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 고고
- 감독
- 장재운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이선주, 오주연, 김아영, 김창기, 김선혜
KMDb 연재를 시작한 지 2년이나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되는 동안 연재와 함께 했다. 처음 기획단계에서 한국영화의 여성주의적 ‘정동’을 주제로 삼았고, 당시 양분된 반응을 얻었던 < 아워 바디 >로 연재를 시작했다. ‘정동’이란 주제로 연재한 마지막 글은 시작 같은 끝이 될 수 있는 영화로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영화사의 첫 여성감독인 박남옥이 연출한 < 미망인 >(1955)을 선택했다. 복잡하게 얽힌 오각관계를 재현하는 대화씬의 연출력이 빛나는 <미망인>은 거리를 방황하며 혼란스러움을 드러내는 발의 몽타주로 끝난다. 이 엔딩씬은 10분가량의 사운드와 마지막 장면의 프린트가 소실되어 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황을 영원히 끝낼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망인>은 박남옥 감독의 첫 번째 영화이자 마지막 영화이다. 차기작에 대한 열망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갖고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결국 그 꿈을 이룰 기회는 없었다. 1955년에 개봉한 <미망인>은 전후 여성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일제식민지와 한국전쟁, 그리고 미군통치 시기를 지나며 조선의 전통적 이데올로기는 균열이 나고 어느 정도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전통적인 성역할은 현실적으로 급격하게 해체되는 수순에 이르렀다. 그것은 단순히 도덕이나 관습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전통적인 성역할이 유지되기 위해선 경제권을 갖고 있는 남성 가부장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많은 남자들이 참전 중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채 돌아와, 가장이 된 여자들이 오롯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또한 전후 미처 특정 체제가 구축되기 전 미군을 통해 유입된 새로운 문물의 파장도 있었다. 문학과 영화는 당시 전후를 묘사하기 위해 전통적 성역할에 도전하는 신여성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아프레걸(après-girl)이 그것이다. <미망인>뿐 아니라 동시대에 나온 < 자유부인 >(한형모)과 < 지옥화 >(신상옥) 등도 그러한 여성들을 그리고 있다. <미망인>의 주인공 이신자(이민자)는 전쟁 중 남편이 죽은 후 어린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 신자는 딸과 함께 잘 살아 보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남편이 없다고 그녀를 우습게 본다. 옆집 여자 숙은 술 먹으며 빈둥대는 나이 든 옆집 남자와 신자를 엮어보려 하고, 남편 친구의 아내는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자기 남편에게 들이대지 말라고 협박한다. 그녀는 생활비가 모자라 돈을 빌리려던 신자를 극도로 경계한다. 신자는 남편 없는 설움을 겪는다. 이때부터 신자는 태도를 바꾼다. 어차피 자기의 감정과 욕망이 저자거리에서 다른 이들에 의해 쉽게 취급받을 바에야 정말로 좋아하는 남자와 사랑에도 빠져보면서 자기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신자는 무작정 순진한 여성도, 그렇다고 다른 영화들에서 묘사된 아프레걸처럼 치명적 매혹으로 남자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팜므 파탈도 아니다. 눈치 빠르고 생존력 강한 신자는 자신에게 성적으로 접근하는 유부남의 호감을 적절한 선에서 이용하고, 양장점을 운영할 만한 능력과 성실함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전후 여성의 관점에서 경제적 문제들이 치밀하게 묘사된다. 현물이든 인맥이든 자원이 없는 신자가 왜 남편친구인 이사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는지, 왜 사랑하는 딸을 자신이 키울 수 없고 모성과 사랑 사이에서 양자택일 하도록 강요되는지, 그리고 여성들 간의 불화와 연대는 왜 발생하게 되는지 등을 보여준다. 서사적으로는 신여성들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면서 시청각적으로는 그 여성들에 매혹되며 성적으로 착취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이 영화에는 없다. 오히려 남편 있는 중상층 여자, 남편 없이 홀로 딸을 키우는 여자,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여자들이 각기 자기의 위치와 계급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욕망을 추구하며 꿈을 잃지 않으려 하는지를 보여준다. 모두가 ‘해바라기’인 이들은 각자가 위치한 계급과 가족구성에 따라 남성들과 각기 다른 관계를 맺는다. 세 여자가 택이라는 한 남자와 모두 성적 관계를 맺기 때문에 그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신자는 애인과 딸, 그리고 사업적 성공 모두 갖고 싶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미망인’인 그녀에게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이 영화는 신자가 그러한 선택의 강요 속에서 오래 갈등하는 것을 보여 준다. 영화는 “이웃에 이러한 미망인이 있었다. 수렁에 빠졌을 때라도 그는 해바라기였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신자를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관객도 섣부른 단죄 이전에 그가 무엇을 원하고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지켜봐줄 것을 요청한다. 신자는 전후 팍팍한 삶에서도 포기하는 삶보다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라고 선택하는 생명력 있는 인간이다. 박남옥 감독은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여성들뿐 아니라, 계급이 다른 남자들을 배치해 그들도 비교한다. 이사장은 유부남이면서도 은근슬쩍 돈을 이용해 신자에게 호감을 표명한다. 신자는 그 노림수를 알면서도 생활비와 사업비를 위해 그의 접근을 안전한 거리까지만 허용한다. 신자가 이사장과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장면은 상투적인 대화 장면인데도 이면에 서로 다른 의도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기에 긴장감을 이끌어 낸다. 관객들은 오프닝에서 그의 아내가 신자를 찾아가 한바탕 대거리를 하고 돌아간 것을 이미 보았다. 그의 호감을 적절한 수준에서 받아내면서 신자는 그의 아내가 찾아온 사실을 전하고 오해를 불러 일으켜 유감이라고 한다. 관객들은 그의 호감에 기반 해 도움을 받으면서도 더 이상의 성적 접근은 분명하게 거절하는 신자의 대화기술 속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느낀다. 극장 간판을 그리며 혼자 사는 젊은 남성인 택(이택균)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이용해 다양한 계급과 조건의 세 여성 모두와 관계를 맺는다. 신자를 포함해 세 여자는 옴므 파탈인 이 남자에게 매혹 당한다. 택은 돈이 많은 이사장 아내의 불륜남으로, ‘미망인’인 신자의 애인으로, 전쟁 중 헤어졌던 옛 애인 진의 순정남으로 오고간다. 오히려 전후에 여자들을 이용해 살았던 것은 가진 것 없는 젊은 남성일 수 있다. 박남옥 감독은 ‘아프레보이’(après-boy)라고 불릴 만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낸다. 전후는 압도하는 폭력과 파괴가 휩쓸고 지나간 시간이지만, 또한 개인이 자기만의 윤리 속에서 선택의 기준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미망인>의 인물들은 전쟁 중 죽은 줄 알았던 애인(택과 진)과의 재회처럼 극적인 사건과 선택을 맞닥뜨린다. 이사장과 신자, 택과 이사장 부인이 술집에서 마주치는 장면은 복잡하게 얽힌 선택의 길에 놓인 인물들을 동선과 공간화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넷이 따로 차에서 내려 대문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기까지 정원길을 걸어들어가고 나오는 장면을 정성들여 보여준다. 그 길은 선택의 길이다. 먼저 들어온 택과 이사장 부인이 있는 방의 옆방에 이사장과 신자가 들어온다. 두 방의 교차편집이 진행된다. 이사장 부인은 택이 신자를 만난 것을 추궁하고, 이사장은 신자를 만나 자신의 아내의 외도를 알리며 신으로부터의 위로를 바란다. 그리고 먼저 방을 나온 신은 따로 나온 택과 그 길에서 만나 같이 나가버리고, 이사장 부인은 급작스럽게 만난 남편에게 냉대를 당한다. 신자는 택과의 사랑도 이루고, 이사장에게 투자도 받는다. 신자는 택과의 연애를 이어가기 위해 딸인 주를 동네 나이든 부부에게 맡기지만, 택은 옛 애인인 진을 만난 후 사라진다. 신자는 이후 양장점을 열고 경제적 독립을 이룬다. 신자가 낮에 소설책을 읽다 방에 누워 애인 택과 딸 주의 환상을 보는 장면은 신자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재현한다. 신자가 독백으로 읽어 내려가는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인은 그 사나이와 평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 사나이는 하루의 향락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인은 큰 유리컵에다 진한 술을 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방바닥에 누운 신자 위로 디졸브된 택과 주가 교차로 편집된다. 신은 경제적 독립, 사랑, 가족 어느 하나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신자는 신여성으로 방안 탁자에 놓여있는 액자 속 마를린 디트리히와 근대소설의 욕망하는 여성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미망인>의 마지막 10분은 안타깝게도 사운드가 손상되어 대사를 들을 수 없으며, 마지막 장면은 프린트가 완전히 소실되어 엔딩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신자, 택, 진이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사운드가 없는 무성영화의 상태는 그들의 혼란스러움을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속상한 신자가 옆집 친구 숙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진과 택이 함께 있는 장면과 교차된다. 그 술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고가는지는 사운드가 소실되어 알 수 없다. 신자와 숙의 대화 장면은 깊은 고뇌에 빠진 척하며 홀로 방황하는 택 그리고 휘청대며 걷는 몽따주된 그의 발들과 교차편집 된다. 욕망의 대상을 뚜렷하게 알고 그것을 다 갖기 위해 달려가는 생존력 강한 신자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정처 없이 떠도는 무력한 택 모두 혼란에 빠진다. 미망인은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하는데) 아직 죽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여자의 삶이 철저하게 남자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는 가부장제적 단어이다. 하지만 <미망인>은 남편이 죽은 후에도 자신의 주체적 삶을 살아가고 복잡한 현실과 욕망의 간극 속에서 갈등하는 신자를 매력적으로 그려낸다. 그녀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스크린 위 여성들의 복잡한 마음이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재일 교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이 < 디어 평양 >(2005)과 < 굿바이 평양 >(2011)에 이어 < 수프와 이데올로기 >를 개봉하면서 가족 3부작을 완성했다. <디어 평양>이 조총련계 간부로 일한 부모님, 특히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냉전이라는 탈식민적 역사를 통과하며 자신의 신념을 형성해온 아버지와 그의 행보를 향한 양가적 감정을 다뤘다면, <굿바이 평양>은 평양에 사는 조카 선화를 중심으로 그들 가족의 일상을 친밀하게 보여준다. 최근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의 사적 역사를 다룬다. 세 영화는 양영희 감독이 그의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만든 사적 영화인 동시에 남북한과 일본을 둘러싼 탈식민적 역사에 대한 정치적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영화는 다채로운 감정들로 가득 차 있다. 양영희 감독은 고집스럽고 냉철한 카메라로 거침없이 가족의 친밀한 초상을 그려낸다. 그의 카메라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가족들을 역사 속 한명의 주체로 인정하며 그 선택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양영희 감독의 부모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일본에 와 결혼하고 오사카에 정착했다. 양 감독의 아버지는 일본의 차별을 온 몸으로 체감했고, 그때 재일 조선인들에게 관심 갖고 지원을 해준 북한의 편에 서게 된다. 그리고 조청련 간부로서 당시에는 경제적으로 남한보다 더 나았던 북한으로 세 아들을 보낸다. 양영희 감독도 어린 시절 조총련계 학교에서 조국 북한에 충성해야한다는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양영희 감독은 성인으로 성장하고 부모에게서 독립하면서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오빠들을 북한에 보낸 아버지를 원망한다. 오빠들이 북한에서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어 평양>은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적응에 힘들어하는 오빠들에 대한 애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끈질기게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아버지는 비극적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고 그때마다 자신과 가족에게 최선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해왔다. 평양은 이전에는 자신의 신념의 기반이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사는 장소로 고향 같은 곳이다. 양영희 감독은 어쩌면 카메라를 매개해 아버지를 비로소 이해한다. 아버지도 카메라가 있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마음으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표현한다. 카메라의 매개는 가족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장치가 되며, 여러 감정이 실린 가족들의 얼굴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굿바이 평양> 역시 북한을 다룬 어떤 영화보다도 더 친밀하고 애틋하며 솔직한 카메라를 매개해 교육받고 공인된 얼굴 이면의 다른 북한 주민들의 얼굴을 포착한다. 관객들은 모두 선화가 자신의 꿈을 이루길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마지막 작품인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고집스러운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서 그리고 일본과 평양의 가족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어머니는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데 몰두했던 아버지 대신 가족 경제를 도맡아 오다시피 했다. 양영희 감독은 제주 출신인 어머니가 일본에 건너오게 되고 조선국적을 택하게 된 이유를 듣게 된다. 어머니가 조선국적을 택한 건 단순히 아버지를 따른 것이 아닌 그의 선택이었다. 어머니는 십대 시절 제주 4.3사건을 겪게 된다. 그녀의 약혼자를 포함해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녀는 당시 어머니가 살던 일본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목숨을 걸고 밀입국해 오사카로 넘어오게 된다.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라면 치가 떨렸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체에 각인된 분노와 불안이다. 그래서 딸인 양영희 감독에게도 4.3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양영희 감독은 그제야 어머니가 자신의 세 아들을 북한으로 보내고 조총련 간부로 오래 일하고 나이 들어서까지 자신의 생활비를 쪼개 돈과 선물을 평양에 있는 가족으로 보내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들과 조카 선화 모두 한국 근대사의 비극 속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며 용감하게 생존해온 것이다. 가족에 대한 이해는 곧바로 역사에 대한 이해가 된다. 영화는 어머니가 4.3 사건을 기억해 내고 구술하는 상황과 양영희 감독이 결혼하게 될 일본인 남편 카오루를 맞이하고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병행해 보여준다. 가족이 되고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딸이 결혼하길 바랐지만 일본인 사위는 안 된다고 했던 어머니는 어떤 거부감도 없이 카오루를 친절하게 받아들이고 카오루는 그런 어머니를 알뜰히 보살핀다. 엄청난 양의 마늘이 들어간 어머니의 삼계탕에 반한 카오루는 그 비법을 전수받는다. 어색함과 이념적 차이, 역사적 장벽은 깊고 따뜻한 국물 속에서 녹아내린다. 양영희 감독은 3부작을 통해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가족 사이의 갈등과 차이를 어떻게 대면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어머니가 사위 카오루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일본의 차별을 다 이해하고 용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4.3 재단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고 해서 자신의 애인과 친척들을 위협하고 죽였던 한국을 모두 용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야 자신이 4.3사건 2세대라는 것을 알게 된 양영희 감독도 어머니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심지어 어머니는 얼마 후 노환으로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간다. 그 옆에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어머니의 슬픔과 분노, 불안을 포착하려는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가 있다. 제주 4.3 기념관을 방문해서도 어머니는 제주에서의 기억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그의 얼굴은 피곤하고 때때로 무표정하다. 그러나 양영희 감독은 어머니에게 말 걸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기록하는 것이 그의 시선이라는 것도 숨기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카메라가 지나치게 밀어붙이고 집요해 고독하다는 느낌도 든다.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개봉한 후 양영희 감독이 방북금지를 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실제로 타자를, 특히 가족을 이해하려는 카메라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어서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것이 아무리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때로는 외면당한다 해도 말이다. 그렇게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는 영웅적인 면모를 띤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쿠팡플레이가 야심차게 제작한 < 안나 >(이주영, 2022)는 공개되자마자 호평을 받았다. 빠른 호흡의 서사 전개, 단독 주연으로 조용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배수지의 강렬한 연기, 계급성을 드러내는 미술과 의상은 구독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갑작스럽게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상실한 사람들의 시점을 밀도 있게 그려낸 데뷔작 < 싱글라이더 >(2017)의 이주영 감독을 연출로 선택한 것이 적중한 듯 했다. 그러나 공개된 지 얼마 안 돼 감독을 비롯한 주요 창작자들이 <안나> 6부작(러닝타임 304분)의 크레디트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빼달라는 이례적인 요구를 했다. 감독은 쿠팡플레이가 최종 편집권을 약탈해 갔다고 주장했다. 쿠팡플레이는 감독의 8부작 판본(러닝타임 429분)에 불만이 있었고 100분에 가까운 분량을 감독의 동의 없이 편집해 공개했다. 이주영 감독은 <씨네21>(배동미, 2022.8.11)에서 “(쿠팡 플레이는) 뭐든 돈으로 사면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인터뷰했다. 2021년 서비스를 시작한 쿠팡플레이는 국내 OTT 중에서도 후발주자이다. 모회사인 쿠팡과 쿠팡플레이의 관계는 아마존과 아마존 프라임이 갖는 사업전략과 유사하다. 영화 스튜디오나 비디오 유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다른 플랫폼과 차이가 있다. 쿠팡은 아마존처럼 온갖 소비재를 판매하는 인터넷 유통 플랫폼이고, 콘텐츠 구독권과 쇼핑 회원멤버십을 결합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충분치 않고 주로 스포츠 중계와 예능 콘텐츠에 집중하던 쿠팡플레이는 <안나> 같은 서사와 영상미학 모두에 있어 완성도 있는 화제작을 제공해 기존 OTT의 영상문법에 익숙한 구독자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 같다. 그러나 쿠팡플레이는 자신들이 투자하고 배급하기 때문에 창작의 최종 권한을 살 수 있다고 믿었고, 이는 돈과 사회적 지위가 서로를 판단하는 유일한 근거가 된 동시대 한국 사회를 비판한 <안나>의 메시지에 완전히 반하는 일이었다. 이 사건은 영상창작물을 포함해 성격이 다른 모든 것들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상품’으로서 경계 없이 유통되고 판매되는 시대에 창작권을 질문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영상연출의 역할을 고민하게 한다. 결국 협상이 이뤄지고 <안나> 감독판이 함께 공개되었다. 그리고 구독자들은 <안나>의 두 가지 판본, 쿠팡플레이의 6부작과 감독의 8부작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안나>는 정밀아 소설가의 <친밀한 이방인>(2017)을 각색한 작품이기에 비교할 대상, 즉 콘텐츠가 늘어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언론은 추가된 2부작이 만든 차이를 논평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은 두 버전이 “대동소이”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한경> 김지원, 2022.8.14). 서사의 줄기는 크게 다르지 않고 어차피 이유미를 연기한 배수지의 스타성에 기댄 시리즈이기 때문에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는 논리였다. 쿠팡 플레이의 6부작이 빠른 전개로 몰입을 높여준 반면, 감독의 8부작은 장황한 인물 배경 및 심리 묘사로 늘어진다는 논평도 있었다. 짧은 시간 내에 서로 다른 두 판본이 공개되면서 벌어진 논란들은 OTT 플랫폼에서의 관람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고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시리즈는 한 번에 몰아보기를 유도하거나 구독유지를 독려하기 위해 첫 화에서 자극적이고 속도감 있고 선명하게 캐릭터와 서사를 설명하는 것을 선호한다. 다시 말하면, 복잡하고 모호한 심리 묘사나 정보성 서사와 상관없이 뉘앙스를 만들어 주는 장면들은 특히 시리즈 초반에서는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안나> 감독판과 쿠팡플레이 판본의 차이도 비슷한 곳에서 발생한다. 유미의 선택과 욕망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장면들, 그리고 출신대학, 사회적 지위, 경제적 자산 등에 따라 나눠진 계층사회와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적 묘사들이 많이 삭제되었다. 초반 에피소드에 배치되어 있던 유미의 열망과 파국을 암시하는 ‘라 에스메랄다’의 발레 무대, 고등학생 시절 어린 유미의 감정을 이용하고 배신한 남교사의 비겁한 행태,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시작했던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과정, 자신의 거짓말로 모든 것을 잃고 열심히 살려고 하는 와중에 일어나는 폭력(고시원 총무의 성추행)과 차별(현주 가족의 무시)의 장면 등이 삭제되었다. 유미의 ‘허영’은 어떤가? 분명 유미는 자기 욕망을 드러내고 충족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어 남다르다. 피아노, 발레, 그림 등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유미는 부모의 경제력을 볼 때 지나친 욕심으로 보인다. 하지만 왜 어떤 아이의 꿈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이 되는 반면, 다른 아이의 꿈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허영이 되는가. 욕망과 허영 사이의 선은 그렇게 분명한 것이 아닐 수 있다. 특히 허영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최대 악행으로 그려진 역사를 고려해볼 때 더욱 그 선은 분명치 않다. 감독판과 달리 쿠팡플레이 6부작에서는 이 모호한 경계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남교사와의 연애도 마찬가지다. 쿠팡플레이 6부작만 보면 유미는 교사와 연애한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허영심에 가득 찬 아이로만 묘사된다. 그러나 감독판에서는 유미의 감정이 어설프긴 하지만 진심이었을 수 있고 오히려 그 진심을 남교사가 이용한 것이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남교사는 유미와의 관계에 대해 거짓말을 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서사를 구성한다. 상호적이라고 믿었던 그녀의 어설픈 사랑의 감정은 여자아이의 간교한 유혹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유미는 과잉처벌로 학교에서 쫓겨난다. 첫 시작에서 유미는 타인의 거짓말로 뿌리 뽑히고 낙인찍힌다. 삭제된 장면 중 갤러리에서 일하던 유미가 인격적 모멸을 느끼고 갤러리 창밖에 내리는 눈을 공허하게 바라보는 장면은 감독판과 쿠팡플레이 판본의 차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서사적 정보와는 상관없다. 계급적 취향을 전시하는 하얗고 깔끔한 갤러리 실내,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에도 휴가를 받지 못하는 유미의 현실, 갤러리 오너인 현주(정은채) 가족이 남긴 와인을 마시며 즐거워하는 동료 직원들에게 느끼는 혐오감, 큰 유리창 밖으로 아름답게 떨어지는 눈은 아이러니를 만든다. 이 장면은 대사 한 줄 없이 현주의 여권과 증빙서류를 훔쳐 도망치려는 유미의 결심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든다. 부당함과 기만에도 묵묵히 일해 온 유미는 자신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으르고 부도덕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현주 가족의 공격에 자기 정체성과 존재가 텅 비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유미는 더 이상 자신을 알 수 없게 되며 자기 정체성을 계속 유지할 힘과 의지가 사라진다. 이 장면은 시청각적인 연출을 통해 관람자들이 유미의 복잡한 심정과 존재의 상태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결정적 장면이다. 또한 영상연출을 하는 감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증명한 장면이기도 하다. 쿠팡플레이 판본에서 정작 감독과 원작이 의도한 질문은 사라진다. 사실 유미뿐 아니라 대다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금수저로 태어난 현주, 정치인 남편, 선배 교수와 학장들은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인생이다. 거짓말을 한다 해도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체계 내에서 그것을 진실처럼 믿게 만들 수 있다. 그들은 자기의 속물적이고 악랄한 속성을 뻔뻔하게 드러내도 피해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눈치를 보지 않는다. 반면 감독판에서 묘사된 유미는 대학 불합격이라는 한번의 ‘실패’를 겪은 후 계속 눈치를 봐야 하는 삶을 산다. 그에게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선을 넘을 수 없다. 오히려 안나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유미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성찰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유미가 안나로 살기 시작하면서 제대로 사기를 칠 때 정말로 노력하고 좋은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유미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유학을 잘 보내고 대학원에서 좋은 강의를 했다는 것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위, 명문대, 명품 의상이다. 어쩌면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 사회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학력과 입고 있는 옷, 머릿결 같은 외양에 집착하는 것일 수도 있다. 원작인 <친밀한 이방인>의 정한아 작가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드라마는 원작보다 유미의 회복능력과 주체성을 강조한다. 유미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용기가 있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속죄하려 시도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결말에서 유미는 자신의 거짓말로 죽음에 이른 현주의 아이를 거둔다. 추운 캐나다 어딘가에서 유미는 이름 없는 사람으로 그래도 살아남으며 그제야 자신을 되찾는다. 6부작에서 자신들의 이름을 지우며 창작권을 되찾아 온 이주영 감독과 제잔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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