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없는 전쟁
- 감독
- 후쿠사쿠 킨지
- 제작년도
- 1973
- 출연
- 수가와라 분타, 마츠카타 히로끼, 우메미야 타츠오 , 와타세 쓰네히코 , 가네코 노부오, 이부키 고로
1. 1970년대 변두리 극장을 선회하던 액션영화에 홍콩식 권격영화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협객물이라고 불렸던 이 영화들은 전지구적 유통망 속을 흘러가던 권격영화들의 한편에서 자국 관객들에 대한 강력한 어필로 70년대 한국의 액션영화 시장을 양분하였다. 이 ‘내수용’ 영화들이 지극히 흥미로워지는 것은 이 영화들이 그 어떤 장르영화보다도 명료하게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체를 구성하는 적대의 선을 말 그대로 물리적인 방식으로 반복 재현해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실재하는 하나의 이름을 끌어옴으로써 가능해졌는데, 일찍이 독립전쟁을 수행한 ‘장군의 아들’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내걸었던 이 고유명은 1930년대 중반 식민지 조선인들의 상업거주 지역인 종로통의 ‘주먹’으로 부상한 이래 해방 정국의 백색 테러리스트로서 ‘빨갱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고, 1960년대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을 응징하는 정치 ‘협객’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미 당신도 짐작하다시피, 이 이름은 김두한이다. 이 이름이 그토록 오랫동안 (적어도 200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남성 대중문화의 강력한 원천으로 작동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반일과 반공으로 성립된 대한민국의 고유한 두 적을 탁월한 폭력으로 능히 제압해내는 그는 그럼으로써 이 국가가 소망하는 강력한 남성성을 온몸으로 체현해내고 있는 자라고 할만하다. 게다가 이 이야기에는 통한의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이곳의 아들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식민지 남성들이 겪어야 했던 저 강렬한 고아의식과 전후의 비루한 아버지의 형상들을 떠올린다면 거리의 고아 소년이 독립운동가 ‘장군’의 위대한 혈통을 잇는 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얼마나 매혹적인 것인가. 1) 2. 이런 류의 영화들의 기억할만한 첫 시작은 1969년 1월에 개봉한 < 팔도 사나이 >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당시 김두한은 막 정치판에서 자취를 감춘 직후였으나, 부정부패한 정치인들에게 똥물을 퍼부었던 정치 협객 김두한의 인기는 절정에 달해 있었고 이제 곧 그것은 한국 대중문화의 매력적인 자원이 될 터이다. 2) 비록 김두한이라는 실명은 피하고 있지만 <팔도 사나이>는 ‘김두한 스토리’의 첫 번째 버전이라고 할만하다. 고아인 어린 소년 호(虎)는 자신을 길러준 노인으로부터 실은 그의 아버지가 유명한 독립투사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어른이 된 호는 주먹으로 종로를 평정하고, 그런 그에게 평양 박달이부터 광주 용팔이까지 팔도의 사나이들이 차례로 도전장을 내민다. 호는 이 싸움에서 거듭 승리를 거두고, 도전자들은 그를 ‘형님’으로 모신다. 이제 조선 주먹을 대표하게 된 호는 종로를 넘보는 일본 야쿠자와 한판 승부를 벌인다. 이 놀랍도록 전형적인 이야기는 한편으로 ‘김두한 스토리’의 원형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팔도’가 환기시키는 1960년대 후반의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토’의 현현이라는 감각을 과시한다. ‘종로’의 주인 호가 도전을 받아들이고 굴복시키고 형제의 따뜻한 연을 맺는 일련의 과정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지역의 위계화를 완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내부를 계서적 형제관계로 마름질한 그는 외부의 적 과 맞서 싸워 통쾌한 승리를 거둬낸다. 3. <팔도 사나이>는 10만 7천명의 관객동원을 기록하였다. 1967년 기록적인 관람률을 보여주었던 국책영화 < 팔도강산 >의 성공 여파로 우후죽순처럼 쏟아져나온 수많은 ‘팔도’ 영화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이 영화 이후 감독 김효천과 시나리오 작가 편거영은 각자의 방식대로 이 성공을 이어가고자 했다. 같은 해 < 속 팔도 사나이 >, < 돌아온 팔도 사나이 >의 각본/연출을 맡기 시작한 편거영은 < 한국 제일의 사나이 >(1970), < 원한의 팔도 사나이 >(1970), < 예비군 팔도 사나이 >(1971), < 바보같은 사나이 >(1971)를 만들었고, 김효천은 < 명동출신 >(1969), < 명동노신사 >(1970), < 명동백작 >(1970), < 명동에 흐르는 세월 >(1971), < 명동을 떠나면서 >(1973) 등의 ‘명동’ 시리즈를 만들었다. 이 영화들은 적을 규정함으로써 어떻게 정치공동체가 형성되는가를 가장 노골적인 방식으로 전시하고 있는 한국영화일 것이다. 이를테면 해방 직후를 배경으로 한 <명동노신사>는 남한 사회가 누구를 동지로 삼고 있으며, 누구를 적으로 하여 형성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강룡(장동휘)과 덕팔은 해방 전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형제 같은’ 사이이다. 남조선노동당의 앞잡이가 된 덕팔은 강룡을 포섭하려고 하나 그의 완강한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강룡의 노모와 누이를 살해하고 빨치산이 되어 산에 들어간다. 한편 강룡이 과거 덕팔과 함께 모셨던 형님 덕진은 국방경비대 창설의 주역이다. 강룡은 덕진 형님을 찾아가 자신의 부하들로 특별부대를 편성, ‘공산비적’을 소탕하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밝힌다. 팔도에서 온 부하들을 이끈 강룡의 공비소탕전이 펼쳐진다. 부하들은 임무를 완수하고 장렬히 전사해간다. 홀로 살아남은 강룡이 이들을 추모한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결절점이 있다. 첫 번째, 형제애의 수사로 강조되는 하나의 민족. 함께 일본에 대항했던 덕팔과 강룡은 ‘형제 같은’ 사이였다. 두 번째, 그러나 이 ‘형제’는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서로 총구를 겨눈다. 그리고 홀로 살아남은 전투의 증언자가 우리를 또 하나의 애도의 공동체로 초대한다. 요컨대, 이 영화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국가, 대한민국을 형성하기 위해서 누구의 피가 흘려졌는가? 3) 4. 김두한의 실명 사용은 그의 죽음 이후 가능해졌다. 그가 죽은 지 2년 후인 1974년 < 실록 김두한 >을 시작으로 < 협객 김두한 >(1974), < 김두한 속 3부 >(1975), < 김두한 속 4부 >(1975)까지 이어진 ‘김두한’ 시리즈는 신필름의 마지막 흥행작이기도 하였다. 김두한이라는 실명이 사용되고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동시기 일본 야쿠자영화의 주요 경향, 소위 ‘실록 노선’을 창조적으로 벤치마킹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실록 노선’의 기념비적 시작을 알린 것은 1973년 정월에 개봉해서 일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후카사쿠 긴지의 < 의리없는 전쟁 >(1973)이었다. 전후 일본을 야쿠자들의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항쟁사로 그려내고 있는 이 시리즈가 격렬한 정치적 저항의 시기였던 일본 68이 좌절된 1970년대 일본 사회의 절망과 조응하는 것이었다면, 김두한의 ‘실록’ 시리즈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의 유신과 긴급조치의 시대에 그야말로 적절하게 조응하는 것이었다. 이 시리즈를 기획했던 자의 말처럼, 이 반일(<실록 김두한> <협객 김두한>)과 반공(<<김두한 속 3부>, <김두한 속 4부>)의 물리적 행위자는 “인정사정없이 줘패는” 행위를 통해 “분풀이 할 데 없는” 대중들을 “대리만족 시켜”주었다. 국가적 요구를 반영하는 이 폭력의 전시야말로 아마도 유신시대에 향유가능했던 가장 안전한 쾌락이었을 것이다. *** 1) 물론 반공에 비해서 반일이란 대한민국의 성립과정이 보여주고 있는 바 어느 정도 애매모호한 것일 수밖에 없다. 김두한의 이력 속에서 보자면 그는 1943년 조직된 총독부 협력단체인 반도의용정신대의 주도자였다. 이 단체는 당시 조선총독부의 고등계 형사로 재직중이었던 장명원에 의해 ‘불량청년’들을 규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는 이 단체의 설립 및 활동에 근거하여 장명원을 기소하지만 이 기소는 반도의용정신대가 ‘표면상 왜 정책에 협력하는 것같이 보이’나 불량청년들을 ‘감화지도하여 선량한 청년을 육성’하였다는 이유로 유예된다. 당시 김두한은 대표적인 극우 테러리스트로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었다. 2) 1966년 삼성의 사카린 밀수 사건과 국회의 미온적 대처에 대한 항의로 벌어진 김두한의 국회오물투척사건으로 내각이 총사퇴하고 김두한 자신은 제명론이 비등한 가운데 자진 사퇴, 국회의장 모욕죄와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되었다. 1967년 총선에서 ‘서민층에 호소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민당 공천(수원)으로 선거에 나온 그는 “북괴에는 농촌까지 전기가 들어와 있는데 우리 농촌은 헐벗고 있다”는 요지의 연설이 문제가 되어 반공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된다. 김두한은 그해 11월 보석으로 출감된 이후 정치계에서 은퇴하였다. 3) 강룡과 덕팔의 이야기는 김두한의 실제 스토리로부터 비롯되었다. 1947년 김두한은 죽마고우 정진용을 그가 좌익 행동대장이라는 이유로 린치, 살해하였다. 이 사건으로 김두한은 미군정에 의해 사형을 언도 받았으나,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이승만에게 특별사면 받았다.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외팔이'의 도래, 1960년대 후반의 무협붐 - 2021.06.30. 4. 태권도 영화- 챠리 셀과 바비 김, 이국적 이름들의 행렬에 관하여 - 2021.07.23. 5. 이소룡적 신체 - 2021.08.24. 6. 김두한과 협객물, 유신 시대의 가장 안전한 쾌락 - 2021.10.01. 7. 브루스플로이테이션과 한국영화 - 2021.11.01. 8. 춤추는 괴수, 1967의 '트위스트' 용가리 - 2021.12.02. 9. 우리는 왜 그때... - 2021.12.24. 10. 용팔이, 1970년대의 과잉과 잉여 - 2022.02.24. 11. 1970년대식 섹스와 폭력, 여감방 영화와 <여수 407호> - 2022.03.22. 12. <삼국대협>, '트랜스내셔널한 어떤 고립에 대하여 - 2022.04.20. 13. '빈곤한 이미지'의 여행- <정도>/<당수태권도>와 <변증법은 벽돌을 깰 수 있는가> - 2022.05.30.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을 처음 발견한 영화는 2013년작 < 흉악-어느 사형수의 고발The Devil's Path >이다. 연쇄살인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남자가 형무소에 찾아온 기자에게 비밀을 말한다. 드러나지 않은 범죄가 있고, 다른 범인도 있다는 것. 세상에는 수많은 범죄가 있고, 다양한 악인이 있다. 그중에는 정말 끔찍한, 사악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흉악한 인간과 범죄도 있다. <흉악>은 기자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가장 어두운 바닥까지 파고 들어간다. 인간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질문하는 영화였다. 2017년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을 보게 되었다. 45주년을 맞아 기획한 로망포르노 리부트 작품의 하나인 < 암고양이들Dawn of the felines >(2016)의 무대 인사였다. 로망포르노 리부트는 소노 시온과 시오타 아키히코 등 일선에서 활발하게 영화를 찍는 감독들에게 핑크영화 연출을 의뢰한 야심 찬 기획이었다. <암고양이들>은 이케부쿠로의 유흥 업소에서 일하는 미혼모, 주부 등 세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암고양이들>은 다나카 노보루의 1972년작 로망포르노 < 암고양이들의 밤 Night of the felines >의 리메이크작이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말부터 시작된 니카츠 로망포르노의 거장이라면 구마시로 다츠미가 해외에서 유명하지만, 일본 내에서는 < 실록 아베 사다A Woman Called Sada Abe >(1975)와 < 유부녀 집단폭행치사사건 Rape and death of a housewife >(1978)의 다나카 노보루도 상당히 지명도가 높다. 작년 로테르담 영화제에서는 다나카 노보루의 <암고양이들의 밤>과 시라이시 카즈야의 <암고양이들>을 이어서 상영했다. <암고양이들의 밤>은 격동의 시절인 1972년의 영화답게,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여성에 대한 긍정적이고 관대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흉악>을 워낙 좋아했던 터라 시라이시 카즈야가 핑크영화를 만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암고양이들>은 거리에서 떠도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건조하면서도 사회적인 이슈를 파고들며 잘 그려냈다. 이력을 찾아보니, 북해도 출신인 시라이시 카즈야는 핑크영화의 전설인 와카마츠 코지에게 사사했다고 나온다. 로망 포르노를 만들게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된 시라이시 감독의 신작 < 아무것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Dare to stop us> (2018)는 와카마츠 코지 감독 사후 흔들렸던 와카마츠 프로(덕션)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영화다. <흉악>과 <암고양이들>의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반드시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하고 싶은 감독이었다. 작년, 누마타 마호카루의 소설을 각색한 < 이름 없는 새Birds without names >(2017)는 시기가 맞지 않아 포기했다. 올해는 < 고독한 늑대의 피The blood of wolves >(2018)와 < 써니를 찾아서Sunny / 32 >(2018), 2편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시라이시 감독의 초청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독한 늑대의 피>에 비하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써니를 찾아서>는 인터넷 공간이 현실 이상의 리얼리티를 갖게 된 우리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B급 감성으로 포착한 흥미로운 영화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히로시마 인근의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야쿠자 조직 간 항쟁을 그린 영화다. 히로시마, 라고 하면 후카사쿠 긴지의 < 의리없는 전쟁 Battles without honor and humanity >이 떠오른다. <의리 없는 전쟁> 시리즈의 무대가 바로 히로시마였다. 1973년 작인 <의리 없는 전쟁>은 일본 야쿠자물을 혁신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야쿠자물은 소위 ‘협객물’이라 불리기도 했다. 사회의 음지에 있지만, 정의와 의리를 지키는 아웃사이더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의리 없는 전쟁>은 협객으로서의 야쿠자를 전면 부정한다. 말로는 의리를 외치지만 야비한 술수와 음모를 꾸미고, 목숨 따위 아무것도 아닌 듯 떠벌이지만 사실은 두려워서 벌벌 떠는 야쿠자의 진짜 얼굴을 그린 것이다. 치사하고 악랄한 범죄자로서의 야쿠자를 실록-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그려낸 <의리 없는 전쟁>은 야쿠자물의 전형을 바꾸었고,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후카사쿠 긴지는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와 〈 의리의 무덤Graveyard of honor 〉(19775), 〈 도베르만 형사Detective Doberman 〉(1977), < 배틀 로얄Battle royale >(2000) 등의 걸작을 만들어내며 거장으로 평가받았다. 의리없는 전쟁 <의리 없는 전쟁>의 영향을 받은 것은 영화 <고독한 늑대의 피>만이 아니다. 원작 소설부터 영향권에 있었다. 1968년생이며 기자로 일했던 유즈키 유코는 2008년 『임상 진리』를 발표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마흔 살이었다.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던 유즈키는 2015년 『고독한 늑대의 피』를 출간한다. 후카사쿠 긴지의 영화 〈의리없는 전쟁〉과 아사다 데쓰야의 소설 『마작방랑기』를 좋아했고, 이런 풍으로 남자들의 세계에 대해 쓰고 싶었다던 꿈을 실현한 것이다. 치밀한 취재를 통해 『고독한 늑대의 피』는 21세기에 걸맞은 경찰, 야쿠자 소설의 걸작이 되었다. 여성인 유즈키 유코는 <의리 없는 전쟁>을 너무나 좋아하여 비슷한 스타일의 소설을 쓰고 싶었고 『고독한 늑대의 피』를 썼다. 그러니 소설에서도, 영화에서도 <의리 없는 전쟁>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설의 구성도 〈의리없는 전쟁〉의 ‘실록’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각 장마다 누군가의 보고서가 등장하고, 지워진 문장들이 있다. 지워진 사건들이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보고서를 지운 인물이 누구인지는 소설의 마지막에 드러난다. 지워진 상황들은 각 장마다 드러난다. 누가 무엇을 지운 것일까,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기는 한데, 소설을 읽다 보면 궁금해할 여유가 없다. 상황들이 너무나 긴박하고, 인물들이 강렬하다. “맞아, 난 미쳤어. 수사를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거야.”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도,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잘 알고 있는 오가미형사의 미래가 궁금해서 마지막까지 한달음에 달려가게 된다. 영화 〈고독한 늑대의 피〉도 충실하게 실록 스타일을 따른다. 잔인한 폭력이 나오는 첫 장면이 지나고, 오프닝은 슬라이드 사진의 바랜 듯한 화면으로 바뀐다. 야쿠자 조직과 인물들에 대한 나레이션이 이어지면서 배우와 스태프의 이름이 세로로 박힌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폭력단 대책법이 나오기 전 1988년. 야쿠자와 결탁한 부패 형사인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질 형사가 된 것인지 모호한 오가미 형사가 주인공이다. 신입 형사인 히오카는 오가미의 진짜 얼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히로시마 인근의 구레하라시에서 벌어지는 야쿠자 항쟁을 막으려는 오가미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야쿠자물이지만 형사가 주인공이다. 형사물과 야쿠자물은 같은 류이지만 분명히 다르다. 범죄의 세계를 어떤 시점으로, 어떤 스타일로 그려지는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다. 아니 동전의 양면일 수도 있다. 오가미 형사도 그렇다. 그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중반까지 종잡을 수가 없다. 범죄영화에 흔히 나오는, 악과 싸우다 결국 닮아가는 캐릭터 같기도 하다. 형사가 악이 되어가는 이유는 잡아야 하는 악당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이는지 알아야 단서를 포착하고, 증거를 찾아낼 수 있으니까 닮아간다. 하지만 닮아가는 것만으로 인간이 변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얕다. 처음에는 히오카도 오가미가 야쿠자를 닮아 변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가미는 고독한 늑대다. 철저하게 무리를 지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늑대라는 짐승. 그렇기에 무리에서 밀려난 늑대는 더욱 강인해져야만 한다. 투철한 각오를 해야만 살아남는다. 오가미는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원칙을 세웠다. 무리의 규칙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가야만 하는 규범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유는, 경찰도 야쿠자와 다를 게 없기 때문에. 야비하고 술수를 앞세우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짓밟는다. 오가미는 야쿠자만이 아니라 동료인 경찰과도 싸워야 한다. 자신의 영역을 철저하게 지켜야만 한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오가미라는 고독한 늑대의 일생을 히오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매료될 수밖에 없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아웃트로의 처절한 싸움을 그려낸다. <고독한 늑대의 피>는 시종일관 에너지가 들끓는다. <흉악>을 보았을 때부터, 시라이시 카즈야의 영화는 늘 그랬다. 결코 관조하지 않고, 결코 무르지 않다. 강인하게, 고독한 늑대처럼 이 세상을 차갑게 바라보면서 싸우고 있다. 소설과는 다르게,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각색을 통해 만들어진 시라이시의 고유한 장면이다. 격렬한 클라이맥스를 보고 있으면 시라이시 카즈야의 영화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알 수 있다. 지금 일본 영화의 현재를 보고 싶다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고독한 늑대의 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