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라 더 비기닝
- 감독
- M.L. 반데바노프 데바쿤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마리오 마우러, 니시노 쇼, 봉코이 콩말라이, 야야잉
< 어미 >는 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하고, 드라마 <청춘의 덫>과 <사랑이 뭐길래> <내 남자의 여자>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한 1985년에는 원래 TV 드라마 연출자였던 박철수 감독보다 김수현 작가의 존재감이 더 컸을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와 비디오테이프에 새겨진 타이틀이 ‘김수현의 어미’였으니 말이다. 제목만 보면 그녀가 이전에 썼고, 그 이후로도 썼던 가족드라마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런 오해를 지우고 싶었는지 <어미>의 포스터는 김수현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겨놓았다. “신들린 여류 金秀賢 그녀는 지금 살인을 모의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TV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이야기를 만든 김수현 작가의 필모그래피에서 ‘살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이두용 감독의 1982년 작 < 욕망의 늪 >에서 남자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여성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에 따르면, 1990년에 방영된 드라마 <배반의 장미>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남자( 남성훈 )를 자동차로 들이받아 식물인간으로 만든 여자( 김자옥 )이 있었다. 하지만 < 어미 >는 그보다 더 독한 연쇄살인극이다. 영화의 영문제목이 70년대 할리우드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연상시키는 ‘우먼 레퀴엠’(Woman Requiem)이라는 것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두 모녀의 일상적인 아침이다. 라디오 진행자이자 저명한 작가인 홍 여사( 윤여정 )는 딸에게 먹일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딸과 엄마가 아침에 벌일법한 실랑이가 이어지고, 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함께 집을 나선다. 그날은 홍 여사의 ‘스케쥴이 애매한 날’이었다. 딸 나미( 전혜성 )는 그런 날이면 엄마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딸의 예상대로 홍 여사는 역시 홀아비인 최 교수( 신성일 )과 데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결혼에 관한 대화 도중 홍 여사는 최 교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 다 약다고 해야 할까, 녹슬었다고 해야 할까.” 얼굴에 서운한 기색을 비친 홍 여사를 달래려는 듯 최 교수는 그녀를 다시 침대로 이끈다. 홍 여사는 이제 학교에서 나올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5분만 기다리게 해”라는 최 교수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엄마가 잠시 늦는 사이.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나미는 인신매매단에 납치된다. 1980년대는 각종 인신매매 사건과 그로 인한 괴담이 들끓었던 시기였다. 갑자기 봉고차가 나타나 길거리에 있는 여성들을 납치해서 윤락가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들이었는데, 당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납치해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린다는 소문이 넘쳐났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도 많이 제작됐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삽입한 장황한 자막에는 인신매매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사회정의 등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에로영화의 소재로 인신매매를 끌어온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인신매매범을 처단하는 주인공보다는 상처받은 여성의 슬픔이나, 여자를 찾아다닌 연인 혹은 남편과의 재회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김효천 감독이 연출한 < 인간시장 2- 불타는 욕망 >처럼 일본까지 가서 악을 처단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 어미 >와 같은 힘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복수의 주인공이 엄마인 경우는 더더욱. 새끼를 잃은 어미는 새끼를 찾아 나선다. 그동안 나미는 사창가에 팔려가 차라리 도망치는 걸 포기하는 게 나아 보이는 생활을 이어간다. 경찰조차도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한 남자가 홍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인신매매단과 연관된 인물이지만, 홍 여사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나미의 행방을 알려주려는 남자의 전화다. 홍 여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창가를 덮치지만, 때마침 도주를 시도한 나미는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삭발을 당한다. 하지만 홍 여사는 포기하는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사창가 포주를 돈으로 매수해 나미의 행방을 알아내고, 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딸을 차에 태우고 가던 엄마는 말한다. "아무 힘도 안 빌리고 엄마가 너를 구해냈어. 엄마가 잘했지? 내가 잘했지?" 엄마는 아마도 자신이 직접 딸을 구했기 때문에, 딸이 겪는 상처를 세상에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딸은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집 밖에 매달린 딸의 시체를 본 엄마는 이성을 던져버린다. 박철수 감독은 엄마의 복수를 과감한 속도로 밀어붙인다. 추적의 과정을 묘사하거나, 엄마의 슬픔을 강조하거나, 살인 대상 앞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식의 설명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엄마에게는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슬픔조차 사라진 엄마라는 캐릭터는 < 어미 >의 영화적인 개성 그 자체다. 만신창이가 된 딸을 구할 때도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자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엄마는 바로 살인을 감행한다. 이어지는 복수에서 쇠사슬과 염산, 면도칼 등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때도 홍 여사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상대가 위협을 느낄 새도 없이, 쇠사슬을 목에 걸어 죽을힘을 다해 당기고, 서늘한 표정으로 염산을 뿌린다. 윤락녀로 위장해 마지막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에서도 엄마는 남자에게 단 세 마디의 말을 한다. “남자는 참 쉽군요.” “딸이 있죠?” “많이 예뻐하죠?” 남자는 여자의 손길에 잔뜩 취한 얼굴로 딸을 매우 예뻐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때 엄마는 면도칼을 물속으로 집어넣고, 욕조에는 시뻘건 물이 차오르고 남자는 비명을 지른다. 관객의 예상하는 타이밍보다 한 발 더 빠른 엄마의 복수는 매우 차갑고 강렬하다. < 어미 >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엄마의 표정을 이야기한다. 복수를 끝낸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얼굴 위로 ‘어미는 새끼를 지켜야 한다’는 최후 진술 문장이 나타나는 장면. 엄마의 복수를 따라온 영화가 마지막에 찍어놓은 뚜렷한 방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앞의 장면도 못지않게 강렬했다. 마지막 악당을 처단한 엄마가 목욕탕 밖으로 나온 순간, 영화는 몸에 수건을 두른 그녀의 몸을 보여준다. 바스트 샷 보다 더 멀고 넓은 앵글인데도 눈길이 가는 건, 배우 윤여정 의 거칠게 마른 팔이다. 힘줄이 드러나 있을 정도로 앙상한 팔이지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팔이었다. 그녀의 팔이 전하는 울림은 상당하다. 홍 여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팔은 복수를 모두 끝내고도 아직 분노를 이기지 못해 긴장을 당기고 있는 팔이다. 마지막 엄마의 표정이 <어미>라는 이야기의 마침표라면, 윤여정의 팔에 그어진 힘줄은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동물적인 기질이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50~60년대의 인기 영화배우이자 김진규 의 전부인이었던 이민자 씨가 뇌일혈로 19일 하오 6시 숨졌다. 향년 58세. 이씨는 지난1일 고혈압으로 쓰러져 일본의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왔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타계했다. 장례식은 21일 상오 많은 동료와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도쿄의 고단다의 한 절에서 있었다. (서울신문 1986년 1월22일) < 생명 > < 유혹의 강 > < 모녀기타 >등 90여편의 영화에 출연, 50~6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했던 배우 이민자 씨가 지난 19일 저녁8시 일본 동경대부속병원에서 뇌일혈로 별세했다. 향년57세. 이씨는 46년 배우 김진규 씨와 결혼했다가 59년 이혼하고 68년 일본에서 재혼, 사업을 해왔다. 이씨의 유해는 25일경 서울로 운구될 예정이다. (동아일보 1986년 1월22일) 이민자 는 이렇게 쓸쓸하게 갔다. 새해가 열리는 정월 초하룻날 쓰러졌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스무날을 못 채우고 그냥 갔다. 그것도 현해탄 건너 이국땅에서. 장례도 그곳에서 치러졌다. 그렇게 많은 갈채를 받던 고국에 핏기없는 주검으로 돌아왔다. 60을 채우지 못한 이민자 의 일생은 그녀의 죽음만큼이나 쓸쓸하고 복잡다단했다. 그래서 일까. 이민자는 그녀의 일생을 그대로 영화에 반영 하다시피 했다. ‘미망인의 세계. 어쩌면 이것으로 이민자의 영화경력을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어딘지 청초하고 수심에 잠긴 듯 한 모습의 이민자는 영화계에서 ‘과부형 배우’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그의 출연작을 살펴 보더라도 대부분 과부의 삶을 소재로 한 것이고 그런 역에서 성공을 거두어 왔음을 알수 있다… (여성영화인사전- 여선정 ) 이민자 의 다섯째 작품이 < 미망인 >(1955)이다. 이 영화는 이민자의 ‘미망인의 세계를 그렸다는 점 말고도 한국 영화의 역사에서 크게 기록되고 있다. 한국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 이 연출한 영화가 바로 이 <미망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감독데뷔작품이다. 어린 딸을 데리고 사는 전쟁미망인이 도덕윤리와 욕망의 늪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좋은 점수를 받았다. 53년 이민자는 네번째 작품 < 최후의 유혹 >에 출연했다. 유현목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정창화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서 이민자는 바 마담역을 맡았다. 김 화의 <이야기 한국영화사>는 …이민자는 이 때부터 술집 마담역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쓰고 있다. 52년에 만들어진 < 악야 >는 거장 신상옥 감독의 데뷔작품인데 여기서 이민자는 작가( 황 남 )와 하룻밤을 지내는 양공주역을 맡았다. 56년 < 마의태자 > ( 전창근 감독) , < 사도세자 > ( 안종화 감독)등 2편의 사극에 출연하고 57년에도 < 마인 > ( 한영모 감독), < 오해마세요 > ( 권영순 감독)등 2편의 영화에 출연한다. 1958년. 이 해부터 1964년까지를 한국영화 중흥기로 구분 ( 호현찬 의 <한국영화100년>)하는 만큼 이민자의 출연영화는 5편으로 늘어난다. 한국최초의 시네마스코프 < 생명 > ( 이강천 감독)에 출연하여 연기력을 높이 평가받은 이민자는 뒤이어 < 어머니의 길 > ( 안현철 감독), < 자유결혼 > ( 이병일 감독), < 유혹의 강 > ( 유두연 감독), < 소낙비 > ( 이경식 감독)등 모두 5편에 출연했다. 111편의 한국영화가 만들어진 59년 이민자 는 모두 1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아름다운 여인 > ( 유현목 감독), < 청춘극장 > ( 홍성기 감독), < 행복의 조건 > ( 이봉래 감독)등이었다. 60년에는 < 울지 않으련다 > ( 신경균 감독), < 사랑해선 안될 사랑 > ( 이봉래 감독), < 과부 > ( 조긍화 감독)등 모두 9편,61년 2편, 62년에는 < 이십구세의 어머니 > ( 이강원 감독 ), < 여자의 일생 > ( 신경균 감독), < 여인천하 > ( 윤봉춘 감독), < 아낌없이 주련다 > ( 유현목 감독)등 모두 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가운데에서 이민자 를 크게 부각시키고 여러모로 화제를 뿌린 작품은 단연 < 아낌없이 주련다 >라 하겠다. 교양있는 연상의 미망인과 먹물 든 연하의 청년사이의 사랑이야기로 물론 멜로드라마 이지만 6촵25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뇌를 그렸다는 점에서격조높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말할 나위없이 이민자는 고민하는 연상의미망인상을 훌륭히 표출해 냈다. 이 작품은 또한 영화기자 출신 호현찬이 기획촵제작(극동영화사와 합작)하여 흥행면에서도 아낌없이 주는 반응을 얻었다는 기록을 누렸다. 이민자 는 63년에도 59년과 마찬가지로 1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총 제작편수는 148편). < 언니는 좋겠네 > ( 이형표 감독), < 김약국집 딸들 > ( 유현목 감독), < 오색 무지개 > ( 조긍하 감독), < 남자조종법 > ( 정일몽 감독), < 자문밖 설마담 > ( 한상훈 감독), < 율곡과 그 어머니 >( 이종기 감독)등이다. 이 가운데서<김약국의 딸들>은 < 미망인 > < 생명 > <아낌없이 주련다>등과 함께 이민자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김약국의 네딸 중 큰 딸 역을 맡은 이민자는 과부의 삶과 심리를 밀도 있게 연기함으로써 이 작품을 문예영화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일조를 했다. 64년에는 < 모녀기타 > ( 강찬우 감독), < 청춘은 목마르다 >( 박상호 감독), < 학사주점 > ( 박종호 감독)등 모두 11편의 영화에 이민자 는 출연했다. 65년에는 < 장보고 > ( 안현철 감독), < 7인의 여포로 > ( 이만희 감독), < 모녀봉 > ( 권영순 감독), < 갯마을 > ( 김수용 감독)등 9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어떤 기록에는 14편으로 되어있다. 이는 아마도 주연 또는 주요역할을 중심으로 했느냐 여부에 따른 차이일것이다. 실제로<갯마을>의 주연은 이민자가 아니다. 이 작품의 과부는 고은아이고 시어머니역은 황정순이다. 이민자는 66년에는 < 친청 어머니 > ( 김기덕 감독), <특급 결혼작전> (유현목 감독)등 4편, 67년엔 <빙우> (고영남 감독) 68년에는 <슬픔은 파도를 넘어> (김효천 감독)에 출연했다. 광복전인 1944년< 태양의 아이들 >( 최인규 감독)에 데뷔한 뒤로 24년동안 9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이민자 는 < 슬픔은 파도를 넘어 >를 끝으로 한국영화와 작별할 뿐만 아니라 현해탄의 파도를 넘어 모국도 떠난다. 50년대 후반 60년에 전반 한국영화 전성기에 이민자 는 한국의 에바가드너로 불렸다. 저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사랑의 여신 에바가드너로승격을 시킨 것이다. 입소문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아예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호현찬 의 <한국영화100년>은 < 아낌없이 주련다 >대목에서 …여주인공은 한국의 에바가드너라고 불리는 이민자를 …이라고 못박았다. 이민자는 좋은 연기자였다. 거기에 에로티시즘의 화신이랄까,섹스 어필 만점의 연기자였다. 한국의 에바가드너라는 칭호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에바가드너와 달리 이민자 는 유복한 집안, 한의사의 넷째딸로 태어났다. 무학여중 2학년때 극장 구경을 갔다가 배우가 되는 계기에 부딪혔다. 44년 동랑 유치진이 이끄는 현대극장 연구생으로 들어갔다. 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어린 이민자는 같은 해에 < 태양의 아이들 >로 영화데뷔를 한다. 뒤이어 48년 두번째 영화< 여명 >( 안종화 감독)에 출연한다. 데뷔작품에서는 단역을 맡았기 때문에 이민자의 데뷔작으로 첫 주연인 <여명>을 흔히 든다. 이 연극-영화와의 인연은 이민자 에게 인생의 인연을 안겨주었다.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해, 16세때 이민자는 같은 극단 같은 무대에 선 김진규 를 만나 그 다음해인 45년 정식결혼을 했다. 광복전의 일이었다. 이들의 결혼은 14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민자를 둘러싼 사랑의 기쁜 이야기, 슬픈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이것은 그대로 그녀의 배역과 직결되었다. 그래서 미망인전문배우가 되다시피 한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는지, 이민자 는68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 해에 재일교포와 재혼을 했다. 그리고, 18년뒤 이민자는 미소가 사라진 주검으로 돌아왔다. 60년대초 퇴계로의 아스토리아 호텔의 밀실에서 이민자 와 인터뷰한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이 졸문을 쓰면서 그때의 기사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또한 이민자의대표작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사뭇 안타깝다. 신우식(영화평론가) / 2002년 <프로필> 본 명 : 이용랑 출 생 : 1929년 4월10일 서울 1986년 1월 19일 사망 데 뷔 : 1944년 최인규 감독 < 태양의 아이들 > 주요 작품 : < 미망인 >, < 유혹의 강 >, < 아낌없이 주련다 >, < 생명 >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