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맥그리거의 인질
- 감독
- 대니 보일
- 제작년도
- 1997
- 출연
- 이완 맥그리거, 카메론 디아즈, 홀리 헌터, 델로이 린도, 스탠리 투치, 이안 홀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과거에 만난 작품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어떤 소리가 어떤 영상을 구제하러 와서는 결코 안 되고, 어떤 영상이 어떤 소리를 구제하러 와서는 결코 안 된다. -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 나는 영화 음악 작업을 할 때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으려 애쓴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만 관성에 기대게 되기 때문이다. 관성에 기댄 받아쓰기는 순간을 모면하도록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이 일을, 혹은 나를 이끄는 건강한 동력이 되지는 않는다. 다행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의 질문을 던질 때 후반 작업에는 연출이 곁에 있다. 그러나 조금은 두려운 표정으로. 내 홈페이지의 자기 소개란에는 10년 넘게 “저와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겁먹지 말고 연락 주세요”라고 쓰여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를 개인적으로 모르는 연출들이 메일을 보낼 때 팔 할은 이 부분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음악을 잘 몰라서 두렵지만 겁먹지 말라고 쓰신 것을 보고 용기 내어 연락드립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두렵게 만드는 걸까? 두려움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영화제 제출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일정이 딜레이 되어서 후반 작업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이미 예산이 초과되었다거나 하는 현실적인 문제일 때도 있고, 음악 감독과 작업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어떤 방식과 일정으로 소통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음악적인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어떤 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을 형용해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실질적인 워크플로우에서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주기는 어렵지만, 후자 둘의 경우 문제는 음악에 대한 설명을 음악적인, 음악의 문법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면 쉬워진다. 이 부분에서 왜 음악을 원하는지, 여기서의 음악은 누구의 생각을 대변해야 하는지, 음악은 기억을 소환해야 하는지, 미래를 예지해야 하는지, 누구의 시점이어야 하는지, 혹 필요 없지는 않은지. 아리송한 표정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왜”들을 나누는 동안 우리는 알게 된다. 그림에 음악을 붙일 때 필요한 대화가 꼭 음악적 문법 안에 갇혀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미 연출의 머릿속에는 음악 외적(이라고 알려진)인 단서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크레딧을 제외한 모든 음악이 영화 안에서 존재하는 < 사랑의 고고학 >(이완민, 2022) 같은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는 수많은 “왜”들 속에 연출의 두려움뿐 아니라 나의 두려움도 자리한다. 내가 만든 음악들이 영화에서 어떤 당위를 잃은 채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혹은 실패한 환영(phantom)의 대리인이 되지 않을지, 현란한 몸짓으로 언어와 그림의 간극을 메우는 모종의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지는 않을지,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 거짓말은 환영받을 수 있을지, 관객을 이 세계로 끌어들이는 마법이 될지, 이 음악이 도움이 된다면 어디에, 누구에게 도움이 될지. 몇 편의 작업을 거치면서, 그리고 작업 과정이 익숙해질수록(!) 이런 끝없는 의심과 두려움은 사라지기는커녕 거의 실재하는 무엇이 되어 작업실 한 켠에 자리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하는 이 일이 지루할 틈 없도록 나를 긴장시키고 이끄는 재미가 되었다. 재미. 역시 재미가 중요하다. 혹자에겐 식상한 레퍼런스일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대학 초년생 때 보았던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1930-2022)의 < 미치광이 삐에로 >(Pierrot le fou, 1965)가 영화 음악을 만들 때 맞닥뜨린 두려움을 재미로 치환시키는데 일조한 영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미치광이 삐에로>(장 뤽 고다르, 1965)의 첫 시퀀스 중 한 장면 <미치광이 삐에로>의 인트로는 앙투안 뒤아멜(Antoine Duhamel, 1925-2014)의 세련된 오케스트레이션과 그 위를 타고 흐르는 유려한 멜로디로 시작한다. 오 아주 신경 써서 음악을 썼구만,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음악은 음악적인 흐름과 무관하게 끊기고 나레이션으로 넘어간다. 내 첫 고다르 영화였던 이 영화의 인트로를 보았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 음악 편집 작곡가랑 협의된 건가?’ 놀랄 겨를도 없이 음악의 나타남과 사라짐은 바로 대사와 현장음, 컷과 뒤섞이면서 편집에 고유한 리듬감을 부여하고 성큼성큼 나아간다. 멀찍이 떨어진, 어딘지 모르게 쑥스러운 모습이 아닌, 스크린 앞에서 배우와 함께 대사도 치고 연기도 하면서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종래에는 갑작스러운 연출에 정당성마저 부여하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음악은 두 주인공 마리안느와 페르디낭의 나레이션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하기도 하고, 관객과 영화 속 인물의 경계를 허물면서 인물들이 가진 권한을 확장하기도 한다. 화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연속성을 가져오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이야기에 반주를 맞추며 자신의 쓸모로 재주를 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부러 뭉그러뜨린 질감과 갑작스러운 등장과 사라짐은 관객으로 하여금 지금 들리고 있는 것이 만들어진 영화 음악이고 당신은 만들어진 허구를 보고 있다, 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물론 매 순간 자신의 정당성을 뽐내는 이 칼춤 같은 음악의 사용이, 혹은 이것이 주는 쾌가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쥐고 벼려온 도구의 사용 방법과 기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것이 의심 없이 사용되는 것을 경계해 온 사람의 고민의 흔적은 현재 나의 고민이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길잡이가 되어주고, 때로는 위안이 되어준다. 이런 소리의 질감과 음악의 사용이 어떤 사고와 고민을 거쳤겠구나, 천천히 짐작하며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선택지가 깔린 두려운 길에 친구가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은 음악 사용의 옳고 그름과도, 성공과 실패와도 무관하며, 오히려 그런 것이 없다는 것, 수많은 선택지 안에는 어떤 더 많은 (드러나는 혹은 숨겨지는) 선택지들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음악이 화면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신경 쓰면서 보는 것과 그냥 영화를 감상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일례로 음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직종에 종사 중이신 나의 부모님은 당신의 자식이 영화 음악을 시작한 뒤로 극장에서의 청취 경험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한다) 어떤 방식이 더 적절한(?) 영화 감상인지를 논하는 것은 내 역량 밖의 일이지만, 영화에서 어떤 감동과 위로를 받는 것만큼이나 영화의 말하기 방식이나 그 속성에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지금 극장을 울리는 음악이 어떤 이유로 거기 있는지, 그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신경 써서 감상해보시기를 권한다. 그 과정은 영화와 새로운 관계 맺음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정말로 재미있을 거니까. *** 사진: "Pierrot le Fou", IMDb, < https://www.imdb.com/title/tt0059592/?ref_=fn_al_tt_1 > 이민휘(음악가) l 종종 다른 사람들의 영화, 드라마, 연극이나 미술 작업에 음악으로 함께 하기도 한다. 2012년 무키무키만만수 [2012]로 데뷔, 2016년 첫 솔로 음반 [빌린 입], 2023년 두 번째 정규 음반 [미래의 고향] 발표. 둠-메탈 밴드 'Gawthrop'에서 베이스 담당. 드라마 < 박하경 여행기 >(이종필, 2023). 영화 < 사랑의 고고학 >(이완민, 2022), <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김세인, 2021), < 최선의 삶 >(이우정, 2020) 등의 영화에 음악.
이완민 감독의 두 번째 장편 < 사랑의 고고학 >(2022)에서 주인공 영실(옥자연)은 고고학을 공부하고 30대에도 여전히 현장에서 흙을 털어내고 고르며 유물을 찾아내는 연구원을 하고 있다. 지도교수를 비롯해 같이 공부한 사람들이 이제 아카데미로 들어와 일을 찾으라고 해도 영실은 시간을 직접 만질 수 있는 현장이 좋다. 유적 안에 있는 옛 건물과 주거지가 변경되었음을 알려주는 지표인 유구선(遺構線)을 직접 붓으로 하나하나 흙을 털어내며 만지는 것은 시간의 과거와 접촉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영실이 자기의 삶 자체를 멀리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지층처럼 중첩된 과거, 현재, 미래가 발굴된 유적 현장처럼 그 시간들과 시간들 사이에 켜켜이 쌓여 있는 마음들의 유구선을 끈질기고 집요하게 털어내고 고른다. 그것이 무엇이고, 언제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마음으로 변해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해갈지 지켜보면서 말이다. 때로는 그러한 고고학적 실천이 영실 스스로를 상처 내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영실은 모두가, 심지어 함께 사랑을 확인하고 미래를 약속했던 연인이 떠나고 그 남자가 야기한 폭력으로 폐허만 남은 후에도 그 감정의 결과, 약속의 의미와, 폭력의 메커니즘의 유물을 섬세하게 손끝으로 감각하며 끝끝내 자신의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시간을 응시하는 자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뒤늦음’의 시간이나 ‘후회’라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고학 현장에서 ‘이후의 시간’은 뒤늦지 않고 언제나 적당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완민 감독의 첫 번째 장편 < 누에치던 방 >도 두 번째 작품처럼 시간과 마음의 지층들을 보살핀다. <사랑의 고고학>이 40대에 다다른 여성이 30대의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발굴하는 데 집중하는 영화라면, <누에치던 방>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할 만큼 큰 상처가 각인된 청소년기의 시간의 방에 갇혀 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이들이 서로를 지켜봐주고 증언하고 그 지층의 실들을 발굴하는 영화다. 그렇게 교차적으로 목격된 시간들은 사회를 만든다. 독립된 인간이란 사회에 참여하면서 사는 인간이다. 이 영화는 30대, 40대가 된 성인들이 서로의 청소년기를 목격하고 상대에게서 우연히 자신의 흔적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10년 째 고시공부를 하다 이제 30대 중반이 되었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실패한 미희(이상희)는 남자친구와도 헤어진다. 고등학교 때부터 오로지 공부를 목적으로 친구 관계도 모두 끊어내고 고립되어 살아온 미희는 할 줄 아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미희는 고치에서 나오지 못한 애벌레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하철에서 볼펜과 메모지를 나눠주며 자기한테 하고 싶은 말을 그게 뭐든지 적어달라고 호소하는 고등학생 유영(김새벽)을 만난다. 유영 역시 이 사회 속에 참여하고 싶은 열망이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이해시키는 데 서툴다. 유영을 쫓아간 미희는 아파트 문을 두드리고 성숙(홍승이)을 만나게 된다. 미희는 충동적으로 한 번도 본적 없는 성숙에게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단짝친구라고 한다. 성숙은 그런 미희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느끼면서도 집안으로 들여 다독여준다. 이 영화에서 성숙은 유일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이다. 성숙은 미희에게서 자신과 자신의 진짜 어린 시절 단짝친구인 유영의 흔적을 읽어낸다. 미희는 부모의 만족을 위해 평생을 자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단절해온 상처를 갖고 있고, 성숙과 성숙의 남자친구 익주(임형국)는 단짝친구 유영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산다. 성숙과 익주는 유영이 죽은 이유를 알 수 없다. 유영은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고 말을 하고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사회는 그런 유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성숙은 이제 겨우 고치에서 탈출해 사회로 나오려고 하는 미희에게서 그런 유영의 흔적을 처음부터 본다. 그리고 진짜 단짝 친구였던 것처럼 관계를 맺는다. <누에치던 방>은 30대인 성인도 뒤늦게 고치에서 나올 수 있다고 다독여진다. 그럴 때 아무 말 없이, 이유도 묻지 않고 친구로 받아들여주는 성숙 같은 주변인이 있다면 실패하고, 늦었더라도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연극배우인 성숙은 거리에서 어떠한 인위적인 무대장치나 소품도 없이 돈키호테를 연극하는 실험적인 공연을 한다. 관객도 지나가는 거리의 행인들이다. 그럼에도 성숙이 칼을 들고 풍차를 향해 달리는 연기를 하자 사람은 말이 되고, 지저분하고 무미건조한 회색도시의 풍경은 초원이 된다. 성숙은 사회에 참여하는 동시에 자기 주변의 사회를 바꾸는 사람이다. 미희는 과거에 자신이 모질게 굴어 단절했던 고등학교 친구와 대학교 선배를 찾아가 시간과 관계를 회복해 보려 한다. 그러나 선배와의 만남은 다소 허무하고 고등학교 친구는 만나주지 않는다. 결국 자살까지 시도하려던 미희는 수술을 하게 됐으니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느냐는 성숙의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자살을 포기한다. 늘 보호와 관심을 요청하던 미희는 돌봄의 요청을 받는 자가 된다. 독립적으로 사회 속에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성숙은 사실 미희만큼은 아니지만 유영이라는 상처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미희는 그런 성숙을 알아봐준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유영을 알지 못했던 미희는 유령처럼 다른 시간대에 출현한 유영을 알아보지만, 성인이 된 성숙과 익주는 유영을 만나도 알아보지 못한다. 아마도 미희가 만난 유영은 진짜 유영이기 보다는 유영과 같은 상처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등학생일 수도 있다. 그리고 미희가 그녀에게서 유영의 흔적을 읽어낸 것일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이들이 교차하면서 서로의 이야기의 흔적을 찾아주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서사 속에서 그래도 미희와 성숙은 살아남아 미희의 고등학교 친구 근경을 찾아간다. 그러나 근경은 미희에게 ‘그만 스토킹을 하라’며 화를 낸다. 근경은 ‘이제 와서 무엇을 함께 할 수 있겠냐?’며 반문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얽인 실타래처럼 혼재되어 살아가는 미희, 성숙과 달리 근경은 이미 오롯이 현재의 시간을 산다. 근경은 미희에게서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읽어낼 수 없다. 그리고 영화는 그에 약간의 충격을 받은 미희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끝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흘러가고 그 시간이 언제나 맞아떨어질 수 있으리란 염원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낙관을 말하기보다는 성숙이란 존재가 고대유물처럼 얼마나 희귀한 존재인지를 역설한다. (관련글) 1. 소진과 이상한 기운 - <아워 바디>(2018), 2021.04.23. 2. 의심의 씨앗과 취약한 영웅들 - <도희야>(2013), 2021.05.21. 3. 여름밤 초록색 전구불빛이 가만히 당신을 응시할 때 - <남매의 여름밤>(2019), 2021.06.18. 4. 당신의 안녕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 <내가 죽던 날>(2019), 2021.07.16. 5. 피해와 가해의 알레고리 - <소리도 없이>(2019), 2021.08.13. 6. 돌봄의 정동 - <우리집>(2019), 2021.09.10. 7. 유년과 재난 - <벌새>(2018), 2021.10.22. 8. 목격의 시간 - <휴가>(2020), 2021.11.19. 9. 한평생 이야깃거리가 된 삶을 찢고 나온 웃음소리 -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 2021.12.17. 10. 이름을 불러 닿는 시간 - <윤희에게>(2019), 2022.01.14. 11. '혼자'의 정동 - <혼자 사는 사람들>(2021), 2022.03.15. 12. 억압의 체제와 닫혀있는 여자들의 세계 - <궁녀>(2007), 2022.04.13. 13. 소원성취, 환상, 실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 <팬지와 담쟁이>(2000), 2022.05.18. 14. 몫과 값 그리고 경계물 - <82년생 김지영>(2019), 2022.06.24. 15. 실종의 감각과 징크스의 미학 - <오마주>(2022), 2022.07.21. 16. 레즈비언 편집술, 혹은 시계가 된 여자 - <연애소설>(2002), 2022.08.19. 17. 탐정-엄마의 각성하는 모성 - <비밀은 없다>(2016), 2022.09.16. 18. 시간과 정념의 지층을 찾아서 - <누에치던 방>(2018), 2022.11.04. 19. More or Less - <모어>(2021), 2022.12.09. 20. 이름을 지우고 살아남기 - <안나-감독판>(2022), 2023.01.09. 21. 우리에겐 따뜻한 국물과 유머가 필요하다 -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2023.02.07. 22. 아직 끝나지 않은 - <미망인>(1955), 2023.03.10.
첫 키스 신의 수혜자에서 이완용 단골 배우로 해방 후 미군정기(1945년 9월 9일~ 48년 8월 15일)까지 제작된 영화는 최인규 감독의 <독립전야>(1948)까지 29편에 이른다. 이 가운데 경찰의 지원 아래 만든 정책 계몽영화가 <밤의 태양>(박기채, 1948), <수우(愁雨)>(안종화, 1948), <여명>(안진상, 1948) 등 세 편이다. 이향(李鄕)은 이 가운데 <밤의 태양>(1948)으로 영화계에 이름 석 자를 올렸다. ‘7’이라는 별명을 가진 불량배 역할이었다. 그는 영화를 찍는 동안 박기채 감독의 유난스런 호각 소리를 여러 번 들어야 했다. 박 감독은 일반적으로 쓰는 ‘레디고’대신 먼저 ‘레디’라 외친 뒤 호각을 불었다. 이 영화를 촬영할 때 모조품이 아닌 각종 총기가 소품으로 사용되었다. 특수효과 기술이 빈약해 실탄을 넣고 쓰다 보니 배우들이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이향, 「예(藝)에 살다, 연기일생(12)」 , 『일간스포츠』, 1980.1.18) 그는 <밤의 태양>에 이어 김성민 감독의 <사랑의 교실>(1948)과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를 번안 각색한 <심판자>(1949)에 출연했다. 이렇게 조연에 머물렀던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에 고학생으로 위장한 방첩대 대위 신영철 역을 맡으면서부터였다. 그는 도둑의 누명을 쓰게 됐을 때 자신을 구해준 술집 종업원 마가렛(윤인자)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가 위장 대남 간첩(정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권총을 겨눠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향은 그 여간첩이 자신의 품에서 죽어가는 결말 부분의 키스 신을 찍기 위해 감독과 함께 1주일 동안 상대역인 윤인자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키스라고 해야 겨우 입술만 댔을 뿐인 어설픈 이 장면이 한국 최초의 키스신이 된 배경이다. [사진] 최초의 키스신으로 알려진 <운명의 손>(한형모, 1954)의 한 장면 이향은 <운명의 손> 이후 <인생역마차>(김성민, 1956), <마의태자>(전창근, 1956), <검사와 여선생>(윤대룡, 1958), <형제>(김성민, 1958) 등에 주연으로 기용되면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인생역마차>에서는 암흑가의 두목과 신문기자 1인 2역을, <마의태자>에서는 타이틀 롤을, <검사와 여선생>에서는 은혜를 입은 옛 은사를 법정에 세워야하는 검사 역을 맡고, <형제>에서는 남의 아내가 된 옛 애인 앞에 살인강도가 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에게 이와 같은 기회를 준 것은 <사랑의 교실>부터 <형제>까지 네 편에 불러준 김성민 감독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그 후의 배역들이 앞의 작품들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거나 비호감형, 악역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멜로드라마 보다 시대극이나 활극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사진] <형제>(김성민, 1958)에 출연한 이향_사진제공 김종원 그 예로 <이름 없는 별들>(김강윤, 1959)의 일본 경찰 주임, <한말풍운과 민충정공>(윤봉춘, 남홍일, 1959)의 강압적인 일본 사신 하야시, <아아, 백범 김구 선생>(전창근, 1960)의 저격 미수범 한태구, <안개 낀 거리>(강범구, 1963)의 살인 청부 역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전창근, 1959) 이후에는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신상옥, 1959) 등 이완용 배역만 무려 여섯 번이나 맡아 ‘이완용 단골 배우’가 되었다 .(이향, 「예에 살다, 연기일생」 (19) 『일간스포츠』, 1980.1.27) 그는 1964년 한 해 동안 <동굴 속의 애욕>(강범구) 등 11편에 출연, 최다기록을 세우며 1991년 7월 29일 알츠하이머로 77세의 삶을 마칠 때까지 <원점>(이만희, 1967), <검은 장갑을 껴라>(이상언, 1971), <악인의 계곡>(김묵, 1974), <족보>(임권택, 1978), <바람 불어 좋은 날>(이장호, 1980), <초대받은 성웅들>(최하원, 1984) 등 모두 131편의 영화를 남겼다. [사진] <검사와 여선생>(윤대룡, 1958)의 한 장면 단련된 몸으로 이미 맛본 단역 경험 독특한 저음이 만들어내는 광물성의 강한 목소리, 날카로운 눈매로 36년 동안 한국영화계의 길목을 지킨 이향은 1914년 2월 8일 서울 효제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근식(李根植)이다. 그는 아홉 살 때까지 강원도 홍청군 서면 동막리에서 자랐다. 자수성가한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농사를 짓게 하고 자신은 일본 사람을 상대로 모피 장사를 했다. 이 소년은 집근처인 연동교회에 다니며 뒷날 부통령이 된 함태영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풍족한 아버지 덕에 서울주교보통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경신(儆信)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학기 초에 배재고등보통학교의 축구선수로 스카우트되는 바람에 학교를 옮겨야만 했다. 그런데 축구가 싫어졌다. 이 학교를 나와 들어간 곳이 연희전문학교 별과(別科)였다. 별과란 축구와 야구선수로 구성된 일종의 특기 반이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연극에 있었다. [사진] <이름없는 별들>(김강윤, 1959)에 출연한 이향 이 무렵 낭만좌(座)라는 극단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조연 배우가 나가는 바람에 급히 자리를 메워야 한다며 출연을 권했다. 그 대타로 나가게 된 것이 <아편전쟁>의 쿠리 역이었다. 작은 역할이었으나 칭찬을 받게 되자 학업마저 중단했다. 연극 일이 늘면서 한 선배가 그에게 “고향을 그리듯이 조국을 잊지 말라”며 시골 향(鄕)자가 들어간 예명을 지어 주었다. 이향은 <밤의 태양>에 앞서 해방 전 눈에 안 띄는 배역이지만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스물다섯 살 때였다. 하루는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제작부장(이백산)이 불러 만났더니 영화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맡겨진 배역은 갑, 을, 병 세 명의 농부 가운데 한 명인 농민 역, 김유영 감독의 <수선화>(1940)였다. 의정부 촬영장으로 나갔더니 감독의 지시라며 바지저고리부터 입게 하고는 4, 5일 동안을 땅바닥에서 지내게 했다. 그래야만 농부의 분위가 몸에 밴다는 것이었다. 황달병을 앓고 있던 김 감독은 눈이 퉁퉁 부은 상태로 들것에 실려 나와서도 극성스럽게 현장을 지휘했다. (이향, 「예에 살다, 연기 일생(8)」 『일간스포츠』, 1980.1.14) 이향은 그 뒤 연극계의 선배인 극작가 이광래의 소개로 연극지망생인 처녀와 사귀었다. 1949년 ‘제3무대’라는 극단을 만들어 공연 준비에 한창 바쁠 때였다. 손 씨인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대한통운의 전무였고 오빠는 아나운서였다. 하지만 그녀의 집안에선 그들의 교제를 적극 반대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동거로 맞섰다. 첫딸이 네 살이 되어서야 겨우 승낙을 받고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1970년 이향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병마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보살폈던 그런 아내도 6남매를 남긴 채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