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
- 감독
- 장태유, 진혁
- 제작년도
- 2008
- 출연
- 박신양, 문근영, 류승룡, 배수빈, 정인기, 임지은, 김응수, 박진우, 문채원, 이미영, 윤주상, 한정수, 이경화, 김보미
2000년대 중반 한국 영화산업은 활황의 정점에 있었다. 넘치는 제작자본, 소재와 규모, 스토리텔링, 형식의 실험이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과시하는 르네상스의 시기로 요약된다. 이명세 감독의 < 형사 Duelist >(2005)는 이 무렵에 발표된 문제작 중 한 편이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낭만적인 액션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다면 슬픈 눈(강동원)과 남순(하지원)의 운명적인 키스 신 정도는 넣었어야 하건만 이명세는 칼날들이 부딪힐 때의 섬광 같은 번쩍임, 펄럭이는 천 조각들, 숨이 넘어갈 듯 뛰어다니는 배우들의 땀에 절은 얼굴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급작스러운 스토리의 비약, 감정의 흐름을 등한시하는 태도, 슬픈 눈과 남순이 첫 눈에 반하는 이유, 슬픈 눈이 병조판서(송영창)를 배신하는 이유 등 개연성을 갖춘 플롯이 의당 감당해야 할 요소들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 것도 관객들의 불만을 촉진하였다. 그 대신 세상 돌아가는 일과 유리된 듯한 미적 도취, 비현실의 세계를 뛰노는 상상적 판타지, 인공미가 물씬 풍기는 연극적인 세트, 몽상가적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스타일로 장인적 세공술을 담금질한 흔적이 곳곳에 있었다. 이미지를 조각하는 이명세의 연금술은 현실과 꿈을 교차시키는 대담한 오버랩, 아기자기한 세트, 만화 같은 이미지, 비 관습적인 음악과 사운드로 이야기체 영화의 전통이 완강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영화계에 논쟁을 던져왔다. 다수의 뉴웨이브 감독들이 치열한 현실인식과 그에 대한 발언으로서 이야기와 형식을 고민했다면 이명세는 영화는 무엇으로 말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시네마 뉴웨이브’의 시네아스트로 자신을 몰아갔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형사 이야기라는 흥미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형사 Duelist>의 스토리는 혼돈이다. 때는 18세기, 입담 좋은 대장장이 봉출(윤주상)의 한담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 진행될 것임을 예고하는 셈이다. 봉출은 호기심에 차 눈을 부라리는 남정네들을 앞에서 한밤에 만난 기이한 분위기의 요염한 아낙(김보연)의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춘다. 그때 프레임의 뒤편에서 애꾸눈의 사내가 “이 상놈의 새끼들, 집중이 안 되잖아!”라고 아리송한 타박을 한다. 험상궃은 사내의 기세에 이야기는 갈 길을 잃고 카메라는 슬그머니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캉캉에 맞추어 춤을 추는 탈을 쓴 사람들의 군무로 넘어간다. 이미지는 자연스러운 속도와 리듬을 무시하고 이어지는 붉은색 천 앞에서 칼춤을 추는 백발의 탈바가지, 북적대는 인파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장터의 풍경들로 이미지의 연쇄는 숨이 가쁘다. 군중들 사이에 섞인 좌포청 포교 남순(하지원)은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상을 틈타 시중에 가짜 돈을 유통하는 범인을 잡기 위해 탐문 중이다. 머리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 형사 남순의 파트너는 사려 깊고 경험이 풍부한 안 포교(안성기). 의욕을 앞세우는 남순과 꼼꼼히 전후 사정을 따져 사건에 접근해가는 안 포교는 서로의 장단점을 상쇄시켜줄 만한 최고의 단짝이라 할 만하다. 수상한 사람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그날 돈자루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소란의 와중에 남순은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탈을 쓴 백발의 괴한을 쫓는다. 좁은 시장 골목과 담벼락 길 사이에서 서로의 뒤를 쫓는 추격전을 벌이지만 신출귀몰한 백발 괴한은 두 형사의 추격을 따돌리고 유유히 사라진다. <형사 Duelist>의 장면들은 관객을 추격의 스릴로 몰아 부쳐 아드레날린에 취하게 만든다. 상당한 속도로 리드미컬하게 진행되는 영화의 도입부는 통상적인 플롯의 전제에 해당하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지 않다. 개연성을 무시하고 단속적으로 진행하는 신들의 연쇄는 극중 애꾸눈 사내의 푸념처럼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도입부가 필요로 하는 차근차근 쌓아나가기 위한 세팅이 아니라 거두절미하고 스토리의 중간으로 잘라 들어가는 둔탁함이 거기에는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혼돈과 충돌이 만발하는 이 시퀀스의 내적 논리는 무엇인가? 시퀀스의 주제는 봉합선이 존재하지 않는 움직임의 연쇄이다. 광란에 가까운 트릭을 구사하는 20분 동안의 시각적 스토리텔링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카메라와 잠재의식을 시각화한 것 같은 편집을 결합한다. 시각적으로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정도이다. 그 자신의 스타일적인 시그니처인 스톱모션 이미지와 번쩍이는 순간 다음으로 넘어가는 불분명한 쇼트의 이행, 피사체들의 수평적 움직임, 와이프와 같은 효과를 내는 쇼트의 수평적 전환을 통해 이명세는 시네마틱 무브먼트와 트랜지션을 매개로 한 대담한 실험을 보여준다. 화면 내 요소들과 카메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활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와 방향이 모두 중요해 보인다. 전체 시퀀스는 하나의 쇼트가 사라지고 이어지는 쇼트 안으로 끌어 당겨지는 느낌을 준다. 백발의 괴한의 휘두르는 칼의 그래픽적인 움직임, 프레임 안 인물의 이동 따위가 광학적인 기교인 와이프를 대체하기도 한다. 구성적인 차원에서 이 시퀀스 하나의 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한 장르에서 또 다른 장르로 이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요상한 공포 분위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캉캉 춤을 추는 무희들의 뮤지컬로, 수직의 길 위에서 맞서는 서부극적인 구도로, 몸과 칼의 안무가 이루어지는 무협영화로 전환된다. 속도는 진정되고 움직이는 카메라가 여전히 거기에 있는 동안 세트 디자인과 조명의 아름다움으로 구축된 골목에서의 결투는 이 시퀀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슬픈 눈이 쓴 탈의 일부가 잘려 나가는 이 결투는 애간장을 태우며 끝이 난다. 탱고 춤과 무모한 칼싸움 사이 어딘가에서 백발의 탈과 남순이 화면에서 뛰어내리고 프레임을 분할한 조명에 잠겼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면서 선명하게 또는 흐릿하게 포착된다. 장엄한 촬영 기법과 세트 디자인 위에 얹혀진 조성우의 음악은 클래식과 전통 음악을 혼합하여 영화에 깊이를 부여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액션이 없는 곳에서도 여전히 움직임은 장면 연출의 초점이다. 도입 시퀀스를 마무리하는 결투 외에도 몇 차례 반복되는 영화 속 결투에는 고유한 스타일이 있으며 거기에는 인물들의 구애의 단계가 반영되었다. 두 번째 결투 신은 번쩍이는 칼날만이 어둠을 밝히는 그림자 속에서 정교하게 촬영되었다. 탱고 스타일의 테마로 보완된 음악은 한층 무르익은 감정의 깊이를 반영하고 있다. 세 번째 결투는 눈 속에서 사무라이 영화의 분위기를 풍기고, 네 번째는 유혹적인 동작들이 격렬하게 부딪히면서 에로티시즘의 기운이 가득하다. <형사 Duelist>에는 영화 예술의 본질이 물질적인 움직임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움직임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스며 있다. 보는 사람의 정신에 닿게 하는 영화의 정수는 어떤 것일까? 그런데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전통적인 감각의 액션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형사 Duelist>는 골치가 아프고 지루한 영화였다.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스토리와 대화, 캐릭터, 장르 중 어느 것도 장면이 만들어내는 느낌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이명세는 관객을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화면에 묘사하여 정신의 움직임을 시각화하기 위해 진력하였다. 움직임에 대한 이러한 강박은 현대영화가 잃어버린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사운드의 출현으로 영화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리조차 이미지화되는 감각의 전환을 창조하려는 야심이 이 영화, <형사 Duelist>를 특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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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로 조명하는 1960~1970년대 액션영화 연간 200여 편이 넘게 제작되며 대중문화의 유행을 선도하고 산업적인 전성기를 이끈 1960년대 한국영화는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와 깊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급속도로 확대‧성장한 매체의 특성으로 짧은 시간 동안 유입된 영화계의 많은 인력을 살펴보는 것은 녹록하지 않은 일이다. 영화산업 성장의 근간이 되는 제작규모와 그에 따른 인력 배치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는 장르별, 제작사별, 시기별로 구분해 흐름을 살피는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1960년대 한국영화산업의 불안정한 제작 시스템과 상영관 규모 대비 과도한 제작 편수로 인해 분류화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규모에 상응하는 방대한 영상사료와 문서사료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수행되어야 할 방법론이 구술사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구술사방법론은 역사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사건이나 주변부의 인물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또 다른 방면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 구술사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직능별로 이루어진 인력 구술은 이와 같은 여러 방면에 걸친 새로운 방식의 역사쓰기에 일조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배우 김영인의 구술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1960~1970년대 액션영화의 흐름과 변화이다. 2016년 한국영화 주제사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한국영화산업의 변화’에서 장르영화의 배우를 대표하여 이루어진 이 구술은 문서사료에는 기록될 수 없는 세밀한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구술은 특히 1960~1970년대 여러 장르가 번성하는 가운데 제작편수의 큰 부분을 차지한 액션영화를 다채롭게 살펴보는 데 도움을 준다. 특히 시기별로 변화하는 액션연출과 액션연기의 변화에 대한 설명은 장르영화의 성장과 확대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특정 사례가 될 수 있다. 일례로 그는 1대1 액션과 군중신의 촬영비화, 무술지도의 원칙 등을 큰 틀로 하여 1960~1970년대 액션영화의 특징을 구술한다. 그가 데뷔한 1961년부터 활발하게 활동한 1970년대 중반까지는 우연히도 액션영화의 성장과 쇠퇴와 맞물려있는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1960년대 규모가 확대되기 시작한 한국영화산업의 성장 이면에서 인력의 유입과 이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그림1) 김영인 한국영상자료원 구술에서 특징적인 점 중 하나는 영화의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스태프 구술이 상당수 이루어졌다는 점인데, 특정 감독이나 배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뒷스태프’는 방대한 사료가 무색할 만큼 제대로 된 기본자료 하나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의 크레디트에 기록되지 않은 경우도 자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에 오롯이 구술자의 기억과 필름이 보존된 영화를 중심으로 구술을 완성해가야 한다. 때문에 영화의 기본 제작정보를 기반으로 구술자와 연구자가 내용을 쌓아 구술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네트워크를 그려내야 한다. 배우 김영인의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활동 기간이 비교적 긴 반면에 조연으로 오랜 기간 활동한 탓에 매체 노출이 거의 없었고, 구술이나 회고록 등의 작업물도 없어 1차 자료를 수집하기가 어려우며 한국영상자료원의 데이터베이스 자료와 영상물 외에는 참고할 자료가 미비하다. 이럴 경우 최선의 방법은 예비접촉을 통해 질문지를 구성하는 것인데, 이러한 예비접촉을 바탕으로 구성한 김영인 구술의 큰 항목들은 첫째, 영화계 입문 배경, 둘째, 배우 데뷔 후의 연기활동, 셋째, 무술지도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데뷔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력을 회고함으로써 액션배우 김영인의 활동이 완성되었다. (그림2) 액션영화 촬영현장에서 ‘날으는 배우’의 탄생과 액션영화의 생생한 현장이야기 1) ‘스턴트맨’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도 않던 시절, 김영인은 <5인의 해병>(김기덕, 1961)에서 주인공들의 액션 장면을 대신하며 ‘날으는 배우’라는 별명을 얻었다. 본인이 출연한 장면이 대역이란 것도 모를 정도로 영화제작 시스템에 어두웠던 그는 1966년 김기덕 감독의 조언으로 <불타는 청춘>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중 있는 배역이란 언급에 큰 맘 먹고 빚까지 내 신사복 세 벌을 맞췄다. 하지만 그가 맡은 역할이 ‘깡패’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맞춤옷들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결국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구제 점퍼가 ‘유니폼’이 되었다. (그림3) <5인의 해병>(김기덕, 1961) 신문광고 데뷔작 이후 김영인은 <어명>(강조원, 1967), <실록 김두한>(김효천, 1974), <동백꽃 신사>(이혁수, 1979) 등의 영화부터 2000년대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류승완, 2002), <아라한 장풍대작전>(류승완, 2004)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다수의 액션영화에서 활약했다. (사진 4) <피도 눈물도 없이>(류승완, 2002)의 백골 역의 김영인과 불곰역의 백찬기 (사진 5) <아라한 장풍대작전>(류승완, 2004) 왽쪽부터 김영인, 김지영, 안성기, 윤주상, 백찬기 1940년 경기도 양평에서 출생한 그는 학창시절에는 권투를 비롯한 다양한 운동을 섭렵할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특히 1960년대 유명한 권투선수들을 배출한 한국체육관에서는 꽤 높은 순번인 ‘27번’을 받아 아마추어 시합에도 출전할 정도였다. 이 때 익힌 권투와 유도, 가라테 등은 후일 본인의 액션 연기뿐만 아니라 액션 지도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김영인의 구술은 본인이 출연하고 지도한 영화들의 액션 장면과 관련한 에피소드들을 세세하게 풀어놓는다. 그의 구술로 1960~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관습적인 장면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했는지 알 수 있다. 죽고 싶지 않은 배우와 필름을 아끼고 싶은 감독 사이의 신경전으로 “‘으아아악!’ 하구 그냥 멫 바꾸 돌아가서 그런 척을 했다가 쓰러져 가주구선 그냥 죽어야 될 텐데 안 죽구 풀 있는 거 풀 다 뽑구선 일어났다가 죽었다”는 에피소드나 한겨울 촬영한 사극에서 “말이 뛰구 돌아야 하는데 대개! 횃불 있는 데 가서 다 죽어” 있는 에피소드는 당시 한국영화 제작현장의 열악함이 만들어낸 장르적 관습을 보여준다. (그림6) <어명>(강조원, 1967) 포스터 액션영화에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조직원들’의 반응 쇼트는 카메라를 한 번이라도 더 받기 위한 조·단역 배우들의 열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팔에 찬 단도를 보여주기 위해 괜스레 소매를 한 번 걷어 올린다거나 일부러 눈에 띄기 위해 우스꽝스럽게 보이더라도 양 손목에 시계를 찬다거나 단추라도 하나 더 달았다거나 하는 에피소드들은 그만큼 카메라 뒤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치열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소품 전쟁”에서 180센티미터가 넘는 큰 키와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은 구술자가 액션 영화에서 꾸준히 활약하는 데 자산이 되었다. 액션 연기와 지도에서 구술자가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현장감과 타이밍 그리고 약속이다. 이를 바탕으로 아무리 작은 장면일지라도 실제 ‘싸움’에서 볼 수 있는 ‘몸짓’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는 액션 영화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과장이 필요하더라도 실전과 너무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액션 지도를 할 때 가장 강조한 것 중의 하나가 리허설을 통한 ‘약속’이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실록 김두한>의 박치기대장 성팔이의 액션과 <동백꽃 신사>의 클라이맥스 액션은 이러한 약속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록 김두한>의 대미를 장식하는 종로 거리 액션은 안양촬영소에서 3일에 걸쳐 촬영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중요한 장면이었다. 성산일출봉에서 촬영한 <동백꽃 신사>의 마지막 장면은 “틀림없이 죽어야 되는 장소”인 벼랑 끝에서 한 촬영이라 감독은커녕 카메라조차 대동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이러한 악조건 때문에 이대근과의 생동감 넘치는 일대일 액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림7) <동백꽃 신사>(이혁수, 1979) 포스터 1960~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의 성장과 변화 1960년대 초중반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물, 정창화, 이만희 등을 중심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스릴러와 만주물 등이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 액션영화의 성장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대형사극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사극영화의 군중신 등도 액션영화가 다양화되는 데 역할을 했다. 다양한 액션영화의 등장에 맞춰 액션연출도 시기별로 변화가 이루어졌는데, 김영인의 출연작을 큰 줄기로 하여 액션연출과 액션연기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구술자가 한국영화 역사상 ‘거의 최초’의 스턴트맨으로 활약한 <5인의 해병>에서 주인공 5인의 액션연기는 지금 보면 단순한 움직임에 불과하지만 그 시기 전쟁 액션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본적인 액션의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포탄 폭발, 전투 사격 등에 맞춰 몸을 좌우 혹은 상하로 움직여주는 연기들은 다양한 앵글로 표현되지 못한 탓에 액션의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군중 신의 경우도 롱 쇼트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기에 그 규모를 세밀하게 느끼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그가 말하는 ‘날으는 배우’의 진면목은 여간해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 시기 전쟁액션의 제작스타일을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불과 2년 후에 제작된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에서 이만희 감독과 서정민 촬영감독의 스타일로 완성된 화려한 전쟁액션과 비교해본다면 1960년대 초기의 액션의 규모가 가늠될 것이다. (그림8) <5인의 해병>(김기덕, 1961) 군중 액션 <어명>을 통해서는 1960년대 중후반 수입되기 시작한 홍콩 무협영화와 한국에는 수입될 수 없었지만 흥행이나 스타일면에서 아시아 각 전역의 영화에 영향을 끼친 <자토이치> 시리즈를 필두로 한 일본 사무라이 영화들이 한국 액션영화에 미친 파급력을 추측해볼 수 있다. <어명>은 영화의 스타일 자체가 홍콩 무협영화와 일본 검객영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데, 일본인 무술감독 나카하라 신(中原伸)의 영입은 이와 같은 스타일의 영향을 한국 액션영화에 녹여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김영인은 구술에서 나카하라 신이 연출한 액션 신을 언급하며 홍콩영화와 일본영화에서 활용하는 ‘검술액션 연기’를 “세밀한 동선을 기본으로 지도하는 무용과도 같았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그의 구술을 통해 일본인 무술감독의 영입이 한국의 검객영화에서 액션을 좀 더 유려하게 연출하는 데 영향을 끼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9) <방랑의 결투>(호금전, 1966) 신문광고 (그림 10) <자토이치> 포스터 (그림11, 12, 13) <어명>(강조원, 1967)에서 나카하라 신이 지도한 액션 장면 1960년대 후반 영화 <샹하이부르스>와 <사나이 삼대>를 통해서는 한국 현대물 액션영화에서 액션연출이 좀 더 세밀해지고 화려해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1960년대 <007> 시리즈와 마카로니 웨스턴 시리즈로 대표되는 서양 액션영화의 폭발적인 인기가 한국의 영화 관객과 한국 액션영화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0년대 후반 영화계에 새롭게 유입된 젊은 남성 배우들은 대규모 군중 신을 필수로 하는 현대물 액션과 무협 액션이 다수 제작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인력의 확대는 이전의 영화들과 비교해봤을 때 규모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었으며, 액션 연출의 측면에서도 규모의 성장뿐만 아니라 좀 더 깊이 있고 화려한 액션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14, 15, 16, 17) <샹하이부르스>(김기덕, 1969) 액션 장면 (세번째 사진에서 왼쪽이 김영인) <김두한> 시리즈(김효천)는 이러한 액션연출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TV 연기자까지 인력의 풀을 확대한 이 영화는 제작 규모도 컸지만 다양한 배우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대규모 액션 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군중 액션 신의 조연 연기자들이 단체로 명시되거나 인식될 뿐 각각의 캐릭터 액션은 힘들었던 것에 비해 이 영화는 급격하게 커진 액션 규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군상들의 캐릭터들을 창조해 액션의 특기를 하나씩 부여함으로써 ‘캐릭터 액션’을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인 <실록 김두한>의 엄청난 흥행은 이러한 캐릭터 액션의 성공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었으며, 캐릭터의 성공적인 안착은 시리즈물이 연달아 성공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김두한> 시리즈의 성공은 1970년대 합작액션영화들과 함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는 시리즈 액션물이 유행하는 데 도화선이 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후반 이후의 액션영화들이 이야기 중심보다는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시리즈 액션물 중심으로 번성한 것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실록 김두한>을 그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이다. (사진 18, 19, 20, 21, 22)<실록 김두한>(김효천, 1974) 종로거리 액션. 마지막 사진의 가운데가 김영인 김영인 구술의 의미와 평가 상기한 것처럼 김영인의 구술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의 액션영화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와 더불어 그의 구술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과 의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학창시절 외국영화 관람의 경험이다. 1회라는 한정된 시간 때문에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짧은 시간 구술자가 예로 든 관람 환경과 예시로 든 영화는 흥미롭다. 학생 입장에서 개봉관은커녕 2번관도 가기 힘들어 3번관 이하의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는데, 이 영화들은 주로 서부영화였으며, 데뷔 후 이 영화들의 액션을 많이 참조했다는 내용이 그것인데, 이러한 구술은 외국영화가 배우의 디테일한 연기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군중 신의 촬영 뒷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액션영화 촬영현장의 풍경이다. 액션영화의 특징 중 하나로 조직 대 조직의 대결을 들 수 있겠는데, 구술자는 장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동시에 카메라에 띄기 위해 노력하는 조·단역 배우들의 모습들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재현한다. 소품과 미술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조·단역들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극 중 인물을 표현했는지가 구술을 통해 자세하게 드러난다. 1960~1970년대 한국영화 환경의 특성상 한정된 배우 풀로 여러 장르를 생산해야하는 현실 안에서 동일한 배우들이 장르영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표현해내는가를 지엽적이나마 살펴볼 수 있는 구술이라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1970년대 액션지도 방식이다. 구술자는 학창시절 권투와 가라테를 수련했고 영화계 입문 전 자칭 주먹 좀 쓰는 ‘개구쟁이’ 시절을 거쳤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의 싸움과 액션 연기의 차이를 구별하되, 연기에서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액션 연기를 구성하고 지도했는지를 설명한다. 1대1 액션 장면, 현장에서의 소도구 이용 등의 구체적 예에서 구술자의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되었는지 자세하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실전의 경험을 열악한 영화제작 환경에서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인데, 이러한 액션지도는 즉석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감독과의 사전 협의 하에 액션 콘티를 작성할 만큼 면밀히 이루어졌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1) 이 부분은 『영화천국』Vol. 55에 실린 「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액션영화의 뒤편에서 뛰다」를 수정·보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