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프 레퍼드 : 1993 - 1995 비디오 아카이브
- 감독
- S. 덩컨 스미스, 윌 애쉬허스트
- 제작년도
- 1995
- 출연
- 조 엘리엇, 릭 새비지, 릭 앨런, 필 콜린, 비비안 캠벨
어제는 제 20대 대통령 선거일이었고 나는 오후 1시 즈음 코인세탁소에 이불 빨래를 돌리고 성원초등학교에 들러 투표를 했다.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하고 향방을 알 수 없는 선거라지만 투표에 어려움은 없었다. 나는 약 20년 정도 되는 투표의 나날동안 일관되게 한 당과 그 당의 후보에 표를 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선거 때마다 같은 말을 듣는다. 사표를 만들지 말아달라, 이번에는 어떤 후보가 되는 걸 막아야돼, 니 고집만 지켜서 될 일이 아니야 등등. NL 출신 금정연씨(42세)의 사정은 어떨까. 그와 나는 정치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왜 할 말이 없냐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시작되고 생각이 시작되면 행동을 꿈꾸게 되는데 그 일이 우리를 막다른 곳으로 몰고가기 때문에. 그러나 이번은 다르고 이제는 다르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은 변하지 않지만 어느새 세상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징징대는 건 이제 그만. 그래서일까. 금정연은 정치 트윗을 리트윗하고 세태/세대에 대한 담론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이것이 한국 영화에서 길 잃은 한국 사람들이 길을 찾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선거일을 기념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정치 에세이 <기운내, 심바: 안티 후보의 트레일에서 보낸 일주일>을 읽었다. “롤링스톤즈”의 특파원 신분으로 2000년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 존 매케인의 캠프를 밀착 취재한 기사인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글을 삐딱한 자세로 읽기 시작했다. 공화당 후보를 옹호하는 기사를 쓰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생각했던 것이다. 역시 DFW는 근본주의자야(여기서 근본주의자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실천은 급진적이지만 신념은 보수적인 일군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나만의 용어로 구체적인 설명은 글의 방향과 어긋나니 나중으로 미루겠다. 그럼에도 부연하는 까닭은 1. 근본주의자라는 용어에 대한 오해를 피하고 2. 근본주의자들이 특정 장에 끼치는 영향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기사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고귀한 보수의 상징인 존 매케인(버락 오바마와 대선에서 맞붙었을 당시 네거티브를 요구하는 언론과 지지자들에게 매케인은 오바마는 훌륭한 시민이며 우리는 의견이 다를 뿐이다, 라고 대답했다. 물론 그는 대선에서 패했다)의 인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특정 현상에 대해서, 그리고 그 현상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DFW는 “이 글은 어떤 인상적인 인물의 선거운동을 다룬다기보다는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와 그 모든 포장과 홍보와 전략과 미디어와 여론 조작과 만연한 부패가 우리 미국인 유권자로 하여금 실제로 어떻게 느끼게 하는지에 대해” 다룬다고 쓴다. 여기서 인물과 선거운동 따위를 작품이나 영화 등으로 바꾸면 어떨까. 그러니까 한영한사가 진짜 다루고 싶은 건 어떤 작품이 왜, 어떻게 좋으냐가 아니라, 작품과 그 작품을 둘러싼 환경을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경험하고 재생산하는가 라고 말이다. 한편, 정연씨는 꿈을 꿨다고 했다.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밤이었고 매일 같이 악몽으로 시달리던 한 주였기 때문에 꿈을 꿨다는 사실 자체는 특별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꿈은 달랐다. 정연씨는 한국의 영화제 시상식에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인지 대종상인지 청룡영화상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그건가 싶기도 하고, 셋 모두 보지 않는 정연씨로서는 구분할 방도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한국의 영화 시상식임은 분명했다. 사회자는 왜인지 박솔뫼였고(또는 박솔뫼 역할을 하는 김혜수) 시상자로는 소설가 김연수가 나왔다. 다만 정연씨의 꿈에서 김연수는 소설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었고(“아마 홍상수 영화에서 맡은 배역 탓이겠죠.” 정연씨가 말했다) 얼굴은 허진호와 닮아있었다. 그러면 정연씨는 어떻게 김연수가 김연수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외모도 직업도 다른데 김연수가 맞긴 한 걸까. 김연수를 규정하는 영혼의 징표라도 존재하는 걸까. 내가 정연씨에게 말하자 정연씨는 그게 꿈의 신기한 점이라고 했다. “꿈에서는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나 과거와 같은 전기적 사실보다 생각이 현실을 규정하니까요.” 정연씨는 칼 융의 공시성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우리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 정신의 작용이라면. “정신이 물질과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이 정신과 물질을 가르는 경계가 모호하다는 증거예요.” “그게 한영한사랑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정연씨에게 물었다. 참고로 우리는 에세이 필름 제작을 위해 서교동의 카페에서 미팅을 진행 중이었다. 미팅 전에 나는 DFW 에세이를 읽고 든 생각을 말했다. 21세기 한국 영화를 말할 때 보통은 비평적으로 훌륭한 영화를 나열하고 그 의의를 평가한다. 홍상수, 이창동, 봉준호 등. 특정인의 감식안에 선정된 영화들이 곧 한국 영화인 것이다. 그게 아니면 산업적인 측면을 주목한다. 천만 영화의 등장, 제작, 유통의 변화, 새로운 기술의 도입 또는 한국 영화의 해외에서의 위상 등. 그러나 그게 정말 우리가 경험한 한국 영화일까. 이런 과정들은 중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경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그렇게 고민을 하는 와중에 정연씨가 뜬금없이 꿈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정연씨는 엠마뉘엘 카레르가 쓴 필립 K. 딕의 전기 <나는 살아있고 너희는 죽었다>를 읽고 있다고 말했다. PKD를 따라 주역과 칼 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들이 미국영화와 한국영화, 현재의 정치 상황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이다. “20세기 말 이후의 모든 미국 영화는 PKD의 자장 아래 있습니다. < 매트릭스 >, < 트루먼 쇼 >, < 다크 시티 >, < 플레전트빌 >에서 시작됐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미국 영화는 PKD의 편집증적 우주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영화는 미국 영화죠. < 기생충 >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고 이정재가 미국배우조합상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실을 생각해봐요. 이곳은 누구의 편집증적 우주일까요? 윤석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라는 우주가 그것을 보고 원하는 사람들의 정신과 원격작용을 한다는 뜻이에요.” 정연씨가 말했다. 나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였지만(<플레전트빌>이나 <다크 시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나요?) 정연씨의 편집증-꿈-영화제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정연씨의 꿈에서 작품상을 받은 영화는 < 돈 룩 업 >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아담 맥케이, 티모시 살라메가 나란히 도열해서 박솔뫼와 김연수가 주는 상을 받은 것이다. “작품상은 보통 제작자가 받지 않나요?” “그건 핵심이 아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정연씨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았다. <기생충>, < 오징어게임 > 같은 한국의 영화/드라마가 로컬이자 글로벌인 미국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것은 이상하지만 납득할 수 있는 현상이다(정연씨는 아이비리그 인류학과 박사과정생들의 면면을 살펴보라고 했다. 각국의 학생들이 자국의 가장 중요한 문화인류학적 사안을 미국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헐리웃 영화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 영화제에서 헐리웃 영화에 상을 주면 어떨까? “지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가 누구죠?” 정연씨가 말했다. “윌 스미스?” “그렇죠. 윌 스미스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는 거예요.” “오… 그런데 윌 스미스가 상을 받으러 올까요?” “지돈씨,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필립 k. 딕의 전기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네 엄지발가락에서 해방되어라. 그리하면 벗이 다가오리니 그를 믿어도 될 것이니라’.” “그게 무슨?” “영화를 엄지발가락이라고 생각해보세요.” “?” “이렇게 말해보죠. 지돈씨 < 명량 > 봤어요?” “아니요.” “< 해운대 >는?” “아니요.” “< 국제시장 >은?” “아니요.” “하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천만 영화죠.” “그렇죠.” “제 말이 바로 그거예요. 사람들이 정말 이 영화를 봤을까요?” “사람들이 안 봤는데 본 척 한다는 말이에요? 천만영화는 음모다?” “아니요. 이게 무슨 나꼼수도 아니고. 핵심은 영화라는 ‘형식’이 단지 내적인 요소로 짜여진 게 아니라는 말이에요.” 정연씨는 나윤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길에 곰곰히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21세기 한국 영화에 대해 얘기하려면 정말로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이다. 그러던 중에 버스에서 PKD의 전기를 읽었고 잠이 들었고 꿈을 꿨고 영화가 어쩌면 개인들의 편집증적 우주라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러한 편집증적 우주의 공시성 속에서 살고 있는 거고. “오.” 정연씨에 따르면 영화를 보는 것은 어떤 작품의 내용이나 내적인 형식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사회정치적 형식들이 영화라는 형식과 마주치고 얽히면서 의식이나 행위를 조직하고 나아가 삶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저는 그걸 영화 경험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정연씨가 말했다. 사람들은 단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영화 이상을 보거나 영화 이하를 본다. “캐롤라인 레빈은 이렇게 말했죠. 의미보다는 패턴을, 해석적 깊이보다는 관계의 복잡성을 찾는것이 비평이라고. 가장 전략적인 정치적 행위는 사회적 경험을 지배하는 서로 다른, 연결성 없는 배열들을 면밀하고 세심하게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좋은 말인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되는 건데요?” “저는 사람들이 영화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할 것을 제안합니다. 더 나아가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도요.” “그게 무슨…?” “예를 들면, 유튜브 영화 채널은 영화 리뷰를 보는 용도일까요, 영화를 보는 용도일까요? 다시 말해, 이 재생산의 플랫폼이 영화와 무관하게 존속할 수 있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요?” “그 말은 영화가 없어도 영화 리뷰 채널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인가요?” “그건 장 보드리야르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네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영화 보다 영화에 대한 것이 더 영화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나는 정연씨의 말을 들으며 왜인지 최근 읽은 워커 퍼시의 소설 <영화광>을 떠올렸다. 주인공 빙크스 볼링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나는 못 만든 영화라도 일단 빠져들면 무척 행복하다.” 다시 말해, 빙크스 볼링에게 좋은 영화 나쁜 영화는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내용 역시 문제가 아니다. 그가 동경하는 헐리웃 스타 윌리엄 홀든은 어떤 영화에 나오든 윌리엄 홀든이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현실의 윌리엄 홀든인 것도 아니다. 영화 속 인물과 실존 인물 사이 어딘가에 윌리엄 홀든이 있고 빙크스 볼링은 일상 속에서 그 형상을 반복적으로 창조하고 구성하는 것이다. <영화광>은 씨네필에 대한 소설도 아니고 빙크스 볼링도 씨네필이 아니다. 그러나 볼링은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영화광이고 영화 경험의 창조자다. 그에겐 모든 현실이 영화 경험을 경유해 “인증” 된다. 예를 들면 볼링은 요즘 세상에서는 어디에 살든 그곳에서 진짜 산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고, 공허감만 팽창할 거라고 말한다. 이러한 공허감을 불식시킬 유일한 방법은 자기 동네가 영화에 나오는 것이다. 영화에 자신이 사는 곳이 나오는 순간 그곳은 “아무 데가 아니라 특정한 데”가 된다. 이것을 영화 경험이 만들어낸 편집증적 우주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21세기 첫 20년 후의 대한민국이라는 편집증적 세계 속에서 영화를 경유해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될까. (관련글) 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 , 금정연, 2021.03.19. 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 , 정지돈, 2021.05.07. 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3) , 금정연, 2021.06.11. 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4) , 정지돈, 2021.07.03. 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5), 금정연, 2021.08.06. 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6), 정지돈, 2021.08.31. 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7) , 금정연, 2021.10.08. 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8) , 정지돈, 2021.11.05. 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9) , 금정연, 2021.12.03. 1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0) , 정지돈, 2021.12.31. 1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1) , 금정연, 2022.03.02. 1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2) , 정지돈, 2022.03.30. 13.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3) , 금정연, 2022.05.11. 14.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4) , 정지돈, 2022.06.10. 15.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5) , 금정연, 2022.07.08. 16.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6) , 정지돈, 2022.08.03. 17.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7) , 금정연, 2022.08.31. 18.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8) , 정지돈, 2022.10.14. 19.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19) , 금정연, 2022.11.11. 20.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0) , 금정연, 2022.12.07. 21.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1) , 정지돈, 2022.12.15. 22.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 (22) , 정지돈, 2022.12.30.
실사영화 < 알라딘 >(가이리치, 2019)이 최근 1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오래전 2D 애니메이션 < 알라딘 >(데이빗 드웨이츠, 1992)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지니를 실사화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봤지만 그런 우려를 떨쳐낼 만큼 윌 스미스의 매력도 충분했다. 물론 흑인 배우가 지니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일부 팬들의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알라딘>이 뮤지컬로 만들어질 때 흑인 배우 제임스 먼로 아이글하트가 이미 멋지게 지니 역을 소화한 바 있고, 그를 통해 토니상 남우조연상까지 받았다. 인종 문제 얘기를 하자면,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역시 <인어공주> 실사영화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인어공주 역으로 낙점된 일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알라딘>은 <아라비안 나이트>와 아랍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을 뿐 램프의 요정의 어떤 인종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알라딘>이 아랍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알고 있지만, 원전에서는 배경이 중국이며 알라딘도 중국인이다. <인어공주> 역시 원작자가 덴마크인이고 북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인어공주는 인간과 다른 종족이기에 피부색이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전세계 영화의 중요한 경향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PC(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고려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의 PC란 인종, 종교, 성별 묘사 등에 있어 그 어떤 편견과 차별도 없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로서의 ‘정치적 올바름’이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유색 인종 캐릭터를 백인 배우가 무분별하게 연기하는 인종차별적 ‘화이트워싱’(whitewashing) 현상에 대한 반발이 가장 크다. 지난 2017년에는 한국계 미국 배우 존 조를 < 마션 >(리들리 스콧, 2015) 등 여러 영화의 포스터에 합성해 화이트워싱에 반발했던 캠페인 ‘존 조 주연시키기(Starring John Cho)’가 SNS를 뜨겁게 달궜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에서 주연을 맡기 힘든 아시아계 배우들의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 서치 >(아니쉬 차간티, 2017)는 그동안 백인 배우들의 전유물이었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아버지 역할을 존 조에게 맡김으로써 미국영화 속 아시아계 배우의 활동 범위를 한층 더 확장했다. 감독 또한 인도계 미국인인 아니시 차간티이며, 자신이 성장해온 미국의 아시안 커뮤니티를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고 한다. 같은 해 개봉하여 제작비 대비 7배라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보여주며 북미 박스오피스를 강타한, 제작진부터 배역까지 아시아계로 꽉 채워진 <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존 추, 2018)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는 내년 개봉 예정인 <뮬란>에 화이트워싱 없이 유역비가 주연을 맡고, 마블 최초의 아시안 히어로 영화 <샹치>가 제작 준비 중이다. 마블 최초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 < 캡틴 마블 >(안나 보덴, 라이언 플렉, 2019)을 통해 안나 보덴이 마블 최초의 여성감독이 된 이후, <샹치>보다 앞서 2020년 11월 6일을 개봉일로 잡은 <이터널스>는 마동석 배우의 출연만큼이나 중국계 미국인 클로이 자오가 마블 최초의 비백인 여성감독으로 메가폰을 잡아 눈길을 끈다.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다시 <알라딘>으로 돌아와, 과거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실사영화의 자스민 공주가 궁의 생활을 별로 답답해하지 않는 것 같아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답답한 궁에서 살고 싶지 않아!”라는 과거 자스민의 ‘선언’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수많은 공주들 중에서 처음으로 ‘NO!’라고 말한 획기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실사영화의 자스민은 궁을 떠나려는 게 아니라 그냥 훌륭한 술탄(왕)이 되려고 한다. 과거에는 아버지 술탄이 왕자가 아니어도 공주와 결혼할 수 있게끔 법을 개정했지만, 이제는 “네가 아그라바의 미래다. 술탄의 지위를 너에게 넘기겠다”라며 딸이 직접 술탄이 되고 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게끔 한 것이다. 이런 변화에 더해 최근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의 <인어공주> 캐스팅에 이르기까지, 디즈니의 오랜 팬들 중에는 디즈니의 ‘과도한 PC 강박’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꽤 많다. 하지만 그들이 집중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해온 지난 10년의 시간이,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가장 고도의 성장을 보여준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 마블과 픽사와 루카스필름까지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는 디즈니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컨텐츠 제국이 됐다. 오래전 월트 디즈니는 무려 23개의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난 이 트로피보다 돈이 더 좋다”고 말해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남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먼저 시도하고 돌파하며, 언제나 새로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지금의 디즈니 입장에서 말 그대로 PC는 돈이 되는 주문인 것이다. 절대적으로 그것이 중요하다. PC한 것을 추구할 때 좋은 평가도 얻고 돈도 번다는 것을 세계영화계 모두가 알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학교에서도 늘 왕따를 당하는 12살의 콜. 겁이 많고 용기는 부족한 콜을 위해 부모는 지금도 베이비시터를 고용한다. 콜이 짝사랑하는 예쁘고, 멋지고, 화끈한 비. 부모가 외출한 사이 콜과 놀아주고, 콜이 잠든 후 부모가 돌아오면 일이 끝나는 베이비시터다. 그런데 콜은 궁금하다. 내가 잠들고 난 후 비는 무엇을 할까. 동급생이자 이웃집에 사는 친구 멜러니는 어른들이 하는 짓을 할 것이라고 놀린다. 정말, 정말일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원제는 ‘The Babysitter’다. 이 제목이라면, 그리고 예고편도 보지 않았다면 10대 소년이 짝사랑하는 베이비시터를 통해서 현실을 알게 되는 성장영화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혹은 섹스 코미디나 불륜물. 그러나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10대 소년과 베이비시터의 이야기를 코믹 호러 성장물로 연성한다. 잠이 든 척했던 콜이 거실을 훔쳐보니 비의 친구들이 몰려와 있다. 게임을 하면서 벌칙으로 키스를 한다. 이제 어른들의 사정이 시작되는구나 싶더니만 반전이 시작된다. 애인으로 보이는 남자와 비가 키스를 시작하는데, 웬걸 비의 두 손에 들린 칼이 남자의 머리에 꽂힌다. 피가 줄줄 흐른다. 잠든 척하다가 들킨 콜은 추궁을 받는다. 뭘 봤지? 어디까지 봤지? 그리고 비와 친구들이 악마의 책을 이용하여 의식을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10대 청소년들이 악마 의식에 빠지는 것은 빈번한 일이고 딱히 이상하지도 않다. 그 시절이야말로 바라는 것이 더욱 많을 때니까.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지 않고, 일단 저지르고 볼 때니까. < 사탄의 베이비시터 >의 장르를 따진다면 호러 코미디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성장이다. 12살의 콜은 스스로 새가슴이라 말한다. 언젠가는 경찰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마음뿐이다. 아버지가 운전을 가르쳐주겠다며 운전석에 앉혀도, 늘 다음 주를 기약하며 결국은 내려 버린다. 그런 콜이 비를 짝사랑하다가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한 걸음 나아간다. 영화가 끝나면, 콜은 운전도 하고, 그를 짝사랑했던 멜러니와 데이트도 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책과 영화만 보며 몽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반드시 비를 극복해야만 한다.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기존의 청춘물, 공포물, 성장물의 특정한 요소들을 제대로 배합하여 효과를 발휘한다. 톰 크루즈를 처음 배우로 인식하게 한 걸작 < 위험한 청춘 Risky Business >(1983)이 겹친다. 모범생이 부모의 휴가를 틈타 파티를 열었다가 엄청난 재난을 겪게 되는데, 막대한 돈이 구하기 위해 그가 세운 타개책은 포주가 되는 것이다. 파티에 온 콜걸에게 연락을 하며 대학 경영학과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자본주의 생존법을 알게 된다. 청춘물의 아이들은 이렇게 고난을 통해 어른이 된다. <위험한 청춘> 초반, 혼자 남은 톰 크루즈가 거실을 누비며 에어 기타를 치는 장면이 있다. <사탄의 베이비시터>에서 콜과 비가 함께 거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며 톰 크루즈의 에어 기타를 떠올렸다. 도망치는 콜을 쫓는 비는 < 13일의 금요일 >의 효과음을 연상시키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도망갈 생각만 하던 콜이 용기를 내서 하나씩 비의 친구들을 물리치면 < 나 홀로 집에 >가 된다. 혼자 집에 남은 소년이 악당들을 물리치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싸우는 영화.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오가잡탕인데 꽤나 맛있다. 한때 < 미녀 삼총사 > 1, 2편을 만들며 각광받다가 <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 >(2009) < 디스 민즈 워 >(2012) < 쓰리데이즈 투 킬 >(2014) 등 실패작을 연속하며 움츠러든 맥지이지만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아기자기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성공작인 <미녀 삼총사>와 <사탄의 베이비시터>에 공통점이 있다면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적절하게 뒤섞었다는 것과 1980년대에 대한 향수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주도했던 80년대 장르 영화 트렌드를 뭉뚱그린 소년소녀 모험백서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 구니스 > < 그렘린 > < 빽 투 더 퓨처 > 등의 영화로 대표되는. 토비 후퍼를 초빙하여 만들었던 < 폴터가이스트 >(1982)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그 시절에 이미 청춘 호러가 득세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0년대는 청춘보다 호러에 방점을 둔 슬래셔 영화가 절정이었고, 이후 케빈 윌리암슨이 그 시대 슬래셔 영화를 패러디한 < 스크림 >(1996)의 시나리오를 쓰면서 청춘 호러는 개화했다. 청춘 호러를 너무 어둡게 가기보다는 케빈 윌리엄슨처럼 적절히 유머를 섞어가며 다루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호러와 코미디의 결합은 어려운 선택이지만 피터 잭슨의 < 데드 얼라이브 >와 샘 레이미의 < 이블 데드 > 시리즈가 보여준 스플래터의 감각을 더욱 끌어올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80년대 감각의 청춘 호러 코미디를 매끈하게 엮어낸 영화라 할 수 있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영리하게 향수를 끌어낸다. 마당에서 프로젝터로 보는 영화는 1971년 작인 <빌리 잭>이다. 기존의 영웅들로 은하계 드림팀을 만드는 게임을 하는데, 비가 선택한 드림팀은 < 스타 트렉 >의 커크와 피카드, <에일리언>의 리플리, < 인디펜던스 데이 >의 윌 스미스와 제프 골드블럼이다. 콜은 < 배틀스타 갈락티카 >의 아다마 제독, <스타 트렉>의 데이터, 프레데터 그리고 콜과 비였다(1978년 작 <배틀스타 갈락티카>가 있다). 이렇듯 <사탄의 베이비시터>는 영화 내내 과거의 영화와 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기억들을 소환한다. 또한 < 사탄의 베이비시터 >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은 캐릭터다. 콜은 비를 짝사랑한다. 멜러니는 콜을 짝사랑한다. 전형적인 스토리라면 비가 악녀로 밝혀지고, 비를 물리치는 모험을 한 후 멜러니와 맺어져야 한다. 하지만 <사탄의 베이비시터>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비를 미워할 수가 없다. 싫어할 수가 없다. 예뻐서만은 아니다. 콜을 괴롭히는 소년에게 비가 귓속말을 한다. 지독한 말에 놀란 소년은 잔뜩 겁을 먹고 도망친다. 비는 기존의 여성 캐릭터인 비치(bitch), 빅센(vixen), 팜므파탈 무엇으로 규정하기 힘들다. 뭔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맞는데, 그것 말고는 미워할 지점이 없다. 동정인 남자의 피가 필요해서 콜이 필요했을 뿐, 나름 성심껏 대해준다. 최선을 다해서 콜의 부족한 단점을 메워주고 용기를 준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는 콜의 질문에 비는 답한다. 원하는 무엇이든 가질 수 있다고. “나는 너무 작았고 두려움에 떨곤 했지. 지금은 강하지. 두려움도 없어.” 라고. 비도 콜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더 약하고 초라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비는 선택했을 것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더라도 강해지겠다고. 그리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콜이 비에게, “누나는 <매드맨>의 주인공 같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멋지고 잘 생겼지만 바람이나 피우는 놈.’ 하지만 그만의 이유가 있고, 매력이 있는 놈이 아닌 X인 비. 콜은 비를 사랑했고, 결코 미워할 수가 없다. 하지만 비가 정체를 드러내고, 콜의 친구를 죽일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콜은 대적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비로소 콜은 어른이 된 것이다. 비를 통해서, 비와 맞서고 극복한 후에 콜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 위험한 청춘 >에서 톰 크루즈가 콜걸인 레베카 드 모네이와 섹스를 하고 포주가 되는 경험을 한 후 어른이 된 것처럼. 과감하게 대학을 포기하고 자신의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듯이. 2014년, 아직 제작되지 않았으나 가장 좋아하는 시나리오인 ‘블랙리스트’, 2015년(에도) 아직 제작되지 않은 가장 좋아하는 호러 시나리오인 ‘블러드 리스트’에 꼽혔던 브라이언 더필드의 시나리오는 전형적인 장르 요소들을 도발적이고 역전된 캐릭터와 훌륭하게 결합시킨다. 킬링타임 용 오락영화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듯 한 기분이다. < 사탄의 베이비시터 >는 2015년 완성되었지만 2017년 10월 13일의 금요일에 넷플릭스를 통해서 공개되었다. 사족. 최근 넷플릭스에서는 스티븐 킹 원작의 <제럴드의 게임>과 <1922>, 애나 릴리 아미푸르의 < 버려진 자들의 땅 The Bad Batch >, 제러미 러시의 <겟어웨이 드라이버 Wheelman>, 닉 다미치의 <부시윅>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을 직접 제작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장르 영화들은 오래 전 할리우드 동시상영시대에 만들던 B-Movie 같다. 스타가 나오는 대작을 메인으로 상영하면서 열혈 팬이 있는 액션, 호러, SF 등을 저예산으로 만들었던 B급 영화. 넷플릭스는 기존 채널에서 모두 거절당한 드라마 < 기묘한 이야기 Stranger Things >를 제작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SF <익스팬스>와 호러 <헴록 그로브> 등 장르물에서 더욱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 블레임 > <아인> < 사이보그 009 >를 자체 제작하고 기존 작품 판권도 대거 사들이는 중이다. 소수 취향이지만 전 세계로 동시에 내보내면 시청자는 아주 많아지니까. 앞으로 넷플릭스는 < 사탄의 베이비시터 > <제럴드의 게임> 등 재기 있고 발랄한 영화들의 수원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