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추적자
- 감독
- 이석구
- 제작년도
- 2008
멀티플렉스 극장이 들어선 1990년대 말에도 개봉작을 볼라치면 으레 종로와 충무로에 소재한 극장들을 찾았다. 그중 하나가 명보극장으로 5개의 상영관을 갖춘 쾌적한 시설과 주변의 오래된 맛집들 때문에 자주 찾는 극장이었다. 명보극장은 2008년 폐관돼 현재는 명보아트홀이란 이름의 공연장으로 운영 중인데 그중 한 관이 실버영화관으로 간신히 극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명보극장이 배우 신영균 의 소유였다고 기억하는데, 그보다 앞서 명보극장을 세운 영화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세아영화사의 이지룡 대표다. 명보극장은 6?25전쟁 후 충무로에 처음 세워진 현대식 극장으로 개관일엔 당대 정치 실세이던 이기붕과 박마리아 여사를 비롯해 많은 귀빈이 족적을 남겼다. 사실 명보극장은 그 이름부터 이지룡의 역사가 묻어 있다. 극장 설립에 대한 기사가 나가고 극장 이름도 공모해 명성이라는 이름이 당선될 뻔했지만, 영화광이었던 자신의 청년기를 회상하며 함흥 출신인 그가 자주 드나들던 함흥 명보극장을 떠올려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당선시키며 붙인 이름이었다. 함흥 출신 서울시민에겐 가슴 뭉클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물론 29세의 나이에 거대 자본이나 의지할 만한 건 설사 없이 일단 극장을 세우고 보자는 아찔한 자신감은 그간 사업에서 승승장구해왔던 그의 이력을 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는 함흥에서 대흥상업을 나와 함산금융조합에서 일했고 장사를 시작해 재미를 보려던 차에 6.25전쟁이 나 월남했다. 그의 청년기는 빠른 셈과 화술 등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확인하고 토대를 닦아가던 시기였다. 피난 시절 부산에서 창고업과 함흥냉면 장사로 대박을 터뜨리며 사업에 눈을 떠갔다. 휴전 즈음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로 올라와 건설업에 몸담았지만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 무렵 외화 수입을 하며 친척이던 수도극장 부사장 이회극의 사무실을 드나들다보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람들이 몰려드는 극장 사업에 매력을 느껴 서서히 빠져들었다. 때는 마침 1950년대 중반으로 한국 영화제작의 르네상스기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극장을 짓기로 결정한 이지룡 은 인맥이 있던 삼양물산을 투자사로 유치하고 고향 친구인 양봉식 (연방영화사 부사장)과 합심해 수도극장 맞은편 332평의 소유주 17명을 설득해 부동산을 매입하고 고향 선배였던 서울시 도시계획 위원장 주원에게 추천받은, 프랑스 유학을 막 마치고 돌아온 건축가 김중업에게 설계를 맡겼다(사실 극장이 완공된 뒤 설계를 무시하고 건축해 설계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김중업이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공사를 맡길 건설사를 찾던 때 국회 부의장인 조경규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하여 국회 부의장의 추천을 받은 일신산업이 시공을 맡게됐다. 하지만 자본도 장비도 기술도 없던 일신산업은 공사비만 받고 삽질만 해놓은 채 철수한다. 공사는 중단된 채 자금은 떨어지고 건설사도 없는 위기 속에서, 파헤쳐진 땅 가장자리에 위험하게 위치한 박산부인과 원장은 이지룡 에게 대림산업을 소개한다. 대림산업 이석구 대표에게 찾아가 다시 한 번 극장업의 밝은전망에 대해 피력하고 투자와 공사재개에 대한 약속을 받아낸다. 하지만 퇴로가 없는 상황에서 6대 4의 조건으로 대림산업이 더 많은 주식을 갖게 된다. 대기업의 횡포, 갑의 월권 등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비극은 극장이 개관된 후 운영 체계가 잡혀갈 무렵 시작된다. 한동안은 영화계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명보극장이 개관할 때 지역구인 명동 주먹 이화룡(화성영화사 대표)이 직접 수표주임을 정해주는 업계의 전통(?)은 문외한이라면 이해하기 힘들지 않았겠는가. 이 수표주임이 동대문 주먹 유지광과 싸움이 붙어 신문지상을 시끄럽게 한 소소한 일화도 있었으니 극장 경영은 꽤나 다채로웠을 것이다. 대주주인 대림산업은 상무 양봉식을 해고하고 부사장이던 이지룡 과 삼양물산을 몰아낸다. 결국 그는 투자금마저 회수하지 못한 채 명보극장을 떠난다. 이지룡 이 그만두고 난 뒤 대림산업은 극장 공사비 허위신고와 입장세 포탈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지만 그는 이미 떠난 뒤였기에 기억하지 못했다. 자유당 시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명보극장의 설립 이야기다. “연출자가 뭐 하는데 밀어줘야지” 억울하게 퇴출당한 이지룡 은 주식을 찾을 수 있다는 변호사의 말에 대림산업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한다. 하지만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헌법 적용이 일시 중지된 후 변호사로부터 사건을 덮어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알고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 이지룡의 명보극장 이야기는 “…그래가 재수가 없었지”라고 담담하게 끝이 난다. 그러나 이지룡 은 영화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 대명으로 영화제작에 뛰어들어1966년 아세아영화사를 설립한다. 영화사 이름답게 홍콩과의 합작영화도 7편이나 제작했고, 정창화 감독이 홍콩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도 했다. “정창화 감독한텐 내가 이긴 적이 없지, 연출자가 뭐 하는데 밀어줘야지”라고 말하는 이지룡은 정창화 감독의 영화를 가장 많이 제작한 국내 제작자이기도 하다. 정창화 감독과의 첫 작품은 < 사르빈강에 노을이 진다 >(1965)인데 일제 말기 일본군의 버마전선을 배경으로 한 전쟁물이다. 광릉수목원에 버마전선을 만들어 촬영한 작품으로 제작자와 감독이 미공보부에 들어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버마전선의 영상을 찾아 고증하고 일부를 복사해 영화에 사용하는 등 사실적이고 충실한 재현을 위해 돈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정창화 감독이 쇼브라더스에 스카우트되는 계기가 된 영화 < 순간은 영원히 >(정창화, 1966)도 그가 제작한 작품이다. 첩보영화인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위기X7호>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제목을 바꾸라는 공보부의 요구로 <순간은 영원히>라는 다소 멜로스러운 제목이 붙게 됐다. 홍콩 유린영화사와의 합작품으로, 홍콩에서 로케이션을 하고 개봉한 이 작품을 본 쇼브라더스의 런런쇼는 이지룡에게 감독을 소개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지룡은 정창화 감독에게 당분간 액션영화를 제작할 계획이 없으니 홍콩으로 가 기량을 펼치라고 홍콩행을 적극 권유했다. 이지룡 은 1971년 < 20인의 여도적 >이라는 작품을 직접 연출했고, 1973년에는 < 쥬리아와 도꾸가와 이에야스 >( 이성구 )를 일본의 고즈시마 섬에서 올로케로 제작했다. 1989년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를 제작하며 노장의 면모를 보여준 뒤 1992년 은퇴한다. 이지룡 은 흥남철수작전 때 서호진에서 간신히 수송선을 타고 월남한 자칭 ‘삼팔따라지’로 극장, 수입, 제작 등을 아우르며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둔 인물이다. 짧은 지면에서 밝히지 못한 그의 다양한 활동은 채록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구술자는 아세아영화사 이후 유림흥업, 다남흥업 등의 제작사를 만들며 1990년대까지 제작을 이어간 영화계의 산증인임에도 불구하고 면담자의 부족한 지식과 기술로 제작의 묘수, 합작의 묘수, 제작자와 언론 및 관료들과의 관계 등 제작 이면의 이야기는 자세히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들 혹은 말하지 않는 순간들이 주는 뉘앙스를 통해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지와 재미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드디어 ‘짝퉁 이소룡’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마치 무간지옥처럼 들어가는 건 자유지만 나오는 건 자유가 아니, 라는 식으로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그냥 관두는 것으로(-_-;). 어쨌건 그 무수한 짝퉁들 중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배우는 바로, 현재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이기도 한 거룡 (본명 문경석)이다. 이름과 외모만 보고 홍콩 배우로 착각할 수 있지만 절대 아니다. 물론 최초의 짝퉁 이소룡도 한국 사람이었다. < 사망유희 >(1978) 촬영 도중 이소룡이 죽자, 부랴부랴 외모가 비슷했던 한국 출신 무술배우 당룡 (본명 김태정)이 그를 대신하여 작품을 마무리했던 것. 거룡 과 당룡 사실 이소룡이 액션 연기와 별개로 점프나 회전에 뛰어난 배우는 아니었는데, 그가 느닷없이 날아차기로 천정의 전구를 깨고 텀블링까지 했다. 사정상 선글라스 낀 얼굴을 클로즈업할 수는 없지만, 개인기는 오리지널보다 짝퉁이 더 뛰어났던 그 기묘한 괴리감이랄까. 이후 장 끌로드 반담 주연 < 특명 어벤저 >(1986) 등에도 출연했던 당룡 은 안타깝게도 지난 2011년 채 일흔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떴다. 당시 한국의 이소룡을 발굴하려 했던 화천공사 박종찬 회장과 김시현 감독에 의해 발탁된 거룡 은 < 최후의 정무문 >(1977)을 시작으로 < 오대제자 >(1978), < 정무지보 >(1978), < 일소일권 >(1980), < 월광쌍수 >(1981), < 흑표비객 >(1981), < 뇌권 >(1983) 등 거의 대부분 김시현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홍콩과 대만으로도 진출해 ‘Bruce Lea’라는(아, 정말 어지럽다) 영어이름을 썼던 장정의와 함께 한 강홍 감독의 <쾌권괴초>(1980), 류충량 등과 함께한 하지강 감독의 <잡가고수>(1979) 등에 출연했다. < 일소일권 > 출연 당시의 거룡 냉정하게 비교하자면 이소룡과 전혀 닮지 않았지만, 거룡 은 그보다 더 진한 얼굴과 능청스런 코믹 쿵후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키는 이소룡과 비슷하지만 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몸이라, 정리하자면 이소룡보다 더 진하고 굵었다고나 할까. 더 나아가 < 소림사 용팔이 >(1982)에서는 박노식 이 전형을 만든 전라도 용팔이와 이소룡 캐릭터가 결합해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이소룡’이라는 기괴한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부분 처음에는 ‘뭐야, 하나도 안 닮았잖아!’라고 불평했다가 점점 그의 키치적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런 작품들 중 단연 압권은 이소룡이 < 사망유희 >에서 입었던(타란티노의 < 킬빌 >에서 우마 서먼도 입었던)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그대로 입고 나온 < 일소일권 >이다. 영화 속 배경은 홍콩으로 설정돼 있지만 사실은 한국 대관령 주변인 어딘가에서, 한 폭력단의 착취에 정면 도전한 한국인 청년 한용( 거룡 )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다. 그는 착취당하는 한 식당에 취직한 주방장으로 나와, 본격적인 액션이 시작되기에 앞서 그 특유의 코믹 장면들을 열심히 보여준다. 김정용 감독, 정진화 주연 < 소림사 주방장 >(1981) 보다 한 해 앞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 소림사 용팔이 >도 그렇지만 거룡은 다른 액션 스타들과 달리 정진화(<소림사 주방장> < 산동 물장수 >)처럼 꽤 연기가 되는 배우라, 그런 킬링타임용 장면들이 딱히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하지만 역시 압권은 목장에서 펼쳐지는 라스트 액션신이다. < 일소일권 > 철빠따 액션 눈여겨볼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이소룡의 노란색 트레이닝복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팔과 다리의 옆 줄무늬가 거룡 의 몸매만큼이나 상당히 굵어서 일단 ‘빵’ 터진다. 두 번째로 이소룡의 쌍절곤에서 더 나아가 야구 배트를 들고 ‘철빠따’ 액션을 구사하는 모습이 거의 경이롭다. 스파이크를 신은 상대가 흙을 긁어 뿌리는 가운데 난이도 높은 대결이 펼쳐진다. 쌍절곤이 아닌 철빠따라 지칭하여 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 파괴력 또한 엄청나다. 나중에는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다. 비록 B급 ‘짝퉁’이라 불린다 하더라도, 그리고 ‘으악새 영화’라 천시당하던 우울한 시절에도, 어떤 식으로든 홍콩의 오리지널보다 하나라도 더 나은 것을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눈물겨운 ‘독기’가 숨어있는 것. 날렵하면서도 파괴력 넘쳤던 거룡 의 액션영화들, 특히 김진태 감독의 < 월광쌍수 >(1981)나 김시현 감독의 < 흑표비객 >(1981)은 오히려 해외에서 DVD 출시돼 있다. 언급한 영화들 중 영상자료원에는 < 일소일권 > DVD와 VOD, < Enter the Invincible Hero >라는 제목으로 해외에서 출시된 <흑표비객> DVD, < 소림사 용팔이 > VHS가 있다. 특히 <흑표비객>의 경우 그 못지않게 화려했던 당대의 액션배우 왕호와 가공할 일대일 대결을 펼쳤다. 비록 거룡의 뜻하지 않은 급소 차기로 서둘러 대결이 마무리됐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프레디 VS 제이슨’ 같은 대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또한 <소림사 용팔이>에서 거룡과 멋진 호흡을 보여준 대머리 배우 최민규 (최민규가 거룡의 어깨 위에 올라탄 너무나도 멋진 스틸이 있다)가 <흑표비객>에서는 악당이었다. ‘王’자 불빛이 들어오는 거대한 펜던트를 목에 걸고 그만큼이나 거대한(물론 특수분장) 참외 배꼽도 인상적이었다. 그 배꼽이 ‘삼손의 머리카락’ 같은 역할을 하는지라, 비정하게도 거룡은 그 배꼽을 뽑아서 죽여 버렸다. 그야말로 이성적으로는 황당하지만 액션신의 퀄리티가 좋으니 그저 가만히 보고 있게 된다. B무비의 매력이 바로 그런 것 같다. 이성과 분리된 텍스트 향유라고나 할까. < 소림사 용팔이 > 거룡 과 최민규 거룡 이영주 이석구 감독: 김시현 , 하지강 각본: 이정근 개봉극장: 세일극장 관람인원: 4922(서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