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림비사
- 감독
- 유강
- 출연
- 미설, 석수, 대지위, 유강
애니메이션이란 무엇인가? 참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많은 애니메이션 강의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되곤 한다. 아마도 그 수업은 알타미라 동굴벽화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2D, 3D, 클레이 등등 각종 애니메이션 기법들을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다면 뭔가 아쉽다. 애니메이션은 그저 기법일 뿐인가? 게다가 어차피 CG기술의 발달로 인해 ‘애니메이션이라는 기법’의 경계면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기법만으로 애니메이션을 논하기란 많이 부족해 보인다. 같은 질문을 ‘사람’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사람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는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이라고 한다. 생물학자라면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에 속하는 유인원의 일종이고, 학명은 ‘호모사피엔스’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사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자신의 ‘인간관’을 말할 것이다. 이는 곧 ‘사람’이란 구체명사를 추상적인 ‘가치’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그만큼 그 대상에 대해 다각도로 가치판단이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나 ‘그림’등 예술분야도 그러하다. 일반 대중들도 “스케일이 이 정도는 돼야 영화지~” 라든지, “이게 그림이야? 나도 그리겠다!” 와 같은 표현들을 흔히 한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영화관’이나 ‘그림관’을 갖고 있으며, 감상하는 작품들이 그에 부합하기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그에 비해 ‘애니메이션’은 아직 그러한 인식이 부족하다. 한국 대중들에게 애니메이션이란 ‘아이들만 보는 유치한 만화영화’ 정도의 의미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간혹 실사영화의 황당무계한 설정을 보고는 “이건 뭐 만화영화구먼~” 하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대부분은 그마저도 관심 없을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것은 곧 대중들이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만들어도 대중들이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 성공의 길은 요원하다.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서 양질의 작품제작 못지않게 ‘담론의 형성’이 중요한 이유이다. 지난 10월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린 <에밀 레이노와 초기 광학장치 재현전>은 이러한 맥락에서 봤을 때 매우 의미 있는 전시였기에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전시는 프랑스의 에밀 레이노(Emile Reynaud)가 120년 전에 세계 최초로 대중 앞에서 애니메이션을 상영한 날을 기리는 ASIFA ‘국제 애니메이션의 날’ 행사의 전시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에밀 레이노가 개발했던 ‘프락시노스코프’를 비롯, 다양한 애니메이션 초기 광학장치들을 재현하여 전시했다. 각 기기의 전기회로부터 디스플레이까지 전시 전반을 ASIFA KOREA 부회장인 이남국교수가 직접 준비했다고 한다. 수개월간 밤을 새워 만들었다니 그 열정이 대단하다. 특히 훌륭한 점은, 단순히 재현하여 진열해놓은 것이 아니라, 버튼만 누르면 누구나 쉽게 작동시켜 봄으로써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전시장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관객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기기들을 작동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특히 아이들보다 어른들의 눈이 더 반짝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남국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애니메이션이든 실사영화든 연극이든, 캐릭터를 누가 어디서 연기했는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릴 뿐 본질적으로는 같다. 그러므로 캐릭터의 동작을 창조하는 ‘애니메이팅’이야 말로 애니메이션을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동작이 그저 ‘움직임’일 뿐인 것이 아니라, 감정 가득한 ‘연기’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만이 관객들로 하여금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의 경우, 캐릭터들이 ‘애니메이션 12원칙’을 기본으로 한 개성 있고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그것이 오랜 세월 남녀노소/국적을 불문하고 사랑받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최신 CG를 사용하고 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도, 그러한 기본이 살아있지 않으면 오래 사랑받기는 힘들어진다. 그 캐릭터에 관객에 마음이 담겨질 것을 생각하고 혼신을 다해 생명을 불어넣어야 진정한 감동을 전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실험애니메이션이나 작가주의 애니메이션에도 그러한 요소들을 적절히 넣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비추었다. 이러한 관점은 전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버튼을 누르면 정성스레 그려진 그림들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정교히 맞물린 빛과 거울들의 조화로운 구조를 통과하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 정지되어있던 캐릭터가 살아 움직이게 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단순한 재미나 신기함을 넘어서 신비로움 마저 느껴진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전시를 즐기고 있는 관객들의 마음속에는 분명 ‘애니메이션은 애들이 보는 것’을 넘어서는 이해가 자리 잡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남국교수는 이러한 전시를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고, 나아가서 서울 근교에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만들 구상도 진행 중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고유의 맛을 알아나가게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기대가 크다. 물론 이것은 이남국교수의 관점일 뿐이고 누구나 자기만의 견해가 있을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견해를 사람들과 공유하여 담론을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보다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중심점과 경계면을 파악하면 그 나아갈 방향도 자연스럽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그 좋은 예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보다 다양한 견해들이 각종 영화제, 평론, 작품들을 통해 대중들에게 소개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