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차압
- 감독
- 유현목
- 제작년도
- 1958
- 출연
- 김승호, 유계선, 황정순, 최남현, 박암, 박상익, 김근자, 장민호, 이민, 서월영, 주선태, 옥경희, 고선애, 이일선, 나옥주, 백송, 나소운, 정애란
해방 후 스무 번째 배출된 배우 최남현(崔湳鉉)은 해방 후 스무 번째 영화계에 진출한 배우이다. 주증녀(<돌아온 어머니>(이규환)), 황정순(<여성일기>(홍성기)), 주선태(<청춘행로>(장황연)), 황해(<성벽을 뚫고>(한형모))와는 1949년 데뷔 동기인 셈이다. 그가 첫 선 보인 <돌아온 어머니>는 남편이 원양어선을 타고 나간 사이 홀로 어린 아들을 키우며 살아가던 아내(김연실 분)가 아편중독으로 죽고, 원양어선에서 돌아온 남편은 고아가 된 아들을 어렵게 찾게 된다는 얘기다. 이듬해 6.25전쟁이 일어나자 아내 역을 맡은 김연실(1911~1997)이 월북하고 최남현은 연극으로 활로를 찾아야 했다. 그가 영화 활동을 재개한 것은 김기영(金綺泳)의 감독 데뷔작 <죽엄의 상자>(1955)부터였다. 이후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의 <미망인>(1955)을 비롯, <젊은 그들>(신상옥, 1955), <단종애사>(전창근, 1956), <유전의 애수>(유현목, 1956), <아리랑>(김소동), <잃어버린 청춘>(유현목), <봉이 김선달>(이상 1957, 한홍렬), <돈>(김소동), <자유결혼>(이병일), <인생차압>(이상 1958, 유현목), <오 내고향>(김소동), <젊은 아내>(이강천), <이름 없는 별들>(김강윤),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이상 1959, 전창근), <흙>(권영순, 1960), <어부들>(강대진, 1961), <인목대비>(안현철, 1962), <또순이>(박상호, 1963), <혈맥>(김수용, 1963), <추풍령>(전범성, 1965), <하숙생>(정진우, 1966), <싸리골의 신화>(이만희, 1967), <망각>(이만희, 1967), <내시>(신상옥, 1968) 등에 주연과 조연으로 기용된다. [사진] 영화 <돈>에서의 최남현, 왼쪽은 배우 김승호 최남현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유현목 감독의 <유전의 애수>(최무룡 주연)부터였다. 영화평론가 이진섭은 그의 역할에 대해 “전 화면을 통해 압권이며 무대경험에서 쌓은 액팅이 오버함이 없이 적으나 자연스러운 연기” ( 「능한 연출, 능한 연기 / ‘유전의 애수’를 보고」, 『한국일보』, 1956.07.26) 였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런 호평에 힘입어 1년도 안 돼 타이틀 롤을 맡은 <봉이 김선달>로 ‘최남현이라는 배우의 하나의 지위를 주장’ (「비교적 정돈된 야담영화 / 최남현의 ‘봉이 김선달’」, 『한국일보』, 1957.10.25) 할 수 있는 단계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 탈세와 횡령을 일삼다 법망에서 벗어나려 거짓 자살극까지 꾸민 아우(김승호)에게 "생눈 파먹은 날도적"이라고 욕설을 퍼붓는 형 이중건(<인생차압>), 일제의 식민주의 교육정책에 맞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스승(<이름 없는 별들>), 드센 아내의 성화 속에 품팔이로 어렵게 살아가는 남산기슭 해방촌의 ‘3.8따라지’ 깡통영감(<혈맥>), 국군 낙오병을 숨겨줘야 하는 상황에 이르러 결단을 내려야하는 산골마을의 강노인(<싸리골의 신화>) 등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진] <혈맥>에서의 최남현과 김승호(왼쪽) 이를테면 <봉이 김선달>, <인생차압> 등에서 보인 해학적인 요소, 처녀를 유린하고, 남의 애인을 가로챈 <유전의 애수>의 건달(인수 역), 피폐한 농촌에서 고리대금으로 농민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돈>의 억조, 딸(윤정희)을 왕의 후궁으로 만들기 위해 사람을 시켜 딸이 사랑하는 하급 관리의 아들(신성일)을 성불구자로 만드는 <내시>의 김찬판 등 악역과 <이름 없는 별들>의 역사 교사 송선생,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시킨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싸리골의 신화>의 주인공 강노인이 보인 카리스마적 면모가 여기에 해당된다. [사진]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의 최남현. (사진제공 : 김종원) 그러나 최남현은 배우로서 절정기에 이른 1968년 어느 날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져 카메라 앞에 다시 나서지 못하게 된다. 10여 년에 걸친 투병생활 끝에 1977년 유현목 감독의 <문>을 계기로 재기, <한네의 승천>(하길종, 1977), <고가(古家)>(조문진, 1977), <족보>(1978, 임권택), <심봤다>(정진우, 1979), <짝코>(임권택, 1980), <물보라>(김수용, 1980) 등에 출연했으나 예전과 같은 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개화의 물결 속에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가>의 주인공 김노인, 아집에 사로잡힌 <물보라>의 지초시, 뜬 구름 같이 살아온 <심봤다>의 조연, 인생을 달관한 <짝코>의 배역에서 열연하였다. [사진] <물보라>에서의 최남현. 아래는 하용수 광물성의 카리스마와 최다 출연 기록 노경에 접어들면서 기세가 많이 꺾이긴 했으나 누가 뭐라 하든 최남현은 개성이 강한 성격파 배우였다. 그의 연기에서는 쇳소리가 난다. 갱도의 밑바닥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광물성의 낮은 울림- 최남현 연기의 장점은 누구에게서 빌려온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내려 한 데에 있다. (김종원, 「인물영화사 / 중후한 조연 최남현」, 『일간스포츠』, 1987.07.08) 하지만 그에게는 1미터 75센티의 훤칠한 키와 상대를 꿰뚫어 보는듯한 눈매, 중후한 외모가 풍기는 무게감이 있는 반면 유연성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그 대신 뛰어난 연기감각과 형상력, 사람을 휘어잡는 힘이 있다. 이런 결과는 결국 제1회 부일영화상 조연남우상(1958, <인생차압>), 제4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영화부문 대상(1967, <싸리골의 신화>), 대종상 남우조연상(1966, <추풍령>) 등의 수상으로 나타났다. [사진] <싸리골의 신화>에서의 최남현. 왼쪽 박기태 최남현은 1918년 1월 7일 김소월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서 최찬수와 박이윤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나온 후, 법관이나 은행가를 지망하는 급우들과는 달리 무대를 동경했다. 해방 이듬해에 월남하여 극예술협회(신협의 전신)에 들어갔으나 한동안 잔심부름을 하며 따분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런 그에게 출연의 기회가 온 것은 1944년 스물여섯 살 때였다. <은하수>라는 연극이었다. <범선 천우호(帆船 天佑號)>(1949)의 무대에 오를 무렵 영화 <돌아온 어머니>에 발탁됐으나 6.25전쟁으로 후속작이 이어지지 못했다. 그 대신 <명우 추해당(秋海棠)>(상록극회, 1951), <통곡>(극협, 1952) 등 연극 활동을 하며 어려운 전란기를 보냈다. 영화 촬영이 계속된 뒤에도 <한강은 흐른다>(신협, 1958) 등에 출연하여 연극과의 인연을 끊지 않았다. 공연이 없는 날엔 주선태, 박암 등 극협 단원들과 술로 회포를 풀었다. [사진] <이름 없는 별들>(김강윤, 1959)에서의 최남현 최남현은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으나 외아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80년대 이후에는 술과 마작, 화투놀이로 소일하다시피 했고, 장기간의 투병으로 고급주택 등 모든 재산을 날렸다. 말년에는 양로원 생활을 하며 병상에 있는 아내까지 뒷바라지하다가 1990년 1월 7일 일흔 한 살의 생애를 마쳤다. 그의 마지막 출연작은 대한항공 858기의 폭파 사건을 다룬 신상옥 감독의 <마유미>(1990, 단역)였다. 30대 초반부터 노역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스크린을 누볐던 최남현은 40여 년 동안 720여 편에 출연하는 최다 기록을 세웠다. *
데뷔와 함께 세 편에 출연 황정순은 해방 전 불과 열다섯 나이에 <그대와 나>(허영, 1941)의 단역으로 스크린에 처음 얼굴을 비췄다. 이향이나 이민자와 마찬가지로 어쩌다 불려나온 반짝 출연이었다. 그러나 배우로서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49년 봄 우리나라 최초의 16밀리 천연색 극영화 <여성일기>(홍성기)부터였다. 친구의 오빠(송재로)를 사랑했으나 그에게 본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속세를 떠나 사회사업에 헌신하는 한국보육원 원장 황온순의 반생기이다. 그의 뒷얘기는 1.4후퇴 때 미공군 헤스 대령의 도움을 받아 전쟁고아들을 제주도로 실어 날은 록 허드슨 주연의 영화 <전송가>(1957)로 이어지지만, 황정순은 자신의 이름과 비슷한 황온순(주증녀)이 아닌 그의 친구로 나왔다. 이런 그녀에게 주연의 기회를 준 것은 장황연 감독의 <청춘행로>(1949)였다. 시댁의 학대에 시달리면서도 참고 견뎌내 끝내 행복을 얻는 며느리의 이야기로, 주선태(시아버지 역)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여성일기>에 나온 지 4개월 만이었다. 다음에는 최인규 감독의 흑산도 올 로케이션 영화 <파시(波市)>(1949)가 기다렸다. 어촌의 사내들이 즐겨 찾는 선술집 작부 김홍도 역이었다. 후배 작부(최지애)를 친동생처럼 여기면서도 돈에 팔려 다른 파시로 옮겨 가야 하는 조연급, <청춘행로>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였다. [사진] <청춘행로>의 한 장면 생필름을 구하기 어려워 제작비가 뛰어 오르고 여름부터 퍼진 뇌염 때문에 극장 문까지 닫히던 시기였다. 한국영화 초창기의 변사이자 배우, 해방 후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1948)의 원작자이기도 한 김조성(金肇聲, 예명 춘광)도 이해 6월에 뇌염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황정순은 나라의 재난 속에서도 세 편이나 출연하는 행운을 얻었다. 30대 중반부터 시작된 노역의 멍에 하지만 불의에 닥친 6.25전란으로 그녀의 활동은 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왕자호동과 낙랑공주>(김소동, 1956)을 비롯한 <숙영낭자전>(신현호, 1956), <사랑>(이강천, 1957), <김삿갓>(이만흥, 1957), <봄은 다시 오려나>(이만흥, 1958), <촌색씨>(박영환, 1958), <어느 여대생의 고백>(신상옥, 1958), <인생차압>(유현목, 1958), <청춘극장>(홍성기, 1959) <육체의 길>(조긍하, 1959), <대원군과 민비>(유진식, 1959) 등 20여편이 그 산물이다. 이 시기에 <사랑>으로 제1회 한국평론가협회상 최우수여우상을 받았다. 영화계에 들어와 처음 받은 상이었다. 잇따라 <인생차압>의 이중생(김승호) 부인 우씨 역으로 제2회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사진] 황정순이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인생차압>의 한 장면, 중앙이 배우 최남현, 우편이 유계선 <귀거래(歸去來)>(이용민)와 <박서방>(강대진)으로 시작된 1960년대는 그녀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지평선>(정창화, 1960), <주마등>(이만희, 1961), <마부>(강대진, 1961), <삼등과장>(이봉래, 1961), <서울의 지붕밑>(이형표, 1962), <한 많은 미아리고개>(엄심호, 1962), <한석봉>(이만희, 1963), <굴비>(김수용, 1963), <외아들>(정진우, 1963), <혈맥>(김수용, 1963), <성난 능금>(김묵, 1963), <잉여인간>(유현목, 1964), <육체의 고백>(조긍하, 1964), <대석굴암>(홍성기, 1964), <삭발의 모정>(강대진, 1965), <이 땅에도 저 별빛을>(김기덕, 1965), <갯마을>(김수용, 1965), <친정어머니>(김기덕, 1966), <팔도강산>(배석인, 1967), <산불>(김수용, 1967), <대원군>(신상옥, 1968), <화산댁>(장일호, 1968), <저 언덕을 넘어서>(강찬우, 1968), <부인행차>(문여송, 1969) 등 120여편이라는 양이나 질적으로 그러하다. 황정순은 이미 서른세 살 때부터 머리에 흰 칠을 하고 얼굴에 주름살을 그리며 카메라 앞에 섰다. 그보다 한 살 위인 박암의 장모 역(<인생차압>)이 그 시작이었다. 이렇게 출발한 그녀의 노역 행진은 특히 <마부>, <굴비>, <혈맥>, <갯마을>, <육체의 고백>, <산불> 등에서 빛을 내며 자신의 대표작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사진] <외아들>에 출연한 황정순, 왼편 아역 배우는 박종화(사진제공: 김종원) <마부>의 경우는 식모(수원댁)에서 마부(김승호)의 재취로, <굴비>에서는 분가한 자식들의 냉대에도 보듬어 안는 농사꾼의 아내로, <외아들>에서는 자식을 위해 온갖 역경을 견디며 살아가는 어촌 어머니로, <혈맥>에서는 과년한 딸을 술집에 보내려 ‘신고산타령’을 가르치는 노점의 주모로, <갯마을>에서는 재가한 며느리를 따뜻하게 맞아들이는 과부 시어머니로, <잉여인간>에서는 무직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 마른 동태에 바람을 불어넣는 억척스런 아내로, <육체의 고백>에서는 환락가에 군림하는 나이트클럽의 마담으로, <산불>에서는 마을에 숨어든 공비(신영균)와 통정하는 바람난 과부(도금봉)의 어머니로, <삭발의 모정>에서는 휴가 온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기 위해 머리를 잘라 파는 가난한 군인 어머니로, <화산댁>에서는 처가살이하는 아들에게 냉대 받으면서도 사업 빚을 갚아주는 농촌 어머니로 각기 나타난다. [사진] <굴비>의 한 장면, 중앙이 배우 이빈화, 우편이 김승호(사진제공: 김종원) 초기에는 <촌색씨>, <자식복 돈복>(윤대룡, 1959), <모상>(박상호, 1960) 등의 경우처럼 연극 연기가 몸에 밴 오버액션의 경향이 있었지만, 60년대 초반 <혈맥>, <잉여인간> 등 일련의 문예영화에 출연하면서 한층 여과된 디테일 연기로 다듬어졌다. 일찍이 황정순을 <월급봉투>, <산불> 등 여러 영화에 출연시켜 그의 필모그래피를 빛나게 한 김수용 감독의 말처럼 ‘연기인에게 젊은 역과 노역의 구별이 있을 수 없지만 젊은 날 무대의 여왕이 은막의 노파로 전향’ (『주부생활』, 1969년 9월호 부록, 「영화와 스타 스토리」) 한 것은 의도와는 다른 운명이었을 것이다.
영화 초반부 가족 구성원들은 도시적 삶 속에서 누릴법한 로맨틱한 순간을 선보인다. 막내딸은 버스에서 남학생과 눈이 마주치고, 여배우와 연애를 하는 큰아들은 멜로 영화를 찍고 있으며, 첫째 딸은 동물원 데이트를 즐긴다. 이러한 낭만의 중심에는 가장 ‘로맨스 빠빠’가 있다. 궁핍한 일상 속에서도 아름다움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양, 그가 매일 출근길에 잊지 않고 챙기는 것은 꽃다발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세상에 없을 듯한 이상적 가족이다. 홈드라마 < 로맨스 빠빠 >( 신상옥 , 1960)는 일반적으로 1960년대 한국사회가 요청한 서민 가족의 전범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돼왔다. 로맨틱한 가장과 개성 강한 자식 세대의 조화, 실직으로 인한 위기를 쾌활히 극복해나가는 어질고 고운 이야기는 폭넓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작품은 오프닝에서부터 가족 구성원의 간명한 캐리커쳐를 제시한다. 탈세속적 로맨티스트 아버지( 김승호 ), 현실주의자 주부 어머니( 주증녀 ) 그리고 2남 3녀의 자식들로 구성된 서울 거주 가족이 모델이다. 매사에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막내( 신성일 ), 서울깍쟁이 여고생 넷째( 엄앵란 ), 외모에 관심이 많은 여대생 셋째( 도금봉 ), 대학 자퇴 후 영화계에 투신한 자유주의자 둘째( 남궁원 ), 결혼적령기의 현모양처형 첫째( 최은희 )는 당대 청년층의 보편적 범주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막내는 4.19를 선도한 신세대를 대변하고 있다. 여기에 과학자 맏사위로 김진규 가 측은한 도둑으로 주선태 가 등장하니 작품 자체가 1960년대를 이끌 배우들의 온상으로 보일 정도다. 당시 신필름 소속 신예 신성일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배우로 데뷔하였다. 등장인물을 통해 이성·지성·감성의 분배, 문화적 육체적 건전성의 조화, 공동체와 가족 윤리까지 고려된 인상이며 좀도둑까지 의리와 인정을 따지는 형국이니 참으로 다사롭고 호혜로운 소우주다. 김희창의 동명 인기 라디오 드라마를 각색하였으니 자연스레 영화의 전개는 에피소드식이다. 드라마틱한 갈등과 불화보다 소소한 상황 속 유머와 페이소스에 주목하고 있는 셈이다. 감독 신상옥이 다양한 영화형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특히 영화 중반에 가족 모두가 안방에 모여 시나리오를 창작하는 장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더니즘, 신파 멜로, 사극 등 다양한 형식이 가족의 상상력에 동원되며 이는 실상 신상옥이 이전과 이후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전개해간 작품들의 다양성을 이룬다. 신상옥은 이 작품을 전후로 해서 < 동심초 >(1959)나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1961)와 같은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로맨스 빠빠>는 각 캐릭터가 지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심성의 성좌를 선보이는데, 그 우아한 조화로움의 경지가 신상옥 영화의 형식적·감성적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여러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를 유려하게 연결 짓는 것은 김승호가 맡은 로맨스 빠빠 캐릭터 탓이 크다. 김승호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한국적 아버지의 전형적 표상이었다. 그가 담당한 한국적 아버지의 전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 돈 >(1958), < 박서방 >(1960), < 마부 >(1961)에서처럼 봉건적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하층민 가부장의 역할이 하나라면, 속물적 근대화의 조류를 반영한 < 인생차압 >(1958), < 삼등과장 >(1961), < 로맨스 그레이 >(1963) 등에서 최종적으로는 영악한 시대에 패배하고 마는 서글픈 샐러리맨의 모습이 다른 하나다. 보험회사 만년 계장으로 겨우 가족을 부양하는 <로맨스 빠빠>는 아마도 두 번째 경향과 비슷해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선뜻 영화 <로맨스 빠빠>에 ‘한국적’(근대화의 균열과 가부장주의를 동반한다는 뉘앙스에서)이라든가 ‘현실적’(4.19전후의 시대정신의 반영이라는 뉘앙스에서)이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데 주저하게 되는 건 왜일까. 오히려 <로맨스 빠빠>는 세계시민적 교양과 이상적 추동으로 가득해 보이지 않는가. 그 일차적인 이유는 김승호가 열연한 ‘로맨스 빠빠’ 캐릭터가 한국의 전형적 가부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는 꽃다발 든 샐러리맨이자 책을 즐겨 읽으며 자식들과의 일상적 대화에도 무심치 않은 다정한 중년이다. 영화 속 빛나는 장면들은 로맨스 빠빠의 낭만적 몰입과 상상을 통해 등장하곤 하는데, 가령 이러한 장면이 있다. 동네에 기생집이 들어섰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로맨스 빠빠는 아내가 말로 일러주는 약도를 따라 골목골목을 상상으로 누빈다. 이는 기생에 대한 세속적인 욕망으로 발동된 상상적 모험이기보다, 이 마을 어느 골목엔가 있다는 어여쁜 기생아기씨라는 아름다움에 일반에 대한 상상적 지향인 셈이다. 또 이러한 장면도 있다. 아내와 사랑싸움 끝에 자식들이 부르는 합창곡을 받아 눈을 지그시 감고 부르는 세레나데 ‘기쁜 우리 젊은 날’이나 실직된 날 술집에서 부르는 ‘켄터키 옛집’과 같은 노래의 장면들 말이다. 서민 가족을 서술하는데 관습적으로 동반되는,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인정만은 넘쳐나던 그때 그 시절’이라는 정서는 늘 공동체의 과거 기억과 맞닿아있다. <로맨스 빠빠>가 전달하는 가족은 서민적이고 온정 가득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 도래하지 않은 이상적 가족이자 미래의 상이다. 1960년 당시 자동차와 피아노가 집집마다 다 있다는 둘째 딸의 투정도 투정이거니와, 장성한 자식 전부가 남녀차별 없이 대학교육 이상의 문화적 수혜를 누리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일반적이지 않다. 다시금 온 가족인 둘러앉은 시나리오 상상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각자의 입장에 따라 소환된 상상적 이야기들은 사실상 이러한 교양에 기반을 두고 있다. 둘째의 시나리오 버전은 <춘희>나 <안나 카레니나> 등에서 보암직했던 치정 서사를 전제로 정서적 모더니즘을 선보인다. 둘째의 이야기가 삼강오륜에서 벗어날 것이라며 경쟁에 나선 아버지는 초로의 남자와 젊은 여성과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절대적 진리와 아름다움의 추구를 바탕에 두고 있다. 어머니 버전은 어떠한가. 그녀는 값싼 연애물을 비판하며 <춘향전>과 같은 한국 고전에 나타난 정서와 윤리를 강조한다. 한편 실직당한 날 밤 바에서 술을 마시던 로맨스 빠빠는 맥주병 뚜껑을 머리에 뒤집어 얹고 왕관을 쓴 양 “오늘부터 난 자유의 왕자야”라며 외치는데 대사의 어조가 사뭇 셰익스피어답다. <로맨스 빠빠>는 1960년대 초 요청되었던 문화와 교양의 심상적 분배를 서민가족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위트 있고 관용적이며 낭만적인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휩싼다. 형식적으로는 다양한 장르를 경유하는 한편 정서적으로 서양과 동양의 고전을 바탕에 둔 문화적 국제주의에 기반을 둔다. 그런 점에서 <로맨스 빠빠>는 비슷한 시기 제작된 서민적 홈드라마인 <삼등과장>이나 < 서울의 지붕 밑 >보다 한국적 현실에 덜 긴박되어 있으며 세태풍자적 요소도 적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영화 속에는 당대적 터치가 가미되었는데 투쟁과 반항을 고유한 개성으로 삼던 막내가 아버지 실직 후 기성세대와의 투쟁을 포기하고 협력을 택하는 모습이 그러하다. 저돌적 아들을 포함한 전 가족의 자력갱생으로 마무리되는 결말을 가부장의 복권과 명랑한 근대화의 지향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왕좌에서 물러나 권력을 잃은 아버지가 비로소 진정한 가족의 중심이 된다는 아이러니야말로 <로맨스 빠빠>가 영민하게 시대에 응답하는 한편 능청스레 시대를 넘어서는 지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 로맨스빠빠 VOD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