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스쿨러
- 감독
- 이보라
- 제작년도
- 2008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1. 초등학생 때 면접을 보고 들어간 방송반에서 나는 영상 송출 담당이었다. 아나운서 선발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당시 여자애들은 전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방송반에 들어갔다). 영상 송출 담당이란 조회 시간에 타이밍에 맞춰 애국가 제창 화면을 틀고, 교가 비디오를 틀고, 다시 화면을 전환해 강단을 비추는 일이었다. 특별활동 시간에는 방송실 안에서 함께 영화를 보거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던 기억. 고등학생 때는 영상제작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집에서 안 쓰는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영상을 찍었고 이런저런 공모전에서 나름 성과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학교에 가서도 영상제작 동아리에 들어갔다. 학내방송국도 아니고 영화동아리도 아닌 영상제작이라는 모호한 분과만을 노렸던 행보에 대해서는 늘 약간의 해명이 필요했다. 영화는 멀고 어렴풋하게 느껴졌던 반면, 영상은 지금 당장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대상처럼 친밀하고 가까웠다. 영화를 의식적으로 챙겨보거나 영화 비평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보다 훨씬 뒤의 일이다. 그러니까 영상제작 활동을 했던 시기와 영화를 좋아하게 된 시기가 다르다는 점은 내내 의문이었다. 그 두 가지는 다른 걸까?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일단 찍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나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까? 2. 글 쓰는 사람의 손 위에서 시간은, 마감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카운트다운으로 대체된다.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밀려나는 리듬이 있을 뿐. 이건 마감의 불안으로 또 다른 층위의 불안을 지우는 일. 불안으로 불안을 다시 쓰는 일.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주춤거림 없이 글쓰기가 어렵다. 그건 글쓰기에 가로막힌 사람이 쓰던 원고를 거칠게 구긴 뒤 새 종이를 꺼내면서 뭔가를 새로 시작하고 있다는 착각을 통해서만 글을 시작할 수 있다고 느끼는 아주 상투적인 장면인 동시에, 대부분의 내 글쓰기가 출발하는 장소다. 눈치 챘겠지만, 글을 시작하기 위해 쓰나 마나한 말을 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자꾸만 미루게 된다. 곤란한 일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만큼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나’여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지금까지 내가 썼던 모든 글은 불순하다고 말해야 한다. 종종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의 경우, 특히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책상 위가 아니라 책상 아래에서(Under The Table-‘불법적인 일’을 뜻하는 관용 표현) 이루어지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종종 영화 전문 매체에 글을 쓰고, 힘을 북돋아주고 싶은 어떤 영화에 관해서는 목소리를 높여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의 효력을 따질 새도 없이 글이 공적인 경로로 유통된다는 사실은 특권적인 동시에 두려운 일이다. 줄곧 이런 불안이 따라붙었다. 왜 정녕 영화여야만 할까?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을 읽으며 이보라 평론가가 쓴 구절에서 멈칫했던 기억도 난다. “글을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만 할 수 있나?” *주1 비평은 단순히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다. 『비평철학』에서 저자는 기술과 해석이 서로 다른 작업이며 기술은 명백한 요소들에 대한 증언인 반면, 해석은 명백한 요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동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해석은 결코 최종 진술이 될 수 없는 미완의 작업이다. *주2 어떤 것이 명백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은지 선택하기 위해서는 관습적인 것이라 여겨지는 공통의 합의들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것에 대한 가장 새로운 이야기조차 사실은 통속적인 것의 배후에 있다는 깨달음이 글쓰기의 날카로운 기쁨이라면, 나는 그 순간을 연장하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결코 최종 진술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매혹적인 동시에 끝나지 않는 악몽 같다. 불만족스러운 마감을 했다는 불안이 들 때면 어디에도 없던 평론가 데이비드 매닝 *주3 (일명 ‘데이비드 매닝 사건’)의 유령이 나타난다. 이 자리는 언제 백지화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허구가 아닐까. 그 누구로도 대체 가능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어느 날 꿈에서는 내가 데이비드 매닝으로 판명 난다. 그리고 깨어나면, …이 세계는 꿈이라고 해서 안심하고 지낼 수 있는 간단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4 '데이비드 매닝'의 평을 실은 영화 광고 (사진: " Dave Manning ", The Museum of Hoaxes) 3. 영화를 둘러싼 불안과 수치심, 글쓰기의 곤란함이 맞닿는 장소가 영화 비평이라는 밀실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은 묘연하다. 미치더라도 이들과 함께 써나가야 하는데,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영화 비평을 수행적인 활동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때 수행성이란 현실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방식의 개입이 아니라 ‘일단 가까운 곳으로 돌입하는 것’에 가깝다. 영화는 멀지만 영상은 찍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처럼,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바꿀 수는 없더라도 최대한 현실이라고 감지되는 최전선을 향해 두드려보는 무모함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일단 돌입하고 나면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문제는 다음이 항상 너무 빨리, 그리고 시시각각 찾아온다는 것뿐이다. 비평은 무언가를 걸치고 말하는 작업이기에 제로에서 시작할 필요가 없다. 비평은 이미 나와 있는 것들의 재활용에 그치지 않으며 여전히 창조적인 활동에 가깝다. 두 진술은 양립 가능하다. 나는 비평과 픽션의 일치를 소망하고, 그런 소망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어렴풋한 예감 속에서 쓴다. 오히려 나를 쓰게끔 만드는 것은 그런 오래된 불가능성이다. 2년 전 언파운디드랩의 초대를 받아 비평과 픽션의 상호 침투에 대한 글을 쓴 적 있다. 비평과 픽션을 이어주는 가능한 다리들을 다소 산만하게나마 떠올려보고자 했는데, 당시에는 비평의 픽션을 비평의 형식(적 다양성)으로 구현하려고 시도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나는 비평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무용한 일을 벌이고 매번 실패하지만 형식적인 새로움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은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비평의 새로움이란(물론 매우 드문 확률로 형식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작품과 그것이 놓이거나 영향을 미치는 현실 사이의 관계를 조정하는 방식에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비평가의 수행성은 ‘담론 만들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그래밍 어드바이저 서동진은 한국단편영화 섹션의 특정 경향을 분류하며 영화들이 특정한 문화적 부족을 형성하고 있음을 이해하려고 시도해야 한다고 쓴다. 작품의 표면에 드러난 이야기나 이미지로 환원할 수 없는 영화 찍기가 갖는 수행적 측면에 주목하여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이미 만들어진 ‘작품’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 재현된 이야기와 이미지의 언어적 측면이나 미학적 측면을 헤아리려는 것과, 영화를 하나의 수행적 언어, 즉 일종의 ‘하기(doing)’로 간주하고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다른 접근이다. *주5 서동진은 이 글에서 영화를 특정한 주제나 담론으로 분류하기보다는 단편영화 찍기라는 문화적 수행성과 그 활동의 가치를 중심에 둘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사유하는 것은 “제작된 작품에 연연하지 않고, 감독이라는 텍스트와의 관계를 특권화하는 용어에 불신을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주6 감독이 자신이 만든 영화의 모든 부분을 통제하고 창조한다는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보았을 때 작품에 대한 논의는 그것의 주제나 의미, 의도 같은 것들에 의해 휩쓸려가기 쉽다. 반면 영화를 활동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영화를 이미 제작된 것이라는 한정된 텍스트가 아닌, 감독과 작품 사이에 놓인 관계의 완고함을 슬며시 흔들며 제작자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되고 구성되는지를 조망하게 하는 다층적인 텍스트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한다. 단편영화,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의 수행성이 공동체의 발견과 자기 구성의 쾌락에 있다면 이것은 비평의 수행성에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나 영화 비평은 하나의 작품에 대해 논할 수도 있지만 그 작품을 둘러싼 믿음이나 애정을 그러모으면서 특정 집단을 호명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물론 영화의 수행성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성립하는 것과 달리 비평은 단순히 ‘나’를 등장시키거나 일상을 전시하는 것만으로 비평적 효용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비평은 영화를 완결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면서 ‘작품과 나’를 연루시킬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고민으로 영화를 현실을 향해 연장시킬 수 있다. 비평은 담론의 부피를 가지지 않은 것, 지나치게 사소하거나 주변부적인 것, 일상과 비슷한 층위에서 간과되는 것들을 재발견하거나 다시 응시하자고 청할 수 있다. 비평의 수행성은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일상성의 속성을 재규정하는 기술이다. 그러므로 비평적 차원에서 작품을 현실과 매개하는 일은 분명 픽션의 기능을 지닌다. 이는 ‘나’라는 주어를 등장시킬 때만 어떤 활동이 수행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과 비일상적인 것,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는 선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운용하는 것이 비평의 수행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에 비평가의 일상이 식별 불가능한 상태로 용해되어 있다. 영화의 수행성을 중점에 둔다는 것은 감독의 지위를 특권화하는 관점으로부터 떨어져나왔을 때 더욱 잘 보이게 되는 작품들의 층위가 있다는 말이다. 덜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 조악한 영화, 그럼에도 사로잡는 영화. 카메라를 다루는 치기 어린 몸짓에서 순간적으로 묻어나는 광채가 있다면 그를 이야기해 봄 직한 것으로 부풀리고, 영화의 담론적 영토를 재구성하는 것은 비평가의 수행이 아닐까? 비슷한 관점에서 다시 보기를 청하고 싶은 것은 청소년 제작 영화 들이다.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만든 영화들과 영상 제작 문화를 단지 아마추어적인 것이나 미성숙한 단계로 한정시키는 것에 대한 묘한 반감이 있다. 그 시기의 기억이 수치스럽다면, 수치심이라는 바로 앞에 놓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해 청소년 영화의 한때라는 비가시적인 기억을 담론이라는 공통의 영토로 구제할 수 있을까? 어쩌면 청소년 영화의 스타일을 논해 볼 수도 있을까? <D-?> 중 유소라 의 < D-? >(2003)은 수험생이었던 유소라 감독이 직접 자신과 주변을 기록한 사적 다큐멘터리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인 유소라 감독은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며 본인의 일상을 기록한다. 주변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화면 안에 등장해 가상의 청중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학교생활과 가정에서의 일상, 충분히 사사롭지만 문제적일 정도로 내밀하지는 않은,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고3 수험생의 나날들. 입시제도에 대한 심정이나 수험생활의 고충, 장래에 대한 고민을 친구들에게 묻고 답하는 인터뷰는 짧은 호흡으로 리드미컬하게 쪼개어지고 재조합되면서 특정 무리의 집단적 고백으로 조성된다. 이때 아이들은 카메라를 의식하는 동시에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신의 동급생을 바라보고 있다. 유소라는 철저하게 카메라에 매개된 존재로 등장한다. ‘셀프 카메라’라는 형식이 충분히 어떤 문법으로 자리잡지 않았던 때에 스스로와 스스로의 일상을 향해 카메라를 드는 것은 분명 어색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어떤 형식이 이미 보편적으로 여겨지는 사후적인 자리에서 그것이 최초로서 유효했을 풍경을 생생하게 가늠해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동시에 많은 것이 당연해지거나 진부해졌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스타일화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일상의 기록이 자연스러워졌지만 2002년에 카메라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동급생들의 반응에는 부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아마도 유소라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어서 누구도 특별히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2014년 독립영화 기획전의 GV에서 유소라 감독은 학생이었던 당시 이미 영상 제작에 관해 여러 성과가 있었기에 제지를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학교의 지원을 받았다고 말한다. 사실 유소라 감독은 청소년 영화 제작 문화의 붐을 이끌었던 <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 >(이선희 외 9인, 1998)를 제작한 영파여중 방송반의 일원이었다. 제1회 서울 YMCA 청소년영상페스티발(주제: ‘오늘, 우리의 모습: 우리의 자화상’)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던 이 영화는 실제 일진회 무리였던 학생들을 연기자로 섭외하고 그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당사자가 직접 폭력을 재연한다는 측면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영화는 그러한 작품의 분류와 계보를 의식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실제 비행 청소년들이 등장인물로 분한 장선우 감독의 < 나쁜 영화 >(1997)에 대한 청소년들의 응답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의 설립자이기도 했던 김종현 선생이 영파여중 방송반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지도하에 함께 제작된 것이기에 어른들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의 형식은 어떤 미학적인 방법론이라기보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제도가 문제적인 것으로 낙인찍거나 방출시키려 하는 대상의 이야기를 주체화함으로써 제도와의 마찰을 일으키기 위한 사건에 가깝다. 실제로 이 영화가 발표된 뒤 방송반 담당이었던 김종현 선생이 학교에서 퇴출당했다는 일화가 설명해 주듯. 그리고 몇 년 뒤 선생은 다시 영파여고로 복직하게 된다. 이는 청소년의 영상 제작이라는 문화가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며, 동시에 이는 더 이상 ‘포스트 서태지 세대’가 가진 문화적인 정체성의 공유지대를 내보이는 수행성이 갖는 반격이 이전만큼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D-?>는 <너희가 중딩을 아느냐?>처럼 문제적인 아이들을 다루지 않는다. 다만 수험생이 학교에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다소 위험한 장면(수업하는 장면이나 체벌하는 영상 등)을 촬영하는 데도(비록 이것이 녹화 중이라는 카메라 신호를 가리고 몰래 찍은 것이라 하더라도)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다. 영화는 같은 학급 친구들이 교실 컴퓨터에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을 발견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계속 비슷한 설명을 동어 반복하는 선생님의 수업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도 한다. 남자가 너무 궁한 나머지 담임 선생님을 보며 윤계상을 떠올린다는 지극히 소녀적인 차원에서 도발적인 고민들도 담겨있다. 영화는 수능을 두 달 넘게 앞둔 D-70부터 수능 당일을 거쳐 졸업식, 그리고 졸업 이후 대학에 입학한 정황까지 시간을 내림차순으로 충실하게 따라간다. 하지만 유소라 감독이 수험생활 당시 촬영한 푸티지를 편집한 것은 성인이 되고 난 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공개 당시 이토록 사소한 내용이 정녕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의아함과 더불어 영화가 청소년 섹션인지, 성인 섹션인지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이 영화가 졸업 이후의 시점에서 회고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기록을 촬영한 자가 수험생 당사자이며, 자신을 둘러싼 현장을 증언하고 있고, 카메라가 학교라는 제도의 규칙과 규율을 얼마나 침범할 수 있는지 의문에 부치는 식으로 제도의 윤곽을 드러내는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려 이 영화는 성인이 된 시점에서 청소년기의 기억을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과 청소년기를 단순히 입시라는 제도의 전환점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청소년기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수능이 끝나고 처음 합법적으로 술을 마시는 날? 대학 입시 결과 발표를 듣거나 재수를 결정하는 순간에? 졸업식 날 어설프게 화장한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릴 때? 어쩌면 청소년기는 한번도 끝난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시스템 내부에서 그것과의 마찰을 통해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표현하는 <D-?>는 영화의 수행성이 청소년이라는 지위와 범주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청소년 영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제작 주체의 나이가 청소년에 해당한다는 이유만이 아니라, 그 영화가 바탕으로 하는 수행성의 범주에 따라 청소년 영화라는 스타일을 정의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나치게 조악하거나 서툰 화면이 일정 부분 청소년기 특유의 풋풋함과 열기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굳어진 것은 사실상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흥했던 청소년 영화 제작 문화가 끼친 영향이 아니었을까? 디지털이 보편화된 전환기와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세대의 갈급함이 맞닿는 지대에서 탄생한 스타일. 특정한 영화적 실천의 계보나 아카데믹한 것을 의식하지 않(못하)고 그저 찍겠다는 충동이 자제할 길도 없이 먼저 앞서나가서 이상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을까? 교육과 창작, 반발심과 순응 사이에서 지글거리는. <D-?> 중 이우정 감독의 < 애드벌룬 >(2011)을 다시 살펴보는 게 하나의 답이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단출하다. 평범한 아파트에서 정신없이 등교 준비를 하는 여고생의 아침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는 두 여자애의 혼란스러운 친밀함과 한밤의 일탈이라는 비일상적인 소동극으로 향한다. 아파트 옥상의 애드벌룬 안에서 술을 마시던 아이들이 질식사했고, 주인공은 운 좋게 사고를 면한다. 그러나 거기 휘말린 지봉이라 불리는 여자아이의 죽음은 누군가의 청소년기에서 영영 불가해한 추문으로 떠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보다도 이야기가 이미지화되는 방식이다. 2011년에 제작된 <애드벌룬>은 의도적으로 열화된 화질로 촬영되었다. 윤성호 감독은 <애드벌룬>이 ”요새 안 쓰는 베타캠(정식 명칭은 베타캠betacam 비디오 캠코더. sony에서 개발한 방송용 ENG 카메라, 설명은 필자)을 굳이 대여해 특정 시기의 스탠다드(1990년대 교육방송 청소년 드라마와 중고등학교 영상제작반의 의욕적인 과업 사이 어딘가)를 일부러 서툴게 재현한다” *주7 라고 말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장면 또한 캠코더로 촬영된 푸티지를 활용한다. 몰래 교실을 촬영한 듯한 영상과 함께 또래 여학생들을 둘러싼 소문을 무심하게 읊조리는 나레이션이 들린다. 이 푸티지는 사실상 영화 전체의 이야기와는 무관하다. 언제 어디서 누가 촬영했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 사실이 중요하지도 않다. 이유리와 김애숙, 한혜정이 누구인지도. 오히려 영화와 상관 없어 보이는 오프닝을 영화와 접속시키는 것은 출처 미상이라는 이미지의 익명성과 화면의 질감이다. 정제되지 않은 캠코더 화면과 서사를 위해 봉사하지 않는 이미지 자체의 활력, 저화질의 푸티지는 베타캠으로 촬영된 장면과 큰 낙차 없이 어우러진다. <애드벌룬>의 오프닝씬이 채택하고 있는 것은 여자 청소년기라는 특정한 시기의 혼란스러움, 잔인함, 기억과 감각에 대한 인용이다. 영화는 효정이라는 인물과 친구 지봉(지연)을 중심으로 벌어진 하루의 해프닝이라는 특정한 이야기에 머물 수도 있었지만 굳이 영화의 앞과 뒤에 기록 푸티지를 삽입해 드라마를 공적인 기억으로 확장시키려 한다. <애드벌룬> 중 화면과 편집, 대화를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서 이 영화의 의도적인 서투름은, 윤성호의 말대로 청소년 드라마의 외피를 차용해 그것을 비트는 방식으로 ‘고유한 것’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전략일 수도 있다. 허나 이러한 고유함은 청소년 드라마의 스타일과 영상제작반 과업의 활기를 연상시킨다는 공통의 기억지대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영상제작반의 활동은 묘사되지 않으며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어딘가 미숙한 듯한 연출과 편집, 방송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질감은 분명 아마추어적인 활동을 상기시키고 있다. 어쩌면 뉴진스의 디토(ditto)식으로,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캠코더를 든 여자 청소년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영화의 앞뒤로 삽입된 익명의 푸티지를 다시 떠올려보자. 지나치게 밀접하고 실시간적인 이미지는 이것이 촬영되었을 방식의 내밀함을 은연중에 연루시킨다. 영상이 암시하는 것은 손에 카메라를 들고 학교를 관음하는 내부자적 시선의 은밀함이며, 이는 <애드벌룬>을 보는 내내 이상한 불길함으로 달라붙어 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 영화의 서브 장르는 공포다. 나레이션이 덤덤하게 들려주는 괴담 같은 소문, 과고에 진학했던 한 여학생이 아버지의 압박에 못 이겨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는 청소년기 특유의 잔인함과 서늘함을 증폭한다. 학원물에 등장하는 캠코더 영상이 노스텔지어뿐 아니라 공포를 자아내기도 한다는 사실은 이미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김태용, 민규동, 1999)가 보여준 적 있다. 무분별한 일상의 순간을 충동적으로 기록하는 캠코더의 조작 방식과 그렇기 때문에 거기 무엇이 찍혀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유령을 불러들이기에 좋은 환경이다. 아는 만큼 알고 모르는 만큼 모르는 청소년들의 직설은 충분히 잔인하다. 정제되지 않음은 실은 매우 사실적인 동시에 장르적인 감각이다. <애드벌룬>은 성인 연출자(청소년들이 제작 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가 만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학교라는 시스템 내부의 생태계와 그 혼란을 거의 피부로 맞닿아 있는 듯한 감각을 준다. 이 영화가 진짜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리얼리즘 영화의 수사를 애써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영화라는 수행의 아마추어적인 특징을 전유해 서사로 편입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서사와 무관하지 않은 어떤 불안의 정체를 성공적으로 표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툴고 미숙한 것을 부족함에 그치지 않고, 담론적 부피로 만드는 것. 4. 청소년이 제작 주체가 된 영화들에 대한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오세섭 은 청소년들이 주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반영된 논픽션을 제작하면서 자기 재현의 효과를 얻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청소년 제작 영화의 두드러진 특징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주8 이들이 묘사하는 내용은 학교폭력과 성적, 진로문제, 가족 관계와 사회에 대한 관심 등이라는 주제의 큰 경향 안에서 반복된다. 1998년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청소년 제작 영화에서는 초창기의 관행이 반복되고 있으며 입시 위주의 교육 정책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경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주9 확실히 청소년들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는 입시 제도에 대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자주 경유할 수밖에 없다. <D-?>과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입시 생활의 부조리함으로부터 출발하는 홍다예 의 < 잠자리 구하기 >(2024) 또한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은 수험생인 감독 자신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추후에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우선 그 시절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본능적인 예감, 그리고 반쯤은 입시 제도에 대한 반발심으로 촬영된 것들이다. 유소라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홍다예 감독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본다. <잠자리 구하기>가 보여주는 현실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감각은 대상과의 영점조절을 의도적으로 실패함으로써 내가 너를, 우리가 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한다. 주제와 내용을 중심으로 영화의 경향을 범주화하는 관점의 부작용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충돌이 그 안에서 어떻게 분화하는지,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기입하는지 추상화한 채 단순한 치기 어림으로 노이즈와 아우성을 뭉뚱그려서는 안 될 것이다. 비평이 언제나 상대보다 많이 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일이라는 세간의 오해에 따르면 비평은 항상 성인의 시점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비평의 청소년성이 가능한지 묻고 그 치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잠자리 구하기>에서 입시에 실패한 감독은 재수를 택한다. 사람들은 이 기간이 유예기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는 답답함과 분노, 우울감은 입시라는 사건으로부터 멀어진 뒤에도 여전히 그 사건의 후유증과 싸워야 하는 과업으로 남는다. 감독의 나레이션처럼 우리는 “아직 유예기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제도 바깥에 놓인 시간이 있을지언정 삶 바깥으로 잠시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삶의 일부란 없다. 청소년기와 아직 끝장을 보지 못한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기분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잘못된” 사람이 가진 우울의 궤적을 표면화하는 기록들, 그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고 편집해야겠다는 충동으로 남아서 영화의 수행성과 접속한다. 그러니까 청소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건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는 식의 낙관이 아니다. 청소년기를 제도적 나이가 아니라 스타일로 확장될 수 있는 특정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정의할 때 종종 불가해한 활력을 띤 영화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지반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이야기로 환원되지 않는 소음과 신음, 반발심, 특정 시기가 지나면 부끄러운 것으로 판명 날 어떤 충동들, 미래에 무감한 투신을 마주하는 기쁨이 있고 그 충격이 글을 쓰게 한다면 기어이 그렇게 할 것이다. 왜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앞으로도 나는 너무 모르고, 모를 거라는 예감 속에서 쓰겠지만, 모르면서 일단 앞서나가는 마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음을 부정하거나 배신하고 싶지 않다. 그 마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이 아는 것으로 전환되는 순간에 발각될 미래의 수치심을 감수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수치심을 기다리는 일. 부정확함을 견디는 것. 글쓰기는 언제나 불안이라는 뒤축을 밟고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일이니까. 거의 넘어지듯이. <잠자리 구하기> 중 *** 주1. 이보라, 「쓰러진 활자들을 일으키기.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하지 않는가.”」,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 2023, 106쪽. 주2. 노엘 캐럴, 이해완 옮김, 『비평철학-On Criticism』, 북코리아, 2015, 159~164쪽. 주3. 2001년, 소니 픽쳐스 엔터테인먼트는 데이비드 매닝이라는 평론가가 작성한 < 기사 윌리엄 >(브라이언 헬거랜드, 2001), < 애니멀 >(루크 그린필드, 2001) 등의 영화에 대한 호평을 인용한다. 코네티컷주의 소규모 신문 릿지필드프레스의 필자라고 알려진 이 데이비드 매닝이라는 평론가는 그러나 가상의 인물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평론가의 이름으로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게재하고 이를 광고에 활용한 것이다. 어디에도 없던 평론가 데이비드 매닝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미 유령적일뿐 아니라 영화 비평이 산업의 가장자리에서 니콜 브레네즈의 표현대로 ‘부역자들’로 과대 대표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온전한 의미의 비평 활동이 수용될 장소가 희박하다는 점을 알려준다. 주4. 스즈키 이즈미, 최혜수 옮김, 『여자와 여자의 세상』, 문학과 지성사, 2024, 407쪽. 주5. 서동진, 「전주국제영화제가 소집한 19편의 한국 단편 영화」, 《독립영화》 통권9호, 2001, 10쪽. 주6. 같은 책, 7쪽. 주7. 윤성호, “ [초이스]애드벌룬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 2012. 3. 6. 주8. 오세섭, 「청소년 제작 영화에 나타난 자기표현으로서의 재현의 의미」, 《씨네포럼》 제35호, 2020, 89쪽. 주9. 같은 책, 94쪽. 김예솔비(영화평론가) l 영화를 중심으로 시각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이따금 영화 비슷한 것을 만든다.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1. 잘 알려진 대로 음악 애호가였던 롤랑 바르트는 피아노를 웬만하면 느리게 치는 편이었다. 언젠가 바르트는 우연히 라디오에서 흐르는, 하프시코디스트 블랑딘 베를레가 연주하는 바흐 파르티타 4번의 쿠랑트를 듣고는 너무 빠른 속주에 자신이 알던 그 곡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고 술회한다. 그러나 쿠랑트는 그 어원(courir, 달리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애당초 쾌활한 춤곡인 터, 실상 바르트의 기준점은 느린 자기 자신이었다. *주1 달리 말해 대개의 곡을 느긋하게 연주했던 바르트가 베를레를 특히 겨냥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것이 이미 표준이 된 현대적 기준 자체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한편 나는 이 불만을 발화하는 그의 위치가 퍽 재밌다. 그가 요구한 기준이 여타 프로페셔널 연주자의 ‘정통적인’ 해석이나 정련한 이론에 근거한 게 아니라 오로지 자의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물론 그는 음악비평을 위시하여 악기 연주와 작곡까지 꾸준히 실행했지만 끝내 아마추어 음악가로서의 자신을 긍정했다는 점에서, 이 일화 속 바르트의 발언은 비평가의 무리한 지적과 외부인의 ‘미흡한’ 불만이 동시에 발휘된 경우처럼 느껴진다. 그는 괄호에 넣어 덧붙인다. “(이것은 음악 애호가의 자만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왜냐하면 애호가의 욕망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 쿠랑트는 그 자체로 (분명 역사적 진실에 따라) 연주되었지만, 나를 위해 연주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2 말하자면 내게 비평 또한 “역사적 진실”에 대한 충실도를 떠나 “나를 위해 연주된” 것을 찾는 과정인 듯하다. 나는 바르트의 이 마음가짐이 내가 영화에 느끼는 불손한 태도와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느꼈다. 사실 이미 정해진 원고 분량을 훌쩍 넘겼음에도 송고 후 며칠이 지나서 나는 이 글의 서두를 다시 쓰고 있는데, 이 코너의 기획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비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이 지면에, 비평에 대해서도 비평가에 대해서도 쓰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은 주제였을까? 솔직히 내게 영화평론가로서의 자의식은 별로 없고, 더 솔직히 그럼에도 영화평론가로서의 무게감은 너무 크다. 하나에서 기인한, 거의 없는 것과 너무 큰 것이 내 안에서 이상한 대결을 벌이는 탓에 이걸 직접적인 글감으로 삼는 글쓰기가 다소 곤란했다. 물론 비평을 글쓰기에만 국한할 수 없는 시대다. 어떤 추천의 목록과 그 방식, 기획과 운영, 수입과 수출, 또한 동료를 모으는 일까지도 모름지기 비평가의 ‘활동’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허덕이지만, 이러한 수행을 시기와 맥락에 맞게 이어나가는 동시대의 탁월한 비평가들은 분명 여럿 있다. 다만 나는 앞서 언급한 사례에 공감한 바, 보다 소박한 의미에서 태도로서의 비평을 돌아보고 싶다. 결국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당연히 할 말이 있기 때문인데, 이때 중요한 것은 (바르트의 불평처럼) 납득할 수 없는 표준을 의심하고, 대상과 거의 무관한 나를 데려와서라도 나에게 효과적인 것을 찾는 일이다. 내 사유를 보편과 일반에 등재시키고픈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하다면) 당연한 소리는 덜하고, 의외의 얘기를 더하고 싶다. 연장선상에서 (이제는 왠지 자주 오용되는 것 같은) 정확하게 쓰라는 주문에 오기가 생기곤 하는데, 나는 평문이 정교해지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정확해질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돌고 돌아 영화로 간다면, 오염 없는 적확성과 유의미의 강박을 동력 삼지 않는 영화들, 도리어 먼지나 얼룩을 묻히고도 별로 개의치 않는 이상한 욕구의 영화들에 대해 더 말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나는 대체로 이곳 저곳을 오가며 힐끗 엿보는 사람이다. 2. “우리가 어딘가 로부터 듣는 것이 듣기의 본질이라면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의 앞 에 있는 것을 )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3 사진의 존재론적 모호성을 설명하기 위해 청각과 시각의 차이를 논하는 스탠리 카벨은 듣기와 보기 행위에 있어 위치/방향의 문제를 지적한다. 우리는 분명 우리 앞에 있는 것을 본다. 문제는 우리가 앞에 놓인 것, 의 앞면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우리 앞의 그(것)도 우리를 보고 있다면 눈을 마주칠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약간 초조한 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곤충처럼 겹눈을 지니지 않은 탓에 앞에 있는 것’밖에’ 보지 못하고, 이에 더해 타자인 대상의 앞뒤 또한 결정할 수 없다. 우리가 우리의 앞에 있는 것을 볼 때,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을 보고 있나? 먼저 나는 어떤 뒷모습을 떠올렸다.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인데, 첫째로는 어느 비장하고 숭고한 뒷모습이고, 둘째로는 그 뒷모습을 비장하고 숭고하게끔 보이도록 만드는, 그의 앞에 펼쳐진 풍경이다. 그 풍경은 인물에게는 전경이겠지만 원근법에 의해 우리에게는 원경이다. 우리는 인물의 뒷모습과 더불어 그가 보고 있는 것까지 볼 수 있다. 모든 레이어를 조감할 수 있는 감상자의 위치 덕에 주체적인 응시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못지않게 우리는 (카벨이 “회화는 세계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듯 그 본연의 완결성이라는 속성에 더해) 인간의 시점이 지니는 일방향성이라는 강력한 한계에 도착하게 된다. 시선의 문제는 인식의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의 얼굴을 영원히 볼 수 없다(=모른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1818) 옆모습(profile)에 관해 떠올릴 수도 있다. 내게 옆모습이라는 개념은 주로 피아니스트의 무대를 상기시킨다. 일반적으로 오늘날의 리사이틀에서 연주자는 관객에게 측면을 보인다. 이 측면의 무대화는 (프란츠 리스트가 기원이라는 통상의 오해와 달리) 얀 라디슬라브 두세크가 최초로 시도한 것이었는데,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시초 격인 그가 연주의 기본 위치로 옆모습을 택한 이유는 그것이 연주자의 입체적인 윤곽을 과시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연주자는 손뿐만 아니라 신체 전부를 적재적소에 써야 이상적인 연주에 도달할 수 있다. 다채롭게 변모하는 표정과 흔들리는 상체는, 그러나 청중에게 ‘완전히’는 노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절반의 획득/결핍이야말로 연주자를 향한 호기심을 배가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음악의 기이한 위상을 상상하게 만든다. 연주자는 입퇴장 시에만 청중에게 인사할 뿐 음악을 만들 때는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정면의 욕구는 해결되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화면 분할이나 오버랩의 기술을, 무엇보다 몽타주의 기법을 터득한 매체라서 우리에게 그(들)의 얼굴을 짜잔, 보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는 시야를 조각내는 기계인 카메라로 담은 세계이다(인간의 신체를 모방하며 발전해온 많은 기계장치가 그렇듯 그 기원적 조건을 인계받았을 뿐이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말대로 ‘겨우 오려낼 줄 아는 사물’을 통해 우리는 애당초 분절과 절삭을 거친 모습을 간신히 제공받을 따름인지라,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을 무한한 역량으로 긍정하기에는 어쩐지 미진함이 남는다. (가령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병의 방>(2015)처럼 공간의 삼면을 스크린으로 이용해 동일한 인물과 그 주변을 다양한 각도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시도의 경우도 영사 과정을 사후적으로 활용한 것이며 이는 물론, 영화관에서 진행될 수 없는 작업이다. 결과적으로도 우리는 다면을 일체에 조망하지 못하고 각각의 화면을 띄엄띄엄 관람할 수밖에 없다.) <열병의 방>(아핏차퐁 위라세타쿤, 2015) 3. 앞에 있는 것을 본다는 감각이 유효하더라도 정면을 보지 않으면 어딘가 부족한 느낌은 영화를 볼 때 역시 우리를 자극한다. 일단 정면 쇼트가 없는 영화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부족한 정면’, 그로 인한 ‘마주침의 결여’를 도리어 영화가 핵심적인 동력으로 삼을 때 우리는 그 여집합을 풍족하게 껴안게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엿보기의 영화들 .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할까? 가령 무언가를 바라보는 행위 자체를 엿보기와 동일시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관음적 요소를 서사의 국면마다 개입시키는 < 괴인 >(이정홍, 2022)은 어떨까. <괴인>의 도입부에는 어두운 밤 중 두 남자가 어느 문앞에서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꾸 비밀번호를 틀리는 그들은 이 집의 주인이 아닌 것 같다. 추후에 밝혀지지만 그들이 머문 곳은 개업을 앞둔 피아노 학원이고 두 남자는 그곳의 공사를 맡은 목수들이다. 기홍은 다음 날 공사를 마저 진행하기 위해, 고객인 원장의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학원을 간밤의 잠자리로 이용한다. <괴인>(이정홍, 2022) 중 기홍은 눈을 감기 위해 그곳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날 그는 예기치 못한 사태를 맞닥뜨린다(흥미롭게도 이 사실마저 얼마 지나서야 알게 된다). <괴인>은 주인과 침입자라는 대비된 설정을 반복해 제시하면서도 그 양분된 세계에 머무르기보다 인물들의 동선마다 회색지대를 깔아놓는데, 이 과정에서 엿보기의 충동을 여지없이 기입한다. 남의 집안을 훔쳐보기(그러다가 휴대폰을 떨어뜨려 한쪽이 까맣게 나간 액정 화면), 답사의 명목으로 공간을 힐끔거리며 관찰하기, 심지어 계절이 지난 어느 날 길을 걷다 우연히 스쳐지나가는 어떤 얼굴을 알아보는 것까지. 자유로운 시선이 아니라 어떤 낌새와 기미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만 유유하게 바라보는 이 찰나의 행위는 인물들 사이에 완벽히 봉인되지 못하고 새어나가는(영화의 주요한 사태를 빌려 말하면 ‘누수되는’) 관계의 파열음을 누적시키며 끝까지 미스터리를 야기한다. 인물들은 편하게 대화하는 듯하지만 매번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나누는 메시지에도 의중이 애매한 뉘앙스가 오가고, 오랜만에 식구들과 시간을 보낼 때조차 개인이 발휘해야 할 의무가 마치 감시하듯 맴돈다. 보기는 봤지만 정확히 본 것이 아니라 확정할 수 없는 사태가 연속된다. <괴인>은 인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모호한 확실함(혹은 그 역)’을 섣부르게 ‘묘사’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일별’하기 때문에 성공적이다(그 점에서 하나가 기홍에게 구태여 다시 돌아와 자신이 자동차 지붕을 망가뜨린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이 사건의 유일한 증거로 기능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한편 화면상에서 시각적으로 거의 와해된 조건을 설정함으로써 도리어 관객에게 엿보기의 감각을 완전히 이양해버리는 사례도 있다. < 물안에서 >(홍상수, 2023)의 개봉 당시, 언론시사회에서조차 이 영화의 화질을 영사 사고로 착각해 관객이 문제를 제기한 해프닝도 있었고, 시종 흐릿한 화면을 두고 제목 그대로 수중의 느낌을 표현하려 한 것이냐는 농담 섞인 평이 돌기도 했다. 말하자면 참을 수 없는 화면의 흐릿함. (초반부 약간을 제외하고는) 끝까지 초점 없는 화면으로 일관하는 이 영화를 관습적인 언어로 규명하기에는 아직도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영화를 보고 말하는 작업에서 거의 불가피한, 장면 내부에 배치된 시각적 요소들의 기술(記述)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난감할 수밖에 없다. <물안에서>(홍상수, 2023) 중 그러나 <물안에서>가 형상을 분명히 제시하지는 않는다고 영화를 지탱하는 모종의 조건들을 아예 유폐한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제시된 것을 우리는 어떻게 본 걸까. 그냥 단순히 흐린 것을 깨끗하게 보는 드문 경험에 참여한 것일까(아니면 그 반대인 걸까)? 특기할 만한 지점 중 하나는 영화의 서사다. 홍상수 영화의 이야기를 쉽사리 정돈하는 일은 몹시 어려운데, <물안에서>는 시공간을 불확실하게 맞물려놓거나 복수의 구조를 경합시키는 시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서사를 파악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한편 우리는 인물들의 얼굴과 표정, 자세와 제스처 등 비언어적 표현들을 소상하게 살필 수는 없는데, 대신에 우리는 이들의 (이마저도 종종 ‘불성실’하게 처리된) 목소리, 그리하여 서술되는 이야기를 건네받게 된다. 정면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와중에 이들의 말은 계속되고, 심지어 관객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시시콜콜 얘기하는 그들은 우리에게 시각적 경험의 불확실성을 절감하게 만든다. 관객은 이 갑갑한 화면을 정면으로 (못) 보면서 이미지의 제한된 용법이 단일한 서사 안에서 문법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 함께 놓인다. <물안에서>는 극영화에서 서사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으로써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명쾌한) ‘화면’이 역할을 거부할 때, 이 불가결하다고 간주되는 요소의 찌그러진 상태 와중에도 기묘하게 지속되는 영화의 방향을 새롭게 일깨운다. 우리가 보는 것은 밝은가, 어두운가. 또렷한가, 흐릿한가. 움직이는가, 정지해 있는가. 짓물러진 화면은 이 판단을 진정 불가능하게 하는가? 그렇다면 영화는 성립하지 않는 걸까? 열화된 화면을 보는 내내 우리가 (물리적으로 정확히 볼 수 없다는 의미에서) 엿보고 있다는 감각이 피어오르는 한편, (못) 보기의 문제가 역설적으로 정말 본다는 것의 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물안에서>는 듣기의 작업과도 연동하여 주장한다. 예컨대 남희가 새벽에 들었다던 “정신 차려!”라는 말은 어디서 들렸으며 누가 말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는다. 이 잠수된 것 같은 화면에서 그 존재가 해소되지 않은 청각적 정보가 대사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다. < 도망친 여자 >(홍상수, 2019)에서 대사로는 대두되지만 그 모습은 제시되지 않는 ‘3층’이나 ‘위층’, ‘지하실’의 존재(부재)가 떠오르기도 한다. 종장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서론에 언급했던 회화와는 전혀 다른 시대와 맥락에 놓여 있음에도 몹시 완결된 인상을 전달하는 뒷모습이다. 역시나 그를 돌려세우고픈 마음이 일지만, 흐르는 물소리가 화면을 메울 때 우리는 이곳이 영화의 종착지임을 직감하게 된다. 그가 점점 멀어지고 우리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일단 엿보지 않으면 보는 것은 시작도 할 수 없다. *** 주1. 다음의 논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김주원, 「롤랑 바르트의 음악비평」, 『불어불문학연구』, 제136집, 2023, 144쪽. 주2. 롤랑 바르트, 변광배 옮김,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민음사, 2021), 전자책 377쪽. 주3. 스탠리 카벨, 이두희·박진희 옮김, 『눈에 비치는 세계』(이모션북스, 2014), 53쪽 이보라(영화평론가) l “나를 위해 연주된 것”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일단은 쓴다. 씨네21 영화평론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비평공모 당선.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집필.
지난 4월 8일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감독으로 불리는 박남옥 (朴南玉) 감독이, 향년 94세의 나이로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별세했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 처음 열린 서울여성영화제를 통해서다. 그 때 한국영상자료원에 결말부 영상과 일부 사운드가 유실된 채로 네거티브 필름만 보관되어 있던 그의 연출작 < 미망인 >(1955)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고, 이를 통해 그간 한국영화사 기록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박남옥을 시작으로 한 역사 속 여성영화인들의 활동상도 새롭게 조명되었다. 당시 이러한 작업을 주도한 여성영화인들은 사단법인 여성영화인모임을 결성하였고, 『여성영화인사전』(주진숙·장미희·변재란 외 지음, 도서출판 소도, 2001)과 다큐멘터리영화 < 아름다운 생존-여성영화인이 말하는 영화 >( 임순례 , 2001) 등의 결실도 맺게 된다. 박남옥 감독이 그 출발점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학생 박남옥 열렬한 영화 팬에서 영화계로 1923년 경북 하양에서 태어난 박남옥은 어려서부터 영화를 무척 사랑했고, 문학, 미술, 체육 등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던 만능 소녀였다. 특히 운동 실력은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인데, 당시 신문기사를 검색해 보면 1938, 39년 전조선육상선수권대회에서 투포환 부문의 우승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타고난 체력은, 훗날 영화연출 현장에서 갓난아기를 둘러업은 채 레디 고를 부를 수 있는 원동력이었지 않았을까 싶은 대목이다. 신문기사 속 그의 이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당시 각 대학의 입시합격자를 게재한 1940년 3월 27일자 『동아일보』의 ‘입시합격발표’란을 살펴보면, 박남옥은 이화여자전문학교의 합격생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가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해방 이전의 이력들이 정확하게 확인되는 셈이다. 박남옥은 일제 시기 조선영화의 최고 스타였던 김신재 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영화잡지인 『신영화』(1942년 11월호)에 나온 최인규 영화에 대한 기사 중 부인 김신재에 대한 언급을 읽고 팬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 < 집없는 천사 >(1941)에서 꽃파는 소녀 역을 맡은 김신재의 모습에 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의 매일 김신재에게 팬레터를 보내고 기사와 사진들은 모두 스크랩했다는 그의 증언은, 식민지 조선의 한 소녀가 영화에 열중하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어 무척 인상적이다. 사실 필자는 대학원 석사과정 중 <아름다운 생존>의 촬영으로 참가했는데, 이 때 박남옥 감독을 실제로 뵙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다. 일제 말기 노골적인 국책영화들 사이에서 조선의 농촌 풍경을 담은 < 풍년가 >(1942, 방한준 )가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고, 최인규 의 < 수업료 >(1940) <집없는 천사>가 얼마나 뛰어난 예술영화였는지 증언하시던 대목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이기 전에 식민지 영화문화를 향유하던 영화 팬이었고, 초창기 한국영화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박남옥이 본격적으로 영화 작업에 참여할 기회는 해방과 함께 찾아왔다. 친구의 남편인 윤용규 감독(그는 해방기의 대표작 < 마음의 고향 >(1949)을 감독하고 월북했다)의 소개로 조선영화건설본부 산하의 광희동 촬영소에 스태프로 입사한 것이다. 그 곳에서 드디어 꿈에 그리던 김신재를 만날 수 있었고 이후 말년까지 인생의 친구로 지내는 출발점이 된다. 이 시기 박남옥은 돈암동의 예술인촌이라 불린 마을에 살았는데, 바로 이웃이 유명한 영화인들 즉 김신재와 최인규 부부, 김소영 과 무용가 조택원 커플, 문예봉 , 전창근 , 독은기 , 윤용규, 한형모 등이었다. ‘여성영화’ <미망인>의 완성과 의미 해방 직후 영화인들이 집결했던 광희동 촬영소에서 편집조수로 일하던 박남옥은 드디어 현장으로 나가게 된다. 바로 배우 최은희 의 데뷔작이기도 한 < 새로운 맹서 >(1947, 신경균 )에서 스크립터를 맡은 것이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당시 영화 현장에 정착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딴따라 판’을 벗어나 정상적인 결혼을 바라는 부모의 강요로 귀향을 선택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그의 열망이 너무나도 강했던 것일까.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박남옥은 다시 영화계로 돌아갈 기회를 잡는다. 1953년 국방부 촬영대에 입대해 기록영화 작업에 참여했고, 극작가 이보라를 만나 결혼까지 이른다. 전쟁이 끝났고, 드디어 그는 자신의 영화에 착수한다. 박남옥의 데뷔작이자 유일한 작품인 <미망인>(1955)은 이보라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일단 언니에게 돈을 빌려 영화에 착수했다. 영화사 이름이 ‘자매영화사’인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개인적으로 친했던 이민자 를 주연으로 내세웠고, 스태프 역시 지인들로 꾸렸다. 촬영도 아예 저예산 제작의 기본이라 할 16미리 필름으로 시작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데뷔작에 착수하기까지도 힘들었지만, 영화 현장을 유지하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촬영하는 날보다 제작비를 빌리러 다니는 날이 더 많았고,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포대기에 둘러업고 촬영 현장을 누볐다. 직접 편집을 하고 전창근 감독 등의 도움으로 겨우 녹음실을 구해 후반 작업을 마치는 등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영화를 개봉시켰다. “여성감독이 아니면 착안하기 어려운 ‘앵글’의 각도와 사건의 ‘템포’ ‘리듬’의 명쾌, 화면과 동작(연기) 등에 생활감정을 예리하게 융화”(『동아일보』 1955.2.27)했다는 개봉 직전 영화평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의 영화는 평단의 인정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후 여성들의 욕망을 과감하게 묘사한 그의 영화가 너무 앞서갔던 탓이었을까. 변재란 등의 영화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미망인>은 단지 최초의 여성감독의 영화로 수식되기보다 여성영화로서의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박남옥감독 촬영 현장 박남옥 감독이 남긴 것 안타깝게도 박남옥은 더 이상 영화를 만들지 못했고, 1960년 창간된 『씨네마 팬』의 편집장으로(그는 해방 전 대구의 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하며 영화평을 쓰기도 했다) 영화 일을 이어나가다, 영화계를 떠나게 된다.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영화판에서 기회를 잡은 것이 해방 직후와 한국전쟁 시기 그리고 전후, 즉 한국 사회가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박남옥 이후 < 여판사 >(1962)의 홍은원 , < 민며느리 >(1965)로 연출에 데뷔한 배우 최은희, < 첫경험 >(1970)의 황혜미 , < 수렁에서 건진 내딸 >(1984)의 이미례 등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여성감독이 이어졌다. 이후 임순례 감독을 필두로 굳이 여성감독으로 부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성영화인들은 각 분야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이 박남옥에서 출발한 계보를 이룬다고 또 박남옥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감독 데뷔의 기회를 잡기 위한 고군분투의 역사가 박남옥에서 출발했다는 사실, 그의 영화 인생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김영희 편집기사와 박남옥 감독 본 글은 2017년 4월 『씨네21』호에 실린 '[추모] 김신재를 동경하던 '영화소녀' 영면에 들다'를 재수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