의 섬세함을 구현하였다. 특히 대화 장면에서 인물 간의 시선 처리와 반응 표현은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표현하기 위한 핵심 요소였다. 동적 장면 구현을 위해서는 Stable Video Diffusion(SVD)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정적 이미지 사이의 자연스러운 전환과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키프레임 기반 접근법을 적용했다. 주요 장면의 키프레임을 먼저 생성한 후, 중간 프레임을 보간(Frame interpolation)하는 방식으로 움직임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이는 특히 인물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환경의 점진적 변형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AI와의 협업 과정은 ‘대화적 생성’이라는 새로운 창작 모델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 단계에서는 명확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AI가 생성하는 결과물이 연출자의 세부적인 의도와 괴리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하지만 반복적인 프롬프트 엔지니어링과 생성된 결과물에 대한 비판적 피드백 과정을 통해, AI는 점진적으로 연출자가 설정한 시각적 목표치에 수렴하는 결과물을 도출하기 시작했다. 제작 과정에서 미학적으로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AI 생성 이미지의 ‘제어 가능성’과 ‘창발적 우연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AI와의 ‘ 대화적 창작 ’ 프로세스를 발전시켰다. 구체적으로는 초기에 다양한 방향성을 탐색하는 ‘발산적 프롬프팅’에서 시작해, 점진적으로 선택된 요소들을 정교화하는 ‘수렴적 프롬프팅’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접근법을 적용했다. AI가 제시하는 예상치 못한 가능성에 열린 상태로 창작 방향을 조정해나가는 쌍방향적 협업으로 프로세스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기본 기획보다 흥미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AI 생성 요소들이 캐릭터의 심리적 상태를 더욱 효과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발견은 제작 과정 자체를 재해석하게 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도구적 활용을 넘어, AI라는 비인간 행위자와 상호작용하며 결과물을 구축해나가는 독특한 협업 모델을 경험하게 했다. 이는 AI가 창작 과정 자체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는 변수로서 기능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향후 영화 제작 패러다임의 변화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기술적 전환이 영화계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사를 고찰해보면,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늘 기대와 동시에 기존 질서에 대한 불안과 저항을 야기해왔다. 활동사진의 등장부터 유성영화, 컬러영화, 디지털 시네마에 이르기까지, 기술적 전환기에는 어김없이 미학적, 산업적 논쟁이 수반되었다. AI 기술 역시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핵심적인 논점은 기술 자체의 속성보다는, 이를 창작의 도구로서 어떻게 사유하고 활용하는가에 대한 창작 주체 의 문제로 귀결된다. 제작 환경의 제약으로 인해 창작의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는 사례는 영화계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왔다. AI 기술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일정 부분 해소하고,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할 잠재력을 지닌다.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국제경쟁 AI 영화 부문의 공식 선정작 감독들이 영화 관련 교육 배경을 가졌거나 현업에 종사하는 인력들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AI 기술이 창작의 효율성을 높이는 유용한 도구임은 분명하지만, 영화적 서사를 구축하고 미학적 판단을 내리는 핵심적인 역량은 여전히 영화 매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갖춘 인간 창작자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나아가, 기존에 기회를 얻지 못했던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줄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따라서 AI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영화적 표현의 외연을 확장하는 새로운 매체적 조건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과거 네오리얼리즘이 동시대 현실을 포착하는 새로운 영화 언어를 제시했고, 누벨바그가 기존의 영화 문법에 도전하며 새로운 미학을 추구했듯이, 새로운 기술과 도구의 등장은 늘 새로운 영화 언어와 미학적 탐구의 가능성을 열어왔으니, 현재 우리는 AI 기술이 촉발하는 또 다른 영화사적 변화의 과정에 위치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을 터이다. <폭설, 暴雪> 중 <폭설>의 제작 과정은 AI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전통적 방식과는 구별되는 연출 실험이었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의 시각화 작업부터 포스트 프로덕션의 특수효과 생성에 이르기까지, AI에게 연출 의도를 명확히 전달하고 생성된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피드백을 통해 최종 결과물을 구축해나가는 과정은 새로운 형태의 협업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화적 창작’ 모델은 감독에게 AI라는 새로운 기술적 도구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그 결과와 소통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AI 기술의 발전 속도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단기간 내에 현재보다 훨씬 고도화된 기술이 등장할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급격한 기술 변화 앞에서 창작자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영화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기술적, 미학적 변화를 끊임없이 수용하고 내재화하며 발전해 온 과정이었다. 핵심은 기술의 발전이 영화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폭과 깊이를 확장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새로운 방법론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AI는 창작 도구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지, 창작 행위의 본질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서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질문하려는 욕구,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의지, 스크린이라는 매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려는 영화 고유의 시도는 여전히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는다. <폭설>의 제작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AI가 감독의 창조적 비전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강력하고 효율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감독의 명확한 비전과 미학적 판단 능력이며, 이는 창작자의 경험, 감수성, 그리고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에서 비롯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창작자는 상상하는 바를 더욱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AI 시대 영화 창작이 마주한 새로운 가능성이며, 지속적인 탐구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궁극적으로, 매체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든 창작자는 늘 그랬듯이 동시대의 현실과 인간의 삶에 대해 발언하고 질문해야 한다. 사용하는 기술적 언어가 달라진다 해도, 영화를 통해 탐구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문제의식과 주제는 지속될 것이다. 영화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며 스스로의 미학적, 산업적 지평을 넓혀 온 예술 형태이다. AI 시대 역시 이러한 진화의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이야기하려는 우리들의 근원적 욕망이 존재하는 한, 영화는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조응하며 그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될 것이다. 도구는 바뀌어도, 우리는 늘 그랬듯이 표현하고자 하니깐. 배준원(영화감독) l 표현자로서의 경계 없음을 안간힘을 다해 믿으며 표현합니다. <몬사로>(2025), < 폭설 >(2024), < 침묵 >(2023) 연출. 인간과 사회를 응시하며, 틈 사이로 비추는 균열들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