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물고기
- 감독
- 이창동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명계남, 김용만, 이호성, 한선규, 정진영, 오지혜, 손영순, 차유경, 박혜숙, 송강호, 조민철, 박남현, 김남호, 권성환, 김태중, 민경진, 권태원, 유연수, 이병철, 황경욱, 이승훈, 서명석, 김덕형, 윤해로, 이석우, 이문식, 조득제, 한재상, 이해식, 권진원, 윤광희, 정지현, 김동곤, 최민금, 이정연, 주헌종, 이상현, 이소미
<버닝> 중 영화에 대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이 영화와 비평 사이에서 고민해온 시간을 들려줍니다. 그러다가 떠오른,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도 꺼내봅니다. 해미( 전종서 )는 조금 뜻밖의 말을 한다. 팬터마임으로 눈앞에 없는 귤을 먹던 그는 종수( 유아인 )에게 마임의 원리를 설명한다.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이 말은 < 버닝 >(2018)의 초반부에 불쑥 건네지고 나서 영화 전체를 실종과 부재의 미스터리로 물들인다. 해미는 갑작스럽게 사라지지만 종수는 해미가 여기에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못한다. 종수에게 남겨지는 이 말이 뜻밖인 이유는 이창동 영화 속 인물들이 갈구하던 질문과 정반대에 있기 때문이다. < 밀양 >(2007)에서의 신애( 전도연 )의 비명. “신이 어디에 있어요?” < 시 >(2010)에서의 미자( 윤정희 )의 외침. “시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를 찾아 헤매던 질문들과 다르게, 해미는 세계를 관통하는 자명한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해미의 방에는 있어야 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껍질 벗겨진 귤이, 함께 사는 고양이가, 마침내 해미 자신마저도 그곳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다. 하루에 한 번 남산타워 전망대 유리에 햇빛이 반사돼서 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곳엔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지만 딱 한 번의 햇빛이 종수의 눈에 보인다. 무언가는 보이지 않고 기억에서 지워진다. 다른 어떤 것은 잊히지 않고 남겨진다. <버닝>이라는 이 거대한 야심의 영화 속 해미의 작은 방이 한국영화 비평을 말하기 위한 실마리일 수 있다면, 비평은 언제나 특정한 좌표 위에 놓인 공간에 거주하는 일이며 그 안에서 잔존하는 것과 지워지는 것들을 오가며 수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박찬욱 은 정성일 , 허문영 평론가와 나눈 긴 대담에서 < 박쥐 >(박찬욱, 2009)와 <밀양>과 < 마더 >(봉준호, 2009)의 주인공들이 모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는 사건을 겪은 이후로 망각을 선택한다는 공통점을 지적하는 두 평론가의 말에 “이래서 평론가들이 필요한 거구나!”라고 웃으며 반긴다(언급된 영화의 세 연출자는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버닝>과 < 기생충 >과 < 헤어질 결심 >으로 다시 한번 망각과 기억을 둘러싼 공통의 우화를 작성한다). 이 일화엔 영화와 비평, 망각과 기억을 둘러싼 근접조우가 발생한다. 하지만 박찬욱의 농담 섞인 감탄과는 반대로 비평은 망각된 것들을 기억하고 흩어진 기억을 서로 연결하는 일이 아니라 망각 자체에 속하는 일이다.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행위다. 최근 영화잡지 《씨네21》은 잡지의 30주년을 기념해 1995년에서 2024년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를 대상으로 한국영화/해외영화 10편의 베스트 목록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허한 목록의 재생산이 아니라 눈앞에 존재하는 영화문화에 과도하게 채워져 있는 목록과 관점을 망각하는 것이다. 영화는 조우가 아니라 사라짐의 체험이고 따라서 비평은 그 사라짐에 관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버닝>은 한국영화의 이미지를, 그리고 한국영화를 둘러싼 비평의 관습을 정조준한다. 태양이라는 선명한 광원 아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팬터마임으로. 태양을 바라본다는 행위는 21세기 한국영화가 설정한 특별한 의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란 태양에 반응하는 신체의 부작용을 포착해 온 영화적 관찰기의 다른 말이다. 이는 <밀양>과 <버닝>에서 우리가 머무는 세계 안으로 간신히 전해지는 미세한 빛을 프레임에 담아낸 이창동만의 화두는 아니다. 도망칠 수 없는 두 뱀파이어를 태양에 불태워버리는 <박쥐>, 햇빛을 바라보며 시큰거리는 눈에 안약을 넣는 남자의 비극(<헤어질 결심>)과 태양의 과도한 빛을 피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자의 희극(< 어쩔수가없다 >)을 오가며 끊임없이 태양에 반응하는 신체를 불러들이는 박찬욱의 영화들. 봉준호 의 <마더>는 오후의 도로를 통과하는 관광버스 사이로 들어오는 태양광선을 포착해 그 안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어두운 실루엣으로 덮어버린다. 투명한 유리 사이로 쏟아지는 빛, 어찌할 수 없는 열기. <기생충>은 간신히 빛이 들어오는 반지하의 어둠에서 통유리로 태양을 반사하는 거대한 저택으로 이동한 뒤 더 아래에 있는 어둠으로 내려간다. 한국영화의 불길을 통과한 뒤 경력을 중단한 장선우 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짧은 단편은 이장호의 영화 제목을 빌린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2019>였다. 그는 한국영화 100년을 기쁨으로 회고하는 대신 검열과 금기라는 역사의 태양을 공격하고 야유한다. 태양 아래 있는 21세기 한국영화는 언제나 한 가지 특별한 장소와 결부되어왔다. 번쩍이는 태양의 가시광선을 피해 시선을 숨길 수 있는 어둠 속의 터널이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빛을 피해 숨을 수 있지만 그곳을 통과해 나오는 순간 눈에 날카롭게 베인 듯한 상처를 입는다. 터널 속에서 영화는 눈빛을 숨기고 시선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우리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좌표를 망각한다. 2000년대를 여는 첫 번째 한국영화로 이창동의 < 박하사탕 >(1999)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영화가 새로운 세기 초입에 새겨둔 터널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에서 공간과 시간을 이행하는 데는 어둠을 통과해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이 불가피하다. <박하사탕>의 기차는 무심한 기계장치처럼 역방향으로 터널을 통과해 나간다. 거기엔 숨겨진 빛이 있고 우리는 그 빛을 잊어버린다. 태양이 가려졌으므로, 영화는 세계를 정확히 보는 것에 실패한다. <박하사탕>,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중 (사진: ㈜이스트필름, ㈜싸이더스, 디씨어터) 21세기 한국영화 전성기의 정점으로 회고되는 2003년에 ‘한국영화’의 외형과 속성을 상징적으로 각인한 두 편의 영화에서 솟아난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너무 깊은 어둠으로 인해 보는 것에 실패하는 터널 이미지다. 봉준호의 < 살인의 추억 >(2003)에선 영화의 마지막에 빈 농수로를 보여준다. 전직 형사 박두만( 송강호 )은 과거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시골을 찾아 농수로 안을 들여다본다. 그의 눈앞에 있는 텅 빈 공간은 마치 터널처럼 가을의 태양을 가로막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가 고개를 숙여 농수로 깊숙한 곳에 놓인 여성의 시체를 쳐다볼 때, 어두운 수로가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근처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주워 빛을 반사해 바라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저편에 있던 어둠은 우리가 있던 곳을 잠식하고 만다. 그리하여 영화의 결말은 살인 용의자가 어두운 터널 속으로 사라지고, 더 이상 터널을 들여다볼 수 없는, 본다는 것의 실패다. 박두만이 다시 용수로를 찾았을 때, 터널은 어둠으로 닫힌 모든 것이 투명하게 열려 있다. 우리는 그 명확하게 빛나는 어둠 앞에서 무엇도 제대로 볼 수 없다. < 올드보이 >(2003)에서 오늘만 대충 살아간다고 다짐하던 오대수( 최민식 )가 감금된 밀실의 복도는 기나긴 터널처럼 끝없이 이어져 있다. 그곳의 작은 방 한 칸에 갇혀 있던 이 남자가 15년 만에 석방될 때도 그는 조그마한 상자 속에 웅크리고 있다. 실은 풀려나는 시점조차 정확히 통제된 것이므로 제대로 풀려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원히 시간의 터널 속을 맴돌고 있다. 밀실에 되돌아온 오대수는 장도리를 들고 수많은 적을 넘어서 터널을 통과하지만, 그 어떤 것도 통과한 적이 없다. 이 영화에서 오대수는 시종일관 태양의 빛과 열기를 피하는 검은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있다. 그는 영원히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 마주하더라도 회피와 망각을 선택하려 든다. 다시 몇 년이 지나고, 한국영화가 직면하고 응답했던 이 치명적인 곤경은 이창동의 <시>(2010)에서 시인의 말을 빌려 울려 퍼진다. “틀렸어요.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우리가 지금 한국영화비평에 대해 말할 것들이 남았다면, 여기에 제도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는 비판이 아니다. 무언가 있어야 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는 촉구와 반성 역시 아니다. 그 반대다. 해미의 조언처럼 우리는 여기에 무언가 없다는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한국영화가 산업적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인식을 잊어버리고,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는 영화감독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진단을 잊어야 하며, 새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을 분류하는 영화제와 개봉 체계의 시각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인식을 잊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비평의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전개해야 한다. 이창동과 박찬욱과 봉준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이 남긴 걸작들로 비루한 목록을 채우는 대신, 변함없는 명사로 자리 잡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그들이 직면해야 했던 곤경의 장소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그들의 곤경을 들여다보는 질문을 통과하지 않고 그저 걸작으로 남아 있는 영화를 숭배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또 다른 모욕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팬데믹이 초래한 대규모 봉쇄의 기억을 뒤로하고 2020년대의 절반을 지나친 지금 시점에 우리는 한국영화의 ‘장소’가 어디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터널을 지나친 한국영화의 흔적 뒤편에서 우리는 또 어떤 장소를 발명할 수 있을까? 한국영화 비평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 하락에 있지도 한국 작가주의의 위기라는 문제에 있지도 한국영화 산업의 붕괴에 있지도 않다. 손쉽게 영화산업 일부분에 기생해버린 비평이 한국영화가 곤경을 투사하고 탈출구를 모색할 수 있는 특정한 장소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한밤에 태양을 관측하는 행위에 빗댄 피에르 파울로 파솔리니는 두 가지 종류의 세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강력한 아버지의 규율과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세대이고, 다른 하나는 무엇도 지시하지 않는 무기력한 아버지를 마주해야 하는 세대다. 90년대 후반에 촉발되어 21세기의 새로운 감수성을 공유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는 단절된 아버지의 강력한 규율에 저항함으로써 그와 연결되려는 절차였다. 지금껏 언급한 한국영화의 ‘걸작’들은 모두 부모가 되는, 혹은 되지 않으려는 방식에 관한 서로 다른 시도들이고 적잖은 이들이 불필요한 결론이라 비판한 바 있던 <기생충>의 에필로그는 그 연대기의 끝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커다란 뒷모습을 렌즈로 삼아 세계를 인식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들들의 아들은 조그마한 렌즈에 눈을 대고 있는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지켜볼 뿐이다. 우리에겐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겐 ‘한국영화’가 보이지 않는다. <기생충> 중 순환어법처럼 들리지만, 한국영화 비평이 성립하기 위해선, 한국영화를 향한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언젠가 특별한 비평의 감각을 자극했던 《씨네21》의 ‘전영객잔’ 코너가 건드린 것은 ‘긴 호흡의 비평이 있어야 한다’라는 하나 마나 한 저널리즘적 진단이 아니라 ‘한국영화에 어떤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가?’라는 특수하고 역사적인 물음이었다. 그 지면에서 다뤄진 것은 넓은 의미의 비평일뿐만 아니라 임권택 , 이만희 , 김기영 , 배창호 , 강우석 , 임상수 , 박찬욱, 홍상수 , 이창동, 봉준호, 그리고 21세기에 새 영화를 만들어낸 한국영화 감독들의 시간에 대한 특수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짧은 호기심과 문답의 시간이 지나고 비평은 너무나 쉬운 관성에 안착해버렸다. 투박한 비교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지금 영화를 해설하고 의미를 발굴하는 비평은 한국영화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구현하고 싶었으며 무엇에 실패하고 어떤 곤경을 직면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단지 주어진 업무의 한 부분에서 성실하게 문장을 채우고 완성된 결론을 생산할 뿐이다. 다른 지면에 적었던 이들의 운명을 다시 빌려오자면, “비평이 테러리스트 역할을 자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고작해야 제작사와 수입사의 홍보문장을 작성하는 대리인이거나 이름 있는 연출자의 의도를 정제된 언어로 세공하는 복화술사거나 제도의 끝자락을 차지하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성실한 일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동시대 한국영화에 어떤 곤경의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동시대 한국영화 비평이 영화에 드리운 특수한 곤경에 호기심을 기울이지 않고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어쩌면 한국영화를 만들고 있는 이들조차 그들 자신이 처한 곤경에 응답하지 않는 걸까?). 영화는 세계를 보이게 하는 역량이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세계가 카메라 바깥에 있다. 한국영화는 그것들이 동시에 거주하는 장소다. 비평가들이 이미 결정된 한국영화의 외형과 위계와 비평의 문법을 잊어버린 채로 영화와 만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를 향한 질문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영화’는 만들어지고 상영되고 평가받는 모든 영역에서 빈틈없이 완전하게 구성되어 있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그것이 위태롭고 불완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완전하기 때문에 엄습한다. 끝없이 불타오르는 태양을 마주하는 비평이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는 대신 없다는 것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지금 한국영화가 이룩한 제도에서 비평은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는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무는 무언가 부재한 자리를 다시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부재를 망각해버리는 것이다. 비평의 역량이 약화되었고, 위대한 작가 감독이 존재하지 않고, 경이로운 영화들이 나오던 한국영화의 전성기가 사라졌다는 자각. 그 사라짐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다. 이는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어떤 영화를 대상으로 하든 비평의 첫 문장이 작동하기 위해선, 어떤 한 가지 장면과 생각을 영화의 나머지 전체보다 앞서서 서술할 수 있다는 믿음, 다시 말해 영화의 나머지 전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임의적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영화는 모든 것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작은 일을 실천할 뿐이라는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비평은 더 이상 많은 것을 유효하게 실천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영화비평을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비평이 더 이상 많은 것을 유효하게 실천할 수 없다는 그 부재를 잊어버려야 할 것이다. 김병규(영화평론가) l 2018년 《Filo》 신인평론가에 선정되고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만든 영화로 단편 < 늦은 산책 >(2023), < 오후 >(2023)가 있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사회와 영화계 한국 사회가 언제 평탄한 적이 있었을까 싶지만, 1990년대 중후반 역시 엄청난 시련과 문화적 역동이 함께한 시기였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개혁 행보로 국민의 지지를 얻었지만, 정권의 부패에 1997년 국가 부도 사태까지 직면하며 국민을 궁지로 내몰았다. 6·25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 불린 외환위기는 1997년 12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고서야 간신히 넘길 수 있었고, 바로 그때 1971년부터 대통령에 도전했던 김대중이 당선되며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서막을 올렸다. 하지만 새로운 희망을 품기에는 국민의 삶이 너무 고단했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과 ‘IMF 생계형 범죄’가 속출하는 가운데, 보험금을 받으려는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끔찍한 사건이 그 비극의 정점을 찍었다. 2000년을 기점으로 눈물의 카타르시스로 영화적?사회적 갈등을 봉합하는 신파·멜로드라마 장르가 약화되고, 잔혹한 폭력이 전시되는 ‘조폭영화’ 그리고 범죄스릴러 장르가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9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가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편 1990년대 중후반은 ‘문화의 시대’라고 불리기 시작한 때였다.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찾아온 ‘문화의 세기’, 그 전조였을 수도 있다. 정치, 경제 등 사회 전반이 문화라는 프리즘으로 매개되었고,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예속되지 않는 문화 영역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1995년 1월 TV 드라마 <모래시계>가 한국 정치사와 멜로, 액션 장르를 결합하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온 국민의 뇌리에 ‘조폭’ 이미지를 각인하기도 했다. 그해 ‘서태지와 아이들’이 ‘시대유감’의 노래 가사 심의로 공연윤리위원회와 맞서는 사건이 있었고, 1996년 1월 그들의 은퇴 기자회견은 10대뿐만 아니라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96년 6월에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음반 사전심의가 폐지되었다. 이는 가수 정태춘·박은옥이 사전 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 음반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방식으로 1990년부터 투쟁해온 결과이기도 했다. 한국 대중예술의 영향력을 의미하는 ‘한류(韓流)’라는 용어가 중국의 한 매체를 통해 처음 등장한 것도 1997년이다. 할리우드 외화 직배로 위기를 맞은 한국영화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내고 문화계의 중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화의 틈바구니 속에서 1997년부터 25% 선을 회복한 한국영화 점유율은 1999년 39.7%까지 올랐다. 서울 관객 기준으로 1995년 < 닥터 봉 >(이광훈)이 37만, 1996년 < 투캅스 2 >(강우석)가 63만, < 은행나무침대 >(강제규)가 45만, 1997년 < 접속 >(장윤현)이 67만, 1998년 < 편지 >(이정국)가 72만, < 약속 >(김유진)이 66만, 1999년 < 쉬리 >(강제규)가 244만, < 주유소 습격사건 >(김상진)이 96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흥행을 견인했다. 특히 <쉬리>는 전국 스크린 수가 600개도 되지 않던 시절, 처음으로 전국 58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2000년대 한국영화의 ‘1천만 관객 시대’를 예고했다. 1990년대 중후반의 산업적 활력이 작가주의 감독의 시대를 만들어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젊은 감각의 영화사들은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까지 고려할 패기가 있었고, 작가라 불리는 신인 감독들 역시 대중영화와 예술영화의 접점을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며, 이를 고대하는 젊은 관객들이 한국의 영화문화 지형을 새롭게 짜고 있었다. 특히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1996)로 데뷔한 홍상수가 < 강원도의 힘 >(1998)을 이어가며 모더니즘 영화의 본격적인 흐름을 만들었고, < 악어 >(1996)로 데뷔한 김기덕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남근 중심적인 폭력성이 찬반의 평가를 낳는 가운데 국내외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2004년 베를린(< 사마리아 >)과 베니스(< 빈집 >)의 감독상을 석권하기도 했다. 치열한 창작의 고통을 원고지에서 스크린으로 옮겨간 이창동 감독은 < 초록물고기 >(1997)에 이은 < 박하사탕 >(2000)으로 세계적인 작가주의 감독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박찬욱 감독은 영화광으로서의 취향을 앞세운 데뷔작 < 달은 해가 꾸는 꿈 >(1992)과 < 3인조 >(1997)를 내놓으며 관객과의 접점을 찾는 데 더딘 행보를 보였지만, < 공동경비구역 JSA >(2000)로 흥행과 비평을 두루 만족시키며 2000년대 ‘웰메이드(well-made) 영화’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단편영화, 시네마테크, 국제영화제, 영화저널 등 한국의 영화문화가 새롭게 꽃피기 시작한 점도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이다. 단편영화가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점치는 통로가 된 것도 바로 이때다. 특히 1994년부터 4년간 대기업(삼성나이세스)이 주관한 서울단편영화제를 통해 임순례 , 김태용 , 민규동 , 곽경택 , 정지우 , 정윤철 , 윤종찬 등 주요 감독이 배출되었는데, 국립영화학교라 할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졸업생과 유학파 출신이 많았다. 1995년 한국 최초의 영화전문 주간지 「씨네21」에 이어 마니아층을 겨냥한 「키노」가 창간되었고,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출범을 위시로 1997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이어진 것도 한국 영화문화의 자양분이 되었다. 소설가 출신 감독의 치열한 행보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창동 은 경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후 1981년부터 1986년까지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살았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전리」가 당선되어 소설가로서의 삶도 시작했는데, 1992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소설을 썼다. 영화계 입문은 박광수 감독이 권유했다고 한다. 마흔이던 1993년 < 그 섬에 가고 싶다 >(박광수)의 각본과 조감독으로 첫 영화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충무로의 전통적인 도제식 연출부를 거친 게 아니라 문학적 자산과 치열한 창작 정신을 바탕으로 영화계에 진입한 경우다. 1995년에는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박광수)로 그해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영화 세계가 형성되는 데 1980년대 후반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과의 영향 관계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감독 데뷔는 명계남, 문성근, 여균동이 만든 이스트필름의 창립작 <초록물고기>에서다. 이 영화는 이창동 감독 만들기 프로젝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해 주요 영화제의 각본상, 신인감독상, 감독상을 휩쓸었다.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스무 살의 순수한 청년 영호가 1980년 광주의 경험으로 점차 영혼이 파멸되어가는 것을, 1999년에서 1979년으로 2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했는데 21세기라는 막연한 희망에 들뜬 한국 사람들에게 비극적 현대사를 상기시키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고, 칸국제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다. 세 번째 영화 < 오아시스 >(2002)에서는 장애인 여성과 하류계층 청년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기저를 형성하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민낯을 드러냈고, 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문소리)을 수상했다. 네 번째 영화 < 밀양 >(2007)과 다섯 번째 영화 < 시 >(2010)는 아들을 잃은 여성과 성폭행을 저지른 외손자를 키우는 여성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치유에 대해 질문했고, 칸영화제에 진출해 각각 여주우연상(전도연)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8년 만의 연출작 < 버닝 >(2018) 역시 71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영화 속 종두와 벤의 세계는 <초록물고기>에서 막동이와 배태곤이 그려낸 한국 사회가 20년의 시간이 흐른 모습처럼 보이고, 좀처럼 소설을 쓰지 못하는 종두는 이창동 자신으로 읽히기도 하는 작품이다. 한편 그는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현역 영화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어 1년 4개월간 관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스트필름 사람들. 왼쪽부터 명계남, 이창동, 문성근, 여균동 순수한 청년 막동이의 꿈과 비극 영화는 군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한 청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열차의 난간에 매달려 밖을 바라보던 청년은 앞 칸에서 똑같이 난간에 매달려 있는 한 여성을 발견하는데, 그녀에게서 날아온 장밋빛 스카프가 그의 얼굴을 감싼다. 남자는 전역 후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막동이( 한석규 )이고 여자는 밤무대 가수인 미애( 심혜진 )다. 스카프를 돌려주려고 미애를 찾던 막동이는 그녀를 괴롭히던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한다. 한국 사회의 가장 폭력적인 공간을 막 벗어난 그가 또다시 폭력과 맞닥뜨린 것이다. 분을 삭일 수 없는 막동이는 복수하기 위해 불량배들을 따라 내리지만 결국 기차를 놓치고 짐까지 잃어버린다. 밤늦게 일산의 고향 마을로 돌아온 막동이는 어머니와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첫째 형을 만나지만 다른 형제들은 이미 각자의 삶을 찾아 흩어진 후였다. 이어 영화는 막동이가 계란 장사를 하는 셋째 형과 다방 레지로 일하는 여동생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신도시로 급변한 일산의 풍경을 담아낸다. 막동이는 미애가 남긴 전화번호를 들고 서울로 가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사실 미애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조직 보스 배태곤( 문성근 )의 연인이었다. 그녀의 부탁으로 태곤은 막동이에게 주차장 관리 일을 소개해주고, 그는 자신의 손가락까지 부러뜨려가며 배태곤의 재건축 개발 건을 해결해 조직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미애는 막동이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배태곤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배태곤의 옛 보스이던 김양길이 출소해 인근의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구역을 침범해오자, 태곤은 막동이에게 양길을 살해할 것을 지시한다. 그는 간직해오던 미애의 스카프를 태운 후 김양길을 살해하고, 큰형에게 전화해 어린 시절 초록물고기를 잡던 이야기를 하며 두려움과 눈물을 삼킨다. 왜 한석규가 1990년대 중후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명장면일 것이다. 배태곤은 재개발을 앞둔 건물로 막동이를 불러내 칼로 찌르고, 그는 태곤의 차 앞 유리에 쓰러져 미애를 쳐다보며 죽어간다. 시간이 흐른 후 막동이의 꿈대로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식당을 한다. 태곤과 임신한 미애가 우연히 식당에 들르고, 그녀는 생전의 막동이가 준 사진 속 고향집이 이 식당임을 알고 오열한다. 장르적 공감대와 리얼리즘의 양식 <초록물고기>가 보여주는 사실주의 영화 스타일은, 국내외 영화평론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허우 샤오시엔 등 대만 뉴웨이브 영화와 연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19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의 자산을 물려받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창동만의 화법과 작가적 인장이 이 영화에 새겨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곳에서 파멸해가는 순수한 주인공을 통해 관객과의 정서적 공감대를 구축해간다. 이창동의 영화 역시 코리안 뉴웨이브 영화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 방법론으로 리얼리즘적 태도를 견지하는 동시에, 동시대 관객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분명히 다른 지점에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는 필름 누아르 혹은 갱스터 장르에 기대면서 그 장르적 언어를 예술영화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순간, 지극히 양식적인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리얼리즘적 접근과 관객의 영화적 몰입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완수해낼 때, 환상은 현실과 양면처럼 붙어 있다는 그의 세계관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서울 영등포의 유흥가와 재개발 지역을 배경으로 조직폭력배들의 면면을 그린 누아르 장르이면서도, 영화적 세계(디제시스)와 현실 세계(리얼리즘)를 밀착시킨다. 당시 관객들로부터 진짜 깡패를 섭외한 것인지 기함하게 만든 배우 송강호의 연기도 오랫동안 회자된 바 있다. 막동이가 초록물고기의 사연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공중전화 박스 신도, < 열혈남아 >(왕가위, 1988) 같은 홍콩영화와 < 게임의 법칙 >(장현수, 1994)을 경유해 이창동만의 것으로 수용되었다. 고향집에 돌아온 막동이가 군복 상의를 던질 때의 슬로모션 처리 역시 홍콩 누아르의 장르적 관습이 작가영화의 예민한 언어로 승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사실주의 화법은 카메라의 움직임과도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중요한 순간마다,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과 주인공인 막동이의 시점을 합치면서 리얼리즘을 배가한다. 자신을 구타한 불량배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트로피를 들고 그들을 따라갈 때, 막동이의 시점처럼 보인 주관적 숏은 그가 프레임 인(frame in)하며 다시 제3자의 객관성을 확보한다. 막동이가 처음 나이트클럽으로 들어갈 때 또 배태곤 일파가 자리한 룸으로 들어갈 때도 그와 카메라의 시점 숏은 합쳐진다. 카메라는 막동이의 시선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그가 옛날 아카시아 천지였던 들판이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고 얘기할 때, 막동이를 비추던 카메라는 그의 시선을 따라 팬(수평 이동)하고 점차 그의 얼굴을 가깝게 잡아낸다.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마련한 모처럼의 야유회가 아수라장이 될 때도 자동차로 빙빙 돌며 그 난장판을 지켜보는 시점은 카메라의 것이기도 하고 막동이의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카메라의 운용은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스타일이 이창동의 영화 세계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코리안 뉴웨이브의 자산을 물려받은 대목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막동이의 시점이 카메라의 전지적 시점으로 합일되는 연출은 이 영화가 줄곧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는 곧잘 거울 프레임 속 막동이를 잡으며 그를 하나의 이미지로 정박시키고 현실 너머의 존재인 것처럼 묘사한다. 기차의 화장실에서, 고향집의 방에 돌아왔을 때 또 자신의 손가락을 자해하는 화장실 신에서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카메라가 먼저 포착하는 것이 그렇다. 물론 이는 20대 청년 막동이가 꿈(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고뇌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가해한 부분은 막동이가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존재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막동이와 어머니를 비추고 있지만 어머니는 오랜만에 돌아온 막동이의 말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어머니의 대사는 막동이의 옛날 사진을 보여주는 인서트 이미지에서 들릴 뿐이다. 즉 둘의 대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큰형이 동네 어귀에 나와 그를 기다리는 장면에서도, 막동이는 커트되지 않는 숏을 통해 마치 귀신처럼 나타난다. 어쩌면 영화는 막동이가 이미 죽은 존재와 다를 바 없거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살아가야 함을 말하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한국영화, ‘웰메이드’라는 브랜드 1990년대 후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신인 감독들이 등장했고 이들의 역동성은 2000년대 한국영화가 산업적 활기와 장르적 완성도를 갖추는 기반이 되었다. 그들은 ‘충무로’라는 상업영화 시스템을 활용해 영화를 만들면서 본인만의 개성을 새기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특히 2003년 흥행성과 작가주의적 완성도를 겸비한 < 살인의 추억 >(봉준호), < 장화, 홍련 >(김지운),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이재용), < 올드보이 >(박찬욱) 등이 선보이며 ‘잘 만든’ 상업영화를 뜻하는 ‘웰메이드 영화’가 한국 영화산업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장르영화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미학적, 기술적 완성도의 최고점에 도달한 영화들은 2004년 < 범죄의 재구성 >(최동훈), < 효자동 이발사 >(임찬상), 2005년 < 혈의 누 >(김대승), < 달콤한 인생 >(김지운)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예민한 주제들을 장르적으로 해석하며 예술성까지 확보한 2000년대의 한국 상업영화는 해외에서도 인정받았다. 이는 < 복수는 나의 것 >(2002), < 올드보이 >, < 친절한 금자씨 >(2005) 등 복수 연작에서 작가주의적 미장센의 향연을 보여준 박찬욱이 주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