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변차선
- 감독
- 양윤호
- 제작년도
- 1992
- 출연
- 박신양, 진남수
유신에서 신군부 독재로 이어지는 1970~80년대에 대해 ‘한국영화 암흑기’라는 레이블을 붙이는 건 정설처럼 보인다. 사실이었다. 영화는 TV에 밀리고 있었고, ‘반공’과 ‘새마을 운동’을 내세운 국책 영화에 얽매인 영화계는 점점 뒤틀려 갔으며, 사전 심의와 사후 검열 속에서 크리에이티브는 서서히 증발했다. 산업적 토대의 붕괴, 불합리한 제도, 미학적 고갈이 동시에 진행되었던 이 시대는 몇몇 감독들의 개인기로 돌파하기엔 너무 어두웠다. 시스템이 붕괴될 때 가장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무분별한 트렌드 추종이다. 1980년대는 그 정점이었다. 멜로드라마와 문예 영화와 스타 시스템을 토대로 1960년대에 황금기를 구가했던 한국영화는 1970년대에 서서히 무너졌고 1980년대에 난장판이 되었다. 멜로는 여전히 만들어졌지만 예전 같은 힘을 잃었다(진부한 신파의 클리셰에 빠져 있었다). 그 개념은 조금 모호하지만 ‘양질’의 문학 작품을 스크린에 옮겼던 ‘문예 영화’는 더 이상 영화화할 만한 소스를 구할 수 없었다(대신 1970년대부터 최인호나 조해일 같은 새로운 작가가 등장했다). 과거의 스타들은 일거에 물러났지만 그 공백을 채울 만한 스타는 도착하지 않았다( 안성기 가 유일한 희망이었던 시대였다). 1. 한수산 원작의 <거리의 악사>(정지영, 1987) 2. 이문열 원작의 <레테의 연가>(장길수, 1987) 3. 김홍신 원작의 <인간 시장>(김효천, 1983) 4. 미우라 아야코 원작의 <빙점 81>(고영남, 1981) 가장 심각한 건 ‘소스 부족’이었다. 1960년대엔 근대 단편 소설들이 ‘문예 영화’라는 이름으로 애용되었다(여기엔 ‘우수 영화’에 외화 수입 쿼터가 주어지는 현실적 이해관계도 작용했다). 라디오 연속극도 각광 받았고, 때론 일본 영화 시나리오를 그대로 가져온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는 서서히 재료가 떨어졌고 1980년대에 오면 바닥을 드러낸다. 새로운 광산이 채굴되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하이브리드 현상이 나타난다. 심하게 말하면, ‘돈 될 만한’ 건 뭐든지 끌어다 썼던 1980년대였다. 여전히 ‘문학’은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1970년대 최인호와 조해일에 이어 1980년대엔 한수산 이외수 이문열 박범신 등이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영화계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1980년대엔 훨씬 더 대중적인 콘셉트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시장』 시리즈의 김홍신은 대표적이었으며 김성종 유홍종 백시종 김병총 등의 작가들도 가세했다. ‘시대정신’이었던 에로티시즘도 영향을 미쳤다. 외설 시비에 휩싸였던 염재만의 소설 『반노』가 대표적. <빨간 앵두> (박호태, 1982)도 최희숙의 소설이 원작이며, <매춘> (유진선, 1988)은 『매춘: 전국 사창가와 창녀 실태』라는 사회학 서적에서 온 것이었다. 전통의 부활도 있었다. 한동안 맥이 끊어졌던 문예 영화의 흐름은 에로티시즘을 통해 재등장했고 나도향과 김유정이 소환되었다. 일본 소설도 영화화되었다. 미우라 아야코 원작의 <빙점 81>(고영남, 1981)은 큰 흥행을 거두었고 호즈미 타카노부의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이미례, 1984), 하시다 스카코의 <오싱>(이상언, 1985), 나쓰키 시즈코의 <W의 비극>(김수형, 1985형) 그리고 이쿠시마 지로의 <한쪽 날개의 천사>(이성민, 1987) 등이 이어졌다. 1960년대 한국영화가, 당시 문화 교류가 없던 일본 소설이나 시나리오를 가져가 음성적으로 번안해 영화화했다면 그 원천을 밝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모습이다. 미즈키 교코 원작의 만화 『캔디 캔디』도 영화화되었다. 1.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최재성은 최고의 청춘스타가 되었다. 2. <신의 아들>은 최민수의 데뷔작이다. 3. 강철수 원작의 <팔불출> 4. 한희작 원작의 <한희작의 러브러브>. 가장 강력한 소스는 만화였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이장호, 1986)이 장안을 뒤흔들기 전, 1980년대 초부터 꾸준한 시도가 있었다. 그 시작은 길창덕 화백의 <순악질 여사>(김수형, 1980)였다. 이야기보다는 ‘순악질 여사’라는 캐릭터를 가져온 면이 강하며, 장미희가 주인공을 맡았다. 이후 1980년대에 약 20편가량의 만화 원작 영화가 등장하는데, 스포츠 신문 연재나 만화 가게나 당시 쏟아지던 만화 주간지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터에 흥행성이 꽤 괜찮았다. 이현세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이 시기 만화 원작 영화의 주요 인물은 강철수였다. <팔불출>(고응호, 1980)의 원작자였던 그는 이후 영화 쪽에 큰 관심을 보이며 <사랑의 낙서>(심재석, 1988)엔 아트 디렉터로 참여했고, 1989년엔 <발바리의 추억>으로 직접 메가폰을 잡는다. <가루지기>(1988)의 고우영 감독도 만화가에서 영화감독으로 잠시 업종 전환을 한 케이스인데, 1980년대의 만화는 충무로에 원작뿐만 아니라 인력도 공급한 셈이다. 그리고 <이장호의 외인구단>이다. 당시 프로야구 열풍과 이현세의 만화에 대한 컬트적 반응을 힘입은 이 영화는 영화 제목에 ‘공포’가 들어가선 안 된다는 당시의 심의 규율 때문에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이장호의 외인구단>으로 개명해야 했는데, 이것이 액땜이 되었는지 서울에서 약 28만 7,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빅 히트를 기록한다. ‘까치’ 오혜성 역을 맡았던 최재성은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가 되었으며, 동네 전파사마다 정수라가 부른 주제가 ‘난 너에게’(“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가 흘러나왔다. 프로야구의 인기, 이장호 감독의 흥행력 등 이 영화의 성공 원인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핵심은 이야기였다. 당대 한국영화와 비교해볼 때 이 영화가 지닌 극적 요소는 두 배 정도는 셌다. 강한 승부욕, 목숨을 건 순애보. 팽팽한 긴장 관계, 뼈를 깎는 극기 정신…. 떡볶이로 치면 고추장이 아닌 캡사이신 맛이었고, 그 강렬함에 젊은 관객들은 반응했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일련의 스포츠 원작 영화가 등장하는데, 박봉성의 『신의 아들』, 이현세의 『지옥의 링』,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 등 복싱 소재 만화들이 영화화되었다. 1980년대 ‘복싱’은 여전히 있기 있는 스포츠였고, 여기에 혹독한 트레이닝과 청춘의 고독과 비극적 로맨스가 결합되었다. 안타까운 건 원작을 따라가지 못했던 인기였는데 완성도가 문제였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는 역시 ‘에로티시즘’이며 스포츠 신문 연재를 통해 성인 만화의 흐름을 이끌었던 한희작과 배금택은 주역이다. <서울 손자병법>(김현명, 1986)이 한희작의 원작이 지닌 지명도에 기대 제목 정도만 가져 왔다면, <한희작의 러브러브>(윤석태 김정진, 1991)은 아예 제목에 작가의 이름을 드러낸다. 당대의 섹시 아이콘인 강리나는 만화 캐릭터를 별 위화감 없이 소화하는데, 이후 배금택 원작의 <변금련>(엄종선, 1991)에서도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준다. 하지만 만화 원작 영화의 흐름은 1990년대엔 뜸해진다. 이현세가 직접 연출을 맡은 <아마겟돈>(1996)이나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1996) 등 극장용 애니메이션 쪽에서 성과를 냈고, 이현세의 『카론의 새벽』을 옮긴 <테러리스트>(김영빈, 1995)와 허영만 원작의 <비트>(김성수, 1997)가 흥행했지만 1980년대만큼의 양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 다시 그 붐이 일게 된 건 2000년 이후. 여기엔 웹툰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 1. <멋대로 해라>의 혜은이와 김동현. 그들은 이후 부부가 된다. 2. <너무 합니다>의 원작자이자 주인공인 김수희. 3. 박남정 주연의 <새앙쥐 상륙 작전> 4. <담다디>의 이상은과 민규. 최근 한국영화계에서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의 활약이 돋보이긴 하지만, 가요계와 영화계의 크로스오버 현상은 이미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전 1960년대부터 주제가는 영화 흥행의 중요한 요소였고, 남진이나 나훈아 같은 슈퍼스타들이 은막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는 남달랐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지만, 이 시기엔 당대의 히트곡 제목을 그대로 딴 영화들이 쏟아졌다.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출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영화 내용도 노래 가사와 대부분 무관했다. 오로지 노래 제목의 인지도를 이용한 경우들인데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와 ‘비련’, 와일드 캣츠의 ‘마음 약해서’,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윤시내의 ‘난 모르겠네’와 ‘열애’, 이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 김현준과 민해경의 ‘내 인생은 나의 것’, 임수정의 ‘연인들의 이야기’,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이선희의 ‘J에게’, 최성수의 ‘풀잎 사랑’ 등 수많은 히트곡들이 그 제목을 충무로에 빌려주었다. 물론 가수가 직접 영화에 출연한 경우들도 있었다. 지난 연재에서 이야기했던 전영록이나 송골매, 김형용 같은 청춘 영화의 스타들은 대표적인 경우. 이외에도 <나를 보러 와요>(이유섭, 1980)의 방미, <슬픈 계절에 만나요>(박남수, 1981)의 백영규, <잊혀진 계절>(이형, 1984)의 이용, <담다디>(김응천, 1989)의 이상은, <울고 싶어라>(배해성, 1989)의 이남이, <앗싸! 호랑나비>(원정수, 1989)의 김흥국 등은 노래의 주인공이 직접 카메라 앞에 서는 경우들이었다. <너무 합니다>(남석훈, 1984)은 김수희의 자전적 이야기로, 그녀는 원작자이자 주연 배우로 참여한다. 노래와 상관없이, 가수 자체의 인기로 영화계에 진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낌없이 바쳤는데>(박호태, 1980)의 심수봉, <멋대로 해라>(김정현, 1980)의 혜은이(1970년대부터 배우 활동), <그 사랑 한이 되어>(이형표, 1981)의 조용필, <날마다 허물 벗는 꽃뱀>(강대선, 1982)의 이은하, <흑녀>(강대선, 1982)의 인순이, <졸업 여행>(오성환, 1985)의 김범룡, <새앙쥐 상륙 작전>(김정진, 1989)의 박남정 등이다. 연기력을 인정받진 못 했지만, 당시 이 영화들은 그 화제성으로 이슈가 되었다. 당시 가요계와 영화계의 끈끈한 관계는, 가요 쪽의 붐에서 기인했다. 트로트 중심이었던 한국 대중가요는 1980년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며 대중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아이돌 문화를 형성했다. 이 시기 침체기를 지나던 영화계는 가요계의 호황을 이용하려는 수많은 기획을 시도했고, 그 결과 수많은 ‘가요적 영화’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영화들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그 흐름은 한국영화가 자생력을 서서히 지니기 시작하는 1990년대가 되면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충무로가 수혈받았던 또 하나의 원천이 있었다면 바로 TV의 코미디언과 개그맨이었다. 이전에도 영화와 방송을 겸하는 수많은 희극인들이 있었고 그 전통은 이주일로 이어졌다. 특히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김수형, 1980) <조용히 살고 싶다>(김수형, 1980) <얼굴이 아니라 마음입니다>(이형표, 1983) 등의 ‘유행어 영화’는 작은 트렌드를 이뤄 <웬일이니>(김종성, 1983) <난 이렇게 산다우>(남기남, 1985) 등으로 이어졌다. 이것 역시 대중문화의 인기를 영화로 끌어오려는 기획이었다. 새로운 경향은 개그맨들의 진출이었다. ‘아동용 SF 액션’에 대한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듯, 1980년대의 수많은 개그맨은 SF 프랜차이즈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들은 아이들 영화를 벗어나 성인용 영화에도 종종 출연했다. 이외에도 서세원 주병진 김명덕 김형곤 김병조 등 당대의 인기 개그맨들은 대부분 영화계와 만났으며 전유성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비디오 영화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의 이주일. 2. <회장님, 우리 회장님>(엄종선, 1988)은 개그 프로그램을 영화화했다. 3. 주병진과 이미숙이 주연을 맡은 <가슴 깊게 화끈하게>(김수형, 1981) 4. 리메이크 영화인 <미워도 다시 한번 1980 - 1부>(변장호, 1980). 1980년대는 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강렬한 생존 욕구로 인해 숱한 하이브리드 현상이 일어났던, 용광로 같은 시기였다. 대중 문학계든 가요계든 만화계든 희극계든, 노래 제목이든 유행어든,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접목시켰으며 그 중엔 적잖은 성공도 있었고 대부분의 실패가 잇따랐다. 수많은 속편 영화들이 있었고 리메이크도 적잖았으며 애교(?) 섞인 표절도 종종 있었다. 아무튼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했던 시절이었다. 새삼 던져보는 질문. 1980년대는 과연 한국영화의 침체기였나? 표면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면을 살짝 엿보면 이 시대만큼 역동적이었던 시대도 드물다. 장르적으로 매우 다양했고, 영화 이외의 분야와 끊임없이 접점을 만들어갔다(그런 점에서 2000년 이후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분투. 1980년대는 천박한 상업주의와 여기에 저항하는 힘, 과거의 관습을 지속하려는 의지와 돌연변이 같은 존재들이 뒤엉켜 기묘한 연대기를 써 가던 시대였다. 이 시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이토록 미로처럼 뒤얽힌 상황 때문일 것이다.
< 돌아이 >(1985)는 전영록 의 영화다. 이두용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만, 이 영화는 전영록을 논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전영록 그는 누구인가?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걸그룹 ‘티아라’ 멤버 전보라의 아버지로 알려졌지만, 198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의 세대에게는 ‘하이틴 스타’,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이었다.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종이학’,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불티’ 등이 대표곡이었다. 그는 노래만 부른 게 아니라 작사와 작곡 능력도 출중한 싱어송라이터였다. 그러니까, 글솜씨도 좋았다.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지금은 지나버린 바람이 쓸쓸하게 나를 감싸주네”(‘아직도 어두운 밤인가봐’ 중),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중) 감성 돋는 가사가 솜사탕으로 귀를 간질이듯 다가온다. 그와 다르게 음악은 록 기반이 많았다. 전영록의 외모 또한 이웃집 오빠 같은 인상과 다르게 합기도와 무술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자랑했다. 실제로 그의 별명은 ‘영원한 오빠’이면서 동시에 ‘돌아이’이었다. ‘돌아이’는 전영록 이 군 복무 중 가수 출신 주제(?)에 고참들이 노래를 시키면 가요는 안 부르고 군가를 불러서 얻은 별명이다. 바로 그때 전영록은 < 돌아이 >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시놉시스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인공 이름은 ‘석아’다. 돌 석(石) 자에 아이 아(兒) 자를 결합했다. 다시 말해, 돌아이다. 돌아이, 아니 석아는 걸그룹 ‘드릴러’의 매니저다. 밤업소 스케줄을 정리하고 늦은 시간 귀가하는 멤버들의 택시도 잡아주고 무엇보다 드릴러 멤버를 노리는 늑대들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다. 근데 드릴러의 멤버들, 석아에게는 누나뻘인데 도무지 말을 들어 먹지 않는다. 석아의 눈을 피해 이리 도망, 저리 잠적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다. ‘극한 직업’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일까. 석아에게는 이상(?) 증세가 있다. 평상시에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클라크처럼 어리바리하다가도 불의만 보면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는 슈퍼맨으로 뿅~ 변모한다. 그때 주변에서 보이는 반응이 재밌다. 이런 ‘똘’아이를 봤나. 그런 돌아이의 슈퍼히어로 본능을 깨우는 사건이 발생한다. 드릴러의 베이시스트 미옥이 재벌 2세와 사귀던 중 폭행을 당하자 석아는 이에 분노한다. < 돌아이 >는 서울에서만 9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이에 힘입어 4편까지 만들어졌다. (4편의 돌아이는 최재성!) 그만큼 오락성이 뛰어난 영화이었다. 전영록 을 전면에 내세운 <돌아이>는 당대 최고의 하이틴 스타라는 수식이 무색하게 액션 스타의 면모를 극대화했다. 영화 후반 친누나이자 드릴러의 보컬이 공연을 앞두고 사라지자 대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설정을 제외하면 전영록은 성룡을 연상시키는 맨몸 액션을 영화 내내 선보인다. 이두용 감독은 < 돌아이 >의 액션 콘셉트를 ‘막싸움’이라고 정의했지만, 극 중 석아가 상대 배우와 벌이는 액션은 합이 척척 들어맞아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개 이런 종류의 액션은 편집을 잘게 가져가 박진감을 더하는 것에 반해 <돌아이>는 길게 찍는 방식으로 해당 배우의 진짜 실력과 기술을 최대한 노출한다. 그 과정에서 액션의 사실성이 확보될 뿐 아니라 대역을 쓰지 않는 전영록 의 극 중 돌아이적인 면모가 강화된다. 여기에 통쾌감까지 덤으로 주어지는 건 악인들이 이른바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인 까닭이다. 요즘 열정페이다, 갑질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데 < 돌아이 >가 묘사하는 1980년대 당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드릴러의 열정에 업소 영업부장은 한 달 무료 출연을 제안하고 그나마 쥐꼬리 같은 출연료를 지급하는 곳의 사장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멤버 중 한 명을 콕 집어 스폰서를 제안하는 식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꽃(?) 같은 상황에서 돌아이는 악인 척결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구원자 같은 존재다. < 베테랑 >의 또 한 명의 돌아이 서도철을 연상시킨다고 할까. 실제로 <베테랑>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 돌아이 >의 팬이었다. 류승완은 책 「류승완의 본색」에서 ‘10대 시절 마지막으로 본 액션영화다운 액션영화는 진유영 주연의 < 인간시장 >(1983)과 전영록 주연의 ‘돌아이 시리즈’ 정도가 아닌가 한다’고 썼을 정도다. 확실히 < 베테랑 >은 < 돌아이 >의 영향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에두를 것 없이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이두용 의 남성적인 연출이 엿보이고, ‘지옥의 영웅’이라 칭할 만한 서도철의 계보를 훑다 보면 ‘무대뽀’ 정신의 석아가 윗자리 어딘가를 차지하며, 사회 비판적인 모험 활극으로서의 면모는 장르적으로 공유하는 지점이 많다. 요컨대, 돌아이가 남긴 시대정신은 유효하다. 리메이크하여 5편으로 이어가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3대 돌아이는 누가 적역일까. 그에 앞서 전영록은 어떤 역할로 카메오 출연할지가 더 궁금하다.
< 어미 >는 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하고, 드라마 <청춘의 덫>과 <사랑이 뭐길래> <내 남자의 여자>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한 1985년에는 원래 TV 드라마 연출자였던 박철수 감독보다 김수현 작가의 존재감이 더 컸을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와 비디오테이프에 새겨진 타이틀이 ‘김수현의 어미’였으니 말이다. 제목만 보면 그녀가 이전에 썼고, 그 이후로도 썼던 가족드라마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런 오해를 지우고 싶었는지 <어미>의 포스터는 김수현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겨놓았다. “신들린 여류 金秀賢 그녀는 지금 살인을 모의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TV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이야기를 만든 김수현 작가의 필모그래피에서 ‘살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이두용 감독의 1982년 작 < 욕망의 늪 >에서 남자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여성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에 따르면, 1990년에 방영된 드라마 <배반의 장미>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남자( 남성훈 )를 자동차로 들이받아 식물인간으로 만든 여자( 김자옥 )이 있었다. 하지만 < 어미 >는 그보다 더 독한 연쇄살인극이다. 영화의 영문제목이 70년대 할리우드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연상시키는 ‘우먼 레퀴엠’(Woman Requiem)이라는 것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두 모녀의 일상적인 아침이다. 라디오 진행자이자 저명한 작가인 홍 여사( 윤여정 )는 딸에게 먹일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딸과 엄마가 아침에 벌일법한 실랑이가 이어지고, 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함께 집을 나선다. 그날은 홍 여사의 ‘스케쥴이 애매한 날’이었다. 딸 나미( 전혜성 )는 그런 날이면 엄마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딸의 예상대로 홍 여사는 역시 홀아비인 최 교수( 신성일 )과 데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결혼에 관한 대화 도중 홍 여사는 최 교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 다 약다고 해야 할까, 녹슬었다고 해야 할까.” 얼굴에 서운한 기색을 비친 홍 여사를 달래려는 듯 최 교수는 그녀를 다시 침대로 이끈다. 홍 여사는 이제 학교에서 나올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5분만 기다리게 해”라는 최 교수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엄마가 잠시 늦는 사이.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나미는 인신매매단에 납치된다. 1980년대는 각종 인신매매 사건과 그로 인한 괴담이 들끓었던 시기였다. 갑자기 봉고차가 나타나 길거리에 있는 여성들을 납치해서 윤락가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들이었는데, 당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납치해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린다는 소문이 넘쳐났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도 많이 제작됐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삽입한 장황한 자막에는 인신매매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사회정의 등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에로영화의 소재로 인신매매를 끌어온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인신매매범을 처단하는 주인공보다는 상처받은 여성의 슬픔이나, 여자를 찾아다닌 연인 혹은 남편과의 재회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김효천 감독이 연출한 < 인간시장 2- 불타는 욕망 >처럼 일본까지 가서 악을 처단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 어미 >와 같은 힘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복수의 주인공이 엄마인 경우는 더더욱. 새끼를 잃은 어미는 새끼를 찾아 나선다. 그동안 나미는 사창가에 팔려가 차라리 도망치는 걸 포기하는 게 나아 보이는 생활을 이어간다. 경찰조차도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한 남자가 홍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인신매매단과 연관된 인물이지만, 홍 여사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나미의 행방을 알려주려는 남자의 전화다. 홍 여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창가를 덮치지만, 때마침 도주를 시도한 나미는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삭발을 당한다. 하지만 홍 여사는 포기하는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사창가 포주를 돈으로 매수해 나미의 행방을 알아내고, 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딸을 차에 태우고 가던 엄마는 말한다. "아무 힘도 안 빌리고 엄마가 너를 구해냈어. 엄마가 잘했지? 내가 잘했지?" 엄마는 아마도 자신이 직접 딸을 구했기 때문에, 딸이 겪는 상처를 세상에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딸은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집 밖에 매달린 딸의 시체를 본 엄마는 이성을 던져버린다. 박철수 감독은 엄마의 복수를 과감한 속도로 밀어붙인다. 추적의 과정을 묘사하거나, 엄마의 슬픔을 강조하거나, 살인 대상 앞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식의 설명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엄마에게는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슬픔조차 사라진 엄마라는 캐릭터는 < 어미 >의 영화적인 개성 그 자체다. 만신창이가 된 딸을 구할 때도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자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엄마는 바로 살인을 감행한다. 이어지는 복수에서 쇠사슬과 염산, 면도칼 등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때도 홍 여사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상대가 위협을 느낄 새도 없이, 쇠사슬을 목에 걸어 죽을힘을 다해 당기고, 서늘한 표정으로 염산을 뿌린다. 윤락녀로 위장해 마지막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에서도 엄마는 남자에게 단 세 마디의 말을 한다. “남자는 참 쉽군요.” “딸이 있죠?” “많이 예뻐하죠?” 남자는 여자의 손길에 잔뜩 취한 얼굴로 딸을 매우 예뻐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때 엄마는 면도칼을 물속으로 집어넣고, 욕조에는 시뻘건 물이 차오르고 남자는 비명을 지른다. 관객의 예상하는 타이밍보다 한 발 더 빠른 엄마의 복수는 매우 차갑고 강렬하다. < 어미 >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엄마의 표정을 이야기한다. 복수를 끝낸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얼굴 위로 ‘어미는 새끼를 지켜야 한다’는 최후 진술 문장이 나타나는 장면. 엄마의 복수를 따라온 영화가 마지막에 찍어놓은 뚜렷한 방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앞의 장면도 못지않게 강렬했다. 마지막 악당을 처단한 엄마가 목욕탕 밖으로 나온 순간, 영화는 몸에 수건을 두른 그녀의 몸을 보여준다. 바스트 샷 보다 더 멀고 넓은 앵글인데도 눈길이 가는 건, 배우 윤여정 의 거칠게 마른 팔이다. 힘줄이 드러나 있을 정도로 앙상한 팔이지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팔이었다. 그녀의 팔이 전하는 울림은 상당하다. 홍 여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팔은 복수를 모두 끝내고도 아직 분노를 이기지 못해 긴장을 당기고 있는 팔이다. 마지막 엄마의 표정이 <어미>라는 이야기의 마침표라면, 윤여정의 팔에 그어진 힘줄은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동물적인 기질이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