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성][외도] 외도했던 남편과 계속 살아야 하나요?
- 제작년도
- 2010
KMDb 연재를 시작한 지 2년이나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는 동안 연재와 함께 했다. 처음 기획단계에서 한국영화의 여성주의적 ‘정동’을 주제로 삼았고, 당시 양분된 반응을 얻었던 < 아워 바디 >로 연재를 시작했다. ‘정동’이란 주제로 연재한 마지막 글은 시작 같은 끝이 될 수 있는 영화로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영화사의 첫 여성감독인 박남옥이 연출한 < 미망인 >(1955)을 선택했다. 복잡하게 얽힌 오각관계를 재현하는 대화씬의 연출력이 빛나는 <미망인>은 거리를 방황하며 혼란스러움을 드러내는 발의 몽타주로 끝난다. 이 엔딩씬은 10분가량의 사운드와 마지막 장면의 프린트가 소실되어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황을 영원히 끝낼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망인>은 박남옥 감독의 첫 번째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이다. 차기작에 대한 열망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갖고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룰 기회는 없었다. 1955년에 개봉한 <미망인>은 전후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일제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미군통치 시기를 지나며 조선의 전통적 이데올로기는 균열이 나고 어느 정도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통적인 성역할은 현실적으로 급격하게 해체되는 수순에 이르렀다. 그것은 단순히 도덕이나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전통적인 성역할이 유지되기 위해선 경제권을 갖고 있는 남성 가부장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많은 남자들이 참전 중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채 돌아와, 가장이 된 여자들이 오롯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또한 전후 미처 특정 체제가 구축되기 전 미군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문물의 파장도 있었다. 문학과 영화는 당시 전후를 묘사하기 위해 전통적 성역할에 도전하는 신여성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프레걸(après-girl)이 그것이다. <미망인>뿐 아니라 동시대에 나온 < 자유부인 >(한형모)과 < 지옥화 >(신상옥) 등도 그러한 여성들을 그리고 있다. <미망인>의 주인공 이신자(이민자)는 전쟁 중 남편이 죽은 후 어린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 신자는 딸과 함께 잘 살아 보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남편이 없다고 그녀를 우습게 본다. 옆집 여자 숙은 술 먹으며 빈둥대는 나이 든 옆집 남자와 신자를 엮어보려 하고, 남편 친구의 아내는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자기 남편에게 들이대지 말라고 협박한다. 그녀는 생활비가 모자라 돈을 빌리려던 신자를 극도로 경계한다. 신자는 남편 없는 설움을 겪는다. 이때부터 신자는 태도를 바꾼다. 어차피 자기의 감정과 욕망이 저자거리에서 다른 이들에 의해 쉽게 취급받을 바에야 정말로 좋아하는 남자와 사랑에도 빠져보면서 자기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신자는 무작정 순진한 여성도, 그렇다고 다른 영화들에서 묘사된 아프레걸처럼 치명적 매혹으로 남자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팜므 파탈도 아니다. 눈치 빠르고 생존력 강한 신자는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유부남의 호감을 적절한 선에서 이용하고, 양장점을 운영할 만한 능력과 성실함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전후 여성의 관점에서 경제적 문제들이 치밀하게 묘사된다. 현물이든 인맥이든 자원이 없는 신자가 왜 남편친구인 이사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지, 왜 사랑하는 딸을 자신이 키울 수 없고 모성과 사랑 사이에서 양자택일 하도록 강요되는지, 그리고 여성들 간의 불화와 연대는 왜 발생하게 되는지 등을 보여준다. 서사적으로는 신여성들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면서 시청각적으로는 그 여성들에 매혹되며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이 영화에는 없다. 오히려 남편 있는 중상층 여자, 남편 없이 홀로 딸을 키우는 여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자들이 각기 자기의 위치와 계급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욕망을 추구하며 꿈을 잃지 않으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두가 ‘해바라기’인 이들은 각자가 위치한 계급과 가족구성에 따라 남성들과 각기 다른 관계를 맺는다. 세 여자가 택이라는 한 남자와 모두 성적 관계를 맺기 때문에 그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자는 애인과 딸, 그리고 사업적 성공 모두 갖고 싶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미망인’인 그녀에게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이 영화는 신자가 그러한 선택의 강요 속에서 오래 갈등하는 것을 보여 준다. 영화는 “이웃에 이러한 미망인이 있었다. 수렁에 빠졌을 때라도 그는 해바라기였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신자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관객도 섣부른 단죄 이전에 그가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지켜봐줄 것을 요청한다. 신자는 전후 팍팍한 삶에서도 포기하는 삶보다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라고 선택하는 생명력 있는 인간이다. 박남옥 감독은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여성들뿐 아니라, 계급이 다른 남자들을 배치해 그들도 비교한다. 이사장은 유부남이면서도 은근슬쩍 돈을 이용해 신자에게 호감을 표명한다. 신자는 그 노림수를 알면서도 생활비와 사업비를 위해 그의 접근을 안전한 거리까지만 허용한다. 신자가 이사장과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장면은 상투적인 대화 장면인데도 이면에 서로 다른 의도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기에 긴장감을 이끌어 낸다. 관객들은 오프닝에서 그의 아내가 신자를 찾아가 한바탕 대거리를 하고 돌아간 것을 이미 보았다. 그의 호감을 적절한 수준에서 받아내면서 신자는 그의 아내가 찾아온 사실을 전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켜 유감이라고 한다. 관객들은 그의 호감에 기반 해 도움을 받으면서도 더 이상의 성적 접근은 분명하게 거절하는 신자의 대화기술 속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느낀다. 극장 간판을 그리며 혼자 사는 젊은 남성인 택(이택균)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해 다양한 계급과 조건의 세 여성 모두와 관계를 맺는다. 신자를 포함해 세 여자는 옴므 파탈인 이 남자에게 매혹 당한다. 택은 돈이 많은 이사장 아내의 불륜남으로, ‘미망인’인 신자의 애인으로, 전쟁 중 헤어졌던 옛 애인 진의 순정남으로 오고간다. 오히려 전후에 여자들을 이용해 살았던 것은 가진 것 없는 젊은 남성일 수 있다. 박남옥 감독은 ‘아프레보이’(après-boy)라고 불릴 만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전후는 압도하는 폭력과 파괴가 휩쓸고 지나간 시간이지만, 또한 개인이 자기만의 윤리 속에서 선택의 기준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미망인>의 인물들은 전쟁 중 죽은 줄 알았던 애인(택과 진)과의 재회처럼 극적인 사건과 선택을 맞닥뜨린다. 이사장과 신자, 택과 이사장 부인이 술집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복잡하게 얽힌 선택의 길에 놓인 인물들을 동선과 공간화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넷이 따로 차에서 내려 대문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기까지 정원길을 걸어들어가고 나오는 장면을 정성들여 보여준다. 그 길은 선택의 길이다. 먼저 들어온 택과 이사장 부인이 있는 방의 옆방에 이사장과 신자가 들어온다. 두 방의 교차편집이 진행된다. 이사장 부인은 택이 신자를 만난 것을 추궁하고, 이사장은 신자를 만나 자신의 아내의 외도를 알리며 신으로부터의 위로를 바란다. 그리고 먼저 방을 나온 신은 따로 나온 택과 그 길에서 만나 같이 나가버리고, 이사장 부인은 급작스럽게 만난 남편에게 냉대를 당한다. 신자는 택과의 사랑도 이루고, 이사장에게 투자도 받는다. 신자는 택과의 연애를 이어가기 위해 딸인 주를 동네 나이든 부부에게 맡기지만, 택은 옛 애인인 진을 만난 후 사라진다. 신자는 이후 양장점을 열고 경제적 독립을 이룬다. 신자가 낮에 소설책을 읽다 방에 누워 애인 택과 딸 주의 환상을 보는 장면은 신자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재현한다. 신자가 독백으로 읽어 내려가는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인은 그 사나이와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 사나이는 하루의 향락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인은 큰 유리컵에다 진한 술을 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방바닥에 누운 신자 위로 디졸브된 택과 주가 교차로 편집된다. 신은 경제적 독립, 사랑, 가족 어느 하나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신자는 신여성으로 방안 탁자에 놓여있는 액자 속 마를린 디트리히와 근대소설의 욕망하는 여성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미망인>의 마지막 10분은 안타깝게도 사운드가 손상되어 대사를 들을 수 없으며, 마지막 장면은 프린트가 완전히 소실되어 엔딩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신자, 택, 진이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사운드가 없는 무성영화의 상태는 그들의 혼란스러움을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속상한 신자가 옆집 친구 숙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진과 택이 함께 있는 장면과 교차된다. 그 술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는 사운드가 소실되어 알 수 없다. 신자와 숙의 대화 장면은 깊은 고뇌에 빠진 척하며 홀로 방황하는 택 그리고 휘청대며 걷는 몽따주된 그의 발들과 교차편집 된다. 욕망의 대상을 뚜렷하게 알고 그것을 다 갖기 위해 달려가는 생존력 강한 신자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정처 없이 떠도는 무력한 택 모두 혼란에 빠진다. 미망인은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자의 삶이 철저하게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가부장제적 단어이다. 하지만 <미망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도 자신의 주체적 삶을 살아가고 복잡한 현실과 욕망의 간극 속에서 갈등하는 신자를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크린 위 여성들의 복잡한 마음이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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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1. 대사 “구로사와 기요시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감독이라면 에릭 로메르는 흉내를 내보고 싶은 감독이라고 할까? 영화를 구상할 때 대사를 많이 쓰는 식으로 하다 보니 이것이 나의 약점이라 생각했는데 에릭 로메르의 영화를 보면서 이런 식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된 봉준호 감독과의 대화에서 하마구치 류스케는 자신의 영화와 에릭 로메르의 연관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의 가장 특징이 대화 장면이 많고 대화 장면이 영화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언급이다. 하마구치의 스타일을 각인시킨 < 해피 아워 >부터 < 드라이브 마이 카 >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는 대화 장면을 빼놓고 성립하기 어렵다. < 우연과 상상 >은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단편영화 셋을 묶은 옴니버스 영화인데, 전체가 일종의 대화극으로 이뤄져 있다. 둘의 긴 대화를 어떻게 끌고 가는지, 그들의 말에 어떤 숨은 의미가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숨기면서 때론 진실을 때론 거짓말을 한다. 봉준호는 하마구치 영화의 대사가 “무언가를 설명하는 대신 마음의 풍경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마구치 류스케도 에릭 로메르 영화에서 대사가 설명이 아니라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치라는 점에 주목했다며 봉준호의 언급에 동의했다. 여기서 하마구치가 대화 장면을 만드는 방식에 관해서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대사의 양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우연과 상상>의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두 여자를 보자.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수줍게 고백하는 여자와 사랑에 빠진 친구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하다 그 대상이 자신의 옛 남자친구임을 알게 되는 여자 사이에 작은 틈이 갈라진다. 이어 여자는 자신의 옛 남자친구를 찾아가 사라진 감정과 남아있는 감정 사이에 위험한 줄다리기를 한다. 대사들은 그들이 언제 어떻게 만났고 어쩌다 헤어졌는지 같은 명백한 정보를 주는 대신 그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지금 그들의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이야기의 결말도 예상할 수 없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두 여인의 대화 역시 진실과 거짓이 밀고 당기는 가운데 현재 두 여인의 삶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다. 같은 학교를 다닌 친구였다는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둘의 대화는 오해를 정정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스쳐갔던 과거가 아니라 현재 그들의 삶이 마음에 만들어놓은 무늬들이고 대화는 그들의 쓸쓸함, 외로움, 허전함을 온전히 드러낸다. 말이 캐릭터를 성립시키는 사례는 <우연과 상상>의 두번째 에피소드에도 있다. 에로틱한 소설을 낭독하는 여자와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남자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폭발 직전까지 고양되지만 상상할 법한 성적 행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엔 그저 말이 있을 뿐이고 목소리가 있을 뿐이다. 말의 강력함은 어떤 노출도 없이, 비견할 데 없이 강렬한 에로티시즘을 형상화한다. 때로 하마구치의 대사는 사람의 폐부를 느닷없이 찌르고 들어오는 비수가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죽은 아내와 섹스를 했을 거라 의심하는 남자에게 어떤 말을 듣는 순간을 보자. 주인공 가후쿠는 섹스를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 습관을 지녔던 아내가 자신에게만 들려줬다고 믿었던 이야기를 아내의 숨겨둔 애인에게 듣게 된다. 그것도 자신이 몰랐던 후속 이야기까지. 차 안에서 이뤄지는 이 대화 장면은 가후쿠에게 칼로 베이는 듯한 아픔을 준다. 영화가 가후쿠의 리액션 같은 것을 강조하지 않는데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후쿠가 아내의 외도를 눈 앞에서 목격했을 때 느꼈던 놀라움과 비교가 안되는 충격이 대사를 통해 전해진다. 이것이 가후쿠가 그토록 대면하기 두려워해왔던 진실이다. 하마구치 영화의 대화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을 졸이는 이유는 인물의 내면에서 어떤 진실이 드러났다 사라지는 마법이 계속 일어나기 때문이다. 때로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때로 요염한 모습으로 하마구치 영화의 매혹이 생겨나는 지점이다. 흔히 좋은 영화는 말로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대사가 많은 영화는 좋지 않다’는 일반론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보다 간접적인 표현이 더 영화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하마구치의 영화는 많은 대사가 오가는 대목에서 ‘영화적’이 된다. <우연과 상상>의 세 에피소드에서 디테일로 가득 찬 대화 장면 없이 인과 관계의 액션과 리액션만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TV 드라마와 다를 게 없다. 에릭 로메르나 하마구치에겐 대사가 곧 영화다. 2. 연기 <드라이브 마이 카>에는 박유림, 진대연, 안휘태 등 한국 배우 몇 명이 출연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들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실제 영화를 준비하면서 <드라이브 마이 카>에 나오는 연기 연습 장면처럼 시나리오 읽은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출연 배우들이 모두 한 공간에 둘러앉아 대사를 읽어가는 것인데 영화에서처럼 감정을 빼고 읽다가 일정한 궤도에 돌입한 뒤에 감정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하마구치의 영화처럼 대사가 많은 작품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하마구치의 연기 연출론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연기를 어떻게 연출하는가에 관해 그가 쓴 책이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라 한다). 하마구치는 대사를 온전히 배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일정한 시간과 노력이 합쳐질 때 뭔가를 이뤄내는 순간이 도래한다. <해피 아워>에서 사람이나 사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작업처럼 연기에도 그런 최선의 지점이 존재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공원 리허설 장면을 보자. 가후쿠는 물론 함께 연습을 했던 모든 배우들이 함께 ‘뭔가 달라진 연기’를 경험한다. 연기에 대한 가후쿠의 이론이 하마구치와 유사한 것이라면 <드라이브 마이 카>는 영화에 대한 영화, 연기에 관한 영화로도 읽힌다. 가후쿠의 이론은 현실의 사람들과 교감을 하면서 더 발전한다. 윤수가 자신의 아내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가후쿠는 윤수의 아내인 배우 윤아로부터 배우들한테도 칭찬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가후쿠도, 배우들도, 미사키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시작점이다. 공원 리허설 장면과 같은 마법이 정확히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간과 반복된 연습과 적절한 자극이 합쳐졌을 때 그런 순간이 온다. 심지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언어로 말하는 배우들 사이에도 진심 어린 교감이 이뤄진다. 영화에서 가후쿠는 연극 <바냐 아저씨>의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내면과 너무 가까워서 대면하기 두려워한다. 그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미사키와 함께 홋카이도까지 갔다 오는 것이다. 미사키가 갖고 있는 죄책감의 근원을 함께 발견함으로써 자신도 내면의 어두움과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리면 타인을 통해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는 과정인 것이다. 미사키를 통해 가후쿠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바냐 아저씨>와 정면 대결을 한다. 가후쿠의 여정은 연기와 현실이 하나가 되는 여정이기도 하다. 삶도 연기처럼 숙성의 시간을 지나 마음의 문을 여는 계기가 생기면 예상치 못한 어떤 순간에 기적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3. 비밀 <드라이브 마이 카>는 내내 외면하다 마침내 자신을 정면으로 들여보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것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워하던 배역에 도전하는 배우의 얘기이기도 하고 아내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한 남자가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얘기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누가 가르쳐준다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엔 연습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마구치의 연기론은 어느 정도 삶에 적용해도 좋은 원칙이다. 대사를 연습하는 사람처럼 남의 대사를 듣고 정확한 타이밍에 자기 대사를 내뱉고, 처음엔 그냥 하던 것을 나중엔 감정을 넣어 하고 마침내 사람들 사이에 교감이 이뤄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생겨난다. 여기엔 말할 준비 못지 않게 들을 준비가 됐는가가 중요하다. 상대가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는 것. 하마구치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중심에 ‘관심’이라는 주제가 있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알 수 없던 것들을 작은 관심을 가지면서 통한다고 느끼게 되는 것처럼 <드라이브 마이 카>를 통해 관심의 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가후쿠와 미사키가 서로의 마음을 여는 과정은 관심에 관한 감독의 생각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하마구치는 이처럼 삶의 비밀스런 양상을 드러내는 영화를 만든다. <우연과 상상>에서 우연이 어떻게 우리 삶의 모습을 바꿔 놓는지 보여준 데 이어 <드라이브 마이 카>에선 묻어놓은 과거, 억눌린 욕망, 피하고픈 죄책감 같은 것들이 삶에 새겨놓은 흔적들을 보여준다. 영화 속 대화를 통해 짐작하게 되는 비밀의 조각들, 수면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진실의 파편들이 어느 순간 거대한 벽화가 되어 두 눈을 사로잡는다. 하마구치가 그려내는 ‘마음의 풍경’이다.
스페인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을 꼽으라고 질문한다면 가장 먼저 대답할 이름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일 것이다. 첫 영화 개봉 이후 올해로 데뷔 41년을 맞은 그는 평균적으로 2년에 한 번씩 신작을 내놓으며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확장하고 있다. 감독의 영화적 유니버스는 더욱 거대하고 견고해졌으며 이제는 많은 일반 관객을 그의 세계로 견인하고 있다. 알모도바르의 악동 기질이 드러나는 초창기 키치 영화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약과 동성애 등 자극적인 소재와 묘사 또한 이에 한몫했다. 그러나 근래 작품들은 내러티브나 표현방식이 순화되고 세련되어졌다. 감독의 연륜과 함께 그의 영화도 성숙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일관된 관심이 여성에 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감독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상정한 영화에서 남성을 부재하거나 있어도 무능한 안타고니스트로 묘사한다. < 내가 뭘 잘못했길래 >, < 하이힐 >, < 귀향 >의 남편들은 폭력적이고 외도를 일삼아 아내와 딸에게 죽임을 당한다. <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에서 유일한 여주인공의 희망인 아들은 교통사고로 죽고, 남편과 친구는 성전환을 해서 가슴을 달고 나타난다. 심지어 수녀 로사의 아버지는 치매 환자다. 반면 여성은 외연의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내면이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캐릭터로 묘사된다. 여성들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남성으로부터 물리적, 정신적으로 독립해낸다. 오늘날 독립적 여성 캐릭터는 이미 정체성을 완고히 하고 있지만 80년대 알모도바르 영화의 여주인공들의 설정은 파격적이었다. <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에서 자신을 임신시키고 떠난 남자의 목숨을 구한 뒤 당당히 이별을 고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에서는 짜릿함 마저 느껴진다. 알모도바르는 여성이 자식과 어머니에게 갖는 애정을 최상위의 감정으로 생각함이 틀림없다. < 하이힐 >, < 귀향 >, < 줄리에타 >는 십여년 동안 떨어져 지낸 모녀의 관계를 기반하고 있다.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엄마에게 바라는 사랑과 그것의 결핍으로 인한 그리움, 비뚤어진 질투까지, 모녀가 느낄 수 있는 회환을 다각도로 그려낸다. “마약 중독자가 한번 약에 다시 손을 대면 몇 년을 끊고 살았더라도 다시 빠져들고 말지. 오랫동안 네 생각을 참으며 지냈지만 널 찾을 희망에 다시 빠져버렸어. 그 바보 같은 희망이 힘들게 쌓은 새 인생을 산산이 조각내버렸지. 내겐 남은 게 없어. 너만 존재할 뿐. 네가 없다는 공허함이 내 삶을 파괴하고 있어.” <줄리에타> 줄리에타의 일기 중. “난 평생 엄마를 따라하며 살았어요. 엄마가 떠난 이후로 모든 면에서 엄마랑 경쟁하려 했다고요. 하지만 단 한 번 내가 이겼었죠. 마누엘! 난 그와 결혼했죠. 엄마가 할 줄 알았는데! (…) 어렸을 때 난 귀찮게 하는 것 밖에 못했어요. 하지만 그때조차도 늘 엄마를 돕고 싶었다고요. 엄마를 너무 좋아했으니까.” <하이힐> 레베카 대사 중. 겉으로는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가슴 한쪽에 켜켜이 눌려있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남편에 대한 결핍은 영화의 주인공뿐 아니라 모든 여성들의 근원적 아픔일 것이다. 알모도바르 영화 속 여성들은 이 아픔을 다시금 여성간의 연대를 통해 극복한다. 동질감, 모성애로 응축된 그들의 의리는 남성들이 외치는 의리보다 더욱 소리 없이 끈끈하고 질기다. 여성들이 소파에서 모여 수다를 하는 장면들은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알모도바르는 미장센에 무척 공을 들이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80년대의 작품을 근래에 다시 보더라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주인공들의 의상과 세트, 그리고 갤러리에 와있는 듯한 회화의 향연은 내러티브에 종속되어 있는 영화를 거부라도 하는 듯 시각적으로 환기를 준다. 게다가 빨강, 파랑, 초록 등, 원색에 대한 그의 태도는 애정을 넘어 집착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쉬어가는 퀴즈, 알모도바르 영화의 여주인공이 타는 자동차의 색깔은? 눈치챘겠지만 정답은 빨강이다. <하이힐>의 저명한 아나운서 레베카(빅토리아 아브릴 扮)가 타는 차, <귀향> 라이문다(페넬로페 크루즈 扮)의 어머니가 트렁크에 숨어있던 차, < 브로큰 임브레이스 >에서 레나(페넬로페 크루즈 扮)가 죽음을 맞이하는 차, <줄리에타>의 줄리에타(엠마 수아레스 扮)가 떠난 딸을 찾으러 갈 때 타는 차 등. 인물의 상황에 따라 기종은 달라지지만 여주인공의 승용차가 빨간색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감독은 종종 버드 아이즈 뷰로 도로를 지나는 여주인공의 자동차의 모습을 담는다. 특히 초록이 우거진 숲길을 종과 횡으로 지나는 빨간 자동차 장면은 보색의 대비로 더욱 잔상이 각인된다. 빨간 자동차는 알모도바르 영화의 시대와 장르를 그야말로 종과 횡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관념이 아닐까? 빨간 자동차와 함께 알모도바르의 영화와 영화를 연결하는 유니버스로 시야를 확장해보자. 알모도바르는 자신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은 반복적으로 다시 출연시키며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감독들은 새로운 배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관객으로 하여금 특정한 배역을 더욱 진짜처럼 믿게 하고 싶어서 혹은 뉴 페이스를 통해 새로운 분위기로의 전환을 꾀하기 위해서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발굴한다. 그러나 알모도바르는 일루전의 고조나 분위기의 전환보다는 자신만의 색을 더욱 강조하는 편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그의 영화에서는 주연부터 단역에 이르기까지 전작에서 봐온 익숙한 배우가 늘 다시 등장한다. 안토니오 반데라스, 세실리아 로스, 페넬로페 크루즈, 카르멘 마우라, 마리사 파레데스는 대표적인 감독의 페르소나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 라이브 플레쉬 >에서 버스에서 아기를 낳는 창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임신한 연약하고 순수한 수녀, <귀향>에서 억척스럽고 강한 엄마,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매력적인 여배우를 연기했다. 변화무쌍한 역할이 무색할 정도로 수려한 연기를 보여준 그녀는 모두가 손꼽는 대표적인 알모도바르의 페르소나이다. 초기작 < 나쁜 버릇 >에서부터 꾸준히 등장했던 고(故) 커스 람프리브는 엄마, 할머니, 이웃 등 단역으로 출연하며 웃음을 주는 씬스틸러이기도 했다. 마블의 팬들은 마블 유니버스가 총 망라되어있는 < 어벤져스: 엔드게임 >에서 히어로들이 한 명씩 등장할 때마다 반가움의 환호성을 질러봤을 것이다. 알모도바르의 팬들 역시 그의 영화에서 새로운 캐릭터로 분하는 친근한 배우를 보며 가슴이 쿵쾅거리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배우를 통해 감독의 전 작품들을 상기하다보면 어느새 알모도바르 유니버스에서 유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페르소나 컨벤션 외에도, 감독은 독특한 방식들을 통해 자신의 전작들을 연결한다.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레나(페넬로페 크루즈 扮)와 마테오 블랑코(루이스 호마르 扮)가 찍은 코미디 <여인과 가방>은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영화의 말미에 <여인과 가방>의 편집본을 다시 보는 장면에서 비로소 관객들은 알모도바르의 그로부터 20년 전의 개봉작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들>의 장면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며 무릎을 탁 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종국에 친구가 된 마뉴엘라(세실리아 로스 扮)와 위마 로조(마리사 파레데스 扮)는 3년 뒤 < 그녀에게 >에서 야외공연 관람석에 앉아있는 모습을 통해 깜짝 등장하기도 한다. 마치 관객에게 그녀들은 여전히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며 근황을 전해주는 것 같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아들 방에 걸려있던 피나 바우쉬의 포스터는 <그녀에게>의 베니그노(하비에 카마라 扮)의 손에 들려 다시 한번 영화는 연결된다. <욕망의 법칙>에서는 영화 감독인 파블로(유세비오 폰셀라 扮)를 통해 장 콕도의 희곡 <휴먼 보이스>에 대한 애정을 단편적으로 대리하게 하지만 13년 뒤 < 휴먼 보이스 >를 내놓으며 애정에 방점을 찍는다. 이처럼 감독은 자신의 영화, 인물, 오브제, 그리고 소재 등을 자신의 작품에 재투영하며 전작과 연결고리를 채운다. 악동과 성자, 고집불통과 재기발랄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 같은 알모도바르의 유니버스는 다음편에서도 계속된다. 3부작으로 구성된 "알모도바르 유니버스"의 1편 「알모도바르 영화의 연결된 세계」는 여기까지다. 앞으로 2편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연극」, 3편 「알모도바르의 영화와 현실의 순환」가 연재된다. 나가며... “돌아온 과거와의 우연한 만남이 두려웠지. 내 삶이 흔들릴까봐. 추억으로 가득한 그 밤이 두려웠지. 내 꿈이 뒤 엉킬까봐. 하지만 도망치던 나그네는 곧 발길을 멈추리라. 모든 걸 앗아간 망각이 내 오랜 망상들을 죽였다 해도 내 마음속엔 아직도 실낱 같은 희망이 남아있지. 귀향. 주름진 이마 세월의 눈이 쌓인 백발이 되어 귀향을 하네. 인생은 한 순간. 뜨거운 눈빛은 널 찾아 그림자 속을 헤메고 생각하면 눈물만 흐르는 달콤한 추억에 의지해 내 영혼은 힘을 얻네 ” <귀향> 라이문다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부르는 노래 《귀향》의 가사 (관련글) 1. 알모도바르 영화의 연결된 세계 - 2021.10.20. 2.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연극 - 2021.10.21. 3. 알모도바르 영화와 현실의 순환 - 2021.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