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
- 감독
- 여은아
- 제작년도
- 2015
- 출연
- 강진아, 김수연, 김준한
한국영화의 못다 한 이야기는 인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간'에서 계속되기도 합니다. 조금의 시차는 있지만, 카메라가 남긴 이미지와 함께 그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서 있는 도시 공간은 과거로부터 켜켜이 쌓여 온 시간의 레이어가 중첩된 결과물이다. 어떤 곳은 레이어의 층위가 그다지 많지 않아 과거의 모습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반면, 어떤 곳은 너무 많은 층위가 겹쳐 불과 수년, 수십 년 전 모습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도시 중에서 사회·문화·정치·경제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서울의 도시 공간은 아마도 대부분 후자에 속할 것이다. 특히 서울 도심부는 불과 1세기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일제강점기, 광복, 6·25 동란, 군사정변과 산업화라는 역사의 격랑을 거치며 무수히 많은 시간의 레이어가 촘촘히 덧씌워져 왔다. 이러한 서울의 역사적 조건은 미시적인 변화상(예를 들면 1960년대 서울은 1950년대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가)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각각의 레이어를 이해하기 위한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가 주도로 제작된 <대한뉴스> 및 각 관청에서 촬영한 행정 기록용 사진들은 여전히 상당수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 기록은 ‘국가의 시선’에서 취사 선택되었다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대한뉴스>의 제작 목적은 국가 정책 홍보와 대국민 계몽이었으며, 관청 사진들 또한 행정 결과 보고라는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다면 민간(시민)의 시선에서 날 것 그대로의 도시 공간에 가장 근접한 기록은 무엇일까? 당대 시민의 생활상을 담아낸 영화 작품이야말로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영화 < 마부 >(강대진, 1961)는 서울에 거주하는 서민 가정의 가장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그린 작품이다. 김승호 가 분한 가장 춘삼은 1960년대 서울에서 이미 전근대적 운송업으로 취급받기 시작한 ‘마부’이며, 그의 자식들은 당시 서울 시민 대다수를 차지했던 서민 가정의 삶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모든 등장인물이 서울 시내 각지를 방황하는 이야기 전개상 4.19 혁명 직후 서울 시내 곳곳의 모습이 명확하게 포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흑백 영화라는 시대적 한계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모습 때문에 첫눈에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춘삼네 식구들의 희로애락이 투영된 장소가 지금도 엄연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서울 시내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60년 전 서울의 어느 서민 가정을 매개체로 하여 95분의 러닝타임 속에 담긴 60년 전 서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옥인길에서 촬영된 세련된 오프닝 시퀀스 <마부>의 오프닝 시퀀스는 춘삼의 작은아들 대업( 김진 )이 훔친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내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대업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은 그 형태, 그리고 1960년 10월에 치러진 보궐선거(서울시의원 종로 제1선거구) 벽보와 배경의 산세로 보아 지금의 누상동·누하동의 옥인길로 추정된다. 시퀀스로 미루어 춘삼네 집은 옥인길 초입에서 5분가량 걸어올 라가면 나오는 옥인동 47번지 일대의 비탈진 곳에 위치했으리라 짐작된다. 지금은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인해 한옥과 판잣집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영세한 필지만큼은 춘삼네 가족이 머무르던 시절을 담고 있다. 장충동에서의 근대-전근대의 교차 다음으로 주목할 장면은 작은딸 옥희( 엄앵란 )가 남성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마차를 끄는 아버지 춘삼과 길에서 마주치는 씬이다. 숭정문이 저 멀리 내다보이는 가운데, 장충동의 교차로 한가운데에서 근대의 문물(자동차)과 전근대의 문물(마차)이 사고를 일으킬 뻔했다. 도로를 지배하는 교통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옮겨간 시대적 배경에서, 이는 춘삼이 겪는 가난이 사회 구조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드러내는 씬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영동 성남극장 극중에서 춘삼과 수원댁( 황정순 )이 영화관 데이트를 즐기는 곳은 남영동의 성남극장이다. 1918년 세워진 ‘경룡관(京龍館)’을 전신으로 하는 성남극장은 서울의 수많은 초창기 영화관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극장 건물이 남아있는 드문 사례다. 한강로를 건너는 춘삼과 수원댁의 배경에는 서울전차의 원효로 분기선이, 교차로에는 221호 전차와 1950년대 후반 출시된 미제 닷지 트럭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우마차의 시대가 이미 종결을 고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은 트럭과 전차의 출연은 당시 서울의 교통 환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물류의 중심지, 서울역 마차를 끄는 춘삼과 수업( 신영균 ), 그리고 ‘서울소화물’이라 적힌 화물 오토바이를 모는 창수( 황해 )는 당시 서울역 북서쪽에 위치한 화물 취급소를 자주 찾는다. 트럭 운송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대부분의 장거리 화물은 기차로 서울에 옮겨졌고, 이를 시내 각지로 운반하는 영세 운송업자들은 자연스레 서울역 서쪽으로 모여들었다. 맞은편 북쪽에는 서울수산시장(1975년 노량진으로 이전, 現 서소문역사공원)이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물류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찻길 옆 시가지, 청파동 춘삼은 기찻길 옆 돌다리 위에서 수원댁과 만나 담소를 나눈다. 오른쪽으로 기차가 지나가고, 개천이 흐르며, 왼쪽으로 시가지가 형성된 점에서 이곳이 옛 만초천을 복개한 청파로 부근임을 알 수 있다. 이 일대가 서울역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임을 감안하면, 화물 취급소로 향하던 춘삼이 자연스레 수원댁을 만났다는 공간적 개연성이 확보된다. 수원댁과 헤어진 춘삼 너머로 보이는 높은 굴뚝은 1930년대부터 존재했던 철공소(청파동1가 183번지)의 것으로, 오랜 세월 청파동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랜드마크 역할을 했다. <마부> 촬영 이후에도 60년 가까이 살아남았으나 2019년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왼편에 철공소 굴뚝이 보인다. 해당 철공소 건물(1938년 12월 준공, 2019년 철거. 사진: 필자 제공) 불안한 해피엔딩, 중앙청 앞 율곡로 <마부>의 결말은 오프닝과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오프닝의 카메라는 누하동의 굽이진 골목길을 어지럽게 쫓아가지만, 결말의 카메라는 행복한 미래를 맞이한 춘삼네 가족이 중앙청 청사와 옛 경기도청 사이의 율곡로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큰아들 수업의 성공으로 춘삼네 가족이 더 이상 서울역 화물 취급소, 누하동 비탈길, 장충동 교차로를 전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간적 단절을 의미하는 듯하다. 다만, 과연 춘삼네 가족에게 그런 미래가 찾아왔을까? 현실의 서울에서는 수업의 성공으로부터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5.16 군사정변이 발발했고, 독재정권이 도시계획을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서울 도시 공간은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춘삼네 가족과 그들의 삶이 투영된 서울 또한, 결말의 줌 아웃을 끝으로 그 이전과 단절된 셈이다. <마부>는 95분의 러닝타임 동안 미처 글에 담지 못한 장소들(노들섬 한강대교, 문배동 오리온 제과공장, 충무로 대한극장 앞)을 포함해 서울 시내 십여 곳에서 직접 촬영을 진행하고, 이를 ‘어딘가에 존재했을 법한’ 서울 사람의 생활 동선으로 엮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부>가 첫 개봉으로부터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당대 서울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록으로 다시금 조명받는 데는 이러한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 속 서울의 모습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작품 수에 관객 수를 곱한 것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앞으로 읽어내야 할 과거 서울의 모습이 무궁무진할 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서울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여왔음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시선과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영화 속 서울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도가 이어지길 바란다. 김영준 연구원이 들려주는, <마부> 속 서울에 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국영화X공간] 영화 "마부", '1961년 서울의 삶' 클릭! 김영준(도쿄대학 특임연구원) ㅣ일본 도쿄대학에서 일제강점기 서울의 도시계획사로 박사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며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라는 필명으로 도시 경관을 기록해오고 있다. 영화의 또 다른 '등장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배경 속 도시 공간을 읽어내는 법을 계속해서 탐구한다. 『영화와 서울: 영화로 보는 도시 공간』(2022), 『새시각 #01 : 대전엑스포'93』(2021) 집필(공저).
복장전환(cross-dressing) 영화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960년대에 정점을 찍는다. 복장전환 영화는 당대 성별성의 역동적 변화에 대한 신경증적 반응이자 퀴어적 놀이터로 작동했다. 이들 영화는 크게 남장여자와 여장남자 컨셉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체로 전자는 진지한 사극에서, 후자는 그보다는 가벼운 코미디에서 발전한다. < 별 >(1961)과 < 십오야(의 복수) >(1969) 그리고 보다 최근에는 < 미인도 >(2008)와 < 도리화가 >(2015)처럼 남장여자 사극은 가부장제 비판과 남성동성애의 서브코드를 수반한다. 과거를 시대배경으로 하는 사극의 특성상 강력한 가부장제 체제에서 여성의 사회적 활동과 역할은 극도로 제약되고 여성 주인공은 남장을 하고 남성동성사회에 침투할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1960년대 남장여자 사극의 주인공은 남성성의 과시와 영웅적 모험을 스펙터클화하기 위해 무사로 성장하는 서사가 두드러졌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십오야(의 복수)>가 대표적이다. 적대적인 두 가문에서 동시에 태어난 남녀 아이가, 남아선호를 이유로 뒤바뀌고 여자아이는 상대방 가문의 아들로 키워져 복수의 칼을 간다. 이 과정에서 뒤바뀐 두 남녀는 사랑을 느끼지만, 남장여자인 매화(남정임)가 마지막에 남자의 부모가 자신의 친부모라는 비밀을 알고 나서도 살해를 감행하자 각자의 길을 떠난다. 성별뿐만 아니라 복수의 대상까지 전환된 상태에서 남아있는 감정을 해소하지 않은 채 끝나는 결말은 두 주인공과 관객 모두를 혼란과 당혹 속에 빠트린다. 매화는 그녀가 남자가 아닐 거라는 다른 남성들의 끊임없는 의심 속에서도 그리고 근친살해라는 도덕적 문제에도 끝내 남자의 자리를 고집한다. 마치 그녀의 목표는 사랑하는 남자도, 가문의 복수도 아닌 남성성의 획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매화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남장을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에게 특히 로맨스의 대상인 거목(남진)에게, 그가 진짜 남자인지를 의심받으며 패싱에 자주 실패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매화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그녀의 당황하는 표정과 여성스러운 외모를 스펙터클화한다. 즉 매화는 이성애 로맨스 대상으로서 그녀의 여성성을 해칠 정도로 남장이 충분치 않다. 여기서 타인의 의심스러운 시선에 남장이 벗겨지는 순간의 취약함의 노출과 여성성이 교묘하게 결합된다. 그녀의 남장은 지워지지 않는 강력하고 진정한 여성성을 강조하는 데 이용된다. 이렇게 대부분의 남장여자 사극이 ‘남성동성애’라는 방해물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는 진정한 이성애적 결합을 목표로 달려가긴 하지만, 시각적으로 남성동성애적 환상이 순간적으로 무대화된다는 면에서 그리고 <십오야>처럼 자신의 남성성을 고집하는 서사처럼 퀴어적 실천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지정성별이 남성인 주인공이 여장하는 영화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장르가 주를 이루며, 여성으로 패싱될 때 전환된 욕망, 관계, 직업유지 등을 생활밀착형 에피소드로 상세하게 묘사한다. 남자들이 여장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직업이나 생계다. < 남자는 안 팔려 >, < 내 것이 더 좋아 >, < 남자와 기생 >, < 신입사원 얄개 >, < 치마 입은 남자 >의 주인공은 모두 남자로서 직업을 찾거나 거주지를 찾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해 여장을 한다. 이 영화들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지던 1960년대 도시는 여자들이 살기에 더 좋은 장소라고 주장한다. 영화에서도 묘사되다시피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여성 일자리가 증가했지만 주로 제조공장, 식모, 비서, 판매원, 공연, 미용, 버스 안내양, 성판매 등의 특정 직업에 국한되었다. 노동조건이 좋지 않아서 남성이 꺼리는 직업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직업에서는 남성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여장남자 영화의 남자 주인공들은 자신이 취직을 못 하는 것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고, 도시의 젊은 여성을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침입자로 묘사한다. 산업 시스템이 변하고 도시의 구성이 달라질 때, 성 역할도 변할 수밖에 없다. 도시화가 촉진되면서 전통적 남성 주체성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여장남자 코미디는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이 비난받는 이유를 여성에게서 찾을 수 있는 서사를 제공해 주는 동시에 근대 도시에 더 적합한 유연하고 '여성적인' 새로운 남성성을 연습할 수 있는 쿠션이 되어 준다. 변화에 대한 부적응 그 자체와 적응을 위한 고투로 인해 발생하는 고단함은 기존 규범에서 벗어난 신체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발생시킨다. 한편 여장남자 코미디는 근대화된 도시에서 여성의 노동시장의 진입에 대한 남성들의 두려움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그것을 조정하고 협상하려는 정도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들은 여장남자 주인공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통해 여성의 직업 세계에서 일어나는 갖은 차별과 혐오를 폭로하고, ‘여성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또한 < 여자가 더 좋아 >나 <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 >, < 내 것이 더 좋아 >, < 남자와 기생 >, < 치마 입은 남자 >처럼 여장남자들은 이미 주류 남성들과는 이질적인 ‘여성적인’ 남성이다. 그들은 다른 남성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자신을 스펙터클화 하는 신체적 퍼포먼스에 능하며, 요리와 뜨개질을 좋아하고, 성적으로 여성에게 위협적이지 않고 잘 어울린다. 여장한 이후에는 실제로 ‘독특한’ ‘본 적 없는’ ‘다른 여자와는 다른’ 여자로 남자의 인기를 독차지 한다. 여장남자에 대한 다른 남자들의 성적 접근은 대부분 성폭력에 해당하지만 말이다. <내 것이 더 좋아>(이형표, 1969)는 앞서 말한 주제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퀴어적 관계를 가시화하는 영화다. 고향을 떠나 상경한 성춘(서영춘)은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봉수(구봉서)의 집에 얹혀살면서 그의 아내 노릇을 한다. 봉수는 헤어진 전 아내의 체구가 성춘과 비슷하다며 이미 내재해 있는 그의 여성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봉수의 전 ‘아내’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시스젠더인지 트랜스젠더인지, 혹은 크로스드레서인지 알 수 없다. 낯선 성춘을 거리낌 없이 집으로 데려오는 봉수의 태도나, 체격이 비슷했음을 강조하는 것을 봤을 때 봉수의 전 파트너 역시 ‘남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성춘은 주인집에 들키지 않기 위해 완벽한 ‘아내’ 역할을 하려 노력한다. 그러던 중 봉수는 그들의 집 건너편에 레즈비언 커플인 강자(이금희)와 분임(고은아)이 살고 있다고 알려준다. 성춘은 남성적인 ‘바지씨’ 강자와 여성적인 ‘치마씨’ 분임을 관찰하며 ‘아내’ 역할을 수행한다. 봉수와 성춘에게 이 레즈비언 커플은 전통적 성역할을 모범적으로 제시해주는 좋은 예이다. 이 영화는 오프닝부터 여성성은 ‘구성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눈, 입술, 코의 클로즈업은 주류 카메라가 여성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시골에서 올라온 성춘의 무지를 드러내기 위해 삽입한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서울에 올라와 쇼윈도우 너머에 있는 마네킹을 처음 본 성춘은 ‘고운 여자가 갇혀 있다’고 착각한다. 여성성이라 것이 프레임, 즉 무대에서 수행되는 것이라는 것을 성춘의 순진함을 이용해 형식화한다. 또한 봉수와 성춘이 함께 데이트를 나간 장면에서 둘은 영화관을 지나가는데 간판에 구봉서와 서영춘이 주연한 ‘내 것이 더 좋아’라는 제목의 영화가 걸려 있다. 이 영화는 끊임없이 프레임 속의 프레임, 영화 속의 영화를 통해 젠더, 특히 여성성이 수행적이고 구성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만든다. 이중 가장 중요한 프레임은 바로 강자와 분임이 사는 집의 창문이다. 봉수는 성춘이 다른 아내들과 달리 애교가 없다고 타박하고 성춘은 건너편 창문을 통해 분임의 얼굴표정, 제스처, 분임이 강자에게 하는 ‘애교’를 모방하고 학습한다. 성춘은 분임이 강자에게 회사에 잘 다녀오라고 키스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출근하는 봉수에게 키스를 해준다. 성춘과 분임이 동일하게 가수를 꿈꾸고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가수라는 꿈은 분임의 여성성도 자연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을 수행하고 노력한 결과라는 것을 드러낸다. 성춘이 옆집 창문에서 보이는 분임의 제스처와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고 따라할 때, 창틀로 프레이밍된 그리고 무대화된 여성성의 수행은 정확히 이중적으로 영화적인 것이 된다. 창문은 젠더의 표정을 드러내는 ‘얼굴’이 된다. 분임을 보는 성춘과 성춘을 보는 관객. ‘여성적인 남자’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을 학습하고 장착하는 과정은 충분히 퀴어적이다. 하지만 다른 복장전환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성춘의 여장을 벗겨내고 이성애 관계로 짝을 교정하면서 퀴어적 실천과 욕망을 봉합하려 한다. 결말에서 성춘은 분임과, 봉수는 강자와 새롭게 맺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짝짓기는 이성애적 결합이나 ‘규범적 정상성’으로 보기에 매우 의심스럽다. 커플 스와핑이라는 실천과 이성애적 교정을 통해 오히려 동성애적 함의가 더 짙어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분임은 성춘을 여자로 알면서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성춘은 부부란 모름지기 아들 딸 낳고 살아야 한다며 ‘정상성’을 강조하고 공원에서 분임에게 해코지 하는 남자들을 물리치며 자신의 ‘규범적 남성성’을 과시한다. 하지만 분임을 괴롭힌 남자들은 성춘이 돈을 주고 산 사람들이다. 이 장면은 남성성 역시 수행되고 구성됨을 강조할 뿐이다. 한편 봉수와 강자는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은 ‘아내들’ 욕을 하며 친해지게 된다. 봉수는 수염 많은 집사람보다 피부도 부드러운 강자가 더 마음에 든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강자도 성춘처럼 봉수와 이어지기 위해 치마를 입고 귀걸이를 하며 자신의 여성성을 찾으려 하지만 이 역시 여장을 한 부치처럼 보일 뿐이다. 결국 강자는 봉수의 집에서, 성춘은 분임의 집에서 함께 산다. 마지막에 영화는 두 집의 창문을 번갈아 보여주며 끝난다. 표면적으로 보기에 규범적 정상성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의 창문을 통해 여전히 서로를 모사하고 구성하며 초월해 나가는 방식으로 젠더(적 관계)가 구성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또한 동일하게 남성성을 수행하는 봉수와 강자, 여성성을 수행하는 성춘과 분임은 어느 커플보다도 더 동성애적이다.
1953년에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소설을 신봉승의 각색을 거쳐 김수용 감독이 1965년에 장편으로 완성한 영화다. 1965년 11월에 개봉한 < 갯마을 >( 김수용 , 1965)은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신상옥 , 1961), < 벙어리 삼룡 >(신상옥, 1964)과 더불어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예술영화로까지 의미가 확장된 ‘문예영화’의 기준을 확립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성공적이었고, 이후 1967년까지 폭발적으로 이어진 문예영화 전성기를 연 기념비적인 영화다. 장편영화만 109편을 연출한 김수용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으로 문예영화의 기수로 떠오르게 되는데, 한국 문예영화의 전성기는 김수용의 영화 활동의 전성기와 대략 일치한다. 예술성 있는 문예영화가 수익성도 있다는 것을 입증한 이 영화의 경험으로 김수용 감독은 소설의 영화화에 더욱 매진하였던 것이다. < 까치소리 >(1967), < 안개 >(1967), < 산불 >(1967) 등 그의 대표작은 거의 문예영화였던 점이 이를 잘 나타내준다. 짧은 단편소설을 장편영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작에 없는 캐릭터와 에피소드들을 더하여 좀 더 스토리라인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 해순과 시어머니, 상수, 그리고 동네 아낙들로 이루어진 원작의 단순한 캐릭터 구성 위에 영화에서는 시동생을 주요 캐릭터로 더하였다. 그리고 남편의 죽음 이후, 해순이 상수와 함께 하는 육지 생활과 산속 생활이 새롭게 추가되어 구체적으로 묘사됨으로써 영화의 드라마적 구성이 더 풍부해졌다. 결혼한 지 이제 열흘이 된 새댁 해순( 고은아 )의 남편 성구( 조용수 )가 고깃배를 타고 출항한 후 거센 폭풍우로 인해 사망하고, 그녀는 시어머니( 황정순 ), 시동생 성칠( 이낙훈 )과 함께 살아간다. 바닷가 갯마을은 과부가 많은 동네로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과 사별했다. 경제적 토대와 일상적 생활이 서로 한데 엮인 연대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갯마을 과부들은 끊임없는 성적 농담으로 자신의 척박한 처지를 이겨낸다. 그러던 중 아름답고 해맑은 해순을 쫒아 다니는 건장한 상수( 신영균 )는 그녀와 새출발하고 싶어 하고, 도망 다니던 해순은 결국 그와 관계를 맺게 된다. 성칠과 어머니는 해순과 상수 사이를 눈치 채고 해순을 설득하여 보내기로 한다. 원작은 상수가 징용에 끌려가자 홀로 산에 남은 해순이 바다를 그리워 하다가 병이 나서 갯마을로 돌아가는 결말이다. 이에 반해 영화는 서사적 확장을 꾀하기 위해 에피소드들을 추가한다. 채석장에서 행복하게 일하던 두 사람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자 산속으로 들어가 숨어살던 중, 지나가던 사냥꾼이 해순을 겁탈하려 한다. 그러자 상수가 사냥꾼을 죽이고, 해순은 기절한다. 상수는 약을 구하러 마을로 내려갔다가 산으로 뛰어오던 중 절벽 밑으로 떨어져 죽는다. 정성스럽게 남편의 장례를 지낸 해순은 그리운 갯마을로 돌아온다. 시어머니와 마을 아낙들은 해순을 반갑게 맞이하고, 해순은 다시는 바다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원작이 해순과 상수의 해후를 열린 결말로 놓았다면, 영화는 두 번이나 사별한 해순이 운명에 순응하면서 다시 갯마을에서 갈아가기로 결심하는 닫힌 결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은 운명의 비정함과 삶의 건강한 활력이 뒤섞이는 보다 풍부한 마무리를 생산해낸다. <갯마을>은 <벙어리 삼룡>처럼 향토색 짙은 서정성의 로컬 컬러 경향의 영화로 보이지만, 이전 향토성 문예영화들과 다른 면이 많다. 갯마을은 시대성이나 외부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원형적인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과부들로 구성된 여성 공동체에서는 성적 욕망을 마음껏 발산해도 된다. 남편 없는 이들이 섹스를 그리워하는 직설적인 농담을 나누거나, 서로의 맨 다리를 베고 누워 서로의 육체를 찬양하거나, 여성들끼리 진하게 포옹하고 키스하며 뒹구는 장면은 에로틱하면서도 건강한 생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갯마을이라는 원형적인 공간은 원초적인 삶의 양태들로 가득 채워져 생동하는 삶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표현된다. 영화가 보여주는 삶의 원초적 건강성이 뿜어내는 매혹은 비관적인 신파성과 거리를 둔다. 이 위에 1960년대 한국 감독들이 의식하고 있었던 유럽 모더니즘 영화의 영향이 더해진다. 캐릭터들의 농담과 태도에서 보여지는 보다 건조한 표현은 영화적 품격으로 나타난다. 해순이 상수를 받아들이던 날 클로즈업의 투 쇼트를 보자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나 루이 말의 영화처럼 내면의 환희와 갈등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이처럼 분열된 의식세계가 감각적인 서구의 예술영화적 기법으로 표현된다. 바다와 갯벌, 이 속에서 그려지는 여성의 성적 욕망은 원초성의 자연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유교적인 사회적 규범이 깨어지는 장면들은 어색하지 않다. 남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남자를 받아들이는 것, 이제 막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며느리를 재가시키는 것, 다시 돌아온 며느리를 가족의 일원으로 환영하는 것과 같은 장면들은 이전 영화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진보적인 애티튜드다. 굿과 성황당 또한 원초성의 상징으로 기능하는데, 이전 영화들에서 무속이 전근대성의 표상으로 타파해야 할 구습으로 비춰지는 면이 있었다면, <갯마을>의 무속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삶과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갯마을 사람들에게 무속은 또 하나의 자연의 일부다. 해순이 남편의 혼백을 건져내는 푸닥거리 장면, 그리고 아들의 넋을 건져내 정성스레 품에 안고 집으로 데려오는 어머니의 행동은 기이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사람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일상적 제의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갯마을>은 신파성에서 한걸음 나아가며 모더니즘 영화언어에 대한 갈망을 그려내는 전환기적인 작품이며 문예영화의 기준이 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진보적인 이상적 여성 공동체는 지금 봐도 놀랍다.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과 동시대적 이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계속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 갯마을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