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모니
- 감독
- 맥스 윙클러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우마 서먼, 마이클 안가라노, 리 페이스, 레베카 머더, 제이크 M.존슨, 리스 톰슨, 브룩 블룸
얼마 전 배우 이영진 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영화 한 편이 있었다. <데우스 마키나>라는 영화다. 배우 이영진이 2000년대 중반엔 몸이 얼마나 지금보다 더 유연했던가, 액션 배우를 했다면 우마 서먼이 < 킬 빌 >에서 보여줬던 것 같은 뭔가를 보여줄 수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 도중에 나온 제목이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은 <데우스 마키나>가 대체 무슨 영화인가 싶을 거다. 물론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단어를 전 국민의 지적 유행어로 만든 진중권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아, 사실 진중권이 연출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영화가 나온다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서울이 일베와 깨시의 전쟁으로 불타오르는 가운데 홀연히 연기를 뚫고 청와대 앞뜰에 착륙한 경비행기 한대. 거기서 진중권이 한 손에 고양이를 안고 라파엘로 그림 속 천사처럼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리고, 갑자기 신서울시에 출몰한 사도와 대결을 펼치는데…. < 천사몽 >(2001)과 < 성냥팔이 소녀 >(2002) 아,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만, 여하튼. <데우스 마키나>는 지난 2002년 기획에 들어가서 영화의 절반을 촬영해 놓고 갑자기 중단된 미완의 영화다. 이 영화를 ‘삐용삐용B무비’의 마지막에 꺼내놓는 이유? 완성됐더라면 < 천사몽 >이나 < 성냥팔이 소녀 >를 뛰어넘는 한국 B급 SF영화의 계보를 훌륭하게 완성했을 거라는 아쉬움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이어지는 그 무시무시한 SF 블록버스터의 시대가 종종 그립다. 그 시기는 그러니까, 충무로로 쏟아져 들어오던 대기업의 엄청난 눈먼 돈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장렬하게 산화하겠노라는 이글이글한 야심이 베수비오 화산처럼 폭발하던 시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였고,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만듦새였으며, 하나같이 장르의 기본이 하나도 안 된 영화들이었다. 그런데도 그 시대가 그리운 이유는 정말이지 모두가 영화를 막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대기업이 시나리오 한줄 한줄 빨간 펜으로 검사하던 시절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괴작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어디로 향하는지 누구도 모르는 영화적 에너지의 시대였다. 맞다. 바로 그 시기 때문에 지금 한국 영화계가 이렇게 된 거다. 그런데도 그 시기가 그립다니 이거 참 사람이 경망스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리운 건 그리운 거다. 하여간 다시 <데우스 마키나>로 돌아가자면 이야기는 이렇다. 무대는 2003년이다. 서울의 한 고층빌딩을 과격한 테러 단체가 점거하는데, 한국 최대의 정보 통신 기업은 이걸 진화하기 위해 비밀 인간병기 조직을 투입한다. 작전을 완료하고 돌아가던 인간병기 조직의 미녀( 김정화 )는 헬기 추락으로 부상당하고, 이를 오토바이 광인 미남( 권상우 )이 집으로 데려가고, 미남과 미녀는 사랑에 빠지고, 그러나 인간병기인 미녀를 되찾기 위해 정보 통신 기업이 찾아오고, 그들을 질기게 쫓는 인간 최종병기는 배우 이영진 이었을 것이다. 만약 이 영화가 끝까지 만들어졌다면 그랬을 거라는 소리다. <데우스 마키나>를 만들다가 무릎을 꿇고 결국 사라진 감독은 이현하 다. 당시 영화잡지의 인터뷰들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유학파고, 구로사와 아키라에 관한 석사논문을 쓴 적이 있고, 프랑스영화자유학교(CLCF)에서 영화 실무를 공부했다. 나로서는 그의 경력으로는 도무지 이 영화를 가늠할 수 없다. 다만 몇몇 인터뷰들을 통해 대충 <데우스 마키나>가 어떤 영화가 됐을지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 총몽 >, < 공각기동대 >, < 아키라 > 등을 적극 차용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건 사실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나온 SF영화 중에서 이 세 작품을 적극 차용하지 않은 영화는 거의 없으니까. 형식적인 면에서 이 감독은 “< 와호장룡 >이나 < 매트릭스 >와는 달리 원심력과 중력이 느껴지며, 움직임과 기하성을 조화시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건 더더욱 모르겠다. 흠. 아마도 원화평의 안무와는 다른 안무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아니다. 나는 지금 <데우스 마키나>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꿈을 능욕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나는 중간에 엎어져서 영원히 스크린에 걸릴 기회를 박탈당한, 만약 만들어졌다면 정말이지 끝내주게 삐용삐용한 B무비가 됐을 이 영화의 운명을 슬퍼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거의 100억대의 제작비를 투여한 <데우스 마키나>의 시나리오에는 민병천 의 < 내츄럴 시티 >를 연상시킬 만큼 순결한 나이브함이 깃들어 있으며, 만약 만들어졌다면 적어도 <내츄럴 시티>와 함께 ‘한국 영화가 가장 도전적이었던 시절’을 기념하는 유물로 남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잊혀진 <데우스 마키나>의 이야기를 꺼낸 김에, 나는 몇 편의, 여러분에게 보여질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사라진 몇 편의 장편과 단편을 거론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도살자>( 김진원 , 2007) 먼저 김진원 감독의 2007년 작인 <도살자>다. 부천영화제에서 상영한 뒤 사라진 이 장편 고문 호러영화는 돼지머리를 가진 괴물을 주인공으로 스너프영화를 찍는 도살업자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 영화에서는 익히 볼 수 없었던 피와 배설물, 내장의 스펙터클이 카메라 바깥으로 진동을 한다. 돼지 발정제를 먹은 (가히 < 텍사스 전기톱 대살륙 >의 악마를 닮은) 괴물이 남자 희생자를 강간하는 장면에서 당신이 만약 B급 고어영화의 팬이라면 흐뭇해 했을 지도 모른다. 동시에 김진원 감독은 스산한 서울 교외의 배경을 통해 어떤 서정성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도 성공한다. 나는 김진원 감독이 꼭 다시 호러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 < 편대단편 >( 지민호 , 2005) 또 언급할 영화는 지민호 감독의 2005년 작 < 편대단편 >이다. 350만 원으로 10년에 걸쳐 완성된 이 영화는 당시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꽤 화제를 모았다. 혼자 연출, 제작, 각본, 편집, CG를 다 해내는 지민호 감독의 이 보기 드문 SF 단편은 일종의 ‘안티 < 스타워즈 >’로, 강제로 군에 징집된 뒤 기억을 삭제당한 식민지 행성의 젊은이들 이야기다. 물론이다. <편대단편>은 꽤나 허술하고, 종종 (이 분야의 오덕들이 만드는 영화가 대게 그렇듯이) 지나치게 진지하다. 하지만 지민호 감독이 좀 더 많은 투자를 받아 장편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이 생각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 불청객 >( 이응일 , 2010)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영화는 2010년에 나온 초저예산 SF영화 < 불청객 >이다. 만년 고시생과 백수들이 택배 상자에서 튀어나온 외계인을 만나는데, 알고 보니 이 외계인은 루저들의 생명을 적립해 늙은 거부들의 수명을 연장해주는 일종의 고리대금업자로, 주인공들이 계약을 거부하자 자취방이 통째로 우주로 날아가버린다. 이건 한마디로 말하자면 ‘88만원 세대의 SF 어드벤처’로, <이나중 탁구부> 시절 후루야 미노루를 연상시키는 정말 기가 막히게 엇나가는 풍자 코미디로 가득하다. 아니, 나는 <불청객>보다 더 웃기는 영화를 2010년 이후로 한국 영화계에서 본 적이 없다. <불청객>이 소규모 개봉관에서 약간의 화제를 모은 뒤 이응일 감독은 애니메이션 회사에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 지구를 지켜라 !> 이후 가장 발칙한 데뷔작이었던 <불청객>의 감독이 아직도 메가폰을 잡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슬플 따름이다. 자, ‘삐용삐용B무비’를 마치며 내가 바라는 소원은 두 가지다. <데우스 마키나>의 묻혀있는 필름만이라도 다시 발굴해서 단관에서라도 상영을 하는 것, 그리고 이응일 , 김진원 , 지민호 에게 어떤 독지가나 어떤 진취적인 제작자라도 나타나서 제작비를 좀 지원해주는 것. 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한국 B무비의 역사가 바뀔….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기념할 만한 B무비들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드디어 ‘짝퉁 이소룡’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마치 무간지옥처럼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나오는 건 자유가 아니, 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그냥 관두는 것으로(-_-;). 어쨌건 그 무수한 짝퉁들 중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배우는 바로,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이기도 한 거룡 (본명 문경석)이다. 이름과 외모만 보고 홍콩 배우로 착각할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물론 최초의 짝퉁 이소룡도 한국 사람이었다. < 사망유희 >(1978) 촬영 도중 이소룡이 죽자, 부랴부랴 외모가 비슷했던 한국 출신 무술배우 당룡 (본명 김태정)이 그를 대신하여 작품을 마무리했던 것. 거룡 과 당룡 사실 이소룡이 액션 연기와 별개로 점프나 회전에 뛰어난 배우는 아니었는데, 그가 느닷없이 날아차기로 천정의 전구를 깨고 텀블링까지 했다. 사정상 선글라스 낀 얼굴을 클로즈업할 수는 없지만, 개인기는 오리지널보다 짝퉁이 더 뛰어났던 그 기묘한 괴리감이랄까. 이후 장 끌로드 반담 주연 < 특명 어벤저 >(1986) 등에도 출연했던 당룡 은 안타깝게도 지난 2011년 채 일흔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떴다. 당시 한국의 이소룡을 발굴하려 했던 화천공사 박종찬 회장과 김시현 감독에 의해 발탁된 거룡 은 < 최후의 정무문 >(1977)을 시작으로 < 오대제자 >(1978), < 정무지보 >(1978), < 일소일권 >(1980), < 월광쌍수 >(1981), < 흑표비객 >(1981), < 뇌권 >(1983) 등 거의 대부분 김시현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홍콩과 대만으로도 진출해 ‘Bruce Lea’라는(아, 정말 어지럽다) 영어이름을 썼던 장정의와 함께 한 강홍 감독의 <쾌권괴초>(1980), 류충량 등과 함께한 하지강 감독의 <잡가고수>(1979) 등에 출연했다. < 일소일권 > 출연 당시의 거룡 냉정하게 비교하자면 이소룡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거룡 은 그보다 더 진한 얼굴과 능청스런 코믹 쿵후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키는 이소룡과 비슷하지만 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몸이라, 정리하자면 이소룡보다 더 진하고 굵었다고나 할까. 더 나아가 < 소림사 용팔이 >(1982)에서는 박노식 이 전형을 만든 전라도 용팔이와 이소룡 캐릭터가 결합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이소룡’이라는 기괴한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부분 처음에는 ‘뭐야, 하나도 안 닮았잖아!’라고 불평했다가 점점 그의 키치적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작품들 중 단연 압권은 이소룡이 < 사망유희 >에서 입었던(타란티노의 < 킬빌 >에서 우마 서먼도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그대로 입고 나온 < 일소일권 >이다. 영화 속 배경은 홍콩으로 설정돼 있지만 사실은 한국 대관령 주변인 어딘가에서, 한 폭력단의 착취에 정면 도전한 한국인 청년 한용( 거룡 )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그는 착취당하는 한 식당에 취직한 주방장으로 나와,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되기에 앞서 그 특유의 코믹 장면들을 열심히 보여준다. 김정용 감독, 정진화 주연 < 소림사 주방장 >(1981) 보다 한 해 앞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 소림사 용팔이 >도 그렇지만 거룡은 다른 액션 스타들과 달리 정진화(<소림사 주방장> < 산동 물장수 >)처럼 꽤 연기가 되는 배우라, 그런 킬링타임용 장면들이 딱히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목장에서 펼쳐지는 라스트 액션신이다. < 일소일권 > 철빠따 액션 눈여겨볼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이소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팔과 다리의 옆 줄무늬가 거룡 의 몸매만큼이나 상당히 굵어서 일단 ‘빵’ 터진다. 두 번째로 이소룡의 쌍절곤에서 더 나아가 야구 배트를 들고 ‘철빠따’ 액션을 구사하는 모습이 거의 경이롭다. 스파이크를 신은 상대가 흙을 긁어 뿌리는 가운데 난이도 높은 대결이 펼쳐진다. 쌍절곤이 아닌 철빠따라 지칭하여 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 파괴력 또한 엄청나다. 나중에는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비록 B급 ‘짝퉁’이라 불린다 하더라도, 그리고 ‘으악새 영화’라 천시당하던 우울한 시절에도, 어떤 식으로든 홍콩의 오리지널보다 하나라도 더 나은 것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눈물겨운 ‘독기’가 숨어있는 것. 날렵하면서도 파괴력 넘쳤던 거룡 의 액션영화들, 특히 김진태 감독의 < 월광쌍수 >(1981)나 김시현 감독의 < 흑표비객 >(1981)은 오히려 해외에서 DVD 출시돼 있다. 언급한 영화들 중 영상자료원에는 < 일소일권 > DVD와 VOD, < Enter the Invincible Hero >라는 제목으로 해외에서 출시된 <흑표비객> DVD, < 소림사 용팔이 > VHS가 있다. 특히 <흑표비객>의 경우 그 못지않게 화려했던 당대의 액션배우 왕호와 가공할 일대일 대결을 펼쳤다. 비록 거룡의 뜻하지 않은 급소 차기로 서둘러 대결이 마무리됐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프레디 VS 제이슨’ 같은 대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또한 <소림사 용팔이>에서 거룡과 멋진 호흡을 보여준 대머리 배우 최민규 (최민규가 거룡의 어깨 위에 올라탄 너무나도 멋진 스틸이 있다)가 <흑표비객>에서는 악당이었다. ‘王’자 불빛이 들어오는 거대한 펜던트를 목에 걸고 그만큼이나 거대한(물론 특수분장) 참외 배꼽도 인상적이었다. 그 배꼽이 ‘삼손의 머리카락’ 같은 역할을 하는지라, 비정하게도 거룡은 그 배꼽을 뽑아서 죽여 버렸다. 그야말로 이성적으로는 황당하지만 액션신의 퀄리티가 좋으니 그저 가만히 보고 있게 된다. B무비의 매력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이성과 분리된 텍스트 향유라고나 할까. < 소림사 용팔이 > 거룡 과 최민규 거룡 이영주 이석구 감독: 김시현 , 하지강 각본: 이정근 개봉극장: 세일극장 관람인원: 4922(서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