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온 남자들
- 감독
- 이하
- 제작년도
- 2009
- 출연
- 지진희, 양익준, 이문식, 김규리, 김여진, 옥지영, 권병길, 최보광, 신채연, 유승목, 김승훈, 정우혁, 박소연, 박주홍, 이응재, 김창현, 최승우, 유상용, 김정혜, 박중현, 라경덕, 이민웅, 조문의, 김태정, 김현아, 정유미, 박지애, 최임경, 김영호, 박승태, 이동호
열여덟 살 소년 한슬기는 남산순환로 통행 매표소 동전함을 털다 걸려 1년 6개월 형을 언도받는다. 카메라는 비좁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는 듯 한슬기가 수감된 소년원의 내부를 관음적인 앵글로 비추고 있다. 정해진 시나리오 없음, 정해진 배우 없음, 정해진 카메라 없음, 정해진 미술 없음, 정해진 음악 없음, 정해진 편집 없음, 정해진 거 다 없음, 이라는 자멸적 어조의 자막이 순서에 의거하여 나타나고 인디 밴드 ‘삐삐롱스타킹’이 부르는 노래 ‘나쁜 영화’가 울려 퍼진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보컬 이윤정의 울부짖는 듯한 보이스가 “책상 위에 수많은 아주 좋은 영화가/ 잠을 자고 있는데 식탁 밑엔 수많은/나쁜 영화... (좋은) 영화 (나쁜) 영화 (좋은) 100편 (나쁜) 1편/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로 이어지는 가사를 통해내는 동안 아이들은 어두컴컴한 기차 안에서 무리를 지어 본드와 가스를 불고 갈피를 잃은 저들의 내면적 정황이 ‘환각 재현’이라는 제목의 키치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재생된다. 다음 쇼트에서 이어지는 한 장의 영정사진, 가스와 본드를 과다 흡입한 한 여자아이의 장례식장에서 지루해진 아이들이 춤을 춘다. 순간 나쁜 조감독의 나레이션이 나쁜 감독을 꼬시기로 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나쁜 조감독이 찍은 단편영화의 러프컷인가? 시험에 든 나쁜 감독. 나쁜 조감독의 꾐에 넘어간 나쁜 감독은 생각나는 대로 사는 아이들에 관한 생각나는 대로 찍는 영화를 시작한다. 나쁜 배우들을 구하는 광고를 통해 모인 아이들은 그들이 쓴 짧은 이야기를 자기 멋대로 찍는다. 상술(上述)한 < 나쁜 영화 >(1997)의 도입부는 서울의 10대 청소년들과 그들의 무모하고 환멸에 찬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혼란스럽고 무정부적인 이야기의 개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서정적이고 영적인 것에서부터 정치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다뤘던 장선우의 이전 영화들과 달리 <나쁜 영화>는 길을 잃은 아이들처럼 거칠다. <제목이 없는 영원한 나쁜 영화>(Timeless, Bottomless Bad Movie)라고 하는 영문 제목이 암시하는 바처럼 <나쁜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의 구조화되지 않은 특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기성 영화의 기준과 규칙, 문법을 따를 생각이 없음을 선언한다. 항상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가졌던 감독 장선우는 이제 나쁜 영화를 만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였고, 그 결과는 놀랍다. 자학과 폭력, 섹스, 환각, 범죄의 만화경을 묘사하는 이 영화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10대 아이들이 쓴 대본을 재연하면서, 때로는 술 취한 거리의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의 방식으로, 특정 장면에서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삽입하는 예술적 만용으로, 일부는 35mm, 다른 일부는 16mm 내지는 슈퍼 8미리로 촬영하였다. 그러나 영화는 경계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모든 경계를 지우가 위해 다양한 출처의 이야기와 장르, 형식, 캐릭터를 비빈다. 영화의 1/4 지점에서 서사는 기성의 논리와 계율을 거부하는 10대들의 삶에서 자본주의적인 체제의 바깥에 있기를 선택한 홈리스의 삶으로 건너간다.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를 강타한 1997년 한국의 경제적 투쟁이 버려진 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탐구하는 장선우의 방식은 틀에 박힌 사회에 풍요에 저항하는 거리의 방랑자들에 대한 사실과 거짓의 앙상블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거친 젊은이들, 안전하게 부유한 삶을 좇는 체제를 회의하는 홈리스들의 정신적 풍경을 기린다. 장선우는 새와 레드변, 감자, 이쁜이, 아이떡 따위의 유치한 별명으로 불리는 10대 등장인물들이 지루함의 공백을 범죄, 학대, 장난, 폭력 및 섹스로 채우려고 하는 맹목적인 행동들을 스토리로 만들어 연기하도록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서울역 주변을 어슬렁대는 홈리스들의 일상과 10대들의 존재 양식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체제로부터 버림을 당한 이들의 무모한 욕망이 혈관을 타고 흐른다는 것만이 저들의 공통점일까? 10대 청소년들과 홈리스들 사이의 접점을 상상하게 하면서 카메라는 즉흥적인 퍼포먼스와 느슨한 플롯에 의해 사전에 설계하지 않았던 의미가 발발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원초적인 분노, 평온한 포기, 특정한 순간을 위해 사는 것, 경고를 무시하고 사는 무정부주의적인 삶의 가치를 찬미하는 장선우의 예술적 자의식은 도전적이다. 형식적으로 <나쁜 영화>는 유사 다큐멘터리적인 스타일로 거리의 유목민들을 묘사하는 픽션 영화이다. 시네마베리테 양식으로 촬영되었지만 재연 에피소드와 현실, 구성된 이벤트 사이를 오가며 현실과 무대 사이의 경계를 흐리기 위해 애쓴다. 계획과 우연을 병합한 사이비 다큐멘터리 형식은 영화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한다. 카메라를 든 영화 스태프가 길바닥에 주저앉은 한 소년을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자. 이제부터 카메라를 든 사람과 붐 마이크가 화면 안으로 들이닥친다. 여기서 카메라는 스스로 참여적이 되는 동시에 촬영 대상의 개입을 촉발하는 촉매가 된다. 영화적 진실을 생산하는 순간처럼 의도된 그 장면에서 실제적인 세계에 속한 자연인은 허구적 스토리가 요구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실재하는 존재와 대상에게 부여되는 역할이 중첩되어 어느 한 가지로 규정하기 힘든 영화적 실천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연출된 무수히 많은 장면들은 상당한 정도의 혼란을 유발한다. 카오스는 캐릭터들의 재현 방식과 그들의 행동 뿐 아니라 운동의 방향에서도 발생한다. 때때로 등장인물들은 의도적으로 화면서 속도를 덧붙이면서 골목길을 질주하거나 추적자들의 추궁을 피하기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섹스와 성적인 방종은 자유로운 행동 양식의 소여(所與)인 것처럼 변덕스러운 스타일로 전달되고 목표나 의도, 지향을 버린 말과 행위, 결과가 수반된다. 예술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을 습격하고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 태도와 유머, 냉소를 시전하는 특성은 어떤 한국영화도 도달하지 못했던 미학적 혁신의 지점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실제 영상과 가공된 재연의 흐릿한 경계가 명확해지는 장면 중 하나는 송강호와 안내상, 기주봉, 이문식 등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이 홈리스 분장을 하고 실제 홈리스들과 섞여 들어가는 장면일 것이다. 찬송가를 부르는 거리의 전도자들 사이로 슬금슬금 이동하여 능청스럽게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송강호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지우는 전략을 육체적 제스쳐를 통해 몸소 실행한다. 기주봉은 어린 딸을 데리고 다니는 서울역의 홈리스가 되어 현실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고, 진짜 행려들과 3개월 간 합숙을 한 안내상은 놀라운 친화력으로 진짜와 가짜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든다. 10대 아이들, 홈리스들과 달리 이 진짜를 연기하는 가짜들은 오랜 기간 훈련한 스킬을 발휘하여 능숙하게 현실에 자리를 잡는다. 감독과 스태프, 감독과 배우, 배우와 일반인, 진짜와 가짜, 선과 악, 미와 추, 현실과 허구 따위의 기준들을 깔아뭉개는 장선우의 방임적 태도는 야심적이다. 현재 시점에서 회고해 보건대 <나쁜 영화>의 위상은 시네마베리테와 에세이 필름의 언저리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대상들의 세계로 들어가 의도된 구성을 포기하고 그들에 의해 영화가 생성되는 과정을 조직한다. 젊음의 기쁨과 발견의 시기를 거리에서의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묘사하면서 장선우는 미학적 논쟁을 야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체의 영화적 형식을 제거한 상태로 나아간다. 진실(과 진실한 사람)을 기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를 말하고 그 과정에서 매체의 성질을 다시 설정하며, 가치판단의 기준을 재정의하도록 하는 불온한 의도는 시네마의 역량을 시험한다. 도전적이지만 의도적으로 한계를 두지 않는 이 이야기는 체제에 저항하는 존재들의 삶과 예술적 반항의 태도를 일치시킨 현대 한국영화의 시금석이다. (관련글) 1. 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 <박하사탕>(1999), 2021.04.16. 2. 넥타이로 총을 겨누었을 때 - <올드보이>(2003), 2021.05.14. 3. 요리사는 어디로 가는가? - <오!수정>(2000), 2021.06.04. 4. 고반장은 이렇게 말했다 - <논픽션 다이어리>(2013), 2021.07.09. 5. 머리를 자르고 새 옷을 입는다고 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 <무산일기>(2010), 2021.08.10. 6. 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 <마더>(2009), 2021.09.03. 7. 수인동성동형론(獸人同性同形論)에 따르면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 2021.10.15. 8. 유능한 이야기꾼은 진실이 거기 없다는 것을 잊도록 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 <버닝>(2018), 2021.11.12. 9. 죽음의 한 연구(硏究) - <파산의 기술>(2006), 2021.12.10. 10. 사마귀가 사마귀를 먹다 - <춘천, 춘천>(2016), 2022.01.07. 11.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사랑한다면 그때는 우리 이러지 말아요 - <극장전>(2005), 2022.03.08. 12. 철없는 엄마와 파란만장한 남자들, 그리고 엔카 가수 - <그때 그사람들>(2004), 2022.04.06. 13. 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이야기 - <형사 Duelist>(2005), 2022.05.24. 14. 철의 신이 수장(水葬)시킨 고래의 추억 - <철의 꿈>(2013), 2022.06.16. 15. 골목길을 저절로 움직이는 자전거 - <풍경>(2013), 2022.07.14. 16. 일자로 아뢰리다 - <춘향뎐>(2000), 2022.08.11. 17. 연결연결, 믿음의 벨트 - <기생충>(2019), 2022.09.08. 18. 아마도 악마가 - <곡성>(2016), 2022.10.20. 19. 말도 안돼 기분 나쁜 그 제목은 나쁜 영화 - <나쁜 영화>(1997), 2022.11.25. 20. 황야의 울부짖는 개 - <복수는 나의 것>(2002), 2022.12.14. 21. 숟가락을 구부리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러한 힘을 가지고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겁니다 - <88/18>(2018), 2023.01.04. 22. 완전하고, 만족스러운 진실은 없다 - <파수꾼>(2010), 2023.03.03. 23. 이미지의 확실성과 증거력에 대한 회의 - <김군>(2018), 2023.04.05. 24. 범죄의 요소 - <괴물>(2006), 2023.05.17. 25. 투명인간이 되는 법 - <빈집>(2004), 2023.07.05. 26. 어차피 우리는 유령이 될 거예요 - <후쿠오카>(2019), 2023.08.30. 27. 생라면, 참치 통조림, 라이터, 휴지, 그리고 사시미칼 - <넘버3>(1997), 2023.10.05. 28. 풍등(風燈)은 날아가고 - <해피엔드>(1999), 2023.10.18. 29. 504호, 고아, 사라진 애, 시체... 이제 마지막 남은 얘기 하나 - <소름>(2001), 2023.11.07. 30. 열여덟, 바람의 색깔 - <회오리 바람>(2009), 2023.11.20. 31. 가면고(假面考) - <반칙왕>(2000), 2023.12.11. 32. 문은 두 방향으로 나 있다 - <두 개의 문>(2012), 2023.12.28. 33. 지옥의 복도 - <아수라>(2016), 2024.01.08. 34. 삼(3)의 몰락 - <성적표의 김민영>(2021), 2024.02.05.
2001년 | 씨네월드 감독: 박철관 | 원안: 이명석 | 각본: 박규태 | 제작: 이준익 | 기획: 조철현 | 촬영: 박희주 | 미술: 오상만 | 음악: 박진석 신호섭 CAST 재규: 박신양 | 청명: 정진영 | 불곰: 박상면 | 날치: 강성진 | 왕구라: 김수로 | 막내: 홍경인 | 노스님: 김인문 | 현각: 이원종 | 대봉: 이문식 | 명천: 류승수 2000년대 초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장르는 이른바 ‘조폭 코미디’였습니다. < 조폭 마누라 >(조진규, 2001)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 두사부일체 >(윤제균, 2001) < 가문의 영광 >(정흥순, 2002)이 큰 흥행을 기록하면서 급속히 메인 스트림 안에 자리 잡았죠. 평단 일각에선 욕설과 폭력과 자극이 난무하는 이 장르의 관습이 한국영화를 저질화시킨다는 비난이 있었는데요, 일견 타당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 영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달마야 놀자>가 그런 영화죠. 한쪽에서 보면 조폭 영화지만, 반대편에서 보면 불교 영화인, 도저히 융합할 수 없을 것 같은 요소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심오한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합니다. 2001년 8월의 어느 더운 날, <달마야 놀자> 현장 공개가 있었습니다. 조폭들이 불당 청소를 하는 장면이었죠. 이때 불상을 닦던 왕구라(김수로)와 막내(홍경인) 사이에서 갑자기 논쟁이 붙죠. 부처는 중국 사람일까, 아니면 인도 사람일까. 불상의 밑바닥을 들춰 본 왕구라는 ‘Made in China’를 확인하는데요, 실수로 불상을 불당 바닥에 떨어트립니다. 이 사건은 스님과 조폭 사이에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되죠. 적에게 쫓겨 고요한 암자에 뛰어든 재규파의 리더 재규 역을 맡은 박신양입니다. 1990년대 말 멜로 주인공으로 이미지를 굳혔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코미디 장르에서 성공을 거두죠. 재규파에 맞서 절을 지키는 청명 스님 역의 정진영입니다. 진짜 스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할이 잘 어울립니다. 넘버 2인 불곰(박상면)과 넘버 3인 날치(강성진)입니다. 불곰은 큰 덩치의 해병대 출신인데요, 알고 보니 대봉 스님(이문식)의 해병대 후임이었죠. 한편 날치는 이후 속세를 떠나 출가하게 됩니다. 현각 스님(이원종)은 큰 덩치와 엄청난 힘의 소유자입니다. “칼에는 사람을 죽이는 칼과 살리는 칼이 있습니다. 전 그걸 깨닫는 데 15년이나 걸렸습니다.” 출가 전엔 어떤 일을 했을지, 조금은 짐작 가는 대사입니다. 재규파의 넘버 4인 왕구라(김수로)는 엄청나게 말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막내(홍경인)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았는데요, 동자승(권오민)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죠. 암자의 여섯 스님들입니다. 왼쪽부터 노스님(김인문), 동자승, 청명 스님, 현각 스님, 대봉 스님 그리고 청명 스님(류승수)입니다. 청명 스님은 묵언 수행 중인데요, 이 설정이 영화에 묘한 긴장감을 줍니다. 촬영 장소는 김해 신어산 기슭에 있는 은하사였습니다. 가야국의 수로왕이 세웠다는 사찰이죠. 사실 절에서 촬영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요, 다행히 섭외가 되었죠. 개봉 때는 승단에서 단체 관람을 하기도 했는데요, 상당히 만족하며 영화를 봤다는 후문입니다. 왕구라가 불상을 훼손하는 사고를 저지르는 장면을 대웅전에서 촬영한 후엔, 요사채에서 공양 신 리허설을 했습니다. 사찰에서의 공양, 즉 식사 시간은 엄격한 예절 속에서 조용히 이뤄지는데요, 재규파 다섯 명에겐 낯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노스님의 꾸중을 듣게 됩니다. 스님이 아닙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박철관 감독의 모습입니다. 제작사 씨네월드에서 < 간첩 리철진 >(장진, 1999) < 아나키스트 >(유영식, 2000)의 연출부를 거쳤죠. 이후 두 번째 영화 < 미쓰GO >(2012, 박철관)를 연출했습니다. 현장에서 박신양은 쉬는 시간마다 캠코더로 촬영을 했습니다. 불당 안에서 레슬링을 하는 재규파 부하들의 모습을 찍은 영상을 동자승과 함께 보고 있네요. 정진영은 촬영 기간 동안 아예 은하사에 기거하면서 스님들과 생활했습니다. 그런 이유인지 영화에서 진짜 스님 같은 느낌을 강하게 풍기죠. 그 모습이 얼마나 리얼했는지, 은하사에 들른 어느 스님에게 혼이 났던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명히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데 인사를 하지 않자 정진영 배우를 혼냈던 거죠. 이 영화의 ‘뜬금포’ 같은 존재인 ‘츄리닝맨’ 김영준의 모습입니다. 영화 내내 수맥 탐지용 안테나를 들고 다니죠. 촬영이 끝난 저녁, 불당 아래 공터에선 재규파와 스님들은 족구 게임을 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할 족구 장면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었지만, 시나리오와 상관없이 실제로 족구 시합을 했습니다. 축구화와 테이프로 동여맨 고무신 등을 신고 열심히 경기를 했는데요, 결국은 재규파가 이겼습니다. ‘불곰’ 박상면의 활약 덕분이었죠. <여인천하> 같은 TV 사극의 아역으로 낯익은 권오민은 <달마야 놀자>에서 동자승 역을 맡았습니다. 첫 영화였지만, 특유의 천진함과 귀여움으로 자칫하면 퍽퍽해질 수 있었던 영화의 정서에 숨통을 틔워 주죠.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
2003년 | KM컬쳐 감독, 각본: 김용화 | 제작: 박무승 | 촬영: 박현철 | 미술: 박일현 | 음악: 방준석 김덕윤 CAST 오상우: 이정재 | 오봉구: 이범수 | 정 반장: 이문식 | 허기태: 류승수 | 은하: 김준희 지금은 < 신과 함께 > 시리즈로 두 편의 ‘천만 영화’를 거느리게 된 김용화 감독의 시작은 16년 전의 < 오! 브라더스 >였습니다. 몇 번 말씀 드린 적이 있었지만, 2003년은 한국영화의 ‘은혜 받은 해’였죠. 신인급 감독들이 다양한 장르에서 상업적 성공과 함께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실험성이 정점에 올랐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오! 브라더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추석 시즌 개봉된 이 영화는 < 불어라 봄바람 > < 조폭 마누라 2 > 그리고 <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 펄의 저주 >와 < 분노의 질주 2 > 등을 꺾고, 3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종 승자가 되었죠. 이 영화의 현장 공개는 두 번에 걸쳐 이뤄졌습니다. 첫 번째는 2003년 5월, 오상우(이정재)가 배다른 형제인 오봉구(이범수)를 찾으러 간 장면이었죠. 봉구는 어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2살인, 조로증 환자입니다. 장소는 남양주에 있는 서종초등학교. 형을 따라 학교를 떠나야 하는 봉구의 모습이 조금은 슬퍼 보입니다. 1994년 < 젊은 남자 >( 배창호 )로 영화에 데뷔한 이정재는 10년차를 맞이해 <오! 브라더스>에 출연했고, 이 영화는 그때까지 그의 최고 흥행작이 됩니다. 이때 시작된 김용화 감독과의 인연은 <신과 함께> 시리즈로 이어졌고요. 이정재는 상우라는 캐릭터가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라고 말하는데요, 봉구를 통해 변하게 됩니다. “상우가 지닌 상처를 봉구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마음이 바뀌게 되고요.” 2003년 이범수는 < 싱글즈 >( 권칠인 )와 <오! 브라더스>가 모두 좋은 반응을 얻으며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오! 브라더스>는 힘든 영화였습니다. “부담이 컸어요. 아무리 시나리오가 뛰어나고 감독의 연출력이 좋아도, 내가 어린아이처럼 보이지 않으면 이 영화는 무의미했으니까요.” 그래서 초등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같이 뛰어놀며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했다고 하네요. 한편 이범수는 김용화 감독의 중앙대학교 영화과 2년 선배로, 현장에서 맏형 역할을 했습니다. 김용화 감독에게 <오! 브라더스>의 시작은, 역시 두 형제의 이야기인 단편 < 자반 고등어 >(2002)였습니다. 김용화 감독은 상업영화로 진출하게 된다면 이 영화를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때 < 잭 >(프랜시스 코폴라, 1996)을 보게 되면서 ‘조로증’이라는 모티브를 얻었다고 합니다. 두 영화의 차이가 있다면, <잭>은 인권에 대한 메시지가 강하다면 <오! 브라더스>는 형제애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죠. 이정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감독에 따라 다르지만 배우의 연기는 60퍼센트 정도만 보고 나머지는 앵글, 음악, 편집, 효과로 채우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김용화 감독님은 배우의 연기를 80퍼센트까지 보더라고요. 철저히 배우의 감정에 맡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래서 시사회 앞두고, 제 연기가 어떻게 나왔을지 더 걱정됐어요.” 이날 촬영 분량은 없었지만, 상우의 동료 기태 역을 맡은 류승수가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쉬는 시간 빙과류로 초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있는 이범수와 류승수의 모습입니다. <오! 브라더스>의 두 번째 현장 공개는 7월 양수리 종합촬영소에서 이뤄졌습니다. 흥신소 박 사장(박영규)와 상우 그리고 봉구의 신이었습니다. 박 사장은 상우에게 돈 받아오는 일을 시키지만 상우는 싫다고 하죠. 이때 갑자기 봉구가 등장하고, 박 사장은 봉구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합니다. “주먹을 불끈 쥐어 보는 게 어떨까?”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는 건 어때?” 이 장면을 위해 감독과 배우들은 1시간 동안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정재에게 ‘흥신소 직원’이라는 캐릭터는 < 태양은 없다 >( 김성수 , 1999)에 이어 두 번째였죠. 그리고 그때 만났던 이범수와 <오! 브라더스>에서도 만났고요. 두 편 모두 이범수가 단발머리로 등장했다는 점도 재밌는 공통점이네요. 달라진 게 있다면 <태양은 없다>의 홍기가 가볍기만 한 ‘압구정 날라리’였다면, 상우는 절박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현실적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김용화 감독은 이 신의 촬영을 마친 후에도 뭔가 부족함을 느꼈는지 다시 찍겠다고 욕심을 냈습니다. 영화에선 평범해 보이는 장면이지만, 결코 쉽게 찍은 장면은 아니었던 거죠. <오! 브라더스>는 김용화 감독의 중요한 테마인 ‘가족’이 시작되는 영화입니다. 장애를 지닌 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도 여전히 살아 있는 ‘김용화 영화’의 요소이고요. 이미지 디지털화 지원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