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 감독
- 이원세
- 제작년도
- 1975
- 출연
- 차서영, 현주, 김경희, 노사강, 최은하, 안진수, 나갑성, 박용일, 임생출, 이예성, 최민규, 최석, 이석구, 한명환, 정규영, 박종설, 최성규, 김대현, 김용학, 남방운, 김이기, 박근형, 우연정, 이치우, 문오장, 이종만, 김남일, 김애경, 최성, 나시찬, 이강조, 박동룡, 권오상, 최무웅, 황건, 최재호, 장춘언, 임해림, 왕은희, 전호진
엄태웅 , 주원 주연, 황병국 감독의 < 특수본 >(2011)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특별수사본부’의 약자인데 시간을 더 거슬러 1970년대로 가면 설태호 , 이원세 감독이 바통 터치하며 만든 <특별수사본부> 시리즈가 있었다. ‘한국의 CSI 였다!’라고 말하면 너무 거짓말이고, 한국영화사의 대표적인 반공수사물 시리즈라고 보면 된다. 한국영화사에 에로, 액션 시리즈만 있었던 게 아니라 나름 진지한 범죄추리(물론 추리는 좀 약하다) 시리즈도 있었던 것. 1편인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1973)을 시작으로 2편 < 특별수사본부: 여대생 이난희 사건 >(1973), 3편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1973), ‘꽃할배’ 이순재 가 출연한 4편 <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1974), 끝으로 역시 꽃할배 박근형이 출연한 <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1975)에 이르기까지 모두 5편이 만들어졌다(1-2편은 설태호 감독, 3-5편은 이원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2, 4, 5편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VOD 관람이 가능하다). 특별수사본부 시리즈 이 시리즈는 민영방송 ‘라디오 동아방송’(1980년 신군부에 의해 KBS에 통합될 때까지 17년 7개월 동안 이어왔다)에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방송된 라디오 심야프로그램 <특별수사본부> 시리즈가 그 모태다. 이 대공수사실록드라마에서 오제도 검사는 여간첩 김소산 사건, 해군 프락치 허만도 사건, 기생간첩 구자운, 점쟁이간첩 윤길도, 거물간첩 성시백 등을 도맡은 고뇌하는 반공검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수임은 광복 후 미군정기에 남조선노동당을 위해 일한 간첩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총살형에 처해졌는데, 몇 년 전에는 조명화 감독에 의해 한미합작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1948년, 주한 정보대장인 페이드 대령의 첩, 김수임( 윤소라 )이 특별수사본부에 체포되면서 시작된다. 매 시퀀스마다 회한을 머금은 표정으로 “그 이듬해 봄이었어요...”라는 식의 김수임 멘트로 시작하는 그 구조가, 마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조안 크로포드의 회상으로 불쑥 시작하는 마이클 커티즈의 < 밀드레드 피어스 >(1945)를 연상시킨다. 아무튼 김수임은 남로당에 가입해 자신이 얻은 숱한 정보를 북한에 제공해오다가 오제도 검사( 이순재 )에게 체포된 것. ‘묻고 따지는’ 이순재에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김수임의 과거는 도저히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다. 이화보통여자학교에 입학한 김수임은 이복 오빠인 최만용(북괴공작원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 문오장 ') 때문에 17살의 어린 나이로 농부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고, 이듬해 시집을 뛰쳐나와 다시 이화여전에 입학한 그녀는 이강국( 신일룡 )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박헌영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이강국은 “좀 더 위대한 미래를 위해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월북하고 만다. 그런 사랑의 실패를 겪으며 페어드 대령과 결혼한 김수임은 아들 ‘밥’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이강국을 미끼로 다시 수임에게 접근한 오빠 최만용의 획책이었던 것. 그렇게 수임은 남로당원으로서 첩보 활동은 물론 페어드에게 이런저런 인사 청탁까지 조종하는 위치에 이른다. 여기서 무엇보다 놀라게 되는 것은 후시녹음으로 완성된 외국인 배우들의 유창한 한국어다. 거의 아나운서 수준으로 얘기하는 페어드 대령은 물론 “엄마, 어디야? 빨리 와,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혼혈 아이 밥의 언어구사능력도 상당하다. ‘아들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는 수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오검사가 집으로 전화했다가, 밥이 대뜸 “마미?”라고 영어로 답하자 황급하게 전화를 넘기는 이순재 의 연기 또한 놀랍다. 윤소라 윤소라 는 당시 서구적인 마스크로 눈길을 끌었다. 아마도 그런 외모가 당시로써는 낯설어서인지 김지미 , 남정임 , 문희 , 윤정희 의 자리까지 올라서지는 못했지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 속 팔도강산 >(1968)으로 데뷔한 이래 제목부터 무언가 그녀의 선명한 캐릭터를 드러내는 < 버림받은 여자 >(1970),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 < 야녀 >(1974), < 70인의 여죄수 >(1974) 등에 출연하며 남다른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 김수임의 일생 >에서도 인사 청탁을 위해 속옷이 비치는 가운만 걸친 채 페어드 대령의 털 난 가슴을 어루만지며 유혹하는 장면이 생생하다. 물론 이강국을 그리워하는 사랑과 아들 밥을 향한 모성의 굴레 속에서 방황하는 그 깊은 슬픔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함께 이국적 외모의 글래머 배우로 주목받았던 김혜정의 다소 과잉된 연기와 비교하면 더욱 도드라진다. 물론 그 이국적 외모로 인해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의 미얀마 여자, < 여진족 >(1969)의 여진족이기도 했던 김혜정 또한 유현목 의 < 아내는 고백한다 >(1964), 이성구 의 < 지하실의 7인 >(1969)에서 대체할 수 없는 에로틱한 매력을 뿜어냈다. 흥미롭게도 <지하실의 7인>에서 윤소라는 말 수가 적은 수녀, 김혜정은 성적 매력을 마구 발산하는 북한 여군으로 출연해 만났다. 역시 외모 하면 빠질 수 없는 남자 신일용도 있다. 수임이 이강국과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누구나 한 번쯤 보면 반할 수밖에 없는 쾌남아였어요”라고 말할 정도인 신일용 과는, 윤소라의 은퇴작이기도 한 김수용 의 < 아라비아의 열풍 >(1976)에서도 연인으로 출연했다. 그런 두 사람이 마치 <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 >(2005)의 부부처럼 ‘그 사람이 매일 아침 어디로 출근하는지 모르고’ 살아온 그 세월이 허망하다. 김수임의 화장, 그리고 페어드 대령의 유창한 한국말 그래도 김수임과 이강국은 서로를 잊지 않고 살아왔다. 클라이맥스는 이강국을 시골에서 올라온 외삼촌이라 거짓말하고 페어드 대령에게 빼내 달라고 말하는 순간이다. 수임으로 인해 한국식 인사 청탁 문화가 몸에 밴 그는 부탁대로 강국을 집으로 데려오지만, 외삼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젊고 잘 생긴 그를 살짝 의심한다. 결국 페어드는 “부인, 난 이제 사무실로 나가 볼 테니 삼촌을 좀 대접해요”라고 출근하는 척 거짓말을 하고는 그들의 뜨거운 포옹을 몰래 훔쳐본다. 그렇게 수임은 사랑에 실패하고 감옥에 이르게 된다. 반공영화이기는 하지만 “사랑과 사상이 꼭 일치되어야 하나요. 전 좌익을 사랑한 게 아니에요, 그의 마음과 육체를 사랑했어요. 사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라는 항변은 가슴 절절하다. 그렇다. 당시 공공의 적은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전 죽일 년이에요”라는 마무리 멘트를 들은 오제도 검사는 “사랑의 에고이즘이군요”라는 명쾌한 결론을 내린다. 마치 제 자리에 앉아 모든 것을 척척 추리해내는 탐정 엘큘 포와로처럼 고뇌하는 모습으로 소파에 앉은 이순재 의 모습이 그 기나긴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 >에서 마지막으로 담배를 피우는 윤정희 의 모습이 압권이었다면, < 김수임의 일생 >에서는 페어드 대령의 면회 전 손거울을 보며 눈화장을 고치는 윤소라 의 연기가 심금을 울린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페어드 대령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귓전을 울린다. “딸링...” 그 딸링에 덧붙여 확실히 이것 또한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하루종일 “마미~~~”라는 말이 입에서 내내 맴돌 것이다. 김수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 검사에게 이렇게 부탁한다. “내 얼굴을 곱게 화장하겠어요. 추하게 있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줄 몰라서죠. 늙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화장을 하지 않고 남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여자에요.” 이순재 정말 마지막으로 이순재 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하고 싶다. <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1) 당시 인터뷰했던 그는 가장 존경하는 선배 배우로 최무룡 을 꼽았다. “후시녹음 시절에도 그처럼 자기 대사의 템포를 살려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 후시녹음이라 그런 주연급 배우들 중에 대사를 안 외워오고 그냥 입만 벌리거나 조감독이 옆에서 읽어주는 대사를 그대로 따라 읽는 경우가 허다했지. 뭐 나중에 성우가 다 하니까. 그런데 최무룡 선배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내실을 다지는 사람이었지. 메소드 연기의 대가였고 늘 끊임없이 새롭게 변신하는 배우였어. 물론 다른 좋은 선배 배우들이 많았지만 자기만의 확고한 원칙과 ‘폼’이 잡혀 있는 최고의 배우였지. 그래서 한번은 최민수 를 만나 진지하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 내가 민수 백일잔치도 가고 어렸을 때부터 쭉 봐왔거든. 이제 작품으로 만날 일은 없고, 전에 무슨 행사장에서 만난 적 있는데 머리에 두건 쓰고 수염 기르고 요란한 청바지 입고 왔기에 ‘야, 너 허리에 도끼만 차면 딱이겠다’고 한 적 있어. (일동 대폭소) 연기자로 치면 ‘성골’ 출신 배우고 또 한때 얼마나 잘했어? 멈추지 말고 좀 더 하면 정말 최고의 배우가 될 수 있을 텐데. 마스크도 얼마나 좋아. 참 아쉬워, 한번 만나서 얘기해야지.” 그렇게 그는 한국영화사 최고의 배우로 최무룡을 꼽았다. 그러면서 앞선 시리즈에서 오제도 검사를 연기한 최무룡에 이어 자신이 그 역할을 이어받은 <특별수사본부> 시리즈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그로서는 얼마나 감격적인 캐스팅이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윤소라 신일룡 이순재 문오장 감독: 이원세 각본: 오재호 개봉극장: 대한 관람인원: 11,249명
본인이 이원세 감독을 처음 만난 때는 1969년 초 가을로 생각된다. 태창흥업에서 ' 문정왕후 ' < 나봉한 감독> ' 마지막 편지 ' < 최훈 감독> '돌아오지 않는 다리' < 고영남 감독>등의 작품을 계속 쓰고 있을 때였다. 이원세 감독이 김수용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을 때인데 하루는 태창흥업의 제작상무인 최재호씨가 본인에게 좋은 친구 한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하며 소개해 준 이가 바로 이원세 감독이었다. 큰 키에 건장한 체구, 잘 생긴 얼굴하며, 귀를 덮은 더벅머리, 당시 우리가 좋아하는 사나이 모습이었다. 만난 것은 처음이지만, 김수용 감독이 연출해 크게 성공한 작품 ' 수전지대 '의 시나리오를 쓴 이가 이원세 라는 사실에 금방 그와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가 되었다. 작가와 감독 지망생이 만났으니 작품 하나쯤은 만들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고 의기투합, 경비는 최재호씨가 충당해 줘, 본인과 이원세 감독은 제주도로 급행, 작품 쓰기에 전력을 다 했다. <하니문 · 하우스>라던지 <성산 일출봉>, <외돌개>며 <사자바위>, 우리가 가 보지 않은 제주 구석은 없었다. 제주에 온지 두 달 만에 '꿀맛'이라는 제명의 작품을 완성했다. 신성일 , 문희 가 주연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을 무사히 끝내고 녹음을 마치자 문공부에 영화 검열을 신청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명 '꿀맛'이 문제가 되었다. 남의 집 아내를 사랑한 불륜이 어째서 '꿀맛'인가? 제명을 바꾸라는 통첩이 떨어졌다. 이원세 감독은 자기의 첫 작품의 제명도 사랑스러웠던지 여러 곳에 '꿀맛' 제명을 쓰게 해 달라고 했지만, 서슬이 퍼렇던 군사정권이었고, 가는 곳마다 정보부 파견관이 있어, 그들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절이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제명을 ' 잃어버린 계절 '로 바꾸었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주인공 소라는 결혼식을 올리고 시집의 큰 목장에 들어오지만, 남편은 오랜 항해를 위해 집을 비우게 된다. 소라는 시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나, 치미는 뜨거운 열기로 긴 밤 잠 못 이루곤 한다. 이 목장 하인의 아들인 정신 이상자가 몰래 소라의 침실을 가끔 훔쳐 보곤 한다. 천우신조였을까 ? 넓은 목장 안에 꿀 채집 차가 들어온다. 소라 앞에 양봉쟁이 청년이 나타나 반찬도 얻어 가고, 물도 얻어 먹으며, 그만 둘은 사랑에 빠진다. 이런 두 사람의 사랑의 유희를 정신 이상자가 가끔 몰래 훔쳐 봄은 물론이다. 시아버지는 소라의 불륜을 알고 오래도록 고민 하다가 소라를 청년에게 주려고 결심, 청년을 불러 소라를 부탁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이제는 자유라며 굳게 쓸어 안고 또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이 광경에 질투를 느낀 정신 이상자는 양봉쟁이 청년을 살해하고 만다. 이에 소라도 목장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1971년 8월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관객 9만여 명이 든 작품이었다. ' 기로 , 72' ' 흑지 , 72' ' 나와 나 , 72' 이 작품은 최무룡 , 하명중 , 우연정 이 주연한 작품인데 스토리는 <대학 중퇴생인 유진이 외삼촌의 부름을 받고 일본에 갔다가 외삼촌이 준 자가용 한대를 가지고 귀국한다. 부산에서부터 가지고 오는 차로 인해 재일 교포로 인정받게 되고, 가짜 교포 행세를 하느라 사기도 치고, 점점 범죄의 포로가 돼 슬프게 살다가 가짜 이름인 <히라오까 유지로>로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원세 감독은 이 작품으로 <청룡 영화제 신인 감독상>을 받는다. ' 방년 18세 , 73' ' 석양에 떠나라 , 73' ' 특별 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 74'는 신일룡 , 윤소라 , 이대엽 이 주연했으며,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배태옥은 해방이 되자 조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철저한 공산주의 신봉자인 남편 황룡에게 휘말려 남노당 당원으로 조국에 침입해, 경찰에 잡혀 형을 받아 수감생활을 할 때 6. 25사변이 터져 서울의 감옥은 깨어지고, 배태옥은 석방 돼 <서울여성동맹위원장>이 되고, 공산당을 위해서 온갖 악행을 다 부린다. 9. 28 수복이 되자, 월북하지 못한 배태옥은 경찰에 잡혀 사형선고를 받으나, 과거 독립운동을 했다는 공 때문에 20년으로 감형, 20년의 옥살이하고 난 그 인생은 이미 끝나 있더라는> 이야기다. 이 작품이 <아세아 영화제>에 출품돼 윤소라 씨가 <주연 여우상>을 수상한 바 있다. ' 특별 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 74' ' 아빠하고 나하고 , 74' ' 만나야할 사람 , 74' ' 빵간에 산다 , 74' ' 인간 단지 , 75' ' 특별 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 75' ' 꽃과 뱀 , 75' ' 목마와 숙녀 , 76' ' 광화문통 아이들 , 76' ' 엄마 없는 하늘아래 , 77' ' 악어의 공포 , 77' ' 속 · 엄마 없는 하늘아래 , 77' ' 철새들의 축제 , 78' ' 병아리들의 잔칫날 , 78' ' 전우가 남긴 한마디 , 79' 는 진봉진 , 장혁 , 전영선 이 주연한 <40번 뺏기고, 38번 찾은 158고지의 일화를 그린 작품이다. 적의 천년 요새를 파괴하기 위해서 특공대가 조직되고, 여럿의 특공대가 전사 하면서 적의 천년 요새에 침투, 시한폭탄을 장치하고 살아 남은 대원들만 귀대하는 순간, 적에게 발견돼 적의 추격을 받는다. 이에 늙은 장상사가 나서며 적들을 자기가 막을 테니 모두 떠나라고 외친다. 대원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장상사를 버리고 자리를 떠난다>는 이야기다. 이원세 감독은 이 작품으로 80년 <백상대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 땅콩껍질 속의 여자 , 79' ' 돛대도 아니 달고 , 79' ' 태양을 훔친 여자 , 79' '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 80' 이 작품은 경희대학교 교수로 있는 소설가 조세희 의 작품을 영화한 것이다. 주연은 안성기 , 신우철 , 장미희 가 했으며, <행복동에 사는 난쟁이 김불이의 가족이 일으키는 부동산 투기의 전말을 그린 영화다>. 이 작품의 우수성을 이제 다시 말해서 무엇하랴! 그러나 할 이야기는 하고 가야할 게 아닌가? 유신 독재시절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이미 두 차례나 지나 간 터에 <행복동>처럼 못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떠들 때 이 영화가 나왔으니 문제였다. 그러나 대종상 영화제가 며칠 남지 않은 날 <문화공보부>의 영화 담당자가 이원세 감독에게 전화를 했단다. 이번 영화제에 귀하가 연출한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니 그 날 모두 양복을 입고 나오도록 해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단다. 그런데 이원세 감독의 작품이 사회성을 망각했다는 이유로 영화제 시작 두 시간 전에 딴 작품들로 바뀌었다니, 그때의 심정이 오죽 했겠는가? 그때 정말 영화를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나중에 미국에 살면서 이원세 감독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 하늘이 부를 때까지 , 80' ' 매일 죽는 남자 , 80' ' 그대 앞에 다시 서리라 , 80' ' 하와의 행방 , 82'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 82' ' 3일 낮 3일 밤 , 83' ' 이방인 , 84' ' 그 여름의 마지막 날 , 84' 이 영화는 하재영 , 나영희 , 박근형 이 주연했으며, 스토리는 <대학 지하 서클에서 공산주의 이론으로 자라난 영철은 학교 소요 사태의 주범이 돼 경찰에 쫒기자, 일본으로 밀항, 조총련의 신기화를 만나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간다. 그러나 영철은 북한의 엉터리 선전을 보자 북한 탈출을 시도하나, 성공하지 못하고 북의 손에 희생된다는 이야기다.> 이원세 감독은 <대종상 영화제>에서 이 작품으로<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다. ' 여왕벌 , 85'는 이혜영 , 조용원 , 이주성 주연이었고, 스토리는 <영어회화 선생인 미희는 외국인과의 사랑이 실패로 끝나자 방황하며, 이태원의 <여왕벌>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 첫사랑의 남자 경수가 악의 수렁에 빠져 있는 미희를 구출하려고 하지만 미희는 그 말을 듣지 않는다. 한편 동생인 정희가 미국인을 데리고 나타나 언니에게 과시를 하고 있지 않는가? 그 스티브란 사나이는 다름 아닌 미희에게 사랑의 상처를 준 남자며, 그가 하는 일은 여자를 울리는 악한 사나이의 표본이었다. 미희는 동생을 구출하려고 스티브를 유혹해 그를 살해한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또 반미 사상이 깊이 깔려 있다고, 수시로 정보부에서 오라는 호출이 수십 번이었단다. 이때야말로 영화를 그만 두고 평범하게 살겠다고 결심했노라고 이원세 감독은 후일 본인에게 말한 바 있다. 처남의 <미아리 양말 공장>도 망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 독촉도 받고, 정보부에서의 태도가 이원세 감독이 조국을 떠난 커다란 원인이었으리라. 본인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에 이민을 가 뉴욕 Ch. 25 한국 텔레비전 방송국의 보도담당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사무실을 꾸미기 위해 <크리스마스 · 트리>를 사려고 <롱아일랜드> 큰 시장엘 나갔다가 먼 발치서 아는 얼굴을 언뜻 보게 되었다. 분명 이원세 감독의 얼굴이었으나 당시 <크리스마스 · 트리>를 팔고 있는 모습만으로는 이원세 감독으로 짐작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눈을 여러 번 의심했지만, 그는 틀림없는 이원세 감독이었다. 들리는 소문에는 <미아리>에서 <양말공장>을 하는 처남의 사업이 잘 안돼 이원세 감독이 영화계 여러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처남의 공장을 도와주는 처지라고 하던데 그 공장이 쓰러지고, 이원세 감독은 빌린 돈에 떠밀려 미국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으나, 이원세 감독 이야기를 들으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문화공보부>로부터 11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됐다가 수상 두 시간 전에 다른 작품으로 바꿔진 일이며, 이태원 <여왕벌>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그린 것이 <반미사상> 때문이 아니었냐고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해 대 고국을 떠나 미국에 오게 됐노라고 이야기했고, 그 이유 중에는 가까운 영화계 이웃들에게 돈을 빌려 처남을 도와주고 공장이 망해, 돈을 돌려주지 못한 것도 큰 이유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뉴욕에 함께 살면서 가끔 이원세 감독을 만나 그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부인 배순미 여사와 외아들 승준이도 잘 크고, 공부도 잘하고 있다고 했다. 그후 이원세 감독이 큰 상가에 점포를 연 일이며, 그가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살던 어느 날 본인이 이원세 감독, 전우열 감독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영화계를 위해 뭔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북 영화제'나 한번 해 보자고 제의했고, 두 사람도 찬성해 뉴욕 제1회 '남북 영화제'를 주동진 님의 주선으로 열게 되었으며, 북에서 엄길선, 홍영희 , 오미란 등 <인민배우> 8명이 참석했고, 우리 남에서도 신성일, 태현실 등 10여명이 참석해 아주 훌륭한 영화제가 되었다. 이원세 감독, 얼마 전 미국에 갔을 때 형이 뉴욕에 안 계신 이유를, 여러 사람이 본인에게 들려 주었지만 이형! 나는 압니다. 몸이 좀 불편해 사람을 만나는데 조금은 부담스런 모습이지만 열심히 그 치료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형! 어서 빨리 그리다 만, 초상화를 완성해야 하지 않습니까?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이원세 감독! 이두형 (시나리오 작가) / 2003년 <프로필> 1940년 11월 16일 평양 출생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국학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1971년 < 잃어버린 계절 >로 데뷔 <수상 경력> 1973 청룡상 신인상( 나와 나 ) 1974 아세아영화제 주연여우상(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 1981 백상대상 감독상( 전우가 남긴 한마디 ) 1984 대종상 최우수 작품상( 그 여름의 마지막 날 ) <작품 연보> 1972 기로 / 나와나 1973 방년18세 / 석양에 떠나라 / 특별수사본부 배태옥 사건 1974 특별수사본부 김수임의 일생 / 아빠하고 나하고 / 만나야 할 사람 / 빵간에 산다 1975 인간단지 / 특별수사본부 외팔이 김종원 / 꽃과 뱀 1976 목마와 숙녀 / 광화문통 아이 1977 엄마없는 하늘아래 / 악어의 공포 / 엄마없는 하늘아래(속) / 1978 철새들의 축제 / 엄마없는 하늘아래(병아리들의 잔칫날) 1979 전우가 남긴 한마디 / 땅콩껍질 속의 연가 / 돛대도 아니달고 / 태양을 훔친 여자 1980 매일 죽는 남자 / 하늘이 부를 때까지 / 그대앞에 다시 서리라 1981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82 하와의 행방 /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1983 3일낮 3일밤 1984 이방인 / 그여름의 마지막 날 1985 여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