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전작전 - 여배우좌담회(윤여정,이화시)
- 제작년도
- 2008
“< 반금련 >에 인육을 먹는 장면이 있지만 30분이 넘게 검열로 삭제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 이어도 >도 검열의 희생양인데 클라이맥스 부분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영화사에서 종종 덧붙여지는 수식어인 ‘저주받은’ 감독 혹은 걸작이라는 단어와 김기영 은 잘 어울린다. 1919년생인 그는 비록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대 의대까지 엘리트 교육의 수혜를 받았으나 그가 영화인으로서 통과한 한국 근현대사는 처절하고 가혹했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정권, 특히 그의 영화적 기량이 절정에 올랐던 1960년대부터 자행된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한국영화사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과 수치를 남겼다. 그 시대를 통과하면서 김기영은 자칭 영화 기술자이자, 스타일리스트로서 한국영화사에 유례없는 괴작들 혹은 저주받은 걸작들을 만들어냈고, 이후 비평계에서는 그를 ‘검은 마성의 감독’이라고 상찬했다. 한국 영화사의 대표 걸작으로 손꼽히는 < 하녀 >(1960) 이후 김기영은 1960-70년대에 걸쳐 제법 상업적인 성공작들을 만들어냈다. 그러던 1974년 그는 중국 장편소설 [금병매]를 바탕에 둔 영화 <반금련>을 1974년에 연출한다. 김포 일대에 세워진 거대한 오픈 세트장은 물론이고 정일성 촬영감독,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신성일 , 김영애 , 박암 , 박정자 그리고 과감하게 기용된 신인 이화시 까지 이 영화는 상업적 기획력(동아수출공사 제작)과 원작 [금병매]의 주요 캐릭터와 모티브를 과감하게 차용하고 비틀면서 김기영 감독 특유의 에로티시즘과 죽음, 멜로와 인간사에 대한 냉혹한 해부도를 펼쳐낼 작품이었다. 그러나 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위에 인용한 김기영 감독의 회고처럼, 영화 <반금련>은 외설과 폭력 등의 이유로 수차례 검열당국으로부터 반려되었고, 결국 영화는 7년이 지난 1981년에야 공개된다. 그러나 이때 공개된 버전은 무려 30분 이상 잘려나가며 훼손되었고, 심지어 오리지널 버전은 완전히 소실돼 버렸다. 비운은 김기영 감독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반금련>에서 주인공 금련으로 데뷔했던 배우 이화시는 김기영의 다른 작품인 < 파계 >(1974), <이어도>(1977), < 수녀 >(1979) 등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선보이지만 당시 중앙정보부에 의해 뇌쇄적이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영화사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금련>은 그녀의 첫 데뷔작이자, 권력에 의해 좌절당한 이후 마지막으로 개봉한 영화가 되었다. 영화 <반금련>은 수년 전, 황무대 일족에 의해 멸문당했던 서문경(신성일)이 지방 현감의 권력을 등에 업고 소금전매업으로 부를 쌓아 복수에 성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복수극으로 그는 황무대의 재산은 물론이고 그의 두 아내인 반금련(이화시)과 이병아( 염복순 )까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병아는 달아나버리고, 늙은 황무대에 성적으로 만족하지 못했던 반금련만이 서문경의 애첩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 않는 금련은 갖은 계략과 성적 도발로 서문경의 사랑을 독차지하지만, 얼마 후 붙들려온 이병아에게 서문경이 마음을 빼앗기며 위기가 시작된다. 질투와 탐욕, 파괴적인 성적 에너지와 암투로 일관하던 반금련은 결국 음모와 계략, 권력과 사회적 제도의 칼날 속에서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닫게 된다. 김기영의 <반금련>은 원작인 중국 소설 [금병매]와는 확연히 다른 이야기구조와 캐릭터를 구축해간다. 원작은 오직 모티브로만 작동하며 김기영은 그 자신 특유의 영화적 세계를 펼쳐낸 것이다. 세트 안에 직조된 세계는 인간 세태를 응축하는 권력과 탐욕, 욕구와 공포,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또아리를 튼 미궁과도 같으며, 그 안에 감금된 캐릭터들은 인간 본성의 동물적 에너지와 야만적 이성이 기묘하게 결합된 존재들이다. 남성들은 여느 김기영 영화 속 그들처럼 유약하고 기만적이며, 여성들은 성적 에너지를 자기 생존의 마지막 동아줄인양 처절하게 붙들고 있다. 김기영 감독이 일일이 디자인하고 배치했다는 중국 저택 공간의 복도와 밀실들, 그 공간들을 가로막는 무수한 격자 문양의 문들과 강력한 대비의 조명과 실루엣. 그 속에서 인물들은 경극 배우 혹은 중국 그림자극의 종이 인형처럼 인위적인 제스처의 연기들을 펼쳐 보인다. 특히 이화시가 연기하는 반금련은 남성들을 유혹할 때마다 기이한 손동작을 취하곤 하는데, 이러한 ‘제스처들’은 과히 김기영 모드라고 할만한 영화적 세계의 서명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배우들의 연기와 움직임들은 그의 다른 영화들에서도 쉬이 발견된다. 가령 이 영화가 제작된 1974년에 공개된 그의 또 다른 작품 <파계>에서 배우 임예진이 연기하는 비구니 ‘묘향’ 역시 매혹적인 외모로 법통을 이어갈 수행 스님 침애를 유혹하게 되는데, 그녀 역시 손의 제스쳐를 통해 성적 욕구를 암시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압권은 금련의 집착과 성욕을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으로 완성하는 김기영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마지막 시퀀스이다. <양산도>(1955), <이어도>(1977)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1978) 등에서도 강력하게 드러나는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증)는 이 영화에서도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충동)를 넘나드는 멜로적 사랑으로 승화된다. 본처(박정자)의 계략에 의해 목이 잘린 채 살해된 서문경은 훼손된 시신 상태로 석굴묘에 안치되는데, 이때 반금련은 본처의 지위를 그녀가 계승한다는 약속 하에 함께 매장되길 선택한다. 암굴에 시신과 함께 매장된 그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서문경에 대한 사랑의 광기 속에서 극기야 목 잘린 시신의 유령과 괴이한 정사를 나눈다.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김기영의 영화적 세계와 스타일은 동시대 일본 감독 이마무라 쇼헤이와 비견할만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가 유기적인 서사구조와 플롯 배치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성에너지와 욕정을 날것처럼 묘사하는 것이라면, 김기영의 성적 욕구는 타나토스와 마주하는 심리적 궤적이자 동시에 억압적인 사회에 짓눌린 남성성, 혹은 여성성의 권력과 쟁투를 암시하는 은유로서 작동한다. 김기영은 영화를 마치 인간을 해부하듯 세상의 표면을 가르고 그 안에 감추어진 복잡하고 소름끼치는 내면을 조명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또한 한 번도 영화를 배워본 적 없고, 오직 나만의 방법으로 만든다는 그의 주장처럼 그의 영화는 때로는 모순과 비약, 불균질과 부조화, ‘언캐니(uncanny, 두려운 낯섬)한 불쾌’와 그 이면에 공존하는 ‘낯선 것의 쾌감’이 공존한다. 표현주의적 스타일의 자의식과 인간 사회에 대한 해부학적 묘사, 에로스와 타나토스처럼 공존하는 양면성을 폭로하는데 가장 탁월했던 김기영의 작품은 그래서 한 쇼트 혹은 시퀀스 또는 캐릭터만으로도 영화 전체를 사로잡는 검은 마성이 매혹을 발산한다. “나는 철두철미한 기술자이지 작가 감독이 아니다. 작가 감독은 유현목이다. 난 영화 만드는 것을 사랑했고, 때로는 작품성이 있든 없든 간에 영화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자이다.” 한 인터뷰에서 김기영 감독은 자신을 ‘기술자’라 불렀다. 영화에 관한 애정으로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하고 발명하고, 완성해야만 했던 그러나 끝내 자신의 영화처럼 비극에 삶을 마감해야만 했던 한국 영화계의 독보적 거장의 인상적인 자기소개이자 비애이다. (* 인용된 김기영 감독의 인터뷰는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2007년에 개최한 ‘김기영 특별전’ 카탈로그에 수록된 내용에서 발췌한 것임) >> 반금련 고화질 VOD 보러가기 <<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쟁투를 일관되게 추구하는 개성이 뚜렷한 영화작가,”1) “화면이 수술대와 다름없는, 외과의사가 집도하는 것과 같은 연출,”2) “한국영화의 반역정신,”3)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4) 이는 모두 김기영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논평들이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특이하고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되는 김기영 감독은 대부분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1970년대 영화 불황기에 들어서며 그는 < 파계 > < 이어도 > < 흙 > 등 소설 원작의 문예영화를 몇 편 만든다. 그는 문학을 원작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자기 스타일로 완전히 각색했다. 따라서 그의 문예영화에서 원작에의 충실성 문제를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의 영화는 문학을 저본으로 삼았을 뿐 당시 문예영화의 관습으로 포획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관습을 깨뜨리는 새로운 시도로서 근본적인 예술성 개념에 부합하며 예술영화로서의 문예영화의 외연을 확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파격과 확장이 불가(佛家)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파계>는 < 마음의 고향 >( 윤용규 , 1949) 이후 불교 문예영화의 맥을 잇는 영화이자 본격적인 불교 예술영화로 평가받는 < 만다라 >( 임권택 , 1981) 앞에 놓이는 작품이기도 하다.5) < 파계 >는 1973년 「사상계」에 연재된 고은의 동명 중편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선승 법연당과 그의 제자 침해의 관계, 그리고 침해와 묘혼의 사랑을 플롯의 중심에 둔다. 여기에 서산암의 비구와 소원암의 비구니들을 통해 선승(禪僧)과 율사(律師)의 차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불제자들의 수련방식 등 불가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들이 직조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원작의 내용을 철저하게 김기영 식 주제와 화법으로 끌어들여, 법통을 둘러싼 승(僧)들 간의 정치적 쟁투와 인간의 원초적 본능 문제를 부각시킨다. 이 영화는 선승을 가장하고 선사에 들어간 대학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이는 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객관적 시각으로 서술될 것임을 시사한다. 이 영화의 중심 서사는 열반을 눈앞에 둔 고승 조실스님( 최불암 )이 법통을 물려줄 후계자를 정하는 과정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조실스님의 시자로 자란 침해 수좌( 김병학 )이고, 그의 경쟁자로는 “절이란 권위와 인격과 위대한 것이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경원 수좌( 조재성 )가 있다. 이 두 인물의 대립에는 어릴 때 절에 들어와 동승으로 자란 ‘올깨끼’와 나중에 철이 나서 스스로 불도를 선택한 ‘늦깨끼’, 그리고 선승과 법승 간의 갈등이 들어있다. 조실스님은 인자하고 푸근한 인상과는 달리 냉혹하고 교활하게 후보자들을 시험하고 경쟁시킨다. 그는 화두를 던지는 것은 물론 돌연한 선문답과 죽비 세례로 후보자들을 곤경에 빠뜨린다. 또한 식욕, 색욕의 시험에 들게 하여 목숨을 건 싸움을 부추긴다. 침해가 묘혼( 임예진 )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조실스님이 기획한 시험 중의 하나다. “내 법통이야. 그냥은 못 줘.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나중에는 시험으로 피투성이가 되는 걸 봐야 준다. 싸워서 피투성이가 되는 걸 봐야 줘.”라는 그의 외침은 김기영 표 고승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조실스님이 주도하는 시험들은 한국전쟁의 기억이 플래시백 되며 현실과 접목된다. 스님( 신구 )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전쟁고아들을 구해 목숨을 걸고 피난시켰고, 절에 온 고아들은 배가 고파 가마솥에서 밥을 훔쳐 먹곤 했다. 이와 같이 속세의 극단적 참화인 전쟁과 그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인간의 밑바닥이 정신적이고 고차원적인 불가의 정진 과정과 연계된다. 이 과정에서 진정으로 배고파 보지 않거나 치열하게 색욕의 번뇌에 부딪혀 보지 않은 자가 어떻게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겠느냐는 주제가 표출된다. 그러면서 ‘법통’은 생존의 문제가 되고 그것을 쟁취하는 과정 또한 정치임이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맨 나중에 법통을 이을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르는 것은 ‘도심행자’(정한원)라는 의외의 인물이다. 이 부분은 원작과 완전히 다른 것이기도 하다. 도심은 침해의 친구로 침해와 함께 전쟁고아가 되어 절에 들어온 올깨끼이다. 그는 유난히 식욕이 강해서 진작 공부를 포기하고 침해가 법통을 잇게 하려고 뒷바라지를 한다. “먹지 않으면 승이 된다? 관두겠어? 먹지 않는 건 질색이야.”라는 대사는 본능에 충실한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는 “빈 그릇을 깨라”는 화두를 “내 배고픈 것을 지독히 알아라! 그러면 남의 배고픈 것도 몸 저리게 알리라!”라는 깨달음으로 풀어낸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처절한 배고픔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며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이 겪을 때 진심으로 공감하고 돌아볼 줄 아는 심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절의 양식을 훔쳐다가 병든 중생을 구한 사건은 그의 언행일치를 증명한다. 한편 법통에 매달렸던 침해는 조실스님의 공격적 시험에 맞대응하며 시험을 넘었음에도 법통을 받지 못한다. 조실스님은 침해가 사랑하는 묘혼을 데려다 침해 앞에서 옷을 벗긴다. 원작에서는 그러고 나서 큰스님은 곧바로 죽음에 이른다.6) 영화에서는 묘혼이 옷을 벗자 그녀가 황금 부처로 보이는 숏이 인서트 된다. 그리고 침해는 “여자를 이상하게, 여자를 타락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건 낡은 편견이다. 우리 젊은 사람은 여자를 그냥 건강하게 살려는 한 인간 그대로를 느낀다. 남자와 여잔 같은 거다. 옷을 벗으면 알 수 있을 겁니다”라고 주장한다. 이때 법통을 따기 위해서는 큰스님을 놀라게 하거나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묘혼의 만류를 물리치고 침해는 묘혼과 나란히 알몸이 된다. 이 과감한 행동 앞에서 조실스님은 “넌 젊다. 그리고 천재다.”라고 침해를 인정한다. “그러나 법통은 네 것이 아니야.”라고 결론짓고 쓰러진다. 죽어가는 조실스님을 붙들고 침해와 묘혼이 법통을 내놓으라고 울부짖는 것은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충격적 장면이다. 그러나 그러한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욕망의 표출로 인해 이 영화는 새로운 문예영화이자 파격적인 불교 영화로서의 힘을 얻는다. 동승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 마음의 고향 > 이후에 나온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예술영화로 대접받은 예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파계 > 이전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이광수 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내세운 < 꿈 >( 신상옥 , 1955/1967)이 있다. 그러나 <꿈>은 개봉 당시에 문예영화로 수용되지 않았다. 우선 원작이 이광수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 토대가 된 조신몽 설화가 워낙 잘 알려진 옛이야기였기 때문에 ‘문예’로 인식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불교 관련 영화의 경우 기독교를 다룬 영화보다 예술영화로 인정받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종교의 금기가 일반의 도덕률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또한 기독교는 ‘개화’와 ‘서구 문명’을 상기시키며 자연스레 ‘근대문예’와도 겹쳐진다. 게다가 한국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반공주의와 결합해왔기 때문에 1960~70년대 국가가 장려했던 ‘반공’과 ‘문예’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유용한 제재이기도 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를 지니는 데다 승려에게 요구되는 계율이 엄격하고 금기가 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서사는―갈등을 만들어야 하는 이야기의 본질상― 금기의 위반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화는 시각적 매혹을 생명으로 삼는 매체이다. 상상에서만 가능했던 금기의 파괴가 눈앞에서 재현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렬한 시각적 매혹일 것이다. 그러니 불가를 배경으로 영화는 자연히 ‘파계’를 향하게 된다. < 마음의 고향 >부터 < 꿈 >과 < 파계 >는 물론, < 만다라 > < 우담바라 >( 김양득 , 1989) < 아제아제 바라아제 >( 임권택 , 1989)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정지영 , 1991)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율의 위반을 보여주는 것은 이를 말해준다. 그러한 특질 때문에 불가 배경 영화에 대해서는 1970년대까지 외설적인 영화라는 기대 내지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었다. <파계>의 경우에도 지방 흥행업자들이 제목만 보고 “중들이 나오는 외설적인 영화”라 생각하여 제작비를 투자했다는 증언이 있기도 하다.7) 또한 그러한 측면에 대해서는 행정적 검열 이외에도 사회적 검열이 작동하게 된다. 실제로 1967년 <꿈>이 개봉될 때 조계종 총무원장까지 나서서 상영을 반대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검열은 비구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서는 한층 더하여 외설 논란이 불거지고 불교계의 반발도 거세지곤 했다. 이미 <만다라>가 나온 지 3년 후인 1984년에 임권택 감독이 연출하고 김지미 가 주연을 맡았던 < 비구니 >가 불교계의 반발에 부딪혀 제작이 포기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불교 영화를 둘러싼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 파계 >에 대한 불교계의 인정 및 정부의 보상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우선 ‘마성(魔性)’의 작가주의로 성 문제를 다루어 흥행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작품성을 성취해온 김기영 감독에 대한 영화계의 기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김기영 감독이 동아수출공사로부터 국내 최고의 개런티를 받고 <파계>를 연출했다는 것8)은 그것을 입증한다. 한편 불교계에서는 이 영화의 제작을 마뜩해하지 않았으나 ‘파계’라는 제목과 달리 ‘성불(成佛)’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여기에는 당시 한국영화를 둘러싼 분위기도 한몫을 했다. 한국영화의 불황 속에서 1974년 4월에 개봉한 < 별들의 고향 >이 크게 성공하자 “참신한 방화 만들면 관객들은 몰려든다”9)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편 1960년대 말 이후 ‘민족문화의 창달’이라는 아젠다 아래 정책적으로 전근대 전통문화가 소환되었다. 이때 무속이나 민속 등 근대 이후 비판받고 폄훼되어왔던 전근대 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는데 이 와중에 불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대해서도 이전과는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파계>가 외설 논란을 잠재우며 문공부 우수영화로 선정되고 여러 해외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한 것은 이와 같이 복합적인 상황의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불가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성장담 내지 회고담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작을 김기영 식의 독창적인 해석을 통해 ‘본능과 정치’라는 현실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으로 비화시킨 영화 자체에 있었다.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불가와 승려의 생활에 대한 사실적 재현과 과감한 장면 구성, 그리고 전두엽을 자극하는 기발한 대사와 지금 봐도 충격적인 서사 전개는 이 영화의 파격을 구성하며 ‘외설’이니 ‘종교 모독’이니 하던 당시의 법적·사회적 논란을 넘어서는 에너지가 된다. 이로써 < 파계 >는 금기의 위반을 과감하게 재현하는 것은 물론 현실 문제와 종교적 질문을 접목시키면서도 예술영화로 인정받은 최초의 불교 영화가 된다. 이는 < 만다라 >에 앞서는 것으로, 1970년대에 이루어진 전위적인 영화사적 사건이라 할 만하다. 1) 이영일, 「한국영화전사」, 도서출판 소도, 2004, 402~403쪽. 2) 김종원, 정중헌, 「우리 영화 100년」, 현암사, 2000, 290~291쪽. 3) 김수남, 「한국영화감독론 2」, 지식산업사, 2003, 182쪽. 4) 이효인 편, 「한국의 영화감독 13인」, 열린책들, 1994, 360쪽 5) 나중에 <만다라>의 촬영을 담당하는 정일성 감독이 이 영화의 촬영을 맡았으며, 그는 이 영화로 영평상 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6) 소설에서는 큰스님이 죽기 전에 묘혼을 벗겨 보신 것을 두고 노승의 평생소원을 푼 것( “……하긴, 여섯 살부터 입산해서 주욱 중노릇만 했으니, 평생 소원이셨던가 보지요.”)이라는 추측과 아랫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 놈아! 너는 몰라! 침해란 놈 가르치기 위해서야! 일체 중생 가르친 게야!”)이라는 주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결에 묘혼이 달아났는지 침해는 몰랐다. 침해는 여자보다 노승의 열반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 탄운 곡간의 가느다란 연기 끝이 더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침해는 어디 갔는지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결말이다(고은 전집 제31권 「밤주막」(1977) 중 「파계」, 527~528쪽 참조). 7) <김기영 전작전: <파계> 이화시 GV VOD>, 2008.06.23. http://flash.koreafilm.or.kr/kofa2/play_trailer.html?file=trailer/MK004966_P03.mp4 8) 「<破戒>, 촬영 끝내 곧 開封」, 『매일경제』, 1974.6.28., 8면. 9) 「참신한 邦? 만들면 觀客들은 몰려든다」, 『동아일보』, 1974.6.7., 8면.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 < 하녀 >(1960)나 < 이어도 >(1977)만큼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영화광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된 영화다. 특히 김기영 감독의 특별전, 회고전 등에서 김기영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이나 엉뚱함, 직설적이고 반복적인 문어체 대사들(특히 ‘의지’라는 단어)로 주목을 받았다. 필자 역시 1990년대 후반, 이 영화를 처음 필름으로 접한 후 묘한 신비감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훗날 모 영화 매거진에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특이한 전대미문의 섹스 장면을 논하면서,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꼽은 적이 있다. 주인공 영걸( 김정철 )이 다시 살아난 신라 시대 여인( 이화시 )과 정사를 벌이는 장면에서 일종의 페티시처럼 ‘뻥튀기’가 UFO처럼 날아다니는 상황을 묘사했다. 2000년대 김기영 영화의 재발견이 한참 유행일 때, 일부 사람들이 컬트라는 단어를 써서 이 영화의 정신분열증과 난해함을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영처럼 대중과의 접점이 있는 흥행 감독에게 컬트라는 단어를 쓰는 것에는 늘 반감이 있었다. 영화를 좀 본 사람만 아는 감독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지적 허영으로 보였던 탓이다. 오늘날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를 다시 봐도, 독특한 스토리인 것은 분명하다. 이 스릴러는 확실히 최근 대중 영화에선 찾아볼 수 없는 배짱이 있다. 타협을 모른다. 우연히 만난 여인이 음료수(환타)에 독을 타서 영걸과 동반 자살을 시도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영걸은 그녀의 나비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서 계속 기괴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한마디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셈이다. 의지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노인(책 외판원)과 다투다가 죽이거나 동굴에서 발견한 여성 해골이 다시 살아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또 이 박사( 남궁원 )의 조수로 들어가 일하면서 끊임없이 성과 죽음에 관련된 유혹을 받는다. 이렇게 영걸에게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의 불균질성으로 보였다. 즉 로빈 우드가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에서 영화를 만든 사람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사회, 문화의 영향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받은 결과 불균질한 텍스트가 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시대의 현상을 독특하게 반영한 불균질한 영화로 다가왔다. 더불어 김기영 감독이 스스로 리비도를 통제하지 않은 취향의 영화가 분명했다. 영걸에게 신라 시대 여인이 느닷없이 동성동본을 논하거나 암에 걸린 경미( 김자옥 )가 안락사를 희망하거나 경미가 영걸의 잘린 머리(시체)에 키스를 하는 장면 등은 영화 자체적인 논리나 필요성보다는 다분히 감독의 결연한 의지나 영화에 현실(현대성의 흔적)을 새기고 싶은 욕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다시 생각난 것은, 다소 엉뚱하지만 < 내부자들 >(2015)에서 안상구( 이병헌 )가 고독하면서 강렬하게 뜨거운 라면을 먹는 장면 때문이었다. 이병헌은 라면을 후루룩 먹으면서 엄청난 입김으로 최고의 리얼리티를 생산해냈다. 그처럼 영걸 역시 라면 신세였다. "하루 6번 먹어도 배고프다. 성가셔서 얼른 죽고 싶다"고 꽤 투정을 부릴 정도였으니까. 그의 가난한 집에는 매일 라면 봉지만 쌓여갔다. 젊은 대학생 영걸은 허름한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에게는 가족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1970년대 근대화/산업화의 시기, 이른바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의 몰락을 반영하듯 그의 집은 부재의 공간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1960년대 신상옥 영화에 등장했던 화목하고 이상적인 가족은 더 이상 없다. 이 공간에 괴물 같은 외판원과 해골 같은 유령(비인간적 존재)이 잠시 머물다 갈 뿐이다. 흔히 김기영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중산층 가정과는 거리가 먼 하층민의 삶을 보여준다. 반면 이 박사의 집은 < 화녀 >(1971), < 육식동물 >(1984) 등처럼 다소 과장된 분위기로 중산층의 화려한 미장센이 즐비하다. 총천연색이 그의 집을 수놓고 있다. 이 집에서 생산되는 빛은 분명 영걸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영걸은 이 박사의 집에서 퇴행하듯 엄청난 식욕만 자랑하고 있다(라면 대신 서구식 식사에 집착한다). 이 박사의 부탁으로 경미를 성적으로 만족시켜야 할 과제를 부여받지만, 정작 아무것도 못한다. 중산층 가정 안에서 영걸은 사실상 거세된 남자에 가깝다.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으레 전복적인 여자 캐릭터들에 초점이 맞춰진다. 남성 중심 사회에 균열과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들이다. 그런 맥락에서 <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에 등장하는 여성들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영걸 캐릭터는 남성의 시선으로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든다.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들’에게 죽음(동반 자살)의 대상이 되는 그는 “번번이 왜 내가 목표가 되지?”라고 반문한다. 그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다. 그는 참 억울한 남자다. 영걸은 지속적으로 현실과 판타지(상상)를 오간다. 이 영화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그의 망상의 산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다. 그럼에도 그가 처한 현실적 고통은 오늘의 현실과 전혀 다르지 않다. 1978년 영화지만 매번 볼 때마다, 더 리얼하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판타지나 스릴러 구조가 더 눈에 들어오지만, 몇 번 본 후에는 형식보다는 영화의 현실(시대상)이 가슴을 넌지시 파고든다. 그렇다고 김기영 감독이 미래를 예측했다거나 혹은 시대를 앞섰다고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비주류(소외된) 남성을 억압하는 정치경제적 현실이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듯 퇴행하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