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삼국유사
- 감독
- 이상훈
- 제작년도
- 2006
- 출연
- 김용준, 문남숙, 박신희, 엄태국
어떤 영화를 초이스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문득 가장 애정이 가는 영화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결국은 필자가 출연한 영화가 가장 잘 아는 영화이자 가장 애정이 가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으로 집어보다 보니 어느덧 열 편 이상의 장·단편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직 주연작은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럼 주연급(?)의 영화는 무엇이었나 생각하다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 위대한 선수 >이다. 엉겁결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게 얼렁뚱땅 출연한 영화의 연기가 제일 좋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 후로도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2주 전에도 다른 영화에서 또 회사원으로 출연했으니 말이다. 결국 직장생활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직장인의 생활연기를 자주 한 셈이다. < 위대한 선수 >는 제목처럼 거창한 영화는 아니지만 결국 우리 시대의 위대한 선수들인 아버지들의 고단한 일상을 블랙코미디로 표현한 영화다. 영화의 매 순간은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이자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포함된 우스꽝스런 풍경의 연속이다. 그러나 보고 나면 정말 씁쓸해지는 블랙코미디에 충실한 영화라 할 만하다. 힘찬유통의 사내 체육대회의 일환인 축구경기를 생중계하는 과정을 그린 <위대한 선수>는 왜 축구를 하는지도 모르고 단지 사장의 취향이 축구라 그저 영문도 모르고 우왕좌왕 축구경기를 준비하는 사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노동의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직장에 매여서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쉴 틈 없이 달리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직장인들을 은유하는 이 영화는 직장이라는 또 다른 전쟁터에서의 계급관계와 가족 내에서 그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해서 가장으로서의 힘도 권위도 잃어버린 아버지를 우스꽝스럽게 그러나 아주 처절하게 그리고 있다. 기다리는 사장은 오지 않고 결국 축구경기를 하지도 못한 채 그저 이리저리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멀리서 보면 소동에 가까운 희극이지만 한 뼘 앞에서 보면 그들 각자의 웃지 못할 비극을 그리고 있다. 불행히도 이들의 모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좀처럼 체감 경기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더욱 이 영화의 현재성은 돋보인다. 코미디를 코미디답게 만든 작품이자 진한 페이소스가 묻어 있는 이 작품에서 코미디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기에 수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위대한 선수>다. 전형성을 가진 인물들과 비현실적일 것 같은 상황이지만 우리 주변의 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을 그린 <위대한 선수>는 단편영화다운 간결함과 뚜렷한 메시지, 그 틈을 밀도 높게 메우고 있는 에피소드들이 잘 버무려진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바치는 애정 어린 헌사라 할 만하다. 4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당시로써는 드물게 단편영화로서는 거의 최초에 가까운 레드카메라로 촬영한 < 위대한 선수 >는 필름에 가까운 화질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과 지금은 많이 알려진 배우들의 출연으로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곽도원, 이상훈 등 많은 영화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도 있고 여주인공은 이 영화 이후 걸그룹 ‘에이프릴 키스’에서 해즌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물론, 필자도 해설자 역으로 출연했는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들자면 축구경기를 준비하는 회사원들의 모습과 이를 중계하는 모습을 따로 찍었기에 필자는 촬영장에서 오로지 캐스터 역할의 이상훈 씨와만 연기를 했다. 그저 보이지 않는 축구를 상상하며 멘트를 하고 액션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스스로를 훌륭한 연기자라 우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치고 힘든 자들이여 이 영화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