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지대
- 감독
- 마이클 크라이튼
- 제작년도
- 1973
- 출연
- 율 브린너, 리차드 벤자민, 제임스 브로딘, 노만 바톨드, 알란 오펜하이머, 딕 밴 패턴
우리가 정지영 감독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 남부군 >(1990) 이후에 고정되어 있다. 빨치산의 이야기 통해 당대의 금기를 넘었던 그는, < 하얀 전쟁 >(1992)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1994)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되새겼고, < 부러진 화살 >(2012) < 남영동 1985 >(2012) < 블랙 머니 >(2019) 그리고 아직 미개봉 상태인 최근작 < 소년들 >까지 공권력에 대해 문제 제기한다. 이른바 ‘사회파 리얼리즘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1980년대 호헌 철폐 운동부터 시작해 스크린쿼터와 영화법 개정과 스크린쿼터 수호 등 한국영화계 이슈의 중심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인물. 그가 바로 ‘감독 정지영’이다. 하지만 그의 1980년대 필모그래피는 사뭇 다르다. 첫 영화 <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 >(1983)는 프랑스의 작가 피에르 브왈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쓴 소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1952)를 각색한 스릴러였다.(이 소설은 프랑스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가 1955년에 < 디아볼릭 >으로 영화화했고 할리우드에선 1996년에 이자벨 아자니, 샤론 스톤 주연의 < 디아볼릭 >이 나왔다.) 모델 출신 배우였던 오수미와 윤영실 자매가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 캐스팅 만으로도 압도적인 작품으로, 한 남자를 파멸로 몰아넣는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반전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품이다. 이후 그에게 ‘여성’은 중요한 테마가 되는데,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제 2의 성』(1949)을 각색한 < 위기의 여자 >(1987)는 결혼한 여성의 현실을 보여주었고, 한수산 원작의 < 거리의 악사 >(1987)는 여성의 운명을 중심으로 한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그리고 1988년, 정지영 감독은 악녀 캐릭터를 두 가지 방식으로 변주한다. < 여자가 숨는 숲 >이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입은 여성의 성적 일탈과 이중 생활을 다룬 심리적 성향의 에로틱 스릴러라면, 이어지는 < 산배암 >은 김기영의 < 하녀 >(1960)를 연상시키는, 계급과 섹슈얼리티를 결합한 가정 파탄 스릴러다. 우리에겐 < 외계에서 온 우뢰매 6 >(1989)의 ‘데일리’ 캐릭터로 기억되는 김종아의 데뷔작이자 첫 주연작인 이 영화는 정지영 감독 필모그래피의 이색지대로, 지금 접하는 그의 리얼리즘 영화를 생각하면 꽤나 낯설다. 1988년 당시 충무로의 젊은 피였던 정지영, 장길수, 신승수, 이황림, 박철수, 곽지균 감독은 오디션을 열었고 총 5명의 배우를 선발했다. 그 중 한명이었던 김종아는 <산배암>의 주인공이 되었고, 함께 선발되었던 김홍제는 이 영화에서 박 기사 역을 맡았다. ‘원초적 관능’의 세계를 줄곧 추구해온 김지연 작가의 장편소설 『산배암』(1979)을 각색한 이 영화는 전형적 설정으로 시작한다. 지리산에서 뱀을 잡으며 살아가는 시골 소녀 탄실(김종아). 그는 가난 때문에 도시로 와 우 사장(남궁원) 집 하녀가 된다. 임무는 우 사장의 아내(김영애)를 모시는 것. 하반신 불구로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그는 탄실을 마치 딸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들에겐 빅 픽처가 있었으니…. 탄실을 씨받이로 사용하는 것. 불임인 그는 탄실을 우 사장에게 접근시키고 드디어 ‘일’은 벌어진다. < 씨받이 >(임권택, 1987)의 현대 버전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유교 사회에서 대를 잇는다는 명목으로 희생당하는 여성을 보여준다면, <산배암>에서 탄실이는 ‘아이를 소유하고 싶다’는 부르주아 여성의 모성적 욕망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일단 우 사장 부부의 음모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탄실은 아이를 낳고, 우 사장 부부는 그 아이를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위장하며, 탄실은 집에서 쫓겨나 어느 아파트에 홀로 격리된다. <씨받이>에서 아이를 낳은 후 옥녀(강수연)가 처했던 상황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하지만 탄실은 옥녀처럼 자살하지 않는다.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시골로 돌아갔던 탄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선언한다. “오늘부터 저는 이 집의 떳떳한 식구인 거라예.” 그러면서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며 젖을 물린다. 현대판 씨받이인 탄실. 같은 침실 안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관계. 여기서 끝났다면, <산배암>은 탄실의 소심한 복수극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3중 반전으로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를 마무리했던 정지영 감독은 <산배암>의 결말에서도 이야기를 뒤틀며 탄실을 산배암처럼 독기를 지닌 악녀로 만든다. 우 사장의 아내는 박 기사(김홍제)에게 탄실을 강간하도록 지시하지만 탄실은 또 다시 돌아와 말한다. “내가 박 기사에게 쉽게 당할 줄 알았능교?” 이후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아기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난다. 다시 여기서 끝났다면, 다소 황당한 결말의 드라마 정도겠지만, <산배암>은 갑자기 1년 후로 이동해 다소 충격적인 광경을 보여준다. 사고로 불구가 된 우 사장과, 휠체어를 밀고 있는 탄실. 그는 “아기를 다시 낳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 사장은 더 이상 섹스를 할 수 없다. 여기서 탄실은, 이젠 안주인이 되어 집안을 장악한 그는, 한때 자신을 범하려 했던 박 기사와 몸을 섞는다. 사극 식으로 말하면, 씨받이였던 여자가 씨내리를 통해 양반 집안의 혈통을 잇는 셈이다. 백일 잔치 장면은 부르주아 가족의 위선과 균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신이다. 요약하면, <산배암>은 순수했던 한 여성이 도시라는 공간으로 오면서 욕망에 휘둘리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린 여기서 질문해야 한다. 탄실은 순수한 상태가 더럽혀지며 타락한 걸까, 아니면 자신에게 잠재되었던 악녀적 본성을 발견한 걸까? 마치 성선설과 성악설의 대립과도 같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영화의 마지막에 굵직한 자막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장일지도 모르겠다. “카인의 무리여, 네 형벌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죽은 지 3일이 지난 용돌이가 되살아났다.” 저작권 개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던 시절의 < 괴시 >( 강범구 , 1980)는 사실상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합작영화인 <Let Sleeping Corpses Lie>의 표절작이라고는 하나, 여러 한국적 상황과 변주가 더해진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로 기록돼 있다. 주인공이 백담사로 향하는 강원도 계곡에서 마주친, 초점 없는 얼굴로 느릿느릿 다가온 정체불명의 괴한에 대해 얘기하자, 마을 사람 누군가는 며칠 전 술 마시고 물에 빠져 죽은 용돌이에 대해 얘기하며 “용돌이가 살아 돌아왔나?” 라고 얘기할 뿐이다. 용돌이가 죽은 것은 경찰과 동행한 마을 사진관 주인이 직접 찍었으니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국영화계에 처음으로 좀비가 등장했다. 어쩌면 지금 관객들은 물 맑고 공기 좋은 대자연에서 마주친 좀비라는 점에서 < 곡성 >( 나홍진 , 2016)에서 외지인(구니무라 준)의 등장과도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건 제작 당시로 보자면, 누군가는 홍콩영화의 좀비 ‘강시’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공교롭게도 이후 수많은 아류작들을 양산했던 홍콩 강시 영화의 원조 <귀타귀>와 <괴시>는 1981년 4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함께 개봉했다. <괴시>의 가장 독특한 점은 도시가 아닌 강원도 산골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대만에서 온 강명은 강원도 백담사로 가던 길에 수지의 차를 얻어 타고 가게 된다. 미국에서 살던 수지는 5년 만에 한국을 찾아 언니를 만나기 위해 수리마을에 있는 별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언니는 건강 문제로 요양차 남편과 함께 강원도에 머물던 중이었다. 그런데 차가 낯선 곳에 이르러, 강명이 길을 살펴보려고 떠난 사이 수지는 계곡에서 첫 번째 좀비와 마주친다. 이후 그의 정체가 마을 사람들의 얘기와 경찰의 수사를 통해 3일 전 죽은 용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왔다는 수지의 얘기를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결국 강명과 수지는 공동묘지 안치실에 찾아갔다가 용돌의 시체가 없음은 물론, 그 안에서 부활한 시체들에게 공격당한다. 그런 사이 강명과 수지의 뒤를 쫓던 형사와 집을 나간 수지의 형부도 좀비로 변하고 만다. 그렇게 마을 전체가 ‘괴시’로 인해 공포에 떨게 된다. 영화는 무엇보다 좀비나 강시에 비해 괴시(怪屍)라는 제목 자체가 기괴하고도 독특한 아우라를 풍긴다. 거기에 더해 좀비물은 영화사적으로 완전한 영화적 피조물이라 할 수 있는 좀비라는 존재에 어떤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었느냐가 중요하다. 말하자면 좀비가 사람을 흡혈귀처럼 물어서 전염시킨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지속적인 변주가 더해지며 그 장르성이 확장되어왔다. 가령, 과거 좀비 영화의 좀비는 느리고 최근 좀비 영화의 좀비는 빠르다는 것이 가장 즉각적으로 인식하는 변화일 텐데, <웜바디스>(2012)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 뜬 좀비가 등장했고, < 부산행 >( 연상호 , 2016)에는 빛에 반응하는 좀비를 등장시켜서 터널에 머무는 시간을 긴장감의 요소로 훌륭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괴시>는 단순히 ‘느리게 걸어 다니는 옛날 좀비’라고 치부하기에는, 좀비 장르의 상업 블록버스터화를 이끌었던 <월드워Z>(2013),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의 존재를 알리며 무려 10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는 AMC TV 시리즈 <워킹 데드>와 비교해도, 영화역사상 아마도 가장 내구성이 강한 괴력의 좀비를 등장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비 영화에서 ‘가장 확실한 제거 방법’으로서 좀비의 머리통을 권총으로 날려버리는 일이 <괴시>에는 불가능한 것은 물론, 좀비로 변한 수지의 형부 역시 차로 치어도 끄떡없이 일어나고 만다. 어쩌면 지금의 관객들, 혹은 좀비 영화의 팬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지점이 바로 거기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사진관에 걸려 있는 배우 율 브리너의 사진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마이클 크라이튼의 <이색지대>(1973)에서 율 브리너는 마치 좀비처럼 주인공을 끝까지 쫓아다니는 인조인간으로 등장했었고, 첨단과학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영화 속 휴양지 ‘웨스트월드’는 마치 사람들 모두 비밀을 쉬쉬하는 수리마을을 떠올리게도 한다. 억지 비유일 수도 있겠으나, <괴시>의 용돌이 역시 <이색지대>의 인조인간 율 브리너처럼 포기를 모르는 좀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시체를 다시 깨어나게 만든 것은 과학 실험 때문이다. 해충을 퇴치하는 초음파를 연구 중인 실험실에서 발생시킨 초음파가 시체의 신경을 건드려 부활시킨 것이다. 게다가 그 이전부터 수리마을에는 기형아가 발생한다는 보고도 있었지만, 과학자들은 이를 묵살해왔다. 좀비 창궐에 대한 이유를 알게 된 주인공이 실험실을 찾아가 “사람 잡는 기계를 당장 꺼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를 그저 미친 사람취급하며 외치는 “우리는 과학자에요!”라는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보통 좀비 영화에는 그 발생 원인에 대해 탐색하는 경우는 드문데, 신종 바이러스 문제와 결합하여 백신까지 만들어낸 <월드워Z>처럼 <괴시> 역시 원작의 설정처럼 환경파괴 문제로 나아간다. <괴시>의 초음파 실험실에 미국인 과학자가 있다는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 괴물 >(2006) 도입부에서 유독성 화학물질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한강에 흘려보냈던 미국인 장교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괴시>의 초음파 실험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선의로 시작한 실험이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괴시>의 강범구 감독은 범죄 액션영화 < 북극성 >(1962)으로 데뷔한 뒤 황해, 김지미 , 박노식 주연 < 검은 꽃잎이 질 때 >(1963), 인기 가수 남진 주연 < 울려고 내가 왔나 >(1967), 남궁원 주연 < 국제 암살단 >(1971) 등 반공과 첩보 소재가 가미된 액션영화들을 주로 만들며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아왔다. 연출 경력의 후반기에는 < 일대영웅 >(1973), < 풍운의 권객 >(1974), < 사망탑 >(1980), < 몽녀한 >(1983) 등 대만이나 홍콩과의 합작영화들을 여러 편 만들며 실험성이 돋보이는 액션과 공포영화에 더욱 치중했다. <괴시>의 경우 원작이 된 해외 영화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등 한국 장르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뚜렷한 자기만의 세계를 일군 감독은 아니지만, <괴시>를 비롯해 크리처 무비 <몽녀한> 등 그가 아니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영화들로 한국 장르영화의 외연을 의미있게 넓힌 감독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 괴시 고화질(HD) VOD 보러가기 <<
1980년대 한국영화는 이상했다. < 결혼 이야기 >(1992)가 ‘기획 영화’의 시대를 열며 충무로 체질 개선을 시작하고 < 쉬리 >(1999)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장르화 속에서 이른바 ‘웰메이드’를 추구하며 한국영화가 서로 닮아가기 시작했다면, 그 이전인 1980년대는 중구난방의 시대였다. 이 시기 남한의 엔터테인먼트가 ‘3S 정책’의 억압 아래 있었고 그 여파로 충무로에 에로티시즘이 창궐했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인과 관계가 형성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영화는 어떤 정책을 수행하기엔 그 산업적 토대가 너무나 부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 한 편이 완성될 때 그 최종심급은 심의와 검열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나온 영화들은 시스템이 아닌 모순적 사회 구조의 산물이었다. 1960년대에 산업적 전성기를 맞이했던 한국영화가 1990년대에 재 산업화에 들어가기까지, 그 사이에 이색지대처럼 존재하는 1970~80년대는 일종의 혼란기였으며, 1980년대는 그 혼란의 정점이었다. 그런 이유로 1980년대 한국영화는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이 시기에 오면 한국영화의 정서적 기둥이었던 ‘신파 감성’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외국 영화가 맥락 없이 접목되며, 뜻하지 않는 장르적 시도들도 간헐적으로 이어지며, 때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마저 뒤흔드는 영화가 등장한다. 이런 증상은 이른바 ‘에로 영화’ 속에서 돌발적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 어우동 >(1985)은 의도했든 안 했든 정치적 텍스트가 되었고, 위험한 섹슈얼리티 무비 < 사방지 >(1988)도 있었으며, <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1985)의 정신분열증적 아우라는 시대의 파격이었다. 이 불균질적이며 뒤엉킨 계보도 속에 김성수 감독의 < 색깔 있는 남자 >(1985)가 있다. 2004년에 세상을 떠난 김성수 감독은 1977년 < 돌아와요 부산항 >으로 데뷔한 후 1980년대에 장미희 , 원미경 , 이영하 등이 출연하는 < 색깔 있는 여자 >(1981)로 에로티시즘 멜로의 세계로 접어든다. 여기서 혹시 < 색깔 있는 여자 >와 < 색깔 있는 남자 >가 연작이라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 전작이 한 여성의 이중생활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 <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1977)를 연상시킨다면, 후자는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 디아볼릭 >(1955)를 연상시키는 악녀 스토리다. < 색깔 있는 여자 > 이후 정윤희 주연의 < 여자와 비 >(1982), 김부선 이 등장하는 <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 >(1983) < 여자는 남자를 쏘았다 >(1984), 당대 급부상한 섹스 심벌 오혜림 이 마흥식 과 임성민 사이를 오가는 < 탄드라의 불 >(1984)까지 나름 일관성 있는 작품 세계를 구축하던 김성수 감독은 < 색깔 있는 남자 >에서 정점을 맞이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패션 디자이너 최태욱, 일명 ‘샤르망 최’(임성민)가 귀국한다. 그는 후원자인 김문자 여사( 홍명진 ) 덕에 성공적으로 한국 패션계에 진입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질투한 변수린( 오수미 )은 김문자를 살해한다. 변수린의 사랑이 부담스러워진 샤르망 최는 재미 교포인 주은몽( 오혜림 )과의 관계를 통해 벗어나려 하지만, 변수린의 집착은 점점 그를 옥죄어 온다. 결국 샤르망 최는 변수린을 잔인하게(기차 레일 위에 올려놓는 방식으로!) 살해하는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돈을 노린 주은몽의 계략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진 주변 인물에 지나지 않았던 샤르망 최의 부티크 점원( 오경아 )이 주은몽과 함께 묵직한 반전으로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친다. < 색깔 있는 남자 >는 한 명의 지골로를 네 명의 여자가 갉아먹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성적 위력은 진정 압도적이다. 김문자 여사에겐 성 기능을 상실한 나이 든 남편( 변희봉 이 역할을 맡았다!)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부실한 성기에 대한 대리물로 일본도에 집착한다. 여기서 진정 놀라운 장면이 나오는데, 김문자는 남편 앞에서 일본도 손잡이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그 광경을 본 남편은 극도의 흥분에 휩싸이다가 심장마비로 죽는다. 복상사 따위는 우습게 만드는, 퍼포먼스만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놀라운 캐릭터다. 하지만 그녀도 변수린에게 죽게 된다. 한국영화에서 팜므파탈을 평가할 때 만신전에 봉헌되어야 할 오수미는 이 역할을 만나 놀라운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녀는 한 마리 음탕한 거미처럼 남자를 옭아맨다. 그녀의 대사는 당연히 직설법인데, 음산한 목소리로 샤르망 최에게 “누님이라는 소리 때려치워!” 일갈하다가도 “색깔 있는 남자, 당신 날 흥분시켰어”라고 속삭이는 모습은, 끈적끈적하면서도 헤어나올 수 없는 마성을 지닌다. 여기서 대미를 장식하는 인물은 주은몽이다, 샤르망 최는 변수린을 살해한 후 결국 경찰에게 체포되고, 모든 것은 주은몽의 수중으로 돌아온다. 이때 그녀는 샤르망 최에게 쿨하게 말한다. “여자 등친 돈, 여자가 돌려받았을 뿐이야.” 그리고 이 영화가 러닝타임 내내 감춰왔던 관계가 드러난다. 샤르망 최와 그렇고 그런 관계였던 점원은 알고 보니 주은몽과 동성 연인이었던 것이다. 얼음송곳만 없었지 < 원초적 본능 >(1992) 못지않은 < 색깔 있는 남자 >는, 1980년대 에로티시즘 영화들 속에서도 가장 거친 욕정을 드러낸 영화다. 이 영화의 여자들은 절대로 욕망을 억누르지 않으며, 이 영화의 남자는 언제나 그들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이처럼 강한 여자들이 집단적으로 등장해 육체의 암투를 벌이고 그 가운데 한 남자가 먹잇감이 되는 지옥도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섹스와 돈과 명예의 유혹이 넘실대는 에로틱 누아르 스릴러 <색깔 있는 남자>. 누구나 공감하는 걸작은 절대 아니지만, 이 영화만큼 강렬한 화면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