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권
- 감독
- 황풍
- 제작년도
- 1973
- 출연
- 이준구, 모영, 황인식, 김기주, 스잔느 앤, 로버트 H 앤드류, 황가달, 홍금보, 전월성, 카즈야마 겐지, 진전, 김산, 홍미, 황풍, 당위성, 김군, 최민규, 한명환, 정규영
이번 <영화천국>이 주목하는 영화는 이해영 감독의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다. 2015년 6월 18일 개봉한 이 작품은 ‘1930년대’ ‘소녀’ ‘미스터리’라는 키워드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베일을 벗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은 공포영화의 정석을 기대했던 관객의 예상과는 꽤나 달랐다. 낯익은 상징들로부터 출발한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예상을 훌쩍 넘어서버렸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에 일조했다는 평을 받으며 웰메이드 미스터리의 탄생을 알렸다. 익숙하지만 생경한, 비밀스럽고 강렬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의 세계에 대해 이해영 감독과 김성욱 평론가가 긴 이야기를 나눴다. 일시: 2015년 6월 29일(수) 장소: 한국영상자료원 기록 및 정리: 민병현 전략기획팀 min@koreafilm.or.kr 사진: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성욱(이하 ‘김’) : 개인적으로 모든 장르의 영화를 잘 보는 편인데, 공포영화는 안보는 편이다. 군 시절 의무대 행정기록병으로 근무했는데, 당시 시신을 많이 봐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고(웃음), 이후 공포영화가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더라. <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이하 ‘경성학교’)은 보통 공포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는 사실 감독 본인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모험적인 시도이기도 했다. 우선, 두 편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 > < 페스티발 >)이 모두 동시대적 이야기였다면 이 영화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역사극이다. 그리고 전작들은 ‘장르적 컨벤션’이 익숙한 영화가 아니었지만 <경성학교>는 장르가 명확한 영화다. 먼저 이렇게 <경성학교>의 시대적, 장르적 설정을 한 계기를 묻고 싶다. 이해영 (이하 ‘이’) : 일단 < 경성학교 >는 결과적으로 공포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사실 시나리오 작가 시절부터 전작 두 편을 연출할 때까지, 장르 컨벤션 자체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거친 적이 없다. 이거야말로 창작자로서 성실하지 못한 거구나, 반성이 들었다. 방법을 달리해야 영화를 더 오래, 더 내공 있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장르라는 것을 직면하자. <경성학교>의 시작은 그랬다. 본격적인 호러영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서 장르가 조금씩 달라지고 다른 장르들이 더해졌다. 결국 장르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장르를 비틀고 뒤트는 복합장르물로 탄생한 셈이다. 그러나 이 장르적이면서도 탈장르적인 결과물이 장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영화 속에 반영되어 있다고 믿는다. 1930년대라는 시대는 기획 단계에서 매우 중요했다. ‘여자기숙학교, 미스터리한 일들’만으로는 기획 자체가 규정되지 않으니까. 심지어 ‘여고괴담’이라는 거대한 시리즈와의 차별점을 찾기조차 어려우니까. 이 모호한 설정은, 1930년대라는 시대 위에 두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영화로서의 틀을 갖출 수 있었다. 지금이야 < 암살 >도 있고 < 아가씨 >도 있지만, 이전까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편수도 적었고, 성공한 적도 없었다.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낯섦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오히려 기존 영화들과 차별되는, 새로운 색깔을 보여줄 수 있겠다 생각했다. ‘1930년대’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지만 나의 마음을 움직인 직접적인 도화선이기도 했다. 김 : < 경성학교 >와 관련해서, 예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두 편의 추천작을 생각하게 됐다. 그 하나가 < 이블 데드 >(샘 레이미, 1981)이고, 다른 하나가 < 세일러복과 기관총 >(소마이 신지, 1981)이다. <이블 데드>는 호러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잘 만든 솔직한 호러일까, 라는 궁금증에 선택했다고 말한 기억이 있다. 호러가 자신에게는 미지의 장르라 말했다.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소녀가 주인공인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면서 선택했다고 했는데(이: 맞다. 그때 <경성학교> 시놉시스를 쓰는 중이었다.), 교복 외에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어 보이지만(웃음), 후반부의 복수를 감행하는 그러한 쾌감의 순간이랄까, 이런 정서는 약간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 < 세일러복과 기관총 >은 기관총을 난사하는 소녀가 마침내 느끼게 되는 쾌감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실제로 ‘쾌감’이라는 대사도 결코 잊히지 않는 방식으로 묘사되고. < 경성학교 >는 그와 정반대여야만 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무게감과, 생체실험이라는 다소 예민한 소재를 다룬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관객에게 통쾌한 복수극을 경험하게 하면 안 되고, 주인공 소녀 ‘주란’ 스스로도 후련하게 해소되는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란은 끔찍한 실험의 피해자고, 그녀가 벌이는 일련의 사건은 비극적인 폭주여야 했다. 결국 죽음으로 끝날 이야기였다. 금욕적이랄까. 폭주하는 액션을 연출하면서도 절제에 대한 강박이 많았다. 김 : 공포영화의 공포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어떤 끔찍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 경성학교 > 역시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바로 ‘물’이다. 물속에 잠긴 소녀들, 수족관에 물이 차오르는 장면 등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공포의 이미지는 금기를 넘어서게 할 정도로 강력하고, 이 이미지가 이야기에 아직 소환되지 못하고 급작스러운 직접성과 충격적인 진실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투영되는데, 이 영화에서 물에 잠긴 소녀들의 이미지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이 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4.16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 : 본격적인 호러영화를 목표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표성을 띠는 공포 장면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지는 않았다. 물론 관객이 무서워하거나 놀라기를 바라며 자극적인 장면들을 장치해놓기는 했지만, 영화는 결국 ‘소녀적’이라는 인상으로 남기를 바랐다. ‘물’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동원된 대표적 수단이었다. 영화에서 물은 여러 의미를 갖는데, 때로는 몽환적인 정서를 담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미스터리의 복선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주란과 연덕 두 소녀의 내밀한 우정을 묘사할 때는 성적 긴장감을 풍성하게 표현해주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말씀하신 대로 수장된 소녀들의 끔찍한 이미지로 귀결된다. 영화 속 ‘물’의 상징과 정서들을 따르다보면 불가피하게 4.16의 이미지가 연상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4월 16일 당시 나는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프리프러덕션 단계, 그러니까 촬영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충격적인 뉴스였다. 막막했다. 그 위로 영화 속 설정이 자꾸만 오버랩되어 악몽에 시달렸다.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과도한 사회적 상징으로 해석될 여지만큼은 막아야 했다. 일차적으로는 물 설정 자체를 빼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워낙 대수술이었고 물리적으로 불가능이었다. 대안이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4.16에 대한 상징으로 손쉽게 동시대성을 확보하려는 얄팍한 태도를 절대로 갖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에서 4.16을 읽어낸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김 : 그게 공포영화의 강점이면서 약점이다. 이미지가 불분명하기에 쉽게 장르 뒤에 숨어버리게 된다. 예전에 구로사와 기요시가 “공포영화는 장르를 규정하기 어렵다. 어떤 장르와 섞여도 공포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르 자체가 변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던 말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공포영화에 코미디가 섞이면 코미디 영화가 되고, 사회문제가 얽히면 사회성이 짙은 영화가 된다는 것이다. < 경성학교 >도 마찬가지다. 관객들이 공포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거기서 얻지 못하는 불만족이 컸던 것 같다. 다른 장르 안에 공포가 스며들어 있는 느낌이랄까. 그게 <경성학교>를 본 관객과 연출한 감독의 이질감이기도 하고, 큰 틀에서 공포영화를 장르적으로 만들어갈 때 부딪히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이 : 동의한다. 전작들은 철저히 취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는 많은 사회적 책임이 따르더라. 고심 끝에 장르를 고민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장르로 딱 떨어지는 영화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기대하고 오는 장르와 보면서 느끼는 장르 사이에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만들면서도, 마케팅을 하면서도 ‘공포’라는 장르를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김성욱 선생도 인터뷰 초반부터 공포장르를 언급하셨고, 그 안에서 이 영화를 읽어내고 계시다. 이제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숙명이라고 여기고 있다. 한 평론가는 이 영화의 초반부를 두고 ‘업계 표준’이라는 표현을 쓰더라. 전학 온 아이, 아이들의 괴롭힘,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 익숙한 방식의 전개다. 앞부분은 의도적으로 과한 절제를 했다. 엄격하게 억압되어 있던 극의 분위기가 중반 이후 점차 사건의 본격화를 맞으며 깨지고, 비밀이 밝혀지고, 억압감이 해소되며 리듬감을 얻고, 빠른 호흡으로 마무리되는 방식으로 전체를 설계했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초반부의 갑갑함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상대적 만족도가 훨씬 높았던 것도 약간 의외의 지점이었고. 결과적으로 감독이 바란 영화와 관객이 경험한 영화 사이에 간극이 존재했던 셈이다. 굉장히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김 : 극중 시즈코가 과거의 시즈코( 고원희 )와 현재의 시즈코( 박보영 )로 둘이다. 그리하여 “너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질문이 반복된다. 정체성의 혼란은 둘의 반복에서, 혹은 소녀에서 몬스터로 변하는 설정에서 계속 제기된다. 불분명한 부분은 과거의 시즈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연덕이 편지를 자신에게 쓰라며 ‘네가 쓰고 보는 것도 너니까, 편지나 일기나 똑같아’라 말한다. 영화에서 일기는 중요한 설정이다. 일기 혹은 편지의 설정은 어디에서 근원했나. 이 : 애초 영화는 총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챕터 구분의 기준은 일기장이었다. 과거 시즈코에 대한 조각난 기억의 기록, 일기에 적힌 글귀 등이 각 챕터를 리드했다. 연덕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여는 프롤로그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주란 중심의 명쾌한 이야기로 정리하자는 취지로 챕터와 프롤로그 모두를 없애면서 영화 속에 남아 있는 일기라는 설정은 끝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모호한 여지를 둔 채로 존재하게 됐다. 원래 의도와 달라지면서 근거나 설명이 축소된 게 제일 큰 차이일 거다. 그럼에도 일기는 여전히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두 소녀가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되는 순간으로서도 존재하고, 주란이 연덕의 비밀을 풀어내는 결정적인 열쇠 역할로서도 기여하고 있다. 두 소녀의 존재를 중첩시켜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1930년대 소녀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꼭 담고 싶었던 화두였다. 타고난 태생적 정체성을 지우도록 강요받던 시절의 공기가 조금이라도 반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달까. 김 : 퀴어 코드보다는 감독의 전작에서도 그렇지만, 소녀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에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들은 버려진 아이들이다. 심지어 교장이 후반부에 내뱉는 말, “인정받고 싶었다”라는 말에서도 그런 뉘앙스를 느끼게 한다. 이 : 주란은 끝내 연덕에게도 버려질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우정 혹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더 있었을 거다. 세상에서 버려진, 그 누구에게도 손을 뻗을 수 없는 소녀가 마지막으로 찾은 단 한 사람이었으니까. “너만 있으면 돼”라는, 집착에 가까운 우정은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주변 인물인 유카( 공예지 )와 과거의 시즈코의 존재 역시 주란이 연덕을 더욱 원하게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만약 내가 욕심을 좀 더 냈다면, 지금보다 훨씬 감정에 치중한 ‘소녀드라마’에 공을 들였을 거다. 실제로 완고가 되기 전의 시나리오는 소녀들의 질투와 우정, 사랑 등에 대한 드라마 비중이 높았었다. 그러나 대중성을 염두한 수정 작업이 거듭되며 최소한으로 축소되어 현재의 수준이 됐다. 드라마가 단출해졌으므로 인물마다 명확한 키워드를 부여했다. 예컨대 주란은 나약함, 버려짐, 의존적, 그리고 맹목적인 애정에의 갈구…. 연덕은 조각난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그래서 끝내 마음을 열지 못 하는, 비밀을 가진…. 유카는 명확하게, 질투. 교장 캐릭터 같은 경우는, 중반을 넘어서며 그녀의 속내가 드러나기 시작하면 ‘왜?’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인물이었다. 그녀의 입장을 총정리하고 압축한 단 하나의 단어가 필요했다. 1930년대 조선의 신여성, 지식인이었던 그녀의 유일한 욕망. 그녀를 끝까지 질주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이유. 결국 내가 내린 답은 ‘인정욕’이었다. 이걸 말씀대로 ‘사랑에의 갈구’라고 읽는다면 결국 교장부터 주란, 연덕, 그리고 모든 소녀까지 공통된 정서로 동일한 맥락 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식의 해석이라면, 창작자로서 만족스러운 일이다. 김 : 교장 캐릭터가 독특했던 것은 아마도 < 경성학교 >가 처음으로 악인이 등장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주로 선과 악의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가지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것이 전작들이다. 이 영화는 장르적 외피를 갖게 되면서 악인이 등장한다. 극중 박보영 이 ‘도쿄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원 씨가 ‘이끼나사이(가봐)’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특별한 캐릭터가 부각된다. 이 : 교장의 비중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사실 교장이 등장하는 신이 많지 않다. 편집 과정에서 교장의 비중이 높아지니 엄지원 의 존재감이 강해서 전체 균형이 깨지더라.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이라 존재감이 너무 없어도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은 배우 엄지원의 역할이 컸다. 엄지원은 사전 준비가 무척 철저한데, 세 줄짜리 대사를 36가지 정도의 버전으로 준비해오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현장에서는 본인의 준비 여부와 무관하게 감독과 대화를 하며 협의하는 것을 즐긴다. 캐릭터 자체는 등장할 때마다 인자한 얼굴 너머 뭔가 있을 것만 같은 긴장감을 주는 인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자한 가면 그 자체에도 매번 진심이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란과 눈을 마주치고 신뢰를 주는 미소를 지을 때에도, 치유를 위한 처방을 할 때에도, 혹은 소녀들을 감금하고 숨통을 끊어놓을 때조차. 모든 순간이 진심인 여자였으면 했다. 어떤 일을 하고 있건 그때마다 진심인 사람, 얼마나 섬뜩한가. 김 : 많은 이가 < 경성학교 >를 브라이언 드 팔마의 < 캐리 >(1976)와 비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분노의 악령>(브라이언 드 팔마, 1978)과 가깝다고 느꼈다. 물론 <캐리>의 전반적인 설정, 이를테면 사춘기 소녀의 성장, 초자연적인 능력, 그것으로 인한 파멸의 이야기가 유사하긴 하다. 하지만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분노의 악령>에 나오는 차일드리스(존 카사베츠)가 <경성학교>의 교장과 가깝다. 아이를 괴물로 키우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통제하여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려 하는 인물이 바로 차일드리스다. <경성학교>의 교장 역시 소녀들의 초자연적 에너지를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사용하려 한다. 두 영화 모두 괴물성을 통제하려는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괴물이 된 소녀들. 하지만 두 영화의 차별점은 <경성학교>의 후반부에서 소녀의 초자연적 에너지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장르적 변화가 도리어 <경성학교>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 만큼 여러 레퍼런스가 언급됐다. 그중에서도 <분노의 악령>이 어쩌면 언급된 영화 중에서 유사점을 좀 더 많이 발견할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 경성학교 >는 중후반부에 이르러 펼쳐지는 다른 색깔들로 그 모든 영화와 차별점을 갖는다. 나는 그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듯 ‘업계 표준’이라고 부를 만큼 익숙한 것들의 조합으로 진행되지만 마침내 끝내 새로운 이야기인. 다만, 중반 이후 장르의 변이가 발생하고 종국에는 복합장르물로 끝맺음된다는 정보가 관객에게 미리 알려질 기회가 없었다는 것은 걱정이었다. 대부분 ‘업계 표준’처럼 관성대로 진행될 관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 : 197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에서는 괴물이 된 아이들이 많이 등장한다. < 엑소시스트 >(윌리엄 프리드킨, 1973), < 오멘 >(리처드 도너, 1976)에서 < 캐리 >와 <분노의 악령>까지. 1970년대 전쟁, 살인, 암살을 지켜보았던 아이들의 분노의 에너지가 이런 식의 ‘몬스터가 된 아이들’로 표현된다고 생각하는데, <분노의 악령>은 그런 괴물 아이들을 통제하려는 시도에 반발하는 이야기다. < 경성학교 >도 이와 유사하게 봤다. <경성학교>는 ‘이상한 방식으로 4.16을 경험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아이들이 받아들일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했다. 교장이 주란에게 훈련을 시킨다며 헤드폰을 씌우고, 백색의 동그란 스크린을 보게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분노의 악령>에서 아이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트라우마를 통해 계발하는 장면처럼, 이 장면은 백색의 스크린과 이상한 소리들로 표상되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이 : 1930년대를 기준으로 생체실험을 할 때 어떤 방식이 있을까를 고민했다. 약물이나 차, 혹은 향 같은 전통적인 것과 차별되는, 이질적인 설정을 하나쯤 넣고 싶었다. 교장이 씌워준 헤드폰에서는 신호음 같은 삐- 소리가 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 안에는 소녀들의 절규가 기괴하게 섞여 있다. 이게 반복적으로 주입되면 어떤 소녀는 이명과 함께 부작용을 일으켜 발작으로 이어진다. 주란도 이명과 몇 가지 부작용을 얻게 되기는 하지만 찰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개념이었다. 말하자면 뇌파를 자극한다, 같은 거다. 이 신에서의 사운드 디자인은 몇 가지 버전을 반복 시도하며 공을 들였다. 관객들도 어느 순간 넋을 놓고 ‘알 수 없는 먹먹함’에 압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 마지막에 주란과 연덕이 축음기를 고치고 함께 음악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관객들에게 음악을 들려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 : 기본적으로 여자 보컬이길 바랐다. 꼭 1930년대 음악이 아니어도, 다소 현대적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고, 구체적인 레퍼런스도 정해놓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구현하려다보니 문제는 ‘언어’였다. 가사가 한국어여도, 일본어여도, 영어, 혹은 제3국 언어여도 정확하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고민 끝에 음악을 들려주기보다 특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래서 두 소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저수지로 함께 달려가며 즐거움이 충만했던 그때 흐르던 음악을 삽입했다. 화면이 암전되는 순간 숲을 달리던 두 소녀의 밝은 웃음이 기억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 세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있나? 이 : < 경성학교 >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차기작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고민이 많이 된다.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동시에 이럴수록 더 저질러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정말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놓지 못하고 있던 것들, 이를테면 우아함에 대한 강박, 훌륭한 감독 코스프레(웃음) 같은 껍데기. 이번에도 그런 것들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나를 부수고 싶다. 작정하고 치열해질 거다. 괴물 같은 영화를 만들 거다.
기록 및 정리 민병현 전략기획팀 min@koreafilm.or.kr 사진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철(이하‘ 이 ’) 일단 원전 이야기부터 진행하기로 하자. <심청전>의 심봉사와 마찬가지로, < 마담 뺑덕 >의 학규( 정우성 )는 아내나 딸 청이( 박소영 ), 덕이( 이솜 )에게 하는 행동으로 미루어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비극은 학규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임필성 (이하‘ 임 ’) 내가 각색을 많이하긴 했지만, 장윤미 작가의 원작 시나리오가 흥미로웠다. 한국고전 설화는 대부분 그 시대와 전통적 남성상을 반영하고 있는데, 영화를 준비하면서 <심청전>을 다시 찾아보니 무척 서늘한 이야기더라. 딸이 팔려가는 것을 방조하면서 뺑덕어멈과 어울리는 상황이 무책임한 한국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이 심봉사는 곽씨 부인과 20년을 지냈지만 아이가 없다. 그게 일종의 성적인 느낌을 주더라. 눈을 잃는다는 게 남성성의 상실처럼 읽힌다. 학규도 눈이 먼 후 무기력하고 쇠락해 보인다. 반대로 눈을 되찾기 전 갑자기 생기를 되찾은 듯 말한다. 임 동의한다. 종이에 손을 베어 피가 나도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눈이 안 보인다면 오죽하겠나. 더군다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을 탐미적으로 바라보는 작가이자 교수에게 실명이란 치명적이다. 폭주하며 달리던 사람이 시력을 잃었을 때 어디까지 퇴락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수컷의 본질적인 어리석음이랄까. 아무리 잘나가더라도 결국 욕망을 끝까지 좇으면 이런 대가가 따를 수 있다는 우화적인 인물로 만들고 싶었다. 이 덕이 캐릭터로 넘어가보자. 원작의 뺑덕은 못된 여자다. 그런 그녀를 왜 주인공으로 삼았나. 임 <심청전>의 현대적인 각색이라는 기획을 제안받았을 때부터 뺑덕에 큰 관심이 갔다. 사람들은 뺑덕이란 캐릭터를 잘 모르지만, 그녀는 남자에게 해를 입히는 상징적인 존재로 각인되어 있다. 영화는 ‘뺑덕이 악녀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그 이야기를 단순히 19금이 강조된 막장 드라마가 아닌 멜로로 만들고 싶었고, 덕이를 생각하면서 로만 폴란스키의 < 테스 >(1979)를 많이 떠올렸다. 자연주의적인 배경에서 시작해 관객 모두가 아는 원형적인 내용을 따라가다 파격적인 결말로 이어지는 방식을 택했다. 이 덕이는 가난한 여성이다. 그녀가 여대생들 사이에 초라하게 서 있던 장면이 슬펐다. 한창 대학에 다닐 나이지 않은가. 원전의 심청은 착한 심성으로 가난을 극복하는데, 영화의 덕은 가난으로 인해 죄를 짓는다. 임 놀이동산에서 덕이는 학규에게 “교수님이세요?”라고 물어본다. 그녀는 그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다시 말해 안전하지만 지루하고 답답한 세계에 갇혀 있는 존재다. 그런 상황에서 미남인 동시에 야성미도 있고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학규가 등장한다. 그녀에게 그는 미지의 남자다. 젊음과 미모라는 무기를 지닌 덕이는 그것을 일종의 돌파구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한다. 너무 순수하기 때문에 욕망과 욕정,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이 원전은 전국적인 축제로 끝난다. 전국의 봉사들이 눈을 뜨는(웃음). < 마담 뺑덕 >의 엔딩을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임 그렇진 않다. 어떤 평론가가 “안구 이식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없다”고 하더라. 어떤 분은 이 영화는 SF영화라고도 했다.(웃음) 감독으로서 판타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무책임해 보일 수 있겠지만, 고전설화를 바탕으로 미친 사랑에 대한 우화를 만들려 한 영화에 그런 리얼리티가 필요할까 생각한다. 결론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그 중간 지점에서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결말을 여러 가지로 준비했다. 예컨대, 학규가 눈을 뜬 후 덕이를 찾아갔는데 평범한 남자와 아이를 낳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쓸쓸히 돌아가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완전한 비극 아닌가? 그럼에도 결론적으로는 관객들이 복잡하고 심난한 마음을 가지고 극장을 나오길 바랐다. 이 <심청전>은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전작들을 봐도 관객들이 웃으며 볼 여지를 잘 안주는 것 같다. 감독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나? 임 그 점이 아이러니하다. 단편인 <슈퍼 덕후>나 옴니버스 장편인 < 인류멸망보고서 >의 에피소드들에도 코미디적인 요소가 상당했다. 사실 < 마담 뺑덕 > 전에 코미디 영화를 준비 중이었다. 유명 배우도 캐스팅됐고, 이제는 < 국제시장 >으로 흥행 작가가 된 박수진 작가도 합류해 있었다. 가벼운 미국식 코미디였다. 하지만 내가 만든다고 하니 투자사에서 아무도 안 믿더라. 모두들 이렇게 진행해 투자를 받고 분명 작가영화적인 코미디를 만들 것이라고 의심했다.(웃음) 요즘 한국 사회가 너무 피폐하고, 호러 수준의 사회문제가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나 역시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진행되지 못했다. <마담 뺑덕>은 지금까지 작업한 장편영화 중 가장 예산이 적게 들었지만 가장 즐겁게 작업한 작품이다. 현장에서 분란도 전혀 없었고, 배우나 스태프들과의 합도 잘 맞았다. 분명 감독의 고유한 세계관이라는 것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 같다. 작품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유연해진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론 어떤 장르라도 더욱 더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심청전>을 해석한 현대 작가는 최만식, 최인훈 , 오태석 , 이청준 , 황석영 등 한두 명이 아니다. 그들의 작품에서 대체로 유사한 부분이 있다. 청이 결국 밑바닥 여성으로 살게 되는, 즉 비극적으로 결말을 맺는다는 점이다. 현실에서의 구원은 요원한 듯이. < 마담 뺑덕 >은 다르다. 덕이는 사랑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표현되었다. 임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와 편집할 때 논쟁이 많았다. 나는 청이가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이와 학규가 이어지면서 서로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서, 자신의 자아를 어렵게 찾은 청이가 일종의 비공식적인 심판을 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청이가 모든 사람을 망가뜨리는 결말을 짓고 싶지 않았다. 원래 시나리오는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청이가 멀리서 바라보면서 짠한 표정으로 차 타고 가버리는 것이 결말이었다. 일방적인 희생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본인들이 취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붙잡는다는 쪽이었다. 이 사실 덕이는 악녀라기보다 실수를 저지른 것에 가깝다. 청이의 행동은, 덕이가 저지른 실수에 윤리적인 균형을 잡아준다는 느낌이 든다. 임 동의한다. 그런 균형을 잡고 싶었다. 한국의 일반적 서사에서 여자에게 취하는 입장과는 다른 입장을 취하려 했다. 덕이는 학규의 눈이 급속도로 멀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학규가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만, 덕이는 자기 육체를 이용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을 멀게 한다. 이 남자가 눈이 멀면 항상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것은 일종의 애증관계이고, 그것이 사랑에 대해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둘의 사랑의 관계, 그 파괴성이었다. 이 이제 영화로 돌아가보자. 정사신은 처음인가? 임 장편영화에서는 처음이다. 1999년 < 베이비 >라는 34분 짜리 단편 성장영화에 정사 신이 있었다. 찍기가 힘들었는 데, 공교롭게도 그 부분만 필름의 현상 사고가 나서 다시 촬영했다. 그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준비를 많이 했다. 이 요즘 영화들의 정사 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 한국영화의 정사 신에 길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웃음) 일단 몸매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이기는 하나 너무 기교적이고 매끈해 감정이입이 잘 안되더라. 임 영화 개봉 후 ‘19금 영화의 전문가’라 불리는 김형석 전 <스크린> 편집장으로부터 정사 신에 대해 극찬을 받았다.(일동 웃음) 오히려 여자 관객들이 신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들었다. 정우성 이라는 배우 덕분이라고 본다. 그런 외모, 몸매를 가진 남자가 드물지 않나.(웃음) 하지만 나는 감독으로서 정우성을 실제 학규로 믿어야 했고, 굳이 교수 정우성을 전형적인 보통의 평범한 교수 이미지로 낮출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관객이 이 장면을 더 야하게 봤던 것 같다. 그리고 시사 후 반응을 보니 30대 이상의 관객들이 더 야하게 느끼더라.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렇게 관능적인 신이 펼쳐지다 여주인공 덕이가 돌변하는 것, 정사 신 자체에 찬물을 끼얹는 묘사들이었다. 순수한 사랑의 대상이 두려운 존재가 될수도 있다는 것만큼 남자가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묘사 자체가 노출의 강도에서 지나치진 않았나 생각하긴 했다. 영화 중후반에 학규의 애인과의 정사 신은 짧아도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영화에서 덕이와 청이 모두 복수를 하고 있다. 덕이의 복수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청이의 관계를 고려해볼 때 청이의 복수는 동기가 약하다. (극장판에서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청이가 덕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복수한다고 봐야 하나. 임 원래는 그 구조가 강했다. 덕이와 청이도 정신적인 동성애 관계로 설정했는데 편집 과정에서 많이 삭제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두 배우와 연관 지어 답변해야겠다. 배우를 억지로 변화시킬 수는 없겠더라. 덕이 역을 맡은 배우 이솜 은 감성적인 천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감성이 무척 뛰어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파괴적인 캐릭터는 아니고 실제로 나이도 어리다. 청이 역을 맡은 박소영 역시 연기력도 좋고 매력적인 외모지만 현재 고등학교 3학년생이다. 이 친구가 영화를 모두 이해했을지언정 이 친구에게서 관능성을 끌어내기엔 죄책감이 들더라. 실제로 굉장히 모범생이고, 미래에는 야성적 이미지도 표출할 수 있는 배우가 될 수 있겠지만 현재 나이에 이 영화를 위해 간접경험을 시키는 것이 불편하더라. 그래서 두 사람의 관계를 관능적으로 묘사하고 싶지 않았고, 이것을 정서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를 바꿨다. 이 덕이의 대사 중 “쓸쓸한 사람은 회전목마를 탄다”는 게 있다. 덕이가 자기 눈으로 세상을 마지막으로 볼 때 떠올리는 것은 회전목마를 탄 자기의 모습이다. 임 일종의 꿈 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을 찍으려고 영화를 만든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영화 전체를 함축한 장면이다. 이 부분이 아름답게 잘 찍혔기 때문에 뿌듯했다. 찍기 어려운 장면인데 6시간 만에 찍었다. < 황해 > < 추격자 > 등에 참여한 이성제 촬영감독이 찍었는데, 굉장히 섬세하고 여성적인 분이더라. 그런 정서적 방점을 찍는 장면에서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마침내 학규는 덕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덕이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몸의 일부로 들어간 거다. 자기 눈으로 자기를 본다는 것, 의미심장하다. 임 어떤 관점에서는 충격적인 면도 있다. 학규는 기본적으로 탐미주의자다. 작가로 설정되어 있고, 학규가 시력을 잃은 후 쓴 소설을 보며 최고라고 덕이가 말하는 장면에서 보듯, 그는 극단으로 가야 저력이 나오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 신에서 우성 씨에게 요구하기를, 연민도 있지만 눈으로 직접 상대방을 보는 것에 대한 설렘도 함께 표현해달라고 했는데, 이것은 학규의 성장과도 관련이 있다. 참혹한 과정을 거쳐 죗값을 치렀지만, 결국 덕이 앞에 섰을 때의 학규의 심정은 어떨까? 그리고 그 여자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을 때의 복잡한 심정은? 두배우가 깊은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해줬다고 생각한다. 이 평론가들이 뽑은 베스트 영화 리스트에 < 마담 뺑덕 >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흥행할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당대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거나, 관객이 이해를 못하거나, 애초부터 저주받은 감독. 스스로 어떤 감독이라 생각하가? 임 세 개 모두 해당된다.(일동 웃음) 하지만 난 운이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 남극일기 >는 매우 어두운 영화고, 최근엔 판타지 장르가 대중에게 익숙하지만 < 헨젤과 그레텔 >도 어렵게 촬영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도전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개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비평과 흥행 측면에서 기대에 못 미쳐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후 해외 영화제에서 상도 여러 차례 받고 권위 있는 매체에서 높은 별점도 받았으나 기분이 풀리지 않더라. 지금은 그렇다. 흥행이 잘되면 당연히 좋겠지만 내 영화를 이해해주는 소수의 비평가, 관객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친한 동료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면 솔직히 질투도 느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축하해준다. < 마담 뺑덕 >은 개인적으로 상업영화의 접점에서 최선을 다한 작품이다. 결국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지만 이 경험들이 소중하고 제작 과정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송강호, 정우성 등 당대의 훌륭한 배우들과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영화감독으로서 일부 메이저사들에 의해 주도되는 한국영화 산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임 작가영화, 혹은 예술영화 감독들에게는 고난의 시대일 수 있다.(웃음) 하지만 독특한 개성과 창의력이 있다면 영화는 만들어지고 개봉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후배들이지만 연상호 감독, 나홍진 감독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소위 ‘미친’ 감독들이 있지 않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러한 창작자 고유의 개성이 점차 중요성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영화를 보면 감독과 주연배우 크레디트에 앞서 모든 부분투자자의 이름까지 나온다. 물론 그들이 없다면 영화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산업이 너무 자본 중심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영화의 산업적 토대가 형성된 것은 2000년대 초중반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 < 살인의 추억 > < 올드보이 > < 지구를 지켜라 > < 장화홍련 >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과연 이러한 영화들을 데뷔작 혹은 후속작으로 찍는다고 했을 때 투자가 쉽게 이루어질지 의문이다. 이 올해 감독 데뷔 10년차가 되었다. 차기작은? 임 오랫동안 <악의 꽃>을 준비해왔다. 그리고 정우성 씨와 함께 기획 중인 영화도 있고, <적赤>이라는 국립무용단의 한국무용 공연도 6월에 무대에 올린다. 확실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감독으로서 태도가 완전히 바뀌거나 타협하는 영화는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것이 장편 데뷔10년차를 맞으며 확실하게 깨달은 점이다. 관객들의 전반적인 사랑을 받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지만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영화의 밀도를 높이고 싶다.
이번 <영화천국>이 주목하는 영화는 김영탁 감독의 < 슬로우 비디오 >다. 이 영화는 2014년 10월 2일 개봉해 누적관객 116만 9546명(영진위, 2015. 6. 2 기준)을 동원했으며, 개성 있는 연출로 그만의 독자적인 영화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김영탁 감독의 스타일이 잘 반영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6월 1일, 영상자료원 인근 카페에서 김영탁 감독과 <씨네21> 김성훈 기자가 만났다. 김성훈 기자 지인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후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늘 만나는 친한 친구처럼 <슬로우 비디오>에 대한 편안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기록 및 정리 _ 민병현 경영기획부 min@koreafilm.or.kr 사진 _ 이준구 포토그래퍼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성훈 기자(이하 ‘훈’) 칸 국제영화제 출장 때문에 어제(5월 31일) 비로소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Fury Road >(조지 밀러, 2015)를 봤다. 오늘 인터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 생각이 나더라.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큰 범위의 주제가 < 헬로우 고스트 >(2010)나 < 슬로우 비디오 >(2014)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조지 밀러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치의 희망도 없는 황량한 공간에서 인간은 더 이상 살아갈 곳이 없다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데, 감독님의 두 작품과 맞닿는 점이 있다고 느꼈다. 김영탁 감독(이하 ‘탁’) 너무 부담스럽다.(웃음) 사실 극장에 잘 가지 않는 편인데, < 매드맥스 >는 개봉하는 날 예매해서 봤다. 비교 자체가 조지 밀러 감독에게 미안하지만 일부 동의하는 점이 있다. <매드맥스>를 보면서 ‘사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느꼈고, 절망적인 시대에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 절절하게 보였는데, 나 역시 영화를 만들면서 큰 틀에서 이 두 가지를 담고자 노력한다. 나 같았으면 그 과정을 디테일한 스토리로 표현했을 텐데, 매우 단순한 플롯으로 리얼하게 보여줘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70세의 조지 밀러 감독이 오랜 세월 고민한 흔적이 보여 더욱 와 닿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그날 술을 많이 마셨다.(웃음) 훈 < 슬로우 비디오 > 개봉 전 비공개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다. 당시 스릴러 영화가 많이 개봉돼 이런 영화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스릴러는 분명 매력적인 장르이고, 장르 특성상 창작자가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하기에 유리한 점이 있어 우리나라에서 타 장르에 비해 투자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스릴러 영화들이 인물들을 도구로만 사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야기 전개를 목적으로 작가가 필요한 지점에 인물을 설정한다고 할까. 그런 피로감이 생길 즈음 <슬로우 비디오>를 본 것이다. 영화가 무척 차분하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였다. 이 영화가 미학적 성취를 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평가받진 않았지만 소소한 이야기를 차분하게 담아낸 영화를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 그래서 개봉 당시 <씨네21> 내에서 기획회의를 할 때 이 영화를 지지했다. 먼저, 전작 < 헬로우 고스트 >가 300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서 투자도 잘되는 상황이었는데, 왜 이 영화를 선택했는지를 묻고 싶다. 탁 < 헬로우 고스트 >가 흥행에 성공하니 차기작에 대한 투자를 많이 제안받았다. 심지어 영화 편집 과정에서도 투자가 들어왔다.(웃음) 하지만 대부분을 거절했다. 원래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 만드는 작업을 좋아하다보니, 내가 쓴 이야기 외에는 관심이 생기지 않더라. 그때 다 받았어야 하는데 후회된다.(일동 웃음) 사실 < 슬로우 비디오 >에 미안한 것은 원래 이 영화를 차기작으로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 따뜻한 감독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차기작으로 스릴러 장르의 어두운 성장물을 준비했다. 국내의 메인 투자배급사와 계약도 하고 톱 배우도 캐스팅이 완료된 상태였다. 그렇게 팀을 꾸렸는데 크랭크 인 두 달 전 그 배우가 사정이 생겨 하차했다. 투자배급사와 계약을 했기에 다른 배우를 기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애초에 염두에 둔 배우가 아니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태프들에게 그동안의 급여를 주고 해산하니 손실이 발생해 빨리 다른 작품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급하게 쓴 작품이 <슬로우 비디오>다. 그 후 시나리오 문제로 의견 차이가 있어 다른 투자배급사를 알아보던 중 20세기폭스사가 하겠다고 나섰다. 폭스로 옮기면서 이전 투자배급사와 갈등이 있진 않았다. 이해해줬고, 원만하게 잘 해결할 수 있었다. 훈 < 슬로우 비디오 >를 보고 20세기폭스사에 연락해 왜 이 영화에 투자했냐고 질문한 적 있다. 시사회 다음 날 시나리오도 구해서 읽어봤지만, 비평가로서 구성이 좋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만약 내가 투자배급사였다면 투자를 안 했을 것 같다. 흥행이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탁 대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잘 정리해달라.(일동 웃음)) 하지만 폭스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폭스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우선 시나리오가 원작이라는 점이었다. 직배사가 로컬 시장에서 영화를 제작할 경우 원작의 권리관계가 복잡하다거나 이야기 외적인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것 같으면 일차적으로 골라낸다. 최근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는 원전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슬로우 비디오>는 원작이고 작가의 개성과 독창성이 뚜렷해서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탁 그런 면에서 제작 투자를 총괄한 허성일 프로듀서에게 감사하다. 초고를 보고 내가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해줬다. 여러 투자배급사와 일해보지 않아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폭스의 경우 사소한 개입을 하지 않아서 원활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 훈 영화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개인적으로 < 슬로우 비디오 >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CCTV다. 통상적으로 영화에 나오는 CCTV는 으레 누군가를 몰래 훔쳐보는 범죄의 도구, 결정적 단서, 음침하고 음흉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CCTV는 우리 주변을 따뜻하게 비춘다. 이 점이 재기발랄해 보였다. 이 부정적인 느낌의 장치를 긍정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좋은 아이디어였고, 그래서인지 일종의 판타지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쓸 때 CCTV를 어떻게 달리 보여주고자 했는지 묻고 싶다. 탁 글을 쓸 때 여러 가지 화두를 가지고 쓴다. < 슬로우 비디오 >의 시작은 ‘본다’였다. 사랑하는 여자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남자가 여자를 제대로 본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 중에 ‘안구진탕증’이라는 병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눈이 떨리는 병인데,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그래서 째려본다고 오해도 받고,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고 친구들이 싫어했다. 이 친구에게서 모티프를 얻어 그런 아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똑바로 쳐다보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안구진탕증’을 ‘동체시력’으로 바꾸긴 했지만 말이다.(동체시력이라는 용어는 있지만 영화에 나오는 증상은 지어낸 것이다.) CCTV가 우리를 따뜻하게 바라본다는 설정은 내가 영화를 만들 때마다 늘 마음에 담고 있는 일종의 영화 철학과 관련이 있다. 영화감독 혹은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굳이 다른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아도, 너무 이기적인 직업이다. 주변 환경이 어떻든 난 집에선 글만 쓰고, 현장에서는 영화에만 매달린다. 사실 이기적으로 살지 않으면 잘할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작가, 감독이 그렇진 않다. 그래서인지 적어도 나는 내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현재로서는 그렇다. 더 나이가 들고 또 다른 영화를 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예민한 편이라 평소 CCTV가 무척 거슬린다. 분명 나를 훔쳐보는 것도 맞는데, 잘 생각해보면 저 렌즈 너머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이 결국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를 옥죄어오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CCTV 센터 안의 사람들을 캐스팅할 때도 신경을 썼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누가 봐도 불편함보다는 친숙함을 줄 수 있는 배우들로 센터가 채워져 있다. 훈 캐스팅 이야기로 넘어왔는데, < 슬로우 비디오 >에서 차태현 씨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이전 작품부터 함께하면서 신뢰를 쌓았는데, 배우 입장에서 소속사에서 말리는 배역을 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던가? 그리고 여장부(차태현)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임했는지 궁금하다. 탁 우선, < 헬로우 고스트 > 이후 작업을 한 번 더 하자는 제안을 했다. 차태현 씨는 늘 고맙게 생각하는 배우이자 동료다. 동갑이라 말도 잘 통하고, 배우이자 예능인이다보니 늘 타인에게 자신을 잘 맞추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지만 실제 성격은 나와 비슷하게 어두운 면도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나의 유머 코드를 좋아한다. 시나리오를 보고 여장부를 “그냥 감독님 같다. 딱 김영탁 이다.”라고 하더라.(웃음) 말했듯이 평소에 CCTV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 시나리오는 훔쳐본다와 지켜본다의 균형감이 있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태현 씨가 캐스팅되면서 지켜본다 쪽으로 기울어진, 판타지가 가미된 휴먼 스토리가 되었다. 그 방향이 태현 씨에게 맞는 옷이라 생각했다. 훈 차태현 이라는 배우는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보여주는 밝고 쾌활한 이미지가 있고, 이전에 출연했던 영화나 드라마 역시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차태현 씨가 어쩌면 작가적인, 개성 있는 영화에 갈증이 있지 않았나 싶다. < 슬로우 비디오 >를 선택한 것도 배우 차태현의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탁 < 헬로우 고스트 > 촬영 때 차태현 씨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여러 번 있다. 한번은 자신의 연기를 바꿔준 세 명의 감독이 있다고 하더라. 1999년에 방영된 SBS 드라마 < 해피투게더 >의 오종록 감독, < 엽기적인 그녀 >(2001)의 곽재용 감독, 그리고 세 번째가 김영탁 이라고 했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오늘 술을 많이 마셨구나, 그리고 지금 기분이 좋구나.(일동 웃음) 아마도 태현 씨가 그전에 만난 감독들과 나는 조금 다르긴 했던 거 같다. 내가 현장에서 차태현 씨에게 한 디렉션은 그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한다. 보통 감독들은 차태현 씨에게 “조금 더 웃기게” “조금 더 밝게”를 요구했단다. 하지만 난 그런 요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 헬로우 고스트 >에서 차태현 씨는 애드리브 연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철저히 짜인 구성대로 연기했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연기적인 측면에서 인정받은 부분이 있어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 슬로우 비디오 > 때는 차태현 씨가 시나리오를 아내에게 보여줬는데, 아내가 “글은 좋은데 이건 관객 50만 명도 안 든다.”라고 하고, “그래도 할 거잖아.” 했단다. 그리고 영화 개봉 후, 아내가 좋아하더라는 말을 태현 씨에게 들었을 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영화 대부분의 장면에서 눈을 가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 내지는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소속사 역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현 씨는 영화의 80% 분량에서 선글라스를 써줬다. 차태현 씨가 무한한 신뢰를 보여준 것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 훈 여장부라는 캐릭터는 현실적이지 않다. ‘동체시력’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스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장부는 누가 봐도 차태현 이 적격이다. 국민 대부분이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캐릭터가 되었다고 본다. 감독 입장에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것 같다. 등장인물의 설정이 비현실적이면 초반부에 이 캐릭터에 대해 관객을 설득해야만 한다. 여컨대 왜 여장부가 동체시력을 갖게 되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차태현 씨가 여장부를 연기하면서 그 과정을 생략했다고 관객들에게 불친절한 느낌을 주진 않았을 것이다. 탁 동의한다. 차태현 씨는 워낙 사적으로도 가까워 현장에서도 잘 맞는다. 그리고 다른 배우분들의 힘도 컸다. 오달수 선배님은 베테랑 배우이고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지만 현장에서 5~6번 재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워낙 연기를 잘하시지만 호흡이나 연기톤 등 그간 보여줬던 연기와는 조금 다른 방식의 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잘 따라주셨다. 그리고 그 이상을 보여주셨다. 고창석 선배님 역시 고맙다. 영화에는 많이 등장하지만 사실 단 하루만 촬영하셨다. 원래 카메오 형식으로 출연하려고 했는데, 대사도 철저히 준비해주셨고, 짧은 시간에 완벽한 연기를 해주셔서 감탄했다. 사실, 출현해주신 모든 배우 분한테 고맙다. 게다가 이번엔 편집도 많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다. 훈 < 헬로우 고스트 > 개봉 당시 기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었다. 부정적으로 보는 기자들 대부분은 이 영화가 호흡이 느리다는 것이었다. 호흡이 느리다는 것은 지루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리 지루하지 않더라.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을 쏟는 작업이라고 봤다. 하지만 최근에 <헬로우 고스트>를 다시 봤는데 약간 촌스럽다고 느꼈다. 카메라가 인물에 가까이 가다보니 상대적으로 배경이 드러나지 않아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 슬로우 비디오 >는 배경을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인물이 더욱 풍성해 보였고, 인물의 성격도 유추할 수 있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시나리오 작업할 때, 그리고 촬영할 때 여장부를 둘러싼 여러 인물을 설정하면서 전작과 차별되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탁 < 헬로우 고스트 >를 돌이켜보면 세 가지 패착이 있었다. (훈 패착이라는 표현은 가혹하다.(웃음)) 그럼 아쉬운 점이라고 하겠다.(일동 웃음) 우선 무지했다. 난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지 않았고, 연출부 경력도 없다. <헬로우 고스트>가 데뷔작이다보니 카메라 앵글 등 기술적인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많았다. 두 번째는 오만했다. 난 내가 데뷔하면 역사에 남는 영화를 찍을 것이라 생각했다.(웃음) 내가 평소 즐겨보고 좋아하던 영화, 그 감독만큼 영화를 잘 찍을 줄 알았다. 그래서 <헬로우 고스트>의 구성을 기존의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승-결’로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완성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게 오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고집스러웠다. <헬로우 고스트> 시니라오를 쓸 때 서른세 살이었다. 당시 인생을 산다는 것이 매일 즐겁진 않더라. 우리는 특정 순간의 좋은 기억으로 남은 세월을 사는 것 같았다. <헬로우 고스트>로 우리 일상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보는 관객에 따라 이 영화를 지루하게, 그리고 호흡이 느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밖에 못 찍는 것이 아니고 원래 이렇게 찍은 영화라고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반면 < 슬로우 비디오 >는 좀 더 관객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다. 실제로 전작에 비해 “영화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씀도 많이 해주시더라. 하지만 난 여전히 <슬로우 비디오>의 호흡이 급했다고 생각한다.(웃음) 훈 영화 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영화에는 천천히 걷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원래 느린 호흡을 선호하는 감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들이 후반부에 그림 지도를 완성해나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제작 과정에서 호흡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탁 < 슬로우 비디오 >는 편집이 한 번 크게 바뀌었다. 원래는 내레이션과 여장부의 속말이 많지 않았다. 1차 편집 후 제작진은 너무 만족해서 신속하게 블라인드 시사를 열었는데, 난리가 났다. 재미없다고 말이다.(웃음) 내 성격상 단순히 재미만 없다면 편집을 바꾸지 않았을 텐데, 많은 경우 재미라는 건 주관적인 판단이니까. 한데 반응을 체크해보니 주인공의 심리 파악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감독으로서 주인공이 이해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내레이션과 속말을 넣었다. 이후 다시 블라인드 시사를 했는데 점수가 많이 좋아졌다. 폭스 인터내셔널 대표도 좋아하더라. 훈 < 슬로우 비디오 >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상업영화에서 한 공간, 작은 범위의 공간을 애정 있게 다룬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모두 등장인물들과 밀접하게 관련 있기도 하다. 탁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을 통해 최대한 일상을 지지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 다시 말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다. < 슬로우 비디오 >에 나오는 공간 대부분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곳들이다. 등장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장소 헌팅 때 이런 콘셉트를 요구하면 대부분 보기 좋은, 예쁜 공간을 조사해 와서 애를 많이 먹었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동네, 공간은 여러 곳이 내가 살았던 곳이다. 또한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곳들이기도 하다. 훗날 나이를 더 먹고 아내와 함께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함께했던 공간들을 추억하고 싶다는 약간의 사심도 담겨 있다.(웃음) 훈 차기작을 준비 중이다. < 헬로우 고스트 > < 슬로우 비디오 >와 다른가? 탁 외적으로는 좀 더 대중적인 개연성이 드러나는 이야기를 구상 중이다. 영화의 대중성에 대해 요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차기작은 사극인데, 고집스럽게 혼자 작업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처음으로 공동각본을 진행 중이다. 전작 두 편 모두 내 자식이라 좋아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서둘지 않고 한 편 한 편 성장하다보면 관객들이 좋아하는, 또한 나 스스로 보다 만족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