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전설 레전더
- 감독
- 다이치 아키타로
- 제작년도
- 2004
- 출연
- 아케미 오카무라, 이미자, 나스 메구미, 우정신, 스즈키 마사미, 지미애, 미나미 오미, 소연, 후치자키 유리코, 강희선, 이노우에 카즈히코, 김승준, 김환진, 아마노 유리, 이선주
이야기는 현실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보고 들었던 엄청나게 많은 기억들 속에서 일부만 골라낸 이야기를 영화라고 한다면, 미처 이야기가 되지 못한 나머지 기억들은 기록영상 컬렉션 곳곳에 심드렁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되는대로 늘어놓아 보겠습니다. < Archives Korea 1930-1940 >(이하, <AK>)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이 영상을 남긴 제임스 헨리 모리스(J. H. Morris, 1871~1942)의 생애를 중심으로 지난 글 에서 충분히 소개했다. 조악한 화질의 시각자료와 모호한 문헌으로 흐릿하게 전해지던 당시의 모든 것을 그야말로 송두리째 담은 이 필름 릴들을 보면, 이것이 과연 개인적인 취미의 수준이었는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어쩌면 평생 남몰래 하나의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그에 관한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던 헨리 다거 (Henry Darger, 1892~1973)와 같은 ‘이름 없는 예술적 수행자’의 범주로 그를 이해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모리스씨는 좋은 아키비스트는 아니었다. 그저 친구들과 저녁 식사 후에 영사기에 걸고 함께 담소를 나누거나, 잠이 오지 않는 밤에 커피를 마시며 홀로 감상하는 정도로 필름을 관리하면 됐을 것이다. 모리스 정도 되는 사람이 이따금 필름 앞뒷면이 뒤바뀐 채 스플라이싱(필름 이어붙이기)되는 줄을 설마 몰랐을까? 화면의 좌우가 뒤집혀 영사되는 것 정도가 무슨 큰 대수라고. 한 이벤트에 대한 푸티지들이 여기저기 나뉘어 붙어 있는 것도 다 알고 놔둔 것일 테다. 굳이 푸티지들을 다 자르고 정리하여 다시 이어 놓을 필요까지야 있겠나, 나중에 혹시 재편집할 일 있을 때 제대로 따다 붙이면 그만이지,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설렁설렁 하는 것이 푸티지 재사용이 빈번했던 무성영화필름 시대의 흔한 관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컷들 사이에 적당한 메모가 적힌 리더필름이라도 삽입하든지 간략한 개요들을 따로 정리해서 적어놓기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배부른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는 말이다. 결국, 100년쯤 후에 조선인들의 후예가 이 엄청난 영상자료를 발견하고 기뻐서 흥분할지 답답해서 흥분할지 알 리 없는 이 위대한 은둔의 수행자는 필름 외에 다른 어떠한 단서도 남겨주지 않았다. 그래서 <AK>에는 아직 식별되지 않은 인물, 장소, 건물, 사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를 알아내기 위한 추리와 발품 팔이 과정 자체는 괴롭지만 뜻밖에도 미묘하게 즐거운 중독성이 있다. 나는 이런 행위를 ‘식별놀이(Identification Game)’라 부르고 있다. 늘 대수롭지 않은 정보 하나를 밝혀내려 아등바등하는 것이 이상한 집착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사소한 정보 때문에 장면 전체의 숨겨진 맥락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이야기가 입체적인 버전으로 ‘리부트(reboot)’되는 경우가 있다. 식별놀이는 이 맛에 한다. 아는 지식이 많을수록, 아는 문헌이 많을수록 난이도가 쉬워지겠지만, 모르면 모르는 대로 느긋하게 과정을 즐기면 된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영상 속에서 누가 모리스인가?’에 대한 추론들도 이런 과정의 결과이다. 이 글에서 한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겠다. 식별 미션 : 1930년대 탑골공원에 정말 어린이 놀이터가 있었나? 일제의 공원화 사업이 가지는 이중성에 대해서는 여기서 깊이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어쨌든 일제는 「조선시가지계획령」(1934)을 기점으로 각 지역의 「시가지계획공원안」에 의해 근대식 공원녹지계획을 수립, 추진했고 경성부는 이보다 조금 이른 1930년, 「경성도시계획서」에 ‘아동공원’을 별도 분류 항목으로 처음 언급했다. 탑골공원의 경우 1932년 12월에 관리주체가 총독부로부터 경성부로 넘어가면서, 이듬해 하반기 즈음에는 ‘아동유희구’(놀이터 기구들) 설치 등의 개수공사를 통해 아동공원으로 재개장했으리라 추정한다. <AK>에는 정확히 식별할 수 없는 장면들을 포함하여 공원 풍경이 심심찮게 포함돼 있다. 이 중, (당시 탑동공원으로 더 많이 불렸던) 탑골공원으로 추정되는 장면은 흑백 시퀀스 두 군데, 컬러 시퀀스 한 군데가 있는데, 모두 아이들이 미끄럼틀, 회전그네, 정글짐, 시소 등을 타고 노는 장면을 포착하고 있다. [장면 1] <AK> 01:01:25 부근 [장면 2] <AK> 01:01:40 부근 [장면 3] <AK> 01:02:01 부근 [장면 4] <AK> 01:02:57 부근 [장면 5] <AK> 03:37:54 부근 [장면 6] <AK> 05:10:30 부근 * [장면 3], [장면 4]는 과거 컬러 규격 중 하나인 코다컬러(Kodacolor lenticular) 방식으로 촬영했으므로 화면 전체에 미세한 세로줄이 보임. 따라서 기본적으로 흑백 프린트지만 이를 전용 영사 시스템으로 영사하여 컬러를 구현했었음. [장면 6]은 코다크롬(Kodachrome) 촬영본임. 대략 그럼직하더라도 기본적인 정보부터 맞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큰 억측의 발단이 된다. 영상의 장소가 1930년대 탑골공원인 것, 그리고 이때 탑골공원에 정말 놀이터 시설이 있었다는 것을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증빙할 근거를 모을 필요가 있다. 제일 만만해 보이는 [장면 5]부터 추리를 시작해 보자. [장면 5] <AK> 03:37:54 부근 장면 존재와 위치 검증 [장면 5]에는 담장 너머 ‘公園屋(공원옥)’이라는 곳의 간판에서 ‘釀造場(양조장)’이 어렴풋이 보인다. 이 업소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공원 담장 놀이터와의 연관성 등은 그 어떤 활자 기록이나 지도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1925년에 태어나 인사동과 종로 3가 인근에서 살았던 아동문학가 어효선 작가(1925~2004)가 1990년 시점에서 1930년대 생활을 회고하여 남겨 놓은 책 한 권이 큰 도움이 됐다. (...) 그 옆이 공원 뒷문인데 동문과 같다. 지금까지 오른쪽 담을 끼고 돈 셈인데, 뒷문을 보고 서서 왼쪽은, 연못이던 것을 메우고 만든 어린이 놀이터였다. 그네, 미끄럼대, 시소, 뺑뺑이, 정글짐, 철봉틀이 있고, 모래밭이 있었다. (...) - 어효선(글), 한영수(사진), “탑골 공원과 뒷문 밖(발췌)”, 『내가 자란 서울 : 1930년대 서울 살림 엿보기』(2판), 대원사, 2003. (...) 공원 담 밑 길에서 인사동 큰길로 나가다가, 오른쪽 끝에 '공원옥'이라는 선술집이 있었다. 자리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술을 먹게 된 간단한 술집이다. 저녁 때 이 집에서 고기, 생선 따위를 굽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서 아이들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드나드는 문에는 세 폭의 천을 위쪽 3분의 1쯤만 이어 박고, 아래쪽은 갈라진 짤막한 휘장을 걸었다. 이 휘장 한 폭에 한 자씩 '公園屋(공원옥)'이라고 써서, 간판으로도 썼는데,실상은 밖에서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가린 것이다. 사람이 드나들 적에는 이 휘장을 젖히거나 쳐들게 된다. 이 휘장을 차면이라고 한다. (...) - 같은 책, “선술집과 장전(발췌)” 그러니까 이 분의 회고에 따르면 [장면 5]의 장소가 탑골공원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기억’이 100% 신뢰도의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아니라면, 이것에만 의지하여 식별놀이를 종결지을 수는 없다. 이번에는 시선을 살짝 돌려 이 장면의 오른쪽에 일부만 보이는 벽돌 건물에 주목해 보겠다. 전체 외양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 건물이 혹시 북촌 한옥마을 등 조선인을 위한 개량 한옥 단지의 개발자이자 민족사업가였던 ‘건축왕’ 정세권 (1888~1966)이 자비로 건립한 조선물산장려회관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종에 알고보매 그(주: 정세권)는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이 특히 깊어서 조선물산장려를 몸소 실행할뿐더러 장산사(獎産社) 라는 조선물산을 판매하는 상점을 탑골공원 뒤에 두고 조선산의 의복, 양복을 장려하고 《실생활》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야 조선물산장려를 선전하는 이인 줄을 알았다. - 이광수, “成造記”, 《삼천리》 제8권 제1호, 1936. 1. 1, 242쪽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재점화를 주도했던 정세권의 활약과 그러한 헌신의 상징인 낙원동 회관 건립에 관한 자료는 2017년 발간된 김경민 서울대 환경계획학과 교수의 저서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위즈덤하우스, 2017)와 프레시안에 기고했던 칼럼들에 상세하게 정리돼 있다. 이에 따르면 그 회관은 “ 낙원정 300번지에 위치한 3층짜리(또는 옥탑 층까지 포함하여 4층이라고 말하기도 함) 붉은 벽돌 건물 ”이었고, 당시 신문 보도 내용과도 일치한다. 문제는 이 ‘지번’이었는데, 일제강점기의 지번 체계가 광복 이후 얼마간 유지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지만, 최소한 일제 토지조사사업에 따른 지적원도상의 지번과 현재 지번의 위치가 동일한 것으로 보아 대략 영상의 건물 위치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앞의 책에서 추정한 위치와도 일치한다. 그 외에는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지번이 표시된 그 어떤 지도에서도 낙원동 300번지를 찾을 수 없었다. 지면상 지번이 생략돼 있거나 디지털 사본 화질이 떨어져 식별이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낙원동 300번지에 대한 자료 조회 비교 (좌) "지번입서울특별시가지도(地番入서울特別市街地圖)", 대한서림(1958) /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 300번지는 생략되어 있다. (중) “지적원도”, 조선총독부(1917)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제공 : 토지조사사업(1910~1918)으로 확인된 300번지의 위치를 볼 수 있다. (우) 현재(2024) 지적도 등본상의 300번지도 동일한 위치로 추정되며 도로 지목으로 할당돼 있다. 사진과 영상의 비교, 촬영 상황의 재구성 보다 직접적인 근거는 회관 건물의 외양이 포함된 자료일 텐데, ‘이것이 회관 모습이다’라고 밝히는 자료는 사진이 실린 신문기사 1건 과 조선물산장려회 기관지 《장산(獎産)》(1931년 2월호) 표지 정도이다. 문제는 [장면 5]의 벽돌집이 일부만 나온 데다가 건물의 측면이라는 점이다. 외양의 특징적 유사성 정도는 확인할 수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다른 자료가 발견되고, 교차 검증이 되고, 나아가 새로운 정보까지 낚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여전히 이것을 ‘사실’이라 말할 수 없다. 이를테면 1950년대 이후의 사진 및 영상자료들도 교차 검증에 도움이 된다. 특히 공중 촬영 사진을 찾는다면 좋을 텐데 지형지물이 잘 구분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아마도 공중 촬영한 사진 중 이 글의 관심 사항인 공원 북서부를 가장 잘 포착한 것은 연합뉴스의 도광환 기자가 1953년 6월에 촬영한 사진 인 것 같다. ( 오마이뉴스 는 이 소스를 게재를 허가받아 고화질로 공개 중이다.) 이것만으로도 [장면 5]의 벽돌 건물이 회관이 맞다는 것과 화면에 보이는 부분이 건물의 측면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장면 5]는 공원 서문 쪽에 가까운 담장 근처의 미끄럼틀 장면이 분명해졌다. 또 다른 쓸 만한 자료는 김천길 기자(전 AP통신)가 1956년에 촬영했다는 공중사진 이다. 여기서는 북문 쪽에 더 가까운 공간에 그네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때는 회관 옥상에 1층을 더 올린 것을 볼 수 있다. 북문 쪽 공간과 관련해서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소장 중인 < 조선의 애국일 >(1940) 중 물산장려회관, 공원옥, 공원 내 놀이기구(정글짐)를 동시에 담은 장면이 있다. 팔각정 쪽에서 석탑 뒤의 공원 북서부를 비스듬히 바라보고 찍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총독부 제작, <조선의 애국일>(1940) 4분 22초 부근. 가운데 ‘공원옥’이, 탑 오른쪽에 물산장려회관의 측면 일부가 보인다. ‘공원옥’ 간판은 비스듬히 왼쪽 프레임 밖을 바라보고 있다. 즉, 이 화면은 [장면 5]에서 담을 따라 북문에 더 다가간 곳이다. ‘공원옥’ 앞에 정글짐이 보인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항들을 가지고 <AK>의 ‘탑골공원과 인근으로 추정되는 장면들’을 다시 보면 장면들 사이의 공간 관계를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단, [장면 4]의 장소는 탑골공원 외부인 것 같다. 처음에는 이 부근에 3층 이상 벽돌 건물이 흔치 않을 것으로 보아 여태껏 어느 자료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물산장려회관의 뒷마당이 아닐까 추정했으나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는 못했다. <AK> 등 영상 속 촬영 장소와 시점의 추정 배경으로 활용한 자료는 “ 탑동공원 각소 수선지(之)도 ”의 일부이다. 공원 내 배치 상황으로 보아, 조선총독부가 경성부에 공원 관리사업을 이관하기 전인 1910. 8.~1932. 12. 사이에 제작된 지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식별 놀이는 원래 엔딩을 보기 힘들다 지금까지 모은 자료와 식별된 정보를 바탕으로 촬영 시기도 어느 정도 좁힐 수 있다. 위 장면들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촬영됐다고 가정한다면, 조선물산장려회관이 준공된 1931년 9월 이후의 장면이다. 다시, 놀이기구가 보이므로 경성부 관리 이관 후 아동공원으로 재개장한 시기, 즉, 최소한 1933년 하반기는 지난 시점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자료들를 찾는 중에 한가지 변수를 발견했다. ‘경성상공협회 회관이 낙원정 300번지 외 1호의 2층 양옥집으로 이전했다’라는 1936년 9월 23일자 기사 가 있다. 물산장려회관의 300번지를 지번분할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물산장려회관과 상공협회관은 거의 붙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기사에는 회관 건립 의연금을 기부한 사람 명단 중에 ‘정세권’이 있다. 결정적으로, 이보다 앞선 6월의 기사에는 상공협회관의 외양을 스케치한 그림이 실려 있는데, 납작한 2층짜리 상공협회관 건물 뒤로 보이는 실루엣은 물산장려회관의 탑층 있는 쪽 모습 과 유사하다. 다시, 아까 소개했던 김천길 기자의 탑골공원 공중사진(1956) 을 보자. 물산장려회관 뒤로 방금 본 상공협회관의 일부와 유사한 2층 건물이 그림자가 드리워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이것이 물산장려회관이 맞고 [장면 6]에서 상공협회관 왼쪽으로 빼꼼하게 보이는 흰 건물이 물산장려회관의 공개되지 않은 뒷 측면 모습이라면? 이 장면의 촬영 시기는 1936년 9월 이후로 늦춰지게 되는 것이다. 이미 충분히 지쳤으므로 이 부분은 앞으로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자. 사실 <AK>에 사용된 필름의 엣지코드(edge code)로부터 필름 제조 연도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실 촬영일과 1~2년 이내의 오차로 시기를 추정할 수 있지만, 아직 모든 장면에 대해 심층 분석을 한 단계는 아니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다만, [장면 6]과 같은 코다크롬 규격은 1935년에 처음 출시됐고 <AK>에서 사용된 제조 연도가 가장 이른 코다크롬 필름은 1936년산이라는 점만 말씀드린다. 식별 정보로 봉인 해제된 영상 다시보기 이제 <AK>의 이 장면들은 더 이상 탑골공원 느낌의 어느 공원에 놀이터가 있고, 조선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놀고 있는 덤덤한 장면일 수만은 없게 됐다.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미끄럼틀을 탄다. 해가 지면 북촌의 저임금 조선인 노동자들이 담장 너머 선술집에 모여들어 막걸리로 시름을 달랠 것이다. 일제의 견제로 힘을 잃은 지 십 년이 넘은 물산장려운동을 되살려 보겠다고 ‘건축왕’ 정세권이 자비를 털어 만든 물산장려회관이 공원 옆에 우뚝 서 있지만 그 한 사람의 힘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새로 생긴 놀이터는 내선일체 구호만큼이나 공허하다. 아마도 이 모든 맥락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정동에 거주한 지 40여 년 되어가는 한 이방인 사업가는 화려한 남촌의 풍경이 아닌 쇠락한 북촌의 정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오, 주여. 이들을 보호하소서.’ 탑골공원과 인사동 인근은 어쩌다 보니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장소로서 변화무쌍한 이력을 지니게 됐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테지만 문헌에 남지 않았다면 서서히 희미해지다가 사라질 것이다. 영상은 그 최후의 보루이다. ‘식별놀이’는 나뉘어 묻혀 있는 기억들을 채굴하고 원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증명’의 대가로 받는 ‘소소한 즐거움’이라는 가상화폐 같은 것이 아닐까. <덧붙임> 1. 직접 게재하기 어려운 사진 및 기사 자료는 부득이하게 링크로 대신했습니다. 2. 일제강점기 공원 정책과 관련한 내용은 다음 문헌을 참고했습니다. - 조세호, 김영민, "경성부 도시계획서 상의 공원녹지 개념과 현황의 변화 양상", 『한국조경학회지』 vol.47, no.2, 2019, 117~132쪽. 3. 각종 자료를 무료로 공공에 개방하고 있는 국사편찬위원회, 서울역사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국가기록원에 늘 감사드립니다.
경기도로 이사한 후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번 서울 밖으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태어났고, 마포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으며, 독립한 후에는 줄곧 은평구에 살았다. 부산 금정구 금정경찰서에서 보낸 군생활을 제외하면 서울의 서북 3구, 그 안에서도 반경 10키로미터가 넘지 않는 좁은 장소에서 평생을 산 셈이다. 개굴개굴. 그런 내게 사람들의 말은 토머스 울프와 이문열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두 작가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그들 모두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경기도에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울로 돌아가고 싶기는커녕 오히려 꼭 서울에 살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그건 내가 (갈 곳 없는) 프리랜서이고, 이사를 통해 아내의 출퇴근길은 (조금이나마) 편해졌으며, 아내와 나 모두 문화생활(정확히 말하면 외출)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고, 아이의 학군이나 사교육 같은 걸 신경 쓸 필요가 (아직은) 없는 데다가, 가족 중에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녀야 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전보다 적은 주거비용으로 삶의 질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높아졌고, 그것이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변화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게 요즘 제가 부동산에 꽂힌 이유에요. -그래서 이제 부동산 투자라도 하실 건가요. -아직은요. 대신 아내와 함께 일요일마다 ‘구해줘! 홈즈’를 챙겨보고 있어요. -그게 뭐지? 드라마에요? [셜록] 같은? -이사를 계획 중인 시청자가 사연을 보내면 연예인들이 대신 예산과 조건에 맞는 집을 보러 다니는 예능이에요. 열심히 보고 공부해서 부동산 전문가로 거듭나려고요. 지돈 씨도 나중에 이사 생각 있으면 말해요, 제가 잘 해드릴게요. -…그건 마치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출발! 비디오 여행’을 꼭 챙겨본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지돈 씨, 저는 ‘출발! 비디오 여행’ 같은 건 보지 않아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JD를 바라보았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접은 후로는요. 조셉 맨키위즈의 영화 <유령과 뮈어 부인>과 마그리트 뒤라스와 도미니크 노게즈의 대담집 [말의 색채]는 모두 부동산 이야기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루시 뮈어는 독립을 선언한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1년 전에 죽은 남편까지 들먹이며 만류하지만 뮈어 부인의 의지를 꺾진 못한다. 부동산을 찾은 루시는 수상할 정도로 저렴한 바닷가 저택을 발견하고, 중개업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대 계약을 맺는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성격 더러운 전 주인의 유령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뒤라스는 대뜸 자신을 매혹시켜 < 나탈리 그랑제 >를 만들게 한 집에 대한 이야기로 대담을 연다. 생애 처음 소유한 집. 정원에 창고까지 딸린 집은 당시 그녀의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매우 비쌌지만,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겨우 살 수 있었다고. 그러면서 대수롭지 않게 덧붙인다. "내 책을 각색한 영화들이 너무 좋지 않아서 내가 직접 해도 그 정도는 만들 수 있거나 그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1) 두 가지 교훈이 있다. 하나. 싸고 좋은 매물은 없고 집과 사람, 사람과 유령 사이에도 궁합은 있다. 둘. 혹시라도 문필 활동으로 생계를 꾸릴 생각이라면 최소한 프랑스에서는 태어났어야 한다, 그것도 백 년쯤 전에, 되도록이면 마르그리트 뒤라스로… 한국에도 부동산을 다룬 작품은 많지만 부동산 이야기로 시작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일단 떠오르는 건 이윤기 감독의 2008년 영화 < 멋진 하루 >다. 검은 화면 위로 오프닝 크레딧이 흐르면,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마석? 그게 어디야? -춘천 가는 길 어디라나 뭐라나? 아무튼 뭐 사자마자 두 배쯤 올랐대. 지금은 한 평당 70이라던데. -그럼 얼마나 번 건데? 걔는? -40에 샀다니까 30에 100해서… 삼 천? 그쯤 되겠네 -삼 천? (사이) 삼 천… -한 방에. 봐 봐, 얘 몇 주째 안 보이잖아. 전화도 잘 안 받아. 나는 구글에 '마석 땅값'을 검색한다. 가장 처음에 나오는 2019년 6월의 기사("'드디어 호재 터졌다!' 남양주 마석역 일대 땅값 후끈")에 따르면 GTX 건설과 지하철 6호선 연장 계획이 동시에 발표되면서 마석역 인근 당 평당 평균 가격은 2017년 250만원, 2018년 350만원이었던 것이 2019년에는 450만원으로 치솟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2020년과 2021년에는…? (알기 싫음) 담배를 나눠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이 향하는 곳은 스크린 경마장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부동산과 경마, 그리고 1년 전 350만원을 빌리고 잠적한 남자(하정우)에게 빚을 받아내기 위해 경마장을 찾은 여자(전도연)에서 시작하는 영화인 셈이다. 과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의 한복판에 개봉한 영화답다고 할까. 돈이 없다며 느물느물하게 잡아 떼던 남자는 돈을 받기 전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여자에게 오늘 안으로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친다. 어떻게? 다른 여자들의 돈을 빌려서… 남자를 믿을 수 없는 여자는 남자와 동행하기로 하고, 카메라는 그런 둘을 따라간다. 옛 연인에게 돈을 갚기 위해 다른 여자들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데도 어째선지 무사태평하기만 한 남자와 옛 연인에게 빌려준 돈을 받는데 어쩐지 본인이 직접 운전까지하며 돈을 꾸러 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에 자꾸 울컥하는 여자의 하루. 그런데 나는 왜 여기서 영화의 줄거리를 꼬치꼬치 늘어놓고 있는 걸까? 서평가로 활동하던 시절의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분량을 채우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영화가 캐릭터 무비라는 것,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대책없이 낙관적이고 유연한 성격의 남자와 안 그래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유없이 예민하고 불안한 성격의 여자가 티격태격 하면서도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을 완료하고 헤어져 다시 각자의 길을 걸어가지만 함께 했던 짧은 시간의 영향으로 그들 모두 그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 종류의 영화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변화하는 사람은 여자 한 명뿐이라고 해야겠지만.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을 남녀로 바꾼 다음 긴 이야기를 단 하루로 압축한 것 같은 이야기, '한국남자 조병운(하정우)' 같은 느낌으로… 영화가 중간을 지날 무렵, 경마장을 나설 때부터 남자가 들고 있던 커다란 가방의 비밀이 밝혀진다. 남자는 돈이 없어 전세금을 빼고 가방 하나에 살림을 넣은 채 친구 집을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이 영화를 사업이 망하고 이혼까지 한 속편한 무주택자와 파혼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언제 길바닥으로 나앉을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하위 중산층의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단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한 마디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런 종류의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고, 혹은 내겐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고, 어쩌면 이 문제는 인생보다 큰지도 몰라. 나는 머리도 식힐겸 <멋진 하루>가 담고 있는 2008년 서울의 이곳저곳 -- 개발 이전의 용산과 잠수교와 종로 뒷골목과 이태원 언덕길과 서소문 아파트와 연희동 사러가마트 등 -- 을 직접 둘러보면서 시간 속에 잠시 존재했던 어떤 것을 영원에 가깝게 붙잡아 고정시키는 이미지의 유령적인 성격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이 우리의 에세이필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찬찬히 고민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서울을 향하는 9701번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 (편집자 주: 다음은 K정연이 JD에게 보낸 메일을 전재한 것이다. 시나리오를 위한 준비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K정연이 원고를 완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록 불완전한 메모의 형식이나마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JD의 동의를 받아 여기에 올린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분위기 모두 본 원고와는 동떨어져 있어 구태여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미리 밝힌다.)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 K정연은 마감공포증 때문에 지금까지 그가 추구해오던 약간의 재치 있는 문필 활동을 그만두고 정지돈과 함게 한국 영화에 대한 에세이 필름을 만들기로 한다. 어느 날 그는 9701번 버스를 타고 서오릉을 지나던 중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영화 평론가 유운성을 우연히 마주친다. 구산역에서 내리는 유운성을 따라 충동적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K정연. 구산동 도서관 마을에서 봉산의 이름없는 묘지로, 맘스터치에서 불광천으로 향하는 유운성의 행보를 쫓는 그의 머릿속에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희망 없이 말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편이 낫다. 희망 없이 수다를 떠는 데서도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냉소주의자의 태도다. 다만, 희망을 낙관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낙관이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을 둘러싼 요인들로 미루어볼 때 얼마간 바람직한 미래가 가능하다고 진단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주식시장이 낙관적이라거나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도리 것이라고 전망하는 경제 전문가의 발언 따위를 떠올려보라. 희망은 여건에 비추어 미래를 낙관하는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가능성의 조건 자체를 응시하는 일이다. 희망은 낙관이라고 하는 타협을 용인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긍정하는 일이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전망을 내놓기보다는 그것들을 없애버리자고 요구하는 것이 희망이다…" 2) 창백해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K정연.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문자 메시지 보낸다. -JD, 당신은 시네마가 인생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나요? 쏘옥, 문자가 발송되는 소리와 함께 K정연 쓰러지면 손에서 미끌어지는 핸드폰. 띵 하는 메시지 수신음과 함께 JD의 문자가 액정에 표시된다. -JD: ??? 시간 흐르면 비 내리는 밤의 불광천. 헤드랜턴을 쓴 JD가 수풀 사이를 뒤지고 있다. 아! 탄성을 지르는 JD. 정신을 잃은 채 반쯤 개천에 잠긴 K정연의 모습이 보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담요를 뒤집어 쓰고 코코아를 마시던 K정연이 대답한다. -유운성 선생님을 만났어요. -유운성쌤 이요? 유운성 쌤은 어디 갔는데요? -모르겠어요. 천변의 벤치에 앉더니, 저 멀리 레인보우 브릿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있잖아요, 과거의 문 같은 거. 움직이지도 앉고 한참을 앉아 있더군요. 저는 가야했어요. 마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마감을 생각하자마자 갑자기 어지러워지더니 모든 게 깜깜해졌어요. 이렇게 말하는 지금도… 병원 진료실. 의사가 K정연에게 말한다.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마감공포증입니다. -선생님, 담당 편집자에게 제가 입원을 해야 해서 원고를 마감할 수 없다고 전화 한통만 해주시겠어요?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는 K정연.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이가 된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그런데 놀지도 않고 일도 안 한다면? 빠르게 교차 편집 되는 장면들. 다양한 시간, 다양한 날씨 아래 거리에 있는 K정연. 불안한듯 고개를 돌리면 시선 끝에 걸리는 빨간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남성의 흐릿한 모습. 유운성이다. 쫓아가보지만 매번 잡히지 않고 사라지는 유운성. 절규하는 K정연. 캄캄한 공간. 푸른 조명이 켜지면 수백 수천 개로 보이는 K정연의 모습. 거울 방이다. 잠시 후 붉은 조명과 함께 거울 속 K정연의 모습이 유운성의 뒷모습으로 바뀐다. 다시 장면 바뀌면 다양한 시대, 다양한 공장을 나서는 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런데 모두 유운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의 유운성을 뒤쫓는 K정연. 정확한 시대도 장소도 알 수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가다 마침내 유운성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한다! 벽을 보고 선 유운성에게 다가가는 K정연.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데 유운성의 셔츠를 쥐는데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유운성. K정연이 쥐었던 손을 펴면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USB. -루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K정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JD. 서럽게 우는 K정연에게 묻는다. -무서운 꿈을 꾸었나요. -아니요. -슬픈 꿈을 꾸었나요. -아니요. -그럼… -하룬 해도 파로키 하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JD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K정연. -지돈 씨, 저는 제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가끔은, 실은 자주, 너무 지겹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요. -세상에는 두 부류의 평론가가 있습니다. 진과 성. 진 쪽의 평론가에는 이동진과 김영진이 있고, 성 쪽의 평론가에는 정성일과 유운성이 있는 식으로요. -그건 성명학인가요. -분류학이라고 해두죠. -하지만 저는 진도 아니고 성도 아닌 걸요.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있는 법이죠. 이를테면, 진과 성의 사이 같은 곳이. -?? -진과 성의 사이에 있는 정. 그게 바로 정연씨의 자리랍니다. 자, 저를 따라해보세요. 진! 정! 성! -진 정 성…? -바로 그겁니다! 진정성!!! K정연이 JD에게 손을 내민다. 손바닥 위에 놓인 USB. 겉면에는 "cinema, 2004"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보인다. -이건…? -꿈 속에서… 제게… -2004년이라면, 라브 디아즈의 < 필리핀 가족의 진화 >일까요? -글쎄요… -리산드로 알론소의 < 죽은 사람들 >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구로사와 기요시의 < 도플갱어 >? 그건 2003년이지. 그럼 < 밝은미래 >? 아냐 그건 2002년이고. 아니면 홍상수의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보면 알겠죠. 조심스럽게 노트북에 USB를 꼽는 K정연. 곧바로 자동재생으로 영화가 재생된다. 주인공이 불분명한 예식장안 풍경 예식이 끝난 듯 신부의 부케를 받으려 한쪽으로 몰려서는 여자들 신부가 등뒤로 부케를 던지고 날아오르는 부케를 향해 손을 뻗는 여자들 부케가 첫 번째 손을 튕겨서 다음 손을 거쳐서 통통 튕겨나가고 이 손 저 손을 차례로 튕겨나가다가 허공을 뱅그르르 돌던 부케가 왠 막대사탕을 들고 있는 손안으로 쏙- 들어간다. 카메라 빠지면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선 이빨이 빠진 여자 아이가 방긋하고 웃는다. 여자아이 손에 들린 부케를 놀란 눈으로 보는 여자들. 그 위로 타이틀. “어린신부” 3) 1) 마르그리트 뒤라스.도미니크 노게즈, [말의 색채], 유지나 옮김, 미메시스, 2006 2) 유운성, '시네마, 역량과 유령 사이에서', [씨네21] 1300호 3) 필름메이커스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어린 신부> 시나리오에서 인용했다. https://www.filmmakers.co.kr/koreanScreenplays/54717 *** 그 외에도 히치콕의 < 현기증 > 뤽 베송의 < 루시 > 하룬 파로키의 <110년 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 황인찬의 시 '무화과숲' 중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등을 참고하고 인용했음을 밝힌다.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1929년 6월 12일. 휘슬스톱 카페가 지난주에 개업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우체국 바로 옆 건물이지요. 카페 주인인 잇지 스레드굿과 루스 제미슨의 말로는 장사가 잘되고 있다고 합니다. 잇지가 말하길, 자신은 요리를 하지 않으니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혹여 음식에 독이라도 들어 있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네요. 엄마가 몰래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발견한 내가 왜 또 우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당황한 척하거나, 나를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리곤 했다. 엄마가 그럴 때마다 나도 매번 무안하고 울적해서 똑같이 고개를 돌리거나,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색적이고 수줍은 성품이라 늘 조용한 아버지나 동생과는 달리, 집안의 소음 데시벨을 담당하는 커플인 우리가, 서로에게 토라진 연인처럼 등 돌리기 시작하면 집안은 한겨울의 절간처럼 고요하고 추워졌다. 그러다 짜증이 날 때는 비디오테이프를 잔뜩 빌려와 주말이면 밤이 새도록 영화를 보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엄마가 내 뒤로 와서 자리를 잡아 앉았고, 영화가 재밌어질 무렵이면 쥐포를 구워 올 테니 일시정지를 해놓고 기다리라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딱딱한 어깨를 붙잡았다. 배꼽 잡게 웃기는 장면이 나올 때 엄마는 끅끅, 웃으며 내 등과 팔을 치거나 꼬집어댔고, 기분이 한없이 좋아지는 영화를 막 보고 났을 땐 묻지도 않았던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은근슬쩍 꺼내 놓곤 했다. “스무 살 무렵에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지. 당시엔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면서 짤막한 멘트를 곁들이는 디제이가 있었는데, 그 일을 내가 했단다. 너도 알다시피 내 목소리가 꽤 좋잖아. 아무튼 한일극장에서 왔다고 하면, 대구 시내의 어떤 극장에라도 공짜로 들어가서 영화를 볼 수 있었거든. 그래서 그 무렵에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는 거의 다 봤던 것 같아. 참, 내가 **대학교 연극영화과 시험 쳤다가 떨어진 거 얘기했었나?” 그러면서 한겨울의 절간 같았던 집 안에 숨어있던 온기가 차츰 돌기 시작하고, 조용한 거실을 벼락 치듯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온 가족이 비명을 지를 만큼 놀라지도 않게 되었다. 그렇게 화해하고 토라지고를 수없이 반복하며 서로의 등과 팔을 후려치고 비틀고 꼬집으면서 함께 본 영화들이야말로, 피부처럼 붙어있는 내 취향의 통렬한 이정표이다. 그중에 하나가 지금 소개하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영화로, 비디오를 통해 먼저 보았던 이 영화는 연이어 원작소설을 구해 읽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 되었다. 원작소설의 정확한 번역제는 「휘슬 스톱 카페의 푸른 토마토 튀김 Fried Green Tomatoes at the Whistle Stop Cafe」으로, 동명 영화의 흑백 포스터가 박혀있는 초록색 커버의 그 책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들고 다니느라, 나중엔 두 권으로 쪼개졌던 기억이 난다. 빵빵 터지는 유머와 꼼짝없이 움츠려드는 스릴, 눈을 꾹 감게 만드는 비탄과 뻥 뚫리는 환호가 마구 뒤섞여 있는... (당시 그래봤자 중학생인 내가 보기에도) 끝내주는 재미의 책이었다. 루스는 허리를 굽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너는 꿀벌의 연인이야. 잇지 스레드굿, 그게 너란 사람이야.” 잇지는 조용히 웃으며 그녀의 눈에 비친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그녀는 이 여름 사랑에 빠진 그 누구만큼이나 행복했다. 1930년대 앨라배마의 작은 시골 마을과 80년대 중후반의 버밍햄이라는 도시의 시간들을 평행으로 놓고, 과거와 현재를 서로 교차해가며 다양한 개성을 가진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오밀조밀 풀어놓는 (디킨스 풍의) 대하소설이지만, 마을 우체국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의 내용 (시멘트에 찍힌 개 발자국 없애는 법을 아시는 분은 우체국에 들러 알려달라는 따위의 기사)를 매 챕터마다 끼워놓는다거나, 주변인물처럼 보이던 캐릭터를 한 챕터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방식의 포스트 모던한 구성을 보여주면서, 은근히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구조가 난삽하거나 시끄러워 보이지 않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서 닻을 내리고 있는, ‘잇지’와 ‘루스’라는 두 여성 캐릭터의 멜로드라마에 있을 것이다. ‘휘슬 스톱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인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루스가 전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함께 키우는, 독립적인 자아와 경제력을 갖춘 젊고 용감한 여성들이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당시 미국 남부의 시골이지만, 흑인들과 부랑자들에게 음식과 거처, 때로는 직업을 내어주며 썰렁한 유머까지 덤으로 선물하는, (언뜻 들으면 이상적으로 탈색된 캐릭터 같겠지만) 거의 어이가 없을 정도로 생생하면서, 그 거침없는 활약상을 보고 있노라면 심장이 쿵쾅대고 발을 동동 구를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이 그중에서도, ‘잇지 스레드굿’이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가 그를 가리켜 ‘허클베리 핀’이 결혼하고 싶을 사람이라며 추천사를 썼다던데... 글쎄? ‘잇지’가 허클베리 핀과 그딴 걸 하고 싶을지. 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 (잇지) 메리 루이스 파커 (루스) 91년도에 만들어진 영화 버전에선 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이 ‘잇지’를 연기했는데, 나는 그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그가 적어도 노미네이션은 됐어야 했다고 생각할 만큼 그의 ‘잇지’가 좋았다. 들짐승처럼 거침없는 소년의 매력도 충분하면서, 결코 숨기거나 가장하지 않는 감정들을 정확한 타이밍에 툭툭 터드리는 사랑꾼의 섬세한 얼굴도 훌륭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꿀벌의 연인’ 장면을 들여다보자. 원작소설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갑자기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가 싶더니 성난 벌 떼들이 구멍에서 떼 지어 나오면서 하늘이 새카매졌다. 순식간에 잇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수천 마리 벌들로 뒤덮였다. 잇지는 1분 정도 그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 조심스럽게 나무에서 손을 빼내고는 다시 루스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콧노래를 부르면서. 루스가 있는 곳까지 왔을 즈음, 벌들은 거의 다 날아가고 없었고 그 새카맣던 물체는 다시 잇지가 되어 서 있었다. 자연산 벌꿀이 담긴 병을 들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으면서. 잇지는 병을 루스에게 주며 말했다. “이거 받아, 너에게 주고 싶어.” 이어서 이 장면이 어떻게 영화로 옮겨졌는지를 살펴볼까. (55초경부터 시작된다) IMDb 트리비아에서 읽었는데, 이 장면을 연기하기로 되어있던 스턴트우먼이 촬영 직전에 (무슨 일 때문인지) 그만둬버리면서, 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이 직접 그 연기를 해야 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장면에서 그가 보여주는 생생하게 조심스러운 얼굴과 몸짓은 그야말로 진짜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또, ‘루스’로 나오는 ‘메리 루이스 파커’의 얼굴 위로 조용히 떠오르는 ‘얼어붙은 경탄’ 또한, 어디서 후보지명 정도는 받아야 하는 연기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원작소설에 등장하는 수없이 많고, 다양하게 재미난 캐릭터들 중에서 영화에서 유독 더 강렬한 빛을 발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 ‘메리 루이스 파커’가 연기한 ‘루스’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호감을 가질만한 아름다운 외모와 따뜻한 성품의 주인공, 가정폭력의 안타까운 희생자에, 이른 나이에 병들어 죽는 비극적 멜로드라마의 히로인... 의 면모를 모두 다 가진 배우처럼 보이지만, 그 자신은 거기에 별로 관심 없어 하는 모습이 ‘루스’라는 캐릭터에 흥미로운 긴장과 위트를 불어 넣어주었다. 나중에, 그가 < 위즈 Weeds >라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생계를 위해 마약을 유통하는 위험천만한 가정주부로 나오는 걸 보면서도 여전히 ‘멜로드라마의 비극적인 주인공’의 외모를 은근히 즐기면서, 동시에 킬킬대며 비웃는 그 무심함의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에 흐뭇하게 되더라.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이 두 젊은 여성의 이야기인 만큼이나, 80년대 중후반의 양로원에 거주하는 노인 ‘니니’와, 그로부터 ‘잇지’와 ‘루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이블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블린’은 자신의 삶이 회색빛 중환자 대기실이나 다름없다고 느끼며, 우물 밑바닥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사는 중년 부인이다. 영화 버전에선 캐시 베이츠가 영화사에 기록을 남길 만큼, 더 이상 적역일 수 없는 연기로 그를 체현해 보였고, 제시카 탠디가 이야기의 전달자, ‘니니’로 등장했다. 원작소설의 ‘니니’는 ‘잇지’의 시누이로, 존재감이 그닥 크지 않는 캐릭터지만, 각색된 영화에선 그가 어쩌면 나이 든 ‘잇지’일 수도 있다는, (원작을 읽은 독자들에겐 ‘Huh...?’ 하는 반응을 끌어내는) 미스터리를 남기며 끝나는데, 일견 이해가 가는 선택이라고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영화가 작아지고, 텔레비전 영화처럼 소박하게 느껴지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다. 분명한 커플이고 사랑하는 연인들인, 잇지와 루스의 관계를 강렬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로 축소시킨 것이나, 양로원의 그 노인이 결국엔 ‘잇지’일 것이라는 결말이 대중적으로 효과적인 각색이었다는 사실에 반쯤만 동의하고, 나머지 절반이 주는 아쉬움 탓인지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한 번씩 각색을 해보고 싶어진다. 메리 루이스 파커 (루스), 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 (잇지) 캐시 베이츠 (이블린), 제시카 탠디 (니니) 그래서 내가 가끔씩 굴려보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각색 버전은 (아직까진 설정만 있지만), 1950년대 전쟁 직후의 한국, 피난민들과 상이군인 가족들이 두 집 건너 한 곳에 살고 있는 대구를 배경으로 한다. 1954년의 대구 장관동을 배경으로 하는 「마당 깊은 집」을 최근에 읽어보았거나, 좋아하는 독자들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으로 주요 공간을 이동하겠지만, 전후의 대구를 굳이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한국 전쟁 직후 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본다는 뻔한 맥락과 더불어, 「마당 깊은 집」의 길남이처럼 나 또한 그곳에서 우습고도 고통스런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는 좀 더 익숙하게 수다를 떨 수 있을 거라는 편안함에서이다. 주요 공간은 ‘마루 밑 왕지렁이’라는 괴이한 이름의 식당이다. 원래는 대구 남구의 곱창/막창 골목으로 유명한, ‘안지랑/안지랭이’이라는 고개 이름을 빌려와서 <안지랭이 식당>으로 할까 했는데, 밋밋하고 별 특징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안지랭이’라는 이름이 ‘왕지렁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고 충동적으로 적용시켜 보았다. 이제 그렇다면 이 식당에도 ‘푸른 토마토 튀김’ 처럼 시그니쳐 메뉴가 있어야겠지. ‘왕지렁이 식당’의 대표 메뉴 역할을 하면서, 소울푸드 느낌이 물씬 나는 옛스런 단품 음식들을 찾아본다. ‘마루 밑 왕지렁이 식당의 두메부추꽃전’, ‘마루 밑 왕지렁이 식당의 팥고물 호박고지 떡’, ‘마루 밑 왕지렁이 식당의 들깨순 통밀전무침’... 이거다 싶을 만큼 마땅한 메뉴가 생각나진 않지만, 이 부분은 언젠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쉽사리 영감을 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으니 넘어간다. 아무튼 ‘마루 밑 왕지렁이’라는 식당은 두 명의 젊은 여성들에 의해 운영될 것이다. ‘희야’라는 이름의 여자와 ‘옥이’라고 불리는 여자, 서너 살 이상의 나이 차가 있는 사이지만, 존대한다거나, 언니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불리진 않는다. 다정한 반말이 격의 없이 오가는 사이의 이들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자 세상 그 자체라서 정확하고 분명한 연인이다. 그들에겐 어린 딸이 있는데, ‘옥이’가 ‘희야’의 도움으로 남편으로부터 도망 나오면서 업고 나온 자신의 아이다. 그 남편은 서울에서 군수물품을 조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데, 집을 나간 자신의 아내와 딸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며 잡히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 미친놈처럼 중얼댈 것이다. ‘마루 밑 왕지렁이’ 식당에는 두 여자뿐 아니라, ‘휘슬 스톱 카페’의 식구들처럼 다양한 크루들과 이웃들이 있는데, ‘길남이’라는 이름의 신문 배달 소년과 관계가 있는 사람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마당 깊은 집」의 에피소드와 연결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 책의 팬이라면, 교묘하게 숨은 재미를 이 영화 속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야말로 그 책의 대사들을 직접 소리 내 따라 해 볼 정도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곳에는 육체노동과 허드레 장사 일에 나서서 호구를 연명하는 이웃들과, 양키시장이라고 불리는 역전거리 시장에서 북한말과 중국말을 쓰며 보따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살아간다. 다양하고 재미난 개성의 사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희야’와 ‘옥이’가 있을 것이다. 코미디와 스릴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영화 중반에 일어난 ‘옥이 남편’의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 또 그것이 어떻게 감쪽같이 해결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클라이맥스를 맞을 것이다. 사건조사를 위해 식당을 찾은 경찰이 별다른 소득 없이, 가마솥 국밥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맛있다는 말을 하고 자리를 뜨면, “비밀은 육수에 있지요.” 라고 중얼대며 비밀스런 시선을 교환하는 ‘마루 밑 왕지렁이’ 식당의 주인과 크루들의 얼굴이 차례차례 등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가 2017년 서울의 어느 요양원, 치매가 의심되는 노인에 의해 (이런 이야기가 몹시 필요한) 누군가에게 말해지는 구성으로 소개되는 거다. 물론, 그 노인의 정체는... 생각해볼 문제겠지.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를 두 시간짜리 영화 안에 다 집어넣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도 넷플릭스에서 투자받아 16부작 드라마로 만들 수 있고 싶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6.25 전쟁 직후에 피란민들로 가득한 대구를 배경으로 만든다는 얘기만큼 어이없으면서 호기심 돋는 기획이 또 어디 있을까? 그것도, <마루 밑 왕지렁이 식당의 팥고물 호박고지 떡> 같은 정신 나간 제목의 드라마로 말이다. 엄마와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 중엔 < 에일리언 2 >가 있었다. 미취학 아동이거나, 그와 비슷한 정신상태의 어린이였을 때도 함께 극장에 가본 적이 있었지만, 아직까지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있어 조각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은 그 영화가 최초였던 것 같다. 물론, 조각이라 하면, 징그러운 괴물이 인간의 배를 뚫고 나오는 그 장면 말이지. 그날 거기서 받은 시청각적 쇼크는 내 무의식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나중에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제정신으로 다시 보면서 영화 전체를 새로운 감상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내 작은 손을 붙잡고, ‘성인 1장이요’, 하고 극장 계단을 뛰어 올라갔던 것일까. 물론... 재밌고 싶어서겠지. 그렇다면 나는 거기에 불만이 없다. 그래서 떠올려 본다. 거대한 기계 갑옷을 걸친 시고니 위버가 에일리언에게 경고하던 그 목소리를. “그 얘한테 당장 떨어져, 이 빗취! Get away from her, you, Bitch!” 엄마는 깔깔 웃으며 박수를 치고, 가만한 내 등과 팔을 후려치고 꼬집는다. 나는 몸을 비틀며 울상을 짓지만, 그래도 좋다. 엄마가 웃는 것. #1 펀 홈 #2 안녕, 내일 또 만나 #3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4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5 이모와의 여행, 그 외 몇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