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일지매
- 감독
- 황인뢰, 김수영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정일우, 윤진서, 김민종, 정혜영, 박근형, 이계인, 박철민, 오영수, 강남길, 황정리
제목의 ‘장미’는 꽃 이름이기도 하겠지만, 실제 유지인 의 극 중 배역 이름이기도 하다. 전화벨이 울리자, 장미(유지인)는 졸린 눈으로 “어보세요?”라고 전화를 받는다. 금요일을 토요일로 착각하고 꿈나라에 빠져있던 장미는 부랴부랴 학교로 향한다. 모범생이라 그런 줄 알았더니 친구들과 약속이 있었던 모양이다. 심지어 캠퍼스에서 여대생들이 대놓고 담배 피우기 애매하던 시절(지금도 그런가?), 화장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들을 꼬나보는 학교 관계자가 바로 < 여곡성 >(1986)에서 귀신이 몸을 빌린 시어머니로 출연하여 혀를 길게 뽑으셨던 석인수 선생이다. 이름은 남성적이지만 당대 한국영화의 못된 시어머니, 무당, 여죄수 등을 도맡으며 황정순의 반대편에서 장르와 분량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영화에 이바지하셨던 훌륭한 분이시다. 그처럼 공부는 뒷전인 장미와 그 일행들을 기다리는 남자는 바로 규식( 송승환 )이다. 장미만을 사랑해온 규식은 카페에서 사랑의 징표라며 무언가를(알지만 도저히 쓸 수 없다)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러고는 (역시 알지만 도저히 쓸 수 없는) 동정과 처녀성에 대한 규식의 일장연설과 플래시백이 이어진다. 단순한 세대차이로 치부하기에는 납득하기 힘든 그런 논리로 규식이 급기야 “우린 결혼해야 돼, 부모들 사이에서도 얘기가 끝났어”라고 말하자, 장미는 허탈한 듯 소리친다. “아이구 이 피곤한 친구.” 그래 궤변은 늘 피곤한 법이다. 장미 가시로 만든 핏방울 징표 “세 방울은 장미 거, 세 방울은 내 거” 규식을 따돌린 장미와 그 일행은 야심한 시각이 되자, 정체불명의 술집에서 만난 하키부 남자들과 옷 벗기 내기 술 마시기 게임을 시작한다. 이계인 이 대학생으로 나오는 것은 이해한다 해도, 같은 해 만들어진 하길종 의 < 병태와 영자 >(1979)에서 병태( 손정환 )에게 “군대에서 여자 친구 사진을 갖고 있는 것은 정신무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충고하는 소대장으로 나온 이해룡 이 전혀 정신무장이 안 된 하키부 예비역 대학생으로 나오는 것은 무척 황당하다. 심지어 유지인 보다 실제 20살이 많고, 영화 속 중년남으로 나오는 신성일 보다도 한 살 많은 한국영화계의 대표적 원로배우다.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89)에서는 은주( 이미연 )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무튼 여자가 한 명 모자라지만 대담하게도 두 사람을 상대하겠다는 장미로 인해 게임이 시작된다. 그런데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철민(이계인)이 술자리를 뒤엎으며 장미에게 “자신을 내동댕이치는데 익숙한 여자”라고 소리친다. 그처럼 < 가시를 삼킨 장미 >의 초반부는 뭔가 ‘한국판 < 님포매니악 >’스러운 분위기로 후끈 달아오른다(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너무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는 마시길). 문제의 대학생들(가장 앞이 이해룡 , 세 번째가 이계인 )과 후끈한 게임 정진우 감독의 < 가시를 삼킨 장미 >는 이장호 감독의 < 별들의 고향 >(1974)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른바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의 자장 안에 있다(<별들의 고향>을 각색한 이희우 작가가 <가시를 삼킨 장미>를 썼다). 그를 B무비 장르에 명쾌하게 포함시킬 수는 없겠으나, <가시를 삼킨 장미>는 A무비를 지향하는 대사들의 연속이 오히려 현재에 이르러 B무비처럼 느껴지는 경우다. 당시로써는 ‘여성 주체’에 대한 심오하고 페미닌한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나마 그를 현실적으로 살려내는 것은 유지인 의 탁월한 연기력이다. 그런 혼돈의 술자리를 끝내고 헛헛한 마음으로 귀가한 장미 앞에는 쓸쓸한 새장이 있다. 까마귀(< 하얀 까마귀 >), 뻐꾸기(<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앵무새(<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갈매기(<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 등 유난히 새를 사랑해온 정진우 감독의 미장센이 빛나는 대목이다. 심지어 신일룡 , 이미숙 주연의 또 다른 연출작 <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1984) 또한 앞서 <두견새 왜 피를 토했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그보다 앞선 최초의 제목은 <짧았지만 만족했어요>라는 야릇한 제목이었다). 당시 「경향신문」은 이 영화를 촬영 중인 정진우 감독을 인터뷰한 취재기사에 “정진우 감독 조류학자 되려나”라는 제목까지 달았었다. 누가 봐도 현실의 장미를 비유하는 것이 빤한 새장 속의 새를 향해 그녀가 말한다. “넌 왜 그렇게 불쌍하게 있니. 날아, 노래를 해, 날아, 노래하라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꿎은 새를 향해 더 심도 깊은 논의를 펼쳐 보인다. “우리는 왜 수컷을 통해서 존재가치가 인정되니? 잘못된 거야! 난 싫어. 그런 모든 걸 다 감수하고 살 수만은 없어. 싫어, 싫어, 싫어~~~” 새장 이후 부산 집으로 내려가던 장미는 우연히 옆에 앉은 중년남자( 신성일 )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가정으로 인해 번뇌에 빠진 그를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한정된 범위 안에서의 선택인가를 생각해봐요”라며 위로한다. 파산하고 부산에 내려온 남자는 아내도 자식도 답이 되지 못한 현실 속에서 장미를 만나고서야 삶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앞으로 백 가지 슬픔이 있더라도 한 가지 행복을 위해 살겠어요”라는 장미의 비현실적이고 천사 같은 사랑도, 남편의 하숙집에서 여자 팬티를 발견하고 연락한 그의 아내( 선우용녀 )로 인해 ‘불륜’이 되어 산산조각 나고 만다. 그럼에도 “죽음을 모르고 뛰어드는 하루살이에게 박수라도 칠까”라며 두려움 없는 사랑을 꿈꾸는, 그렇게 자신을 (깡에 살고 깡에 죽는) ‘깡생깡사’로 표현하는 장미의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런 불륜이 집에도 알려지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중년남자를 향한 마음이 ‘항상 충족되지 못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찾으려 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관계는 끝나버린다. 예정된 사랑의 실패로 장미는 이전보다 더 방탕한 생활을 하고, 급기야 약물 과다복용으로 정신병원에도 간다. 당시 국내 유일의 정신병원이었던 ‘청량리뇌병원’에서는 장미를 두고 ‘마음의 병’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이후 겨우 진정이 됐을 즈음에는 혼자 동시 상영관을 찾아 영화만 보는데, 그런 그녀 앞에 세호( 한진희 )라는 미남자가 나타난다. 또한 비슷한 시기 옛 친구 진영( 김보미 )이 결혼 예찬론을 펼쳐서 장미의 마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킨다. 그렇게 장미는 안정된 생활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는 듯하다. 진영과 통화하며 “우리들의 방황도 어떤 식으로든 끝장이 나려나 봐”라는 장미의 얘기 뒤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닝 러브’가 흐른다. 얼마 뒤 세호의 집요한 애정공세로 두 사람은 건너편으로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보이는 한강변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세호의 몸개그는 장미의 얼굴에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아준다. 영양가 없는 남자들 하지만 세호 또한 ‘똑같은 놈’이다. 결혼까지 생각한 장미가 임신을 하게 되지만, 세호는 어머니가 장미의 과거를 알아서 결혼을 승낙하지 않고 있다는 핑계까지 대며 한사코 결혼을 거부한다. “아직도 엄마 젖을 빨고 싶겠죠? 조금씩 엄마한테서 벗어나요”라고 충고하지만 세호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후 세호의 진짜 비밀이 드러나면서, 남자 잘못 만나 고생하는 장미의 비극은 종지부를 찍는다. 여느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와 별다를 바 없는 설정 안에서도 < 가시를 삼킨 장미 >의 유지인 은 <별들의 고향>의 경아( 안인숙 )와 비교해도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정진우 감독이 같은 해 만든 < 심봤다 >의 유지인이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지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이듬해 출연한 이장호 감독의 < 바람불어 좋은 날 >과는 또한 얼마나 비슷한 모습인지도). 더불어 < 별들의 고향 > 이후 유행처럼 만들어지던 아류작들 대부분은 그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관음증을 영상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가시를 삼킨 장미>는 ‘버림받은 여자의 방황’이라는 나름의 한계 안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이희우 작가 특유의 대사들과 정진우 감독의 집요한 연출력이 결합해 유지인의 장미를 보다 입체적으로 재구성한다. 영화 속에서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리고 드디어 다른 여자 친구가 생긴 규식과 장미가 나누는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난 아직도 너를 이해 못 하겠어”라는 규식의 회한 가득한 말에 장미는 이렇게 답한다. “나 자신도 나를 이해 못 해.” “나 자신도 나를 이해 못 해.” 이건 유지인 이 예뻐서 그냥... 유지인 신성일 한진희 송승환 감독: 정진우 각본: 이희우 개봉극장: 스카라 관람인원: 75,757명
“봄이 왔다. 봄날과 함께 그도 왔다. 아직 소녀는 오지 않았다.” 봄은 이미 왔지만 겨울 끝자락의 신작로 오솔길.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외롭게 걷고 있는 남자. 그리고 아무도 없는 기차역 벤치에 앉아 고개를 떨구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 그 남자가 기다리는 소녀는 한 마리 나비처럼 훨훨 날아서 올 것이다. 쓸쓸한 통기타 선율에 흘러내리는 허밍. 잎이 떨어진 마른 가로수. 텅 빈 기차역. 벤치가 풍겨내는 서정은 기이하게 등장하는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농부의 모습마저 낭만으로 채색해 버리는 마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 나비소녀 >는 이제는 우리가 레테의 강으로 흘려보냈다고 생각하는 그 옛날의 낭만과 순수를 추억하게 한다. 그렇게 어린 연인들의 슬픈 러브스토리가 촉촉하게 감겨오는 것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78년에 개봉된 < 나비소녀 >는 송영수 감독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 <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 등과 스타일이 전혀 다른 영화라 그다지 중요한 필모로 언급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70년대 중반 인기를 끌었던 하이틴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아류작으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할 만 하다. 1977년 초 < 고교얄개 >의 흥행 성공은 ‘얄개’라는 아이콘을 탄생시키면서 고교물 혹은 하이틴 영화라고 불리게 되는 일종의 장르를 만들어 낸다. 이 영화들은 남고를 배경으로 철없는 주인공이 어떠한 계기로 인해 교훈을 얻고 성장한다는 스토리를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남자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히트하기 이전에 이미 임예진을 주인공으로 한 순정 하이틴물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진짜 진짜’ 시리즈로 불리는 세 편의 영화는 낭만적 혹은 비극적 사랑의 판타지를 전면화하면서 소녀의 순정, 만화적 감수성을 자극했다. 이후 2년 동안 하이틴 영화는 이러한 두 개의 소재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우후죽순 아류작들이 속출하게 된다. 결국 < 나비소녀 >는 하이틴 영화의 끝자락에 개봉되어 안타깝게도 아류작의 외피를 쓴 채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만다. 두 주인공이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하이틴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직접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 속에는 얄개 이승현 과 김정훈 이 카메오로 출연하고 있다! 송영수 감독은 < 나비소녀 >에서 기존의 얄개영화가 강조했던 모범과 건전한 이미지를 양창수( 강태기 )에게 할애한다. 그리고 임예진의 이미지는 이선희( 명현숙 )에게로 이입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존의 하이틴 영화와 같은 선에서 출발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나비소녀>는 하이틴 영화의 장점만을 취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명현숙 중심의 스토리라인을 통해 소녀 취향의 낭만적 사랑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강태기를 중심으로 한 친구 관계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사회현상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하이틴 영화가 강조했던 모범과 건전은, 실은 기성세대의 질서를 그대로 청소년들이 수용해줄 것을 강요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하이틴 영화가 당시 학생들의 고민을 제대로 장면화하지 못하는 한계로 작용했다. 하지만 송영수 감독은 두 주인공 창수와 선희를 고등학생에서 바로 대학생으로 만들면서 기존의 하이틴 영화가 잔소리처럼 강요했던 청소년에 대한 모범과 건전에 대한 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 주인공들이 성인이 되는 순간 그들의 시각과 발언권은 좀 더 확장되었고, 당대의 사회적 경향을 스토리에 반영할 수 있었던 셈이다. 창수의 친구 기훈( 이계인 )의 에피소드를 통해 경제개발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있던 시절, 노동하는 부모의 무관심으로 괴로워하는 학생의 모습을. 캐나다로 이민 가는 친구를 통해 선진기술 습득을 통한 나라발전이라는 사명감을. 창수의 낙도 봉사활동을 통한 농촌계몽 등 당시 사회의 모습과 가치관을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창수에게 주어졌던 농촌계몽이라는 대의가 선희와의 사랑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결국 그리워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간다. 당시 잘 살아보세 혹은 유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대의에 개인의 삶이라는 것이 분명히 희생되고 있었음을 드러내고 있는 장치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본다. 봄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마치 쓸쓸한 가을 같은 영화. 아니면 소녀 취향의 신파멜로드라마로 치부해 버려도 상관없을 것 같은 이 영화가 재미있어지는 지점은 또 있다. 바로 송영수 감독의 < 나비소녀 >에는 70년대 중요한 영화인물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이 영화의 원작은 < 별들의 고향 >의 이장호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유현목 감독과 영상시대 출신의 변인식 영화평론가는 배우로서 참여하고 있다. 시나리오의 송길한 . 귀에 착착 감기는 영화음악을 선사한 뚜아에모아 출신의 이필원 의 음악까지. 알고 보면 이 영화는 70년대 새로운 한국영화를 주창했던 이들의 그림자가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면면만 보고 영화를 걸작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다. 신인감독의 패기는 느껴지지만 분명 과잉과 거칢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외적인 요인을 다 떠나 이 영화는 낭만과 순수의 서정이 있어서 좋다. 그것이 이 영화의 전부이기도 하고 말이다. 강태기 명현숙 감독 송영수 각본 송길한 촬영 김영대 1977년 100분 칼라 판매원 비젼비디오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1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