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 감독
- 김기영
- 제작년도
- 2000
- 출연
- 안성기, 하지원, 권용운, 김민조, 이무정, 양미경, 고가령, 이원두, 전부미, 최유란, 조하록, 서경미, 김혜정, 남윤정, 류현경, 안진옥, 오주이, 이석, 윤용준, 강유일, 전민종, 원민희, 남수정, 박성준, 손민우, 양재영, 이현화, 한태일, 장승희, 윤혜원, 전선화, 최윤희, 전제향, 이미경, 배은미, 김하애, 최명숙, 하지영, 전석구, 김수희, O2R
3편이 끝난 후, <애마부인> 시리즈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영화제작 자유화의 분위기 속에서 정인엽 감독은 ‘두손필름’이라는 프로덕션을 차렸고 < 파리 애마 >와 < 짚시 애마 >(1990. 이석기)를 내놓은 것. 판권이 연방영화에 속해 있기에 ‘애마부인’이라는 제목을 사용하지 못했고, 캐릭터 이름도 애마 대신 오해리( 유혜리 ), 필라 김( 이화란 ) 등으로 설정해야 했지만, 이 두 편의 외전은 이후 이어지는 정전보다 오히려 더 ‘애마 정신’을 구현하는 작품이었다. <파리 애마>의 유혜리, <짚시 애마>의 이화란 두 영화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이라는 이국적 배경 속으로 들어간다. 1~3편에서 정인엽 감독과 호흡을 맞춘 이석기 촬영감독은 <파리 애마>에서도 기존의 애마 시리즈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화면을 선보였고, <짚시 애마>에선 직접 메가폰을 잡기도 했다. 이 영화들은 나름 당대의 파격이었다. <파리 애마>의 설정은 오해리가 이혼한 남편을 찾아 파리로 찾아간다는 이야기. 외국에서의 낯선 성적 경험을 통해, 그녀는 비로소 ‘강한 남자’였던 전남편( 현석 )에게서 벗어난다. <짚시 애마>의 필라는 나이 많고 남편 몰래 짚시 남자와 욕정을 불태우지만 결국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 패션 모델 출신의 이국적 외모를 지닌 여배우를 캐스팅해 당시로선 이례적이던 유럽 로케이션을 감행한 이 영화들은, 내용보다는 비주얼의 업그레이드를 노렸고, 두 편 모두 서울 관객 10만 명 이상을 동원하며 성공했다. 여기서 ‘애마 프랜차이즈’의 연대기를 정리하면 다음 표와 같다. 애마의 남편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1편의 현우(임동진), 2편의 현우(최윤석), 3편의 노 박사(이정길) 그리고 <파리 애마>의 장석환(현석). 특히 장석환은 가장 강한 성적 능력을 지닌 남편이었다. 1편의 문호(하명중)와 2편의 성현(신일룡). 애마의 옛 애인과 현재 애인. 1편과 2편의 동엽(하재영), 4편과 5편의 호진(김호진). 애마를 사랑하는 연하남들. 3편에서 애마의 첫사랑과 현재 애인, 1인 2역으로 등장한 장승화. 11편과 12편의 김주철. 그들은 13편의 이대준과 함께 <애마부인> 시리즈의 ‘헝크’(몸 좋은 남자) 계보를 잇고 있다. 장승화는 외전인 <겨울 애마, 봄>(1991)에도 출연했다. ‘<애마부인> 2기’는 1990년에 시작된다. < 은하에서 온 별똥동자 > 시리즈(1987~88)의 석도원 감독이 < 애마부인 4 >(1990)의 메가폰을 잡았는데, 이후 그는 10편까지 총 6편의 <애마부인> 시리즈 정전과 외전인 < 드라큐라 애마 >(1994)를 연출한다. 석도원 감독이 등장하면서 <애마부인> 시리즈는 진화를 일단 멈추고 불균질적인 시기를 맞이한다. 어떨 땐 황당할 정도로 급진적이고(5편의 남편( 최동준 )은 하나코( 민희 )라는 정부에 의해 일본도에 찔려 살해된다), 어떨 땐 1960년대 신파 멜로를 연상시킬 만큼 보수적이었다(7편의 애마( 강승미) 는 성불구 남편( 이무정 )에게 돌아가 행복한 표정으로 그의 품에 안긴다). 그런데 어쩌면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1990년대 초반은 한국의 에로 영화는 극장이 아닌 비디오 대여점에서 경쟁하고 있었고, 흥행 성적도 서울 관객 5만 명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이 시기 에로 영화 지형도에서 <애마부인> 시리즈는 어느새 ‘올드 스타일’로 밀릴 상황이었다. < 복카치오 > 시리즈(1991~94) 같은 새로운 감각의 프랜차이즈가 등장했고, <애마부인> 시리즈도 경쟁을 위해 변해야 했다. 석도원 감독의 뮤즈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4편의 주리혜, 5편의 소비아, 6편의 다희아, 7편의 강승미, 8편의 루미나, 10편의 오노아. 소비아는 이후 비디오 영화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배우 임옥경의 동생인 주리혜는 이후 비디오 영화 <쌍파울로 애마 신바람 났네>(1996. 유진선)의 주연을 맡았다. 소비아는 ‘10대 애마’ 진주희와 함께 <애마 섹시 월드>(1998. 조명화)에 출연했다. 오노아는 역시 석도원 감독이 연출한 <드라큐라 애마>(1994)에 출연했다. 이때 석도원 감독이 끌어들인 것이 바로 퍼포먼스다. 애마나 그녀가 우연히 만나는 남자들의 직업적 설정(행위예술가, 현대무용가 등)을 통해 구현되는 스테이지는, 전체적인 스토리와 분리되면서도 이 시리즈가 지니는 에로틱한 면모에 대한 메타포로 작용하고, 때론 섹스 신에 실제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7편엔 사도마조히즘 섹스 컨셉트가 도입되는데, 이때 아티스트 원석( 원석 )은 애마를 묶으며 “이것도 예술입니다”라고 말한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아티스트 그룹의 토론 장면엔 브레히트의 연극 이론과 아르토의 잔혹 미학과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거론된다). 5편에서 시작되는 퍼포먼스의 전통은 이후 김성수 와 조명화 로 감독이 바뀌어도 유지된다. 여기서 하나의 혐의는, 잘만 킹 영화의 영향력이다. <애마부인> 1편에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엠마누엘>(1974. 쥐스트 자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느껴지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면, 후기 <애마부인> 시리즈에선 당시 한국 에로 콘텐츠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 레드 슈 다이어리 >(1992. 잘만 킹) 스타일의 에로틱 느와르 톤이 묻어나며, 이것은 다소 난폭한 섹스와 결합된다. 퍼포먼스는 <애마부인> 시리즈의 중요한 행위이자 모티프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7편에선 바닷가에서 벌거벗은 두 남자가 퍼포먼스를 한다. 6편엔 4대 애마 주리혜와 5대 애마 소비아 그리고 6대 애마 다희아가 자매로 나온다. 영화 초반부, 그들은 철로 위에 눕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8편엔 밴디지 컨셉트가 등장한다. 11편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공연 장면. 조금은 장황한 모놀로그나 대사를 통해 영화의 테마를 전달하려는 시도도 영화의 감성적 측면을 고려한 석도원 감독의 의도로 여겨지는데, 그 의미가 모호하여(게다가 비문이 많다) 그다지 효율적이진 않았다. 6편은 ‘말 잔치’인데 애마( 다희아 )는 언니( 소비아 )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지금의 언니의 모습은 정상궤도를 이탈한 빗나감이며, 사랑의 배신에 대한 반항이고, 결국은 후회하게 될 독선의 모습이야.” 이후 이혼을 결심한 애마의 독백은 이렇다. “순수와 영혼의 진한 사랑의 연습이, 크고 작음을 모두 잉태해낸 너는, 이제 허공에 익숙해진 사랑의 노래다. 높은음 외마디 끓어오르는 진실, 사랑의 한 맺힌 신음으로 고뇌하는 아픔, 네 귀를 후려치는 듯한 울음소리로, 울음소리로, 사랑의 바람을 잠재운다.” 그리고 이렇게 영화를 마무리한다. “슬픔이여, 내 앞에서 그대 눈물이었다. 어떤 고통의 미움이 들었나. 독하디독한 미움을 마시고 보면 새까만 허공, 침묵의 계절. 무거운 돌 바위 무너져 내리듯 슬퍼하자, 슬퍼하자.” 영화의 시작이나 끝은 선언적이면서도 감상적인 문장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8편은 “에로티시즘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대립시킴으로써 우리를 구원한다. 에로티시즘은 우리들을 착각적 행복감에 빠지게 하는 또 다른 활력소일 수도 있다”는 문구로 시작해 “시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가서 시를 보니 그 또한 시더라. 시가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서 사람을 보니 그 또한 시더라. 사람이든 시든 모두가 사랑이었나”라는 자막으로 끝난다. 이외에도 “우리의 사랑은 짧게 빛나는 불협화음이었나.”(4편) “그대 영혼으로 그리움 엉기어 우리의 사랑은 눈꽃이 되었나.”(5편) 같은 한탄조의 대사들이 영화를 마무리한다. 김성수 감독이 발굴한 9대 애마 진주희. 최연소 애마였다. 이후 그녀는 소비아와 <애마 섹시 월드>에 출연한다. 이때 등장한 김성수 감독은 < 애마부인 9 >(1993)을 연출하며 혁신을 일으킨다. < 색깔 있는 남자 >(1985)로 유명한 그는 ‘최연소 애마’ 진주희를 캐스팅하는데, 그녀는 기존의 애마들과 다른, 차라리 하이틴 아이돌이나 로맨스 히로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여기에 감독 특유의 범죄 스릴러 요소와, <색깔 있는 남자>의 반전 엔딩을 장식했던 레즈비어니즘의 터치가 결합되면서, <애마부인 9>는 석도원 감독이 이식한 사변적 톤을 걷어내며 “몸은 주더라도 마음은 주지 마라? 그따위 논리가 어딨어!”라는 직설법으로 승부한다. 특히 두 발의 총성과 함께 “애마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라는 자막이 뜨는 대목은, ‘애마 프랜차이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엔딩일 것이다. 조명화 감독의 11편에 출연한 이다연과 12편에 출연한 서지은. 10편으로 다시 석도원 감독에게 메가폰이 넘어간 시리즈는 11편과 12편에서 조명화 감독을 만난다. 액션 요소를 대거 도입한 조명화 감독은(그는 < 우뢰매 >와 < 슈퍼 홍길동 > 시리즈의 연출자 중 한 명이었다) 아마도 가장 거친 스타일의 <애마부인>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기 이 시리즈는 에로 비디오 시장에 거의 잠식 당한 상태였고, 마지막 13편은 김성수 감독이 돌아와 대미를 장식했다. 1990년대 중반은 ‘애마 프랜차이즈’의 대혼란기였는데, 1995년을 보면 11편과 12편이 나왔고, 외전인 < 애마와 변강쇠 >(김문옥) < 애마와 백수건달 >(김문옥)이 등장했으며, 비디오 시장엔 <적도 애마>(김인수)와 <빨간 애마>(유세기)가 출시되었다. 정전과 외전과 비디오 시장을 아우르는 상황. 이후 그 주도권은 완전히 비디오 시장으로 넘어갔지만 대세는 진도희 의 < 젖소부인 > 시리즈였고, 1998년 이후 ‘애마’라는 이름을 붙인 영화는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다가 2016년 < 애마부인 2016 >이 나왔다. IPTV 시장의 확산을 통해 18년 만에 애마가 부활한 셈이다. 외전의 여주인공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겨울 애마, 봄>의 애리(박엘리자), <애마와 변강쇠>와 <애마와 백수건달>에서 애옹(애마+옹녀)과 애미/미치코 역을 맡은 박양희, <빨간 애마>의 설희(정세희), <애마부인 2016>의 은혜(류현아). 애마 프랜차이즈의 조연들. (상단 왼쪽부터 지그재그로). 독고영재는 6편에서 주희(주리혜)의 전남편으로 등장하고, 이후 <애마 섹시 월드>에 출연한다. 원석과 유병완은 석도원 감독의 단골배우였다. 그들은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원석은 종종 애마의 애인으로 등장했다. 맹찬재와 노현우는 후기 <애마부인> 시리즈와 외전에서 남편 역할을 주로 맡았다. 4편에서 에리카의 결혼 파트너였던 신성하는 12편과 13편에 남편으로 등장한다.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본 ‘애마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테마와 스타일과 산업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여성들이 절규하듯 내뱉었던 대사들은, ‘에로 영화’라는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때론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 애마부인 9 >에서 강희가 애마에게 던지는 충고는 아마도 프랜차이즈 전체의 테마를 요약할 것이다. 남편과 애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애마에게 강희는 말한다. “진정 네가 필요한 남자를 선택해. 윤리, 도덕, 이런 거에 얽매일 필요 없어.” 그리고 못을 박는다. “본능이 움직이는 대로.” 최초로 ‘진솔한 욕망’과 ‘원초적 본능’의 세계를 가져왔던 <애마부인>과 그 후예들. 한국영화의 ‘위대한 유산’까지는 아니라도, ‘역력한 흔적’ 정도로는 평가해주어야 할 것이다.
<뽕>을 이야기하자면, 1980년대라는 시대를 먼저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 그런 질문이 나올 법하다. 무릇 대개의 영화는 시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지만 <뽕>을 비롯해 그 당시 나온 일군의 장르 영화는 1980년대라는 토양 아래 만들어졌고, 놀랍게도 1980년대가 끝나고 1990년대가 시작되면서 곧 사그라졌다. 1920년대 나도향이 쓴 동명의 원작이 1980년대의 관객에게 왜 그렇게 사랑받았는지 이야기하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1980년대의 영화들과 분위기에 대해 떠올려야만 한다. 혹자는 신군부정권이 국민들을 회유하기 위해 시도했던 ‘3S정책’을 말한다. 즉, 3S 중 ‘섹스’와 ‘스크린’이 만난 결과물이란 것이다. 확인된 문건이나 증거는 없으나,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은 그 시대를 거쳐 온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바다. 수치적으로도 보아도 1980년대의 영화 문화는 암흑에 가깝다.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막론하고 홍보용 간판에 걸리는 영화 가운데 많은 수는 성애물이었고, 거리에는 언제나 그런 영화들의 포스터가 붙었다 떨어져 나가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영화가 어마어마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것도 아니다. 그나마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정도, 딱 그 정도의 흥행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흔히 성애물이라 불리는 영화들 중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 해봐야 수십만 관객이 다였다. 영화로 치면 정말 암울한 시간이었다. 1980년대의 성애물은 그 안에서 다시 몇 가지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유럽산 성애영화나 스릴러에서 영향을 받은 정체불명의 심리물이었다. <애마부인>(1982)으로 전설을 쓴 이 장르는 여성의 야릇한 심리를 소재 삼아 수많은 아류를 쏟아냈다. 직접적으로 유럽영화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 같은 영화가 있었는가 하면,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여자 여자>(1985) 따위의 괴상한 심리드라마도 시도되었다. 둘째는 사회적 메시지에 성애물을 결합한 유였다. <어둠의 자식들>(1981),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1983) 등으로 명맥을 이어가다 1980년대 후반 <매춘>(1988) 시리즈로 폭발한 장르다. 셋째가 <뽕>이 포함된 토속 성애물이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1),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어우동>(1985) 등의 엄청난 성공에 힘입어 소소한 흥행세를 이어간 이 장르는 그 아래로 문예물과 해학물로 다시 나뉜다. <반노>(1982), <자녀목>(1984), <씨받이>(1987), <감자>(1987)>가 전자라면, <변강쇠>(1986), <어울렁 더울렁>(1986), <가루지기>(1988),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1993) 등이 후자의 대표작들이다. <뽕>(1985)의 경우는 다소 특이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전자에 속하겠으나 이 영화의 영향으로 후자의 영화들이 터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 정보로는 십여만 명을 동원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의 부실한 통계 수준을 입증할 따름이다. 개봉관의 성공에 이어 재개봉관으로 내려간 뒤에도 영화의 흥행은 멈추지 않았고 여주인공을 맡은 이미숙의 얼굴이 간판에 그려지지 않은 군소극장이 드물 정도였다. 그 정도가 오죽하면 모 영화잡지에서 ‘(극장 간판마다 그려진 이미숙의 얼굴 가운데) 과연 어떤 게 진짜 이미숙 얼굴이냐’를 주제로 기사를 냈을까 싶다. <뽕>의 성공이 1980년대를 성애물의 시대로 만드는 데 한 역할을 했지만, 다시 본 <뽕>에는 그 시기의 싸구려 성애물과 구분되는 지점이 있음 또한 분명하다. 1980년대 성애물의 가장 큰 문제는 남성과 여성을, 섹스 외에는 세상사에 별 관심이 없는 짐승처럼 그려놓았다는 데 있다. 남성은 여성의 몸만 봐도 흥분하고, 여성은 남성의 육체가 다가오면 달아오른다는 식이다. 그런 까닭에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녀의 눈빛을 클로즈업한 뒤 베드신을 연출하면 그만이었다. 싸구려 성애물이 하도 많이 만들어지니까, 그런 장면들만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같은 건 별세상처럼 논의되던 시절이었다. <뽕>의 인물과 이야기는 달랐다. 근대 이전의 남성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편 삼보(이무정 분)나 삼돌(이대근 분)과 달리, 안협집(이미숙 분)으로 불리는 여성은 노동과 재화를 연결 지을 줄 아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독립적인 삶을 도모하는 근대적인 인물이다. 어쩌면 안협집은 1980년대 성애물에서 육체적 굴레에 얽매이지 않은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남편 삼보가 역마살을 핑계로 노름에 빠져 허구한 날 바깥을 돌아다니는 탓에, 그녀는 자신의 몸 하나로 세상을 버텨나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자본이나 도구가 없는 그녀로서는 반반한 얼굴로 몸을 파는 것을 노동으로 치환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 까닭에 그녀는 소위 육체적 매력을 따질 겨를이 없는 터, 재화가 없는 상대방에게는 절대 몸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육체적 관계는 곧 돈이나 쌀에 가늠하는 재화를 의미한다. 머슴살이를 하는 삼돌은 힘과 몸을 이용해 살아간다는 점에서 안협집과 다를 바 없으나, 그는 안협집과 반대로 육체의 힘을 독립적인 삶의 바탕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 힘자랑을 하는 도입부에서 보듯 그는 자신의 힘을 노동에 바치면서도 종속된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극중 안협집이 유독 삼돌을 싫어하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으나, 그게 논리적으로 맞다. 자신의 힘을 잘 이용하는 안협집이 그것을 자랑 이상으로 쓰지 못하는 삼돌을 바보 천치로 바라보는 게 당연하다. 안협집에 수작을 거는 삼돌의 시도는 매번 실패하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안협집은 그를 더욱 하찮게 여기게 된다. <뽕>은 이대근이 섹스의 아이콘으로 도약하게 해준 작품이면서도 극중 그를 쓰는 방식은 정반대라는 게 특징이다. <변강쇠> 같은 이후 작품에서 이대근은 외모와 힘 하나로 수많은 여성의 구애를 받는 남성으로 분했다. 그의 소문을 전해들은 여성들은 그와 잠자리 한 번 해보겠다고 줄을 서는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런 이대근이 분한 삼돌은 <뽕>에서 내내 내쳐지는 신세를 못 면한다. 삼돌이 힘을 주체하지 못해 식식거릴수록 관객들은 더 크게 웃었다. 원작과 다르게 삼보에게 독립운동가의 뉘앙스를 입혀 놓긴 했으나, 기실 그도 무능하기는 마찬가지. 안협집이 준비해둔 노잣돈에 깨끗한 옷을 걸쳐 입고 돌아다니는 거 외에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 않았나. 삼보가 극 초반에 하는 대사 – 허기사 지금 세상에는 섣부른 사내 녀석보다 기집 편이 살기가 훨씬 나니라 - 는 어쩌면 1980년대라는 시대를 풍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는 박정희에 이어 사내들의 대장으로 군림한 전두환의 기세에 눌려 어지간한 사내들이 풀이 죽어 사는 시대였고, 그들의 주체 못한 힘을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풀던 시대 아니던가. <뽕>에는 그런 못난 남자들을 향한 조롱이 가득하다. 인물과 이야기만큼 빼어난 것은 이미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두용의 방식이다. 극의 도입부를 돌아보자. 1분25초짜리의 짤막하고 기능적인 오프닝 크레디트가 흐르고 난 다음,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안협집이 삼보에게 따지는 목소리가 나오고, 마을 사내 두 명이 그들에 대해 말하는 모습이 삽입된다. 싸돌아다니는 남편을 흉보면서도 보약을 달이는 안협집의 날렵한 몸짓을, 갓 일어난 삼돌이 유머러스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강원도, 황해도, 평안도(안협(安峽)은 강원, 평안, 황해 삼도 품에 있는 고읍(古邑)의 이름이다.) 투전판을 놀다온 남편은 묵묵히 화투를 만지다 화투 패로 묘기를 보여준다. 새침하던 안협집은 어느새 남편의 손놀림에 빠져 신기함을 연발한다. 이번에는 철원 쪽 화투판으로 떠나려는 남편의 입놀림에 속아 그녀는 울다가도 새 옷과 노잣돈을 스스로 꺼내 놓는다. 옷을 입혀달라며 바지춤을 내린 삼보는 슬며시 아내의 얼굴을 더듬는데, 카메라는 관객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마을 남자들의 힘자랑 풍경으로 훌쩍 넘어가버린다. 절구 옮기기로 힘이 세다는 걸 증명한 사람에게 식량을 내준다는 말에 마을 아낙과 남정네들의 입담이 오가고, 모두가 나자빠진 자리에 힘 센 삼돌이 엉큼하게 일어난다. 그는 한 손가락으로 코를 휭 푼 뒤 절구를 번쩍 들어 기운을 뽐낸다. 술잔치를 벌이려 흥이 난 사람들 사이로 삼보가 새 옷으로 차려입고 마을을 떠난다. 누군가 어디 가냐고 묻자 그는 “뽕 따러 가네”라고 답한다. 그 말에 사람들은 한 열로 줄 지어 “뽕 따러 가세”를 연창하며 춤을 추고, 삼보는 어느새 고개를 넘어간다. 흥겹던 사람들은 일본 순사의 등장에 일순간 수그러들고, 일을 치른 차림으로 방에 앉은 안협집은 텅 빈 고개를 멍하니 바라본다. 음악은 어느새 구슬픈 피리 가락으로 변한다. 그것이 <뽕>의 초반 10여 분 풍경이다. 스르륵 인물을 소개하고 안팎의 공간을 넘나드는 장면 아래로 분위기를 조율하는 솜씨가 과연 이두용답다. 이두용은 <뽕>의 결말부에서 도입부를 거의 정확하게 반복하며 끝을 맺는다. <뽕>을 다시 보며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나도향의 소설이 그런 것처럼 영화의 생명력이 전혀 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명은 삶의 에너지에서 나오는데, <뽕>은 많은 에너지를 ‘해학’에서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해학의 사전적 의미가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인 바, <뽕>의 해학은 구수한 대사에서 나온다. 나는 한국의 판소리보다 해학이 넘치는 예술을 본 적이 없다. 서구의 오페라가 아무리 멋지다 한들, 판소리 언어의 리듬과 힘이 뿜어내는 매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근대 이후 예술의 형태에서 사라진 판소리 언어의 매력을 그나마 느낄 수 있는 장르가 시대물이다. 1980년대 해학 시대물은 리드미컬한 언어의 맛을 충실하게 전달하곤 한다. <뽕>의 대사 연기야 두말할 것도 없다. 예를 들어 나도향의 원작에서 삼돌이가 삼보에게 안협집의 행실을 일러바치면서 했던 대사들 - "요놈의 자식아! 내 말을 좀 들어 보고 말을 해! 네 계집 험절을 모르고 댐비기만 하면 강산이냐? 이 동리 반반한 사내양반 쳐놓고 네 계집 건드리지 않은 놈이 없다. 이놈! 꼭 집어 말을 하라면 위에서 아래로 내리섬기마. 이놈, 너도 계집 덕분에 노자냥 노름밑천 푼 좋이 얻어 썼지. 그래 집이라고 오면서 볼받은 것이나마 옥양목 버선 벌이나 얻어 가지고 가는 것은 모두 어디서 나온 것으로 아니? 요 땅딸보 오리궁둥아! 아무리 속이 밴댕이 같기로. 그리고 또 들어 봐라. 나중에는 주워먹다 못해서 뽕지기까지 주워먹었다." - 도 거의 다 살아남았다. 특히 안협집과 삼돌이가 다투는 대사는 압권이다. 삼돌: 포도밭에는 왜 갔었소 그려? 안협: 남이야 어디 가고 안 가고 임자가 알아 뭐할 게여. 나 참 별 꼴사나운 소리 다 듣겠네 원. 삼돌: 아 그리 성낼 거 뭐 입습나, 아 임자 잔등에 포도가 뭉개져 있으니까두루 해보는 말이지. 어디 가서 누워 있다 왔습나. 안협: 아 남이야 어디 가 누워 있다 오든 말든 니가 상관할 게 뭐야, 어이구 참 어이구 비켜. 삼돌: 혼자 먹는 밥이 왜 이렇게 많누 그래. 누가 오기로 했나? 안협: 또 횡설수설하고 있네. 삼돌: 아이고 거 밥 냄새 좋다. 아이 그 뜸이 잘 들었나? 안협: 어이구 비켜, 이 망나니 같으니. 두 사람의 대사 연기 외에도, 양택조 같은 조연배우들이 쏟아내는 대사들은 영화 전체에 리듬과 힘을 제공한다. 따지고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1985년이면 전두환 정권이 살벌하던 시절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우울하지 않았던 시간이 별로 없겠지만, 전두환 시절은 특히 끔찍했던 때다. 그 시절에 <뽕> 같은 영화는 흡사 평범한 민초가 죽지 않았음을 방증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내 말이 과하다 싶으면 영화를 먼저 보면 될 일이다. <뽕>은 시시한 성애물이 아니다. 힘과 웃음이 살아 숨 쉬는 작품이다. # 이 장면은 꼭! <뽕>에는 많은 사랑스러운 장면이 있으나 그중 유독 좋아하는 게 하나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오랜만에 집을 찾아온 삼보가 안협집과 말다툼을 벌이다 손찌검을 하게 된다. 소설과 다르게 영화에서 삼보는 평소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아니라서 안협집은 코피를 흘리며 실신해 버린다. 놀란 삼보는 의사를 불러 오는데, 안협집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을 닦다 미소를 짓는다. 그날 밤, 안협집은 흰 종이로 코를 막은 채 누워 있다. 삼보는 돌아 누운 안협집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장만 보고 누웠다. 안협집은 피로 물든 종이를 코에서 빼낸 다음 흰 문풍지를 찟어 동그랗게 말아 새로 코피를 막는다. 요즘 같으면 솜이나 티슈를 쓸 텐데, 보는 사람의 마음이 짠하다. 여리면서도 강인한 여성이 느껴지는 덕분에 나는 <뽕>에서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몇 마디로 설명을 해놓았지만 정말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 정서가 깃든 장면이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충무로는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장르적 지형도의 변화를 겪는다. 크진 않았다. 하지만 몇 가지는 기록할 만하다. 먼저 여전한 장르는 멜로드라마와 액션이었다. < 미워도 다시 한번 >( 정소영 , 1968) 류의 신파 멜로는 꾸준히 만들어졌다. 합작(혹은 위장 합작)을 통한 무협 액션 영화도 왕성했다. 합작과는 무관하면서도 ‘중국식 제목’을 단 한국영화들, 그러니까 < 무림오걸 >( 김시현 , 1979) < 애권 >( 이형표 , 1980) < 소림사 주방장 >( 김정용 , 1981) 같은 영화들의 러시가 이뤄졌고, < 협객 시라소니 >( 이혁수 , 1980) 같은 전통적인 ‘따찌마리’ 액션도 이어졌다. 사라진 장르도 있었다. 호러가 대표적이다. 메이저 장르는 아니었지만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한국 공포 영화는 1980년대 중반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부활을 목격하기 위해선 1998년 < 여고괴담 >( 박기형 )까지 10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새로 생긴 장르도 있었다. 아동용 SF 액션이다. 지금 보면 조잡하기 그지없는 특수효과로 점철된, ‘우뢰매’ 시리즈(1986~93)나 ‘별똥왕자’ 시리즈(1987~88)는 1980년대의 발명품이었다. 마지막으로, 변형된 장르가 있다. 일종의 진화라고 해도 좋을 거다. 1970년대 ‘얄개 영화’는 1980년대에 연령대를 조금 높여서 < 대학얄개 >( 김응천 , 1982)로 다시 태어났고, < 오성군 한음군 >( 박호태 , 1988) 같은 영화로 이어지기도 했으며, 1989년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강우석 ) 이후엔 사회적 이슈와 결합되어 1990년대 초를 장식했다. 1. 토속 영화의 조짐이 보였던 < 심봤다 > 2. 1985년에 나온 < 뽕 >은 토속 영화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으로, 이후 컬트로서 추앙받는다. 3-4. 정윤희 가 주연을 맡았던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왼쪽)와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오른쪽). 자연 속에서 파라다이스를 즐기던 순수한 남녀는 외부자에 의해 그곳을 침범 당하고, 결국 여자 주인공은 죽음을 맞이한다. 1980년대에 또 하나의 ‘변종’이 있다면 흔히 ‘토속물’ 혹은 ‘향토물’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제목으로 지칭되던 그 영화들이다. 이 글에선 ‘토속 영화’라는 명칭으로 통일할 이 영화들은, 거칠게 정의 내리면 이른바 ‘문예영화’가 에로티시즘을 만난 결과다. 1970년대까지 검열의 수위 안에서 원작 소설을 표현했다면, 1980년대엔 과감해졌다. 과거 이미 만들어졌던 정비석 의 『성황당』, 이효석 의 『분녀』, 나도향의 『물레방아』 등은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정진우 , 1981) < 산딸기 >( 김수형 , 1982) < 물레방아 >( 조명화 , 1986) 등으로 좀 더 에로틱하게 재등장했고, 김유정 의 『땡볕』 『떡』 등도 소환되었다. 그러면서 문예영화의 범주를 벗어난, 다소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소설을 각색하거나 창작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토속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들은 (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에로티시즘 사극과 구분되어야 한다. 토속 영화는,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토속 에로티시즘 멜로드라마는 사극이 지니는 유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며, 시대 배경은 식민지 시기 농촌이나 어촌이다. 공통점도 있다. 1980년대 토속 영화와 사극은 한국영화에서 여성에게 가장 가혹했던 장르였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처참한 지경에 이르며 죽음에 이르는 여성들의 영화. 그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모순을 떠안아야 하는 것처럼 보였고, 당시 외국에서 한국영화 특별전이 열리면 서구 관객들은 “한국영화는 왜 그렇게 여자를 때리느냐”고 항의성 질문을 던질 정도였다. 1. < 산딸기 >의 한 장면. 물레방앗간은 토속 영화에서 반복되는 핵심적 공간이다. 주로 비밀스러운 정사가 이뤄지는 그곳에선 종종 여성의 운명이 결정된다. 2. < 산딸기 >의 엔딩. 명준과 분녀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명준은 말한다. “그래 저 학들처럼 천년만년 살자.” 토속 영화는 ‘새’의 상징을 자주 사용한다. 정진우 감독은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를 만들었고(< 백구야 훨훨 날지 마라 >(1983)까지 묶어 ‘새 3부작’), < 여자의 성 >에서 별녀는 어릴 적 숲에서 죽어가는 새를 데리고 와 살리는데, 그 가련한 새는 이후 별녀의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산딸기 2 > <여자의 성>은 모두 새 소리를 섹스의 신호로 사용한다. 3. < 숲속의 바보 >는 토속 장르에 ‘백치 여인’ 캐릭터를 끌어왔다. 4. 문예 영화는 1980년대에 토속 영화의 방식으로 변형되어 지속된다. 사진은 김동인 원작의 < 감자 > 그 시작을 살펴보면 1970년대 말에 조짐이 있었다. 선두 주자는 정진우 감독이었다. 이은성 작가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한 < 심봤다 >(1979)는, 문예 영화의 톤이 짙긴 했지만 이후 등장할 토속 영화 트렌드를 예견케 했고,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가 이어졌다. 결정타는 김수형 감독의 1982년 작 < 산딸기 >였다. 안소영 - 선우일란 - 강혜지 - 소비아 로 주연 여배우의 변화를 겪으며 1994년 6편까지 이어진 이 토종 프랜차이즈는 토속 영화의 얼개를 만들었다. < 산딸기 > 1편을 보자. 화전민 마을에 분녀( 안소영 )가 산다. 한가위 마을 잔치 때 취바리 탈을 쓴 누군가에게 겁탈당한 분녀는, 그 주인공이 마을 청년 명준( 임동진 )이라는 걸 알게 된다. 노다지를 찾아 만주로 떠난 명준을 분녀는 기다린다(안소영과 임동진은 같은 해 < 애마부인 >( 정인엽 , 1982)에서도 공연했고, 여기서도 안소영은 (감옥에 간 남편) 임동진을 기다렸다). 마을 남자들은 호시탐탐 분녀를 노리고, 급기야 자기들끼리 싸우다 두 명이 죽는다. 이에 ‘남자 잡아먹는 X’라며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분녀는 가마 주인(남궁원)을 따라 읍내로 가 술집 작부가 된다. < 산딸기 >는 토속 영화의 핵심 구조를 제시한다. 바로 이분법이다. ‘시골 vs. 도시’라는 구도 속에서 토속 영화는 여러 대립항들을 만들어낸다. 아직 물물교환이 익숙한 ‘촌’이 있다면, 그 반대편엔 ‘장터’라는 공간으로 상징되는 ‘돈’의 세계가 있다. 마치 서부극의 ‘자연 vs. 문명’ 구도처럼 토속 영화는 두 세계의 충돌 속에서 전자의 붕괴를 보여준다. 산속이나 섬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거나 약초를 캐며 살아간다면, 양복을 입은 외부인들(여기엔 종종 일본 순사가 가세한다)은 그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이다. 여기서 위협의 대상은, 그 마을에서 가장 아리따운 젊은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수많은 남자들에게 음험한 욕정의 대상이 되고, 결국 도시로 끌려가 어울리지 않는 짙은 화장을 한 채 술과 몸을 팔게 된다. 이 구도는 < 여자의 성 >( 문여송 , 1985) < 산딸기 3 >( 김수형 , 1987) < 옹기골 뽕녀 >(김수형, 1987) 등에서도 정확히 반복되는, 토속 영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여기서 같은 해에 나온 또 한 편의 영화를 주목해야 한다. 장미희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 숲속의 바보 >( 박용준 , 1982) 다. 이 영화는 토속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완성한다. 바로 ‘백치 여성’의 등장이다. 복희( 장미희 )는 다소 지능이 떨어지는, 영화 제목 그대로 ‘숲속의 바보’인데, 이후 수많은 토속 영화들은 핸디캡을 지닌 여성 캐릭터를 통해 이 장르가 지닌 ‘원시성’ ‘본능성’ ‘순수성’ 등을 드러낸다(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진 않지만, 그런 점에서 말 못 하는 수련( 정윤희 )이 등장하는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 정진우 , 1981)도 토속 영화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캐릭터의 계보는 < 불새의 늪 >( 고응호 , 1984)의 봉은( 원미경 ), < 여자의 성 >의 별녀( 최선아 ), < 소금장수 >( 김대진 , 1988)의 냉이(천은경) 등으로 이어지며, 그들은 섹스에 대한 ‘원초적 본능’의 소유자로 등장한다(< 불새의 늪 >에서 화가 종훈( 마흥식 )은 봉은에게 ‘수성’(獸性), 즉 ‘짐승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할 정도이며, <여자의 성>의 뭍에서 온 침입자 억수( 독고영재 )는 “잠자리가 뛰어난 여자거든!”이라며 별녀에게 집착한다). 1-2. < 산딸기 2 >(왼쪽)와 < 물레방아 >(오른쪽)의 선우일란 과 마흥식 . 두 배우는 토속 영화의 간판스타였다. 3. 문여송 감독의 히로인이었던 < 여자의 성 >의 최선아 . 4. < 산딸기 >의 김애경. 무당 캐릭터는 토속 영화의 핵심적 조연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테마는 바로 ‘근친적 설정’이다. 문명 이전의 상태에 대한 메타포일까? 심의 때문에 진짜 혈연적 근친 관계를 내세우진 못하고 유사 근친 관계를 설정하긴 하지만, 많은 토속 영화들이 근친적 관계를 내세운다. < 숲속의 바보 >의 복희는 남매처럼 함께 사는 머슴 만복( 김동현 )과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는다.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 >에서 최 영감( 황해 )은 고아인 수련과 문영( 최윤석 )을 키우는데, 혈연은 아니지만 남매처럼 자란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 여자의 성 >의 별녀는 데릴사위로 온 거무( 이구순 )와 남매처럼 지내다가 결혼한다. < 소금장수 >의 덕만( 김추련 )도 엉겁결에 맡아 딸처럼 데리고 다니는 냉이와 부부적 관계를 맺게 된다. < 화녀촌 >( 김기 , 1985)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다. 종섭( 이영하 )은 상처한 후 산에서 어머니( 김지영 ), 처제 정분( 최현미 ) 그리고 딸과 살아간다. 그는 형제나 마찬가지인 옆집 친구 덕만( 나기수 )의 아내( 이상숙 )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는데, 덕만 내외가 갓난아이를 남긴 채 마을을 떠나자 처제를 아내처럼 받아들여 그 아이를 키우며 산다. 근친적 관계 이외에도 토속 영화는, 도시와 문명이 반대편에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본능적인 모습들을 클리셰로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만 간추려 보겠다. 1. 수시로 목욕을 한다 모든 토속 영화엔 꼭 이 장면이 있다. 여성 캐릭터들은 숲속의 계곡이든 강가든 폭포 아래든 수시로 목욕을 한다. 그리고 반드시 그들을 엿보는 남성의 시선이 있다. 많은 사건들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2. 언제 어디서든 정사를 한다 낮이든 밤이든, 집이든 물레방앗간이든 들판이든 숲이든 개울가든 옥수수밭이든, 그들은 정사를 한다. 그리고 이 광경 역시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들킨다. 3. 껄떡대는 건 죄가 아니다 욕정의 도덕률이 무너진 상태에서, 마을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가운데 놓고 많은 남정네들이 치근대는 건 토속 영화에서 전혀 비윤리적인 일이 아니다. 그들은 겁탈을 해서라도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유부남/유부녀 여부는 중요하지 않으며, 이것은 < 뽕 >( 이두용 , 1986)과 <떡>( 김수형 , 1988)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4. 무당을 조심하라 무당이든 박수든, 토속 영화에서 ‘무속인’은 빠지지 않는다(< 불새의 늪 >에서 봉은은 아예 무당의 딸로 그녀와 관계를 맺으면 급살 맞아 죽는다). 그들은 마을에서 가장 성적으로 문란한 존재이며, 권위를 내세워 음모를 꾸민다. 5. 여성은 거래된다 사극이 여성을 대 잇기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정절을 강조하며 억압했다면, 토속 영화는 상품처럼 거래한다. 그 배경엔 남성의 어리석은 물욕이 도사리고 있는데, 서너 명 만 모이면 반드시 투전판을 벌이는 그들은 노름빚을 갚기 위해 딸을 팔아 먹고(< 산딸기 3 >), 여자는 몰래 몸을 판다(< 물레방아 >). 여기서 자연 속에서 사는 여성 캐릭터들은 장터를 통해 문명을 접하고, 동동 구리무와 박하 분과 손거울의 유혹 앞에 종종 마음을 연다. <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에서 김 주사( 최봉 )도 그렇게 순이( 정윤희 )에게 접근했다. 그렇게 유혹에 넘어간 여자들은 결국 유린당한다. 1 . < 화녀촌 >의 근친적 결말. 2. 토속 에로에선 그 어떤 곳에서도 정사가 벌어진다. 사진은 < 소금장수 >의 옥수수밭 3. 남자들이 셋 이상 모이면 투전판이 벌어진다. 사진은 < 산딸기 2 > 4. 여성은 결국 술집 작부가 되며, 그곳에서 번 돈은 남자의 노름 밑천이 된다. 사진은 < 산딸기 2 > 토속 영화는 1980년대 중반을 넘어가며 서서히 변주되고 확장된다. 하명중 감독의 리얼리즘적 접근이 두드러지는 < 땡볕 >(1985)과 < 태 >(1986)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며, 변장호 감독의 < 감자 >(1988)나 임권택 감독의 < 아다다 >(1988)는 문예 영화에 좀 더 가까운 케이스일 것이다. 여기서 이두용 감독의 < 뽕 >(1986)은 토속 영화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끈다. 원작이 나도향의 소설이라는 점에서 문예 영화의 전통을 잇고 있으면서, <뽕>은 기존 토속 영화가 지녔던 신파적이며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멜로드라마의 톤을 걷어낸다. 베테랑 이두용 감독은 능수능란하게 영화를 조절하며 끌고 가는데,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은 톤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에로티시즘을 표현할 때도, 절박하거나 경직되지 않은, 여유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유머로 포장되어 있긴 하지만, 사실 < 뽕 >의 꽤 논쟁 지점이 있는 영화다. 안협네( 이미숙 )는 마을의 매춘부이며, 그녀에 대한 동네 남정네들의 음험한 시선을 영화는 자연스레 합리화한다. 여기서 안협네라는 캐릭터가 다른 건 육체관계에서 일종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 토속 영화들이 ‘겁탈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면, <뽕>의 안협네는 철저히 거래하는 여성이며 원치 않는 남자는 거절한다. 같은 해에 나온 < 변강쇠 >( 엄종선 , 1986)의 ‘옹녀’( 원미경 )가 강한 성적 능력으로 위협적 존재가 된다면, 안협네는 유혹적이면서도 주체적이며 현실적이다. < 뽕 > 이후 토속 영화는 약간 변화를 겪는다. < 옹기골 뽕녀 > 같은 유사 제목 영화가 나왔고, 나도향을 비롯해 김유정 , 계용묵, 김동인 등 토속 영화의 재료로 삼기 좋은 작가들의 소설이 대거 각색되었다. 흥미로운 건 김수형 감독의 < 떡 >이다. 김유정 의 원작을 옮긴 이 영화는 <뽕> 이후 토속 영화(와 사극)의 트렌드가 변했음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떡>은 ‘<뽕>+< 변강쇠 >’이다. 마을 남자들은 (그녀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점례( 선우일란 )를 넘본다. <뽕>의 안협네 같은 존재인 셈. 그런데 점례와 관계를 맺는 남자들은 에너지를 완전히 빨려 버린다. ‘옹녀’인 셈이다. 흥미로운 건 결말인데, <뽕>에서 안협네의 남편 삼보(이무정)를 통해 암시만 되었던 독립운동가 콘셉트가 <떡>에선 명확하게 제시된다. < 산딸기 >나 < 뽕 >은 이후 프랜차이즈를 이루며 1990년대까지 이어졌지만(<뽕>은 최근 < 뽕 2014 >( 공자관 )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토속 에로는 대체적으로 1980년대 말에 수명을 다하고 만다. 이것은 에로 영화가 1988년 올림픽 이후 수그러들었던 것과 궤를 같이하며, 이 시기 한국의 에로틱한 영상 콘텐츠는 극장에서 비디오 시장으로 급속하게 중심 이동을 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토속 에로의 흐름.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와 기획영화가 등장했던 1990년대에 살아남기엔, 그 정서의 우울함과 여성관의 한계는 너무 치명적이었다. 그 한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뽕>이 최근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는 건, 어쩌면 그 반증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