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유친
- 감독
- 이무영
- 제작년도
- 1998
* 본 글에는 < 연애소설 >과 < 텔 미 썸딩 >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한국 장르영화에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성소수자들의 가시화가 갑작스럽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한정된 시공간에 허용된 젊은 여성들의 낭만적 동성애는 대중적 정서를 크게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가미해줄 수 있는 장르적 도구로 종종 사용되었다. <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와 <텔 미 썸딩>(장윤현, 1999)이 그 시작이었다. 두 영화는 2000년대 장르영화에 등장한 레즈비언 캐릭터들의 원형을 잘 보여준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학교라는 억압적 시스템과 어린 여성들의 사랑, 우정, 질투, 불안, 분노 등의 복잡한 감정을 공포영화의 장르적 약호로 그려내 컬트팬을 양산했다. 이 영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그들 관계의 주 무대가 되는 학교 옥상이라는 열려 있지만 비밀스러운 공간처럼, 불안정하고 비규범적인 저항 가능성의 지점이 된다. 그러나 십대와 학교라는 특정 시공간에 한정된 여성 동성애의 초상이 ‘여고괴담 시리즈’와 이후 유사 영화들에서 반복되면서 역설적으로 여성 동성애에 대한 상상력이 제한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반복된 재현은 여성 동성애가 강력한 규범 체제에 대한 십대 사춘기의 반항이자 안정된 이성애 체제로 편입되기 위한 일시적 통과의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여성 동성애는 학교 밖에서는 불가능하거나 허용되지 못한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시은(이영진)과 동성애 관계에 있던 효신(박예진)의 자살 후 아이들은 전염병처럼 귀신에 들린다. 여기서 동성애 욕망은 쉽게 감염되고 임시적이고 제의적인 것이며 그래서 정체성으로는 기입할 수 없다. 엔딩에 등장하는 학교 지붕을 덮칠 정도로 거대해진 효신의 유령은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을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아니면 효신은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고 지속하기 위해선 유령이라는 형상으로라도 학교에 남아야 하는 것일까? 학교를 떠나지 못하는 레즈비언 유령은 이후 ‘여고괴담 시리즈’에서 반복된다. 동성애 관계가 2세대에 걸쳐 등장하는 < 여고괴담 4-목소리 >(최익환, 2005)처럼 말이다.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동성애 욕망을 재자각하기 위해서는 교사로서 학교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들은 레즈비언이 되기 위해 그 공간을 떠나지 못한다. 한편 스릴러 장르인 <텔 미 썸딩>은 캐릭터와 서사에 여성 동성애가 기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비밀로 꽁꽁 숨겨놓다가 연쇄살인의 전모가 마침내 밝혀질 때 핵심적 실마리로서 폭로된다. 사실 남자 주인공인 조형사(한석규) 입장에서나 폭로이지 채수연(심은하)과 그녀를 사랑해 남자연쇄살인을 도운 오승민(염정아)은 영화 내내 진실을 말한다. 여기서 관객들은 그 관계를 진작 상상할 수 있었던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뉘게 된다. 영화는 분명 타겟 관객을 조형사에 동일시되어 동성애 관계를 알아채지 못한 이들로 상정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성애가 반전으로 작동할 수 없다. 냉철한 추리력으로 정평이 난 조형사도 여성 동성애는 상상력 밖에 있다. 채수연은 승민과의 동성애 관계를 조형사에게 여러 번 흘린다. 심지어 수연은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던 자신의 집에서 승민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자세하게 진술한다. 그 아이가 승민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서 말이다. 여기서 플래시백이 삽입되고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 것처럼 묘사되면서 의도적 오인을 유도한다. 그래서 그 주관적 플래시백이 수연의 것인지, 아니면 수연의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 조형사(와 동일시된 관객)의 것인지 모호하다. 여자 둘과 남자 한명의 관계 속에서 여성 동성애 관계를 숨겨놓았다가 뒤늦게 폭로하는, 그래서 동성애는 과거의 비밀이 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서사구도는 2000년대 영화들에서 종종 발견된다. <연애소설>(이한, 2002),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이무영, 2002), < 주홍글씨 >(변혁, 2004), < 끝과 시작 >(민규동, 2009)이 그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 역시 결국은 이성애 관계가 서사를 추동시키는 큰 틀이 되면서 ‘여고괴담 시리즈’처럼 여성 동성애를 한 때의 ‘순수한 감정’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대상화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들에서 여성 동성애는 과거의 것이고 변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의 결정체로서 대상화 되지만 그래서 궁극의 진정성을 갖게 되고 언제든 내부로부터 서사를 불안정하게 만들 잠재성을 갖는다. 위의 영화들 중 이십대 초반의 여성 두 명과 남성 한 명이 주인공인 <연애소설>은 오랜 투병생활로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십대들을 보는 것 같은 풋풋함을 그리고 여성 동성애라는 비밀의 폭로가 영화 전체의 서사구조를 뒤흔드는 측면에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와 <텔 미 썸딩> 모두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프닝부터 프레임 속 프레임으로 창문 밖 풍경을 비춰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사진을 주요한 소재이자 주제적 메타포로 사용한다. 사진은 순수했던 순간을 결정화하는 동시에 그 프레임 바깥에 있는 맥락이나 다른 진실을 지워버린다. 서사구조에 있어서도 프레이밍은 중요한 장치가 된다. <연애소설>은 영화 전체가 지환(차태현)의 지속적인 플래시백, 즉 지환의 주관적 프레이밍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서 20대 후반인 지환은 택시기사를 하며 등록금을 벌어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순수하게 좋아했던 사진도 그만두었다. 그러던 중 직접 찍은 흑백사진에 하얀색 물감으로 쓰인 편지 한 장을 받는다. 주소도 이름도 없지만 짐작 가는 이가 있다. 사진은 과거를 상기시키고 이때부터 지환의 플래시백이 시작되며 영화는 현재와 5년 전을 오고간다. 5년 전 지환은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수인(손예진)을 보고 한 눈에 반해 뒤따라가 고백하지만 곧 거절당한다. 이후 수인과 늘 함께 다니는 경희(이은주) 그리고 지환은 절친한 친구가 된다. 지환은 처음에는 청순하고 조용한 스타일의 수인에게 반하지만 이내 활발하고 명랑한 경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경희는 처음부터 지환을 좋아했기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일만 남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내내 몸이 아파 늘 조심하며 살았던 수인과 경희가 일생의 일탈처럼 지환과 여행을 갔다 온 이후 수인과 경희는 연락이 끊기고 지환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채로 홀로 남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요약된 서사는 지환의 관점에서 기술된 것이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비밀과 폭로가 등장한다. 하나는 수인의 첫 사랑이 경희로 첫 만남부터 죽을 때까지 경희를 사랑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인과 경희가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불러왔다는 것이다. 즉 수인의 본명은 경희이고, 경희의 본명은 수인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지환은 현재 시점에서 수인과 경희를 수소문할 때 경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게 된다. 그러나 곧 (경희가 본명인) 수인(손예진)이 죽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상상 가능한 일부 관객들은 여성 동성애의 비밀을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게 하면서도 대부분의 관객들에게는 비밀이 폭로되지 않도록 의도적인 오인 장치들을 흩뿌린다. 그것은 스테레오타입을 뒤집는 것이다. 긴 생머리, 프릴 달린 흰색 블라우스와 치마, 기운 없는 목소리, 얌전하고 의존적인 태도를 가진 수인은 겉보기에는 이성애 남성의 관습적인 이상형을 구현해 놓은 모습을 갖고 있다. 반면 짧은 머리에 늘 바지를 입고 히피 스타일의 장신구를 착용하며 직설적이고 크게 웃는 경희는 상대적으로 더 병약한 수인을 챙긴다. 경희는 전형적인 톰보이다.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에 따르면 수인은 이성애자이고 경희는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정작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수인이고 경희는 지환을 사랑하는 이성애자(혹은 양성애자)이다. 영화는 수인과 경희가 이름을 바꿔 부르고 지환의 사랑이 수인에서 경희로 바뀌는 것처럼 관계와 욕망을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지환의 주관적인 플래시백으로 구성되지만 유일하게 지환의 것이 아닌 플래시백 장면이 있다. 수인과 지환이 단둘이서 각자의 첫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수인은 경희와의 첫 만남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 아이가 경희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 플래시백에서 경희는, 분홍색 환자복을 입고 머리가 긴 수인과 비교해 파란색 환자복을 입고 민머리를 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남자아이로 오인되게 만든 이 장면에서 <텔 미 썸딩>의 조형사처럼 지환에게 동일시된 관객은 수인의 플래시백을 관람하게 된다. 이 플래시백 역시 수인의 주관적 플래시백인지 지환이 수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각화한 것인지는 모호하다. 하지만 여기서 지환이 그 아이를 남자아이로 오인하고 있으며 수인의 첫 사랑이 경희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은 분명하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로맨스 이야기는 대부분 둘 다 사랑하는 여자를 교환하는 것으로 남성 동성관계를 공고히 한다. 그러나 지환은 교환되지 않는다. 수인은 지환을 욕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인과 지환 모두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경희가 교환되는 것도 아니다. 경희는 초반에는 수인과 지환이 서로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지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랑은 오인의 과정에 놓이고 결국은 실패로 끝난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발화하는 유일한 관계는 수인과 경희다. 수인은 경희에게 죽기 전 분명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남기고 경희도 수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죽음으로 결부되고 서로의 이름을 바꿔가며 생존을 격려했던 둘의 사랑은 이성애적 사랑을 초과한다. 심지어 수인은 지환에게 자신의 사랑인 경희를 부탁하는 러브레터를 보낸다. 그 편지엔 경희가 좋아하는 것들이 적혀 있다. 아마도 잡지에 나와 있는 성격운세가 말했던 것처럼 수인은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시한부가 아니라면 경희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수인과 경희를 시한부로 만들면서 여성 동성애 관계의 가능성을 한정시키는 한편, 시한부로 인해 역설적으로 그 욕망을 단단하고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게 한다. 오히려 가장 실패하고 가능성 없고 끝까지 무지에 빠져있는 것은 지환의 이성애적 욕망이다. 이 영화에서 여성 동성애는 가장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이성애가 도달하지 못한 혹은 개발해야 할 (영화학자 레이 초우가 개념화한) ‘원시적 열정’의 장소가 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가시화될 수 있는 조건에 놓이게 된다.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겨루거나 혹은 우정 때문에 양보하는 삼각 구도로 보였던 영화는 수인의 사랑의 대상이 경희라는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서사를 재구성하게 만든다. 언제 서사를 재구성하게 되느냐는 관객마다 다를 수 있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면서 지환의 주관적인 플래시백으로 점철되어 있는 이 영화를 관객들 역시 다시 쓰게 된다. 지환은 그 새로운 정보를 끝까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지환에게서 벗어나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레즈비언인 수인의 시점을 갖게 된다. 관객들은 수인의 레즈비언 편집술에 동화된다. 이 영화에는 시계바늘을 돌리는 행위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지환은 첫 눈에 반한 수인에게 고백 후 거절당하고 관계를 우정으로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퍼포먼스를 수행한다. 경희는 수인이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후회와 슬픔에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을 되돌린다. 수인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시계바늘을 되돌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수인이 분명하게 자기 욕망을 발화하고 응답을 들은 인물로 후회 없는 ‘순수한 사랑의 결정체’ 그 자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성애 지배적인 사회에서 늘 자기만의 편집술을 육화할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기 주변의 서사와 이미지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는 수인은 이 삼각관계에서 가장 많이 아는 자로(지환과 경희의 욕망, 그리고 자신의 욕망) 주어진 것들을 재편집해 사용하는 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수인은 지환의 플래시백으로 구성된 이 영화에 오인의 가능성을 품은 채로 자신만의 플래시백을 트로이 목마처럼 침투시킨다. 어떤 면에선 자기만의 (레즈비언) 편집술을 일상화하고 육화한 수인은 시계 그 자체가 되어 있기에 물리적으로 시계바늘을 돌릴 필요가 없다. <연애소설>은 결말에서 지환과 경희의 재회를 서사화하면서 뒤늦게 이성애 프레임으로의 봉합을 시도하지만, 이미 레즈비언 편집술의 역량을 경험하게 한 작은 플래시백의 침투는 의심과 실패 속에서 서사의 솔기가 끊임없이 뜯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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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B무비’라 불릴 만한 한국영화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1990년대 후반부터일 것이다. 이전에도 소위 ‘기괴한 영화’가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즈음에 감독의 자의식 아래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B무비들이 하나둘씩 선보였다. 대표적인 예가 박찬욱 과 이무영 이다. 각본과 기획을 함께 진행하기도 하던 이들은 각자 메가폰을 잡아 이전에 보지 못한 한국영화를 만들어냈다. 박찬욱이 < 3인조 >(1997)를, 이무영은 < 휴머니스트 >(2001)를 내놓았고, 그 시기에 이훈 의 < 마스카라 >(1995), 김용태 의 < 미지왕 >(1996), 박헌수 의 < 진짜 사나이 >(1996) 같은 영화가 나왔다. 물론 이들 영화는 B무비의 숙명처럼 대중들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 단, 일국의 영화산업이나 시장이 발전하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는 ‘영화의 풍성함’이다. B무비가 만들어지고 시장에 나온다는 상황 자체가 이후 한국영화의 지형에 어떤 변화가 만들어질 거라는 예감을 낳았다. 그리고 변화는 실제로 일어났다. 그러나 B무비는 저주의 이름이다. 한 번 정도 시도하면 몰라도 계속 그 땅에 머물렀다간 대중들의 미움을 사거나 잊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B무비의 영혼은 비대중, 혹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반대중의 정서를 지녔기에 다수의 사랑을 받기가 힘들다. 그런 영혼의 작업은, 메이저의 감성에서 멀리 떨어져 반역의 행동을 벌일 수 있는 자만이 지속 가능한 일이다. 이후 방향을 튼 박찬욱이 대중과 친숙해진 반면, 지금까지 B무비의 영혼을 버리지 않은 이무영이 과연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생각해보라.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2002), < 아버지와 마리와 나 >(2008), < 한강블루스 >(2016)를 발표할 동안 그는 고독한 작가로 남았다. 이무영은, 그처럼 영화를 만들면 안 되는 어떤 전범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그와 같은 영혼을 지닌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타났다. 2019년까지 한국영화계에서 그런 이름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정원 의 < 시실리 2km >(2004), 원신연 의 < 구타유발자들 >(2006), 이하 의 <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2006), 오기현 의 < 손님은 왕이다 >(2006), 박명랑 의 < 분노의 윤리학 >(2012), 우선호 의 < 시체가 돌아왔다 >(2012) 같은 영화들은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좀비처럼 스크린 위로 계속 찾아왔다. 올해에도 그런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그 작품은 지난 2월 13일에 개봉한 이민재 의 < 기묘한 가족 >(2018)이다. 이런 영화를 욕하기란, 한편으로 쉽다. 얼핏 보아 못 만든 것 같고, 뒤뚱거리는 전개 방식은 매끈한 내러티브를 찾는 자들에게 좋게 보일 리 없다. 실제로 이 영화에 내린 평자들의 점수는 가혹했다. 그런 상황에서 높은 점수를 줬다가는 십중팔구 영화와 함께 처형당한다. 곧바로 ‘영화 못 보는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그걸 모를 리 없는 나는 욕 먹을 각오로 ‘지금까지 이런 좀비영화는 없었다. 단, 취향을 아주 많이 탈 듯’이란 평가와 함께 별 4개를 주었다. 지금까지 후회는 없다. 다시 보아도 <기묘한 가족>은 올해 본 영화 가운데 몇 안 되는 재미있는 영화다. 그 재미를 여기서 풀어놓을 재간은 없다. 재미를 설명하는 게 어디 가능한 일인가. 용케 ‘12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으나 <기묘한 가족>은 순진한 청소년들이 보기에 질이 그리 좋지 않은 자들이 나오는 영화다. 10년 전, 주유소를 열었다 망한 박씨네 가족은 초라한 행색으로 변했다. 하와이에 가보는 게 꿈인 아버지 만덕은 화투판에서 성질이나 부리고, 큰아들 준걸은 유사 범죄 행위로 근근이 카센터를 운영하고, 며느리 남주는 돈만 밝히는 아낙으로 살고, 딸 해걸은 토끼에 연연하는 우울한 아이로 자랐다. 둘째 아들 민걸이 해고당해 충청도 시골집으로 돌아오던 날, 대기업 제약사의 실험 도중 목숨을 잃은 남자가 죽음에서 깨어나 한마을로 걸어 들어온다. <기묘한 가족>의 전반부는 우울한 가족이 행복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다. 박씨 가족은 좀비에게 ‘쫑비’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회춘의 묘약’을 팔아 재산을 끌어모은다. 만덕은 하와이로 떠나고, 10년 만에 주유소를 다시 오픈한 가족은 행복한 불빛 아래 저녁을 먹으며 웃는다. 기존의 좀비영화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반부를 마친 영화는 정확하게 중간 지점에서 방향을 완전히 튼다. 행복의 정점을 상징하는 결혼식장에서 일어난 좀비의 창궐은 전반부의 나른한 기억을 박살 낸다. 결혼식장과 시골 장터 배경의 소규모 스펙터클 뒤로 주유소의 클라이맥스가 폭발을 준비한다.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이면서 좀비로부터 안전했던 박씨 가족은 졸지에 마지막 대피처가 된 주유소에서 생존을 건 투쟁을 벌인다. 이민재는 그런 와중에 폭죽이 터지고 디스코 음악이 흘러나오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좀비 댄서들이 화려한 조명 아래 춤추는 파티가 외딴 주유소에서 펼쳐진다. 좀비가 들끓는데도 뉴스에 보도조차 되지 않던 시골 마을은 그렇게 해서 그들만의 축제를 알린다. 평온한 전반부를 보다 이게 과연 좀비영화가 맞는지 의문을 품었던 차에, <기묘한 가족>은 생존과 멜로와 댄스가 결합된 전대미문의 장관을 연출한다. <기묘한 가족>은 제목에서부터 김지운 의 < 조용한 가족 >(1998)과 은근히 교류하는 작품이다. 한적한 곳에서 산장을 운영해 돈을 벌어보려던 가족이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죽음의 행렬로 인해 곤혹스러워진다는 <조용한 가족>의 기괴한 이야기는 <기묘한 가족>에 길을 터준 격이다. <조용한 가족>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박인환 과 당시 단역으로 나온 정재영 이 나란히 출연해 어떤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두 영화는 장르의 외피를 빌려 한국인이 행복을 기원하는 방식을 희화화한다. 두 영화의 가족 구성원은 돈을 버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둔다.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그 가치를 지키고자 몸을 던지는 그들을 보면서 웃음과 통증을 동시에 느끼게 되는 건 당연하다. 자칫 잘못하면 인물을 조롱하는 인상을 안길 수 있을 터, 두 영화는 투쟁하는 인물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웃음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그들의 존재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것, 두 영화는 그것을 해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조지 로메로의 좀비영화가 그러하듯, <기묘한 가족>은 제작 당시 정치 상황의 은유로 읽어도 좋은 작품이다. 죽음에서의 회복을 보여주는 엔딩은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로 뛰어나다. 윤종신의 <환생>이 괜히 흘러나오는 게 아니다.
2002년 | 좋은영화, 영화사 시선 감독: 장규성 | 각본: 손재곤 | 각색: 이원재 이원형 | 제작: 김미희 한지승 안영준 | 기획: 강우석 | 촬영: 김윤수 | 미술: 오상만 강승용 | 음악: 손무현 CAST 무라카미: 김수로 | 황보: 임원희 | 하나코/상미: 김정은 | 갑두: 서태화 2002년은 한국영화가 아마 가장 폭주했던 시기였습니다. 과감하고 극단적인 시도들이 이어졌죠. 흥행 재난을 맞이하긴 하지만 <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 장선우 )이 파격적인 기획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 복수는 나의 것 >이 나왔던 것도 2002년이었죠. < 죽어도 좋아! >( 박진표 )나 <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 이무영 ) 같은 영화도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장규성 감독의 < 재밌는 영화 >도 ‘2002년스러운’ 영화였습니다. 할리우드에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패러디 영화였는데요, 무려 33편의 한국영화가 코믹하게 인용됩니다.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를 반대하는 일본 천군파는 기념 공연이 이뤄지는 곳에 폭탄을 설치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 중심엔 한국은 무조건 싫어하는 무라카미가 있죠. 김수로가 역할을 맡았는데요, 단정한 양복에 뿔테안경을 쓴 지적인 모습이었지만… 곧 부채춤을 추는 족두리 한복 차림으로 바뀝니다. <재밌는 영화>는 전주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날 촬영도 전주에 있는 소리문화의 전당에서 이뤄졌죠. 관객으로 무려 2,0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되어야 하는 신이었는데요, 대규모 군중 역시 전주시의 도움으로 쉽게 모을 수 있었습니다. 부채춤을 추는 공연자들은 전주예고 무용과 학생들이었습니다. 한편 붉은 악마들 옆엔 이 날 사건을 막기 위해 남한의 KP 요원 황보(임원희)가 있습니다. 황보는 일본에서 온 저격수 하나코/상미(김정은)와 러브라인을 형성합니다. <쉬리>(강제규. 1999)의 한석규-김윤진 커플에 대한 패러디죠. 천군파가 무대에 설치한 폭탄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상미는 직접 무대 위로 올라가 폭탄을 손에 들고 소리칩니다. “모두 꼼짝 마!” 이 시기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빴던 배우였던 김정은은 촬영 기간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현장에서 집중력 만큼은 최고였습니다. 남한의 대통령(김인문), 북한의 국방위원장(정진각) 그리고 일본 천황(정재진)이 한 자리에 모여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2,000명의 엑스트라와 세 대의 카메라가 동원된 대규모 현장이었습니다. 이 영화로 데뷔하는 장규성 감독에겐 다소 버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확성기를 들고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은 베테랑 감독을 연상시켰습니다. 10년 동안 연출부 생활을 했고, 특히 김상진 감독과 세 작품을 함께 하면서 쌓은 내공 덕분 아닐까 싶습니다. 장규성 감독이 김정은에게 장면 컨셉을 전하고 있습니다. 당시 김정은은 밝고 코믹한 이미지로 사랑 받는 스타였죠. 첫 영화도 역시 코미디 장르로 선택했는데요, “고정된 이미지란 대중이 그 배우에게 가장 보고 싶어하는 이미지”라고 이야기합니다. 공개된 또 하나의 신은 도심 총격 액션 장면이었습니다. <쉬리>에서 가져온 신이죠. 촬영 장소는 역시 전주시의 전격적인 협조로 전주시의회 앞 도로에서 대대적인 교통 통제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버스를 장악한 무라카미가 기관총을 난사합니다. 건너편에선 남한의 KP 요원인 황보와 갑두(서태화)가 대응합니다. 긴장감 넘치는 장면인데… 뭔가 지나치게 진지한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냅니다. 천군파 요원인데요, 앞에 있는 김학규는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그룹 ‘노이즈’의 멤버였습니다. 뒤에 있는 사람은… 낯이 익으실 텐데요 배우 임형준입니다. <쉬리>에선 OP 특공대원 역할이었는데요 이번엔 천군파 요원입니다. 총격 신을 위해 특수효과 스태프들이 자동차에 장치를 하고 있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현장이었지만, 인근 주민들에겐 좋은 구경거리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우산을 쓰고 많은 사람들이 현장 견학(?)을 했습니다. 이 날 장면의 하이라이트는 버스 폭파 신이었습니다. 컷 사인이 나자마자 소방대원들이 달려와 소화 작업을 했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큰 규모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내고 특수효과가 동원되는 장면이었음에도 장규성 감독의 현장 장악력은 돋보였습니다. 임원희와 서태화와 김수로. 그들은 <재밌는 영화>를 더욱 ‘재밌게’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경쟁적으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