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 감독
- 오윤홍
- 제작년도
- 2001
- 출연
- 오윤홍, 박지일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넷플릭스) 올 한 해 TV와 OTT를 통해 공개된 시리즈들을 필자의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관심을 끌어모은 화제작부터, 스쳐 지나갔지만 돌이켜 볼 만한 문제작들까지 정리합니다. 며칠 전, 12.3 비상계엄 이후 1년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눈물이 났다. 그 시간을 통과할 때는 미처 감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모두 참으로 위험한 시간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내란 사태를 수습하느라 사회 전체는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다. 정치뿐 아니라 경제 상황 역시 불안정했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많은 이들이 ‘각자의 내란’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2025년의 시리즈에는 유난히 어려운 시절을 버티며 살아낸 이들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버틴 사람들의 이야기 올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한 드라마는 < 폭싹 속았수다 >(김원석/넷플릭스)가 아닐까? <폭싹 속았수다>는 거친 바다를 온몸으로 견뎌낸 해녀, 광례( 염혜란 )에게서 시작한다. 광례와 딸 애순( 아이유 · 문소리 ), 손녀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진 모녀 3대는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파도에 맞선다. 인생을 사계절에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해녀 공동체의 연대, 애순과 관식( 박보검 )의 풋풋한 사랑, 그리고 모두의 생애를 지탱한 가족애가 가득 담겼다. <폭싹 속았수다> 속 인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과제를 감당하며 버텼다면, <태풍상사>(이나정, 김동휘/tvN)의 태풍( 이준호 )은 1997년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폭풍을 견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불어닥친 회사의 위기 앞에서 태풍은 직원들을 신뢰하며 열정적으로 회사를 지키고 살려낸다. <태풍상사>는 마치 ‘국난’을 극복하듯 회사를 되살리는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졌던 IMF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얼굴도 놓치지 않는다. 태풍이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던 IMF 시기, 낙수( 류승룡 )는 치열한 취업 전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어느새 명예퇴직 대상자가 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조현탁/JTBC)는 사회의 중심축에서 밀려난 중년 세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사회적 ‘쓸모’가 사라졌다는 자각과 거듭되는 실패 앞에서 낙수는 모멸감과 상실감, 불안 속에서 흔들리며 우울과 공황을 겪는다. 이 시리즈는 중년의 위기를 유머와 애잔함으로 감싸며, 낙수가 가족의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 <폭싹 속았수다> 중 (사진: 한겨레 , PD저널 / © 넷플릭스) (하) <태풍상사>,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중 (사진: tvN , JTBC ) 여성들의 세계, 더 넓어지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시리즈 너머, 여성을 생애사적·사회적 이야기로 확장한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 은중과 상연 >(조영민/넷플릭스)은 은중( 김고은 )과 상연( 박지현 ), 두 여성의 30년에 걸친 관계를 따라가며, 서로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배신도 하는 등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를 밀도 있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상연을 단순한 ‘빌런’이 아니라 결핍과 외로움이 빚어낸 인물로 끝까지 이해하려는 시선이나, 성소수자인 상학( 김건우 )의 죽음과 안락사를 선택한 상연의 죽음을 “내가 있어도 되는 세상”을 갖지 못한 존재들의 죽음으로 연결하는 감각이 인상적이었다. <미지의 서울>(박신우, 남건/tvN)은 일란성 쌍둥이, 미지와 미래( 박보영 )의 ‘삶 교환’을 중심으로 청년 세대의 불안과 고립, 직장 내 괴롭힘, 비정규직 차별, 장애와 성소수자 문제를 복합적으로 짚는다. ‘마론제과’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이야기 <달까지 가자>(오다영, 정훈/MBC)와 아파트에서 발생한 사건을 추적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살롱 드 홈즈>(민진기, 정현남/ENA)는 가족의 확장된 형태로서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준다. < 피라미드 게임 >(박소연/TVING)과 < 선의의 경쟁 >(김태희/U+TV)은 여고 내 계급과 폭력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미지의 서울>, <폭싹 속았수다>, <견우와 선녀>(김용완, 정우식/tvN), <첫, 사랑을 위하여>(유제원, 함승훈/tvN) 등 모녀 관계를 통해 여성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현대극뿐 아니라 시대극 역시 여성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옥씨부인전>(진혁/JTBC)은 조선시대 노비로 태어나 양반 마님이 되어 ‘변호사’로 활약한 구덕이( 임지연 )를 중심으로 계급, 여성 차별, 성소수자, 아동·약자 착취 문제 등을 녹여내 ‘조선판 인권 선언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 애마 >(이해영/넷플릭스)는 1980년대 충무로를 배경으로, 에로 영화 전성기의 포문을 연 영화 < 애마부인 >(정인엽, 1982) 촬영기를 극중극 형태로 재현하며 ‘남성적 응시’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메타 비평적으로 풀어낸다. 여성의 성적 욕망을 부정하던 1980년대 시골 마을에서 성인용품 판매를 하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인 <정숙한 세일즈>(조웅, 김미진/JTBC)와 1990년대 버스 안내양들의 우정을 담은 <백번의 추억>(김상호/JTBC)은 그간 주목받지 못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가부장 사회에서의 여성 억압의 문제, 노동과 우정의 연대기를 보여준다. (상) <은중과 상연>, <미지의 서울> 중 (사진: MBC /© 넷플릭스, tvN ) (하) <애마>, <백번의 추억> 중 (사진: 넷플릭스 , JTBC ) ‘보편성’이라는 이름의 한계 이렇게 여성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폭넓게 등장했음에도 ‘가족’ 바깥을 상상하게 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폭싹 속았수다>를 여성 서사로도 볼 수 있지만, 결국 부모 세대와 가족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또한 낙수의 아내 하진( 명세빈 )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지만, 시리즈는 결국 “김부장 이야기”, 즉 가장을 이해하고 북돋우며 가족애로 회복에 이르는 데 집중했다. <태풍상사>도 마찬가지다. IMF로 일자리를 잃거나 불안정한 노동에 배치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지만, 이런 이야기는 로맨스 서사에 묻히고 만다. 이런 한계에도 이 시리즈들은 ‘보편성’을 가진 좋은 이야기로 회자됐다. K-드라마의 보편성이란 여전히 ‘아버지’ 중심의 가족 서사라는 게 재확인된 셈이다. 이런 특징은 결국 세대, 노동, 차별 등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른바, ‘여성 서사’라 불리는 드라마에서도 극소수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가족 다양성, 가족 너머의 서사를 온전히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까? 『페미니즘 리부트』(2017)에서 영화평론가 손희정이 IMF 이후 영화의 여성 재현에 관해 지적했듯, IMF 이후 또 다른 위기의 시대를 통과하는 지금, 이런 흐름은 가족이라는 안전하고 효율적인 이데올로기를 작동시켜 ‘위기의 시대’를 손쉽게 통과하려는 징후가 아닐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태풍상사> 중 (사진: JTBC , tvN ) 그런데 흥미롭게도, 가족과 연대로는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도 있었다. 가족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폭력, 사회가 방치하고 묵인해온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들이다. 그 ‘사이코패스’들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올해 시리즈의 또 다른 흐름은 < 하이퍼나이프 >(김정현/디즈니+)의 소시오패스 의사 세옥( 박은빈 )을 비롯해 사이코패스 성향의 인물들이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단지 반사회적 인물로 등장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재현을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질문했는가에 있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변영주/SBS)의 연쇄살인범 이신( 고현정 ), < 친애하는 X >(이응복, 박소현/tvN)의 사이코패스 아진( 김유정 ), < 당신이 죽였다 >(이정림/넷플릭스)에서 남편을 살해하는 희수( 이유미 )와 그의 친구 은수( 전소니 ), < 자백의 대가 >(이정효/넷플릭스)의 모은(김고은) 등 폭력을 행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반사회적 여성들을 통해 아동 학대, 가정폭력, 성폭력을 묵인하는 가부장제와 권력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시리즈들은 반사회적 선택이 개인의 선택이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산물임을 보여줬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품은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후반부에는 장르적 쾌감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귀결되며 구조 비판의 힘을 잃었다. 그 결과 폭력은 사회의 문제로 제시되지만, 변화의 책임은 다시 개인의 파멸이나 응징으로 환원된다. 2010년대 이후 빈번하게 등장한 ‘사적 복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식이다.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 <자백의 대가> 중 (사진: SBS , 넷플릭스 ) 결국,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2025년 시리즈를 회고하다가 ‘돌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폭싹 속았수다>의 해녀 공동체가 서로를 살피고, <태풍상사>의 태풍이 직원들을 신뢰하며 회사를 지켜내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가족이 함께 위기의 시간을 견디고, < 다 이루어질지니 >(안길호/넷플릭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가영( 배수지 )을 사랑으로 키워내는 것.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가 딸기 농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신을 추스르고, <첫, 사랑을 위하여>에서 골수암에 걸린 효리(최윤지)가 꽃 농사를 짓는 보현(김민규)을 만나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폭군의 셰프>(장태유/tvN)에서 지영( 윤아 )이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 내가 죽기 일주일 전 >(김혜영, 최하나/TVING)에서 이미 죽어 저승사자가 된 람우( 공명 )가 생기를 잃고 사는 첫사랑 희완( 김민하 )를 살리고, <견우와 선녀>에서 곧 죽을 운명에 처한 견우( 추영우 )를 무당인 성아( 조이현 )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살리는 것. 이 모든 장면의 공통점은 어떤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라는 점 아닐까? 그래서인지 올해 시리즈에는 유난히 식물을 키우는 설정이 자주 등장했다. 식물을 정성껏 가꿀 뿐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서로의 곁을 지켰다. 올해 시리즈는 ‘죽이는 것’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살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가족주의라는 안전한 이데올로기에 기대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면서 2025년 시리즈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돌봄과 버티기만으로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 가족 간의 사랑을 앞세우고, 개인의 파멸로 끝나는 응징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흐릿하게 만들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상상력의 시계를 좁게 한다. <애마>에서 희란( 이하늬 )과 주애( 방효린 )가 “각자의 링” 위에서 싸우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세계로 나아갔듯, 지금 우리에게는 낡은 세계로 회귀하지 않으면서 “미래를 앞당기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미지의 서울> 중 (사진: tvN ) 오수경(드라마평론가) l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했고, 신앙인으로 살고 있으며,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여러 매체에 칼럼 기고. 『을들의 당나귀 귀 』(2019) 공동 집필, 『드라마의 말들 』(2022) 집필.
사진: “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 ”,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국내 극장에서 마주할 수 있었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영화들을 곱씹어 본다. 어떤 영화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침탈이 꼬박 한 세기가 넘은 문제임을, 과거의 가자 지구를 (재)발견함으로 이야기한다(< 그 꽂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 >, < 하산과 가자에서 >). 어떤 영화들은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노사이드에 분노하고 자신이 감각하는 무기력함을 고스란히 담아내길 시도한다(<공존이라니, 웃기시네!>, < 힌드의 목소리 >, < 해피니스 >). 어떤 영화들은 학살이 벌어지며 폐허가 된 가자의 현재를 팔레스타인 바깥으로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끝나지 않는 밤>, < 노 어더 랜드 >, < 그라운드 제로로부터 >). 어떤 영화들은 팔레스타인 바깥에서 어떻게든 가자 지구로 카메라를 향하게, 그럼으로써 관객과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시선을 움직이고자 한다(<언허드: 마사페르 야타를 지켜라>, < 팔레스타인을 위한 두 대의 카메라 >). 또 어떤 영화는 그럼에도 존재하는 가자에서의 삶과 생 자체를 기록하고 이곳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곳임을 천명한다(<가자에서 파쿠르>). < 슈퍼맨 >이나 < 주토피아 2 >와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 묘사된 지정학적 분쟁이나 침략이 이스라엘의 제국주의나 나크바(النَّكْبَة)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등장했던 것도 이러한 영화관람의 연장선이랄까. 영화제나 소규모 상영회를 통해 올해 국내 상영된 영화가 더 있겠지만, 개인이 챙겨볼 수 있는 영화는 이 정도였다. 아참, 한 영화를 빼먹었다. 알렉스 바크리의 다큐멘터리 <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 >(2025)이다. 이 영화는 앞서 언급한 작품들과 다르게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진행되는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은 영사기사 ‘후세인 다르비’, 서안지구 예닌(Jenin) 지역의 영화관 ‘시네마 예닌’에서 일했던 베테랑이다. 하지만 그는 실직자다. 1987년 1차 인티파다 이후 극장은 문을 닫았고, 장기간 방치된 공간은 폐허에 가까워졌다. 2008년, 독일의 영화감독 마르쿠스 베터(Marcus Vetter)는 이스라엘과 EU의 지원을 받은 일종의 문화적 회유정책인 ‘예닌 극장 재개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는 독일의 극장 기술자를 데려와 예닌 극장을 재건하고자 하고,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촬영해 <시네마 예닌>(2011) [1] 이라는 제목으로 공개했다.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의 감독 알렉스 바크리는 <시네마 예닌>에 촬영으로 참여했었으며,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2008~2010년 사이 후세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시네마 예닌> 중 예닌 극장의 모습 (사진: “ CINEMA JENIN ”, MUBI) 여러 맥락에서 시네마 예닌을 필름 극장으로 재개관한다는 프로젝트는 시대착오적이다.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은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폐관하기 이전의 시네마 예닌에서 일을 배웠으며 43년의 영사기사 경력을 갖고 있는 후세인에게 주목한다. 이 영화의 제목에 극장이 아니라 후세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베터의 <시네마 예닌>이 자신의 평화주의적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대한 기록이라면,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은 그것이 얼마나 탈정치적이며 시대착오적이고 평화적이지 않았는지를 드러낸다. 베터의 프로젝트에서 예닌이나 서안지구에서 일하고 있는 영화관 산업 관계자는 배제되어 있었다. 영사기사 후세인은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이 극장의 영사기사임을 주장한다. 극장의 재건은 서구와 이스라엘의 펀딩을 통해서만 가능한 프로젝트이지만, 그것의 존속은 결국 (역사, 정치, 문화 등이 뒤섞인) 해당 지역의 문제다. 베터의 프로젝트가 간과했지만 후세인은 알고 있던 사실, 그렇기에 후세인은 시네마 예닌에서 다시 일하기 위해 영화 내내 동분서주한다. 오래된 영사기의 컨디션을 테스트하고, 근처의 극장을 찾아 탄소봉과 렌즈를 빌려 오고, 영사기 설치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검문소를 넘어 텔아비브로 향하길 시도한다. 알렉스 바크리의 카메라는 ‘백인 구원자’ 서사에 자신을 투사하는 마르쿠스 베터와 그의 팀의 이면에서 구원받지 못한 한 인물을 담아낸다. 영화는 시네마 예닌의 재개관 행사에서, 마땅한 초대석은 물론 프로젝트 구성원으로 호명조차 되지 못한 채 구석에 서 있는 후세인의 모습을 담아낸다. 위험천만한 이동을 감행하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던 후세인의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얼굴을 목격하던 관객들은 망연자실한 채 재개관 행사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다시 목격한다. 이때 우리는 후세인의 얼굴에서 다른 팔레스타인 민중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 꽃은 조용히 서서 지켜본다>에서 영국인 선교사들이 촬영한 필름에 담긴 100년 전의 팔레스타인 인민들, <하산과 가자에서>에 담긴 밤새 벌어진 이스라엘군의 총격 흔적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짓는 20년 전의 가자 지구 주민, 이스라엘 정착민의 공격에 시달리는 <노 어더 랜드> 속 사람들. 자신의 땅을, 생활을, 직업을, 삶을 강탈당한 사람들의 일관된 표정은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에도 담겨 있다. (상) 사진: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 좌 , 우 )”, 부산국제영화제 (하) 사진: “ 하산과 가자에서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좌) / “ 노 어더 랜드 ”, 부산국제영화제(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기간이다. 2008~2010년은 극장 시스템에 있어 일종의 전환기다. 국내의 상황만 살펴보더라도, 와이드릴리즈로 디지털 배급을 시도한 2006년의 천만 영화 < 괴물 >과 3D 광풍을 불러온 2009년의 < 아바타 >를 거치며 디지털 상영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디지털 시네마 이니셔티브(Digital Cinema Initiatives)가 디지털 영사의 표준 포맷인 DCP의 1.1 버전을 내놓은 것도 디지털로 촬영부터 배급 및 영사까지 이루어진 최초의 사례 [2] 로부터 대략 10년이 지난 시점인 2007년이었다. 그 이후의 변화는, 모두가 알다시피 영사기사라는 직종의 점진적인 소멸이다. 마르쿠스 베터의 재개관 프로젝트에는 이러한 고려가 결여되어있다. 그는 시네마 예닌을 35mm 필름 영사기를 사용하는 극장으로 재건하고자 했으며, 디지털 영사로의 이행기에서 이는 필연적인 실패로 이어진다. 실제로 시네마 예닌은 2010년 8월 재개관했지만 7년 뒤 다시금 폐관했다. 물론 여기에는 재개관과 운영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탈정치적 성격을 가졌다는 것, 그것이 프로그래밍은 물론 영화관 자체에 대한 평판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포함되지만 말이다. 독일에서 영사기를 공수해 시네마 예닌에 설치하고자 하는 마르쿠스 베터의 아이디어, 더불어 독일에서 넘어온 기술자가 영사기를 설치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동안 영사기의 구조를 파악하고 필요한 부품을 구하러 다니는 후세인의 모습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이행하는 시기의 혼란을 그대로 가져온다. 마르쿠스와 그의 팀이 프로젝트에서 후세인의 노고와 그가 지켜온 영사의 유산에 알맞은 보수와 명예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사기사 후세인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마르쿠스의 프로젝트가 보여주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무지와 평화주의를 내세우는 정치적 평탄화가 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면, 이러한 지점들은 영화의 기초적인 지지체로서 필름과 필름영사기, 그것들을 다루는 영사기사의 쇠락은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의 다른 한 축이 된다. 영사기사 후세인이라는 인물은 이러한 두 축이 결과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일종의 문화 제국주의와 필연적인 미디어 변화로 정당화되는 자본주의적 이행 사이에 껴있는 존재가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2017년 시네마 예닌이 재개관한 지 7년 만에 재폐관하고 건물이 철거된 현장에서의 인터뷰다. 후세인은 다시금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철거된 극장을 바라본다. 시네마 예닌의 철거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후세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자막이 등장하고 영화가 끝난다. “영화의 죽음”이라는 해묵은 테제를 다시금 떠올린다. 시네마 예닌은 이스라엘의 펀딩을 받은 독일 감독의 바람과 달리 팔레스타인 공동체를 위한 무언가로 작동하지 못했으며, 후세인은 끝없이 프로젝트의 외곽으로 밀려나 영사기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은 한 사람을 통해 애초에 달성될 수 없던 프로젝트의 죽음과 영화의 죽음, 나아가 그것이 긴밀하게 얽혀 있음을 드러낸다.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환상, 역사와 유산에 대한 무지, 문화(culture)의 경작(cultivate)이라는 관점의 부재,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은 팔레스타인을 위한 NGO의 프로젝트는 물론 영화의 향유와 그것을 통한 문화의 형성 또한 서구적 관점에서 짜여 있음을 지적한다. 이 영화는 2017년에 마무리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2025년에야 공개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알렉스 바크리 감독은 이 영화가 지금에서야 공개된 것이 순전히 ‘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25년의 시점에서 시네마 예닌과 영사기사 후세인의 이야기를 목격하는 것은, 우리를 이전과 다른 맥락으로 인도한다.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영화를 보러 다니고, 그 영화들에 관해 짧은 평이라도 남기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영 소식을 공유한 것은 영화평론가이자 (이제 막 석사를 마쳤을 뿐이지만) 상영 활동에 관한 논문을 쓴 연구자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는 자그마한 다짐에서 출발한 일이다. 이러한 다짐은 물론 영화사의 여러 작품을 종으로 횡으로 엮어내는 비평적 프로그래밍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관해 발언하고자 하는 필름 콜렉티브 로트링겐의 스크리닝 [3] 이나, 다양한 스크리닝과 이벤트를 통해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확장하고자 하는 해방을 꿈꾸는 씨네클럽 [4] 의 활동에 비하면 작은 것일 테다. 정치철학자 배세진은 가자에 관해 쓴 짧은 팸플릿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국 우리가 이러한 연결된 세계의 연결된 위기 속에서, 다르게 말해 오늘날 지금 여기 우리가 놓여 있는 이 현실 즉 현행성 속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동료 시민을 위해 투쟁하고 사랑하며 연대한다면, 이는 오롯이 가자를 위한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5] 그 또한 같은 글에서 쓰고 있듯, 지난 1년 사이 벌어진 내란 국면에서 살아온 한 사람으로 가자 지구와 팔레스타인에서 자행되는 위기는 그것과 연결된 우리의 위기이며 (일정 부분) 의무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배세진의 말을 빌리자면,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볼 것인가? 사진: “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 ”, 부산국제영화제 *** [1] 국내에선 2012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공개되었다. [2] 1998년 북미 개봉한 <더 라스트 브로드캐스트>가 촬영, 편집, 배급, 영사 등이 모두 디지털로 이루어진 최초의 사례로 알려져 있다. [3] 해당 스크리닝은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에선 아직 진행되지 않은 '새벽에서 황혼까지, 강에서 바다까지: 페터 네슬러, 아니크 르루아, 뤼디거 노이만, 장-마리 스트로브 & 다니엘 위예(2025. 12. 20.~12. 21. 진행)'이다. 자세한 정보는 로트링겐의 홈페이지 소개글( 링크 )을 참고. [4] 해방을 꿈꾸는 씨네클럽 인스타그램( 링크 )을 참고. [5] 배세진,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금붕어, 레닌, 그리고 가자』, 출판공동체편않, 2025, 17~18쪽. 박동수(영화평론가) l 보고 듣고 읽고 쓰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 2021년 독립영화비평상 당선.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회원.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집필.
경기천년바탕체 R(저작권자: 경기도, 출처: 한국저작권위원회 ) (위 이미지 클릭 시 유튜브 영상으로 이동) 2021년, 예술문화 공간 연희동에 문을 열다 연희동은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재건축이 빈번하지 않고 오래된 도시의 정취를 가지고 있다. 부촌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에서 이어지는 ‘홍대권’의 끝단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재건축에 관심이 없는 오래된 저택들이 많은 탓에 급격한 상권변화나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다. 연희동에는 소규모의 갤러리가 많다. 주로 2014년부터 궁동산과 안산 자락 일대에 들어온 소규모 갤러리들은 대부분 주택가의 1층 혹은 상가 건물을 개조해 만든 건물에 들어서며 연희동 고유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되 예술적 동네의 모습을 갖춰 갔다. 라이카시네마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학창작공간 ‘연희문학창작촌’이 있다. 도심 속 같지 않게 바람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이 공간에서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작품을 창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공방과 퍼포먼스 예술 극장 등이 연희동에 자리 잡으며 마을의 문화적인 분위기가 더 확고해졌다. 때문에 라이카시네마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연희동에 당연히 있을 법했던 것이 이제야 생겼다’라는 반응도 있었다. 연희동 최초의 극장이자 예술영화관인 라이카시네마는 2021년 1월 13일 연희삼거리 골목길 안쪽에 좌석 40석의 단관으로 문을 열었다. 원래는 2019년부터 개관을 준비했으나 코로나19로 극장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개관 시기를 고민하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정면돌파하는 마음으로 열었는데, 오히려 젊은 관객들과 연희동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라이카시네마 정문 출입구 최초의 우주개 라이카에서 명칭을 따다 ‘LIFE LIVE LIKE’라는 이름의 개관 기획전은 첫 비행을 컨셉으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파이널컷>(2020),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 원더풀 라이프 >(1998),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 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 왕가위 감독의 < 화양연화 >(2000),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 멜랑콜리아 >(2011) 등 16편이 상영되었다. ‘라이카시네마’라는 이름은 소련의 우주선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최초의 우주개 ‘라이카Laika’에서 땄다. 극장이 들어서 있는 건물 이름이 먼저 지어졌고(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독Space Dog)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어진 이름이다. ‘영화로 광활한 여정을 떠나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홈페이지에 실린 영화관에 대한 공식적인 소개 역시 ‘연희동에 불시착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라이카시네마 1층 로비 전경 스페이스독은 연희동 토박이로 오랫동안 동네에 주민들의 문화공간을 짓고 싶어 했던 이화유니폼 서기분 대표가 같은 연희동 주민인 SPDG(스페이스독) 이한재 대표와 의기투합해서 지었다. 본래 2층 주택인 부지를 허물어 4층 건물로 리모델링했는데, 1~2층은 카페, 3~4층은 공유오피스이다. 건축주는 서기분 대표이고 해당 건물의 설계부터 운영까지 스페이스독이 맡고 있다. 스페이스독 지하에 영화관이 들어온 이유는 서기분 대표와 이한재 대표 모두 오랫동안 연희동에 살면서, 연희동에 있을 법한데 없는 것 중 하나가 영화관이라고 생각했고, 예술영화나 독립영화가 이런 작은 영화관과 잘 맞을 것이라고 봤다. 영화편집숍 컨셉의 젊은 예술영화관 라이카시네마를 찾는 관객들은 주로 20대 여성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입문자들이다. 상영 영화들에 따라 연희동 주민이나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좌석을 꽉 채우기도 한다. 연희동의 유일한 예술영화관으로서 지역 사회는 물론 여러 주체와의 협업에도 열려 있는데, 개관한 해에 바로 ‘2021 서대문독립민주영화제’를 개최하거나 단편 영화들을 한 편씩 상영하는 기획전을 열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로 라이카시네마는 20대 젊은 층에게는 테마가 있는 ‘영화편집숍’으로, 동네 주민들에게는 다양한 영화 체험의 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라이카시네마의 지향점은 앞서 언급했듯 관객들이 ‘영화 편집숍’을 방문하듯이 라이카시네마를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좌석 수의 한계로 수익성 자체가 눈에 띄게 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금 공간을 잘 활용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게 라이카시네마의 운영 방향성이다. 애초에 공간 구성과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썼고, 시네필이 아닌 이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어서 영화 선정 또한 너무 어렵거나 힘든 예술영화보다는 접근이 쉬우면서도 새로운 작품 중심으로 하고 있다. 라이카시네마 상영관 입구 복도 라이카시네마의 인테리어 역시 보통의 영화관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예술적 조형물들과 우주선에 탑승한 듯한 느낌을 주는 구성이다. 설계 때부터 영화관을 염두에 둔 것에서 알 수 있듯, 영화관의 설비나 공간 구성은 최고 수준이다. 서울의 예술영화관 중 유일하게 입체 음향 기술 돌비 애트모스 시스템을 도입해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다른 영화관에 비해 넓은 좌석 배치로 관객들의 시야가 어느 자리에서도 가려지지 않고 앞좌석에 발이 닿기도 어렵다. 더불어 물과 무알콜 음료를 제외한 음식은 섭취가 불가능하다는 상영관 내 규칙까지,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한다. 라이카시네마의 상영 시간표는 매주 수요일에 업데이트 된다. 라이카시네마가 위치한 연희동을 기점으로 가까운 거리에 아트하우스 모모와 필름포럼,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안 인디스페이스 등의 독립예술영화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종로구와 중구에 밀집돼 있던 예술영화관이 서대문구, 마포구로 많이 이전되어 한국영상자료원과 함께 독립예술영화관들이 모여있는 일종의 지구가 형성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라이카시네마 상영관 내부 공간 및 운영 개요 1. 위치 :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로 8길 18 스페이스독 B1 2. 설립일 : 2021년 1월 13일 3. 대표자 : 서기분 4. 규모 : 연면적 721.26㎡ 지하1층–지상4층 5. 공간 구성 : 1관 40석(장애인석 1석 포함), 1층 로비, 2층 카페(휴업), 루프탑(정원) 6. 운영시간 : 09:30-24:00 (영화 상영시간에 따라 조정) 7. 입장료 : 평일(월~목), 주말(금~일,공휴일) 1) 성인: 평일 1만원, 주말 1만 1천원, 조조 평일 6천원, 주말 7천원 2) 대학생: 평일 9천원, 주말 1만원 (서대문구/마포구 소재대학교 재학생 1천원 추가 할인, 현장 전용) 3) 청소년: 평일 8천원, 주말 9천원, 우대 7천원, 문화가있는날 6천원 ※ 연희동 주민 1천원 할인(조조, 문화가있는날 제외, 현장 전용, 신분증 확인) 8. 구성원 : 총괄운영/프로그래머 문유정, 매표 및 청소 직원 4인 글/진행 : 김문경 사진 : 허 성 취재 일자 : 2023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