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세포들 시즌2
- 감독
- 이상엽, 주상규
- 제작년도
- 2022
- 출연
- 김고은, 안보현, 박진영, 이유비, 미람, 정순원, 주종혁, 권승우, 김차윤, 신예은, 전석호, 피오, 김미수
한국영상자료원은 2006년 2월 2일,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를 오픈했다. 그리고 오늘 2026년 2월 2일. KMDb는 20주년을 맞이한다. 우리는 KMDb를 기획·구축하며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한참 고민했다. 누군가 ‘무비씨’라는 이름을 제안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나고, 그러나 아무래도 어딘가를 따라 한 것 같지만 그 이상의 이름은 없다고 판단해 KMDb로 지었다. 그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은 kmdb.or.kr 도메인을 구매했다. KMDb에는 20년간 생겼다 없어진 콘텐츠와 기능이 많다. 초기에는 사용자가 직접 정보를 입력하는 기능도 상당했으나 생각보다 양질의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관리가 어려워 하나둘 폐기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과 독립영화 전용 KMDb를 따로 만들었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통합된 상태에서 최대한 간결한 기능과 콘텐츠로 운영하는 중이다. KMDb를 준비하며 호기롭게 “풀 크레딧을 가지고 갑시다!”라는 (제안을 내가 한 것 같고 그래서) 고생문이 활짝 열린 정책을 시작하며 힘들기도 하고, 하지만 그로 인해 어디에도 없는 데이터를 보유하게 된 KMDb는 영화·영화인 DB 서비스뿐 아니라 VOD로 한국고전영화 스트리밍을 시작했고, 영화글로 다양한 필자의 글을 소개했으며 리스트와 컬렉션이 순차적으로 오픈해 지금에 이르렀다. 2006년 2월 1일. 오픈 전날 디지털정보화팀의 담당 세 명은 그제야 동명이인에 대한 이슈를 발견하는 사고를 친다. 비슷비슷한 나이의 정유미 배우가 하나가 아니고 무려 세 명이래! 라는 비명을 한밤중에 지르며 당시만 해도 30대 초반이었던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인물을 분리하며 밤을 지새다 퇴근해 다음 날 오픈시켰다. 그리고 그 동명이인 이슈는 지금까지도 완전하지 않다. 완전할 수가 없다. IMDb도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젓는 이슈를 KMDb 라고 별수 있겠는가. IMDb 매니저는 이름이 짧은 한국 인명으로 동명이인에 대한 고충이 더 심하겠다며 나를 위로했다. 성명이 “정유미”인 배우 3인에 대한 KMDb 영화인 정보 KMDb는 영화·영화인 데이터의 완벽함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며, 이제는 영화인이 자신의 필모를 증빙하기 위한 웹사이트로 그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다. 그러다 보니 문득 KMDb에 쌓인 데이터가 어떤 모양새인지 궁금해졌다. 혹시 사용자들도 궁금해할까? KMDb 20주년 이벤트를 근사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데이터로 가득한 사이트의 20년 묵은 통계를 소개하는 것이 가장 어울리는 축하가 아닐까 생각했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지난 20년의 통계 10선을 소개한다. 1.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극·비극) 의 수: 50,787편 2. KMDb에 등록된 한국영화인 의 수: 83,279명 3. 가장 많이 접근된 영화인 페이지 정윤희(1위), 임권택(2위), 신성일(3위) / 사진: 전승열, 정기성 1위 | 정윤희 2위 | 임권택 3위 | 신성일 4위 | 김기영 5위 | 이상사 6위 | 김지미 7위 | 박노식 8위 | 김진규 9위 | 신상옥 10위 | 안성기 4. 작품 리스트(필모그라피) 가 가장 많은 영화인 1위 | 현동춘 | 편집 | 994편 2위 | 김희수 | 편집 | 863편 3위 | 최형래 | 음향효과 | 850편 4위 | 손인호 | 음향효과 | 793편 5위 | 김기범 | 배우 | 753편 6위 | 허장강 | 배우 | 687편 7위 | 임해림 | 배우 | 660편 8위 | 김재경 | 음향효과 | 657편 9위 | 윤일주 | 배우 | 650편 10위 | 최남현 | 배우 | 609편 5. 한 작품(장편영화)에 가장 많은 크레딧 을 올린 영화인 1위 | 노영석 | THE 자연인 (노영석, 2023) | 17개 공동 2위 | 박용철 | 싸이더:애,심 (박용철, 2019) | 16개 공동 2위 | 준오 | 휴게소 (준오, 2016) | 16개 ※ 노영석 감독은 <THE 자연인>에서 감독, 각본, 출연, 프로듀서, 촬영, 조명, 편집, 음악, 미술, 의상, 동시녹음, 사운드(음향), 시각효과, 색보정, 예고편, 포스터, 기타스탭(캘리그라피)을 담당함. 6. 참여 스태프 가 가장 많은 영화 <한산: 용의 출현>(1위) 1위 | 한산: 용의 출현 (김한민, 2022) | 1,665명 2위 | 백두산 (이해준, 김병서, 2019) | 1,612명 3위 | 안시성 (김광식, 2018) | 1,502명 4위 | 미스터 고 (김용화, 2013) | 1,492명 5위 | 신과 함께–죄와 벌 (김용화, 2017) | 1,487명 7. 상 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 1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58회 2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45회 3위 | 추격자 (나홍진, 2007) | 41회 4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40회 공동 5위 | 괴물 (봉준호, 2006) | 31회 공동 5위 | 벌새 (김보라, 2018) | 31회 ※ KMDb에서 관리하는 영화제·시상식에 한함 8. 리스트에서 본 영화로 가장 많이 체크된 작품 <올드보이>(1위), <괴물>(2위), <기생충>(3위) / 사진: 디씨어터 1위 | 올드보이 (박찬욱, 2003) | 2,581명 2위 | 괴물 (봉준호, 2006) | 2,355명 3위 | 기생충 (봉준호, 2019) | 2,178명 4위 |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 2,055명 5위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2001) | 1,672명 6위 | 아가씨 (박찬욱, 2016) | 1,648명 7위 |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 2000) | 1,574명 8위 | 마더 (봉준호, 2009) | 1,533명 9위 | 헤어질 결심 (박찬욱, 2022) | 1,515명 10위 | 8월의 크리스마스 (허진호, 1998) | 1,438명 ※ 박찬욱 감독 작품 4편, 봉준호 감독 작품 4편 9. 리스트에 본 영화 체크를 가장 많이 한 사용자 1위 | bo**** | 2,076편 2위 | ha**** | 1,865편 3위 | gs**** | 1,747편 4위 | ba**** | 1,696편 5위 | in**** | 1,636편 ※ ****는 ID의 글자 수와 일치하지 않음. 10. 가장 많은 조회수의 영화글 1위 | “ [시네필 안내서]서문: 시네필의 세계로 들어서고 싶은 당신에게 ” (영화천국 Vol.48) | 정성일 | 91,634회 사실 진정한 20주년 이벤트라면 올해 KMDb가 전면 개편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득하지만 어찌 됐든 2026년 말 새로운 KMDb가 문을 열 것이다. 오랜 KMDb 관여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묻는다면, 20년이 지난 이젠 누구나 KMDb를 KMDb(b를 소문자)로 써주길 바란다는 것 정도. 소박한 바람으로 글을 마친다.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우리는 모두 코로나라는 하나의 시기를 통과했다. 얼마 전까지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모두가 거리를 두었던 시기였는데, 또 조금 지나갔다고 그랬던 시기마저 생경하게 느껴진다. 코로나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무력감을 느꼈겠지만, 문화예술계통에 있던 사람들은 더 극명하게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도 그랬고. 배우들은 자신의 능동성이 기반되어야 하는 직업이지만, 외부의 선택에 의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선택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필요한 직업이다. 어떠한 작업이 들어가게 되는지, 또 그 작업 안에서 내가 어울리는 배역이 있는지.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시대의 흐름 속에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시기에 우선 영화작업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에 반해 OTT 작업들은 늘어났지만, 그 역시도 배우들에게는 하나의 장벽이었다. 대부분의 1차 오디션들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그렇기에 오디션 현장에 대한 경험을 쌓을 수가 없고, 결과에 대해서도 자세한 피드백을 들을 수 없었다. 에너지를 주고받는 직업인데, 혼자서 해나가야 하는 영역이 더 늘어났다. 또 독립영화는 현장에 대한 통제가 늘어나다 보니 자본이 더 필요해졌고, 촬영 중에도 어떠한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촬영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더욱 커져가는 상황이었다. 원래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작업들인데, 이를 더 가중시키는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배우라는 직업의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거리두기가 시작될 때, 문화예술계는 바로 직격탄을 맞았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재가 아니라는 감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해오던 일들은 의미 없는 일인 걸까. 그러한 고민의 시기에 나는 <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우.천.사) >(이하 <우천사>) 작업을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한제이 감독의 캐스팅 제안 전화가 걸려 왔고, 그 당시 제목만 듣고도 이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왜? 왜 천국에 갈 수 없고, 왜 사랑은 할 수 있는걸까. 천국이란 단어에서 느껴지듯이, 동성애와 관련된 영화였고 진한 첫사랑 이야기였다. 한제이 감독은 이와 더불어 현실이 비록 천국 같진 않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시작되었다. 첫 미팅은 마포역 근방 한제이 감독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한낮이었고, 아늑한 공간 속에서 수줍은 미소의 한제이 감독을 만나게 되었다. < 담쟁이 > 포스터가 벽면에 붙어있었고, <우천사> 관련 캐스팅 보드가 반대편에 있었다. 한제이 감독은 강한 자신감으로 이 영화를 소개했다. 누군가의 강렬한 확신은 다른 이들을 확 이끈다. 한제이 감독이 그런 경우였고, 나는 감독의 그 자신감을 믿고 따라가기로 했다. 내가 하게 될 역할은 ‘주영’이라는 캐릭터였다. 첫사랑에 빠져 사랑만 믿고 돌진하는 사랑 그 자체의 캐릭터. 한제이 감독은 실사영화보다, < 벼랑 위의 포뇨 >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나 박수연이라는 사람의 밝은 부분을 최대한 꺼내 쓰고 싶다고. 주영이는 예지라는 첫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을 만나게 되고, 태권도를 같이하는 성희, 오래된 동네 친구 민우, 엄마와 태권도 코치 등 여러 관계 속에 있었다. 시나리오는 한 번에 후루룩 읽힐 정도로 재밌었다. 캐릭터도 살아있고, 주고받는 대화들도 흥미로웠고, 사건도 큼직해 인물들의 삶을 이끌고 있었다. 다만, 폭력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생기는 몇 가지 염려되는 지점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 성추행 피해자에게 책임을 단 한 번이라도 묻지 않았으면 하는 점,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서 시각적인 자극이 덜했으면 하는 것. 나는 이 영화가 폭력을 보여주되, 보는 이로 하여금 2차 가해는 절대 없었으면 했다. 한제이 감독에게 이 지점을 말하였고, 같은 지점에서 한제이 감독도 우려를 하고 있었기에 서로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조율해 가며 함께 영화를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고등학교 태권도 선수인 주영이를 위해, 태권도를 한 달 반 정도 화, 금 2시간씩 오서독스 무술팀에게 배웠다. 태권도부를 연기할 배우 친구들과 함께 훈련했다. 처음엔 기초체력, 점차 촬영할 씬 동작들로 진행되었다. 태권도 씬들과 더불어 주영이는 맞는 씬들이 몇 개 있어서, 보호구를 착용하고 최대한 통증이 없을 방법을 오서독스에서 열심히 구상해 주었다. 아예 타격감이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으로 보호구를 착용했고 이러한 배려들에 감사함을 느꼈다. 현장에서도 무술팀은 액션 씬에 항상 동행해 주었고 먼저 몇 번의 시범 리허설을 해보았다. 그 공간에 맞게 동작을 수정해 주었고, 그 덕분에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리딩은 전체 리딩으로 진행되었다. 그날 예지 역의 이유미 배우를 처음 만났었고, 둘 다 낯가림이 있어 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인사만 나누었다. 성희 역의 신기환 배우는 같이 태권도 훈련을 하면서 더 친구처럼 친해진 상태였고, 민우 역의 김현목 배우는 여러 번 작업을 같이 했었어서 사적으로도 친했던 친구였다. 영화 속의 상황과 배우 개개인의 친밀도가 비슷한 수준으로 시작되었다. 사랑 이야기이다 보니 배역의 몰입도가 중요했는데, 사실 나는 상대역이 이유미 배우라는 말을 듣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기존의 스크린에서 보아왔던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내가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불덩이처럼 몸을 내던져야 하는 첫사랑이기에, 상대 배우가 매우 중요했고 유미에게는 사랑의 이미지가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는 모든 씬들의 앞뒤 연결을 생각하고, 그 순간에 살아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씬들을 꼽아보자면 노래방 씬과 바닷가 씬이다. 노래방 씬은 내가 사랑을 인지하게 되는 첫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가슴 떨림을 정말 잘 표현하고 싶었다. 촬영하면서 예지의 음성을 자세히 들었고, 예지의 눈빛을 열심히 흡수했다. 이 씬을 준비하면서 자우림의 '애인발견' 노래를 꺼내 들었었고, 촬영에 들어가자 노래 전주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떨림을 느껴 예지와 눈을 못 마주치는 그 순간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또, 바닷가 씬은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기억으로 주영이는 계속 살아갈 테니까. 그 씬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 마음을 꺼내 보이는 순간이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후에 드는 부끄러운 두근거림들. 실제로도 그 두 씬을 찍을 때 예지만 보고, 다른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촬영이라는 것을 지우고, 예지에게 더 집중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렇지만 한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건 사랑만은 아니다. 주영이에게는 소중한 친구인 성희와 민우가 있었다. 민우는 나를 웃게 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였다. (같이 텐션이 올라가는 사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또, 성희는 같이 태권도부에 있는 친구인데, 내가 만든 전사 속에서 주영이는 성희가 태권도를 해서 따라 한 것이라 생각했다. 열심히 하는 친구가 항상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태권도에 있어서 실력차가 발생할지라도, 주영이는 성희에게 열등감이 없었다. 성희는 원래 잘하니까. 질투하지 않았고, 응원하는 관계였다. (이런 순수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원하는 친구 사이의 관계성을 민우나 성희에게 반영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성희에게 일어난 일에 주영이는 큰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사랑에 빠진 동안, 성희에게는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성희를 챙기느라 예지를 못 챙기는 순간들이 너무하지 않냐는 피드백도 있었는데, 나는 주영이라면 그 순간에 미안함으로 성희를 더 챙겼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영화 전체 촬영 20회차 중 주영의 회차는 총 19회차였다. 주영이는 영화에 흐르고 있었어서, 거의 매 회차에 출근했다. 사실 독립영화에서는 체력을 쥐어짜서 매 회차를 촬영해 내기 때문에, 매일 전력을 다해 임했던 것 같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지방을 다니고 체력을 써가며 촬영을 해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영화를 정말 좋아하니까 연기를 한다는 자체에서 쾌감을 느껴 이를 지속해 가는 것 같다. 함께하는 스태프들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사랑을 담아내는 작업. 배우 개인적으로 늘 최선을 다해도 아쉬운 순간은 늘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기에 한 씬 한 씬이 소중하게 남아있다. 코로나가 만연하던 시기였음에도 <우천사>는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그 다다음해인, 코로나가 잠잠해진 올해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하게 되었다. 위기를 넘긴 후 만나게 된 영화제는 무척이나 달콤했다. 관객들을 만나고, 반응을 듣고, 내가 더 힘을 얻게 되는 순간들을 선물 받았다. 이러한 상영의 경험까지가 영화의 완성이라고 느낀다. 내가 연기한 순간들이 그들에게 가 닿고, 또 자신들의 인생을 돌아보는 순간들을 선사하는 것. 이 순간 때문에 나는 계속 연기를 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시기에 개인적으로 배우라는 직업에 무력감을 느끼긴 했었지만, 영화작업을 하고 나니 또다시 해나갈 힘이 생겼다.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하는 이 작업들은 이 연결감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기에 독립영화 작업이 잠시 줄어들지언정, 아예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코로나 시기를 지나고 개인적으로 배운 점도 있다. 함께 하기 위해서는 혼자 서는 힘도 필요하다는 것. 혼자서 해내는 연기의 책임감들을 더 배우게 되었고, 혼자있는 시간도 잘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가 잘 지나간 것처럼, 인생 역시도 계속 흘러간다. 앞으로도 내가 어떤 시대를 마주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두 발을 땅에 잘 붙이고 서서 시대와 함께 걸어 나가려 한다. 무력하기도, 씩씩하기도 하면서. 코로나 시기를 무사히 지나 보낸 우리 모두의 동료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