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발 영시 오십분
- 감독
- 이종기, 김화랑
- 제작년도
- 1963
- 출연
- 최무룡, 신성일, 이민자, 최지희, 양미희, 유계선, 황정순, 남양일, 김동원, 서영춘, 박성대, 독고성, 문태선, 주란지, 김주오, 임운학, 박종화, 조해경, 김경란, 김정옥, 정애란, 임선자, 김군자, 엄앵란
이종기 는 감독으로 데뷔한 1963년에 무려 다섯 편의 영화를 찍었다. 덕혜옹주 전기영화인 < 백년한 >, 제목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는 < 광야의 왕자 대 징기스칸 >과 < 율곡과 그 어머니 >, 멜로드라마인 < 대전발 영시오십분 > 그리고 추리물인 < 범인은 너다 >. 요새 기준으로 보면 거의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성취지만 당시 영화 제작 속도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정도는 아니다. 이들 중 필름이 남아 있는 작품이 단 한 편도 없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다. (KMDb에 따르면 이종기의 감독작 중 지금 필름이 남아 있는 것은 단 한 편, 1969년에 찍은 < 이별의 모정 >뿐이다.) 나는 종종 단 한 편의 영화도 필름으로 남기지 못한 수많은 60년대 감독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 대다수는 어차피 필름이 있어도 잊혔겠지만. 이야기는 점점 애잔해진다. 이제부터 그가 각본까지 쓴 추리물 < 범인은 너다 >를 소개할 텐데 솔직히 시나리오를 읽어도 이 작품을 굳이 영화로 볼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소개하는 이유는 지금은 대부분 멸종한 과거 이야기꾼 습관들이 신기할 정도로 많이 남아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포스터 포스터를 보고 내용을 추리해보자. 영화가 다루는 건 소녀유괴사건이고 주인공은 은퇴를 앞둔 노형사인 모양이다. < 범인은 너다 >라는 제목을 쓴다면 이건 추리물이고 그 ‘범인’은 영화 내내 범인이 아닌 척 굴면서 주변을 맴돌며 음모를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야 형사가 악당을 가리키며 “범인은 너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연출할 수 있으니까. 신기하게도 감독 이종기 는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 한국 장르 영화가 현대 관객들에게 종종 이상하게 보이는 이유는 대부분 당연함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우리가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인물은 금성전업이라는 회사에 다닌다는 신시우라는 청년이다. 그는 지나가는 차를 세우고 교통사고를 당한 윤옥이라는 병원으로 데려간다.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주인공인 노형사 신철호 주임의 아들이고 금성전업 사장의 딸인 수미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칼럼을 쓰느라 옛날 영화 시나리오를 뒤지면서 눈치챈 것이 하나 있는데, 60년대 영화에는 유달리 자기보다 높은 계급의 여자와 결혼을 앞둔 남자들이 많이 나온다. 거의 요새 연속극의 신데렐라 수준이다. 단지 여기서 연애 과정은 수상쩍을 정도로 제거되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들은 이미 약혼한 상태이다. 두 사람이 만난 이유도 여자의 아빠인 보스가 남자주인공을 좋게 보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고, 데릴사위 이야기도 은근히 많이 나온다. 이런 영화에서 남자주인공에게 결혼은 로맨스의 결과가 아니라 신분상승의 과정이다. 60년대에 주인공이었던 이들이 세월이 흐르면 연속극 악당이 되는데, 나에겐 이게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인다. 이종기 는 신철호 주임의 집안 장면을 통해 신철호의 직업이 경찰이고 자식들에게 엄격한 아버지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넣는다. 영숙: 아유 기분 나뻐! 나 오늘 아버지 땜에 학교에서 애들하구 싸웠어! 철호: 공부는 안하구 미친년처럼 뭣하러 싸워! 영숙: 아버지의 그 날카로운 눈초리 때문이죠, 뭐! 김부인: 너도 내년이면 대학에 갈 애가 뭔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철호: 고등학교 이상은 안돼! 부엌일이나 하다가 시집이나 가! 영숙: 가래두 안가요. 쨔브의 딸이 대학에 가서 뭘해요? 철호: 뭐 쨔브? 영숙아 너 그 말 어디서 배웠니? 영숙: 학교애들이 쨔브의 딸이라고 놀리니까 배웠죠! 가족의 화목한 대화는 집에 걸려온 전화로 중단된다. 철호는 르발 다방 사건으로 불리는 유괴사건을 수사 중인데 그만 유괴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수사본부의 형사들은 호들갑 떤 언론을 비난하지만 그래도 주인공인 철호는 최종책임이 경찰에게 있다는 걸 안다. 경찰서에서 철호는 막 접수된 ‘악질운전수’ 사건의 증인이 그의 아들 시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어지는 경찰서 장면과 회사 장면에서 시우가 얼마나 반듯하고 잘 났고 운도 좋은 청년인지 알려주는 대사들을 끝도 없이 들어야 한다. 두 번째 유괴사건이 일어난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이번에 유괴된 사람은 곧 철호의 사돈이 될 윤 사장의 딸 수영이다. 그러니까 시우의 약혼녀 수미의 동생인 것이다. 유괴범의 협박편지가 날아들고(“돈이 필요해서 댁의 수영이는 내가 맡아 있오. 경찰에 알리면 수영이가 어떻게 된다는 건 알아서 처리하시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진 조용하게 기다리시요.”) 당연히 가족은 경찰에 알린다. 아이의 안전보다 철호를 개입시킨다는 스토리의 논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형사가 사돈 집안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이니 좀 맥이 풀리긴 해도 이 뒤의 수사 묘사는 군더더기 없고 진행도 빠른 편이다. 윤 사장이 김남규라는 직원을 최근에 해고했고 르발 다방 사건의 협박 편지와 이번 편지의 필체가 동일하다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르발 다방 주인에게 김남규의 사진을 보여주고 그의 본명이 김영일이며 자주 온 단골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하지만 체포하고 보니 그는 알리바이가 있고 그의 죄라고는 위조증권을 팔려 했다는 것밖에 없다. 이때 철호에게 협박전화가 걸려온다. “당신이 명수사관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유괴사건의 수사는 중단하시오. 당신의 아들도 하나의 범죄자요. 이상 더 수사를 계속하면 나는 당신의 아들의 죄상을 폭로하겠오!” 여기서 나는 협박범을 연기하며 “당신의 아들도 하나의 범죄자요” 같은 대사를 읊어야 했던 당시 성우의 고충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시우에게 뭔가 있기는 하다. 유괴사건과 아무 상관도 없는 교통사고 이야기로 영화를 시작한 것도 그렇고, 그 뒤에도 교통사고 피해자 윤옥 주변을 얼쩡거리는 걸 보면. 철호는 아들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수사는 진행된다. 전화추적을 통해 공중전화로 윤 사장에게 협박을 한 서대문 꽃제비 용이라는 남자가 잡힌다. 그는 자기가 심부름만 했을 뿐이고 주범은 박영기라는 남자라고 자백한다. 하지만 영기는 아이와 함께 사라졌고 이번엔 시우에게 아버지의 수사를 중단시키라는 쪽지가 날아든다. 여기까지가 현대 관객들이 일반적인 유괴사건 영화의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종기가 < 범인은 너다 >를 쓰면서 진짜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건 다음에 나온다. 알고 봤더니, 뺑소니를 치고 달아난 ‘악질운전수’는 시우 자신이었다. 협박 편지에 겁먹고 죄의식에 시달린 시우는 수미와 일단 파혼을 하고 사고로 한쪽 팔을 못 쓰게 된 윤옥과 결혼하려 한다. 윤옥에겐 이미 김군이라는 약혼자가 있는데도! 철호는 자수하라고 권유하지만 시우의 대답은 대충 이런 것들이다. “아버지는 위선자예요. 자기 독단의 정의감 때문에 우리들의 행복을 이렇게 짓밟아도 괜찮아요?” “아버지는 자식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비겁할 정도로 자기만 정당한 위치에 서실려구 해요. 순간의 앗차 실수로 한 평생을 한 여성에게 바치겠다는 눈물의 호소는 들리지도 않으세요?” 그럼 자기가 차로 당신을 치어서 미안하니 결혼해달라고 우기는 남자를 보는 윤옥의 입장은 생각이나 해봤니? 여러분은 여기서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천만에. 갈등은 여기서 끝이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이미 시우는 아빠에게 떠밀려 자수를 했고 아빠는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과장에 따르면 사표는 상부에서 ‘보이코트’당했고, 철호에 따르면 자백을 들은 윤옥과 윤옥의 오빠 윤식은 다 용서했단다. (“자식놈을 감옥에 보내면 자기들 두 남매가 당국에 호소하겠다나요.”) 감동한 과장은 철호에게 말한다. “그게 다 신주임이 착한 탓이오. 이번 신주임 부자지간의 아름다운 얘기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고 나는 자부하고 싶소.” 아무래도 이 양반은 ‘아름다운’이라는 단어를 나와 다른 의미로 쓰나 보다. 자백한 뒤에도 시우는 윤옥과 결혼하겠다는 망상을 버리지 못한다. 약혼자가 있다고 분명 밝혔는데도 심지어 이제 사랑하게 되었다고 애걸복걸한다. 이 정도면 스토커 수준이고 수미 입장에선 결혼 전에 약혼자가 이런 남자인 걸 알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 하겠는데, 이 영화의 세계는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꽃까지 들고 윤옥의 병실에 찾아와 “두 분의 애정이 진실하다면 저도 후원을 애끼지 않겠어요” 따위의 소리나 하고 있다. 동생이 살인범에게 유괴되어 목숨이 위태롭다는 건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지? 하여간 윤옥이 계속 거절하자 이 모든 소동은 없었던 일이 되고 모든 게 마무리된다. 아, 참. 유괴사건. 알고 봤더니 박영기는 시우의 중학교 동창이었고 우연히 교통사고를 목격해서 협박용으로 쓴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클라이맥스여야 할 텐데 각본상에서는 영 허술하다. 약속장소에 나온 영기는 수미에게서 10만 원 받고 수영을 돌려준다. 하지만 이미 경찰이 포위하고 있어서 그는 곧 체포된다. 자신의 협박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 그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는 것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나 보다. 물론 작가 이종기는 시우 일이 마무리되었으니 범인을 체포하고 아이를 구출하는 건 그냥 형식적인 결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겠지. 인물 관계도
50~60년대의 인기 영화배우이자 김진규 의 전부인이었던 이민자 씨가 뇌일혈로 19일 하오 6시 숨졌다. 향년 58세. 이씨는 지난1일 고혈압으로 쓰러져 일본의대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왔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타계했다. 장례식은 21일 상오 많은 동료와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도쿄의 고단다의 한 절에서 있었다. (서울신문 1986년 1월22일) < 생명 > < 유혹의 강 > < 모녀기타 >등 90여편의 영화에 출연, 50~6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했던 배우 이민자 씨가 지난 19일 저녁8시 일본 동경대부속병원에서 뇌일혈로 별세했다. 향년57세. 이씨는 46년 배우 김진규 씨와 결혼했다가 59년 이혼하고 68년 일본에서 재혼, 사업을 해왔다. 이씨의 유해는 25일경 서울로 운구될 예정이다. (동아일보 1986년 1월22일) 이민자 는 이렇게 쓸쓸하게 갔다. 새해가 열리는 정월 초하룻날 쓰러졌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스무날을 못 채우고 그냥 갔다. 그것도 현해탄 건너 이국땅에서. 장례도 그곳에서 치러졌다. 그렇게 많은 갈채를 받던 고국에 핏기없는 주검으로 돌아왔다. 60을 채우지 못한 이민자 의 일생은 그녀의 죽음만큼이나 쓸쓸하고 복잡다단했다. 그래서 일까. 이민자는 그녀의 일생을 그대로 영화에 반영 하다시피 했다. ‘미망인의 세계. 어쩌면 이것으로 이민자의 영화경력을 요약할 수 있을 듯 하다. 어딘지 청초하고 수심에 잠긴 듯 한 모습의 이민자는 영화계에서 ‘과부형 배우’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그의 출연작을 살펴 보더라도 대부분 과부의 삶을 소재로 한 것이고 그런 역에서 성공을 거두어 왔음을 알수 있다… (여성영화인사전- 여선정 ) 이민자 의 다섯째 작품이 < 미망인 >(1955)이다. 이 영화는 이민자의 ‘미망인의 세계를 그렸다는 점 말고도 한국 영화의 역사에서 크게 기록되고 있다. 한국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 이 연출한 영화가 바로 이 <미망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녀의 감독데뷔작품이다. 어린 딸을 데리고 사는 전쟁미망인이 도덕윤리와 욕망의 늪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좋은 점수를 받았다. 53년 이민자는 네번째 작품 < 최후의 유혹 >에 출연했다. 유현목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정창화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서 이민자는 바 마담역을 맡았다. 김 화의 <이야기 한국영화사>는 …이민자는 이 때부터 술집 마담역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쓰고 있다. 52년에 만들어진 < 악야 >는 거장 신상옥 감독의 데뷔작품인데 여기서 이민자는 작가( 황 남 )와 하룻밤을 지내는 양공주역을 맡았다. 56년 < 마의태자 > ( 전창근 감독) , < 사도세자 > ( 안종화 감독)등 2편의 사극에 출연하고 57년에도 < 마인 > ( 한영모 감독), < 오해마세요 > ( 권영순 감독)등 2편의 영화에 출연한다. 1958년. 이 해부터 1964년까지를 한국영화 중흥기로 구분 ( 호현찬 의 <한국영화100년>)하는 만큼 이민자의 출연영화는 5편으로 늘어난다. 한국최초의 시네마스코프 < 생명 > ( 이강천 감독)에 출연하여 연기력을 높이 평가받은 이민자는 뒤이어 < 어머니의 길 > ( 안현철 감독), < 자유결혼 > ( 이병일 감독), < 유혹의 강 > ( 유두연 감독), < 소낙비 > ( 이경식 감독)등 모두 5편에 출연했다. 111편의 한국영화가 만들어진 59년 이민자 는 모두 1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아름다운 여인 > ( 유현목 감독), < 청춘극장 > ( 홍성기 감독), < 행복의 조건 > ( 이봉래 감독)등이었다. 60년에는 < 울지 않으련다 > ( 신경균 감독), < 사랑해선 안될 사랑 > ( 이봉래 감독), < 과부 > ( 조긍화 감독)등 모두 9편,61년 2편, 62년에는 < 이십구세의 어머니 > ( 이강원 감독 ), < 여자의 일생 > ( 신경균 감독), < 여인천하 > ( 윤봉춘 감독), < 아낌없이 주련다 > ( 유현목 감독)등 모두 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가운데에서 이민자 를 크게 부각시키고 여러모로 화제를 뿌린 작품은 단연 < 아낌없이 주련다 >라 하겠다. 교양있는 연상의 미망인과 먹물 든 연하의 청년사이의 사랑이야기로 물론 멜로드라마 이지만 6촵25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의 고뇌를 그렸다는 점에서격조높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말할 나위없이 이민자는 고민하는 연상의미망인상을 훌륭히 표출해 냈다. 이 작품은 또한 영화기자 출신 호현찬이 기획촵제작(극동영화사와 합작)하여 흥행면에서도 아낌없이 주는 반응을 얻었다는 기록을 누렸다. 이민자 는 63년에도 59년과 마찬가지로 1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총 제작편수는 148편). < 언니는 좋겠네 > ( 이형표 감독), < 김약국집 딸들 > ( 유현목 감독), < 오색 무지개 > ( 조긍하 감독), < 남자조종법 > ( 정일몽 감독), < 자문밖 설마담 > ( 한상훈 감독), < 율곡과 그 어머니 >( 이종기 감독)등이다. 이 가운데서<김약국의 딸들>은 < 미망인 > < 생명 > <아낌없이 주련다>등과 함께 이민자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김약국의 네딸 중 큰 딸 역을 맡은 이민자는 과부의 삶과 심리를 밀도 있게 연기함으로써 이 작품을 문예영화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일조를 했다. 64년에는 < 모녀기타 > ( 강찬우 감독), < 청춘은 목마르다 >( 박상호 감독), < 학사주점 > ( 박종호 감독)등 모두 11편의 영화에 이민자 는 출연했다. 65년에는 < 장보고 > ( 안현철 감독), < 7인의 여포로 > ( 이만희 감독), < 모녀봉 > ( 권영순 감독), < 갯마을 > ( 김수용 감독)등 9편의 영화에 출연했는데 어떤 기록에는 14편으로 되어있다. 이는 아마도 주연 또는 주요역할을 중심으로 했느냐 여부에 따른 차이일것이다. 실제로<갯마을>의 주연은 이민자가 아니다. 이 작품의 과부는 고은아이고 시어머니역은 황정순이다. 이민자는 66년에는 < 친청 어머니 > ( 김기덕 감독), <특급 결혼작전> (유현목 감독)등 4편, 67년엔 <빙우> (고영남 감독) 68년에는 <슬픔은 파도를 넘어> (김효천 감독)에 출연했다. 광복전인 1944년< 태양의 아이들 >( 최인규 감독)에 데뷔한 뒤로 24년동안 9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이민자 는 < 슬픔은 파도를 넘어 >를 끝으로 한국영화와 작별할 뿐만 아니라 현해탄의 파도를 넘어 모국도 떠난다. 50년대 후반 60년에 전반 한국영화 전성기에 이민자 는 한국의 에바가드너로 불렸다. 저 헐리우드의 전설적인 사랑의 여신 에바가드너로승격을 시킨 것이다. 입소문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아예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호현찬 의 <한국영화100년>은 < 아낌없이 주련다 >대목에서 …여주인공은 한국의 에바가드너라고 불리는 이민자를 …이라고 못박았다. 이민자는 좋은 연기자였다. 거기에 에로티시즘의 화신이랄까,섹스 어필 만점의 연기자였다. 한국의 에바가드너라는 칭호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에바가드너와 달리 이민자 는 유복한 집안, 한의사의 넷째딸로 태어났다. 무학여중 2학년때 극장 구경을 갔다가 배우가 되는 계기에 부딪혔다. 44년 동랑 유치진이 이끄는 현대극장 연구생으로 들어갔다. 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어린 이민자는 같은 해에 < 태양의 아이들 >로 영화데뷔를 한다. 뒤이어 48년 두번째 영화< 여명 >( 안종화 감독)에 출연한다. 데뷔작품에서는 단역을 맡았기 때문에 이민자의 데뷔작으로 첫 주연인 <여명>을 흔히 든다. 이 연극-영화와의 인연은 이민자 에게 인생의 인연을 안겨주었다.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해, 16세때 이민자는 같은 극단 같은 무대에 선 김진규 를 만나 그 다음해인 45년 정식결혼을 했다. 광복전의 일이었다. 이들의 결혼은 14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민자를 둘러싼 사랑의 기쁜 이야기, 슬픈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이것은 그대로 그녀의 배역과 직결되었다. 그래서 미망인전문배우가 되다시피 한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는지, 이민자 는68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 해에 재일교포와 재혼을 했다. 그리고, 18년뒤 이민자는 미소가 사라진 주검으로 돌아왔다. 60년대초 퇴계로의 아스토리아 호텔의 밀실에서 이민자 와 인터뷰한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이 졸문을 쓰면서 그때의 기사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또한 이민자의대표작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사뭇 안타깝다. 신우식(영화평론가) / 2002년 <프로필> 본 명 : 이용랑 출 생 : 1929년 4월10일 서울 1986년 1월 19일 사망 데 뷔 : 1944년 최인규 감독 < 태양의 아이들 > 주요 작품 : < 미망인 >, < 유혹의 강 >, < 아낌없이 주련다 >, < 생명 >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