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누에바 이슬라
- 감독
- 이레네 구띠에레스, 하비에르 라브라도르
- 제작년도
- 2014
한국영상자료원의 '영화인 구술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자료가 없어 실체를 알기 어렵던 사건과 인물,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인의 입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전달합니다. 박: 애니메이션영화제 했었을 때,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 <에반게리온>이나 < 공각기동대 >, 뭐뭐 < 에스카플로네 > 이런 거 했었거든요. 근데 잘 됐었어요. [1] 해당 구술채록문을 읽다 보면, “아까 <에반게리온> 얘기했었지만”이라는 말에서 이상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이 나오기 이전까지 구술에서 단 한 번도 < 에반게리온(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안노 히데야키, 1995)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아까 한 이야기’는 인터뷰 사이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말하는 것이다. 구술담당자로서 인터뷰에 참관하면서 구술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생기면 이렇게 쉬는 시간에 살짝 물어보곤 한다. 그리고 당시 구술자에게 <에반게리온>에 대해 물어본 것은, 내가 에바팬이라거나 그래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 이유는 이제부터 천천히 풀어갈 것이다. 닫힌 영화, 열린 영화제 사실 광주 ‘ 영화로 세상보기 ’ 운영자였던 박상백 구술(2024년 10월 17일 진행) 이전에 그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황: 일본영화 같은 경우는, 사실은 광주 기획을 좀 본따고 그랬는데. 광주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그때 돈을 막 많이 벌었더라고요. 한: 재패니메이션으로? 황: 그래서 액정도 바꾸고. 이게 그때 ‘소년 탐정’인가? <에반게리온> 시리즈. 저는 뭐 내용도 아직도 모르는데, ‘야, 저런 매니아층이 또 있구나.’ 그래서. 저희도 해보니까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꽤 오더라고요. [2] 대전 ‘ 씨네마떼끄 컬트 ’의 운영자였던 황규석 (2024년 6월 29일 인터뷰 진행)에게서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에반게리온> 상영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라는 사실보다도 ‘저런 매니아층이 있다’라는 깨달음에 있었다. 이러한 관객층을 지금의 관점에서 그냥 ‘오타쿠(オタク)’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이 등장했던 시기만 해도, 국내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뚜렷한 사회적 인식도 없었고, 특정 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한 열렬한 지지층의 활동이 눈에 띄지도 않았었다(존재는 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어도 외연적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구술자가 이들을 ‘저런 매니아층’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어느 정도 오늘날 재패니메이션 ‘오타쿠’에 대해 사후적으로 형성된 느낌도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사후적인 인식을 제외하더라도 평소 이상의 어떤 관객층들이 <에반게리온> 상영 당시 몰려왔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은 누구이고 왜 여기 왔을까? 정: 제 세대뿐만 아니라 바로 윗세대들도, 제 바로 다음 세대들도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어요. 너무나 보고 싶었던 영화. 일본영화. … 유학을 가지 않으면 그건 접할 수가 없는 거니까. 사실은 프랑스영화・독일영화에 대한 갈증보다 일본영화에 대한 갈증이 훨씬 컸어요. [3] 한: 혹시 그런 건 없었나요? 선호하는 영화 통계 같은 거. 조: 있었죠. 한: 아, 있었어요? 조: 네. 일본영화, 뭐 (사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아마 < 러브레터 >. 수입되기 전에. 그리고 피터 잭슨 < 데드 얼라이브 >, < 천상의 피조물 > 이런 게 공식적으로 소개 안 됐었거든요? … 되게 압도적으로 피터 잭슨 영화하고 일본영화하고 미국의 인디영화들, 이런 영화들이 사람이 많이 왔었어요. [4] 영화평론가 정성일 과 1990년대 문화학교 서울 의 운영자로 일했던 조영각 은 당시 시네마테크를 찾아오는 관객들은 근본적으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에 한국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프랑스영화, 독일영화, 미국의 인디영화들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지만, 이 영화들이 수입자유화와 함께 쏟아지는 미국영화들 속에서 틈새를 찾아 소규모의 예술영화전용관들을 채울 때조차도 들어오지 못했던, 원천적으로 수입 자체가 금지되어 있던 일본영화,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욕구는, 그것이 문화적・심리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 시네마테크의 운영자들의 근원적인 고민 역시 있었다.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한국사회로부터 ‘닫힌 영화’들 이기 때문에, 이들의 자료 확보와 상영 활동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러브레터>는 처음에 어느 쪽에서 구하셨어요? 곽: (목소리를 낮춰서) 어디서 구했을까요? 어디서 구했을까. [5] 후지이 이츠키 스트레이트 플러쉬! 조: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회원가입을 해야 돼요. 그게 저희 문턱이었고. 저희는 그렇게 운영해야지 여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사실 불법이잖아요. 비디오를, 영화를 트는 게 심의를 받은 것도 아니고 우리도 저작권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회원제라는 규정을 만든 거고. … 그런 규칙들이 있어서 내부 결속력은 되게 탄탄했던 반면에 다른 데서 보기에는 “좀 폐쇄적이다” 이런 얘기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6] ‘회원제로 운영되는 폐쇄적 시네마테크를 통해 극장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화들을 본다’라는 것이 어쩌면 ‘특권’처럼 읽힐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음지화된 공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작품을 보고 있다는 사실, 즉 ‘ 모두 함께 모여 허락되지 않은 것을 보고 있다 ’라는 비밀(?)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관객들의 소속감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이들의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 통신전용망을 이용해 취미와 관심이 같은 사람 또는 전문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토론을 벌이는 개인용 컴퓨터 통신동호회들이 많이 결성돼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동호회 회원들은 시간을 정해놓고 특정 주제에 대하여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외에도 전자게시판 기능을 이용, 알리고 싶은 소식을 회원 모두에게 공개하거나 공동 자료실을 만들어 쓰고 있다. - “PC통신 동호인 모임 활발”, 《한겨레》 1990. 8. 14. 8면 기사 “이 영화가 < 미져리 >보다 무섭다는 ‘ PC통신 ’을 보셨습니까?” (《조선일보》 1994. 6. 10. 18면 광고) 1990년대 초 PC통신 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되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 사실 이 새로운 공간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정보를 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김: ‘이제 그런 영화들이 인정받는 세상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어떤 각인? 취향을 드러내게 되는 거죠. … 팬과 마니아라는 거에 대한 나의 소속감 ? 그게 굉장히 컸던 거 같아요. [7] 이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영퀴’를 풀면서 소속감을 다져갔다. 이러한 소속감이 커질수록, 각자의 취향은 숨기거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그렇게 자신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며 시네마테크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쉬는 시간을 빌어 구술자 박상백에게 ‘영화로 세상보기에서 <에반게리온>을 상영했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왔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본 인터뷰 때 이야기한 것처럼 그 시기가 “닫힌 시대이기는 했지만 좀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져 있던 것들”이었고, 소문만 무성한 그 ‘화제작’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리고 덧붙여 ‘왜 <에반게리온>에 당시 관객들이 그토록 열광했다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을 이어 했고, 이에 대해 “<에반게리온>은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라 당시 시네필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확실히 <에반게리온>은 지금까지도 말도 많고 해석도 다양한, 참 어려운 애니메이션이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세기말 관객들의 관심이 상당 부분 이 ‘해석놀이’에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에반게리온>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시기 재패니메이션의 인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축으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구술자 송정환은 평택의 ‘ 시네마드리밍 ’에서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ポンポコ) >(다카하타 이사오, 1994)을 상영했을 때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러왔고, 특히나 평택시민아카데미로 공부를 하러 오던 청소년들이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재미있어했으며, 이에 같은 공부방에 있던 아이들끼리 상영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함께 감상을 했던 일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8] 누가 뭐래도 지브리 최고 남주는 ‘ 아시타카 ’다. (필자 개인 의견임) 뿐만 아니라,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과 호응을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 쪽으로 이끌고 갔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단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영화제가 아니면 일반 관객에게 상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극히 드물었다. 시네마테크는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전국적인 시네마테크 배급망(전국씨네마떼끄연합은 1997년 결성되었다)을 이용해,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의 작품을 모아 순회상영을 하거나 장편 사이에 단편 작품들을 끼워 넣어 함께 상영하는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박: 그때 해외에서 들어온 독립영화하고 국내 독립 애니메이션을 붙여 가지고 긴 독립영화, 해외 독립영화 장편에 앞서서 마치 인트로를 열듯이, 국내 단편 애니메이션을 상영하고 그다음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가 딱 이렇게 된다든가, 데이비드 린치의 < 이레이저 헤드 >를 상영하는 데 앞서서 나기용 감독의 단편이 상영된다거나, 이런 식으로 하는 시도들도 있었고. 그리고 독립영화협회하고도 좀 같이하는 활동들이 있었고. 문화학교 서울이라고 지금은 없어졌는데 거기하고 저희랑 같이 해서 상영회를 조그맣게 한다든가 이런 활동들이 더러 있었죠. [9] 손: 저기 문화학교 서울인가, 정말 하꼬방 같은 그런 극장에서. 기억나네. 완전히 다락방 같은 극장이었는데, 거기서 < 생존 > 틀고 이랬을 때 무렵이었거든요? 그러면서 교류를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저는 모션&픽쳐에 있으면서 독립영화, 시네마테크 이런 쪽 하는 사람들 하고 교류가 되기 시작한 거죠. … 자체 영화제가 이런 때 서울에 있는 작품들 가져올 때도 지역 뭐 같이 해서 틀기도 하고. 그러면서 교류가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시네마테크 활동하던 분들이 독립영화협회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린 거죠, 대구도 . 그래 가지고 대구에서도 원승환 이라는 친구하고 이렇게 해서 협회를 만들어보자라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 그렇게 이제 모션&픽처하고 독립영화 하는 친구들하고, 시네마테크 하는 사람들하고 이렇게 해서 ( 대구독립영화협회를 ) 만들게 되었죠. [10] <생존>(손영득, 1997)의 한 장면 물론 < 아키라 >(오토모 가츠히로, 1988)나 <공각기동대>(오시이 마모루, 1995)를 보러 왔던 관객들, <에반게리온>의 팬들,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던 관객들이 모두 같은 성격의 관객층이라고 뭉뚱그릴 수 없다. 심지어 <에반게리온> 상영회를 보러 왔던 관객들조차도 하나의 성격을 가진 집단으로 묶을 수 없다. 개중에는 정말 <에반게리온>을 좋아하는 오타쿠도, 그저 심도 깊은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시네필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워낙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니 나도 구경이나 한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네마테크를 찾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보고 싶지만 좀처럼 볼 수 없는 작품이 상영되는 곳 , 그런 작품을 찾는 이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며 모일 수 있는 곳, 배급 경로를 찾지 못한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들고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곳으로서 시네마테크가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모으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관객층들이 2000년대 초반, 흔히 ‘한국영화의 화양연화’라고 이야기되는 시기를 불러오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킹덤>의 팬덤 1990년대 가장 ‘힙한’ 공간이었던 이 민간 시네마테크들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결론을 대신하여 2024년 주제사에서 가장 핫했던 작품 < 킹덤(Riget)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4)과 < 킹덤 2(Riget II) >(라스 폰 트리에, 모턴 안프레드, 1997)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두 작품의 상영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시네마테크의 관객층이 갖는 응집력의 폭발 인 동시에 이들이 주류의 문화 안으로 흡수되는 과정 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된 이후로, 부천의 판타스틱영화제・서울여성영화제・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영화제(SICAFF) 그리고 2000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제 들은 영화팬들에게 또 다른 놀이터였다. 영화제는 ‘합법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제공했고 관객들은 그곳에서 마음껏 놀았다. 그리고 영화제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에게도 신문 기사나 PC통신 동호회 등등을 통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후기는 전해졌다. 수보다 중요한 것은 관객들의 열기. < 브레이킹 더 웨이브 >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무려 4시간 반짜리 영화 <킹덤>이 대표적인 경우. 지난달 30일 자정에 열린 첫 상영에는 4백여 석 극장에 2천여 명이 몰려 급히 다른 극장을 잡아 시차를 두고 두 곳에서 상영했으며 그러고도 수백 명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시네마 부천, 9만 관객 갈채”, 《동아일보》 1997. 9. 6. 26면 기사 영화제가 끝난 뒤에도 <킹덤>과 심야영화 의 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시 <킹덤>과 심야상영을 찾던 관객 안에는 좋은 작품을 찾아 헤매는 시네필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심야상영 문화를 즐기고 그 열기에 섞이고 싶은 젊은이들도 모여들었다. 최근 들어서는 심야시사회로 일반화되는 추세.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던 예술영화의 재상영 기회 로도 그 몫을 한다. 심야상영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우선 값이 싸기 때문이다. 일반영화 한 편 값으로 서너 편의 영화를 볼 수 있는 IMF형 문화상품. 단순한 영화관람에만 그치지 않고 젊음과 영화를 매개로 한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다는 것도 한 이유. 여대생 박진아 양(22)은 “영화관에 있으면 한배에 탄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전율과 긴장, 공포와 웃음으로 밤을 지샌 뒤 인적없는 새벽거리로 나설 때의 쾌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말한다. - “값싸고 젊음・마니아 상징에 만원사례, 심야상영 신세대문화로 뿌리”, 《경향신문》 1998. 5. 29. 22면 기사 상대적으로 수도권에 비해 문화적 전파가 더딜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도 뒤늦게 <킹덤>과 심야상영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자신의 지역에 위치한 시네마테크에서의 재상영을 찾았다. 박상백은 “전라도의 모든,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 다 왔던 것 같다”라고 당시의 분위기를 표현했는데, 이런 엄청난 관객 동원은 기존 시네마테크를 찾던 시네필들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박: 그때 부천영화에서 이미 상영을 했었고, 필름으로. 저도 그때 가서 봤고. 열기를 봤었고. 자연스럽게 볼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비디오테이프로 그거를 작업해서 돌았었어요 . 그래서 그거를 가져다가 이제 상영을 한 건데. … 심야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또 사람들은 새로운 거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런 걸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잘 이렇게 융합이 돼 가지고 아마 그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오시게 된 단초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잘되니까 다른 시네마테크에서도 했었던 걸로 알고 있고. [11] 원: 그중에서 관객들이 제일 많이 봤던 영화가 <킹덤>이라는 영화였어요. 그 영화가 97년도 부천영화제에서 매진이 되고, 그해 12월에 동숭씨네마텍에서 개봉을 했는데, 대구에는 이 영화가 내려올 일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죠. 그래서 2월쯤에 그 영화만 가지고 상영회를 했어요. 근데 어느날 배급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우리가 그 영화 권리를 가지고 있는 회사인데 무단으로 틀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 재산상 손해를 이렇게 봤으니까 만나자.” … “그러면 대구에서 <킹덤>이 개봉되는데 홍보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을 주셨는데, … <킹덤>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흥행했던 영화들하고 다르게 전국 로드쇼를 했던 영화고. 서울 상영이 대박이 터지면서 부산 상영을 했고, 부산에서도 대박이 터지면서 대구로 이제 상영이 옮아온 거고. 그게 12월이었는데 대구가 2월이니까 한 3개월 뒤에 오는 거잖아요. 그래서 서울에서 홍보가 이미 다 끝났고 지역에서 개봉할 때는 지역 언론사에 별도로 홍보를 해야 되는 필요가 생겼는데. … 또 <킹덤 2> 할 때는 아예 처음부터 ‘지역에 있는 시네클럽들, 시네마테크들하고 홍보를 같이 하자’ 라는 계획을 세웠어요. … 대구에서는 그걸 제가 했던 거고, 광주에는 뭐 광주극장에서 워낙 잘하시니까 그걸 했던 거고. 부산은 뭐 부영극장에서 잘하시니까 그랬던 거고. 대전은 이제 ‘컬트’가 그거를 하게 된 거고. [12] 대전 씨네마떼끄 컬트에서 개최된 ‘킹덤 상영회 포스터’ ※황규석 기증자료 박상백이나 원승환의 말처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킹덤>을 향한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한 시네마테크들도 앞다퉈 <킹덤> 상영회를 추진했고, 그 열기에 동참하고, 함께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오며 시네마테크에서도 연이어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은 이듬해 <킹덤 2>의 상영회도 추진하고자 했지만 <킹덤 2>의 정식 수입사인 KJ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 시네마테크의 불법적 상영에 제동을 거는 한편으로, 오히려 이들이 갖고 있는 지역에서의 홍보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여 전국 상영을 진행했다. 그렇게 <킹덤 2> 역시 흥행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제 시네마테크들의 입장에서는 합법적 상영 공간에 자신들의 역할을 내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일부 시네마테크 운영자들은 멀티플렉스에 자리를 빼앗긴 소극장이나 각 지역 대표 단관극장들과 손을 잡고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거나, 자신들의 특기를 살려 독립예술영화 배급 쪽으로 자리를 옮겨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은밀한, 그래서 더 자유롭고 끈끈했던 관객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지트가 되어준 문화공간들은 사라져 버렸지만, 각 지역의 민간 시네마테크들이 남긴 유산은 여전히 한국영화 산업 내에서 여러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지역의 영화문화와 독립・예술영화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KOFA컬렉션을 통해 공개된 2024년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트워크’ 에서 직접 확인해보도록 하자! *** [1]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7~218쪽. [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3권: 이진이・원승환・황규석・강민구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192쪽. [3]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2권: 정성일・이하영・손주연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37~38쪽. [4]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188~189쪽. [5] 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101쪽. [6] 한나리 채록연구, 위의 책, 147~148쪽. [7] 한나리 채록연구, 『2023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영화문화의 변화와 사설 시네마테크의 활동> 3권: 안정숙・곽용수・조영각・김영덕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3, 224~226쪽. [8] 공영민 채록연구, 『2024년 한국영화사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주제사 <1990년대 전후 지역 영화문화의 변화와 네크워크> 1권: 정희섭・박영정・박상백・송정환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4, 295쪽. [9] 이문주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18권: 박보경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69쪽. [10] 유은정・박지윤 채록연구, 《한국 애니메이션 구술채록연구 시리즈 생애사 21권: 손영득 편》, 한국영상자료원, 2021, 95~96쪽. [11] 공영민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216~217쪽. [12] 공영민・한나리 채록연구, 앞의 책, 한국영상자료원, 2024, 142~147쪽.
한국영화의 '퀴어함'이 장르나 소재, 영화사적 순간 등에 반영되는 양상을 분석합니다. 2024년 하반기 대중 영상문화는 퀴어 가시화 측면에서 큰 성과를 낸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2019)을 원작으로 장편영화 가 제작되어 10월 1일 극장개봉 됐으며 10월 21일에는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에 8부작 오리지널 드라마가 독점 공개되었다. 또한 웹툰 『정년이』(서이레, 나몬, 2019. 4.~2022. 5. 네이버웹툰 연재)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 정년이 >(정지인, 2024)가 tvN에서 12부작으로 제작되어 텔레비전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동시 제공되었다. 두 원작의 주인공 고영과 정년이 모두 동성애자로 설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변 주요 인물들도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서 벗어난 퀴어적 존재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두 원작은 단순히 선정적 소재로 성적 정체성을 전유하는 방식을 넘어, 퀴어 인물들의 고유한 관점으로 시대성, 젊은 세대의 성장과 다양한 관계성, 젠더 및 섹슈얼리티의 수행성, 하위문화 혹은 특정 공동체의 민족지적 기술 등과 같은 주제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비평적 평가를 받았다. 또한 둘 모두 베스트셀러로서 그 흥행성과 대중성을 입증한 바 있다. 흥미롭게도 두 사례 모두 원작이 발표된 이후 빠른 시일 내에 다른 매체와 장르로 파생·변환되었다. 물론 트랜스미디어 현상, 특히 이미 대중성을 증명한 원작이 다른 매체와 장르의 콘텐츠가 되는 것은 디지털 환경 속에 놓인 동시대 대중문화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 두 사례에서 보여준 트랜스미디어 과정은 그 자체로 한국의 퀴어적 정동을 드러내 줄뿐 아니라 각 매체 혹은 장르(의 제작자)들이 공개되는 플랫폼마다 현재 수용자를 어떻게 특징짓고 가정하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하면, 이제 매체특정성이 아닌 플랫폼 특정성을 연구할 필요가 있음을 이 사례들이 보여준다. 우선 각 사례의 트랜스미디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례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장편영화와 8부작 드라마로 함께 공개되었다. 둘은 원작은 같지만 각색·연출 방식뿐 아니라 마케팅도 판이했다. 고래와유기농과 쇼박스가 제작하고 이언희 감독이 기획·연출·각색한 극장용 장편영화는 김나들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이 영화는 소설의 4개 에피소드 중 주로 ‘재희’를 가져오고 흥수의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는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에서 가져와 영화화 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의 위치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원작 소설에서 4개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화자이자 사연·사건에 연루되는 인물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하는 고영은 흔들림 없는 유일한 주인공이다. 반면 영화에서 고영은 흥수( 노상현 )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름을 유지한 재희( 김고은 )와 주인공 자리를 동등하게 나눠 갖는다. 소설이 다분히 고영의 20대를 함께 하고 목격한 고영‘의’ 친구 재희에 대한 이야기라면, 영화는 소설가 흥수가 내레이션을 도맡고 있음에도 재희 ‘그리고’ 흥수의 20대와 그들의 나눈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즉 전자가 고영에 동일시된다면, 후자는 재희와 흥수 모두에 동일시된다. 극중 흥수와 재희 이언희 감독과 김나들 작가는 흥수의 주관적 시점을 벗어나 재희가 디지털 성폭력, 데이트 폭력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응하는 당참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한편, 개성 강한 대학생에서 회사원이 되며 규격화된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개인적 쓸쓸함을 묘사하며 그를 보다 복잡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재희는 이성애 여성 청년으로서 동성애자인 흥수보다 주류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취직과 결혼)을 잘 받아들이고 주류에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도 여전히 차별을 겪는다.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기 힘들어하고 벽장 속에 숨는 흥수에게 재희가 던지는 대사 “니가 너인게 어떻게 니 약점이 될 수 있어?”는 각기 다른 낙인과 차별을 겪는 이성애 여성과 동성애 남성의 우정을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이성애 여성과 게이 남성 간의 우정을 다루면서 게이 남성을 이성애 여성의 사랑을 상담하는 액세서리 혹은 드라마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만들지 않기 위한 코믹 릴리프 같은 클리셰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원작과 비교할 때 이러한 주인공의 위치 변화는 극장의 주요 타겟인 2030 젊은 여성들의 공감을 더 이끌어 내고 확장성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2종 창작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케팅은 단순 공감을 넘어서 그러한 전략을 더 공격적으로 밀어 붙인다. 홍보용 트레일러와 포스터는 침대 위에 함께 누워있는 재희와 흥수를 보여주고 흥수의 게이 정체성이나 퀴어 등의 단어는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원작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는 이들로 하여금 해당 영화를 재희와 흥수의 이성애 로맨틱 코미디로 착각하게 만든다. 포스터와 트레일러 카피에 “사랑은 노터치 우정은 포에버. 순도 100% 찐사친 리얼 라이프”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둘의 로맨스를 가장하기에 이러한 착각은 상당히 고의적이다. 개봉 초반 관객몰이가 매우 중요한 극장 플랫폼이기에 퀴어 소재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이성애 로맨스에 관심이 있는 관객들까지도 모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케팅의 이러한 전략은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군대 내에서 사용했던 성소수자 정책(1994-2011), “묻지도, 말하지도 말라(Don't ask, don't tell)”와 유사하다. 이 정책은 군대 내 성소수자가 혐오공격의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일종의 타협책으로 성소수자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의 심기를 달래고 성소수자가 그 정체성을 드러낼 경우 복무에서 배제함으로써 되레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해당 마케팅은 어쩌면 극장용 상업영화의 개방성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퀴어는 극장 안까지는 허용되지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정체성을 숨겨야 한다. 이것은 영화 본편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검열 중인 극장 플랫폼의 성격을 드러낸다. 여기서 상업영화 극장 플랫폼에 재희의 말을 되돌려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보호 필름 떼고 하는 거야 사랑은, 이 겁쟁아” (좌) 장편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중 / (우)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티빙의 8부작 드라마는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영화와 달리 박상영 작가가 직접 각본을 맡고 소설에 담긴 4편(‘재희’ ‘우럭 한점 우주의 맛’ ‘대도시의 사랑법’ ‘늦은 우기의 바캉스’) 모두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아카데미 40주년 기념으로 기획해 동학교 출신인 허진호 (< 봄날은 간다 >), 홍지영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손태겸 (< 아기와 나 >), 김세인 (<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 감독이 각각 2부씩 연출을 맡았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고영의 시점을 따라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기 때문에 서울에 사는 젊은 남성 동성애자의 하위문화나 섹스씬도 영화보다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에이즈 문제도 다룬다. 드라마 시리즈가 온라인 스트리밍 독점으로 공개되어 티빙 구독자만을 타겟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할 전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폐쇄성이 동성애 정체성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삶을 그려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티빙은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소식에 동성애 혐오 세력의 민원성 공격을 받았다. 드라마 시리즈는 그러한 공격과 상관없이 성공적으로 방영되었지만 아무래도 홍보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 텔레비전과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동시에 공개되었던 <정년이>는 1950년대 여성국극을 소재로 여성들의 경쟁과 성장, 우정과 사랑을 그려내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뛰어난 영상미로 재연해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시청률 역시 약 15%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웹툰 <정년이>의 중요한 인물이 드라마에서 삭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사라진 인물들이 퀴어성을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준 이들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주인공 정년이( 김태리 )에게 남성성을 체화하는 방식을 가르쳐주고 “세상은 거대한 여성국극 무대 같아”라는 대사를 통해 퀴어한 젠더 수행성의 주제를 날카롭게 전달했던 남장여자 캐릭터 고사장, 그리고 주인공 정년이의 1호 팬이며 극작가이자 정년이와 동성애 관계에 있는 캐릭터 부용이가 사라진 것이다. 부용이와의 관계성 일부는 국극단원인 주란(우다비)과 영서( 신예은 )에게로 나눠진 것처럼 보인다. 즉 웹툰에서 드라마로 트랜스미디어되는 과정에서 가장 퀴어한 인물들은 삭제 또는 용해를 겪은 것이다. 그 과정에는 투자자나 회사 관계자들의 압력, 혹은 창작자들의 자기 검열 같은 각각의 사정들이 존재할 것이다. 드라마 <정년이> 중 위의 사례들에서 퀴어 캐릭터와 그들의 문화가 얼마나 가시화되는지에 따라 비교 평가할 수는 없다. 작품의 비평적 평가는 복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퀴어는 분명 트랜스미디어 과정에서 광산의 카나리아 혹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디까지 있는지 실험적으로 날려 보내는 카나리아. 어느 장르와 플랫폼이 퀴어를 살려둘지 아니면 삭제할지 혹은 그 고유한 존재들을 축소하거나 용해시키는지. 소설, 웹툰, 극장, 텔레비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홍보물들 사이에서, 퀴어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중첩된 채로 존재한다. 조혜영(영화평론가) l 영화적 순간들을 공유하고자 글을 쓴다. 영상문화 기획연구 단체 ‘프로젝트38’ 연구원, 『원본 없는 판타지』(2020), Mediating Gender in Post-Authoritarian South Korea (2024) 등 공동 집필.
1990년대 후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주제와 그것을 다루는 태도가 다채로워진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투쟁에의 집중에서 ‘일본군 위안부’(<낮은 목소리> 3부작), 비전향 장기수와 탈식민적 현대사(< 송환 >, < 할매꽃 >), 가족에 대한 페미니즘적 성찰(<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 >, < 고추 말리기 >, <엄마...>, < 쇼킹 패밀리 >), 성소수자 정체성과 수행(< Out: 이반검열 두번째 이야기 >, <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 >, < 3xFTM >), 여성 노동자의 역사와 투쟁(< 얼굴들 >, < 밥꽃양 >, < 평행선 >, < 우리들은 정의파다 >, < 외박 >) 등 주제의 확장과 교차가 이루어졌다. 더불어 감독 스스로가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성찰적인 태도 자체를 주제로 삼거나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리는 트랜스-장르적 연출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정치적 참여의 장이 다변화된 동시에 독립 다큐멘터리 상영이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의 공동체 상영에서 무작위적인 관객이 있는 극장으로 확장된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장애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 팬지와 담쟁이 >(계운경, 2000)도 그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이 시기에 장애여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들이 몇 편 더 제작되었는데 〈 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 〉(김진열, 1999), < 거북이 시스터즈 >(이영, 2002), < 진옥 언니, 학교 가다 >(김진열, 2007)가 바로 그 작품들이다. 장애여성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세 영화는 초점이 다르다. < 거북이 시스터즈 >는 장애인권을 위해 헌신해온 여성 장애인 활동가 세 명이 한 집에서 가족 대안 공동체로 살아가는 일상을 다룬다면, 연작인 <여성장애인 김진옥씨의 결혼이야기>와 <진옥 언니, 학교 가다>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김진옥이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 키우는 과정을 쫓는다. <팬지와 담쟁이>는 부산에 사는 수정과 윤정 자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이상과 현실을 관통한다. 30대 중후반의 저신장 장애인인 수정과 윤정은 부산에서 부모형제와 함께 살고 있다. 영화는 언니인 수정이 친구들에게 소개받은 성주라는 남자와 ‘썸’을 타고 연애와 결혼을 꿈꾸는 로맨스를 서사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나 수정의 연애는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 겨울에 소개 받은 후 설렘을 느끼며 봄을 지나지만 매미가 거세게 울어대던 늦여름의 어느 날 그 모든 감정과 기대들은 씁쓸하게 끝나고 만다. <팬지와 담쟁이>는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의 세월을 지나며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아이러니하게 대비되는 상실의 쓸쓸한 정취를 그린 계절영화이고, 호프집, 미장원, 사진관, 산부인과 병원, 지하철, 공원, 바닷가, 오래된 아파트 등 1990년대 말 부산 구석구석의 풍경을 보여주는 로컬 영화이기도 하다. 로맨스, 계절, 부산이라는 세 키워드를 품은 영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7개의 시퀀스로 구성된다. 각 시퀀스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붙어있다. ‘웨딩드레스 제작 중 1 - 야학 선생님 결혼식 - 웨딩드레스 제작 중 2- 엄마 기념사진 – 노래자랑 – 여름바다 - 웨딩드레스 제작 중 3.’ 오프닝씬은 호프집에서 술 게임을 하며 성주가 수정의 흑기사를 자처하고 노래방에서 함께 <19살이에요>를 부르며 ‘썸’을 타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다음 시퀀스의 제목은 놀랍게도 ‘웨딩드레스 제작 중 1’이다.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되어 상호 감정을 나누는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결혼을 가정한 채 성관계와 임신 및 출산을 고민하는 단계로 돌입한다. 실제 성주의 관점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성주가 어떤 마음과 의향을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썸-연애-결혼’이 압축된 시간성은 당시 부산에 거주하는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담론과 연관되어 있다. 수정은 성주가 노래방 ‘블루스 타임’에 키가 작은 자신을 안아 들어 올려 춤을 췄을 때 활동지원사들한테 안겼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고 수줍게 털어놓는다. 그러나 연애경험이 없는 수정은 성주의 마음을 확신하기 어렵다. 동생 윤정과 연애상담을 해주는 친한 친구인 수견 언니는 수정에게 “내숭 떨지 말고” 성주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라며 다그친다. 그리고 그들은 좋아하는 마음의 확인에서 결혼의 가능성으로 곧바로 넘어간다. 설렘과 연애의 낭만은 생략되다시피 재빨리 처리되고 결혼 이후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서 안전한 성관계 그리고 임신과 출산 대한 현실적인 고민까지 급속도로 일이 진척된다. 첫 만남의 설렘은 곧 연애가 되고, 연애는 곧 결혼이 된다. 이러한 성급한 ‘웨딩드레스 제작’은 분명하게 발화되지 않지만 암묵적인 몇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한다. 첫째, 수정은 성관계와 재생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 기회를 삼아 성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둘째, 수정은 이성애 결혼을 원한다. 셋째,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와 장애를 고려할 때 수정에게 연애의 기회는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그래서 조금의 호감도 곧 결혼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 넷째, 수정의 성격과 장애를 고려할 때 의지할 가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첫 번째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정은 모두 당연한 현실도 타당한 진실도 아니다. 오히려 수정이 정말로 결혼을 (사실은 연애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왜 결혼을 원하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다른 관계와 섹슈얼리티를 탐색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의 기회’를 잡는다는 건 오히려 다른 기회,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독립된 가구를 꾸릴 가능성을 제거하는 실천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수정이 성주와의 연애에 소극적인 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수정은 연애가 처음이고 주위에서 부추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과 성주의 마음 모두에 확신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수정은 성주의 진심을 불안해한다. 그리고 기저에 잠재해있던 수정의 불안은 영화의 결말에서 현실화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갑자기 호감 정도의 감정을 급작스럽게 결혼으로 이끌고 갈까? 여기서 <팬지와 담쟁이>는 다큐멘터리가 제작자에 의해 ‘창의적으로 구성되고 설정된 것’임을 인식하게 한다. 여러 시퀀스의 제목에 사용된 “웨딩드레스 제작 중”이라는 언어적 프레임은 장애여성이 연애와 결혼을 고려하는 데 있어 어떠한 (차별적이고 자원이 한정된)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연출된 호들갑이자 인위적 과장이다. 그래서 “제작 중”이라는 현재형 표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들은 정말로 성주와의 결혼만을 염두에 두고 이 모든 일상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 영화는 규범적인 이성애중심성이라는 비판의 위험을 기어이 감수하면서도 이 프레임에 두 주인공을 넣는다. 이 프레임 속에서 수정과 윤정은 함께 성인영화 비디오를 보며 키스, 애무, 체위잡기 등과 같은 성적 행위에 대해 기혼인 수견 언니에게 교육을 받고, 각자의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안전한 성행위는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부끄러움 속에서 낄낄대며 대화를 나눈다. 이것이 사실상 주거의 독립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은 집에 함께 사는 친오빠 때문에 수견 언니 집에서 비디오를 보게 된 사연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자매는 수견 언니의 조언을 들어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산부인과 의사는 장애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얕은 지식과 희미한 편견을 드러낼 뿐이다. 욕망은 구성되기도 전에 제한된다. 나이, 장애, 성별의 교차 속에서 정보를 비롯한 자원의 부족과 차별적 편견 때문에 그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제동에 걸리고 한정된다. 그래서 자신들의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탐색할 여유가 만들어지지 않고 규범 속에서 상상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욕망이 허구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수정은 성주의 관심에 설레어 하고 윤정은 그런 수정을 부러워한다. 두 자매는 야학 교사의 결혼식에 참석해 자신들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그 욕망을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기보다는 일상의 환경을 구성하는 조건,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여러 뉘앙스와 제스처의 수행으로 구성됨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가시성(visibility)이다. 소수자의 영화적 가시성은 단순히 출연 그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두 자매가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고 드라이로 앞머리를 산처럼 올리는 행동들의 클로즈업, 성인 비디오를 보면서 부끄러워하며 손으로 눈을 가리는 수정과 침착하게 표정관리를 하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는 윤정,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연애 결혼한 비장애인인 어머니를 일종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미장원 원장의 이야기를 듣는 윤정의 표정, 해수욕장에서 선크림을 서로 발라주고 모래장난을 하는 수영복을 입은 자매의 모습을 사운드 없이 응시하는 카메라, 성주가 수정에게 ‘썸’의 끝을 알릴 때 당황한 수정이 손톱을 튕기는 제스처 등이 모두 ‘웨딩드레스’가 만들어지고 있는 시간, 즉 욕망이 실천되고 구성되는 순간들이다. 그 순간들과 제스처에는 하나로 의미를 결정할 수 없는 수많은 현실의 일상과 감정들이 섞여 있다. 또한 해수욕장에, 노래자랑 예선에, 보도에, 지하철에 장애인이 존재하고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도 자연스럽게 가시화한다. 일상을 쫓는 카메라는 두 자매와 함께 이동하며 관념적 상상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구체성을 전달한다. 걷는 것이 힘든 윤정은 자신의 체격과 신장에 맞는 탈 것으로 아동용 플라스틱 장난감 차를 사용한다. 윤정이 선택한 이동수단은 목발이나 휠체어가 아닌 다른 탈 것의 가능성을 가시화한다. 또한 이 이동수단은 장애인이 자신의 경험적 지식을 활용해 다양한 신체에 딱 맞게 개조한 크립 테크(criptech, 그리고 하이데거가 말한 도구가 아닌 예술로서의 테크네)의 훌륭한 사례가 된다. 그녀가 노래자랑 예선 무대 위에서 장난감 차 위에 앉아 이정현의 <와>를 춤과 함께 부를 때, 예선에서 떨어지고 벚꽃이 흩날리는 보도를 지나갈 때 노랗고 빨간 원색의 장난감은 시선을 잡아 끈다. 지하철에서 저신장인 수정과 윤정의 아이레벨에 맞춰 카메라가 낮아지자 자매를 응시하고 있는 어린 아이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은 복잡한 레이어를 만든다. 성인의 신장은 매우 다양하고 그렇기 때문에 성인의 아이레벨 역시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위치가 낮은 아이레벨을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만 동일시할 수 없다. 동시에 실제 어린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때때로 저신장 장애인을 아이처럼 대해온 사회적 고정관념의 시선을 환기하며 성찰을 유도한다. 그리고 타인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윤정은 자신의 체격에 잘 맞는 장난감 차를 자신의 탈 것으로 선택하며, 이러한 선택은 윤정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성격을 잘 드러낸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다른 장면에서는 높은 지하철 계단에서 장애인용 승강기로 내려가는 과정을 길게 보여준다. 자매는 능숙하게 승강기를 이용하지만 자매와 함께 탄 승강기 위의 카메라 시점은 그 승강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동안 영화 < 접속 >(1997)의 OST로 유명한 <러버스 콘체르토>의 단조로운 경음악이 경고음으로 계속 울려 퍼지자 행인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지하철 계단의 장애인용 승강기의 아슬아슬함, 무심하고 단조로운 <러버스 콘체르토> 경음악, 행인들의 무례한 시선은 이동을 환기하는 정동이자 ‘웨딩드레스 제작’의 조건이다. 그리고 자매는 반복되어 무뎌진 그 일상을 무심하게 받아들인다. 이 영화가 강조하는 또 다른 가시화는 장애의 서로 다른 유형과 정도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위계이다. 모든 연애관계에는 다층적이고 미묘한 권력이 작동한다. 수정과 성주의 관계에서 가장 지배적인 권력은 장애의 정도가 된다. 성주는 겉보기에는 장애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경증 장애인이다. 신체적으로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의 권력이 된다. 늦여름 한낮의 공원에서 성주는 내내 담배를 피우고 주저하며 어렵사리 말을 꺼낸다. “어머니가 자신이 장남에 외동이어서 손자를 보길 원한다, 자신과 비슷한 장애가 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나이가 있는 수정의 결혼까지 걱정해주는 조심스러운 그의 말들은 날카롭게 상처를 낸다. 듣는 내내 말이 없는 수정은 찡그린 얼굴에 어색하고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애꿎은 손톱을 튕긴다. 성주의 “여름이 다갔나”라는 말과 함께 그렇게 그들의 연애도 끝을 맺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별 시퀀스의 제목은 여전히 현재형인 ‘웨딩드레스 제작 중 3’이다. 이번 연애는 실패했지만 자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꿈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인공적으로 연출된 에필로그 시퀀스는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바다 한가운데 쪽배를 탄 수정과 윤정을 보여준다. 둘은 영화 내내 염원하던 하얀 면사포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빨간 입술의 화장을 하고 있다. 갈매기 울음소리가 화면을 가득 채운 가운데 수정이 부르는 <나는 19살이에요>가 울려 퍼진다. 소프트 포커스 효과로 꿈처럼 연출된 환상성과 대비되게 둘의 표정은 지나치게 덤덤하다. 이 허구적 스펙터클은 극적 사건이나 분명한 감정의 표출과 거리가 멀다. 공들여 만든 이 장면은 결혼의 은유로 사용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문자그대로의 소원성취인가, 동네 미장원 원장의 말처럼 자매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면 된다고 말하는 것인가, 모두 헛된 꿈이었다는 냉소적 자각인가. 그것도 아니면 수정이나 윤정 같은 저신장 장애 여성이 연애와 결혼을 하기 위한 환경과 조건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실재의 대면인가. 이 장면은 그 모든 욕망과 감정이 중첩된 이미지이다. 이 장면은 그들의 과거의 상실과 실패, 현재의 바람과 희망, 욕망을 탐색하고 실현되기 위한 미래의 조건을 질문한다. 이 허구의 연출된 장면은 그래서 실재적 환상이다. 이 시퀀스의 환상성과 쓸쓸한 정취, 원하던 웨딩드레스를 입었지만 웃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무심한 표정은 목적이 뚜렷한 실패나 성공의 서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웨딩드레스’는 그래서 단순히 ‘성공으로서의 결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 그 선택의 자유, 그 길의 이동성을 뜻한다. 그래서 여전히 ‘제작 중’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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