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 감독
- 올리버 스톤
- 제작년도
- 2010
- 출연
- 마이클 더글라스, 샤이아 라버프, 캐리 멀리건, 조쉬 브롤린, 찰리 쉰, 수잔 서랜든, 바네사 페리토, 프랭크 란젤라, 척 페이퍼, 존 베드포드 로이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3년째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와 그 중 한 작품에 관해 쓰는 ‘사사로운 영화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고민을 좀 했다. 지난 한 1년 간 웨인 왕 감독의 < 커밍 홈 어게인 Coming Home Again >이라는 영화에 어쩌다 익세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기 때문이다. 괜히 자기 영화 홍보하는 것 같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당연히 올해 나에게 이보다 더 사사로운 영화는 없다. 솔직히 ‘홍보라고 해 봤자’라는 생각도 든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 한 후로 각처의 영화제 초청과 언론의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각처의 수입사와 배급사에서는 지금까지 고사하는 상황이니 뭐…… 그래, 그냥 주제에 맞게 ‘사사롭게’ 쓰자. 지금 다른 영화 얘기할 머리 상태도 안 된다는 것도 인정하자. 거의 1년 간 내가 사는 서울과 감독님이 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시차 17시간을 두고 일하다 보니 심각한 수면 부족으로 (면역성은 물론이요) 뇌세포도 많이 상한 것 같다. 한창 후반작업 중일 때는 거의 잠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아마 관타나모 같은 데서 나 보고 테러리스트라고 고백을 하라고 부추겼더라면 당연히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해 없이 8시간만 쭉 자게 해주세요” 하면서 테러리스트를 자처했을 법한 정신적 누더기 상태가 됐다. (문제는 내 본업이 ‘스크린 인터내셔널’ 아시아 부국장이자 한국 통신원이라는 것 – 그러잖아도 낮에는 아시아 일을, 저녁에는 런던 본사와 소통을, 아주 늦은 밤에는 새벽 잠이 없는 감독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깨셔서 하루 일을 시작하는 식이었다. 급한 불 끄고 해놓을 수 있는 연락은 일단 다 취해놓고 서울 시간 새벽 5~6시쯤 지쳐서 ‘그만!’ 하고 외치고 서너 시간 자던가 말던가 하고 다시 일과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아무튼 처음으로 돌아가서 얘기해볼까 한다. 웨인 왕 감독을 만난 건 작년 이맘때 ‘사사로운 영화’ 원고를 쓸 때 즈음, 도쿄 필름엑스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같이 하면서였다. 아마 심사위원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 정도로 허심탄회하게 영화와 커리어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들을 깊이 공유하고 논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연출하신 예술영화도 좋고 할리웃 대중영화들도 다 뭔가 결이 다른 데가 있어 좋아요”하는 정도의 말쯤은 했었겠지만, 영화제 카타로그에 내 약력이 나온 걸 보고 한때 LJ 필름이 CJ 엔터테인먼트와 합병했을 때 글로벌 프로젝트팀 프로듀서였다는 것에 대해 감독님이 추가 질문을 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심사를 같이 하다가 밥도 같이 먹고 리셉션도 같이 가고 하면서 그냥 저냥 얘기하다 “왜 프로듀싱을 계속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때 기획개발에 일조는 해도 과연 이 영화들이 나를 꼭 필요로 하느냐, 필요로 한다 쳐도 내가 몇 년 동안 그 영화에 110%를 바쳐도 보람이 느껴질까 하는 두 가지 질문을 하다가 ‘스크린 인터내셔널’ 한국 통신원 자리가 열려서 원래 하고 싶기도 했던 기자 일을 택했다”고 했다. 그게 2005년이었는데, 그 사이 출판업계 상황이 한창 안 좋아진 것도 당연하지만, 나란 인간에게 뭔가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분도 감지하셨을 것 같다. 요즘 영화인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웨인 왕 감독의 < 스모크 Smoke >’(1995)는 제 인생의 영화예요!”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할리웃 최초로 아시아계 미국인 주인공을 두고 대중적 인기를 얻은 < 조이 럭 클럽 Joy Luck Club >(1993)이나 제니퍼 로페즈와 레이프 파인즈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 러브 인 맨하탄 Maid in Manhattan >(2002)으로 웨인 왕 감독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그 영화들 다 좋아한다. (특히 <러브 인 맨하탄>은 비슷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로맨틱 코미디로 따지자면 더 유명한 < 노팅 힐 Notting Hill >(1999) 보다 여러가지 면에서 낫다 생각한다. 이 쟁점을 갖고 가볍게 한판 붙을 자신은 있다. 잠 좀 자고 뇌세포가 회복되고 나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왕 감독 영화 중에 제일 좋아하는 건 <천년의 기도 A Thousand Years of Good Prayers>와 그 작품과 짝으로 만들어진 <네브라스카의 공주 Princess of Nebraska>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 리이윈의 원작을 영화화 한 작품 두 편인데, 2007년 하와이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으로 나란히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걸 감독께 말씀 드렸었다. 그래서 그러셨나? 한국계 미국인 이창래 작가의 자전적인 글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있다고 귀띔해주셨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이창래 작가의 <생존자 The Surrendered>나 <영원한 이방인 Native Speaker>, <가족 Aloft>, <척하는 삶 A Gesture Life> 등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아니고, 저명한 <더 뉴요커 The New Yorker> 잡지에 실렸던 단편 에세이 같은 것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그때 동경 오기 전에 며칠 만에 찍고 가편집본을 만들고 있는데 한 번 보겠냐고 하셔서 당연히 영광이라 했다. 영화제가 끝나고 얼마 후, “나에게 아주 개인적인 영화”라는 간단히 말씀 한 줄 적고 스크리너 링크가 든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색보정이나 사운드 등등 후반작업은 하나도 안된 가편집본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위암을 앓는 엄마를 간호하기 위해 월 스트리트의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샌프란시스코 고향집으로 돌아온 아들 ‘창래’의 이야기였다. 창래는 자라면서 엄마가 늘 - 특히 미대륙을 횡단해 있는 엑서터 기숙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 해주던 갈비며 전, 잡채 등의 한국 전통 요리를 죽어가는 엄마에게 배우면서 마지막 섣달 그믐날 가족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위암 말기의 엄마는 씹어서 삼켜도 바로 토해낼 수밖에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아들은 자기가 차린 음식을 엄마가 먹어주길 바라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창래 역에는 <트와이라잇 Twilight>에 개구장이 십대로 나왔던 저스틴 전 (Justin Chon)이 다 자라서 나왔고, 엄마 역에는 주로 연극계에서 활동 하고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 등의 테레비젼 드라마 조연으로 출연했던 재키 정 (Jackie Chung)이 절제된 명품 연기를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죽어가는 부모를 간호 하면서 희생하기도 하고, 음식을 배우면서 소통을 하기도 하는, 그저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동안 쌓여있었던 가족 간의 갈등도 회상으로 나오고, 억울하다 싶을 정도로 아직은 젊은 엄마를 잃을 것을 당면한 자녀의 자기중심적인 잔인함도 깃들여 있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이런 일을 겪어보지 않거나 이타적으로 착하기만 한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 심사위원을 함께 하면서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간단히 “잘 봤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하고 말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자세한 피드백을 솔직히 드려야 예의일 것 같았다. 그래서 고백했다. 위의 얘기를 하면서 친척 중에 항상 명절 때 손수 모든 요리를 하시고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던 한 분이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옆에서 봤던 가족들의 모습들, 고통 속에서 죽음을 당면한 본인이 어떨 지에 대한 생각보다 자기가 곧 직면할 상실감을 감당 못하고 행동하는 것 같은 모습들, 당시엔 납득할 수 없어 긴 세월 상처로 남아있었던 것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는 걸 말씀드렸다. 그리고 영화 속 한국계 미국인들의 모습도 좋았다고 말씀드렸다. 한국인인데 한국에서 나서 살기만 한 한국인과는 좀 다른 행동과 반응을 하는 것을 영화에서 보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도 어렸을 때 미국에서 한 8년 자라면서 봤었던 이들이 스크린에 살아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작은 예를 들어, 가정 방문한 교회 아줌마들의 성경찬송과 H-라인 스커트와 브로치 – 너무 전형적으로 익숙했다. 그런데 그들이 주는 익숙한 기독교적 위안에 전형적으로 착한 한국인 아들처럼 묵묵히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는 창래의 반응이 신선하고 좋았다. 캐스팅도 대사도 연기도 너무 훌륭해서 아빠로 나오는 존 리 (John Lie)가 처음 나와서 “창래야” 하는 순간부터 이 인물이 누군지 파악이 될 정도였다. 아마도 나름 미국 사회에서 많은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권위가 있으나 집에서는 라면 하나 못 끓여먹는 한국 남자 어른. 이런 심각한 감정적인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한국 남자 어른. 한때 이문세 노래 하나로 불륜이 걸렸음에도 계속 학자적인 ‘썰’을 푸는 한국 남자 어른. (코미디가 아님에도 이 영화에서 제일 코믹한 인물이기도 하다.) 누나로 나오는 크리스티나 줄라이 김 (Christina July Kim)도 화면에 나오는 순간부터 완벽한 인물 재현을 한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꾸리다가 비행기 타고 날라와 엄마의 치료를 끊겠다는 결심을 반대하며 항상 자기 보다 총애를 받던 남동생에게 편들어 달라고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딸. 곧 비행기 타고 가부장제의 나라에 돌아가서 또 진급을 투쟁하듯이 찾아나서야 하는 한국계 미국인 여자. 딱 아는 사람 같았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났더니 감독님과 <커밍 홈 어게인>의 국제 영화제와 시장에서의 난점과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됐다. 아마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와 또 공감하지 못할 사람도 많을 것이라는 점도 공유했다. 절제된 표면 밑에 깊은 감정들이 흐른다는 점이 강점이지만, 절제성 때문에 폭넓은 대중성을 갖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도 얘기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제 프로듀서 도날드 영의 돌아가신 할머니 댁이었던) 한 아파트 안에 이루어진다는 점도 이 작품을 ‘체임버 피스’라고 좋게 말할 수 있으나 ‘스펙타클’하지 않다고 흠 잡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얘기 했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수입사에서 얘기 한 것처럼, ‘겉모습은 한국인인데 내용은 보통 사람들이 이런 데서 기대하는 한국적 멜로나 신파가 아니어서 마케팅하기 애매하다’는 평도 예상 했으나, 어쨌든 세계에 퍼져 있는 디아스포라가 있는데 스크린에 다양한 한국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좋았다는 것도 얘기했다. 결론적으로 작품에 대한 신뢰와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바램을 공유했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 감독님은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을 받고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미 본 촬영이 끝난 작품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그런 크레딧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아직 기자 일을 포기할 수 없으니 ‘어쏘시어트 프로듀서’나 ‘공동 프로듀서’ 또는 ‘컨설턴트’ 같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만한 크레딧을 차라리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렇게 합의하고 전화 끊은 후 이메일 몇 번 더 주고 받으면서 샌프란시스코 팀은 추가 씬 촬영과 후시녹음 등을 한 후 새로운 편집본을 보내왔다. 이번엔 간단히 "언짢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익세큐티브 프로듀서 크레딧에 네 이름을 넣었다”는 한 줄이 들어간 이메일에 스크리너 링크가 왔다. 솔직히 좀 곤란한 건 사실이었으나 웨인 왕 감독 같은 거장이 분명 다른 프로듀서들과 논의 끝에 결정해서 크레딧에 넣었을 것을 알면서 거기에다 대고 뭐라 말하겠는가? "영광입니다. 크레딧에 부합하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엮인 거다. 그 후로 후반 작업에 의견을 내는 일 외에 크게는 이문세 ‘옛사랑’ 노래 판권을 구하는 일, 국제 세일즈사를 구하는 일, 영화제 출품을 돕는 일 등을 맡게 됐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에다간 편집장에게 양해를 받았다. 리뷰를 쓰고 에디팅 하는 동료들은 기사가 완성 되고 나서야 내가 이 영화에 참여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리뷰에 대한 걱정은 안 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이 동료는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가죽을 벗겨 회를 치는데’ 하는 노파심이 살짝 든 건 사실이다. 나중에 영화를 너무 잘 봐주고 좋은 평 써줘서 고맙다고 했더니 ‘네가 관여한 작품인지 몰랐다’며 진정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했다.) <커밍 홈 어게인>은 9월 토론토 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 할 때 여러 호평을 받았고 심지어 평론가 중의 한 명이 기자 시사 나오면서 트위터에 ‘눈물을 양동이로 들고 나오느라 동료 기자들에게 사과해야만 했다’는 식의 트윗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남자들이 엄청 울었다는 반응이 기억난다. 상영 전에 왕 감독이 “내가 할리웃 영화 만들 때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편집의 속도를 점점 급하게 가자고 다그쳤었다. 잠시라도 관객이 숨을 들이쉬거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겨를을 주지 못하게 강요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도 숨쉬는데 어려움을 신체적으로 겪게 됐다. 의사한테 가보니 요가를 해보라고, 숨쉬는 법을 배우게 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 때 관객이 숨을 쉴 수 있고, 각자 인생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등장 인물들뿐 아니라, 그들의 환경, 소품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며 호흡하고 생각할 겨를을 많이 주는 영화다. 아시아 프리미어는 10월 부산 국제 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하게 됐다. 그런데 마지막 후반작업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 부으시고 토론토에서 두 번 상영과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고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한 끝에 집에 돌아가신 왕 감독은 발병해 결국 부산에 못 오셨다. 솔직히 프로모션 측면에서 말하자면 재앙 같았다. 부산 영화제 24년 역사에 갈라 상영 때 감독이 안 나타난 일은 우리 영화가 처음이었다. 항상 젊게 사시는 왕 감독이 1949년생이라는 걸 이때 상기했다. 그래도 명품 연기를 한 재키 정이 임신중임에도 보석 같이 나타나서 부산 상영 때 ‘가족 영화인데 남편과 아들과 곧 태어날 아들과 함께 부모의 나라인 한국에 와서 상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하면서 관객들을 사로 잡기도 했다. 남편은 <커밍 홈 어게인>의 중요한 조연으로도 나온 루이 오자와 장치엔 (Louis Ozawa Changchien)이다. 곧 아마존 프라임에 나올 <헌터스 Hunters>’이라는 아카데미상 후보자였던 조던 필 (Jordan Peele)이 제작하고 알 파치노 (Al Pacino)가 나오기도 하는 나치 추적 시리즈에서 볼 수 있게 될 배우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히 그렇고 나름 프로덕션과 영화제 입장에서도 큰 일이었기에 뱃속 아기가 몇 주 빨리 나오면서 부산에 계획보다 오래 머물게 됐다는 점을 안 쓸 수 없다. ‘부산 국제 영화제 1호 베이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부산에서의 많은 일은 프로듀서 스쿨에서 배운 적이 없는, 간단히 줄여 말하자면 파란만장한 여정이었다 하겠다.) 그리고 유럽 프리미어는 11월 말, 에스토니아의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했다. 여기 다녀오느라 이 원고가 좀 늦어진 점이 없지 않아 있다. 혼자 가서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등등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4시간 반, 비행기로 50분 가량 떨어진) 같은 발트해 3국의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친구 집에 가 있는데 “만세! 빨리 탈린으로 돌아와”라며 우리 영화 리챠드 웡 (Richard Wong) 촬영감독이 최고 촬영감독상을 타게 됐다는 소식을 이메일로 받았다. 빨리 미국에 있는 리챠드한테 비디오 인사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얼른 탈린으로 돌아와 대리 수상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영화 속 촬영은 현재 시점의 장면들은 다 “객관적”이고 안정적인 와이드 샷으로 찍었고, 회상 장면은 다 조금씩 흔들리는 핸드 헬드로 가까이 다가가 찍었다. 색깔도 회상 장면들은 조금 더 따뜻하게 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첫 테이크였던 것도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탈린 블랙 나이츠 영화제 경쟁부문은 <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Four Weddings and a Funeral >(1993) 마이크 뉴웰 (Mike Newell)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심사평에 “우아한 미니멀리즘으로 스토리의 긴장과 드라마를 이미지로 표현하고, 물리적으로 그리고 은유적으로 좁은 공간을 통해 프레이밍하여 인물들의 절망을 신중한 눈으로 옮기고,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하는 능력”을 높이 사 시상한다고 했다. 스펙타클한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영화 촬영 예술이 어때야 하는지 대담한 비전을 전달한다”고들 한다. 시장성이 어떻던 간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을 수 있을 영화라 생각한다. 사사로운 내 생각이다.
고다르의 첫 번째 장편 3D 영화 < 언어와의 작별 >에 대해 무언가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이 영화를 지난 10월에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 한 번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한 번의 감상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화’라는 식의 편리한 변명은 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일단 보고 나면 그것에 관해 자꾸 무엇인가 말하고, 쓰고 싶게 만든다. 우리를 언어를 향해 돌려세운다. 그렇게 다시 돌아서서 언어와 마주하고 나면 고다르적 연상의 벡터를 따라 온갖 상념이 흐르고, 갈라지고, 또 퍼져나간다. 이건 작별(‘언어여 안녕’)의 말 한가운데 자리한 모음이 돌아서면 환대(‘언어야 안녕’)의 말이 떠오르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고 나니, 한국어로는 ‘언어와의 작별’보다는 ‘안녕, 언어’라는 제목이 영화의 무드에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원제 ‘adieu au langage’는 고다르의 언어유희를 따라 ‘Ah dieux, Oh langage’(오 신들이여, 오 언어여)로 읽히는 데 그치지 않고 - 그런데 왜 신은 단수가 아닌 복수로 호명되는 것일까? 왜 언어는 여전히 하나로 남아 있는 것일까? - ‘a dieu, au langage’(신에게로, 언어에로)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작별, 호명 그리고 지향. D: 차원(Dimension) 고다르가 즐겨 인용하는 앙드레 바쟁의 금언 가운데 하나는 “원근법은 서구 회화의 원죄”라는 것이다. < 언어와의 작별 >이 3차원의 환영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입체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겠지만, 이토록 단순한 방식으로 3D의 개념을 전복하는, 혹은 혁신하는 영화가 될 거라곤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다르는 때로 (‘3D 안경’을 쓰고 볼 때) 좌우 양쪽 눈에 아예 서로 다른 이미지가 입사되도록 함으로써 중첩(superimposition)의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이는 입체적이라기보다는 ‘입체파적’(cubist)으로 여겨진다. 두 대의 분리된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두 개의 눈에 각각 입사시켜 3차원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스테레오스코프의 원리는 고스란히 차용하되, 좌우 양안에 비치는 두 이미지가 반드시 시각적으로 유사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순진한, 하지만 매우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면 고다르가 3D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방식은 이미지의 특성에 대한 그의 오랜 사색의 노정에 단단히 결부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이미지란 사각의 프레임 안에 담긴 시각적 정보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지란 사실 반드시 시각적인 것만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 이미지란 무엇보다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상이한 리얼리티의 ‘관계’이자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그것을 통한 ‘생성’이다. 이미지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그가 < 열정 >(1982), <리어 왕>(1987), < JLG/JLG: 12월의 자화상 >(1995) 그리고 < 영화의 역사(들) >(1988~1998) 등에서 즐겨 인용해 온 피에르 르베르디의 「이미지」(1918)에 잘 나타나 있다. “이미지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다. 그것은 얼마간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리얼리티에 의해 생성되는데 그들 간의 비교가 아니라 조화를 통해서다. 이러한 두 개의 리얼리티의 관계가 멀고 진실한 것일수록 이미지는 더욱 강력해지고 보다 감정적인 힘을 지니게 될 것이다. [...] 유추(analogy)는 창조의 매개체이다.” 두 대의 카메라,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두 개의 눈이 지향해야 할 것은 시각적인 깊이의 환영이 아니라 유추를 가능케 하는 거리를 둔 둘(deux)의 관계로부터(만) 생성되는 정신적 이미지, 사유의 이미지다. 말라르메가 자신의 시에서 선언했듯, “모든 사유는 주사위 던지기를 불러낸다.”(Toute pensee emet un coup de des) 하지만, “한 번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우연을 폐지하지 못할 것이다.”(Un coup de des jamais n’abolira le hasard) 그리고 “아무것도 [...]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그 장소 밖에서는 [...] 아마도 [...] 하나의 별자리 [...] 를 제외하고는.”(rien [...] n’aura eu lieu [...] que le lieu [...] excepte [...] peut-etre [...] une constellation) 여기서 이어지는 생각, 주사위 던지기와 별자리. D: 주사위(Dice) < 언어와의 작별 >에 대한 예고편과도 같았던 3D 단편영화 <세 가지 재앙>(2013)에서 고다르는 ‘3D’의 ‘D’를 ‘재앙들’(desastres)로, 거기서 더 나아가 ‘주사위들(des)―별들(astres)’로 바꿔 읽었다. 말라르메적 상상? 물론이다. <세 가지 재앙>에서 고다르는 말라르메의 시와 수리철학자 고트롭 프레게의 언급을 다음과 같이 (멋대로?) 포갠다. “프레게는 사유가 수(數)를 생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사유는 주사위 던지기를 구성한다고 했다.” 그런데 고다르는 왜 말라르메의 주사위―별자리에서 프레게를 떠올린 것일까? (혹은 프레게에서 말라르메로 간 것일까?) 혹시 프레게의 다음과 같은 언급 때문이었을까? “주사위의 네 눈(目)에 대한 표상에서 우리는 ‘넷’이라는 낱말에 대응하는 그 무엇이 나타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다. [...] 수는 자립적 대상으로도 외부 사물의 성질로도 표상될 수 없다. 왜냐하면 수는 감각적인 것도 외부 사물의 성질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수 0의 경우 가장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0개의 별을 표상하려고 해보아도 소용없을 것이다. 우리는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상상할 수는 있으나, 이 경우 ‘별’이란 낱말이나 0에 대응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는 지금 아무 별도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을 표상할 뿐이다.”(「산수의 기초」 제59절) <세 가지 재앙>은 세 개의 주사위를 통한 세 번의 주사위 던지기로 진행된다. (위 사진 참조) 의미심장하게도, 세 번째에 가서는 텍스트가 주사위들의 이미지와 함께 나타나지 않고 그저 검은 화면 위에 떠오른다. (3D는 아직 그에 걸맞은 가능한 이미지 생성의 방식을 배우지 못했다는 고다르식의 일갈일까?) 이 주사위 놀이 클립 영상은 1977년에 고다르가 안느-마리 미에빌과 함께 만든 12부작 시리즈 <프랑스/여행/우회로/둘/아이들>(‘두 명의 아이들을 통한 프랑스 여행’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심지어 영상 위에 입혀진 내레이션까지 고스란히 가져왔다. “괴물의 진화는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미시적 사건들과 돌연변이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되어 왔다. 이러한 개념은 시간적으로나 수학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프랑스/여행/우회로/둘/아이들>에서는 이 뒤로 “계속되는 주사위 던지기, 하나의 하부단위에 이은 또 다른 하부단위의 생성, 이러한 우연의 게임으로부터 괴물의 신체를 형성할 수십만 번의 연쇄작용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태양계의 수명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 괴물들과 관련된 두 개의 가장 중요한 발명은 섹스와 죽음이다.”라는 내레이션이 계속 이어진다.) 그런데 <프랑스/여행/우회로/둘/아이들>의 주사위 놀이가 세 개의 주사위로 이루어진다는 점은, 3D 테크놀로지에 대한 숙고의 과정에서 고다르가 사후적으로 발견한 것이다. 그에 따라 ‘괴물’의 의미도 달라진다. 자본주의적 소비사회의 대중에서 디지털 독재로. 이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 언어와의 작별 >에서 고다르는 (다시 세 개의) 주사위로 놀이를 하고 있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래 사진) 다시 한 번, 근본문제(Grundproblem)에 대한 접근은 순진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D: 디지털(Digital), 0과 1이라는 거짓된 둘 <세 가지 재앙>에서 고다르는 “디지털은 독재자가 될 것이다”라고 단언한 바 있다. 디지털 영화, 폭넓게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고다르의 사유는 텔레비전에 대한 그의 오랜 관심과 맞닿아 있다. < 언어와의 작별 >에서 그는 블라디미르 츠보리킨이 텔레비전을 발명한 1933년에 히틀러가 독일 수상으로 선출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츠보리킨이 텔레비전 시스템을 고안한 것은 사실 1933년이 아닌 1923년이다. 이러한 연대 착오는 두 개의 일견 무관해 보이는 역사적 사실을 몽타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영화의 역사(들) >에서 텔레비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은 오늘날 디지털 문화에 대한 고다르의 진단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전 세계의 스펙터클을 허름한 침실들로 가져간다는 레옹 고몽의 꿈이 텔레비전을 통해 실현된 것이라면, 그것은 목동의 머리 위의 광활한 하늘을 엄지동자 톰(Tom Thumb)의 높이로 축소시킴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었다.”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언어와의 작별>에서 한 등장인물은 스마트폰 화면의 아이콘을 엄지동자 톰이 길을 찾기 위해 사용한 조약돌과 비교한다.) ‘텔레-비주얼’(tele-visual)이 도처에 존재하는 것(독재)이 된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서이다. 고다르는 1970년대부터 그의 작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던 ‘노이즈’에 대한 관심을 전면화하는 것으로 그에 맞선다. 디지털적 이미지가 우리의 보는 방식을 표준화한다면, 고다르는 디지털적 이미지 생산의 기제들을 총동원해 그것들을 충돌시키고 각각의 차이와 부조화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즉 디지털적 이미지 내부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그는 <언어와의 작별>을 제작하기 위해 일곱 가지 다른 종류의 카메라 - 캐논의 DSLR, 파나소닉의 Lumix 그리고 ‘웨어러블’(wearable) 카메라인 GoPro에 이르기까지 - 를 활용했는데, 촬영된 영상들은 균질하게 마름질되지 않은 채 뒤섞여 가히 ‘시각적 노이즈’의 카니발이라 할 만한 광경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아름다움이 도래하는 건, 적어도 예견되는 건, 오직 이 소란 속에서다. 적잖은 평자들이 <언어와의 작별>을 보며 스탠 브래키지의 < 독 스타 맨 >(1964)을 떠올렸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자연으로 향하는 통로로서 은유를 활용”(블레이크 윌리엄즈)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두 영화는 닮아 있다. 또 하나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D: 만남으로 개시되는 둘(Deux) 은유(metaphor)란 무엇인가? 그것은 응축된 픽션이다. 그것은 픽션의 한계이자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능한 유일한 픽션이다. < 언어와의 작별 >이 하나의 시청각적 ‘실험’에 그치지 않는 것은 여기서 고다르가 어떻게든 이야기(하기)의 가능성을 붙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영화가 두 커플에 대한 두 번의 같지만 다른 이야기라고 한 고다르의 말을 믿어야 한다. <필름 소셜리즘>(2010)에 출연한 바 있는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고다르와 작업한 경험을 떠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고다르의 차기 작품에서 저는 어쩌면 호화 유람선 횡단에 참여한 철학자-강연자 역할을 맡아 한 장면에 출연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고다르에게는 사랑이 거의 모든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사랑과 저항 사이의 접속에서 고다르와 저의 차이는 바로 멜랑콜리인데, 이것은 고다르에게 모든 것의 색깔을 의미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사랑 예찬」) <언어와의 작별>과 관련해서, 여기에 바디우의 다른 텍스트를 겹쳐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만남을 통해 개시된 둘, 사랑이 그 진리를 실행하는 둘은 그 자신에게 닫힌 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둘은 통로이고 중심점이며, 최초의 수적 성격이다.”(「베케트에 대하여」) <언어와의 작별>을 구성하는 한편 작품 곳곳에 산포된 여러 ‘둘’들, 영과 무한, 자연과 은유 그리고 고다르적 픽션에 관한 이야기는 이 영화를 다시 본 다음에나 가능하겠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남아 있다. 고다르적 멜랑콜리? < 언어와의 작별 >이 고다르의 고별사일까? 이 글에서는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고다르의 그 어떤 영화보다도 원기 왕성하며 활력으로 넘쳐난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 네 멋대로 해라 >(1960)를 당대에 보았던 이들은 꼭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하고 멋대로 상상해 보곤 했다. 영화의 폐허 속에서 ‘영화 같은 무엇’의 섬광이 춤추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유운성 영화평론가의 16편 영화천구 Celestial Sphere of Cinema (2013년 11월 1일부터 2014년 10월 31일까지) [북극] 언어와의 작별 Adieu au langage, 장-뤽 고다르, 2014 야만의 땅 Barbaric Land, 예르반트 지아니키안 & 안젤라 리치 루키, 2013 서유 Journey to the West, 차이밍량, 2013 물 속의 도시, 김응수, 2014 [황도] 시인 요아브 The Kindergarten Teacher, 나다브 라피드, 2014 도원경 Jauja, 리산드로 알론소, 2014 자유의 언덕, 홍상수 프랑스 공주 The Princess of France, 마티아스 피녜이로, 2014 [적도] 더 홈스맨 The Homesman, 토미 리 존스, 2014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웨스 앤더슨, 2014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 마틴 스콜세지, 2013 맵 투 더 스타 Maps to the Stars, 데이빗 크로넨버그, 2014 [남극] [TV 시리즈] 트루 디텍티브 True Detective, 캐리 후쿠나가, 2014 [필름 퍼포먼스] 간섭의 셀룰로이드 Cellule d’intervention, 메탐킨 평행 I~IV Parallel I~IV, 하룬 파로키, 2012~2014 사진측량, 변재규, 2013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요청한 것은 개봉작과 미개봉작을 모두 고려해 2014년 11월 1일부터 2014년 10월 31일까지 제작, 공개된 영화의 베스트 10 리스트를 꼽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있지 않은 이상, 지난 1년 간 나온 영화들을 신속히 폭넓게 접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고민 끝에 나는 가능한 이 설문의 취지를 존중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리스트의 각 ‘구역’이 (그저 ‘최고의 영화들’의 나열이 아니라)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지난 1년 간 내가 관측할 수 있었던 ‘영화천구’의 짜임을 추정케 하는 별자리들이 되게끔 구성해 보았다. (황도의 4편의 영화들 가운데 2편은 천구의 북반구 쪽에, 2편은 남반구 쪽에 자리할 것이므로, 관측자는 북극 쪽을 향하건 남극 쪽을 향하건 10편의 영화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관측자가 북극이나 남극 어느 쪽을 향하건 항상 보이는 것은 적도의 영화들이다.) 이 리스트를 작성하기 위해 그간 미처 보지 못한 영화들을 일부러 찾아보려 하지는 않았다. 즉, 위 리스트의 영화들은 베스트 10 설문에 참여하게 될 것을 굳이 염두에 두지 않고 편견이나 강박이 없이 본 것들이다. 또한 영화관에서 본 작품들과 (부득이한 경우) HD 화질로 모니터한 작품들 가운데서만 골랐다. 기회가 없어 보지 못했거나 적절한 환경에서 감상할 수 없었던 것들 가운데 특별히 다음의 영화들은 조만간 꼭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다. 페드로 코스타의 <호스 머니 Horse Money>, 라브 디아즈의 <아프리오리 From What is Before>,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 조 단테의 <베링 디 엑스 Burying the Ex> 그리고 임흥순의 <위로공단>. 이 리스트를 작성하기 전(11월 13일 이전) 가장 최근에 본 개봉작은 데이빗 핀처의 <나를 찾아줘>였는데,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시리즈물 <하우스 오브 카드> 첫 번째 시즌에서 그가 연출한 첫 두 에피소드처럼) ‘스타일적 장치이자 서사를 위한 구실로서의 냉소주의’가 지나쳐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