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캠퍼스
가끔 후배들의 재능이 부러울 때가 있다. 저 나이 때의 나라면 결코 닿지 못했을 어떤 감각, 어떤 솜씨. 유재욱 감독의 단편영화 < 캠퍼스 >를 올해 인디포럼 영화제에서 처음 볼 때도 그랬다. 뭐야, 잘 만들었잖아! 올해 영화제에 상영된 단편영화들 중 단연 돋보였다. < 캠퍼스 >는 대학 등록금에 대처하는 가난한 두 대학생의 이야기다. 비싸다 못해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살인적인 한국의 대학 등록금 앞에서 가난한 대학생들은 무엇을 하는가? 두 주인공인 재원과 종연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시멘트 공장에서 야간조로 일을 한다. 그러나 곧 해고당하는 두 사람.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거라곤 공장에서 철근을 훔치거나 학교 기물을 훔치는 일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두 사람은 교통사고 자해공갈을 시작하게 된다. 물론 이 시나리오에 흠결이 없는 건 아닐 게다. 감독이 현재도 대학생이고,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로 뛴 자기 자신과 선후배들의 경험들을 담았다고 하지만, 학교 기물을 훔칠 요량으로 교수에게 연장을 빌리는 장면이라든가 청소노동자를 협박하기 위해 뒤쫓는 장면들은 불필요하게 작위적이다. 그리고 자해공갈에 이른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충분히 전형적이잖은가.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전형들을 연주하는 지휘 능력. 빈 구멍 없이 에피소드들을 촘촘히 엮어내는 연출자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건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이 흔치 않게 묵직하다. 두 주인공이 훔친 철근을 들고 오토바이에 탄 채 무표정한 얼굴로 달리는 순간이라든지, 월세 때문에 좁은 자취방에서 둘이 엉켜붙어 싸우는 장면을 멀리 떨어져 길게 응시하는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빛이 난다. 에피소드 나열에 연연해하지 않고, 사건에 붙들린 인간 군상들의 심리를 묵직하게 묘파하는 그 평정심. 어쩌면 난 그 평정심에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자해공갈에 나선 두 대학생이 작전을 짜고 그 중 한 명이 자동차를 향해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동안, 카메라는 그저 남아 있는 한 명의 얼굴을 무심한 듯 응시하며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아니, 어떻게 20대 젊은 연출자가 저렇게 흔들리지 않고 묵직하게 대상을 바라볼 수 있지? 또래의 젊은 연출자들이 다르덴을 흉내내기 위해 무작정 핸드헬드로 뒷통수를 쫓거나, 아핏차퐁을 올려다 보며 의미없는 롱테이크 안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유재욱 은 자기 자신의 경험들을 그저 나직한 시선으로 응시할 뿐이다. 게다가 < 캠퍼스 >는 연출자가 생애 두 번째로 만든 단편영화이고, 첫 번째로 만든 단편은 아직도 완성이 안 되어 있단다. 성질 급하고 그것 때문에 여전히 스스로 함정에 곧잘 빠지는 나에게, 20대 연출자의 저렇게 담담한 듯 무표정한 평정심이 빚어내는 장면들은 충분히 질투가 날 만 하겠다. 지금 찍고 있다는 다음 영화가 궁금해서 조바심이 날 지경. 그러게, 또 한 명의 ‘재능’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