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의 유혹
- 감독
- 안드레 미셀
- 제작년도
- 1956
- 출연
- 마리나 브라디, 니꼴 쿠셀, 모리스 로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근·현대 한국사회를 관통한 균열과 진통의 시간을 영화에 남은 흔적으로 기억합니다. 장길수 감독의 < 은마는 오지 않는다 >(1991)는 안정효 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이후 국내외적으로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국내 백상예술제에서 작품상 등 5개 부문 상을 받은” 이 영화는 제15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여 언례 역을 맡았던 이혜숙 배우가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한 장길수 감독이 각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뤘다. [1] 장길수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제작 동기로 한국과 미국 문화의 갈등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그려 보려 애썼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2] 이에 따르면 영화는 미국과 한국의 문화 충돌과 갈등 문제를 유엔군 병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은 후 ‘양공주’로 전락해 가는 순박한 시골 여인의 삶을 통해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순박한 시골 여인이 양공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 즉 ‘한국전쟁’과 ‘유엔군 참전’이라는 조건은 이 영화를 문화와 역사라는 두 차원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한국전쟁이 낳은 뼈아픈 존재, ‘양공주’라는 타자의 출현 소설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작가 안정효는 작품에 형상화된 언례(이혜숙)가 사실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겪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던 평범한 자신의 어머니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한국전쟁 당시 수없이 희생되었던 여성 중에서 발견된 존재이자 이름이었다. “언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51년 여름, 지금은 부천이라고 이름(조)차 바뀌어버린 소사읍 심곡리에서였습니다. (중략) 내가 언례씨를 발견한 것은 우리를 해방시키러 왔다는 유엔군 병사들에게 강간을 당하지 않으려고 (날)마다 도망을 다니던 내 어머니와 (다)른 많은 여자들 한가운데서였습니다. [3] ” (괄호 표기 필자)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아픈 부분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내몰린 여성들에게 다양한 희생이 요구되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외국군 주둔과 전쟁으로 인한 생활난은 여성으로 하여금 몸을 팔아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유지하게끔 강요”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부녀자들이 생활난으로 일반 ‘양공주’나 매춘 행위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준다. [4] 이러한 당대 상황과 위의 인용문 내용을 겹쳐 읽어 보면 언례는 전쟁이 낳은 뼈아픈 존재들을 호명하는 대표적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통에 남편도 없이 홀로 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여성들,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먹고 살기 위해 양공주의 삶으로 뛰어들어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그녀들의 목소리로 직접 증언되어야 했으나 지난 몇십 년 동안 사회적 배척과 배제 속에 잠들어 있었다. “전쟁미망인, 이산가족 여성, 불구가 된 남편, 그리고 ‘양공주’라고 불린 기지촌 여성들은 1950년대 결여된 가부장성을 홀로 지탱하며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까지 견뎌야 했던 불안한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었다” [5] 라는 지적은 1950년대 전후 여성들이 마주해야 했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따라서 언례와 양공주의 삶은, 잊힌 채 침묵 당해 왔던 타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며 역사의 뒤안길에서 귀환하는 궤적을 보여 주는 사례이자, 한국전쟁과 문화 식민의 공간이 어떻게 한국의 영토와 신체, 그리고 문화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면서 현재에 이르도록 했는지에 대한 기원을 되짚어 보는 문화적 계기로 작용한다. 이를 잘 말해 주듯 소설과 영화는 한국전쟁에서 출현한 양공주가 어떻게 전쟁을 통해 생산되고 문화적 타자로 호명되어 갔는가에 관심을 둔다. 양공주의 탄생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조건과 문화적 침식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비극으로 조명하는 방식은 허버트 미트갱(Herbert Mitgang)이 미국에서 출판한 안정효의 소설을 두고 “반미 소설이 아닌 반전 소설”이라고 평가한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6] 전쟁은 물질적 파괴뿐만 아니라 문화적·정신적 파괴 또한 초래함으로써 휴머니즘에 대한 깊은 비판과 성찰을 유도한다. 소설과 영화 속에서 양공주로 호명되는 언례의 변화 과정은, 이를 둘러싼 전쟁과 휴머니즘의 문제를 부각하면서 ‘반전 소설’이자 ‘반전 영화’로서의 새로운 지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장길수 감독의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비로소 양공주의 삶이 형성되는 과정을 따라가며 적극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되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극중 언례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한진 /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양공주의 삶을 통해 만나는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의 그늘 개봉 당시 이 작품은 “한국 속의 아메리카니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성 영화”로 소개됐다. [7] ‘아메리카니즘’이라는 문화적 현상은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미군 주둔이 본격화되면서 1950년대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그런데 영화는 양공주와 ‘양키 문화’를 시각적 흥밋거리로 재현하기보다는 한국전쟁과 함께 나타난 아메리카니즘을 전쟁과 휴머니즘, 그리고 문화 침범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와 함께 드러낸다. 금산리에서 평범한 시골 촌부로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언례의 삶이 급격하게 훼손되는 데는 유엔군의 참전과 전쟁에 휘말린 금산리 사람들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 태도가 크게 작용한다. 언례가 유엔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뒤 그녀는 황훈장( 전무송 )의 말을 통해 드러나듯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마땅한’ 더러운 존재가 된다. 그녀를 배척하는 금산리 사람들의 태도 이면에는 순결한 신체와 영토가 훼손당한 데 대한 문화적 충격과 유교적인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언례의 집과 신체는 전쟁으로 초래된 영토적 파괴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영화 속에서 언례가 양공주로 변화하는 과정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급변 속에 끼어있는 존재, 즉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사이’와 ‘경계’의 존재가 놓인 문화적 곤경을 집약해서 보여 준다. 이는 그녀가 경계 공간에 놓여 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금산리의 집과 양공주의 집은 전통 공간과 ‘양키 공간’으로 구분된다. 언례는 이 두 영역을 오감으로써 전쟁 전-전쟁 후, 전통-근대, 순수-오염, 선-악, 유교 문화-양키 문화 사이에 놓인 상징적 존재로 변모한다. 금산리의 집과 양공주의 집에서의 언례 (사진: 한진 /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문화 침범의 경계에 놓여 있는 언례에게 목소리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물론, 아들 만식과 황훈장, 그리고 찬돌 등의 남성적 시선이 영화 곳곳에서 규율 권력으로 출현하지만 언례와 용녀( 김보연 ), 순덕( 방은희 )은 삶에 대한 발언권을 가진 존재들로 생동감을 지닌다. 게다가 이는 양공주들을 문화 침범의 ‘쓰레기들’로 분류하려는 폭력적인 권력자들의 비윤리적 태도를 백일하에 드러내는 문화적 저항이 된다. 영화에서는 미군의 쓰레기를 뒤지거나 구걸하고 쓰레기 더미를 차지하기 위해 패싸움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이 여러 차례 재현되는데, 이는 한국전쟁이 초래한 아메리카니즘’이 한국인의 삶에 가져온 문화적 오염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들이다. 이로써 양공주의 삶과 한국인의 삶은 문화적 ‘오염’이라는 측면에서 동일선상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양공주의 삶을 비판할 만한 자격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영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을 경유하면서 ‘전쟁’과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의 주제로 접근한다. 미군의 주둔과 함께 시작된 ‘양공주의 삶’과 ‘쓰레기를 줍는 삶’은 한국전쟁이라는 급격한 변화 속에 내몰린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이 마주한 시대의 현실이자 곤경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신들을 배척하는 마을 사람들과 갈등하는 언례와 용녀, 순덕의 목소리와 저항이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울려 퍼질 때 이는 전쟁과 휴머니즘을 둘러싼 확장된 문화적 보편성과 현실성을 획득하는 길을 열게 된다. 마을 사람들과 대립하는 용녀와 순덕, 쓰레기를 줍던 마을 아이들의 패싸움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이러한 영화 재현 양상은 사실 보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한국영화사에서 양공주의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신상옥 감독의 영화 < 지옥화 >(1958)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인 양공주 쏘냐( 최은희 )는 육체적인 매력과 화려한 미제 사치품으로 무장한 채 남성들을 유혹하거나 미 군수품을 밀수하는 데 협력하는 ‘돈’과 ‘욕망’의 화신으로 이미지화된다. 영화 속에서 기지촌 양공주로 재현되는 줄리( 강선희 )에게 그나마 전쟁 전 순수했던 과거 이야기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이마저도 순결한 동식( 조해원 )과의 결합을 위해 설정된 것이라고 할 만큼 주변적이고 작위적이다. 이는 영화 <지옥화>가 전통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당대 문화 이데올로기를 영화적으로 전유하기 위해 양공주를 동원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따라서 영화 속 양공주의 삶은 현실성을 획득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장길수 감독의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 와서야 비로소 양공주의 삶이 현실성을 어느 정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권위주의와 가부장제의 단단한 문화적 결합이 독재정권의 몰락과 함께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그동안 침묵했던 타자들의 출현을 알리면서 해방의 길을 모색하던 때 당도한 이 영화는, 한국전쟁과 아메리카니즘의 거친 파도 속에서 그동안 잠자고 있던 타자들의 삶을 증언하는 대표적 작품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레이스 M. 조는 책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2008)에서 ‘양공주는 단지 죽거나 감상적으로 과거를 일깨우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현재에 생산적이고 강력한 힘을 제공하는 유령적 존재’라고 주장한다. [8] 실제로 양공주로 오랫동안 침묵 당한 삶을 산 어머니를 둔 그녀에게 양공주는 잊힌 과거를 현재로 다시 불러오는 주체적 존재들이다. 문화적 차원에서 양공주에게 다시 목소리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고, 그레이스 M. 조의 연구와 저서들은 이를 위한 후속 세대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을 대표적으로 잘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잊힌 자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증언’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 당도하고 있다. 그리고 <은마는 오지 않는다>야말로, 이러한 문화적 실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사진: 영화진흥위원회 (©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 [1] “방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 몬트리올 영화제 2부문 수상”, 《동아일보》, 1991. 9. 3. [2] “인터뷰 몬트리올 영화제 각본상 수상 영예 장길수 감독 ‘방화 문제의식 세계 수준’”, 《경향신문》, 1991. 9. 4. [3]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언례에게/안정효 전쟁과 폭력의 희생양이었던 한국 여인 모습 알리려 했소”, 《동아일보》, 1996. 4. 30. [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전쟁과 사회 구조의 변화』, 1999, 41쪽. [5] 김학재 외,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50년대』, 창비, 2016, 71쪽. [6] “Books of The Times; Korean’s Novel Is Anti-War But Anti-American”, The New York Times , 1990. 2. 21. [7] “<개벽>, <은마는...>, <산산이부서진...>, 세계 영화 시장 ‘노크’”, 《조선일보》, 1991. 2. 22. [8] Grace M. Cho, Haunting The Korean Diaspora , University of Minesota Press, 2008, p. 18. 한영현(세명대학교 교수, 영화연구자) l 한국영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주로 전후 영화 작품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영화학회 편집위원과 학술이사, 《현대영화연구》 편집위원, 영상문화지평연구소 편집위원장 등 역임. 『냉전의 시대, 유랑하는 타자들: 한국 영화에 나타난 타자성의 문화 정치』(2022), 「생명⋅기술⋅공간의 삼중주: 봉준호 감독 <미키17>(2025)을 중심으로」 등 집필. 『글로컬 시대의 한국영화와 도시공간』(2018) 등 공동 집필.
어떤 시간은 언어로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내가 이곳에서 통과한 시간들이 그랬다. 내가 가진 언어의 한계로는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것. 거대하고, 두렵고, 지저분하고, 복잡한 동시에, 달고,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만끽했다. 고로, 나는 특별한 목적보다는 기억의 흐름을 충실히 따라 첫여름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다. 여전히 전부 소화해낼 수 없는 감각을 안고, 순간을 돌아본다. < 첫여름 >(2025)은 여성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연출을 공부하며 만들었던 졸업작품이기도 하다. 졸업작품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여자들의 이야기에 허기를 느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나의 중추이다. 나는 자라면서 여자들이, 나아가 사회의 정상성에 어긋나는 존재들이 따갑고 납작한 사회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생존하는지 보고 겪었다. 축적된 분노와 우울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회에 균열을 내고 싶은 갈망이 맺혔고, 그 창구가 내게는 영화였다. 자연스레, 졸업작품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문득 할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할머니는 얄밉고 이기적이었다. 우리 둘은 잠깐 동거를 했었는데 할머니는 내게 어떠한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매일 마스크팩을 하시면서도 나에게 한 장을 나눠주지 않았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대학 과제로 할머니를 인터뷰하게 됐다. 그녀의 연애담을 들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당신이 춤을 출 때 누구보다 신이 나고, 음악을 힘껏 사랑하는지를, 그리고 그 남자와 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자신다워지는지를 서툴게 표현하시던 얼굴이 선명하다. 삶이 바빠 할머니를 잊었다. 아코디언이 너무 갖고 싶었지만 비싸 사지 못한다고 했던 할머니를, 애인 소식을 듣지 못해 앓던 할머니를 어린 나는 그토록 쉽게 잊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49재에서 불경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카바레 음악처럼 들렸다. 고개를 드니, 넓은 대웅전 마루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이 춤을 추는 할머니가 보였다. 한동안 나는 그 장면에 사로잡혔고, 기필코 이를 영화에 담아내 갖겠다고 결심했다. ‘관객들이 노인이 아닌 한 여자와 동행했다고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이 다짐 하나를 손에 쥐고 <첫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대웅전 주변에 앉은 영순(허진) <첫여름> 초고는 지금의 완고와 완연히 다르다. 초고는 손녀의 시점에서 어딘가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 영순을 이해하게 되는 전개였다. 심지어 삼대가 만두도 빚었었다. 학수도 살아있었다! 어찌 됐든 초고는 실화와 훨씬 가까웠고, 지금의 영화 톤보다 안정적이고 온화했다. 거칠게 쓴 초고를 학교에 들고 갔을 때, 반응이 좋아 어리둥절했다. 수많은 물음표들을 훑기도 전에 나는 졸업작품을 함께 할 학우들과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을 시작해야 했다. 곧이어 언어로는 절대 서술할 수 없는 고통, 재난 같은 고역의 시기가 찾아왔다.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았다. 탈고를 가져가면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초고보다 나은 고를 쓸 수가 없었다. 이동을 잘 하지 않는 내가 어떻게든 환기를 해보겠다며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썼다. 동기를 따라 한답시고 스터디카페까지 도달한 나는 밤새 홀로 앉아 텅 빈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침 8시였다. 여전히 모니터도, 머리도 텅- 비어 있었다. 노트북 자판 위로 눈물이 뚝뚝 맺혔다. 그 고통은 공포였다. 나에겐 시나리오와 나를 보고 모여준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의 기대를 꺾지 않는 연출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쓰고 결정을 내려야 다른 팀원들이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 이상으로 나를 공포에 내몰았던 존재는 할머니였다. 학교 수업의 일환인 시나리오 크리틱에서 나는 단언했다. “내 졸업영화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팔아먹은 영화’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만들겠다.” 할머니의 존재는 몸집이 점점 커지더니 나를 꾸짖었다. 너 따위가 한 사람의 존엄하고 아득한 삶을 꾸며내려고 하다니. 네게 어떤 자격이 있다고. 감히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모든 게 다 위선이고 거짓 같았다. 나는 고작 누군가의 삶을 담보 잡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가. 자괴감이 해일처럼 나를 쓸고 해쳤다. 시간은 내 멱살을 잡아끌어 초고는 어느새 완고 비스름한 것이 되어있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무난한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내 숨을 엄하게 짓눌렀다. 잡념과 눈물이 차올라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교수님을 찾아갔다. 허겁지겁 정리되지 않은 말과 추잡한 감정들을 와르르 쏟아냈다. 교수님은 잠자코 들어주셨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불쑥 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사실 전 제가 쓴 시나리오가 너무 불편해요.” 불편한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초고의 불편함은 내가 의도한 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난 그걸 견딜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새로운 고를 써 내려갔다. 손녀 석윤이 아닌 영순이 오롯이 주인공인 시나리오였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드디어 사람같이 숨을 쉬고 근육을 움직였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가뿐했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초고를 쓰며 나는 손녀의 시선으로 영순의 삶을 그렸다. 20대 여성이 보고 싶은 노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다. 노인을 전시하고 대상화한다는 감각을, 그 숨 막히는 불쾌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건 이 이야기의 출발을 배신하는 일이었다. 타인의 삶을 가볍게 다루는 순간,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 죗값은 고스란히 작가에게 돌아간다. 다음 날, 나는 할머니 영순이 주인공인 새로운 고를 A고, 손녀 석윤이 주인공인 이전 고를 B고라고 이름 붙여 팀원들에게 갔다. A고는 등장인물조차 정리가 안 된, 침 냄새가 나는 갓난아기 같았고, B고는 더 이상 돌볼 게 없는 장성한 자식 같았다. 촬영까지 딱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흔들렸다. AB고 대첩은 정확히 반반으로 파가 갈릴 정도로 팽팽했다.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라, 어느 시점에는 다 큰 자식을 독립시켜 안락하게 노후 준비나 하고 싶은 유혹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선택을 유보하고, 불확실성의 무게를 가늠하고자 발버둥 쳤다. 팀원들은 굳건히 내 선택을 기다려주었다. 안전한 길을 두고 도박을 하고 싶다는 연출자에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후회 없이 하라며 독려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A고를 택했다. 나는 할머니 영순의 마음이, 그녀의 세계가 궁금해 <첫여름>을 썼다. 태초부터 주인공은 정해져있었다. 우리 영화의 쟁점은 ‘노인’이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영순은 극중 70대였다. 70대 배우를 찾아야만 했다. 세월을 연기로 속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노인 배우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확연히 제한된다. 당연하다. 노인 배우는 배우이자 노인, 즉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시간을 한정하고 노인 배우가 안전히 연기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로케이션도, 이동도 적지 않았다. 나아가, 노년기 삶을 가깝고 정직하게 담아내야 했다. 사려 깊고 섬세한 동료들, 그리고 영리한 준비와 현장이 필요했다. 영화를 만들어본 경험이 많지 않지만, 연출자로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하나의 작은 세계를 구축하는 일’과 같았다. 상상도 못할 만큼 커다란 품과 열정을 필요로 한다. 현장은 재난과 축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연출자는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민하게 타인을 관찰해야 한다. 나의 한계를 채워줄 귀인을 알아보아야 하고, 계속해서 도움과 소통을 청해야 한다. 나같이 느리고 서툰 연출자에게 <첫여름> 팀은 든든한 버팀목이자 행운이었다. 확신이 없어도 현장에 가고 보는 대책 없는 나의 버릇은 그대로였다. 안 그래도 난도가 있는 프로덕션이었다. 맨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두들기지도 않고 무식하게 머리만 박았다. 나는 끝까지 엔딩을 정하지 못한 채 촬영을 진행했었다. 나도, 팀원들도 만족할 만한 엔딩을 쓰지 못했다. 이상했다. 첫 장면은 머릿속에서 재현될 만큼 확연했는데, 영순을 어떻게 보내줘야 할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첫여름> 촬영 현장 더불어, 나는 콘티에 약한 연출이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뚜렷하지만, 이를 장면화하는 일에 대한 기술이 부족하다. 카메라나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다른 동기들보다 없었다. 그런데도 지독하게 욕심을 부린다. 나와 김시진 촬영감독은 우리 둘 모두 만족하지 못한다면, 절대 콘티를 그리지 않았다. <첫여름>에서는 사찰에서 영순이 춤추는 씬이 공백이었다. 콘티는 있기야 했지만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연출자로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일 촬영 계획표가 변동되며, 휠체어 씬과 사찰 씬을 다 소화해야 하는 날. 결국 휠체어 씬의 반 이상을 찍지 못한 채 사찰로 이동하면서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사찰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사찰에서의 춤 씬을 설계하고 설득할 유일한 기회는 허무하게 끝났다. 녹음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무책임한 나를 증오했다. 스태프들이 밥도 먹지 못한 채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고요하고 우아한 자연 속에 고장 난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해가 지면 사찰에 다시는 못 온다. 한복을 입고 휠체어를 직접 다 끌며 열연하셨던 허진 선생님은 지칠 대로 지쳐 계셨다. 나는 춤을 포기할까, 순간 망설였다. 그런 나 스스로가 오싹했다. 사찰에서 영순이 춤을 추는 모습 하나를 보기 위해 달려가던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찍어내야 했다. 허진 선생님 또한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감정에 대해 다른 해석들을 주셨다. 어느 지점에는 춤을 추는 감정이 당신에게 다가오지 않아 어려워하셨다. 배우도, 콘티도, 시간도 모두 내게 허락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찍었다. 이 씬을 찍지 않으면 이 영화는 모든 의미를 잃는다. 이 작품 하나를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은 버티고, 설득하고, 성실히 시간을 붙잡는 일뿐이었다. 스스로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 중요한 씬을 왜 이런 식으로 방치했을까. 허탈했다. 그런데, 테이크를 갈수록 내가 그렸던 할머니의 얼굴이 허진 선생님 위로 살며시 드리워졌다. 선생님의 몸짓을 보고 마음에 미약한 움직임이 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49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구나. 사찰 씬이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망가지고 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제서야 알싸한 가을 냄새가 코에 맴돌았다. 내가 만약 확신을 가지고 배우와 스태프들을 설득했었다면 그날 사찰 씬 촬영은 달라졌을 수 있겠다. 그 장면을 편집할 때마다 나는 현장의 나로 돌아갔다. 모두를 불안하게 하는 나를 묵묵히 지켜보다 겨우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뭐가 됐든 나는 동료와 배우를 설득해내지 못한 연출자였다. 자책에서 벗어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확신과 솔직함의 줄다리기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연출자로서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사찰 앞, 춤을 추는 영순 허진 선생님과의 작업은 연애와 같았다. 나는 프리 기간 거의 매주 부산-서울을 통근하며 그녀의 집 앞까지 찾아갔다. 당일치기로 다녀온 적도 많았다. 그녀와 처음 대본 리딩을 하고 팀원들에게 긴 글을 썼다. 확신을 잘 갖지 못하는 내게 확신을 준 배우였다. 나는 분명 허진 선생님에서 우리 할머니를 보았다. 허진 선생님은 톡- 쏘는 청귤 같았다. 작고 푸른데, 시면서도 달고, 균일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 가능하고 사랑스러웠다. 새침하고 외로운 여자지만, 사랑받고 싶어 하셨고, 사랑하고 싶어 하셨다. 그녀는 그 시절을 버텨낸 여성들이 문신처럼 가진 흉터를 가졌다. 그게 우리 할머니를 닮아 괜스레 마음이 저렸다. 영순은 더 이상 우리 할머니가 아니었고, 나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그럼에도 허진 선생님과 우리 할머니가 닮은 것을 거부하지 않도록 했다. 나의 전략은 허진 선생님이 그녀 자신으로 연기해도, 영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허진과 영순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었다. 선생님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그녀가 살아온 삶을 깊숙이 이해하는 일이 초짜 감독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웃고 떠들고 싸우고 지치고 애정하며 관계를 쌓았다. <첫여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노인을 20대 여성이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오판은 아니었다.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생애주기를 살아낸 한 여자가 되어 말을 하고, 감정을 서술해야 했다. 내 시나리오의 빈칸들은 내가 진정으로 영순의 신체와 일상을 이해할 수 없음에서 비롯됐다. 별 수를 다 써봐도 영순이 어떻게 섹스를 하는지, 아침에는 어떤 컨디션인지, 긴 길을 걷는다는 의미가 그녀에게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는 보통 컷 사인과 동시에 현실로 돌아간다. 배우는 연기를 멈추고, 다시 자신이 된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은 달랐다. 나는 5회차 촬영 내내 영순이 된 허진을, 허진이 된 영순을 봤다. 빈칸들은 허진 선생님으로 인해 메꿔졌다. 허진 선생님 손등에 난 검버섯 하나와 주름 한 겹이 꾸며낸 대사 몇 줄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선배는 선배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가 있었고, 나는 신이 나 그 세월을 훔쳤다. 허진 선생님의 몸짓과 숨소리는 내가 연출해낸 것이 아니다. <첫여름> 촬영 중 허진 배우와 허가영 감독 영화 속 영순의 대사, “그놈이 만져주면 동하더라.”는 원래 “그놈이 만져주면 젖어.”였다. 카바레에서 영순과 덕희( 김미향 )는 요실금으로 인해 기저귀를 주고받았었다. <첫여름>을 쓰면서 절대로 지우고 싶지 않았던 장면과 대사였다. 그러나, 허진 선생님과 리딩을 한 첫날, 선생님은 바로 이 대사와 장면을 빼자고 제안하셨다. 노인에 대한 해석이 너무 가볍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기싸움을 했고, 나는 벼랑에 매달려 애원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허진 선생님의 말을 따랐다. 그만큼 허진 선생님 또한 다른 부분들을 내게 선뜻 양보해 주셨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나의 타협일 수도 있었겠다는 자책이 맴돈다. 그러나, <첫여름>은 배우에게 기대 살을 붙이는 영화였다. 치열하게 설득한 후, 기꺼이 배우를 믿었기에 완성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젊은 내가 노년 여성의 삶을 다루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세계였기에, 말투 하나, 몸의 반응 하나까지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많은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카바레를 무작정 찾아가 춤을 즐기는 분들과 가까워져 그분들을 영화의 단역으로 모시기도 했다. 카바레에서 동료들과 맥주를 까마시고 그 공간이 가진 온도와 냄새를 살갗으로 느꼈던 순간들, 그곳에서 맴도는 언어와 소문들을 훔치고, 노인들과 함께 춤췄던 순간들을 <첫여름>을 만들어가며 가장 사랑했다. 노인은 욕망하는 주체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노년 여성의 욕망을 지우고, 외면하고, 혐오한다. 소위 춤바람, 노망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인들의 움직임은 분명한 역동을 가진다. 속절없이 늙어버린 신체와 삶 안에서도 그들은 끝없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여자일 수 있고, 남자일 수 있고, 결국 ‘인간’일 수 있다는 그 사실에 기대어 존재를 긍정한다. 나는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카바레에서 만난 노인들의 흘린 땀에서, 그 몸부림과 사랑에서 노인들이 만들어간 문화와 생존을 보았다. 특히, 영화 속 여성의 욕망은 종종 극단적으로 다뤄진다. 억눌리거나, 폭발하거나. 하지만 그사이에는 다양한 결이 있다. 나의 외할머니 역시 사랑을 하고, 춤을 췄지만, 동시에 고된 시집살이를 견뎠다. 그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모에서 ‘영순’이라는 인물이 탄생했다. <첫여름> 편집 기간은 쉽지 않았다. 나는 원체 편집을 못한다. 속옷가게 씬 편집할 때는 손도 못 대고 벙쪄 있던 기억이 있다. <첫여름>을 사랑했기에, 현장이 눈앞에서 재생되고 후회가 몰려왔다. 지금의 <첫여름>은 처음 그렸던 <첫여름>과 닮고도 많이 달랐다. 이 영화는 더 지저분하고 사람 냄새가 그윽한 영화이길 바랐는데, 내가 더 갔어야 했는데, 밀어붙여야 했는데. 그 실망이 나를 주저앉혔다. 그러나 <첫여름>이 담아낸 영순의 얼굴은 그런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야기는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한 여성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노인들이 삶의 마지막 궤적에서 춤을 추고, 사랑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그 움직임은 아름답고도 인간적이라는 것. 이는 우리가 이야기로서 마주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 사랑, 섹스 그리고 삶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나와 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간 배우들과 동료들이 굳건하고 세밀하게 만들어낸 토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그리고 이 작품이 가진 생명을 다시 직시하고 믿으며 <첫여름>을 만들었다. 칸영화제에서 내 영화가 아주 먼 곳에서 온 관객들을 만나고, 선명히 상영되고, 수상했던 기억을 가끔 꺼내어본다. <첫여름>이 영화가 되고, 사랑을 받으며 칸국제영화제에 초청이 되면서 내 삶은 질주하듯 전복됐다. 그 변화가 생생한데도 불구하고, 그날의 감정은 거대하고 짙어 지금도 소화하는 과정에 있는 듯만 하다. 시상식 때 1등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던 순간은 특히 그렇다. 수상 발표가 나자마자 동료들 모두가 놀라서 울기 시작했고,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상태로 수상 소감을 발표하러 무대에 올랐다. 심사위원 중에 내가 깊이 존경하는 마렌 아데(Maren Ade) 감독이 있어 벅차고 떨렸다. 영어로 더듬더듬 소감을 말한 뒤 동료들 곁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칸국제영화제 라 시네프 섹션 수상 현장 그저 신기했다. 칸영화제는 영화인들에게 꿈의 무대인 만큼 눈이 부셨다. 쿠엔틴 타란티노랑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엠마 스톤을 봤다. 한편으론 영화제가 지나치게 화려해 상처받은 순간도 있었다. 종종 영화제가 너무나도 눈이 부셔 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낮은 곳의 이야기에 주목하며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 모든 문화적 자본을 누리고 소비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모순을 느꼈다. 영화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라 시네프 섹션에서 전 세계 각지에서 영화를 만드는 또래 감독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영화를 비교하고, 만져보고, 느끼며 신났다. 그들과 소통하며 동시대의 영화인들이 가지는 시선을 봤고 큰 자극을 얻었다. 무엇보다 기쁜 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수한 얼굴의 관객을 만나는 일이었다. 상영 전 발표를 해야 해서 앞줄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영순의 표정과 마음을 따라가며 신나게 웃고 격하게 울어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닿아 감정을 일으키고, 우리가 공동체가 되어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그 귀한 감각을 만끽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관객의 얼굴을 지켜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상영이 끝나자 관객들이 다가와 소감을 말해주었다. <첫여름>은 그 많은 관객들 하나하나를 만나 그보다도 더 거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가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나갔다. 이 날 것의 반응들과 감정들을 지켜볼 수 있어, 나는 참으로 복 받은 연출자였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노인 관객들이 ‘삶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라며 고마움을 전했을 때는, 내가 왜 창작자로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사회와 연결되고, 인간과 대화하고 싶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예술이다. 내가 그곳에서 사랑했던 진실을 잊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 <첫여름>과 함께 내가 자라날 수 있었다. 연출자로서 이토록 가득해 넘쳐흐르던 첫여름이었다. 허가영(영화감독) l 솔직한 영화를 만들고, 필요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너를 심을 땅 >(2025), <첫여름>(2025) 연출·각본. * 촬영 현장 및 일부 스틸: 필자 본인 제공
(사진: “ Häxan ”, IMDb) 세계영화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과 개념을 포착하고,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반드시, 라고 단언하고 싶은데, 자신을 시네필이라고 자처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일시적으로 이상한 영화를 찾아보느라고 시간을 보낸다. 누군가는 재빨리 빠져나오고 다른 누군가는 여기에 머문다. 그 영화들이 ‘불법적인’ 대상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스너프 필름, 아동성애 영화, 기타 등등) 각자의 취향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이 영화들을 ‘이상한 영화’의 수호성인 아모스 보겔은 ‘전복적인 예술영화(subversive art film)’라고 불렀다. 아모스 보겔을 이야기할 자리는 1974년까지 기다려주길 바란다. 여기서 질문은 영화사의 순간들에서 ‘이상한 영화’라고 부르는 영화가 언제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물론 방점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다른 계보를 열거하게 될 것이다. 다른 예술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도 사회적 위반, 법적 금지의 경계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했고, 할 수만 있다면 그 선을 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한계를 부수길 원했고, 다른 누군가는 돈을 원했다. 누군가는 예술적인 실험을 하고 싶어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거기서 쾌락을 향유했다. 여러 영화 제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시작해보겠다고 결심했다. 세계영화사의 순간들은 그렇게 가끔 하나의 선처럼 느껴지는 앞과 뒤를 따라가다가 갑자기 옆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내가 ‘이상한 영화’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다가 가장 멀리서 마주친 영화는 벤야민 크리스텐센의 스웨덴 영화 < 헥산 >(1922)이다. “Häxan”은 번역하면 ‘마녀’라는 뜻이다.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19세기인 1879년에 태어났다. 처음에는 배우가 되기를 원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1918년부터 ‘흑마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서점을 뒤지던 벤야민은 독일 베를린 서점에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 사본을 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1486년 독일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하인리히 크라메르가 쓴 마녀 처단에 관한 책이다. 주술을 이단으로 규정하면서 마녀로 규정된 여자의 마법의 악을 ‘끝내기 위해서’ 자백을 끌어내는 고문 기술을 상세하게 기술했다. 이 책이 출간될 무렵에 유럽에서는 마녀로 내몰린 여자들이 산채로 화형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하인리히 크라메르는 마녀의 존재를 신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주장하고, 더 나아가 마녀사냥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하고, 심지어 이 책은 마녀재판의 법전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 소설에서 사용된 장면들, 마녀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어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들이 여기 실려 있다. 교회 내부에서도 이 책은 논쟁이 되었으며, 오히려 그래서 많은 독자를 얻게 되었다. 1519년에 야콥 스프렝게르가 이 책에 새로운 저자로 나서서 마치 개정 증보판처럼 추가해서 1533년에 출간하였다. 손에 손을 거쳐 이 책은 마녀를 자백시키는 안내서가 되었고, 잔인한 고문 기술자들은 상상으로 쓰인 이 책의 내용을 감옥에서 불행한 여자들에게 실행하였다. 『마녀의 망치』는 일시적으로 판금 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왕실 궁정에서 공공연하게 읽히는 금서가 되었으며, 16세기 이후에 마녀재판에서 더 잔인한 기술을 정당화시켜 주었다. 『마녀의 망치』 표지와 <헥산> 포스터 (사진: “ Häxan ”, IMDb) 벤야민 크리스텐센이 구한 사본 『마녀의 망치』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판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본이 15세기라는 것을 셈에 포함해주길 바란다. 1부에서는 먼저 마녀의 존재와 악행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2부에서는 마녀들이 저지른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범죄와 악마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3부에서 마녀재판의 실제 절차와 고문을 통한 자백 유도 방법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마녀의 망치』에 만족하지 않고 벤야민은 1919년부터 거의 2년 동안 마녀사냥과 재판에 관한 상세한 규정들, 사례, 실제로 실행하는 집행과정을 담은 삽화들, 여기에 더해 각종 문건을 모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벤야민은 1920년까지 발표된 마녀들에 관한 소설과 희곡도 모았다. 그런 다음 자료들을 바탕으로 영화제작을 결심하였다. 벤야민이 준비한 것은 단지 마녀에 관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준비한 <헥산>은 유럽 중세로부터 400년에 걸친 마녀사냥과 재판에 관한 백과사전이었다. 벤야민은 제작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구한 도판들을 그 앞에서 전시하다시피 했고,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재판기록과 집행을 낭송하기도 했다. 이 기괴하지만, 분명히 야심적인 프로젝트에 스웨덴 필름 인더스트리가 관심을 보였다. 벤야민과 촬영 감독 요한 안케르스트예르네는 덴마크에 오직 <헥산> 촬영을 위한 영화 스튜디오를 사들였다. 그런 다음 야외는 중세를 재연하였고, 실내는 모두 밀폐시킨 다음 어두운 그림자와 빛으로만 이루어진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해가 떨어진 다음에만 촬영을 시작해서 새벽이 오면 멈추었다.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헥산>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연장이라기보다는 중세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제단화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가장 비싼 무성영화가 되었다. <헥산>은 1921년 2월에 촬영을 시작해서 그해 10월까지 이어졌다. 빛과 그림자 간 대조가 두드러지는 장면 / 우주를 둘러싼 천사 합창단의 모습 (사진: “Häxan( 1 , 2 )”, IMDb) 영화 <헥산>은 7개의 연대기로 나누어져서 진행된다. 첫 번째 시작은 마치 학술 발표를 위한 도판 설명처럼 이어진다.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주변에 공기와 불이 둘러싸고 별들이 주변을 떠돌면서 천사 합창단이 보인다. 그런 다음 악마와 마녀의 조각상, 목판화, 삽화를 차례로 소개한다. 이 화면자료들이 펼쳐지면 IMAX 스크린으로 벽화처럼 보고 싶을 것이다. 사탄이 나타나서 부부가 잠든 침대에서 아내를 유혹하고, 질식시키고, 살해하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랑의 묘약을 구하는 여인, 성에 눈뜨는 여인, 그 여인이 몰래 먹이는 묘약에 흥분하는 승정(僧正), 게걸스러운 폭식, 들린 자들(the possessed)이 사탄의 북소리에 맞춰 한밤중에 불을 피우고 춤을 추는 축제,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이 장면들을 종종 멜리에스 영화에서 본 특수효과를 이용해서 펼쳐 보인다. 하지만 이 장면들이 우스꽝스럽기는커녕 오싹해지는 것은 만들고 있는 쪽에서 지금 이걸 진심으로 믿고 있구나, 라는 설득을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민담과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들처럼 보였지만 여기에 교회가 개입하면서 고문이 등장한다. 벤야민 크리스텐센은 그 과정의 세부를 묘사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여기서 이 영화가 그런 이야기들로부터 그다지 멀지 않은 시기에 만들어졌단 생각을 해야 한다. 게다가 신성모독 장면을 재연하는데 망설임이 없다. 그래서 <헥산>을 보고 있으면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장면들과 마주치게 된다. (상) 마녀와 악마에 관한 삽화 / (하) 사탄의 북소리에 맞춰 춤추는 들린 자들(the possessed) (사진: “Häxan( 1 , 2 )", IMDb) 벤야민 크리스텐센이 1921년에 이 영화를 만들면서 프로이트의 저술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아직 살아있었고, 『쾌락원칙을 넘어서』를 발표한 직후이다. <헥산>의 마지막 연대기는 동시대에 이른다.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여성은 몽유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녀는 몇 가지 과정을 거쳐서 정신병원으로 보내진다. 그 당시 정신병원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미셀 푸코의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고문 장면뿐만 아니라 성상 모독, 마녀에 관한 찬양, 중세 교회에 대한 적나라한 재판 장면과 함께 여성의 누드, 신체 훼손, 시체 손상에 이르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개봉 당시 스웨덴과 덴마크의 검열은 통과했지만, 독일과 프랑스, 특히 미국에서는 검열에서 문제가 되어 개봉을 위해 재편집이 불가피했고 상당 부분이 삭제되어 국가별로 여러 판본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판본이 만들어졌다. (내가 보지 못했지만) 가장 흥미로운 판본은 1968년 메트로 픽쳐스 코퍼레이션이 <헥산; 옛날 옛적부터의 마녀들(Häxan; Witchcrafts through the ages)>이다. 이 판본에서는 『네이키드 런치』의 윌리엄 버로스가 영어 나레이션을 한다(고 한다). 이 무렵 윌리엄 버로스는 마약중독 상태에서 장 주네를 둘러싼 친구들과 친교를 맺던 시기였다.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작 이 판본의 복원 소식은 들리지 않고 1976년부터 1922년 판본을 원본에 가깝게 몇 차례에 걸쳐 복원하고 있다. 물론 원본을 복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윌리엄 버로스의 판본이 궁금하다. 아마 언젠가는 될 것이다. 나는 기다릴 수 있다. 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l 매일 영화를 보고 종종 영화 평을 쓰고 가끔 영화를 만들고 때로 영화제 일을 한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2003) 인터뷰 진행,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2010), 『필사의 탐독』(2010) 비평집 집필. 첫 영화 < 카페 느와르 >(2009) 이후 < 천당의 밤과 안개 >(2015), < 녹차의 중력 >(2018), < 백두 번째 구름 >(2018)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