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통합검색 결과
검색 결과 분류
총 9,646개
정확도 순 필터
영화정보
이준혁
- 참여 작품
- 3670 (2025), 홈커밍 (2024), 위탁아 (2021), 그녀의 이별법 (2021), 숏버스 이별행 (2021), 이방인 (2015)
이준혁
- 참여 작품
- 광장 (2025), 좋거나 나쁜 동재 (2024), 소방관 (2024), 비질란테 (2023), 서울의 봄 (2022), 리버스 (2022), 범죄도시3 (2022), 야구소녀 (2019), 언니 (2018), 신과함께-인과 연 (2017), 비밀의 숲 (2017), 청년경찰 (2017), 신과함께-죄와 벌 (2017), 두 개의 연애 (2015), 복숭아나무 (2012), 악마를 보았다 (2010), 시티홀 (2009), 청담보살 (2009), 그들이 사는 세상 (2008)
이준혁
- 참여 작품
- 길 위의 뭉치 (2025),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2024), 데드라인 (2024), 더 킬러스 (2023), 소녀작가 입문기 (2023), 히트맨2 (2023), 리버스 (2022), 리바운드 (2022), 컴백홈 (2022), 한산 리덕스 (2022), 달짝지근해: 7510 (2022), 탄생 (2022), 육사오(6/45) (2022), 한산: 용의 출현 (2022), 카운트 (2021), SF8 (2020), 새해전야 (2020), 블링크 (2020), 도굴 (2020), 히트맨 (2019), 증인 (2018), 내안의 그놈 (2018), 어쩌다, 결혼 (2018), 언더독 (2018), 신과함께-인과 연 (2017), 골든슬럼버 (2017), 엄마의 공책 (2017), 지금 만나러 갑니다 (2017), 구세주: 리턴즈 (2017), 장산범 (2017), 그대 이름은 장미 (2016), 루시드 드림 (2016), 미스 푸줏간 (2016), 봉이 김선달 (2016),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2016), 희생부활자 (2015), 나를 잊지 말아요 (2015), 그놈이다 (2015), 오빠생각 (2015), 성난 변호사 (2015), 나홀로 휴가 (2015), 미쓰 와이프 (2015), 악의 연대기 (2015), 장수상회 (2015), 극비수사 (2015), 실버벨 (2014), 위험한 상견례 2 (2014), 슬로우 비디오 (2014), 나의 독재자 (2014), 춘하추동 로맨스 (2014), 타짜-신의 손 (2014),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4), 내 심장을 쏴라 (2014), 콩나물 (2013), 혼자 있다 2 (2013), 찌라시 : 위험한 소문 (2013), 짓 (2013),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2013), 톱스타 (2013), 사이코메트리 (2013), 친구2 (2013), 전국 노래자랑 (2013), 보호자 (2013), 숨바꼭질 (2013), 미스터 고 (2013), 무게 (2012), 더 파이브 (2012), 몽타주 (2012), 남쪽으로 튀어 (2012), 마이 라띠마 (2012), 그레코로만 (2012), 늑대소년 (2012),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회사원 (2012), 점쟁이들 (2012), 거지같은 놈 (2011), 혼자있다 (2011), 불륜의 시대 (2011), 러브픽션 (2011), 써니 (2011), 단풍맞이 단합대회 (2010), 해결사 (2010), 그대를 사랑합니다 (2010), 황해 (2010), 내 깡패 같은 애인 (2010), 댄스 타운 (2010), 육혈포강도단 (2010), 하모니 (2009), 애니멀 타운 (2009), 비밀애 (2009), 과속스캔들 (2008), 님은 먼곳에 (2008), 나두야 간다 (2004), 잠복 (2003), 우렁각시 (2001), 불후의 명작 (2000), 창백한 푸른 점 (1998), 어머니, 당신의 아들 (1991)
수집자료
[코난][영상] 타운시리즈 2탄 충격적인 그 작품 〈애니멀 타운〉- 이준혁, 오성태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리버스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리버스
- 매체규격
- 디지털파일
- 상영시간
- —
- 자막
- —
- 보관위치
- —
<인터뷰> 송중기 늑대 연기 스승..배우 이준혁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최다니엘 서현진 이준혁, 구혜선 감독 '복숭아나무' 카메오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상반기 독립영화 강세 뚜렷>
- 실물구분
- 아날로그
- 매체유형
- 기사/스크랩
- 보관위치
- —
콘텐츠
[영화현장]조감독: 이전 시대의 끝, <늑대소년>의 프로덕션 순간들②
2. ‘늑대소년’ 에피소드 2011.9.1 ~ 2011.12.20 프리 프로덕션 2011.12.21 ~ 2012.4.15 프로덕션. 총 67회차 후반 작업 후 2012.10.31.(개봉) 프리 프로덕션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히 말하는 대박이 났던 영화. 그러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첫 시작은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었다. 물론 당시 감독님은 < 남매의 집 > < 짐승의 끝 >으로 한창 주목받는 신예였지만 상업영화 스태프들의 눈에는 여전히 신인 감독이라는 색안경이 있었고 주연이었던 송중기 도 지금은 아시아의 프린스지만 당시는 라이징 스타 정도. 박보영 또한 과거 히트를 친 경험이 있는 배우였지만 몇 년 쉰 후의 복귀작이라 주변에서 불안해하는 이들도 많았다. 더군다나 다른 팀의 영화 만드는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 중 “뭐 대충은 알겠고, 그럼 너네 영화 내용은 뭐냐? ” 라고 물었을 때 “첫 사랑 이야기고 꽃미남 소년이 늑대로 변신해. 그리고 늙지 않고 나중에 할머니가 된 소녀와 다시 만나는 이야기야” 라고 했을 때 10명 중 9명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늑대로 변신한다고? 누가, 사람이? ...... 그게 되겠냐? 한국에서 판타지는 안돼!” 그들의 예상은 시원하게 틀렸지만 리얼리티의 맹신자! 한국 관객들의 특성을 우리도 알고 있었기에 걱정이 한가득 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프리 프로덕션을 하면서 가장 공을 들였던 것들은 역시나 늑대. 송중기 =철수 역이었다. 관객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몰입할 수 있는 설득력을 가질까? 였다. 그 첫째가 우선 비주얼 문제. 소년이었을 때 모습과 늑대가 되었을 때 모습. 소년이었을 때야 뭐 중기가 워낙 꽃미남이라 걱정 안 했지만 늑대로 변신한 모습은 중기 본인과 모든 스태프들의 최대 관심사였다. 둘째로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늑대소년이 소녀와의 사랑을 통해 길들여져 가는 과정에 몸짓, 감정의 표현들이었다. 왜냐하면 분명 이 영화는 사랑을 속삭이는 멜로물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디테일한 연기가 필요했다. 20110906 철수 관련 회의록 중 일부 1. 눈 1안 : 사람 눈 → 늑대 눈 2안 : 늑대 눈 → 늑대 눈 (밝기와 동공모양) 2. 이빨 평소 : 사람이빨 같은데 송곳니가 도드라져있다. / 변했을 때 : 더 부각이 된다.(길어진다) - 4단계 정도 3. 손톱, 발톱 - 자르는 순간:1안. #18씬. (깨져있거나 울퉁불퉁인데 ---- 다듬어진다) / 2안. #28씬 - 자를 필요가 없다. ............................................................... - 평소 : 노말한데 변했을 때 : 더 부각이 된다.(길어진다) 4. 구부정 #12 처음등장은 네 발 짐승 1단계 1안. 처음부터 인간과 만나면서 두 발로 다닌다. 2안. #27부터 두 발이 된다. 2단계 #28씬 --어느새 사람처럼 허리를 거의 핀 철수. 3단계 - #55 이후는 사람에 가까운데 의기소침해서 구부정한 것. 그 이후는 감정에 따라서 구부정의 모습이나 형태가 변한다. - #40에서 인간적인 것보다는 동물적으로 구부정하게 돌아간 철수 단, 순이와 함께할 때는 인간에 더 가깝다. ............................................................... * 개처럼 누워있는 것은 영화 전체적으로 계속적인 철수의 습관이다. 감정에 따라서 그 표현 수위만 조절 (귀엽게 엎드려있기도 하고 화가 날 땐 으르렁 거리면서 엎드려있다) ............................................................... 프리 프로덕션 단계 때는 이런 아이디어 회의를 수도 없이 한다. 보니까 초창기, 가장 기초적 회의라 좀 러프하고 정리가 덜 된 상태지만 이러한 아이디어 회의를 기준으로 야생의 철수가 사람이 되는 모습, 행동의 변화를 시나리오 흐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눠서 그 단계에 맞는 의상과 분장, 배우의 움직임, 자세를 정교하게 만들었다. 또한 동물의 기본적인 움직임을 익히기 위해 배우 이준혁 선배(움직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두 달가량 중기가 트레이닝을 받았다. 러프 콘티가 나와 있는 상태였고 (기본적인 동선) 이것을 기준으로 씬 별로 준혁 선배가 동물의 기본적인 습관, 움직임을 보여주고 아이디어를 주면 중기는 그 움직임을 베이스로 본인 나름의 재해석한 연기를 했고 우리 연출부는 매번 연습장면을 찍고 감독님과 배우에게 전달했었다. 그리고 각자 그 영상을 보면서 촬영 전에 연출과 액팅을 시뮬레이션했고 조금씩 약점을 개선해 나갔다. 또한 관심사였던 철수가 괴물로 변신했을 때의 모습은 감독님이 직접 디자인을 해서 만들었다. 조성희 감독님의 주특기가 시각 디자인 전공에 CG 회사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워낙 비주얼에 관해서는 본인 생각이 확고한 사람이라 본인이 그린 괴물을 스태프들에게 보여줬을 때 모두들 굉장히 만족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영상작업에서 단순한 스케치라도 시각화를 해야 이야기를 나누기도 편하고 그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확장시키기도 좋은데 괴물의 모습이 탄생하면서 의상, 분장, 특분, CG, 특효, 무술 등의 여러 파트에 준비작업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감독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은 영화작업에 있어서 매우 큰 장점이다. 분명 스태프들로부터 더 큰 선물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1 2012년 2월 9일. 29회차 촬영 스케줄표 (스태프들끼리는 촬영 달력이라고 부르는데 촬영 내용을 간단하게 표시한 요약집 같은 거다) #41D. 지태( 유연석 )가 순이( 박보영 )를 괴롭히고 때리는 것을 지켜보던 철수가 화를 참지 못하고 영화상 처음 괴물로 변신하던 날이었다. 밤 촬영이었고 지태와 그 친구들이 철수와 복잡한 액션을 찍는 첫날이었고 괴물로 변한 철수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다가 관객들에게 처음 완전체를 보여주는 날이라 우리 영화에 흥망이 달린 촬영 날이라고 생각했었다. 낮부터 촬영장에는 스태프들, 배우들이 총출동해서 액션 동선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안전장치, 와이어, 와이어 크레인, 액션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사전에 약속된 소품, 특수효과들을 준비하느라 에너지가 넘쳐났다. 나는 감독님들과 찍는 순서, 디테일한 세부 사항을 약속하고서 다시 그 결과를 스태프들과 공유했다. 겨울 촬영이라 해는 금방 넘어갔고 다들 저녁을 먹은 뒤 본격적인 밤 촬영을 준비했다. 촬영장은 전주 양묘장이라고 전주시에서 쓰레기 매립장으로 쓰던 공터였는데 그곳에 순이 집의 외관 껍데기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 오픈 세트장에서 며칠 촬영하며 안 사실이었지만 쓰레기 매립장이어서 그랬는지 밤이 되면 땅속에서 어떤 가스와 습기들이 올라와서 지표면을 뿌옇게 채웠었는데 이 습기들이 우리에게 엄청난 추위를 선물했었다. 이날도 고작(?) 영하 10도였지만 실제 우리가 느낀 체감 온도는 그 차가운 습기 때문에 더욱 덜덜덜 + 덜덜 이었다. 저 멀리 크레인이 올라가고 영화용 달이 뜨면서 현장 세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어서 2시간 정도의 특수 분장을 마친 중기가... 아니 늑대소년이 현장에 왔다. 그가 왔을 때 스태프들의 표정은 아직 생생하다. 풀 세트를 장착한 늑대소년을 사진으로만 본 사람도 있고 처음 본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맞나...? 맞을 거야... 맞나? 맞을 거야... 아닌가...? 맞을 거야.” 상상하던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 그것을 다시 영화적으로 만져서 극장에서 보는 모습은 전혀 다르다. 본인들도 경험상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몇 개월 동안 시나리오라는 같은 글을 수십 번 읽으면 각자가 상상한 늑대소년의 모습은 서로서로가 다르고 내심 자신의 판타지를 닮았기를 바란다. 감독이 결정한 모습이 있음에도 말이다. 참 재밌는 현상인데 스태프는 작업자이자 동시에 이 영화의 첫 관객이기도 하다. 영화 스태프를 하며 자신의 상상과 현실을 이어보려고 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참 진귀한 풍경이다. 꿈속에서 보던 백마 탄 왕자를 현실에서 만나고 싶은 마음. 농담이 아니고 딱 그거다. 그리고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여담인데 마찬가지 이유로 스태프들은 영화 작업을 하는 몇 개월을 시나리오를 통한 반복 학습을 하며 각자만의 상상 속에서 살게 되는데 이 효과가 얼마나 강력하고도 강력한지 나는 알고 있다. 한 예로 이전 멜로영화를 만들다 보면 현장에서 탄생하는 커플들이 유독 많았고 액션 하드코어를 찍다 보면 현장 분위기가 우울하고 드셌다. 공포 영화를 찍다 보면 꼭 세트장에서 귀신 봤다는 스태프들이 등장했고 한때 섹시 코미디 영화를 작업했던 나는.................. 흠. 어쨌든 그 날은 현장 스태프가 100명이 훌쩍 넘었고 모두가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대규모 전투를 치르듯이 찍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관객들이 제발 괴물이 된 늑대소년을 처음 보고서 “에이 이게 뭐야! 말이 돼?” 라는 반응만 안 하길 빌며 촬영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 새도 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또 난이도가 있던 촬영이라 그랬는지 예상치 못한 사고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괴물이 된 늑대소년이라 컬러렌즈를 꼈고 송곳니가 달린 가짜 치아를 끼고 있었는데 찍은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액션 중 송곳니가 부러졌고 그 조각이 중기 목에 걸리는 사고도 났었고 눈에 낀 칼라렌즈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한 컷 한 컷 찍어가며 철수가 나쁜 놈들을 이리 던지고 저리 물리치던 #41D는 3일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지금도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괴물이 된 철수가 차가운 입김을 내뱉으며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다가 전주 밤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포효하던, 그 새벽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중기가 용기 있게 잘해낸 씬 이라고 생각한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2 2012년 1월 3일. 9회차 촬영 스케줄표 #38B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철수와 순이. 둘 만의 데이트. 순이가 철수를 위해 자신이 만든 노래를 기타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보영이는 현장에 마스코트. 분위기 메이커였다. 싹싹했고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잘 어울렸고 의외로 터프했다. 이날은 보영이가 프리 내내 연습하고 연습했던 기타연주와 노래를 뽐낼 시간이었다. 순이가 된 보영이는 거실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고 철수는 마룻바닥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노래를 하는 순이를 지긋이 바라본다. 둘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 중요한 씬이었고 아름다운 감정씬이었다. 두 대의 카메라가 순이를 향해 있었고 멜로의 뽀샤시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조명 감독 형은 앉아있는 순이의 뒤통수가 정말 타들어 갈 정도로 강력한 HMI 조명들을 몇 개나 설치했다. 연주를 시작하는 순이. 그 날의 첫 샷. 첫 테이크를 찍을 때의 그 순간.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A캠이 트래킹을 하며 순이의 메인 컷을 찍고 있었고 B캠은 약간 옆쪽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순이의 손과 얼굴 위주로 FOLLOW 하며 찍었고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거실 바닥에 앉은 체 그녀의 단독 콘서트를 숨죽이며 보고 있었다. 음악 감독님 작곡. 감독님 작사에 ‘나의 왕자님’ 이란 노래가 시작되었고 이 넓은 전주 세트장에 아름다운 기타 연주와 순이의 수줍은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나는 뒤쪽으로 살짝 빠져서 이 촬영장 전체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뭔가 뭉클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스태프들 얼굴을 보니까 구경하는 남자 스태프들은 이미 눈이 달나라, 별나라로 향해 있었고 여자 스태프들은 ‘흥, 칫, 뿡’. 괜한 팔짱을 끼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났던 것은 노래가 끝나고 몇 초의 적막이 흐른 뒤 감독님의 컷 소리가 났는데도 보통 때 같았으면 컷 소리와 함께 다음 컷 준비로 소리 지르며 바로바로 소란스럽게 움직였을 사람들이 쥐죽은 듯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레드 썬! 과 동시에 별나라 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최면이 풀리면서 지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가 보다. 그 후로도 몇 초가 지나서야 조심스레 다음 컷을 준비하기 시작한 스태프들. “이보게나, 정신들 차리게.” “아... 네. 네. 배시시” 미소 짓는 그들의 얼굴은 뭔가 밝고 따뜻하며 다정다감한, 원래 항상 착했던 사람들처럼 변신해 있었다. 조감독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이런 순간들은 참으로 신비하고도 놀랍다. 다음 컷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평소보다 더 신중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이쿠야. 안 하던 양보도 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애기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보영이의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하고. 행복해진 것이다. 이 뜻은 그 장면이 본인들이 상상해왔던 것만큼 잘 찍혔다는 이야기고 관객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을 씬이 탄생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습을 ‘영화 현장의 마법’이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이 만족감에 취해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 스태프들은 다시 최선을 다해 영화의 장면에 좋은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이렇게 촬영을 하는 날은 안 봐도 뻔하다. 그 날 촬영 회차에 점수를 매기라면 분명 10점 만점에 100점이다. 프로덕션: 기억에 남는 촬영 3 2012년 2월 18일. 35회차 촬영 스케줄표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이길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연이다. 조감독들의 가장 큰 숙제이자 적. 촬영장에 생기는 대다수의 변수들은 정말 정 안되면 스태프들이 으싸으싸 하던지 그것도 안 되면 결국 돈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답이 없다. 촬영 스케줄이라는 것이 100명의 사람들, 그리고 각각의 팀들이 세팅하고 작업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시간, 수십 명의 배우들에 개인 스케줄들, 촬영 장소별 섭외 여건, 세트의 완공 시기, 비싼 소품과 장비의 대여 기간 등등등등.... 하물며 야식 먹는 시간까지. 거짓말 안 하고 수십, 수백 가지의 요소와 가능성을 생각해서 짠 거대한 테트리스 같은 건데 인간의 일들은 설득이란 게 있고 섭외라는 것이 있을 수 있지만 자연은 말이 없다. 그리고 이 변수 때문에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하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도미노처럼 발생하고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초과되기 일쑤다. 한 예로 여름 장마 기간, 태풍에 크게 잘못 걸린 팀은 보름 가까이 쉬는 팀도 봤었다. 제작자, 피디 형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도 타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날씨가 오락가락하면 그 날을 애초에 쉬는 날로 하느냐, 아니면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지켜보며 대기를 타느냐의 판단도 늘 촬영 때마다 있는 가슴 졸이는 일이다. 보통 촬영장에 기본적으로 있는 스태프의 수가 70명가량이고 움직이는 차량이 십여 대가 훌쩍 넘는다. 서울에서 대기를 타고 있는 수십 명의 배우들은 계속해서 전화를 건다. “우리 촬영장 가요, 말아요? 찍는 겁니까, 안 찍는 겁니까? 언제 결정이 나나요?” 글을 쓰면서도 스트레스가 확 밀려온다. 어쨌든 우리는 겨울 촬영이었고 우리의 변수는 비. 눈. 한파였다. 그래서 애초에 메인 촬영 장소를 강원도나 북쪽이 아닌 남쪽 지방에서 찾았고 전주를 중심으로 촬영 장소를 선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상청을 통해 전라도 지역에 도시별 5년간 적설량, 강우량을 뽑아서 촬영 스케줄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2008년부터 쭉 데이터를 뽑아보니 우리가 찍는 2012년. 짝수년이 더 추워서 비보다 눈 위주로 많이 왔고(다행히) 그 짝수년들을 보니까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눈이 많이 내렸고 2월부터는 간간히 눈이 오더라. 라는 나름의 통계를 뽑을 수 있었다. 물론 100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결국 기댈 수 있는 것은 반복적인 데이터였다. 그래도 갑자기 내리는 비와 눈은 하늘의 뜻이니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고. 어쨌든 이 자료를 디테일하게 반영해서 전주에 내려간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는 야외 촬영 없이 전주 세트장 안에서 내부 세트만 촬영을 하고 1월 이후에 야외로 나간다, 라는 큰 그림을 그렸고 만약 야외 촬영 중 눈이나 비의 변수가 생길 경우 당장 가까운 거리에 점프해서 촬영할 수 있는 예비 촬영 장소와 찍을 것들도 2안으로 준비했었다. 그런데 우리 영화에 또 다른 숙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위 스케줄 표에 나와 있는 눈 배경 장면이었다. 그것도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눈이 와 있는 추억의 별장을 노인이 된 순이가 찾아가는 장면과 영화의 에필로그. 혼자 남은 철수가 여전히 순이를 추억하며 눈사람을 만드는 모습. 그래서 이 장면들은 고창 청보리밭에서 찍기로 했었는데 그 이유는 콘셉트에도 맞는 목가적 풍경을 가지고 있었고 전라북도 지역에서 눈이 자주 오는 곳이기도 했고 메인 거점이었던 전주에서 차량으로 한 시간 반 거리라 전주에서 변수가 생길 시에 언제든 점프를 할 수 있는 장소였었다. 촬영 스케줄 상 이 씬들은 어느 날짜라고 픽스를 짓지 않았고 전주 야외 촬영 중 고창에 충분한 눈이 내리면 언제든 점프한다는 각오로 준비했다. 그러던 중 첫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2012년 1월 31일. 전주 양묘장 오픈 세트장에서 야외 촬영을 시작한 지 두 번째 날, 일기예보와 다르게 낮인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마당에서 감자를 우걱우걱 집어 먹는 철수의 머리 위로 함박눈이 내렸다. 이곳의 촬영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고 긴급회의를 열어 고창 쪽 상황을 알아보니까 그쪽에도 눈이 내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 시간이 오후 1시 무렵이었고 고창 쪽에 지금 내린 눈이 쌓인다면 내일 점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다음 날 까지 눈이 유지될 가능성도 낮아 보였다. 결국 그 날은 모두가 만세를 외치는 휴차(쉬는 회차)가 되었다. 두 번째 기회가 찾아 왔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전주에는 저녁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전라북도 전 지역에 걸쳐서 내리는 비였다. 그리고 고창지역은 늦은 밤부터 비가 눈이 돼서 적설량이 5cm가 넘는다는 애매하고도 애매한 예보였다. 다시 긴급회의가 열렸고 제작부장과 내가 고창 쪽에 넘어가서 새벽 2시까지 상황을 지켜본 후 다음 날 고창에서 촬영을 할지 말지에 대해 상황보고를 하기로 했다. 사실 이 계획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다수였지만 내 입장에서는 2월에서 3월로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눈 내린 들판 장면을 못 찍지나 않을까 하는 또 다른 걱정에 밀어붙이기로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당연히 스태프들 또한 전주 숙소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새벽까지 대기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밤 12시부터 고창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폭설이었다. 쌓이지 않는 폭설. 싸리 눈이었다. 제작부장과 나는 쓸쓸히 전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실패였다. 2월이 가고 있었다. 3월이 되면 우리는 다른 촬영 관계상 전라도를 떠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제는 오히려 눈이 내리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중 날짜가 서서히 박혔다. 2012년 2월 18일. 이미 일주일 전부터 전북 지역 전역에 걸쳐 폭설이 예보돼 있었고 그 날이 하루하루 가까워질수록 일기 예보의 확률은 더욱 높아져만 갔다. 하루 전날 연출부 세컨 동생과 제작실장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고창 청보리밭으로 급파됐다. 이날의 일기예보는 늦은 밤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폭설이 예보되어 있었고 그 예보가 몇 일째 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숙소에서 콩닥 콩닥 마음 졸이며 삼십 분에 한 번꼴로 체크 전화를 걸어서 욕을 먹던 중, 열 시를 넘을 무렵 희망찬 메시지가 날아왔다. “조감독님, 눈 옵니다. 폭설입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에 현장 사진이 날라 왔다. 대략 3cm 정도의 눈이 내린 상태였고 내일 오전까지 내리고 기온도 영하라고 하니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빠르게 키 스태프들과 의논을 했고 다음 날 촬영을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낮 촬영이고 이동 거리가 한 시간 반이라 스태프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촬영장을 향했고 촬영장을 향하는 동안 오히려 폭설을 해치며 가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넓고 넓은 평야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때 저 멀리서 선발대로 와있던 연출부 동생이랑 제작실장이 새벽어둠을 뚫고 뚜벅뚜벅 눈을 맞으며 걸어오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가장 넓은 샷을 우선 찍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넓은 벌판 위에서 철수가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그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눈 내린 배경에 촬영은 순조롭게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찍었던 엔딩 장면을 우리는 추후 3월 14일. 대관령에 가서 재촬영을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뭐 그런 것이 촬영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영화 마지막에 눈사람 굴리는 철수의 장면은 대관령 촬영 분량이 쓰였고 그 외에 노인이 된 순이 장면은 고창 청보리밭 촬영 분량이 쓰였다. 3 마무리 영화 스태프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촬영 때는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 만땅 이지만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근질근질해지고 그리워지는 게 현장이라고. 그리고 다음 작품은 보다 내 취향과 잘 맞는 시나리오, 감독님과 작업하기를 늘 꿈꾼다. 내 취향에 맞는 일을 할 때, 나랑 잘 맞는 사람들과 일을 할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나의 손때가 뭍은, 내가 찾은, 내가 캐스팅한, 내가 찍은, 내 손으로 만든 나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장면들이 스크린에 펼쳐질 때 그 희열이란 한 번이라도 맛을 보고 나면 중독이 돼서. 그래서 다시 영화 촬영장을 그리워하고 꿈꾸는 것 같다. 감독님들. 배우. 스태프들. 정해진 시간 속에서 같이 밤을 새우고 같은 비바람을 견디며 영원히 기억될 영화를 만든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모두가 좋아서 이 일을 할 뿐이다. 앞으로도 좋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길,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영화인][주목 이 한편의 영화] 김광식 - 감독
이화정(이하 ‘이’) < 내 깡패 같은 애인 >과 < 찌라시: 위험한 소문 >(이하 ‘찌라시’) 모두 대사에서 두드러진 강점을 보인다. 아마도 감독 이전의 이력이 작용하는 것 같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영화감독 이전에 방송작가로 활동한 적이 있다. 어떻게 글을 쓰게됐나? 김광식 (이하 ‘김’)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내 글로 누군가를 재밌게 만드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내 감정을 모두 끌어내어 글을 쓰기보다, 내 글로 타인의 기분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밌었다. 예술가적 기질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이후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는데 대학가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종말’이라는 말이 돌면서 문학이 중심에서 변방으로 물러나는 분위기였다. 그게 1990년대 초반인데, 소설 외에 다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영상으로 관심을 돌렸고 단편영화 스태프로 일했는데 현장에서 무거운 장비를 많이 들어야 했다. 세상에서 무거운 짐 드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일동 웃음) 지금의 몸을 보면 아무도 안 믿지만 당시에는 순수한 문학청년이라 몸도 여렸다.(일동 웃음) 그때부터 방송용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베스트극장>에서 단막극으로 몇 편 방송이 나갔는데, 마감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지치는 일이더라. 그래서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됐고 영상원에 시나리오 전공으로 들어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감독이라는 직업이 기술의 영역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오랜 경험이 쌓여도 보는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의 감수성으로 내가 직접 연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해 직접 연출을 하게 됐다. 단편 작품을 만들다가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조감독을 하게 됐고, 이후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다. 이 첫 작품 < 내 깡패 같은 애인 >(2010)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바로 후속 작품을 제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김 < 내 깡패 같은 애인 > 이후 여러 영화에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늑대>(가제)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받았다. 탈북한 특수부대원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꽤 괜찮은 작품이라 생각해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내 깡패 같은 애인> 개봉이 끝나고 반년 즈음 지나서였다. 사실 이미 개봉한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 중 당시 나에게 감독 제안이 들어온 영화도 있었다. 난 모두 거절하고 <늑대> 초고를 마무리하고 캐스팅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 사이 그 영화들이 개봉하더라. 시작은 먼저 했는데 시나리오를 다듬다보니 캐스팅이 늦어진 것이다. 그렇게 유사한 장르의 영화들이 개봉되면서 <늑대>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그렇게 1~2년을 보냈는데, 이후 < 찌라시 > 시나리오를 받았다. 초고가 나온 상태여서 시나리오 수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원래 정치?사회적 이슈가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서 <찌라시>를 선택하게 됐다. 이 < 찌라시 >도 그렇고, 비록 제작되진 않았지만 이야기 구성만 봐도 <늑대>란 작품 역시 < 내 깡패 같은 애인 >보다는 제작비 면에서 규모가 커 보인다. 김 < 내 깡패 같은 애인 >의 순제작비가 10억 원이었다. 이 영화를 만들고 배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예산 영화가 배급과 마케팅 면에서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의 규모를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제작이 중단되긴 했지만 <늑대>의 경우 제작비를 70억~100억 원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영화를 연출하지 않은 것이 나에게 더 잘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소재의 < 용의자 >만 보더라도, 이 영화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은 누구보다 액션을 잘 표현하는 감독이다. 내가 과연 액션에 적합한 감독일까 생각하면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 이 < 찌라시 >의 순제작비는 30억 원 규모였다. 다른 상업영화들에 비해 여전히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라고 볼 수 없지만 이전 영화에 비해 제작비가 늘어났다. 연출하는 데 수월해진 부분이 있지 않았나? 김 흔히 우리나라 블록버스터 영화를 ‘독립 장편 블록버스터’라고 한다.(웃음) < 찌라시 >는 30억 원이 투입됐는데, 사실 그 이상, 100억 원이 투입된 영화라고 해서 그 돈이 스태프에게 더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주.조연급 배우의 캐스팅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는 제작 예산이 빠듯하다. 제작비가 많다고 감독이 진행비를 더 쓰는 것도 아니다. <찌라시>가 < 내 깡패 같은 애인 >에 비해 제작비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연출이 수월해지진 않았다. 100억, 150억이 투입되는 영화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찌라시 > 역시 30억 원으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 30억 원에 ‘찍어야 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그 예산에 맞춰 연출했다. 사실 <찌라시>는 영화의 내용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투입된 영화라 볼 수 없다. 다만 < 내 깡패 같은 애인 >을 10억 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연출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30억 원에 제작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전작도 그렇고 < 찌라시 >에서도 세트 촬영보다 로케이션 촬영을 많이 진행했다. 이것도 예산을 절감한 효과를 가져왔을 것 같다. 김 두 가지 이유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한다. 제작비 규모를 맞추기 위해 로케이션 촬영을 많이 한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결과적으로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영화는 카메라에 인물만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물과 함께 주변 공간을 담아내는 것이 감독으로서 나의 주된 관심사다. 따라서 세트보다는 로케이션 촬영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 < 내 깡패 같은 애인 >과 < 찌라시 >를 보면 사실적인 공간에 대한 감독의 욕심이 보인다. 김 세트를 활용하면 사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세트 촬영을 지양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이명세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같이 세트를 활용하면서도 그 공간을 미술적으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감독이라면 세트 촬영을 많이 했을 것이다. 이 < 찌라시 >라는 제목이, 실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핵심 이야기와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영화 제목을 정할 때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전작 < 내 깡패 같은 애인 > 역시 제목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었다. 왜 유독 제목에 대한 지적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나? 김 솔직히 나도 < 찌라시 >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원래 이 영화의 제목은 <예언자들>이었다. 하지만 <예언자들>은 아무도 호응해주지 않더라. SF나 판타지 장르의 느낌이 난다는 이유였다. 마지막까지 제목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결국 <찌라시>로 결정했다. 사실 내가 국문과 출신이라 일본어, 비속어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것이 내내 찜찜했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이영화는 사설 정보지, 즉 ‘찌라시’에 대한 이야기다. <찌라시>라는 제목이 이 영화를 가장 잘 그리고 독창적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목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찌라시>가 가장 적합했다고 생각한다. 이 < 찌라시 >뿐만 아니라 < 내 깡패 같은 애인 >도 멜로가 기반이지만 88만원 세대의 고충이 이야기의 한 축을 구성한다. 특히 세진( 정유미 )이 입사 면접에 들어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무척 씁쓸한 현실 보고였다. 주로 어떤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영화에 담아내고자 하는가? 김 의도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이슈를 영화에 담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영화가 반드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야만 하는 매체도 아니지 않나? 개인적으로 전쟁물이나 < 반지의 제왕 > 같은 판타지 영화도 즐겨 보는 편이다. 판타지 장르 영화는 논외로 하고, 영화가 드라마든 멜로든 어떤 장르든지 시대성, 사회성을 배제했을 때 무슨 의미가 있을까? < 내 깡패 같은 애인 >의 경우, 건달과 취업준비생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배제하고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만 할 경우 관객이 그 영화를 볼 가치가 있을까? 속된 말로 ‘지들끼리 잘살면’ 되는 것이다.(웃음) 그 둘의 관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녹아들어오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찌라시 >도 마찬가지다. 단순하게 배우와 매니저의 관계로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의미 없는 멜로영화가 될 수 있다. 어떻게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안으로 끌어들여야만 그것이 장르적 재미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라면 한국의 시대성을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이야기의 구성이 촘촘해지고, 관객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제작사(영화사 수박) 성향으로 볼 때 (※ 영화사 수박은 < 이태원 살인사건 >(2009), < 특수본 >(2011), < 찌라시 >(2013)를 제작했으며, 오는 10월 < 제보자 > 개봉을 앞두고 있다. 편집자 주) 초고는 조금 더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각색했나. 김 사실 초고 시나리오에서는 제목 그대로 ‘찌라시’ 유통업자 세계를 다룬 영화였다. 원래 내용은 매니저가 배우의 불미스러운 죽음을 캐내다가 결국 ‘찌라시’ 유통업자로 성공하는 이야기였다.(일동 웃음) 나는 이 구조에 동의할 수 없었고, ‘찌라시’를 통해 정치, 경제 등 이 사회의 권력구조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많은 이가 < 부러진 화살 >( 정지영 , 2012)이나 < 26년 >( 조근현 , 2012)과 같이 사회적인 소재를 담은 영화와 비교해주신다. 하지만 두 영화는 소재 자체가 영화의 내용인데 반해, 나는 사회적 이슈를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들과 < 찌라시 >가 다른 지점에 있다고 본다. 이 실제로 ‘찌라시’라는 것이 워낙 보안 유지가 철저한 유통 자료이다보니 자료 조사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 개봉 이후 TV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사설 정보지의 정보 생산과 유통에 관한 내용을 보여주었는데 영화의 내용와 매우 흡사하더라. 관객 역시 영화에 나오는 ‘찌라시’에 대한 내용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궁금할 것 같다. 김 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전 자료 조사와 관련자 인터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조사를 하면서 이 사설 정보지를 유통하는 업자, 정보를 생산해내는 ‘정보맨’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전문적이거나 대단한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대기업 홍보팀이나 전직 기자 수준이었다. 기자의 세계를 다룬 영화를 보면, 관객은 무척 전문적으로 보이겠지만 기자가 봤을 때 일상적인 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찌라시’ 유통업체들을 실제로보니 영화에서보다 더욱 영세했다. 이들이 결코 우리 사회를 움직이지 못한다. 이 소재가 영화에 표현되면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조사해보니 별거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래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사실감을 살려 ‘찌라시’에서 파생되는 권력관계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사실 모든 국민이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 권력이 정치와 경제 분야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한 번 더 각인시키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우리 사회에서 유통되는 ‘찌라시’는 어감 자체도 그렇고, 그 기능 역시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박사장(정진영)이 매니저 우곤( 김강우 )에게 “자, 알았으면 이제 추가 취재를 하러 가자.”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찌라시’는 취재 기자들의 좋은 소스가 되기도 한다. 언론의 취재 형태를 어느 정도 상당 부분가지고 있다. 김 동의한다. ‘찌라시’는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을 위해 유통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보로서 유통된다. 그리고 그것이 주식, 사업 투자 등 돈과 관계되기 때문에 신속하게 입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정보를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사람도 있고 그 어감 자체도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여전히 필요한 사람들에 의해 고급 정보로 유통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영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만 해도, 미진( 고원희 )이 살해당하는 장면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일반에 유포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영화적인 설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유튜브나 SNS를 통해 무척 선정적인 영상이나 이미지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예컨대 얼마 전 유병언 사체 사진이 인터넷상에 유포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전문가들만 볼 수 있었던 영상을 대중이 모두 공유하는 것이다. 대중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있달까? 미진이 살해당하는 영상. 이것은 오히려 2014년 현재 우리에게 더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김 영화적인 리얼리티와 그것의 의미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영화에서 미진의 동영상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공유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미진의 동영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것이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더라도 관객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보면 언론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찌라시’ 유통업자 박사장은 결국 자신의 본업(기자)으로 돌아가 진실을 캐내려고 한다. 우리 시대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묻는 듯하다. 김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은 정치계와 대기업이다. 보통 사회권력을 이야기할 때 언론을 언급하진 않는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심각한 모순이 언론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기자나 언론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불의의 사고로 숨진 배우를 위해 진실을 캐내는 매니저 우곤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영화의 중심이 박사장일 수도 있었는데 특별히 매니저를 소시민의 영웅으로 내세운 이유가 있나? 김 영화에 다양한 직업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정치인, 대기업, 언론을 다루는 영화이기는 하나 이 사람들의 시점으로 영화가 표현되면 자칫 정치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한 정치권력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매니저에 관객이 감정이입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미진과 강우의 관계 설정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단순히 배우를 아끼는 매니저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 배우를 위해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은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생각한다. 김 그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매니저와 배우는 서로 관계된 직업일 뿐이다. 영화의 인물이 반드시 가족이나 연인을 위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어야만 움직이나?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우곤을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부조리에 맞서 정의를 추구하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둘 사이의 관계가 좀 더 명확했다면 관객의 입장에서 한결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대중적인 지지를 더 받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우리 사회에 사사로운 감정을 떠나 순수하게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 않나?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제하려고 했다. 이 악한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절대악 차성주 역을 맡은 박성웅 의 연기가 돋보였다. 차성주의 역할을 계속 나쁘게 몰아가면서 선과 악의 대비가 더욱 더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김 사실 박성웅 은 < 신세계 >( 박훈정 , 2013)류의 조직폭력배 역할이 반복적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나는 차성주 역할은 회사의 CEO, 국정원 직원이라며 그를 설득했다.(웃음) 이 배우를 계속 설득한 것은 무엇보다 잘 어울려서였다. 차성주라는 인물이 영화에 자주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등장과 동시에 관객에게 악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이’ 다음 작품에 로맨틱 코미디를 약속하고 < 찌라시 > 출연을 설득했다고 들었다.) 나도 언론의 인터뷰를 봤다. ‘만약 내가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연출한다면’ 같이 하겠다는 말이었는데, 주연을 시켜주겠다고 받아들였다.(웃음)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봐야겠다.(일동 웃음) 이 영화에서 액션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다. < 찌라시 >에서는 액션이 적재적소에서 특정한 기능으로 사용된다. 가령 박사장의 은거지인 ‘찌라시’ 유통 회사를 찾아간 우곤이 번개(윤영균)와 격투를 벌이는 신은 나중에 이들이 한 팀이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둬 조금 가벼운 합이 된 것 같다. 김 맞다. 사실 그 격투 신은 굉장히 진지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찌라시’를 유통시키는 사무실에 대한 이미지가 무척 부정적이다. 결국 이들은 주인공과 한 식구가 되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깰 필요가 있었다. 초반에 등장하는 ‘번개’도 그렇고, 백문(고창석)도 그렇고, 조금씩 부족해 보이는 설정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해나가려고 했다. 이 영화 초반 추격 신도 인상 깊었다. 자동차를 쫓아가는 사람. 애초에 불가능한 설정인데 도심의 빌딩을 잘 활용하고 계산해 결국 사람이 차를 따라잡게 만들었다. 상당한 재미를 주는 장면이다. 김 우곤이 번개의 차를 추격하는 것이 일반인이 ‘찌라시’를 추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무모하게 쫓아가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쫓아가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다른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이 방법을 택했다. 나중에 설명이 되긴 하지만 그래서 우곤을 전직 200미터 육상선수라고 설정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우곤이 매니저 일을 그만두고 발레파킹 일을 할 때 입고 있던 옷도 육상협회 옷이다.(일동 웃음) 그 추격신은 소공동에서 찍었는데 워낙 유동 인구가 많은 거리이고 최근 관광객도 많이 늘어 1주일에 한 번만 촬영할 수 있었다. 연기한 김강우 씨가 고생을 많이 했다. 이 이 영화의 세 번째 액션으로 차성주의 ‘손가락 부러뜨리기’를 얘기하고 싶다.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찌라시’라는 상징성 때문에 손가락을 부러뜨려 글을 쓰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인가? 김 맞다. 애초에 시나리오상에는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장면이 한 번 등장한다.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내는 것은 깊은 인상을 줄 것 같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손가락이 부러진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그 느낌을 알기 때문에 더욱 잔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사실 차성주는 O&C라는 대기업의 대리인이다. 이 그룹의 악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차성주를 더 악한 인물로 나타내야만 했다. 사담이지만 영화 촬영 중 실제로 촬영감독의 손가락이 부러졌다. 근데 사실 별로 안 아프다고 하더라.(웃음) 더 잔인하게 손가락을 부러뜨려야 했다.(일동 웃음) 이 < 내 깡패 같은 애인 >과 < 찌라시 > 두 편에 모두 출연한 배우 이준혁 이 감독님을 두고 ‘조곤조곤 순해 보이지만 칼을 가진 감독’이라고 하더라. 현장에서 애드리브를 하면 좋다고 웃고서는 결국 그것을 다 편집해버린다고. 현장에서 쉽게 다가가 까다롭게 관철하는 스타일인가보다. 전략인가?(웃음) 김 나는 내 스타일을 잘 모르지만, < 찌라시 >를 함께 한 배우 정진영 도 비슷한 말을 했다. “배우가 현장에서 무엇을 요구하면 다 들어줄 것처럼 하다가 결국 감독 마음대로 한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다.”라고 하더라. 의견을 많이 듣는 편이나 결국 내 뜻대로 하는 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러면서 관계가 좋다면 좋은 일 아닌가? 현장에서 강압적이거나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는데, 가능한 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설득하고 칭찬하면서 서서히 몰아가는 편이다.(웃음) 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대중적 기호와 코드에 맞는 영화를 연출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 찌라시 > 역시 대중의 취향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인가? 김 < 찌라시 >를 그렇게 대중적 코드에 맞춰 연출하고 싶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영화를 연출하면서 어떻게든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나의 영화 전반에 대한 연출 철학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사실 ‘찌라시’라는 사설 정보지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소재 자체가 일반적이지도 않고, 대중적이지도 않다. 그렇지만 해보고 싶었다. 오히려 <찌라시>는 대중적 흥행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이 < 내 깡패 같은 애인 >도 성과가 있었고, < 찌라시 > 역시 흥행 면에서 성공했다. 두 영화 모두 대진운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감독의 흥행운이 좋은 것 같다. 김 지금 < 명량 >이 10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시점에 나에게 흥행운이라니….(일동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