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 감독
- 초원
- 제작년도
- 1986
- 출연
- 장국영, 엽동, 왕조현, 매염방, 전청
* 사진: 필자 제공 연출배경 < 주희에게 >(2025)는 세 명의 연출( 장주희 , 부성필 , 김성환 ) 중 두 명이 출연자로 등장하며, 네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복잡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한 여성(장주희 감독)이 자신이 20대에 ‘혈액암’을 겪었음을 고백하며 시작된다. 사회로 복귀를 하게 된 무렵 만나게 된 동년배의 남성 다큐멘터리 감독(부성필 감독)과의 인연을 시작으로 카메라의 시선은 그가 기록하는 장애인(선철규)의 번지점프 도전기에서부터, 2014년에 발생했던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전인숙)의 삶을 보여주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를 통해 영화는 본격적으로 한국사회의 지표에 흐르고 있는 ‘고통’과 ‘연결’에 대해 말한다. 이야기는 전적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에 의해 기록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전하는 목소리는 혈액암과 가정폭력을 겪은 출연자이자, 연출인 여성, 주희(나)의 것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속의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관계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영화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의 삶, 세월호 유가족의 진상규명, 와상장애인의 번지점프 도전기, 제주 4·3 유가족 3세대의 삶이 연결된 복잡한 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코 복잡한 이야기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이것은 30대 여성이 자신의 삶의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목격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의 고통 속으로 녹아들기 내가 목격한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으로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본다’라는 수동적 태도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변화한 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연출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관찰자에서 화자로 거듭난다는 것은 ‘목격’이라는 경험이 나를 변화시킨 근본적인 이유이며, 이는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지로, 적극적으로 기록하는 행위와는 다르다. 나는 영화 속에서 단순한 목격자가 아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혈액암 환자’라는, 한 공간에 결박된 존재로서 철저하게 수동적이고 무력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진 목격자이며, 이 고정된 시선은 앞으로 진행될 영화 안에서 변화가 예상될 수밖에 없는 ‘화자’의 자리로 안착한다. 이 영화가 담아낸 화자의 출발점은, 고통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지독한 무력감의 고백에서 시작된다. 나는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경험하고 목격하면서도 그 일이 없는 듯 살아왔다. 사회는 가정폭력을 일상의 예외로서 묵인하고, 사회에서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로 지워버린다. 우리는 304명의 승객이 탄 배가 가라앉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보다’라는 수동적인 행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무언가를 보기 전과 본 이후의 세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주희’가 장애인자립센터에서 만난 장애여성 ‘은미’는 시설에서 선철규의 탈시설 다큐멘터리 < 지렁이 꿈틀 >(2010)을 보았고, 그 이후로 은미의 세계는 장애인 수용 시설에서 시설 밖으로 확장되었다. 나 역시 다큐멘터리를 통해 거리에서 투쟁하는 어떤 이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한다. 나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이가 거리에서 흘린 눈물은, 가정폭력 피해자가 집안에서 흘리는 눈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목격은 적극적으로 ‘나’를 그 프레임 속의 대상과 겹치며, 그 속에 나를 투사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어진다. 나에게 ‘본다’는 행위는 사건을 목격한 일시적 순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본다’는 것은 내가 목격한 사건이 나의 몸을 경유하여, 이전과 다른 몸을 만들어나간 과정이다. ‘본다’는 능동적 행위의 결과는 자신의 삶을 바꿔나가는 것이고, 더 적극적인 행위로서의 결과는 다른 사람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그런 맥락 속에서 ‘주희(나)’에게 ‘선철규(탈시설 장애인)’와 ‘전인숙(세월호 유가족 활동가)’의 존재는 자신의 문제에 온전히 투신하는 사람들, 즉 보이는 대상으로서 스스로 살아있는 이야기의 주체가 된 이들이었다. 이야기의 주체로서 나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주희에게>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로 인해 영화 속 ‘나(가정폭력 피해자, 암 환자)’의 이야기는 세 인물(다큐멘터리 감독, 장애인, 세월호 유가족)과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맺으며 단단하게 얽혀 들어간다. “본다는 것은 이처럼 보이는 대상을 거쳐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for us and In-itself) 가시적인 것들의 여정으로써, 우리는 봄을 통해 우리 내부로부터 발현하는 타인의 살을 마치 우리 자신의 것처럼 경험한다. 이 순간, 우리는 우리 ‘내부로부터’ 몰려오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 속에 살게 되고 그 속으로 ‘녹아들어가’는데, 이를 통해, 재난의 세계는 우리의 눈앞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 최종철, 『재난의 예술』, 그린비, 2024, 24쪽. 타인의 고통과 내 안의 슬픔이 하나의 ‘살’로 섞여 드는 이 감각은, 프레임 너머의 비극을 지켜보는 것에 머물던 나를 기어이 말하는 주체로 밀어 올리는 동력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이 내 안으로 밀려와 나를 바꾸어놓았다는 이 복잡한 연결고리를 과연 온전히 설득시킬수 있을까. 만약 관객들에게 이 예민한 호흡을 제대로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목격한 것을 말하는 ‘화자’로서의 내 존재 자체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영화’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서 목격자가 화자가 됨으로써 완성되는 이야기라면, 목격자가 화자가 된다는 이 단순한 전개는 결국 ‘주희’의 ‘성장 서사’가 되어야만 했다. 내가 본 것들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관객에게 증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장과 변화는 필연적으로 ‘미성숙’을 전제한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환자’라는 정체성에 ‘미성숙’의 이미지를 덧씌워야만 성립되는 이 서사 구조 안에서는, 어떤 결핍이 과거의 나를 형성했는지, 그리고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내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분명하게 전달해야만 했다. 친절한 전달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그러나 목격의 대가로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결핍된 존재로 규정해야 하는 벽에 맞닥뜨린다. ‘성장’이라는 단어는 기묘한 불쾌감과 함께 스스로에 대해 또다시 질문하게 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성장은 과연 필수적인 것인가? 고통은 늘 어떠한 성찰을 수반해야만 하는가? 나의 고백이 도리어 가정폭력 피해에 대한 인상을 수동적이고 고정된 틀에 가두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여성의 성장 서사를 ‘피해의 극복’이나 ‘수동성에서의 탈피’ 같은 전형적인 이야기로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위치에 자리매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것은 내 존재가 그저 고통의 ‘친절한 전달자’로 머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계속해서 의심하게 만들었다. 다큐멘터리의 바깥에서 그 안의 ‘결핍된 존재’인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고통을 전시하는 방식에 타협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태도로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의 나를 분리해 바라보는 이 낯선 응시는, 곧 목격하기 전의 나, 그리고 목격한 후의 나, 그리고 그걸 되새기며 말하는 현재의 나라는 여러 층위로 인해 영화 안에서 인물 간의 여러 시간을 교차시킨다. 기록의 시간, 투쟁의 시간, 깨달음과 과거로의 회귀… 영화 안의 이 여러 시간 속에서 나의 위치는 그들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깨닫는, 자책하는, 스스로 질문하는, 통찰하는 여러 시점에 놓인다. 이로 인해 ‘주희’의 내면과 인식의 변화는 영화의 타임라인을 따라 유동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본다는 것’의 윤리와 연대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수많은 질문과 의심들은, 영화가 상영되고 다양한 관객들과 마주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 왜 지금 괜찮은지 묻는 이들에게 상영을 통해 관객분들을 만나다 보면 장애인의 번지점프에 대해, 세월호 진상규명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는 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10년에 가까운 긴 기록이 ‘삶’이라는 흐름의 속도와 동일하게 압축되어 있을 뿐, 어떤 의도적인 결말을 관객에게 제시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답변을 들은 관객들로부터 나는 그들이 안도하기도 하고, 더더욱 연대하겠다고 다짐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중 어떤 관객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가정폭력은 트라우마가 심하기 때문에 영영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 질문은 마치 영화 밖, 현재의 나에게 “왜 지금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있는지”에 대해 묻는 날카로운 의문 같았다. 그 의문 앞에서 나는 영화 안에서 피해자로서 관객에게 제대로 된 공감과 연결 지점을 설명해내지 못한 것인지 자책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모두가 저마다 그런 우려와 불안의 지점을 안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연결되었고, 관객분이 내비친 날카로움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불안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관객분이 제시한 솔직한 의문 속에서 나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여전히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더 명확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불완전한 존재로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오직 폭력에 대한 응징과 가해자 처벌이라는 명확하고 클리셰적인 결말로만 해소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 서사의 완결이 지닌 본질은, 사회와 국가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는 제도를 통해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이상 언제나 미완으로 남을 뿐이다. 국가폭력을 비롯한 ‘피해자’라는 정체성과 그 삶의 맥락을 가진 모든 존재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제도적 해답이 제시되지 않는 한, 피해자를 향한 사회적 시선과 인상은 언제까지나 머릿속에 가득 찬 답답함과 같은 브레인 포그 현상처럼 뿌옇고 불명확한 인상만을 남겨둔 채 방치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안개 속을 우연히 뚫고 나왔을 뿐임에도, 나는 그것이 과연 ‘성장’이 될 수 있는지에 여전히 의문을 품는다. 아직도 내가 ‘성장’했다는 표현에 대해, 그리고 이 영화 속 나를 ‘성장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로 소개하는 것에 대해,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분명한 변화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성장한 주희’이자, 30대 여성으로서, 이 불평등한 세계 속에 굴하지 않는 동등한 스피커(화자)가 되어 주어 고맙다는 말로 들리는 착각과 환청 속에서, 나는 ‘여성’ 화자로서의 나의 위치성에 대해 고민하고 분노하고 인정하는 분열적 상태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분열이야말로 ‘존재의 바로 보기’를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만들던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했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다시 내릴 수 있었다. 나를 결핍된 존재로 규정해야 했던 것, 변화와 성장을 증명해야 했던 것으로 비롯된 나의 불편감에 대한 답을 말이다. 나는 비로소 내 존재 자체의 당혹스러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수치의 반복을 넘어, 당신의 존재가 구원이 될 때 나의 존재를 드러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비롯해 나의 고통을 목격한 모든 이들의 당혹스러움을 감당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가정폭력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는지 몰랐다’라는 반응으로부터 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감각을 맞닥뜨려야 했던 그 순간 속에서 알 수 있었다. 결핍된 존재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수치심을 동반하며,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지독한 부정의 시선과 언어들 속에서, 드러내기와 수치의 반복 속에서 나와 당신의 존재가 결국 우리 모두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선언할 수 있는 강력한 힘, 나는 그 힘이 바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라고 말하고 싶다. 다큐-코멘터리: 프레임 밖의 문장 타인의 삶이 모이고 흩어지는 한 순간을 카메라로 붙잡기로 결심한 또 다른 순간에 대해, 프레임 밖에서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장주희(여성인권활동가, 영화감독) l 장애인 대상 미디어 교육과 여성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 장애인, 미디어, 교육 >(2022), <주희에게>(2025)를 만들었다.
사진: 출판사 무제 가끔은 혼자서 몰래 이와 같은 생각들을 해왔다. 영화 시나리오는 영화에게 마치 엄마 같은 존재라고. 영화 촬영장에서 자신만의 일을 해내고 있는 이런저런 자식들은 역시 엄마가 있었기에 거기 있게 된 거라고. 엄마가 자식을 어찌 낳아 길러내는 건지에 대해 일일이 거론할 수 없다고 느끼듯이,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가 쓰이는 과정은 실로 재현이 불가능한 작업이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이 대체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시나리오를 써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모든 언어적·비언어적 창작의 속성이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중 특히 영화 시나리오 작업은 비유하자면 마치 밤사이 꾸는 꿈 같다. 아니, 밤사이 지나간 꿈을 일상과 인생에 연결시켜 플롯화하려는 편집증적인 집착에 가깝다. 이 과정은 환한 조명 아래 카메라 앞에서 기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거칠고 어두운 침묵의 방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대개 주목받지 못한 채 잊히거나 심지어 무시당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들의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언제부턴가 나는 이것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불운이자 불행이라고 생각해왔다. 또한 이 모든 불리함과 아픔을 작가가 자기만의 것으로 기꺼이 끌어안을 때, 그때야 비로소 그에게는 더없는 보상이라 할 만한 삶의 아이러니와 예술의 신비로 가는 비밀스러운 문이 열린다고도. 좀 더 구성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해보자면, 영화 시나리오에는 어떤 의미에서건 작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고유한 인생의 단면뿐 아니라, 그를 스쳐 가는 여러 만남들, 인연들, 인연이 아닌 것들, 실제의 사건들과 환상 혹은 망상 속의 기미들이 모두 담기기 마련이고 담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허구의 영화를 최대한 진짜 삶 같이 보이게 하기 위하여,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매순간 여러 사람이 되어야 하며, 동시에 여러 사람을 보는 카메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로 집필 중인 영화 시나리오 작가는 매순간 자신을 부수고 또 부순다. 얼마나 부술 수 있을지에 승부가 달려있다. 혹자는 나에게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작가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이 마치 정신분열증 환자가 겪는 일과 비슷하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나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의 말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마도 이와 같은 유체이탈의 무한반복과정을 포착해내거나 이해해내는 일은, AI 첨단 장비를 구비한 미래의 뇌신경과학자나 도스또예프스키 급의 작가에게 맡겨져야 할 법도 하다. 영화제작현장을 찍는 메이킹필름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정말로 이와 같은 일을 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이해하는 일에 한 획을 긋는, 꽤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과학 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오랫동안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온 일이기에 더욱 그럴 것 같다. 나는 가끔은 혼자서 몰래 이와 같은 생각들을 해왔다. 영화계라는 곳, 보이는 게 너무도 중요한 세계에서 하필 영화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애초에 영화는 작가의 고독한 삶에서, 그의 일상을 지나쳐가는 모든 유의미하고 무의미한 사물과 인연 속에서 절묘하게 잉태된다. 그것은 언어로 쓰여 책이 되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되며, 그 사람들이 붐비는 촬영장이 된다. 그곳에서 카메라를 통해 결코 만질 수 없으나 만져질 듯 생생한 영상으로 기록된다. 이 영상은 마침내 무수한 디지털 입자가 되어 하얀 화면 위로 투사되고, 화면 앞에 앉은 익명의 인간들의 망막을 뚫고서 그들의 몸과 삶 속으로, 어쩌면 영혼 속으로 침투한다. 그러므로 나는 영화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곳은 결국 우리들 각자의 인생 속에서 라는 생각을 갖게 됐는데, 이것은 점점 하나의 견해라기보다 신념에 가까운 것이 되어갔다. 나는 어느새 영화는 잔상이라는 믿음을 갖게 됐고, 어느 날부턴가는 우리 안에서 영화의 잔상이 우리 각자의 삶과 섞이고 섞여 뒤죽박죽인 상태가 될 때, 그때야 비로소 영화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어졌다. 책 『내 모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생각의 바탕에서 생겨났다. 이 책의 집필 과정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아카이빙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바탕이라고 본다. 『내 모든 것』 중 인물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언급한 작품들 (상) <걸어도 걸어도>, <애정의 조건> (사진: IMDb , Photo by Archive Photos/Getty Images, © 2012 Getty Images) (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코요테 어글리> (사진: IMDb , © 2000 Buena Vista Home Entertainment) 좀 더 용기를 내서 첨언하자면, 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대한 본질적 이해와 현실적 지지 없이 영화 및 기타 영상산업의 인간다운 도약을 기대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AI가 다 할 수 있겠구나, 싶은 방향으로 퇴행 중이라고도 본다. 그러나 영화라는 것이 단지 영상 오락물 내지 서비스 업종이 아니라 예술일 수 있다고 믿는 어떤 인간이 있는 한, 그는 기필코 자신만의 고유한 인생을 스쳐 갔던 기억과 상상을 통하여서 스스로에게 운명 같은 영화 시나리오를 써내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는 지금과 같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는 꽤 뼈아픈 전투가, 아마도 산업적으로 패배할 확률이 높은 무모한 도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여 나는 이 시대의 자본과 시스템에게 굳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만약 인간만이 이룰 수 있는 예술에 투자하고 싶다면? 골방에 처박힌 가난한 작가를 더 자주, 더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마치 <삼체>(2024)에서 인류의 미래를 미리 사냥해 둔 외계인이 등장하기 전에 면벽수행을 할 현자들을 골라 침묵의 인류구조 시나리오를 비축해달라고 강제하듯이. 그러나 유튜브 쇼츠로부터 도파민을 공급받기 위하여 어둠 속 이부자리에서 녹내장의 위험을 무릅쓰는 현대의 인간들이 과연 그와 같은 투자를 감행할 투지를 품을 수 있을런지? 내 판단으로는, 영상예술의 미래는 당분간 AI에 삼켜졌다고 본다. 한편 이후 AI의 인격적 고민이 가시화될 세계에 대해서는, 내 능력 밖의 일이란 낙관론을 남겨두겠다. 그러므로 책 『내 모든 것』이라는 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취재일기, 이런저런 사람들의 삶과 영화에 대한 고백들을 담아낸 우연하면서도 필연적인 순간들의 기록,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각각의 의미 있는 단편으로 구성해보고자 애를 쓴 창작노트, 그 창작의 과정 속에서 작자 스스로의 삶을 거울로써 이용하고 들여다보고자 한 고군분투기는 그저 티끌 같은 기록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기록은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유일한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이란 본래 이처럼 개인적이고 유일한 것일 수밖에 없음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쓰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그저 평범한 에세이나 인터뷰집이 아닌 단편소설집 같다고 느끼곤 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래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작가 자신과 작가 주변의 삶을 바탕으로 허구의 주인공을 찾아내고 그의 삶을 진짜처럼 그려내는 것이니까. 책 『내 모든 것』의 맨 처음 가제는 “삶을 이기는 영화”였다. 실은 그 시절 나 자신에게 던지고픈 질문이었다. 영화라는 게 과연 삶을 이기나? 혹은 영화라는 게 과연 삶의 고통을 이기게 해주나? 영화라는 게 내가 이렇게 기를 쓰고 진을 빼며 만들어야 할 만큼 가치가 있는 건가? 그럴 만큼 영화라는 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필요하긴 한 건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 늘 이러한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다보니, 집필 중에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 취재를 하다보면 자연스레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됐고 묻게 됐다. “살면서 영향을 받은 영화가 있나요? 그게 영화의 이야기든 영화 속 한 장면이든, 인생에 남아있는 어떤 영화가 있나요?” (사실 이 책에 ‘사람들의 진짜 인생영화에 대한 이야기’라는 이름표를 달아준 이는 작가가 아닌 이 책을 펴낸 무제출판사였음을 여기서 밝혀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책의 소재가 되기에는 너무 보잘것없거나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만큼 자유로웠다. 그들이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익명의 장치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책 속 ‘노아’와 ‘세라’라는 가명으로 등장하는 두 여성과의 잇단 만남이었다. 둘 다 집필 초반에 우연한 기회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왠지 들어볼 만한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예감에 인터뷰를 청했는데, 각각 성폭력 피해 경험과 자살 중독을 앓은 경험을 털어놓으며 내 작은 머릿속에서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를 가져다줬다. 이곳에는 노아의 이야기를 남겨두려 한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중 / 사진: IMDb( 1 , 2 ) 노아는 조기유학시절 덜 신중했던 성관계로부터 비롯된 집단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로서, 이후 성(性)적으로 문란하고 예민하고 특수한 각종 시도와 방황을 통해 생존해가고 있었다. 나에게 그것은 그녀 안에서 필연적인 서사로 느껴졌다. 좀 더 과감히 말하면, 고통으로 각인된 자기 몸의 한계를 부수려는 존엄한 투쟁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영화 < 릴리슈슈의 모든 것 >(이와이 슈운지, 2001)에서 집단 성폭력의 피해를 입은 후 자살을 하는 여고생, 아오이 유우와 친구가 되는 상상에 빠져들곤 했는데, 단지 그 영화 속으로 들어가 그녀 곁에 있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그냥 피해자가 한 명 느는 거죠. 그렇지만 덜 외롭잖아.” 나는 노아의 초현실적인 연대의식에 충격을 받았으며, 그녀가 혼자였던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렸을지에 대해 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몸이 조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껴 원고를 만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헤맸다. 내 글의 처음 엔딩은 노아가 아오이 유우와 함께 무해한 동네 청년들 속에 섞여 마음껏 수영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때는 그저 그녀의 몸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물살 속에 잠겨 있기만을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글쓰기를 마친 후 거듭해서 읽어볼수록, 이와 같은 결말은 용맹했던 노아의 고백에 비해 너무나도 유치한 것 같았다. 어느 나른했던 저녁에, 나는 친구에게 원고를 보여주며 이렇게 고백했다. “사실 노아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영화 속에서 연이 날던 그 언덕이 더 무서워졌어. 영화에서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아이들이 빨간 연을 날리고 있잖아. 너무 착해 보이고 너무 잘 웃고 너무 평범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딱 일본사람들 같잖아. 태양 같은 욱일기를 휘날리면서 해맑게 사람을 죽였던 그 사람들 말이야. 내 말은 일본인이라서 그렇다는 게 아니고, 일본이든 어디든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는 사람 같다는 거야……. 그런데 있잖아, 나한테는 그게 마치 영화 같기도 하거든. 영화라는 게 원래 너무 예쁘고 너무 멋지고 그래서, 그냥 그것 자체로 충분해보일 때가 많잖아. 심지어 영화 속 어떤 장면이나 인물이 내 영혼을 병들게 해도, 그게 나보다 근사해보인단 이유로 내가 거기에 그냥 머무르고 싶을 때가 있잖아. 주저앉아버리기도 하잖아. 혹시 노아에게 <릴리슈슈의 모든 것>이 그런 거 아닐까? 자꾸 그런 걱정이 들어서 그랬는지, 나는 이 이야기를 쓰는 게 너무 힘들었어. 사실 나는 노아가 그냥 또 한 명의 피해자로 그 영화 속에 들어가는 게 싫어. 나는 노아가 이제 그만 그 영화에서 나왔으면 좋겠거든. 아오이 유우의 손을 잡고서 같이 탈출했으면 좋겠거든. 내가 영화인이랍시고 영화에 대해 이런 책을 쓰고는 있지만, 영화 같은 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 노아가 사는 게 중요하지!” 그래서 나는 노아와 아오이 유우를 그 영화로부터 탈출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의 진짜 인생영화에 대한 이야기, 책 『내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됐다. 2026년 4월, 오정미. <릴리슈슈의 모든 것> 중 (사진: IMDb ) Behind the Book : 저자에게 아직 남아있는 이야기 한 사람의 질문이 늘어나고 깊어진 끝에 수백 쪽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마침내 책 한 권으로 독자에게 닿은 저자가, 치열하고도 가치 있던 여정을 들려줍니다. 오정미(영화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 l 영화 < 버닝 >(2018), < 심장소리 >(2022), <가능한 사랑>의 각본을 썼다. 책 『내 모든 것』을 썼다.
<축제> 중 (사진: 영화방) 박광수 감독의 < 칠수와 만수 >(1988)의 후반부에는 안성기 배우와 박중훈 배우가 연기한 두 주인공이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우뚝 솟은 거대한 광고판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는 광고판 도색 작업을 해야 했지만, 두 사람은 작은 저항의 의미로 그곳에 올라 소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본다. 도색 작업을 하며 우연히 만난 이 두 남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장 고통스러운 좌절감과 굴욕감만은 서로에게 숨겨왔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사회로부터 외면받았으며, 안정적인 삶을 구축할 공정한 기회조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그러나 광고판 꼭대기에 올라서서야 칠수(박중훈)는 처음으로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실패자이며, 지금까지 했던 모든 자랑이 거짓이었음을 만수(안성기)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라고 말한다. 칠수가 말을 이어가는 동안, 안성기의 얼굴에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난다. 턱은 굳게 다물어지고 눈빛은 무언가에 집중한 듯 강렬해지는데, 말 한마디 하지 않더라도 그 표면 아래에서 감정의 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동료를 향한 연민과, 사회적 불평등을 견디며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동시에 포착해내는 연기를 이토록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잠시 후, 그는 일어서서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외친다.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 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이 장면은 198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다. 만수와 칠수는 대중적인 주류 영화에서 대개 주목받지 못하는, 억압받고 소외된 인물들을 대변한다. 그들은 발 아래 도시를 향해 자신들의 좌절과 분노를 외침으로써, 문자 그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들의 관점을 드러내며 말할 권리를 주장한다. 유사하게, 1980~90년 세대의 영화인들은 주류 사회가 망각 또는 묵살해버리는 인물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려는 열망에 이끌려 창작에 돌입하곤 했다. 안성기는 만수 역을 맡기에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인물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씁쓸한 결연함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한편, 그 내면에 자리한 부드럽고 연민 어린 면모를 은연중에 드러냈다. 사실 안성기는 그 시기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러 명의 주인공을 맡기에도 아주 적합했다. 그는 특정한 유형의 인물만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었고, 전형적인 “무비스타(movie-star)”로서의 외모나 뚜렷하게 고정된 스크린 이미지를 지니지도 않았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그가 연기한 배역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게 만드는 데 어떤 배우들보다 탁월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꿈과 두려움, 야망, 나약함, 그리고 미덕을 스크린 위에 충실히 구현해냈다.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 깊고 푸른 밤 >(배창호, 1985)의 능수능란한 사기꾼, <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1987)의 수줍은 대학생, < 투캅스 >(강우석, 1993)의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그는 각 인물을 공감 가능한 생생한 존재로 그려냈다. 1950~60년대에는 배우 최은희 가 이러한 방식으로 관객들과 연결되었는데, 한 세대의 여성들은 그녀가 연기한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과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며 성장했다. 1980~90년대에 그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 배우는 단연 안성기였다. 세월이 흐르며 영화계 안에서 그의 위치는 달라졌지만, 중요성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야기에 즉각적으로 무게감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대 배우에게서도 최상의 연기를 끌어내도록 했기에, 감독들은 그와의 작업을 고대했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폭넓은 역할을 소화했으며, 대형 블록버스터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작업에 참여했다. 신인 감독이나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하는 프로젝트와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배우 생활 전반에 걸쳐 수많은 감독과 생산적인 협업 관계를 맺었다. 그중 단 25명의 이름만 꼽아보더라도 김기영 , 임권택 , 배창호 , 이장호 , 이두용 , 유현목 , 이원세 , 정지영 , 강우석 , 이명세 , 박광수 , 박종원 , 장선우 , 이현승 , 류승완 , 김성수 , 오승욱 , 이정향 , 이준익 , 김지훈 , 신연식 , 장률 , 김주환 , 박흥식 , 그리고 김한민 의 영화에 출연했다(여기에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분께 양해를 구한다). <고래사냥>, <기쁜 우리 젊은 날> 중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양기주) 그는 영화계 내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스크린쿼터 제도 수호에 앞장섰고,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 및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다하기도 했다. 영화계 내에서의 이러한 위상과 배우로서 이룬 독보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그를 직접 대면한 이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의 겸손함과 너그러움이었다. 그는 스타로서의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었음에도 결코 유명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나긋한 목소리로 조용히 행동하며 스포트라이트를 찾아나서지 않았음에도, 그는 영화계의 기둥이자 많은 이들이 우러러보는 리더였다. 영화계의 여러 행사에서 그가 지녔던 존재감은 동료 영화인들에게 깊은 그리움을 자아내겠지만, 다행히 한국영화 속 그의 연기는 여전히 누구나 접하고 즐길 수 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상징적인 역할 중 몇 가지만 고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중 지극히 주관적으로 선정한 일부 목록을 아래에 적어보고자 한다. 물론 그의 경력이 시작하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김기영 감독의 < 하녀 >(1960)에서 보여준 아역 연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보다 전에 김기영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 10대의 반항 >(1959)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안성기는 이 작품으로 소년 특별연기상을 받았지만, 작품의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그는 1960년대에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주로 작은 역할들을 맡아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성인 배우로서의 도약은 1980년대 초에 이뤄졌는데, 이장호의 < 바람불어 좋은 날 >(1980), 이원세의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1981), 임권택의 < 만다라 >(1981), 배창호의 < 꼬방동네 사람들 >(1982)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각 감독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주요 작품들이다. 특히 배창호 감독과 함께하며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뒀는데,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노숙인을 연기한 < 고래사냥 >(1984),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한 <깊고 푸른 밤>(1985), 그리고 청춘의 성장과 관계를 다룬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이 대표적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제적인 명성을 쌓게 된 임권택 감독 역시 < 안개마을 >(1982)부터 < 태백산맥 >(1994), < 축제 >(1996), < 취화선 >(2002), 그리고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 화장 >(2014)에 이르기까지 그와 지속적으로 작업했다. (상) <하녀>, <바람불어 좋은 날> / (하) <안개마을>, <화장> (사진: 한국일보, 백영호)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데뷔한 사회의식 있는 감독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로 불리는 창작자들 역시 안성기와 작업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앞서 언급한 <칠수와 만수>와 박광수 감독의 또 다른 주요작인 < 그 섬에 가고싶다 >(1993) 외에도, 자본주의를 풍자한 장선우의 < 성공시대 >(1988), 이명세의 파격적인 데뷔작 < 개그맨 >(1988), 그리고 날카로운 정치적 통찰을 보여준 정지영의 < 남부군 >(1990)과 < 하얀전쟁 >(1992)이 있었다. 동시에 그는 강우석의 메가 히트작 < 투캅스 >(1993)를 통해 자신의 코믹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감독들은 그를 신뢰했기에, 때로 이례적이거나 의외의 역할에 캐스팅하기도 했다. 이정향의 로맨틱 코미디 < 미술관 옆 동물원 >(1998)에서의 엉뚱하고 유쾌한 모습이나, 이명세의 < 인정사정 볼것 없다 >(1999) 속 잔인한 살인마로의 등장, 전만배 감독의 < 피아노 치는 대통령 >(2002)에서의 대통령 연기가 그 예다. 또한 오랜 동료인 박중훈과 호흡을 맞춘 가슴 따뜻한 음악 드라마 < 라디오스타 >(2006), 정지영의 법정 드라마 장르인 < 부러진 화살 >(2011)에서의 강렬한 변신, 그리고 한국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인 강우석의 < 실미도 >(2003)에서 보여준 군 지휘관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경력의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도 그의 독특한 목소리는 대규모 흥행작인 < 타워 >(2012), < 한산: 용의 출현 >(2022)부터 저예산 독립영화인 < 필름시대사랑 >(2015), < 아들의 이름으로 >(2020), < 카시오페아 >(2022) 등 영화계 전반에 걸쳐 친숙하게 자리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대담하고 창의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안성기는 영화라는 예술을 사랑했다. 그가 여러 번 직접 언급해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그의 행보가 한국영화를 향한 깊은 헌신을 분명히 보여줬기에 알 수 있다. 그가 별세하면서 한국영화계는 길을 밝혀주던 등불 하나를 잃었으며, 그가 없는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성공시대> 중 (사진: 정기성) 달시 파켓(Darcy Paquet / 영화평론가·번역가) l 영화평론가이자 강연자, 번역가, 그리고 영화제 컨설턴트로서 25년 넘게 한국영화를 지켜봐 왔다. 저서로는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가 있다. * 위 원고는 필자가 영문으로 작성한 아래 원고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Remembering Ahn Sung-ki There is a moment towards the end of Park Kwang-su’s 1988 film Chilsu and Mansu when the two lead characters – played by Ahn Sung-ki and Park Joong-hoon – are sitting on the top of a giant billboard at the Express Bus Terminal in Gangnam. They are supposed to be painting the billboard, but in a small act of defiance, they have instead gone up to drink soju and look out over the city. These two men, who met by chance on painting jobs, have become work partners, but nonetheless they have hidden their most painful frustrations and humiliations from each other. Each of them for various reasons have been shunned by society, and denied a fair shot at building a stable life for themselves. But atop the billboard, Chilsu (played by Park Joong-hoon) starts to speak honestly from his heart for the first time. He confesses to Mansu that he’s a failure, that the bragging he has been doing up to now has been lies. “I’m a hopeless guy(나 희망 없는 놈이에요),” he says. As Chilsu is speaking, a slow transformation takes place on Ahn Sung-ki’s face. His jaw locks, his eyes take on a focused intensity, and although he doesn’t say a word, we can see a storm brewing just beneath the surface. Not many actors could have done this so well, capturing both the compassion he feels for his colleague and his long-suffering outrage at society’s inequities. A moment later, he stands up and shouts to the city below: “All you upper-class, educated, well-off bastards of Seoul, listen to me now! I'm going to speak out too, from this high place here!” "야! 서울에 있는 높은 놈, 배운 놈, 잘난 놈, 있는놈, 모두 다 내 얘기를 들어봐라! 나도 말 좀 해야겠다! 이 높은 데 있을 때 큰소리 좀 쳐보자!" This is an iconic and deeply symbolic scene for 1980s-era Korean cinema. Mansu and Chilsu represent the kind of downtrodden, disenfranchised characters that are usually overlooked by popular mainstream cinema. By shouting their frustrations and complaints to the city below, they are quite literally “finding their voices,” expressing their point of view and insisting on their right to speak. In a similar way, a whole generation of filmmakers in the 1980s and 1990s were motivated by the desire to give a voice to the sort of characters that mainstream society forgets or simply ignores.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su. He convincingly portrays the hard, bitter determination of his character while giving hints of a softer, compassionate side underneath. But actually, Ahn Sung-ki was the perfect choice to play many of the protagonists of that decade’s cinema. He wasn’t known for playing one particular character type. He didn’t have movie-star looks, or a clearly-defined screen image. But what he did better than anyone else was to make audiences see themselves in the roles he played. He took the dreams, fears, ambitions, weaknesses and virtues of ordinary people, and represented them faithfully on the screen. Whether it was the smooth-talking grifter moving to California and pursuing the American Dream in Deep Blue Night , the shy university student in Our Sweet Days of Youth , or the corrupt policeman in Two Cops , he portrayed each character in a manner that made them vivid and relatable. In the 1950s and 1960s, it was the actress Choi Eun-hee who connected with audiences in this way: a generation of women grew up seeing themselves and their experiences in the many different roles that she played. But in the 1980s and 1990s, the actor who did this best of all was Ahn Sung-ki. As he grew older, his position within the film industry changed, but not his importance. Directors loved to work with him, since his presence in a film immediately gave the story more weight, and he could bring out the best in his co-stars as well. He took on a wide variety of roles, from supporting to leading characters, and worked on everything from major blockbusters to low-budget independent films. He didn’t shy away from working with new directors or less prestigious projects.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he formed productive working relationships with a huge number of directors. To choose just 25 names, he appeared in films by Kim Ki-young, Im Kwon-taek, Bae Chang-ho, Lee Jang-ho, Lee Doo-yong, Yu Hyun-mok, Lee Won-se, Chung Ji-young, Kang Woo-suk, Lee Myung-Se, Park Kwang-su, Park Jong-won, Jang Sun-woo, Lee Hyun-seung, Ryoo Seung-wan, Kim Sung-soo, Oh Seung-wook, Lee Jeong-hyang, Lee Joon-ik, Kim Ji-hoon, Shin Young-sik, Zhang Lu, Kim Ju-hwan, Park Heung-sik, and Kim Han-min(with apologies to the many other names I’ve excluded). He also played important roles in the film community, serving as chairman of the Korean Film Actors Association, advocating for the Screen Quota system, serving as Deputy Director of the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as Festival Director of the Asiana International Short Film Festival. And yet despite his stature in the industry and his unmatched accomplishments as an actor, the quality that most impressed people who met him in person was his modesty and generosity of spirit. He didn’t behave like a famous star, even though he possessed a star-quality charisma. Soft-spoken and never seeking the spotlight, he was nonetheless a pillar of the film community, looked up to as a leader. His presence at film events will be sorely missed by fellow filmmakers, but thankfully his performances in Korean films can still be accessed and enjoyed by anyone. Making a list of his most iconic roles is difficult, because there are so many of them to choose from. But I will attempt to make a partial, highly subjective list below. Of course, going back all the way to start of his career, we have his performance as a child actor in one of the most famous Korean films of all time, Kim Ki-young’s The Housemaid (1960). It’s truly regrettable that a copy no longer exists of his previous collaboration with Kim Ki-young, Defiance of a Teenager (1959), which screened at the San Francisc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and where Ahn Sung-ki won a special award for his acting. He would go on to act in more than 50 films in the 1960s, often in small roles, but his breakthrough as an adult came at the start of the 1980s in works such as Lee Jang-ho’s Fine Windy Day (1980), Lee Won-se’s A Dwarf Launches a Little Ball (1981), Im Kwon-taek’s Mandala (1981), and Bae Chang-ho’s People in a Slum (1982) – all major films that helped to establish the reputation of their directors. It was with Bae Chang-ho that he would enjoy some of his biggest commercial successes, especially in Whale Hunting (1984) where he played a kind-hearted beggar; the smash hit Deep Blue Night (1985) and the coming-of-age relationship story Our Sweet Days of Youth (1987). Director Im Kwon-taek, who became internationally recognized over the next two decades, often worked with Ahn Sung-ki as well, from films like Village of Haze (1982) to The Taebaek Mountains (1994), Festival (1996), Chihwaseon (2002) and the director’s final film Revivre (2014). The group of more socially-minded directors who debuted in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 often referred to as the Korean New Wave – were just as eager to work with Ahn Sung-ki. Aside from the aforementioned Chilsu and Mansu and another important work by Park Kwang-su, To The Starry Island (1994), there was Jang Sun-woo’s capitalist satire Age of Success (1988), Lee Myung-Se’s groundbreaking debut film Gagman (1989), and Chung Ji-young’s politically incisive North Korean Partisans in South Korea (1990) and White Badge (1992). At the same time, Ahn showcased his comic abilities in Kang Woo-suk’s smash hit Two Cops (1993). Directors trusted Ahn Sung-ki enough to cast him in somewhat unusual or surprising roles, such as his whimsical appearance in Lee Jeong-hyang’s romantic comedy Art Museum by the Zoo (1998), his turn as a vicious killer in Lee Myung-Se’s Nowhere to Hide (1999), playing the nation’s president in director Jeon Man-bae’s Romantic President (2002), his role opposite longtime collaborator Park Joong-hoon in the heartwarming music drama Radio Star (2006), his powerful turn in Chung Ji-young’s court drama Unbowed (2011) and his unforgettable role as a military commander in Kang Woo-suk’s Silmido (2003), the first Korean film to sell 10 million tickets. Even to the later stages of his career, his distinctive voice was a familiar presence in big-budget hit films such as Tower (2012) or Hansan: Rising Dragon (2022), to low-budget indie features like Love and… (2015), In the Name of the Son (2020) and Cassiopeia (2022), and everything in between. He was daring and creative in choosing films up to the very end. Ahn Sung-ki loved the art of cinema. We know this not because he said it in so many words, but because over decades, his actions demonstrated his deep commitment to Korean cinema. With his passing, the film industry has lost one its guiding lights, and it will not be the same without him. Darcy Paquet(film critic/translator) l As a film critic, lecturer, translator and film festival consultant, I have been following Korean cinema for over 25 years. Author of New Korean Cinema: Breaking the Waves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