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스펜더블 2
- 감독
- 사이먼 웨스트
- 제작년도
- 2012
- 출연
- 실베스터 스탤론, 제이슨 스타뎀,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왈제네거, 이연걸, 장 끌로드 반담, 척 노리스
존 웨인이 돌아온다. 이번엔 황야를 떠돌던 서부사나이가 아니라 모종의 사연을 지닌 전직 복서이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링의 강자로 군림하다 고향인 아일랜드의 이니스프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을 보내려 한다. 이 공동체는 그를 받아들일까.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라면 공동체는 치명적인 위협 아래 놓여있고, 이 유능하고도 폭력적인 사내는 그 위협을 제거한 뒤 어쩔 수 없이 떠날 것이다. 그 자신도 공동체의 문명에 순응할 수 없는 잠재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니스프리라는 가상의 공동체에는 제거해야 할 위협이 없다. 사내는 “이니스프리는 언제나 내 마음속의 천국이었다.”고 말하는데 이곳은 정말 천국과도 같다. 테크니컬러로 촬영된 초록의 자연은 숨 막힐 듯 아름답고 마을은 한가로움과 선의로 가득하며 악인은 찾아볼 수 없다. 무대가 이처럼 샹그리라를 닮은 또 다른 존 포드 영화는 < 도노반의 산호초 >(1963) 외엔 없다. ‘말 없는 사나이’에게 주어진 유일한 숙제는 사랑하는 여인과의 완전한 결합이다. 둘은 결혼했지만 여인의 오빠는 지참금 지불을 거절하고, 여인은 지참금을 찾아오지 않는 한 동침할 수 없다고 버틴다. 하지만 결국 결합은 완수되고 정착은 성공한다. ‘아일랜드의 연풍’이라는 제목으로 더 많이 알려진 < 말 없는 사나이 >는 포드의 드문 낙천적 로맨스영화, 어쩌면 유일한 섹스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화사하고 명랑한 외피가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이 영화의 완성은 존 포드의 오랜 숙원이었다. 1933년 「Saturday Evening Post」에 실린 모리스 월시(Maurice Walsh)의 단편 ‘초록의 쇄도 The Green Rushes’(초록은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색이다)를 읽은 포드는 이를 영화화하기로 마음먹고 1936년 원작 판권을 사들였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의 실현에는 15년이 더 걸렸다.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믿는 제작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1944년, 포드는 < 역마차 >(1939) 이래 친구가 된 존 웨인,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1941)에서 인연을 맺은 모린 오하라와 이 영화를 함께 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하지만 리퍼블릭 픽처스의 프로듀서 허버트 예이츠는 “이런 멍청한 아일랜드 이야기로는 한 푼의 돈도 벌 수 없다”고 투자를 거절했다. 1940년대 후반에는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포드가 자신의 제작사 아르고시(Argosy)에서 찍은 < 도망자 >(1947)의 흥행실패로 빚더미에 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포드는 웨인, 오하라와 서부극 한 편을 더 찍는다는 조건으로 리퍼블릭으로부터 어렵사리 < 말 없는 사나이 >의 제작 결정을 얻어냈다. 그 서부극이 바로 < 리오 그란데 >(1950)였다. “나는 이 무렵(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도망자>로 생긴 빚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 없는 사나이>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일했다. 이 영화로도 돈을 잃겠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포드는 회고했다. 전후의 포드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자신이 찍고 싶은 사적인 영화의 제작비 마련을 위해 서부극을 찍었고, 만들기만 하면 일정한 수입이 보장된 대중적 장르인 서부극(아마도 오늘날이라면 호러가 이러한 장르로 취급받고 있을 것이다)은 감독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1950년 10월 22일, 미국 감독협회에서 행한 포드의 유명한 연설의 첫마디 “내 이름은 존 포드요. 서부극을 만듭니다.”는 서부극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나 애착의 표현이라기보다, 자신이 보잘것없는 영화를 만드는 하찮은 장인일 뿐이라는 자기비하의 수사였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걸작들이며 이미 이 연재에서 다룬 바 있는 < 도망자 >, < 웨건 마스터 >(1950), < 태양은 밝게 빛난다 >(1953) 등이 태어난다. < 말 없는 사나이 > 역시 포드가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의 영화에서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가장 사적인 영화 가운데 한 편이며, 그의 영화 세계가 온전히 드러난 포드적인, 너무나 포드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완성된 뒤에도 리퍼블릭 픽처스의 수장인 허버트 예이츠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러시 필름을 본 예이츠는 “온통 초록이구만”이라며 불평했다. 더구나 129분이라는 상영시간이 너무 길다는 이유로 120분 이하로 줄이라는 지시를 내렸다. 포드는 스튜디오 간부를 위한 시사회에서 129분의 < 말 없는 사나이 >를 상영하며, 정확히 120분이 지난 시점에 상영을 중단했다. 그리고 말했다. “자, 지금까지 장면 중에서 뺄 곳이 있으면 말해주시오.” 간부들은 말이 없었고 결국 원본 그대로 극장 상영이 결정되었다. 이 영화는 포드의 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기록했고, 포드는 이 영화로 < 밀고자 >(1935) < 분노의 포도 >(1940) <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1941)에 이어 네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1952년의 아카데미 영화제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된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 문제로 잠시 우회해보자. 감독상은 < 말 없는 사나이 >의 존 포드가 받았지만 작품상은 세실 드밀의 < 지상 최대의 쇼 The Greatest Show on Earth >에게, 남우주연상은 프레드 진네만의 서부극 < 하이 눈 High Noon >의 개리 쿠퍼에게 주어졌다. 이 해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하이 눈>이었다. 비평 진영을 대표하는 뉴욕비평가협회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하이 눈>에 바쳤다. 양쪽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것은 찰리 채플린의 가슴 저린 애가 < 라임라이트 >였다. 앤드루 새리스는 저서 「John Ford Movie Mystery」(1975)에서 “이 해의 포드는, 채플린만큼 무시당하진 않았지만, 지나간 시절의 진기한 골동품으로 취급당했다.”고 썼다. 눈길을 끄는 건, 위의 네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당시에 ‘공산주의자 척결’을 주창한 매카시즘과 연관된 날카롭고 복잡한 정치적 갈등 관계에 놓여있었다는 점이다. 갈등이라기보다 정치적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세실 드밀은 당시 할리우드에서 매카시즘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앞서 언급한 1950년의 감독협회 모임에서 그는 당시 감독협회 회장이던 조셉 맨케비츠의 모호한 태도를 비난하는 긴 연설 끝에 ‘비미국적 un-American’ 영화인으로 빌리 와일더, 윌리엄 와일러와 함께 프레드 진네만을 지목했다. 자신을 서부극 감독으로 소개한 포드의 돌발 연설은 드밀의 발언 끝에 나온 것이다. 포드의 연설은 이렇게 이어졌다고 한다. “나는 드밀의 말에 동의하지 않소. 나는 그를 존경하오. 하지만 그가 싫소... 나는 맨케비츠도 드밀도 열렬한 공화당 지지자로 알고 있소. 지금 여기서 공산주의를 두고 우리끼리 싸우고 있는데, 내겐 그저 웃기는 일이오.” 그리고 2년 뒤 앞서 언급한 영화 네 편이 개봉된다. 존 웨인이 “내가 본 영화 중에 가장 비미국적인 영화”라고 비판한 < 하이 눈 >의 각본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 칼 포어먼(Carl Foreman)이 썼고 그는 1951년에 결국 영국으로 이주했다.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던 찰리 채플린이 1952년 10월, < 라임라이트 > 런던 개봉을 위해 퀸엘리자베스 호를 타고 가던 도중에 미국 당국으로부터 비자를 말소당해 사실상의 추방명령을 받은 사건은 유명하다. 한편 포드의 절친한 영화 동료이며 < 말 없는 사나이 >에서도 함께 작업한 존 웨인과 워드 본드는 블랙리스트를 적극 지지하는 극우파였다. 워드 본드는 매카시를 위한 파티를 개최한 적이 있고, 존 웨인은 극우파 상원의원 로버트 태프트의 지지자였으며 매카시즘 시대의 블랙리스트를 다룬 최근 영화 < 트럼보 >(2015)에서 묘사되듯 갖가지 선동활동에 앞장섰다. 극우파 배우들의 친구이자 후견인이면서도 드밀의 극우적 선동에 반기를 든 포드의 정치적 입장은 기묘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 트루만의 지지자였고 2차 대전 참전의 공훈을 인정받은 명예 해군 사령관이었다. 하지만 FBI는 포드를 ‘잠재적 공산주의자’로 분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업노동자를 위한 존 스타인벡 위원회’ 같은 진보적 조직의 기부자였으며, 스페인 내전 당시 좌파를 후원했고, 사촌이 가입한 IRA에도 돈을 보냈으며 무엇보다 존 스타인벡의 ‘사회주의적 소설’ 「분노의 포도」를 영화로 만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작품성을 논외로 한다면, 1952년의 아카데미는 절충적 선택을, 비평 진영은 진보적 선택을 한 셈이다. 이 연재에서 몇 차례 언급했듯이 존 포드는 자신의 정치적 미학적 견해를 거의 밝히지 않는 과묵한 남자였다.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그는 20년 가까이 마음에 품어온 < 말 없는 사나이 >를 드디어 완성했다. 이 영화는 스튜디오는 물론 포드 자신의 예상과도 다르게 관객의 환대를 받았고 그해 최고 흥행작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간주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평가를 주저했다. 두 가지 쟁점이 <말 없는 사나이>에 대한 유보적 혹은 부정적 평가와 연관된다. 하나는 이 영화가 아일랜드의 마을을 이상화한 반면 진지한 탐구는 결여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당대 주류언론의 리뷰어 뿐만 아니라 걸출한 비평가 마니 파버(Manny Farber)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에게 < 말 없는 사나이 >는 “싸구려 소설에서 유래한 종잇장처럼 얇은 캐릭터들”의 연애담이며 “감상 과잉의 풍경과 설교로 가득한 < 분노의 포도 >보다 나을 바 없는 구식 상업영화”로 비쳤다. 그의 비판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럴듯해 보이는 모든 시시한 수작들(hokums)이 아일랜드인을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사람들로 보이게 만든다... 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인들에 관한 이 현혹적이고 인상주의적인 탐구는 교란적이다.”(‘Parade Floats’, 「Farber on Film」) 이런 견해에 대한 최근의 반론 가운데 하나는 에세이스트 벤 슈워츠(Ben Schwartz)가 썼다. “(보안관 개리 쿠퍼가 배지를 던지고 마을을 떠나는) < 하이 눈 >이 끝나는 곳에서 < 말 없는 사나이 >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블랙리스트 시대에 만들어진 가장 전복적인 영화 가운데 하나다. 미국을 견딜 수 없어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려는 남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존 웨인이 연기한 주인공 션 쏜튼처럼 포드 역시 폭력, 물질적 성공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예기치 않은 결과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The Subversive St. Patrick’s Day Classic’ 「New Republic」 2013. 3. 16.) 다른 하나는 존 웨인이 모린 오하라의 엉덩이를 걷어찬 뒤 강제로 끌고 오는, 악명 높은 장면과 연관된다. 태그 갤러거가 “수백 년 동안 연극 무대의 관습 가운데 하나였던 엉덩이 차기 때문에 그토록 오래 욕먹은 감독이 있을까”라고 말할 정도로 이 장면은 영화에서 여성혐오 표현의 중요한 사례로 꼽혔으며, 지금도 IMDb에는 ‘misogyny’가 이 영화의 첫 연관검색어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 말 없는 사나이 >는 반여성적 영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영화비평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숭배에서 강간까지」에서 몰리 해스켈은 정반대의 견해를 제시한다. “존 포드의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 가운데 하나인 < 말 없는 사나이 >의 분명한 주제”는 “결혼을 통해 이름과 함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여성의 진짜 두려움”이다. 모린 오하라가 연기한 여주인공 메리 케이트가 가구와 지참금에 집착하는 이유는 “가구가 처녀 시절의 이름처럼 그녀의 인격의 일부이며, 돈은 그녀가 남편에게 완전히 의지해서 그에게 흡수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지참금을 얻어냈을 때 메리는 돈을 난로에 던진다. 남편이 돈의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해스켈에게 <말 없는 사나이>는 존 포드의 가장 놀라운 페미니스트 영화이다. 여기선 두 쟁점에 대해 더 거론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이 엇갈리는 견해들이야말로 그의 소속 없는 정치성과 마찬가지로 존 포드의 영화가 지닌 정박될 수 없는 모호성과 복합성의 징표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말 없는 사나이 >를 볼 때마다 나는 무장해제당하는 느낌에 빠진다. 춥고 주렸던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안식의 항구에 이른 느낌. 더 이상 닻을 올리고 싶지 않은 이 무력감에 가까운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비판적 평자들이 말하는 ‘당의정처럼’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선의와 유머의 사람들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영화의 달콤함은 쓴맛을 감추는 당의가 아니다. 존 포드의 세계를 유랑해온 우리에게 그 달콤함은 이 세계의 심장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는 모종의 성취감 혹은 안도감에 가까운 것 같다. 아일랜드의 한적한 시골 기차역. 한 사내가 기차에서 내린다. 말끔한 신사복을 입은 존 웨인. 군복 차림도 아니고 탄띠도 매지 않은 웨인이 도착하는 모습을 이전의 포드 영화(< 역마차 > < 데이 워 익스펜더블 > < 아파치 요새 > < 황색 리본의 여인 > < 리오 그란데 >)에선 본 적이 없다. 더구나 그는 지금 환하게 웃고 있다.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집에 돌아온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저 거구의 낯선 사내가 왜 이곳에 온 걸까. 낚싯대도 카메라도 없이. 이들에겐 과도한 호기심 외엔 어떤 적의도 경계심도 없다. 존 웨인은 드디어 싸울 필요도 다시 떠날 필요가 없는 곳에 도착한 것이다. 첫 시퀀스만으로 겨룬다면 < 말 없는 사나이 >는 포드 영화 중에서 단연 최고다. 이니스프리로 가려는 낯선 사내 주위로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안내자를 자처하며 한바탕 수다를 벌인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 하고 싶은 말을 제멋대로 떠들고 웨인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잠시 목적지를 잊어도 좋은 세계, 얼마간의 지체가 아무런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 세계, 오히려 그 짧은 지체의 시간이야말로 평온과 웃음이 가득한 천국과도 같은 세계, 5년 뒤 < 라이징 오브 더 문 >(1957)의 두 번째 에피소드 ‘1분간 정차’에서 온전히 펼쳐질 그 소란스럽고도 사랑스런 세계. 황야에서 맹수처럼 싸워 승리하고도 행복할 수 없었던 사내가 그런 세계에 비로소 도착한 것이다. 이 세계는 어떤 곳인가. 그에게 주어진 이름은 션 쏜튼이며, 어릴 때 이 곳을 떠나 미국에서 살다가(나중에 밝혀지지만 권투 챔피언이었던 그는 시합에서 한 선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 때문에 링을 그리고 미국을 떠났다) 몇 십 년 만에 고향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왔다는 배경 서사가 설명된다. 하지만 존 포드 영화를 오래 만나온 우리에게 존 웨인은 이 개별 서사에 갇힌 인물이 아니다. 상호텍스트적이거나 초텍스트적 존재로서 그는 미국을 떠나 아일랜드로 돌아온 것이라기보다, 서부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서부를 고유명사가 아니라 서부극이 창안한 장소로서의 보통명사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미국관객이 아닌 우리가 별다른 노력 없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특권이 우리를 미국관객보다 존 포드의 세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그러니 마니 파버의 비판론과 벤 슈워츠의 옹호론을 잊어도 좋을 것이다. 슈워츠의 한 문장은 고쳐 쓸 수 있겠다. < 하이 눈 >이 아니라 서부극이 끝나는 곳에서 < 말 없는 사나이 >는 시작한다. 말하자면 <말 없는 사나이>는 포스트 서부극이다. 서부극에는 독이 있다. 아무리 서부극을 사랑한다 해도 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서부극은 ‘정당한’ 폭력과 제거의 서사다. 서부는 황야의 규칙 즉 더 강하고 유능한 폭력이 지배하는 곳이다. 공동체의 위협은 서부사나이의 정당한 폭력(주로 사적인)으로 제거된다. 어떤 예술 분야도 영화만큼 제거의 폭력을 애용하지는 않으며, 그 발원지에 서부극이 있다. 불가능한 공존, 불가피한 폭력과 제거라는 장르적 관습은 서부극의 율법이며 포드가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에 가장 가까운 영화이며,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서부극”이라고 말한 < 웨건 마스터 >(1950) 조차 넘어서지 않은 계율이다. 서부극의 독이 제거의 폭력이라는 장르적 관습 자체에 있는 건 아니다. 서부사나이는 폭력으로 악인을 제거한 뒤 공동체에 정착하지 않고 떠난다. 사적 폭력의 행사자인 자신 또한 공동체 문명의 위협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축복은 그의 것이 아니며, 용감한 그에게 안식은 없다. 그는 자신의 총알이 악인을 꿰뚫은 다음 결국 자신에 이를 것임을 알고도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이 영웅적 결단의 비극적 정념이 서부극 관객을 사로잡는다. 서부극의 폭력은 대개 정의의 실현이라는 에토스 이면에 감춰진 자기 비극화의 파토스에 실려 있고, 이제 폭력은 설득이 아닌 정동(情動)의 문제가 된다. 정의로운 제거의 폭력이라는 장르의 계율이 위험해지는 건, 자기도취적 정념이 폭력의 동력원이 되는 이 지점에서다. 션 쏜튼이 떠나온 것은 바로 그 위험한 계율의 장소인 서부다. 그가 성난 얼굴로 서부와 전장을 누비던 존 웨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극 중의 쏜튼이 미국에서 활동하던 링은 서부를 지배하는 황야의 규칙을 양식화한 공간이다. 20세기 초까지도 권투는 상대방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는 야만적 스포츠였다. 더구나 링에서 쏜튼은 정당한 폭력으로 상대방을 죽였다. 그는 ‘정당한 살인자’라는 딜레마를 서부사나이와 공유한다. 그의 이력은 서부사나이의 이력의 알레고리다. 그러니 존 웨인의 션 쏜튼을 어떻게 황야를 떠나온 서부사나이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말 없는 사나이 >의 장소는 서부와 완전히 다른 곳인가. 쏜튼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기묘하게도 여기서 말 경주와 결투를 요구받는다. 서부극의 가장 중요한 관습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관습이 실행되는 맥락은 완전히 다르다. 말 경주는 서부극에서의 목숨이 걸린 추격과 도피와 무관한 말 그대로 이 마을의 전통이 된 시합이고 축제이며, 쏜튼이 끝내 피하려 했던 메리의 오빠와의 결투는 제거가 아닐 합일에 이르는 경로다. 말하자면 <말 없는 사나이>는 서부극의 핵심적 관습을 끌어오면서 서부극과는 완전히 다른 지점, 제거가 아닌 공존에 이른다. 요컨대, 존 포드는 이니스프리라는 가상공간에서 서부극의 관습을 반복하며 그것을 공존의 제의로 역전시킴으로써 서부극의 독을 씻어낸다. 말 경주 들판과 사람들 결투 두 사내가 주먹다짐을 벌이는 결투 장면보다 그 제의성을 더 잘 보여줄 수는 없다. 나른한 평화만 가득하던 마을에 두 사내의 싸움이 예고되자, 마을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삽시간에 모여든다. 한가롭던 초록 들판을 싸움 구경꾼들의 행렬이 가득 메우고, 성직자들을 포함해 마을 사람 모두가 내기에 뛰어든다. 모두 이 폭력의 대결을 고대했던 것이다. 술집 주인이 말한다. “오늘이 이니스프리 최고의 날이군.” 한없이 이어질 듯한 결투가 끝난 뒤 두 사내는 어깨동무를 하고 메리에게 향한다. 폭력을 피할 수 없다면 혹은 그것에의 동경을 멈출 수 없다면, 유일한 출구는 폭력을 제의화하는 것이다. 모두가 폭력에 환호하는 데 어떤 제거도 발생하지 않는 제의, ‘정당한’ 에토스의 위장 없는 날 것 그대로의 파토스로서의 폭력, 그래서 도덕적이라기보다 차라리 윤리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폭력이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제의. 이를 서부극의 살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쏜튼이 도착한 장소를 해독된 서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니스프리에는 더 많은 것이 있다. 한 장면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쏜튼은 어렵사리 구입한 옛집에 도착한다. 오래 비워져 있었을 그 집에 누군가 벽난로를 피워놓았고 청소 중이었는지 쓰레기를 모아두었다. 전 장면에서 우리는 쏜튼과 메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을 목격했으므로, 누가 그랬는지 쏜튼도 알고 이 영화를 보는 우리도 알 수 있다. 저녁의 잔광이 스며드는 창문을 바람이 세차게 흔들고 실내엔 약간의 긴장이 흐른다. 이때 이 영화에서 가장 괴이하고도 아름다운 장면이 이어진다. 쏜튼이 돌을 집어 들더니 괴성을 지르며 창문을 향해 던지고 유리창이 깨진다. 숨어있던 메리는 놀라 일어나더니 거울을 보고 비명을 지른 뒤 집 밖으로 달려나가려 한다. 쏜튼은 그녀를 잡아챈 뒤 격렬한 바람을 맞으며 입을 맞추고, 메리는 쏜튼의 뺨을 때리려 한다. 이 시퀀스는 논리적 연관이 없는 행위와 쇼트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다. 왜 쏜튼은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 했던 옛집의 창문을 깨트리며 괴성을 지르는가. 숨어있는 메리를 불러내려 했다 해도 그는 왜 이런 난폭한 방법을 택하는가. 괴성과 유리창 깨지는 소리를 들었을 메리는 왜 거울을 본 다음에야 비명을 지르는가. 매우 로맨틱한 조우가 될 수도 있을 장면에서 바람은 왜 이토록 거칠게 두 남녀에게 몰아치는가. 하지만 이 장면을 다시 보면 이런 질문이 무의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포드는 표면을 매끈하게 가다듬어 하나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는 감독이 아니다. 바람, 예기치 않은 괴성과 유리창 파열, 거울과 지체된 비명, 다시 바람, 흩날리는 스카프와 옷자락의 시청각적 이미지들의 숨 가쁜 연쇄 후에 격렬한 키스가 이뤄진다. 이 키스 장면의 감흥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 한 장면의 감흥은 그 장면의 미장센과 행동이 이전 쇼트들이 누적한 감정과 만나 표현된다. 온갖 이질적인 시청각적 이미지들의 연쇄야말로 보통의 경우라면 로맨틱한 입맞춤에 그쳤을 이 장면에, 태그 갤러거가 경탄한 “절정, 사랑, 이해, 공포, 고통, 모욕, 분노, 두려움, 수치와 같은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낸다. < 모감보 >(1953)의 클락 게이블과 그레이스 켈리의 키스 장면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감정의 만화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것이 포드의 디테일이다. 옛집에서의 키스 시퀀스와 대구를 이루는 장면이 한참 뒤에 등장한다. 결혼은 했으나 지참금 문제로 아내에게 동침을 거부당하는 사내 쏜튼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의 곁으로 메리가 조용히 다가온다. 메리에게 쏜튼은 말없이 작은 들꽃을 따 건네준다. 짧은 정적이 흐른다. 구애하고 키스하고 청혼하고 결혼했으나 아직 온전히 아내가 되지 않은 여인. 더 이상 소용없을 장미 꽃다발 대신 건네진 이 가녀린 들꽃에는 소란스런 격정과 흥분 이후의 슬픔, 우울, 간절함, 예의, 조심스러움이 사랑의 마음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답고 가슴 저린 장면이다. 포드의 영화를 이질적인 것들의 난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가 말 그대로의 축제 장면에서뿐만 아니라 이런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감정의 종잡을 수 없는 소란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해독된 서부인 이니스프리는 폭력적 제거의 행동 이미지를 대신하는, 긴 스펙트럼의 감정의 빛을 난반사하는 포드적 디테일의 카니발이기도 하다.(계속)
주성철(이하 ‘주’) 첫 질문은 배우 원진 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영화에서 원진은 청량리역 지하보도에서 과격한 액션도 선보이고, 그동안 잘 관리한 상체도 드러내고, 벽 찍고 돌고. 예전에 예광했던 원진의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는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라는 느낌이 왔다. < 용의자 >는 이 배우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만족시킨 것 같다. 원신연 (이하 ‘원’) 사실 공유 는 워낙 팬이 많고, 김성균 이 최근 <응답하라 1994>로 인기가 많아져 관객들이 이 둘의 격투 액션에 관심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용의자> 개봉 후 무대인 사를 다니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니 지동철(공유)과 SA1( 원진 )의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 솔직히 액션의 퀄리티로 만 보면 아쉬운 점이 많았다. 촬영 당시 추운 겨울이었고, 청량리역에서 촬영할 때에는 장소 섭외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다보니 일반인 통제도 어려웠다. 3분마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서 이들이 지나갈 때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섭외한 엑스트라보다 일반인이 더 많이 나왔다.(웃음) 이런 상황이다보니 액션을 구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액션을 액션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원진 이 맡았던 SA1 캐릭터의 변화에 대해 많은 반응을 하더라. 과거에는 아크로바틱 액션이 많았는데 현대물에서 소위 ‘고전적인’ 액션이 등장하니 그게 관객들 인상에 깊이 남은 것 같다. 더군다나 와이셔츠가 찢어지면서 몸이 드러나는데, 얼굴은 50대 중반이지만 몸은 공유 와 비슷하니(웃음) 그게 강렬했던 것 같다. 주 < 용의자 >의 액션 신만 놓고 봐도 이 배역을 탐낼 만한 다른 배우도 많았을 것 같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과거 액션 스타를 기용한 것은 감독의 이 영화에 대한 의지 혹은 열정이 보이는 부분이다. 원진 을 캐스팅한 것 하나만으로도 감독이 이 영화를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원 사실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원진 은 나에게 영웅이다. 이분은 여전히 액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분이다. 나는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계속 같이 작업하고 싶다. 그리고 감독으로서 액션배우라서 액션으로만 소비되는게 아니라 배우로서 같이 영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더라. 상업영화의 시스템에서 보면 사실 ‘이 사람이 과연 연기를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이 정도 비중의 배역이라면 기존의 배우를 캐스팅하는게 좋지 않을까?’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감독 입장에서 관객으로부터 잊힌 배우를 기용하는 것에 대한 논리를 만들어 설득해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과거 우리에게 꿈을 심어주었던 액션 주역들이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재미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게 나와 같은 감독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유창국 과 원진 은 액션의 대가였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분들에게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같은 드라마를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더 도전하고 싶다. 무술감독 원신연 vs 영화감독 원신연 주 감독 이전에 액션 배우, 무술감독의 경력이 있다. 이런 경력으로 미루어 이전에 작업한 < 구타유발자들 >이나 < 세븐데이즈 >보다 앞서 이 영화가 감독의 데뷔작으로 하고 싶었던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원 반대다. 사실 < 용의자 >를 연출하는 것도 아직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1990년 중반에 무술감독을 시작해 < 테러리스트 > 등 몇 편의 영화에서 무술 지도와 대역을 했다. 사실 먹고살기 위해서도 했지만 액션을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 조폭마누라 >( 조진규 , 2001)의 무술감독 제의가 들어왔다. 당시 단편 < 세탁기 >(2001)를 준비할 때였다. <조폭마누라>에 참여하면 경제적으로 분명 여유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빚을 내어 단편을 제작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당시 연출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액션을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라마 요소가 강한 영화로 감독 제안도 많이 들어왔지만 상업영화로는 < 가발 >(2005)로 데뷔했다. 그리고 < 세븐데이즈 >(2007)와 <용의자>(2013)까지 만들게 되었다. 액션이라는 장르는 여전히 나에게 보물창고이고 욕망이다. 그리고 현재 시류와는 안 맞더라도 기술적 요소만 강조된 액션, 디지털 기술로 표현되는 액션보다 몸으로 소화하는 액션을 꼭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다가 < 용의자 >의 시나리오를 받았고, 액션이 주가 되지만 그 안에서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에 연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동철뿐 아니라 민대령( 박희순 )과 김실장( 조성하 ) 캐릭터의 감정도 관객들에게 표현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잘 봐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주 < 조폭마누라 >를 거절하고 단편영화에 투신한 것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결국 연출가라는 꿈을 추구한 것이다. 원 그렇다. < 테러리스트 > 무술지도를 하면서 정두홍 감독과 처음 만났다. 그때 정두홍 감독이 나에게 “우리 액션의 길로 멋지게 가보자.”고 했는데 나는 거절했다.(웃음) 만약 내가 그때 정두홍 감독과 함께 액션을 계속했다면 나도 지금 경기도 어딘가에 집 한 채 장만했을 것이다.(웃음) 쌀도 임금님표 쌀 먹고 있을 것이다.(일동 웃음) 하지만 나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즐거움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내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직업이라기보다 나의 삶 자체인 것 같다. 주 < 세븐데이즈 >의 김윤진 , < 용의자 >의 공유 의 캐릭터는 일종의 워커홀릭이다. 그리고 <용의자> 초반에 등장하는 항공촬영이나 영화 전반에서 보여주는 도심 액션을 보면 이전 영화에 비해 액션의 강도가 무척 높다. 개인적으로 ‘촉감이 느껴지는’ 액션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렇게 영화 속 캐릭터, 그리고 영화자체를 봐도 감독의 집요함, 전투성이 느껴진다. 개인적 성향과 유사한 면이 있나? 원 나의 개인적 성향이나 욕구가 장르를 통해 발현되는 것 같다. 감독이라는 직업은 평소 한없이 게으를 수 있지만 작업에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최대한 몰입해야 하는 직업이다. 나는 영화말고 다른 유희가 없다. 오늘도 여기(영상자료원) 오면서 영감을 얻기 위해 OST를 들으면서 왔다. 이게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꼭 이런 성격이 꼭 장점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성격은 아마도 제도권 내에서 영화를 정식적으로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이 아닐까 한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열등의식은 없는데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은 있다. 이런 성격이 영화를 만드는 데 직간접적으로 표현되는 게 아닌가 싶다. 주변 사람들이 좀 쉬면서 작업하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너무 숨 가쁘게 달리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더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용의자 >의 등장인물을 말하다 주 캐릭터 얘기를 해보자. 최근 < 용의자 >를 전후로 ‘북에서 내려온 과묵하고 초인 같은 남자’ 캐릭터가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 베를린 >이 그렇다. 그리고 < 은밀하게, 위대하게 >처럼 다양한 양상으로도 퍼졌다. <용의자>의 지동철은 그중에서도 가장 과묵한 남자다. 이 남자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원 지동철의 대사를 다 합쳐보면 A4 두 장이 채 안 된다. 그래도 지동철의 대사를 더 줄였어야 했다.(웃음) 영화를 만들면서 도전을 받을 때가 많다.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한국영화들은 너무 설명적이란 느낌이 든다. 관객 중심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긴 하지만 관객이 생각할 틈이 없이 너무 떠 먹여준다는 인상을 준다. 스토리나 이야기 구성은 관객들에게 친절할 수 있다 쳐도 극중 캐릭터의 감정까지 그렇게 친절히 설명해야 하나 생각한다. 과묵하고 말 없는 지동철을 통해서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눈빛 하나로 관객이 더 궁금해하고, 그러면서 관객이 더 몰입하고 이해하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대사보다는 표정, 앞모습보다는 뒷모습을 더 많이 잡고 싶었다. 주 < 용의자 >는 지동철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간다. 그리고 극중에 나오는 기자 선후배, 최경희( 유다인 )와 주 기자( 김민재 )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주 기자는 자신이 기자의 사명감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서서히 자아를 찾아가는 캐릭터다. 주 기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를 암시한 것인가?(웃음) 그리고 극중 기자라는 직업을 그렇게 그린 데에는 또 다른 메시지가 있나? 원 난 <씨네21> 정기구독자다.(웃음) 얼마 전 <씨네21> 기획특집 ‘기레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를 봤다. 그리고 최근 에스콰이어의 신기주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들이 현재 기자의 세계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더라. 영화에는 그냥 ‘주 기자’로 나왔지만 영화에서 이 기자의 본명은 주진웅이다. 하지만 (물론 그러시지 않겠지만)자신의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불쾌해할 수도 있고, 관객의 몰입도도 떨어질 수 있어서 그냥 ‘주기자’로 표현했다. 아무튼 영화에서 난 사회의 문제와 이슈를 펜으로 표현하는 기자에 대해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주진우 기자의 책은 물론 기자들이 쓴 책을 많이 읽으며 기자에 대해 공부했다. 사실 극 중 주 기자보다 최경희(유다인)의 캐릭터가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기자상에 더 가깝다. 지금와서 밝히지만 최경희의 핵심 대사가 있었다. 사실 유다인 씨가 이 한 문장의 대사에 애착을 갖고 영화에 참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지보다 높지 않고, 대통령보다 낮지 않은 게 거지다. 씨발!”이다. 결국 이 대사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강도보다 세서 빠지게 되었지만 이런 성격을 가진 최경희가 내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기자다. < 용의자 > vs <본 시리즈> 주 < 용의자 >를 <본 시리즈>와 비교하는 사람이 많다. 원 한국 관객들이 한국영화에 박한 면이 있다. 하지만 어떤 특정 영화에 대해서는 관객들의 배려심이 깊다. 이를테면 < 도둑들 >을 보면서 <오션스 시리즈>를 깊게 얘기하진 않잖나? 사실 < 용의자 >가 <본 시리즈>를 표절했다고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독립 다양성 영화가 아니고 상업영화 시스템 내에서 제작되는 영화라면 <본 시리즈>뿐 아니라 유사한 장르의 영화에 등장하는 흥행 요소들을 배치해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게 일종의 협의사항이다. <용의자> 시나리오를 처음 받고 6개월 동안 시나리오 수정 작업을 했다. 수정하면서 주인공의 감정, 정서를 많이 강조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감독이 생각하는 대로 수정 하다보니 ‘이 프로젝트(<용의자> 제작)가 무산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최초 시나리오의 톤앤매너를 바꿀 순 없었다. 한국의 대중은 이런 속사정을 모르니 어찌보면 <본 시리즈>와 비교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어쩔 수 없었던 부분들도 있지만 앞으로 소재적으로나 장르적으로 관객들에게 좀 더 충격을 줄 수 있는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 추격 신의 경우 어떤 면에서는 <본 시리즈> 이상이라 생각했다. 기존의 한국영화 액션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도 많이 나온다. 원 시각적 요소를 위해 준비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결론적으로 <본 시리즈>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반성을 했다. 유사한 것을 인정한다기보다 오히려 <본 시리즈> 뿐 아니라 기존의 영화들과 차별되는 전혀 새로운 것에 대해 더 고민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만약 <용의자2>를 만든다면 드라마가 중심이 된 액션이 될 것 같다. 액션으로만 < 용의자 >를 봤을 때 화두는 ‘액션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였다. 대부분 제작 환경이 디지털로 변했는데 그렇게 촬영한다면 실감이 안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수소문을 해보니 액션을 실감 나게 촬영할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분이 많았다. 다만 이분들이 그 동안 영화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예산적인 부분에서의 합의도 잘 이루어졌다. 향후 액션영화에도 많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원신연 이 바라보는 액션영화, 그리고 액션배우 주 < 용의자 >에는 이 영화의 무술감독인 오세운 감독이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무술지도나 액션 경험이 많은 감독으로서 무술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원 지금도 오세운 감독과 만나면 많이 싸운다.(웃음) 나도 촬영하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고, 무술감독도 나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무술감독의 역할에 비해 대우를 제대로 못 받는 실정이다. 영화 속에서 그들의 다양한 장기를 펼칠 수 있는 충분한 재능을 보유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그런 시나리오가 없다. 그리고 그런 시나리오가 있어서 영화화가 된다해도 그에 맞는 금전적 보상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합리한 부분이 많다. 이것은 상업영화 시스템만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무술감독들도 평소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연출자가 요구를 듣고 현장에서 그 외에 3~4개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만큼 자신감과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주 개인적으로 국내 무술영화의 < 어벤져스 >라고 할 수 있는, 무술 대가들이 대거 참여한 액션영화를 언젠가 꼭 보고 싶다. < 자장가 >( 원신연 , 2002)에 나오는 권성영 무술감독은 마스크도 훌륭하다. 정두홍 , 원진 … 모두가 출연하는 그런 영화 말이다. 원 정두홍 감독이나 오세영 감독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류승완 감독도 그런 욕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기에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제도권 내에서 타협해서 장르영화를 만들기보다 무술 대가들이 그들의 재능을 내세워 자유분방하게 영화에서 표현되게 하려면 내가, 다시 말해 감독의 힘이 강해지는 게 중요하다. 그래도 언젠가 결과(흥행)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그런 영화를 꼭 한 번 만들고 싶다. (‘주’ 언젠가 꼭 만드신다니… < 어벤져스 >가 아니라 < 익스펜더블 >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일동 웃음)) 얼마 전 < 세븐데이즈 >의 최영환 촬영감독이 자료를 찾다가 < 밥풀떼기 형사와 쌍라이트 >( 신우철 , 1989)을 봤는데, 거기서 대역을 했던 나를 보고 전화를 했더라. “왜 살짝 스쳤는데 두 번 돌아서 화려하게 넘어지냐!”며 면박을 주더라.(웃음) (‘주’ 그 영화는 유창국 과 원진 의 대결을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영화다.(일동 웃음)) 이 얘기를 한 이유는 그 만큼 여러 감독이 액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 용의자 >, 그 이후… 주 < 용의자 > 개봉 후 6개월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원 꼭 < 용의자 >만의 얘긴 아니다. 감독에게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작품을 만들수록 제작 환경은 안 좋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억압이 커진 달까? 작품을 판단하고 검토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이 커지는 것처럼 말이다. 감독은 누구나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영화 시스템과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용의자>는 조금 불만족스러웠다. 결국 상업영화 논리에 많은 부분 양보했지만 더 많은 대중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반성하는 중이다. 주 < 용의자 > 엔딩이 속편을 기대하게 만든다. 원 속편은 사실 < 용의자 >를 시작하기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감독이 아무리 준비되었다 해도 시나리오 등 탄탄한 설계가 중요하다. 속편에 대한 욕심도 크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 다른 감독이 <용의자> 속편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용의자>가 프렌차이즈가 되는 것은 반대한다. 아무튼 <용의자> 이후 지동철을 계속 따라가보고 싶은 욕구가 있다. 과연 지동철은 딸이라는 것을 확인했을까? 이후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런 욕구가 남아 있다.
< 황야의 결투 My Darling Clementine >(1946)는 앞서 다룬 < 데이 워 익스펜더블 >(1945), < 도망자 >(1946)와 함께 ‘어둠의 3부작(dark trilogy)’이라고 불린다. 물론 1940년대 후반의 할리우드에서, 어둠은 존 포드의 것만은 아니었다. < 시민 케인 >(오슨 웰스, 1941)과 < 말타의 매 >(존 휴스턴, 1941)에서 시작된 필름누아르의 유행은 1940년대의 할리우드를 음모와 배신의 이야기, 불안정하고 광적인 인물, 뒷골목과 그림자의 불길한 형상에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2차대전을 거치면서 어둠은 필름누아르의 장르적 관습에 그치지 않고, 할리우드 전반에 스며들었다. <황야의 결투>가 등장한 해에 그토록 낙천적이던 프랭크 카프라는 < 멋진 인생 >에서 유례없이 우울한 정조를 빚어냈으며, 윌리엄 와일러는 <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에서 삶의 바닥으로 추락한 귀향 병사들의 어두운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 < 빅 슬립 >(하워드 혹스), < 길다 >(찰스 비도르) 등 필름누아르의 명편들도 이 해에 쏟아져 나왔다. 2차대전 직후의 혼란기, 그리고 필름누아르의 전성기에 어둠의 3부작이 등장한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어둠의 3부작이라는 명명이 유용한지는 잘 모르겠다. 거의 모든 존 포드 영화에서 어둠과 광기가 내재적이라는 점을 논외로 한다 해도, < 황야의 결투 >를 다른 시기의 포드 영화들 예컨대 < 젊은 날의 링컨 >(1939), < 분노의 포도 >(1940), <일곱 여인>(1963) 등에 비해 더 어둡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 포드 영화를 말하는 데 장르 어프로치가 종종 무력해지는 것처럼 시기별 구분법 역시 개별 작품의 고유한 활력에 둔감해지게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 <황야의 결투>는 그저 또 다른 존 포드 영화일 뿐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전직 보안관 와이어트 업(헨리 폰다)은 세 형제와 함께 소 떼를 이끌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툼스톤에 다른 세 명이 휴식을 취하러 간 사이에, 홀로 소 떼를 지키던 막내 제임스는 살해당하고 소 떼는 도둑맞는다. 복수를 위해 툼스톤 보안관을 자청한 와이어트는 이 마을이 도박장을 운영하는 동부 의사 출신의 닥 할러데이(빅터 머추어)와 난폭한 목장주 클랜튼 일가가 지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름다운 여인 클레멘타인이 옛 연인 닥 할러데이를 찾아오면서, 클레멘타인에게 첫눈에 반한 와이어트, 클레멘타인을 거부하는 닥, 닥을 좋아하는 술집 가수 치와와 사이에 긴장이 흐른다. 우연한 계기로 범인이 클랜튼 일가임이 드러나고, 와이어트와 닥은 클랜튼 일가와 결투를 벌인다. < 황야의 결투 >의 러닝타임은 93분이다. 첫 15분간 막내 제임스의 죽음과 소 떼 절도 사건 이후에 와이어트 업이 보안관을 자청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이후 50여 분간 살인과 절도 사건은 거의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마치 와이어트 업 자신이 그 사건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분명한 복수 이야기에서 러닝타임의 반 이상 동안 복수 모티브가 사라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영화는 이상한 복수 이야기다. 대중영화에서 복수는 편리한 장치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존재(가족, 연인, 친구)를 억울하게 죽게만 하면 이야기꾼에게는 많은 것들이 거저 주어진다. 우선 슬픔과 분노(상실감과 복수심)라는 감염력 높은 정념이 자동적으로 마련된다. 서사의 행로도 분명해진다. 이제 이야기는 살인자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에 몰두하면 될 것이다. 이야기의 층을 두텁게 할 수 있는 사적 복수와 법 집행 사이의 도덕적 딜레마, 복수와 용서 사이의 윤리적 딜레마도 확보된다. 무능한 혹은 유능한 법 집행자들의 방해 혹은 협력의 서브플롯은 옵션이다. 요컨대 복수의 정념이라는 출발점, 후던잇(WHODUNIT)의 플롯, 딜레마의 해결이라는 종결 그리고 몇 가지 옵션들로 이뤄진 복수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더없이 유용한 패키지 서사다. <역마차> <수색자> <황야의 결투> 존 포드의 서부극에서 복수 모티브는 세 번 등장한다. < 역마차 >(1939), < 수색자 >(1956) 그리고 < 황야의 결투 >에서다. < 태양은 밝게 빛난다 > 편(11회)에서 언급했듯 포드 서부극에서 공동선의 모티브와 사적 복수의 모티브는 임의적으로 일치한다. 복수의 대상이 하필이면 공동악인 것이다. 존 포드는 그 일치의 임의성을 감추지 않는다. <역마차>의 링고 키드와 <수색자>의 이산 에드워즈는 공동체에 완전히 무관심하며 복수를 완수한 뒤 공동체를 떠난다. <황야의 결투>의 이상한 점은 와이어트 업이 사적 복수에도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클레멘타인이 도착하자 와이어트는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복수를 잊어버린 것 같다. 그는 도박하고, 먹고, 이발하고, 빈둥거리다 클레멘타인과 춤춘다. 그 사이 와이어트가 행한 공동선은 클랜튼 일가에게 붙들려 있던 셰익스피어 전문배우를 극장에다 데려다 놓은 일뿐이다. 그렇게 50분이 지난 뒤, 죽은 동생의 목걸이가 우연히 발견되자 와이어트는 갑자기 생각난 듯 살인자-도둑을 쫓아 황야의 결투를 벌인다. 존 포드는 복수 이야기의 유용성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히려 그 유용성을 조롱하듯 복수의 정념도 범인 찾기의 퍼즐 풀기도 딜레마의 해결도 무시해버린다. 대신 복수 모티브를 머리와 꼬리에 배치하면서 몸통은 삼각관계 연애담 중심의 에피소드들로만 채워버린다. 물론 에피소드 중심의 이야기 전개는 거의 모든 포드 영화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본론과 여담이 긴장된 매듭의 연쇄를 이루지 않고 이처럼 기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사례는 다른 작품에선 찾기 힘들다. 돌려 말할 필요가 없겠다. < 황야의 결투 >의 서사는 실패한 서사다. 이런 시나리오를 제출한 학생은 낙제를 면하기 힘들 것이다. 이 실패가 존 포드의 실패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유능하지만 독선적인 프로듀서 대릴 자눅은 러프컷을 본 뒤 군더더기와 유머가 과도하다고 판단해 직접 30분가량 잘라냈다고 한다. 와이어트가 클레멘타인의 볼에 키스하는 마지막 시퀀스의 한 쇼트도 포드가 찍지 않은 자눅의 작품이다. 잘려나가 사라진 장면들이 되돌아온 또 다른 영화를 상상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겠지만, < 황야의 결투 >의 사라진 장면들은 정말 궁금하다. 그 장면들이 되돌아온다고 이 영화가 더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대릴 자눅은 포드도 인정하는 뛰어난 편집감각의 소유자였다. 또한 전후의 포드는 자신의 제작사를 차리면서 이전보다 더욱 깊이 개인적인 비전과 비관습적인 표현에 이끌렸다. 자눅은 포드가 주류영화를 만들 때 최소한의 균형을 잡는 데 조력자 노릇을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눅이 제거한 ‘과도한’ 장면들이 돌아오면 이 영화가 도리어 더 크게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토바코 로드> 나는 더 과격하고 더 맹렬한 실패의 버전을 보고 싶은 것 같다. 실패작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진정한 예술가의 특권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가까스로 잡은 균형보다 실패를 감수한 절박한 불균형이 때로 우리를 더 깊이 움직인다. 이런 말들을 하면서 염두에 두고 있는 건 포드의 < 토바코 로드 Tobacco Road >(1941)이다. 포드가 생애 최고작들을 빚어내던 영예의 시기에 돌연변이처럼 튀어나온 이 게으르고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코미디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터무니없어 머리를 멍하게 만든다. 이런 막강한 실패작은 평자에겐 최고의 난제에 속하므로 아마도 이 연재의 마지막쯤에 가서야 겨우 말하게 될지 모르겠다. < 황야의 결투 >로 돌아오자. 우리의 관심사는 물론 실패한 서사를 성립시키는 포드의 방식이다. 내가 접한 <황야의 결투> 논평들은 대개 서사의 복합성, 시적이고 음악적인 영상에 찬사를 보낸다. 예컨대 질베르토 페레스는 “이완되고 분산적이며 에피소드 중심적인 따라서 액션보다 캐릭터와 상황에 몰두하는 포드의 스타일은 진정으로 여성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두 남녀의 춤이 결투보다 더욱 중요하며 더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고 썼다.(「The Material Ghost: Films and Their Medium」) 이 영화에 완전히 빠져 포드의 열광자가 된 린지 앤더슨은 “(서부극의) 전통적 분위기와 전통적 주제를 다루면서 특별한 온기와 특별한 친숙함을 빚어낸다... 모호하면서도 심원한 무언가, 그러니까 일종의 도덕적 시학(moral poetry)로부터 이 영화의 마술이 태어난다.”고 말했다.(「About John Ford」) 토마스 샤츠는 또한 “웨스턴 장르의 친 사회적 가치와 이상이 극단적으로 단순한 그러나 영원히 기억될만한 이미지와 결합했다”(「할리우드 장르」)고 평했다. 동의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표현들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평자들에게 앞서 말한 실패가 보이지 않았거나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단 두 대목만 말하려 한다. 정리된 줄거리에는 결코 등장하지 않을, 그러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는 만취한 채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전문배우 쏜다이크다. 포드의 단골 캐릭터인 주정뱅이 철학자의 변주에 해당하는 이 인물은 와이어트와 닥의 첫 대면에서의 긴장이 가까스로 수습된 직후 등장해 두 영웅을 내면적으로 화해시키고, 클랜튼 일가의 무지와 무례를 폭로케 하며,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대사로 닥의 심경과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는 등, 미묘하지만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그저 칼 한 자루면 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끝장낼 수 있는데.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결국 분별심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드는구나...”)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는 쏜다이크가 공연 다음 날 떠나는 시퀀스에 있다. 주민들과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작별인사를 나눈 쏜다이크는 마지막으로 한 노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전날 밤부터 쏜다이크와 동행했고 이 장면 이후로 다시 등장하지 않는 노인은 이름도 정체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이 작별 장면에서 그의 표정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다.(#1, #2) #1 #2 쏜다이크는 역시 셰익스피어 풍의 대사로 노인에게 말한다. “진실한 영혼은 서로에게 충절과 불타는 우정을 요구하노라. 안녕히... 안녕히... 어린 왕자여.” 포드의 형인 프랜시스가 분한 이 노인의 슬픈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주정뱅이 배우가 그를 ‘어린 왕자’라고 부르며 손을 맞잡는 장면의 온기를 잊을 수가 없다. 영화의 쇼트란 아니 영화란 기묘한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이 복수 이야기의 모티브가 된 제임스 피살 장면(#3)을 기억하지 않고, 이름도 없는 단역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주인공 형제의 억울하고 비극적인 죽음보다 내력도 모르는 주변 인물의 사소한 이별 장면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가. #3 영화는 사건을 다루지 못한다. 그렇게 보이는 영화들이 있을 뿐이다. 영화가 가장 오랫동안 빈번히 애용해온 사건인 죽음은 너무도 많이 사용된 나머지 그것이 등장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어떤 패턴에, < 황야의 결투 >에서라면 복수 이야기의 패턴에, 편입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착한 형제가 살해당하고 나면 주인공에게 할 일이 달리 뭐가 남겠는가. 갖가지 서브플롯을 첨가해 빤한 복수의 결말에 이르는 여정을 복잡하고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소위 유능한 이야기꾼이 하는 일이다. 물론 존 포드가 그런 부류의 이야기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황야의 결투>에서 포드가 택한 것은 사건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영화가 그것을 잊어버린다. 이름없는 노인의 슬픈 표정은 리버스 쇼트인데도, 리버스 숏에 선행하는 쇼트는 그를 바라보는 쏜다이크의 시점 쇼트가 아니라, 두 사람을 잡은 투 쇼트이다. 노인의 표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인칭의 시선이며 영화의 시선이다. 이 사소한 쇼트는 살인 사건조차 잊어버리겠다고 작정하지 않으면 선택할 수 없는 위대한 결단의 쇼트다. 물론 우리의 주인공 와이어트 업도 사건을 잊어버린다. 보안관이 되고 나서 그가 한 첫 일 중 하나는 도박이다. 클레멘타인이 도착한 뒤로는 오직 그녀에게 다가서는 일만이 그의 관심사가 된다. 여기서 이 영화의 가장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런 장면 가운데 하나가 등장한다. 서투르게 멋 낸 시골뜨기 모양새의 이발을 하고 향수까지 뿌리고 난 뒤, 그는 사무실 앞 현관 기둥에 발을 올리고 발 바꾸기 놀이를 한다.(#4) #4 영락없는 동네 건달과도 같은 이 행위의 숨은 동기가 클레멘타인을 기다리는 것임은 물론 짐작할 수 있다. 다음 장면에서 모두가 칭송하는, 그리고 서부극 역사의 전설이 된 두 남녀의 아름다운 행진과 왈츠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녀가 닥의 여자임을 알고 있으므로 이 발 바꾸기 놀이는 구애의 준비도 아니다. 이 장면의 요점은 그의 행위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이다. 그의 한심한 놀이는, 이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고 말한다. 이 순간은 복수의 목적이 망각된 시간 속에서도, 사소한 에피소드조차 멈춰버린 이야기의 완전한 진공상태인 것이다.(이 장면은 헨리 폰다가 촬영 휴식 시간에 혼자서 발 바꾸기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포드가 즉석에서 만들어냈다고 한다.) 포드에게 부과된 서부극 만들기라는 직업적 책무, 혹은 서부사나이에게 부과된 복수 혹은 정의의 실현이라는 윤리적 책무 모두로부터 완전한 자유의 순간. 이 장면에 이르면 우리는 복수 이야기에서 출발한 포드가 왜 실패의 서사를 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포드가 말하지 않은 그의 진정한 소망은 아마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위의 서부극이라고 부를만한 그런 서부극이었을 것이다. 그 소망은 포드 스스로 “내가 만들고 싶었던 서부극에 가장 가깝다”라고 말한, 또한 하스미 시게히코가 ‘이토록 사치스런 B급 서부극’이라고 부른 < 웨건 마스터 >(1950)에서 비로소 실현되었을 것이다. 대릴 자눅이 현명하게 제거한 장면들이 돌아온다면 그래서 더욱 무모한 실패의 서사가 < 황야의 결투 >에서 실현되었다면, 포드가 가장 사랑한 자신의 웨스턴 명단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