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공주
- 감독
- 박세영
- 제작년도
- 2024
요즘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쓰나미와 허리케인, 토네이도, 태풍 같은 자연재해와 원전 폭발 같은 재앙 앞에 인간과 자연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는 애니메이션이 한 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 도깨비 공주(모노노케 히메) >가 그것이다. 1997년 개봉 당시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이름난 산의 신이었던 멧돼지가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재앙신이 되어 주인공 ‘아시타카’의 마을을 덮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아시타카’의 희생으로 마을을 재앙신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지만, 장차 마을을 이끌 ‘아시타카’는 재앙의 저주를 받게 되고, 그가 재앙의 원인을 찾아 길을 떠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아시타카는 사슴을 타는 자이며, 스스로 저주받은 운명을 받아들인 자이며, 재앙의 저주를 풀려는 자로 직관과 영감을 가진 견자 혹은 무당으로 그려진다. 영화의 제목이자 여주인공의 이름인 도깨비 공주인 ‘산’은 인간에게 버림받고 들개에게 키워져 시시가미(시시神)를 지키는 신들의 전사이다. 이 영화의 인물관계와 갈등관계를 살펴보자. 인간 문명의 신봉자인 여장부 에보시와 조정의 하수인인 ‘지코’, 즉, 자연에 대한 개발의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문명을 상징하는 에보시가 한 축이라면 그런 개발에 대항하는 자연 혹은 자연을 지키는 모로 일족(들개)과 인간에게 버림받은 소녀 ‘산’이 갈등의 한 축이다. 여기에 아시타카는 이 두 힘의 중재자이며 화해를 시도하는 자의 역할로 그려진다. ‘에보시’는 자연을 개발하여 문명을 일구고자 하는 근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주류 권력으로부터 소외받은 자들, 즉 시장에 팔려나온 여자와 문둥병에 걸린 병자 등, 사회에서 핍박받고 억압받는 자들을 모아 인간적인 대우를 해주면 나름의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이들과의 공동체를 일구고자 도깨비들의 산에서 나무를 베어내고 철광석을 채굴하여 제철장의 쇠를 녹여 삶을 꾸려간다. 그러기 위해 그녀는 조정의 하수인인 ‘지코’의 계략을 알면서도 그에게 화승총과 화약을 받아 세력을 넓혀가고자 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신들은 위계질서에 따라 등급이 나뉘는 전형적인 샤마니즘계이다. 특히 농경 사회에서 많이 등장하는 대지모 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시시가미’가 ‘데이다라봇지’로 길게 변하는 순간을 보면 사슴 신이지만 용, 혹은 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농경민족의 대지모 신의 모습이다. 뱀은 순환하는 자연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생명을 낳고 돌보는 자비로운 신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낳은 자식을 잡아먹는 신이다. 식물의 죽음과 재생, 영원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의 순환을 표상한다. 대자연의 신을 대리하는 도깨비 공주인 ‘산’에게서 무자비한 여신이 느낌이 나는 건 이런 이유일 것이다. 스토리의 세계를 보면, 힘센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며 더 가지려 하는 이 세상 그대로가 재앙인 시대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던 시절이 지나고 인간의 욕심에 신들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신들의 권위가 도전받지만 아직까지는 신들이 살아 있던 때로 삶과 죽음이 순환되는 원리가 인간의 욕심에 의해 틀어지려는 때가 배경을 이룬다. 그래서 아시타카가 재앙의 원인을 찾기 위해 서쪽으로 여행(서구의 상징일까!)을 시작하며 만나게 되는 세상은 여러 갈등의 원인을 보여준다. 아시타카의 여정 중에 시장에서 현물거래가 아닌 화폐가 유통되는 사회를 보여준다. 이는 매우 중요한 내용인데, 화폐경제는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대적 배경이 물물교환과 생산과 소비가 1:1로 이루어지는 사회가 아닌 대량생산을 통한 잉여의 생산물이 생겨 자본의 축적이 가능한 사회가 시대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이 축적된 세상에서는 인간의 욕심이 재앙의 원인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 영화의 현재성이 느껴진다. 이 영화가 다루는 소재는 신화를 다루지만 궁극적으로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