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라
- 감독
- 배해성
- 제작년도
- 1989
- 출연
- 이남이, 견미리, 박윤배, 김기종, 장동일, 이정웅, 안대욱, 김경란, 유경애, 추영, 하흥원, 김도화, 강효정
나는 상상해본다. 만약 4.19 민주화 혁명이 5.16의 군홧발에 짓밟히지 않고 순리대로 흘러왔다면 1970년대는 한국영화의 지독한 암흑기가 아니라 전성기가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1970년대는 민주화의 경험을 했던 4.19 세대들의 의식과 기타와 청바지로 상징되는 청년문화가 만나 한국영화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하길종 은 이런 암울한 시기에 한국영화계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패기 넘치는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상시대라는 이름을 내걸고 패악적인 한국의 제도권 아래에서 영화를 통해 파문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 도전이 성공이었는지 실패였는지에 대한 평가는 이 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동인의 한사람이었던 홍파 감독의 77년 작품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를 보면서 그들의 위풍당당함이 어떻게 큰 불꽃을 만들지 못하고 사라져야만 했는지 나름대로 짐작해 보고 안타까워할 뿐이다. 한국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한국적이라 할 만한 것들을 찾아나서는 여정일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와 주체적 이미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야말로 이 땅에서 영화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사명이었을 것이고, 영상시대 동인들도 그 부분을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고민했을 법한 한국적 이야기와 이미지를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와 함께 하길종 감독이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 한네의 승천 >을 보며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전통적으로 한국적 스토리라 이야기 되어온 한恨이라는 정서를 밑바탕에 두고, 불교의 윤회설을 끌고 들어온다.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이어지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의 이야기는 승려가 된 남편 광덕을 둔 아내의 이야기 - 그녀가 아내인지는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스토리를 통해 유추한 것이다- 로 아내는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탈을 쓰고 침입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절벽에서 떨어져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이 스토리는 현대에 와서 그들의 환생이라 할 대학생 커플 엄장우와 현진 커플과 중첩된다. 탈춤을 추는 장우는 갑자기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환영에 시달린다. 장우는 탈을 보면서 기이할 정도로 불안정함을 느끼는데, 결국 그 원인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죄의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과거 비극의 진원지였던 안동 하회마을에서 다시 만나 장우와 현진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과 똑같은 방식으로 강간사건을 겪는다. 과거 광덕이 아내의 강간과 죽음을 막지 못했듯, 현재에서 장우는 애인이 강간당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결국 이 영화도 < 한네의 승천 >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적 상황을 순환시켜 패배주의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하고 불편해 할 때 쯤, 영화는 작은 반전을 준비한다. 나는 장우와 현진의 미래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윽 몇 초 끼워 넣은 장면이 참 좋았다. 이 몇 초가 관객을 편안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하길종 감독이 <한네의 승천>에서 끊어지지 않고 윤회를 통해 반복되는 비극을 그리며 끝나지 않는 고통을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홍파 감독은 강간범의 체포, 장우와 현진의 결혼으로 마무리 한다는 점에서 이런 결말이 더 현대적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결국 장우의 죄의식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여성들에 대한 죄의식이기도 하겠고, 좀 더 의미를 확장하자면 당시 유신 독재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던 민중에 대한 죄의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이 알레고리를 동원한 우회적 사회비판일 수밖에 없을 때 느껴지는 영화작가의 자괴감도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서 현생의 에피소드에서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의 목소리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목소리였을 것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극중 인물인 장우든, 감독의 것이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은 유신과 독재를 막지 못한 모든 남자들 혹은 지식인들의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더더기처럼 붙어있는 마지막 시퀀스, 뜬금없이 삽입되는 “회개하시오”라는 기독교적 외침을 이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불친절한 것은 어쩔수가 없다. 민속과 윤회를 통해 한국적 스토리와 영상미에 대한 고민은 분명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전생과 현생을 오가는 편집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끊임없이 몰입을 방해하는 편이다. 이러한 시도가 분명 상업적 헐리우드 영화 스타일에 대한 대항마로서 끌고 왔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절제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해 지다보니 오히려 혼란만 부축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아쉽게도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는 외화 쿼터를 따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로 전락해 창고에 처박혀 버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개봉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대중과 만나지 못한 한국적 영상 혹은 소수의 대중만이 본 한국적 영상미는 관객들의 취향을 변화시키지 목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도전과 오류를 보면서 영상시대가 혁명이 되지 못했던 원인을 관객에 대한 배려부족에서도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 영상시대 동인들의 이러한 도전정신은 시나브로 한국영화계에 단비가 되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비록 뒤집어엎지는 못했지만 그 영향력은 서서히 깃들었다. 이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한국적 스타일은 이듬해 임권택 감독이 <족보>에서 좀 더 섬세하게 구현한다. 영상시대 동인이든 아니든 의식 있는 동시대 영화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영상시대의 끝자락에 나온 홍파 감독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의 실패가 사랑스럽다. 김윤택 유정희 윤영실 장두이 감독 홍파 각본 이원영 촬영 권재홍 음악 황병기 미술 조경환 편집 장길상 1977년 100분 칼라 판매원 (주)일진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0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