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산대형
- 감독
- 견자단
- 제작년도
- 1998
- 출연
- 견자단, 우영광, 주인, 포기정
천명관의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이소룡 세대에게 바치는 절절한 송가이다. 서자로 태어난 집안의 천덕꾸러기 ‘삼촌’은 그 시절의 무수한 사내들이 그러한 것처럼 이소룡을 지극히 흠모했고, ‘그가 간 모든 길을 뒤따르고 싶어 했’다. ‘삼촌’은 이소룡을 따라 무술을 연마하고 몸을 단련한다. 심지어 이소룡은 마치 벼락처럼, 계시처럼 그의 앞에 나타나 삶의 향방을 몸소 손짓으로 가리키는데, 먼 남쪽 하늘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중국집 배달부인 ‘삼촌’은 홍콩으로 가는 밀항선에 몸을 싣는다. 같은 형태의, 같은 크기의 열망을 품은 무수한 이소룡을 꿈꾸는 자들과 함께. 이소룡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홍콩의 골든하베스트와 워너브러더스는 그의 죽음으로 중단된 영화 < 사망유희 >를 완성하기 위해 이소룡 대역을 찾고 있었다. 영화 속 이소룡의 육체를 대신하는 것. 그건, 이소룡에게 매료된 수많은 아시아의 젊은 남자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배는 난파하고, 삼촌과 함께 꿈꿨던 자들은 홍콩 땅은 밟지도 못한 채 피로와 굶주림에 지쳐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비록 소설 속 ‘삼촌’의 밀항선은 난파되었지만 우리는 이 꿈과 같은 일이 실제로 누군가에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안다. 본명 김태정, 예명 당룡(이 이름은 < 맹룡과강 >에서 이소룡이 분했던 바로 그 역의 이름이기도 하다)으로도 알려져 있는 이 부산 출신의 사내는 마치 삼촌이 그러한 것처럼, 혹은 같은 꿈을 꿨던 저 무수한 젊은 남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연히 < 정무문 >을 보고 이소룡과 같은 배우가 되기를 꿈꾸며 그의 모든 동작을 따라하기 위해 부단한 연마를 거듭하였다. 김태정은 다른 수많은 아시아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사망유희>의 대역으로 발탁되었다(이 영화의 또 한 명의 이소룡 대역은 1980년대 홍콩영화의 스타 중 하나가 될 원표였다). <사망유희> 이후 다시 한번 이소룡의 필름 푸티지를 알뜰히 활용한 영화 <사망탑>에서 이소룡의 동생으로 분한 그는 장 클로드 반담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 특명 어벤저 No Retreat, No Surrender >에서 이소룡의 유령 역을 맡은 것을 끝으로 ‘세계’ 영화계를 떠났다.(이 ‘국제적’ 영화인이 마지막으로 준비했던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 홍콩, 미국의 합작으로 이루어질 <야쿠자>라는 영화였다. 『무비스트』, 2009.6) 1970년대의 전세계적이고 지역적이었던 이소룡 붐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다고 해도, 단 한번도 부산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나이가, 단 한마디의 중국어도 하지 못했던 자가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홍콩으로 건너가 비록 한순간이나마 꿈꾸었던 바로 그 신체가 되는 이 이야기에는 여전히 기묘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이 이야기가 지독한 행운처럼 보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기묘함은 『나의 삼촌 브루스 리』가 보여주는 밀항선에 올라타 난파된 저 무수한 꿈들의 강도 때문에 그렇다. 그것은 부산에서 홍콩까지의 거리를 단숨에 압축시켜버릴만큼 강렬하다. 한 시기 한국의, 아시아의 젊은 남성들을 사로잡았던 이 열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그런데 다시 말하건데 이들이 꿈꿨던 것은 배우가 아니라, 정확히 ‘이소룡 같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이소룡 영화에서 진정 매혹적인 것(혹은 모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신체 자체이자 그 몸의 운동이다. 매끈한 근육질의 몸, 그것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디테일은 끊임없는 복기와 수련으로 가능해질 터, 이소룡 영화가 상영되는 동시상영관이야말로 이 모든 수업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그곳은 아침에 극장에 들어가면 ‘머리가 아플 지경’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똑같은 영화를 반복 학습하고 저녁에 되어서야 나왔던 진정 학습의 장이라 할만한 곳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이소룡이라는 이 중화권 최초의 국제 스타가 남긴 단 네 편의 영화를 어떤 일관성 속에서 포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 이소룡 자신의 제작사인 콩코드 픽쳐스, 할리우드의 워너브러더스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관여한 그의 영화는 초국적 시장에 대한 고려 위에서 만들어졌으며 크리스 베리의 언급처럼 “인종적이며 민족적인 동맹의 광범위함”을 특징으로 하는 이 영화들을 유일하게 하나의 일관성으로 묶고 있는 것은 이소룡이라는 강력한 페르소나이다. 공장주와 싸우는 이주 노동자(< 당산대형 >), 스승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에 맞서는 수제자(<정무문>), 로마에 도착한 동양인 촌뜨기(<맹룡과강>), 국제 첩보조직과 협력하는 소림사 수제자(< 용쟁호투 >). 인종과 민족과 계급에 관한 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이소룡이라는 유려하고 아크로바틱한 근육질의 신체를 가로지른다. 게다가 웃통을 벗고 맨몸의 상체를 드러낸 채 적과 맞서는 이 몸은 그 이전의 무협영화가 견지하고 있던 문화적 의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즉, 이 맨몸은 그 어떤 의장 없이, 오직 아시안, 젊음, 남성이라는 기호만을 남겨두고 있다. 그럼으로 이 몸은 기술과 신체의 연마를 통해 ‘무한히’ 모방 가능한 것이 된다. “로저 무어가 나오는 <007> 영화를 보면 우리가 집에 가서 흉내를 내겠어요? 그건 상상의 나라인 거고. 근데 이소룡이 발을 차는 걸 보면 내가 운동하면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었던 거지.” 1) 김태정의 이 언급은 저 모방 가능성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보여준다. 이소룡은 당연한 말이지만 동양인 남성이다. 그는 ‘내가 운동하며 저게 가능하겠구나’ 싶은 맨몸의 격투 혹은 단순하지만 숙련이 필요한 오래된 기구(이를테면 쌍절곤)을 쓴다. 이소룡과 제임스 본드. 이는 단지 유행하는 액션 장르영화의 두 히어로를 불러온 것 이상으로 꽤나 흥미로운 대비를 보여준다. <007> 시리즈에서 당신이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 시리즈가 이토록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당대 최고의 미녀들이 분하는 본드걸과 매번 새롭게 선보이는 최첨단 기구들이야말로 이 시리즈가 유지하는 매혹의 기본값이 아닐까. 본드걸을 동반한 이 백인 남성이 헤테로섹슈얼한 남성성을 과시하며 최첨단 기구를 능숙하게 다루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다면, 이소룡(과 한국, 홍콩, 대만, 태국, 필리핀 등등에서 유행했던 ‘권격영화’)은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럼으로 이 동성사회적(homosocial) 영화들은 노골적으로 젊은 남성관객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동시에 이소룡 영화와 권격영화의 몸들이 보여주는 능력은 단련된 신체를 통해서 발현된다. 요컨대, 이소룡(과 권격영화의 주인공들)은 영국 첩보원이 구사하는 세계 전략과 테크놀로지와 신사다움과 지능이 아닌 맨몸과 오래된 기구를 이용하여 다수를 상대한다. 요절한 이소룡을 둘러싼 저 열망들, 이 지역 일대의 산업화와 도시화라는 공통의 감각이 발생시킨 트랜스내셔널한 아시아적 동일성이라 할만한 것을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적 열망이라고 할만한 저 열망들은 백인 남성에 대한 동양남성의 오랜 좌절과 이 좌절에 대한 상상적 극복, 남성성의 재활성화와 연결되어 있다. 미국 패권하의 아시아 남성들, 계급적 하위자들이 미국에서 온 강한 동양인 이소룡에게 매혹당한 것은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이리라. 동시에 최첨단 기구가 장착된 신체와 수련을 거친 맨몸의 능력이라는 이 차이야말로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 제1세계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에 부과된 역할 분담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소룡 붐이 시작된 1973년, 한국은 유신 체제에 접어들었고 그해 8월 경제기획원은 「우리 경제의 장기 전망(1972~1981)」을 발표하며 경공업 중심 산업에서 중화학공업화 정책으로의 전환을 알렸다. 1979년 박정희의 죽음으로 끝나게 될 이 개발근대화 하이모던 철권통치 기간이 홍콩-한국-대만의 권격영화들이 유행하던 시기와 겹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 맨몸으로 상경한 산업 노동자(혹은 예비 인력들)들은 맨몸의 저 싸우는 영화들 속에서야말로 진정 신체의 어떤 이상(idea)을 발견한 것인지 모른다. *** 1) 김태정 인터뷰, 『무비스트』, 2009.6.(http://www.movist.com/star3d/read.asp?type=32&id=16400)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1. 카트린느 드뇌브와 ‘태권도’ 1974년 한국의 한 신문기사는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트 드뇌브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액션영화가 하도 판을 쳐서 태권도를 하지 못하는 우리 같은 여배우는 발 붙일 곳이 없어요.” 카트린느 드뇌브의 이 한탄은 ‘이소룡 붐’이라는 해외영화계의 기현상을 언급하는 기사가 인용해오고 있는 발언이다. 이 언급을 곧이곧대로 믿어보자면 이소룡 영화 혹은 그와 같은 류의 영화들은 ‘태권도를 하는’ 남성 배우들의 영화이다. 그런데 과연 1974년의 시점에 카트린느 드뇌브는 태권도라는 말을 알고 있었을까? 그녀가 이소룡 식의 액션영화를 ‘태권도 영화’라고 인식했는지는 상당히 의심스럽지만 적어도 어느 시기 한국 영화시장 내에서 이 명칭은 꽤나 일반적으로 통용되었던 것 같다. 1973년 3월 쇼브라더스 소속의 정창화가 감독한 영화 <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이 홍콩영화 최초로 미국 박스오피스에 올랐을 때(이 시점은 이소룡 영화가 미국 시장을 강타하기 직전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성공한 ‘태권도 영화’, 한홍합작영화로 한국에서 개봉하였다. 같은 해 출범한 정부 조직 한국영화진흥공사는 한국영화의 해외시장개척을 위한 중장기 전략으로 한국산 태권도 영화를 적극 장려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이소룡의 죽음 직후 < 정무문 >이 한국 시장에 도착했다. 이 영화는 당시 표현에 따르면 ‘이상과열’이라고 할만한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이소룡의 영화 중 가장 노골적인 반일 텍스트인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저 적의 익숙함은 한국 관객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며, 또 1960년대 후반 무협영화 붐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긴밀한 연결이라는 흐름 안에서 보자면 거의 절반쯤 자국영화로 보이게 할만큼 익숙한 것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스승의 복수를 완수한 이소룡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경찰들을 향해 뛰어오르는 프리즈 프레임을 한번 상기해보라. 요절한 스타가 정지된 화면 내에서 영원히 도약하는 모습을 목격한 당대의 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어떤 정서적 감응을 불러일으켰을지 상상해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무문>을 시작으로 1973년과 74년 이소룡의 네 편의 영화, < 맹룡과강 >, < 당산대형 >, < 용쟁호투 >가 모두 개봉하며 이 열기를 지속시켜나갔다. 전세계적인 이소룡 붐과 접속한 자국 관객의 열광은 곧 “홍콩 제작의 얼치기 태권도 영화가 세계를 휩쓴 데 자극받은......참다운 태권도 영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와 겹쳐진 시장의 요구로 이어졌다. 그리고 불현 새로운 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소룡-브루스 리가 그러한 것처럼 미국식 이름을 붙이고 나타난 이들은 한결같이 미국에서 온 태권도 유단자임이 강조되었다. 2. 아마도 ‘태권도 영화’라고 할만한 것의 절정은 1974년이 될 것이다. 이해 이두용은 재미교포 출신의 신인배우 챠리 셀(한용철)을 기용하여 무려 6편의 태권도 영화를 만들었다. < 용호대련 >, < 죽음의 다리 >, < 돌아온 외다리 >, < 분노의 왼발 >, < 속 돌아온 외다리 >, < 배신자 >(이두용에 따르면 이 영화는 앞의 영화들의 ‘재편집’으로 완성되었다)에 이르기까지 이 놀라운 다작은 유행 장르를 자국화하고자 하는 한국 영화산업의 탄력적 대응의 실례라 할만하다. 일단 이 영화들은 1960년대의 인기 장르인 만주물의 서사를 고스란히 끌어온다. 배경은 식민지 시대의 만주 혹은 대륙, 적은 일본군이거나 일본군과 결탁한 야쿠자. 여기에 몇몇 제목들이 이미 노골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바 장철의 <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獨臂刀>가 불러일으킨 신체적 핸디캡의 영웅이라는 표상과 이 표상이 내포하는 상실, 극복, 귀환이라는 구조가 가미된다. 발차기의 명수인 주인공은 적들의 농간으로 한쪽 다리를 잃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극복하고, 돌아와서 적들을 물리친다. 어쨌건 주인공은 단독으로 혹은 독립군과 힘을 합쳐 악독한 일본군 또는 일본 야쿠자를 물리친다. 그렇다면 이 영화들은 만주물의 재출현인가? 만주물은 1960년대라는 국민국가 만들기의 시간에 이를 형성해낼 강력한 표상자원으로서 한국영화가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식민지 시기 만주라는 실제의 시공간, 동시에 1960년대의 시점에서 가상적으로 재현될 수밖에 없는 이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항일독립투쟁의 이 액션활극은 포스트콜로니얼 분단국가가 상상해낼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국가창생기일 것이다. 아직 남과 북은 분단되기 이전이며, 하나의 ‘민족’은 미래에 반드시 당도할 독립국가를 위해 싸운다. 그리하여 이 독립국가-대한민국은 저 전쟁에서 죽어간 수많은 ‘애국선열’들에 의해 여기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 만주 웨스턴이라는 형태로 전화되어간 만주물은 이 전화의 마지막, 이만희의 < 쇠사슬을 끊어라 >(1971)에 이르러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만주물의 초창기 비전이 국가 만들기와 관련있는 것이라면 국가 바깥의 인간들, 국가에 무심한 인간들이라는 한국영화에서 거의 볼 수 없는 희유한 순간을 만들어낸 <쇠사슬을 끊어라>는 말 그대로 장르에 대한 탈구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이 이야기는 1960년대적인 내셔널 시네마적 열정이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두용의 태권도 영화가 만주물 서사를 새삼스럽게 반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서사들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들은 서사에 공을 들이고 있지 않다. 공간은 극히 단조롭고 서사를 믿을만하게 만들어줄 캐릭터의 구축이랄 것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이 영화들이 졸속 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오로지 하나의 볼거리, 하나의 스펙터클, 하나의 동작에 집중한다. 챠리 셀의 발차기. 길고 곧게 뻗은 다리가 화면을 횡으로,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가로지른다. 종종 웃통을 벗는 남자는 기름을 발라 반짝반짝 빛나는 근육질의 몸을 과시하며 괴성을 지르면서 전광석화처럼 날아올라 발차기로 상대를 제압한다. 벗은 몸의 발차기. 이 형상은 이중적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것은 자국 관객들을 위해서 태권도라는 지역적 귀속을 충족시켜주는 기표로 이해되는 한편 이제 곧 형성될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의 카테고리 안에서 싸우는, 맨몸의, 아시안 남성의 기표로서 기입될 것이다. 3. 챠리 셀에 이어 미국에서 온 또 한 명의 스타는 바비 김(김웅경)이다. 당시의 신문보도에 따르면 ‘이소룡과 함께 태권도 보급에 힘써 온’ 바비 김은 이소룡 사망 후 “미국 쪽에서 그를 이소룡의 후계자로 내세우려 들자 기왕 태권도 영화에 출연할 바에야 한국영화에서 활약할 생각으로 귀국하였다.” 챠리 셀의 인기에 대적하기 위해서 바비 김은 변별될 필요가 있었다. 그 역시 발차기가 특기이지만, 콧수염과 가죽점퍼를 트레이드마크로 강한 아메리칸 남성성을 번안해오고 있는 바비 김의 영화는 이두용의 태권도 영화보다 현대적 의장을 선호하였다. 찰스 브론슨을 노골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이 ‘터프한’ 남자는 사악한 일본인과 맞서 싸우거나(< 사대독자 > < 흑룡표 >) 홍콩과 동남아의 주요 도시들을 배경으로 국제적으로 암약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국제경찰 >), 알고 보면 이 적들은 서로 결탁해 있곤 한다(< 죽음의 승부 >). 이 영화들이 설정하고 있는 적은 지극히 자국적으로 보이나(일본인과 공산주의자) 실상 현대적 의장 속에서 적의 고전적 표식은 사라지기 일쑤다. 이를테면 식민지 시대 홋카이도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 귀문의 왼발잽이 >(박우상, 1977)를 보자. 다케지로와 센노스케라는 대립하는 두 일본인 집단과 이들에게 착취당하는 조선인 광부들. 어느날 이 마을에 정체불명의 사나이 바비 김이 나타나 우여곡절 끝에 고통받는 광부들을 구해낸다. <귀문의 왼발잽이>가 지극히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영화가 시대적 배경을 믿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그 어떤 장치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해 설정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탄광의 소유주인 다케지로는 수트 차림의 성공한 중년 사업가의 모습이다. 가죽 재킷에 헬멧을 쓰고 일당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는 센노스케는 폭주족에 가깝다. 영화의 실제 배경은 강원도 남부의 탄광도시 태백이다. 이 이미지들 속에서 <귀문의 왼발잽이>는 탄광 노동자를 착취하고 괴롭히는 악덕 자본가와 폭력배, 이에 맞서 노동자를 구하는 히어로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은 마치 1970년대 후반의 탄광도시 태백의 지역성만큼이나 당대적이고 구체적이며 로컬한 정치적 의제를 상기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동시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를 구하는 히어로라는 오래되고 광범위하며 글로벌한 소망과 맞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4. 이소룡의 열풍이 불러일으킨 이국적 이름의 행렬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챠리 셀과 바비 김에 이어 엇비슷한 이름을 가진 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나왔다. Tang Lung, Bruce Li(何宗道), Bruce Le(呂小龍), Bruce Leung(梁小龍) Dragon Lee (혹은 Bruce Lei, 巨龍) 기타등등. 이 이름들 중 누군가는 한국인이고 누군가는 이미 한국인이 아닌데, 사실 이 영화들에 있어서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한국과 홍콩, 대만, 필리핀, 타이 등지의 영세 영화업자들이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낸 이 영화들은 이제 국가적 귀속이라는 문제로부터 더 없이 자유로워진 채 국경을 넘어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의 한 부류로 통칭될 터이니. ps. 현재 영상자료원에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귀문의 왼발잽이>는 ‘불타는 주먹(les poings enflammes)’이라는 프랑스어 더빙 버전으로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은 유창하게 불어를 구사하는 바비 김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귀문의 왼발잽이>를 이런 상태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이런 영화들이 어떠한 유통경로를 거쳐갔는지를 증거한다.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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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이소룡의 역사에서 가장 현기증 나는 대목은, 그들의 다채로운 영어이름이다. 이소룡의 ‘Bruce Lee’ 라는 원래 이름에서 ‘L’을 돌림자 삼아 이렇게나 많은 변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나훈아 로부터 너훈아, 나운하, 나운아, 나윤아, 노훈아가 파생된 것처럼 말이다. 지난 회 < 일소일권 >으로 소개한 거룡은 ‘Bruce Lei’이고, 또 다른 짝퉁 이소룡 배우들인 하종도 는 ‘Bruce Lai’, 유가영은 ‘Bruce Lau’, 장정의는 ‘Bruce Lea’, 우양은 ‘Bruce Ly’,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여소룡 은 이러한 부동산 ‘알박기’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관계로 ‘Bruce Le’라는 어딘가 이름을 짓다 만 것 같은 소심한 이름을 썼다. 물론 유가영은 이후 자신의 독자적인 활동으로 더 유명해졌고, 거룡 의 경우 ‘Dragon Lee’라는 보다 멋진 이름을 함께 사용했다. 이미 포화상태인 ‘Lee’를 리모델링하느니 굳이 ‘Bruce’라는 단어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대한남아의 기개를 보여준 신선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물론 그들은 패티김 과 패튀김이 함께 활동했던 것처럼, 이소룡이 죽기 이전부터 짝퉁으로 활동했다. 여소룡 은 수많은 짝퉁들 중 가장 진짜와 닮았던 배우다. 쌍꺼풀이 없어서 클로즈업을 하면 곤란하지만, 멀리서 보면 전혀 분간하지 힘들 정도로 체격이나 움직임이 오리지널 이소룡과 판박이다. 쉽게 말해 ‘얼굴만 가리면’ 이소룡이다. 그런데 여소룡은 한국인이 아니다. 대만 출신으로 홍콩에서 활동하던 중, 역시 홍콩으로 건너가 쇼브라더스에서 활약했던 수많은 한국 액션배우들 중 하나인 남석훈 의 눈에 띄어 한국에서도 활동하게 된 것. 이수현 주연 ‘아시아 슈퍼히어로’ 영화 <중국초인>(1975) 등에 출연했던 그는 이소룡의 < 당산대형 >(1971)의 흥행에 힘입어 나열, 진혜민 등과 함께 그 아류작인 <당산제자>(1976)에 출연했고 이후 <용문비지>(1976), <충렬정무문>(1977), < 벽력용권 >(1978) 등 주로 강홍 감독의 영화에서 짝퉁 이소룡으로 활동했다. 바로 여기서 남석훈을 만나게 됐다. 한편 <황금첩혈>(1979) 등을 연출하는 등 나중에는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화천공사가 거룡을 발굴했다면, 여소룡 은 남아진흥공사에서 만든 남석훈 의 < 속 정무문 >(1977), 태창흥업에서 만든 최우형 의 < 십자수권 >(1978) 등에 출연했다. 역시 홍콩 액션배우 진성이 함께 출연한 <속 정무문>은 단성사에서 개봉해 6만 관객을 동원했으니 제법 성공을 거둔 셈이다(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에서 VOD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입하지 못한 마이너리거가 한국 프로야구팀에서 와서 활동하는 경우랄까. 지금껏 한국 액션배우들이 홍콩으로 ‘수출’되기만 한 것으로 알지만, 그런 반대의 역사도 있었던 것이다. <십자수권>은 최우형 감독의 데뷔작으로 홍콩, 대만 등지로도 수출되어 <사망마탑>(死亡魔塔)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는 나름 ‘정통’ 무술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감독으로 < 사형사제 >(1982), < 여걸 청나비 >(1983) 등을 만들었으며 < 기문사육방 >(1983)의 경우 유일하게 영상도서관 멀티미디어석에서 VOD로 관람 가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쉰 살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떴다. < 십자수권 >에서 여소룡 은 독립운동을 하다 죽은 한국인의 아들로 나온다. 그리고 돈에 팔려간 누이동생을 찾아 군벌들이 일본과 내통하여 혼란스러운 중국 땅에 나타나, 부패 군벌이 주관하는 무술대회에 출전한다. 한국식 ‘만주 웨스턴’ 장르에 < 용쟁호투 >(1973)와 < 사망유희 >(1978)가 적당히 뒤섞인 이 이야기에서 여소룡을 두고 이소룡과 가장 닮았다고 말하는 건, 바로 노란색 트레이닝복 ‘간지’가 그와 무척 흡사했기 때문이다. < 일소일권 >의 거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 혹은 역시 거룡이 출연했던 <쾌권괴초>(1979)에서 장일도가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이 지나치게 굵은 옆줄로 인해 동일시를 방해했다면, 여소룡은 정말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의상이라도 홍콩의 도심이 아닌 한국의 용인 민속촌을 배경으로 삼았기에, <속 정무문>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와 눈 내리는 민속촌을 거닐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다소 어안이 벙벙하다. 그나마 <십자수권>은 <사망유희>의 마지막 액션신이 펼쳐지던 5층 구조를 그대로 모방했기에 나름 실감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리지널보다 더 강한 볼거리를 액션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한 층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고수는 수십 마리의 뱀을 내던지며 그 뱀으로 목을 조르며 싸우는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액션 연출이 뛰어나건 어쨌건 간에 어쩔 수 없는 B급의 향기랄까. 그럼에도 다른 짝퉁 이소룡 영화들과 차별점을 갖는 부분이라면, 역시 ‘흑형’과의 대결이다. 사실 이소룡이 < 용쟁호투 >에서 실제 가라데 고수이자 배우인 짐 켈리, < 사망유희 >에서 카림 압둘 자바 등 흑형들과 싸우는 장면은 꽤 중요한 이미지다. < 십자수권 >에서 다채로운 권법을 사용하고 화려한 돌려차기를 구사하는 흑형과의 대결은 꽤 볼만하다. 가령 <쾌권괴초> 등에 등장했던 흑인 배우는 단지 구색 맞추기였을 뿐, 너무나 어이없는 무술 동작으로 실망만 안겨준 것에 비하면 상당한 퀄리티다. 이렇듯 왠지 서오릉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중국인 여소룡 과 머리에 두건을 두른 흑형이 쿵푸 대결을 벌이는 기묘한 풍경에 괜히 숙연해진다. 오른쪽 칼을 든 사람이 양사 더 숙연해지는 이유는 당당한 체구의 배우 양사 때문이다. < 용쟁호투 >(1973)에서 이소룡과 대결을 펼쳤던 그는 < 십자수권 >에서는 여소룡 과 싸웠고, <쾌권괴초>에서는 장일도와 싸웠다. 급기야 < 용재강호 >(1986)에서는 이소룡의 아들 브랜든 리와도 싸웠다. 말하자면 이소룡과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아류들과도 다 싸웠다. B무비이기에 가능한 설정일 텐데, 세상 어디 그런 배우가 있을까. 또 하나, ‘백옥과도 같은’ 피부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미모로만 따지면 개인적으로 역대 한국 여배우 중 세 손가락 중 한 명으로까지 꼽고 싶은 여수진의 존재다. 박노식 의 < 광녀 >(1975)에서 박노식의 연인이었고, < 폭력은 없다 >(1975)에서 박형사(박노식)가 오랫동안 지켜봐온 광일(원선)의 연인으로도 등장한다. 그야말로 이런저런 B무비에서만 활동하다 사라졌던 안타까운 배우다. 여수진 여소룡 감독: 최우영 각본: 허진 개봉극장: 청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