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상자의 주인을 아세요?
- 감독
- 이유진
- 제작년도
- 2005
본 게재 원고는, 17-19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국영화박물관 교육 프로그램 ‘청소년을 위한 영화 글쓰기 키트’의 최종 과제입니다.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거장이자, 가족 영화의 대가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정의 내리길 반복한다. 덕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속 가족은 어딘가 평범하지 않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엄마가 다른 자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떨어져 사는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아들이 바뀐 가족, 그리고 그 중 <어느 가족>의 가족이 가장 정상적이지 않으면서도 진짜 가족보다 더 진짜 같은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닮지 않아도, 피로 이어지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혈연이 다 무슨 소용인지,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시바타 가족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납치’와 아동학대를 당하는 어린아이를 ‘구한’ 것의 갈림길에 있는 이 사람들에 대해서 관객들은 전혀 범죄자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처지에서 공감하고, 그들을 진짜 가족보다 더 가족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진짜 가족과 그 사람들에게서 안전함을 느끼며 잘 살던 린(사사키 미유)과 쇼타(죠 카이리)를 억지로 돌려보낸 경찰에게 분함을 느낀다. 이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도,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수도, 돌아가신 할머니의 장례도 치를 수 없는 불완전한 부모이고 가족이지만 우리는 이들을 보며 가족이라는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선 단순 피뿐만 아니라 많은 조건이 있음을 깨닫는다. 첫째,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 것. 엄마가 자기에게 옷을 사준다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맞고 살던 린에게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사랑하면 때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때린다’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갑-을 관계와 닮아 있어 자식은 쉽게 ‘갑질’에 노출이 되곤 한다. 단지 때리는 것만이 폭력인 것은 아니다. 부모가 자식이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선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강요하는 것이 가장 아무렇지 않게 행해지는 갑질, 폭력인데, 노부요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린에게 처음으로 사랑한다면 보듬어주고, 강요보단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부모라는 것임을 알려준다. 둘째, 항상 함께할 것. 쇼타는 차 안에 방치되어 있었고, 린은 추운 겨울밤에 혼자 베란다에 나와 있었다.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할 나이에 부모 없이 방치해 두는 것은 가족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 꼭 한 번씩은 가족에게 상처받고, 버림받은 이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선택해 가족이 되었다. “스스로가 선택하는 편이 더 강하지 않겠어? 유대라던가 정 같은 거”라는 노부요의 말을 떠올려보자. 사회는 이들을 원래 가족의 품에, 시설에 보내버리는 둥 이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려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비록 사회가 인정해주는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고 행복이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이들만이 진정한 내 편, 내 가족이었다는 기억만큼은 누구도 우리에게서 훔쳐 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 보이듯 이들은 더이상 함께할 수 없는 ‘우리’를 기다리며 다시 함께할 꿈같은 날들을 기다린다. 진짜 가족보다 더 깊은 유대와 정을 느끼는 가족. 애초에 가족의 시작은 혈연이 아님에도, 가족은 무조건 혈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에 ‘시바타 가족’은 돌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반성하듯 비극적인 결말에 눈물을 쏟는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차갑고, 단호하다. “버린 게 아니라 주워온 거예요. 버린 사람은 따로 있는 거 아닌가요?”라는 노부요의 말에 경찰은 공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뻔뻔한 범죄자로 인식할 뿐이다. 우리의 현실이 그렇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그들 안에 껴서 그들의 생활을 바라보고 함께하며 보는 것을 사회는 알지 못한다. 실제로 이 가족에 대한 뉴스가 세상에 공개된다면 <어느 가족>을 보며 눈물을 흘렸던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가? 세상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는 것을 단순 영화 한 편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세상의 또 다른 ‘시바타 가족’을 위해 이제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불쾌한 요소들 절도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유사 매춘 행위를 통해 돈을 벌고, 납치를 돈을 요구하지 않았으니 납치가 아니라며 황당할 정도로 뻔뻔한 이들을 우리는 왜 불쾌하게 바라보지 않는가. 일단 이것이 연민이나 동정은 아니다. 처음 린을 납치해왔을 때도 노부요는 돈이 되는 것을 데려오라고 딴지를 걸기도 했고, 린의 실종 뉴스가 나와도 방귀 뀐 사람이 누구냐고 장난치며 그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생각도 않았다. 쇼타가 도둑질을 하던 상점의 사장이 이들의 도둑질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듯 이들의 뻔뻔함에 속아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것을 범죄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범죄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이것이 좋은 현상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독특한 제작방식 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작품은 스토리 뿐만 아니라 제작 과정도 스토리 만큼이나 놀랍다. ‘액션’을 외치기 전에도 계속해서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생각하고, 더 좋은 영화를 만들려는 감독의 욕심은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 아직 미완성인 시나리오지만 여름을 놓칠 수 없어 여름 장면만 먼저 찍은 것은 물론이고, 배우의 연기에 맞춰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한다. 또, 당시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안도 사쿠라의 연기, 특히 우는 장면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앞으로 우리가 찍는 영화에 우는 장면이 있다면 안도 사쿠라를 흉내 냈다고 생각하면 된다"라고 말하며 안도 사쿠라의 연기를 극찬했는데 케이트 블란쳇이 말한 그 장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안도 사쿠라가 “노부요는 한 번도 엄마라고 칭해본 적이 없어요, 그럴 기회가 있어도 엄마라는 단어를 쓰지 않죠”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두고 그것을 그대로 영화 속에 녹여낸 것이다. 독특한 미장센 영화에는 음악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독특한 소재답게 독특한 음악을 사용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특히 영화의 오프닝인 쇼타와 오사무(릴리 프랭키)가 함께 장을 보는 장면에서의 그 음악이 없었더라면, 지극히 평범한 가족의 장보기로 밖에는 안 보였을 것이다. 더구나 뒤죽박죽 산만해 보이면서도 잘 어우러지는 집 안과 밖의 풍경은 전혀 다른 가족 구성원의 하모니가 잘 어우러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듯하다. 이들이 따뜻한 가족이었는지, 뻔뻔한 납치범, 좀도둑에 불과했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나름대로 사정, 상처를 안고 사는 어른이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어린아이를 진짜 부모보다 더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사랑해주었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유독 아동학대에 관한 뉴스가 자주 들려오는 요즘, 피해자 아이들에게 굳이 진짜 가족과 함께할 필요 없다고 얘기해주는 이 영화는 세상의 많은 ‘시바타’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이 영화는 동유럽 낯선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공항에 도착해 생수를 단숨에 들이켜는 유진( 김새벽 )의 첫 쇼트는 호기심과 긴장이 교차하는 여행자의 시선으로 반짝인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그녀의 몸짓에서 매혹적인 여행지의 마법을 기대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내 엉뚱한 사건과 상황이 중첩되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같은 인물 비슷한 대사가 반복되고 시간과 공간이 모호하게 혼재된다. 이야기를 좇는 길목마다 퀴즈를 푸는 만만치 않은 모험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난 캐릭터, 거침없는 대화, 자유로운 연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빚어내는 젊은 패기와 활력이 영화를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폴란드에 도착한 유진은 한국 남성들을 우연히 만나고 고려인에게 행운의 꽃을 선물 받는다. 선배 동철( 조현철 )과 만난 바에서 인상 나쁜 한국인을 다시 만나자, 유진은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친구 원식(정혁기)을 만나러 우크라이나로 간 동철은 세르게이(박진수)가 벌이는 위험한 사업에 말려든다. 이 과정에서 원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고 동철은 원식과 함께 도망 중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는다. 여기까지가 ‘국경의 왕’ 챕터이다. 이어지는 ‘국경의 왕을 찾아서’ 챕터에 동일 인물이 다시 등장하지만 전혀 다른 설정이다. 구성상 ‘국경의 왕’은 허구이고 ‘국경의 왕을 찾아서’는 실제이다. 거칠게 구분하면 ‘국경의 왕’은 동유럽에서 영화를 찍고자 하는 유진과 동철이 쓰고 있는 허구의 시나리오고, ‘국경의 왕을 찾아서’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여행하는 유진과 이곳에 거주하는 동철의 이야기이다. 은경(이유진)을 가운데 두고 만나는 이들은 영화와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새로운 친구(정혁기, 박진수)를 사귀기도 한다. 후반의 챕터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유진과 동철의 실제 경험과 감정이 어떻게 각자의 시나리오에 반영되었는지 흥미롭게 발견할 수 있다.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나 동행한 친구가 범죄 장르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타인이 겪은 경험과 이야기가 시나리오에 천연덕스럽게 배치된다. 말 못하는 관계의 감정 또한 조심스레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 시나리오고 어디까지가 실제라는 주장은 그리 간단치 않다. 영화의 구분점이 무색하게 이야기가 파편적으로 전개되고,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인물의 장난스런 말과 행동은 앞뒤의 개연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충분히 유머러스한 완결성을 가진다. 정교한 내러티브 서사를 포기한 순간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났다 해도 농담이라 퉁치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감독이 절친한 동료와 실제 여행하며 영화를 찍었다는 제작 배경은 영화 속 작은 퍼즐을 압도한다. 전작 < 라오스 >에 이은 이러한 방식의 영화 만들기는 진짜와 가짜, 허구와 실제에 대한 논의를 본질적으로 확장시킨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이번 작품 <국경의 왕>은 더욱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의 심상을 탐구하고 있다는 인상을 두드러지게 받게 된다. 영화 속엔 인기 아이템 포켓몬에 열중하며 손쉽게 일확천금을 꿈꾸는 유치한 세대의 표상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론 여행하며 영화와 인생을 고민하는 진지하고 고독한 개인이 존재한다. 마음, 소원, 믿음 등 이성적 세계와 동떨어진 종교적 언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따뜻하며 기이한 정서는 불현듯 등장하는 유령( 임철 )의 존재처럼 영화에 일정한 태도와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 것 같다. 왁자하고 떠들썩한 인물 가운데 도시를 여행하는 유진의 걸음이 부지런하다. 카메라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회색의 풍경을 가로지르는 미지의 가능성과 불안을 묘하게 포착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음에 평화는 찾을 수 있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