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
- 감독
- 마르코 크레즈페인트너
- 제작년도
- 2007
- 출연
- 케빈 클라인, 알리샤 바흐레다 쿠루스, 마르코 페레즈, 린다 에몬드, 잭 워드, 케이트 델 까스틸로, 파벨 린치니코프, 캐슬린 가티, 안나 마리아 호스포드, 리오 알렉산더, 존 데이비드 가필드
전세계의 노동자여, ‘감각’으로 단결하라 간결한 묘비명, Bruce Lee 1940-1973. 번쩍 번개가 화면을 가로지른다. 죽은 브루스 리=이소룡이 무덤에서 뛰어오른다. 그 위로 프레임을 가득 채우며 뜨는 사각의 타이틀.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Bruce Lee Fights Back from the Grave). 묘비 앞의 브루스 리가 죽음의 천사를 향해 그 특유의 포즈로 주먹을 불끈 들어보이고 있다(왜인지 모르겠지만 죽음의 천사 발치에는 반라의 여성이 놓여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말도록 하자). 어쨌건 이쯤에서 우리의 기대치는 구체적 형태를 띠게 된다. 무덤에서 돌아온 브루스 리가 죽음의 천사와 맞서 싸울 것이다! 빠르고 강력한 비트 사운드가 계속되는 가운데 거대한 비행기가 화면 중앙을 가득 채우며 날아간다. LA 공항, 선글라스를 낀 젊은 남자가 공항을 나선다. 그는 누구인가? 브루스 K. L. 레아(Bruce K. L. Lea). 그야말로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브루스인가? 비록 브루스 리가 아닌 브루스 레아지만…. 아마도 당신이 이런 영화들에 익숙하다면 수다한 ‘브루스’들에 대해 잠시 숙고해볼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Bruce Li(何宗道), Bruce Le(呂小龍), Bruce Leung(梁小龍), Bruce Lei(혹은 Dragon Lee, 巨龍), Bruce Lai(張一道), Bruce Thai(張正義) 등. 브루스 K. L. 레아, 당신은 누구인가? 그런데 이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저 강렬한(!) 오프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의 본편이라 할만한 것을 채우는 것은 이두용의 < 아메리카 방문객 >이다. 1976년 ‘최초의 태권 미국 올로케 감행작품’으로 합동영화사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그러나 영어 더빙을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로 탈바꿈되어 있다. 형의 복수를 위해 라스베이가스에 온 한국인 ‘한욱’(정준)의 이야기(그러니까 저 브루스 K. L. 레아는 정준이다)는 친구이자 스승인 위대한 무도인의 죽음을 파헤치는 홍콩인 웡핸의 이야기로 바뀐다. 물론 인종적 구도는, 당연한 말이지만,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아시안 남성은 왜인지 알 수 없지만 젊은 백인 여성의 흠모를 받는다. 젊은 백인 여성은 아시안 남성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아시안 남성은 백인, 흑인, 멕시칸으로 구성된 악당들을 처치한다. 그럼에도...나는 지금 ‘본편이라 할만한 것’이라고 애써 모호하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가 실은 <아메리카 방문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씬을 추가하고 전혀 새로운 사운드를 입히고 더빙을 한 자들의 노고는 어떻게 자리매김되어야 하는 것일까? 참고로 홍콩의 양츠 프로덕션(Yangzte Production)이 제작사로 명기되어 있는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의 예고편을 참조컨대 이 영화는 1978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브루스 리의 죽음 이후 5년, 그가 무덤에서 돌아온다!” 이소룡은 알다시피 1973년에 죽었다). 또 <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의 몇몇 언어 버전은 감독 Umberto Lenzi로 명기되어 있기도 한데, 움베르토 렌치가 한때 유럽 B급 영화시장을 석권했던 이탈리아 지알로 영화의 대표적 이름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 바꿔치기는 이런 영화들이 전세계의 어떤 시장에 소구하는 것이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아메리카 방문객>-<브루스 리, 무덤에서 돌아오다>와 같은 사례, 편집 버전에 따라 이름이 교체되거나 씬의 추가와 더빙을 거쳐 지역에 따라 다른 이야기로 변환되는 사례는 소위 브루스플로이테이션이라고 이름붙여진 영화들의 세계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 영화들은 도작과 도용, 자르기와 이어붙이기 1) 로 악명 높다. 사실 이소룡의 유작이라고 선전된 < 사망유희 > 조차 그가 살아 생전 찍었던 단 10퍼센트의 필름 푸티지와 그의 대역들(이미 소개했다시피 그중 한명은 당룡이라는 예명으로 알려진 한국 출신의 김태정이다)을 써서 찍은 필름들, 그리고 여타 영화 필름의 짜깁기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도작과 도용이라는 관점으로 원본과 아류의 위계를 정한다는 것은 이미 무리가 있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이 세계는 가능한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윤을 얻고 싶어하는 장사치들의 세계다. 몇 가지의 예들. Joseph Velasco라는 이름이 디렉터로 명기된 <My Name Called Bruce>는 한국영화 <왕도>로 확인되며, 감독은 이혁수이다. Joseph Velasco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이름은 아마도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가장 빈번히 마주치는 이름 중 하나일 터인데, Joseph Velaco 또는 Joseph Cong이라고도 불리는 이 다작의 ‘작가’는 1년에 평균 3편에서 4편을 만들고, 자신의 영화 거의 대부분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틈틈이 프로듀서로도 활동하였다. 또 유행에도 대단히 민감하여 ‘Bruce’가 들어가는 제목의 영화들을 1970년대 내내 찍다가 70년대 후반 소림사(Shaolin) 영화들이 붐을 일으키자 브루스와 소림사를 섞고(<Bruce Shaolin Bronzemen>), 성룡의 <취권 Drunken Master>(1978)이 흥행에서 성공한 이후에는 곧바로 <Drunken of Fire>라는 제목으로 거룡(브루스 레이)의 술 취한 권법을 선보인 바 있다. 홍콩영화 데이타베이스(HKMDB)와 인터넷 무비 데이터베이스(IMDB)에 따르면 Joseph Velasco는 대만 출신의 강홍(江洪)이다. 그렇다면 Joseph Velasco의 영화들은 이 이름의 ‘본명’인 강홍의 작품인가? 이미 눈치챘겠지만, Joseph Velasco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많은 영화들은 도작이거나 도용이거나 짜깁기이다. 마찬가지로 Joseph Velasco의 또 한편의 영화 <Ninjas VS Bruce Le aka Condor Of Bruce Lee>의 첫 화면은 Ocean Shores라는 회사가 카피라이트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한다. 그런데 1986년을 제작년도로 명기하고 있는 이 영화는 <My Name Called Bruce>(1978)와 <Return of Bruce aka Dragon Returns>(1977), <Enter the Game of Death aka Bruce the King of Kung Fu>(1978) 등 최소한 세 편 이상의 영화를 이어 붙여 만든 것이다. 한국에 마약수사를 하러 온 홍콩 수사관은 영화의 1/3 지점에서 뜬금없이 인신매매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순간 이동’을 하는데, 일련의 대결씬을 끝내고 ‘홀연히’ 한국으로 돌아온다. <Enter The Game Of Death>의 영어 버전에서 감독은 James Nam으로 명기되어 있다. James Nam은 1960년대 후반부터 쇼브라더스에서 활동했으며, 1970년대 이런 영화들의 감독이자 배우로 나왔던 남석훈(또는 Nam Gung-Fan)에게 자주 쓰이던 예명이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전혀 다른 편집 버전의 한국영화 < 십자수권 >으로 개봉되었다. <십자수권>의 크레딧에 명기된 감독 이름은 최원형이다. 남석훈의 또 다른 영화 < 속정무문 >은 <Bruce And Shaolin Kung Fu>라는 제목의 다른 편집 버전으로 옮겨졌을 때, Joseph Velasco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또 <Bruce and Shaolin Kung Fu 2>와 관련있다. 한국에서는 < 신정무문 >이라는 제목의 한국영화로 개봉했고, 남기남이 감독한 것으로 되어 있는 <Bruce and Shaolin Kung Fu 2>는 버전에 따라 James Nam과 Alberto Golango라는 서로 다른 이름이 감독으로 명기되어 있다. 너무 번다하다고? 그럴지도. 이런 영화들의 세계 안에 들어서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서 무엇이 오리지날이고 무엇이 도작과 도용인지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무망해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지구적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품의 경로에 올라선 순간(이를테면 <아메리카 방문객>의 경우) 이 영화들에는 감독, 배우, 제작자 등의 특정 이름들이, 한 편의 영화를 규정짓는 최저치의 조건이라 할 수 있을 닫힌 체계로서의 작품(work)이라는 개념이 차례로 사라진다. 요컨대 이 영화들은 국적뿐만 아니라 제작 주체마저 불분명해진 채 시장을 떠도는데, 어떤 영화는 이미 존재하는 복수의 영화들의 재편집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위에 각각의 지역의 유통업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더 정확히는 자신의 관객들이) 선호하는 언어로 더빙해서 판매했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들을 한국영화사라는 맥락으로 복원시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니,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해보자. 여기서는 내셔날 시네마가, 내셔날 시네마를 이루어내는 감독, 배우, 제작자 등의 특정 이름들이, 한 편의 영화를 규정짓는 최저치의 조건이라 할 수 있을 닫힌 체계로서의 작품(work)이라는 개념이 차례로 사라진다. 만약 근대예술이 소유권(나아가 지적재산권)과 개인의 확립, 이를 뒷받침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 영화-상품들로 저 세 가지 개념들이 사라질 때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상품들은 1970년대 이소룡의 사후 아시아 각 지역에서 양산되었으며 1980년대 이후 비디오 시장에서 가장 싼 염가의 상품으로 전지구적으로 공급, 유통되었다. 그 속에서 한국, 홍콩, 대만, 필리핀 기타등등 여타의 장소들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은 ‘아시안’이라는 기표로 수렴되었으며, ‘아시안 마샬아츠 필름’으로 명명되었다. 이 영화들이 국적과 만든 자들, 완결된 체계로서의 작품이라는 개념에 그토록 무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들을 보는 자들이 여기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들은 계급적으로, 젠더적으로, 세대적으로 명확하게 분할된 장소들, 도시 변두리의 재개봉관, 소극장, 그라인드 하우스에서 가장 지속적으로 소구되었다. 이 장소들을 채운 것은 한국, 홍콩, 대만, 필리핀 등지에서 값싸게 만들어진 영화들이었다. 1970년대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염가의 상품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싼값에 도시 하위계층 젊은 남성들에게 소구되었다. 아마도 이 지점이야말로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와 같은 영화들이 더없이 흥미로워지는 순간일 것이다. 저 영화들은 이 지역의 영화가 거의 최초로 ‘글로벌’하게 소비된 사례이다. 할리우드가 생산하는 고급 생산품들의 반대편에 놓인 가장 싼 상품으로서. 싼 값에 더 많은 이윤을 얻고자 하는 자본가들에 의해 잘라지고 이어붙여지는 것을 대가로. 전세계의 하위계층 남성들에 의해 주도되는 이 플랫한 소비 속에서 이 영화들은 상품의 형태를 얻은 순간 비로소 세계성의 획득에 성공하였다. 이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순간이다. 왜냐하면 전세계 노동자들의 (무의식적인) ‘감각적’ 단결과 전세계 자본의 순환이 함께 거기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한국 상품은, 다른 아시아의 상품들처럼 저임금 노동의 값싼 상품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을 지녔다. *** 1) 아시안 마샬 아츠 필름의 팬사이트인 Kung Fu Fandom의 한 팬은 이런 류의 영화들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자르고 이어붙인(cut and paste)’ 영화들을 정말로 사랑해요” http://www.shaolinchamber36.com/kungfufandom/index.php?/topic/2543-my-man-godfrey-ho-the-ifd-appreciation-thread/&tab=comments#comment-21806 (관련글) 1. 비행기의 시선, 무정한 시선 - 2021.04.30. 2. 액션영화의 한 기원, 안중근과 무협 - 2021.05.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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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B급 영화의 전통이 선명하다. 메이저영화사가 아닌 소규모의 영화사에서 만들어낸 영화들을 주로 칭하지만 불황이었던 1970년대에는 도에이, 니카츠, 신도호 등의 메이저에서도 기묘한 영화들을 양산했다. 이시이 테루오의 <공포기형인간> <망팔무사도>와 스즈키 노미후리의 <도쿠가와 섹스 금지령> <성수 학원> 같은 ‘불량성감도’영화를 만든 도에이가 선두였다. 그중에서도 도에이의 여반장 시리즈와 공포여자고교 시리즈, 사소리 시리즈 등은 ‘핑키 바이올런스’라고 불렀다. ‘불량’ 여자들의 세계를 그린 야하고 폭력적인 영화들이었다. 80년대에 V시네마로 이어진 B급영화의 전통은 지금도 <라이브>와 <데드스시>의 이구치 노보루, <헬 드라이버>와 < V 소녀 대 F 소녀 >의 니시무라 요시히로 등의 감독들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미츠다케 쿠란도의 < 건 우먼 >은 일본 B급 영화의 흐름에 놓인 영화다. 벌거벗은 여인이 등장하여 잔인한 살육을 벌인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여성의 팔에 총을 장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 이블 데드 > 시리즈의 애쉬처럼 팔에 전기톱을 단 소녀가 등장하는 <머신 걸>이라는 영화도 있었고, 팔에 사이코건을 달고 싸우는 우주해적 코브라도 있다. <건 우먼>의 일본 제목은 ‘여체총(女?銃)’이었다. 그런데 여체가 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체에 총을 집어넣는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에서 제임스 우즈가 배에 총을 집어넣는 장면이 있다. 그 몽환적인 장면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이상한 몽상처럼 흘러가는 괴이한 영화가 <건우먼>이다. 재벌의 아들인 하마자키는 수많은 여성을 강간, 살해했다. 그에게 아내를 잃은 의사 마스터마인드는 복수를 하기 위해 인신매매 조직에서 마유미를 데려온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마유미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사격과 격투술을 배운다. 미국으로 도망 온 하마자키는 늘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있다. 유일한 기회는 더 룸이라 불리는 곳이다. < 호스텔 >의 그곳처럼, 부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파라다이스 혹은 지옥. 시체애호증인 하마자키는 더 룸에서 변태적 욕망을 해소한다. 보디가드가 따라가지 못하지만 마유미도 무기를 가져갈 수 없고, 경비에게 무기를 빼앗아도 지문 인식이기에 사용이 불가능하다. 벌거벗은 채 시체로 위장해 들어가야 하는 마유미가 총을 가져갈 방법은 단 하나다. 몸을 갈라 총을 집어넣고는 다시 꿰매는 것이다. < 건 우먼 >은 시종일관 비장하다. 그들이 처한 상황, 그들이 하는 행동 모두가 처절하다. 그러나 현실을 연상시키는 리얼리티는 없다. 지극히 과장된 상황과 연기만이 있다. 마유미의 스토리를 들은 킬러가 말한다. “그거 일본 만화에나 나오는 거잖아. 뤽 베송 영화나.”영화 속 캐릭터조차도 딱히 현실이라고 믿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마유미가 자신의 몸을 갈라 총을 꺼낸 후 버틸 수 있는 시간은 22분이다. 그 이상이면 출혈 과다로 죽게 된다. 점점 몽롱해져 가는 상황에서, 온몸을 적신 피가 유니폼이 된 마유미가 악당들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박력이 넘친다. 적을 바라볼 때의 마유미의 눈은 강렬하게 불타오른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지만 마유미가 펼치는 액션은 에너지가 넘쳐 보는 사람을 들끓게 한다. 물론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만 마유미도, 마스터마인드도 모든 것을 걸었다. 마스터마인드는 마유미를 각성시키기 위해 많은 이를 죽였다. 때로 무고한 이도. 하지만 마스터마인드는 말한다. ‘복수를 끝내고 나면 나는 지옥으로 갈 거야.’자신이 나락으로 빠질 것을 알면서도 복수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마유미는 그의 도구로 시작했지만, 기꺼이 자신의 의지로 킬러가 된다. < 건 우먼 >의 영상도, 음악도, 마유미를 연기하는 아사미도 모두 70년대의 ‘핑키 바이올런스’를 연상시킨다. ‘핑키 바이올런스’는 단지 여성을 관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남자를 압도하면서 그녀들은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길로 나아간다. <건 우먼>의 마스터마인드도 그런 말을 한다. “남자는 피의 1/3만 흘려도 죽지. 여자는 2/3을 잃어도 아직 살아 있어. 신은 남자보다 여자를 정교하게 만들었어.” 마유미를 보고 있으면 <여수 701호 사소리>를 비롯해 ‘핑키 바이올런스’의 그녀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드모델로 시작한 아사미는 AV 배우와 영화배우를 겸업했다. 그러다 만난 이구치 노보루 감독에게 ‘핑크 바이올런스’의 여배우들을 닮은 마스크라는 말을 들었고, 주로 미소녀 스타일을 보여줬던 아사미는 점차 액션계열 배우로 이미지를 바꾸게 된다. 2009년에는 AV를 은퇴했고 <고스 로리 처형인> <헬 드라이버> <데드 스시> < 아이언 걸 > 등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 건 우먼 >을 만든 1973년생인 미츠다케 쿠란도 감독은 고등학교 때 단신으로 미국에 건너가 대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졸업 후 미국에서 방송과 영화판에서 일하다가 2004년 <몬스터즈Monsters Do not Get to Cry>로 감독 데뷔를 한다. 영화에 뛰어든 계기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격돌Dual>과 미스미 겐지의 < 아들을 동반한 검객 >였다고 한다. 2008년에는 스승으로 여기는 오카모토 키하치에게 바치는 <사무라이 어벤져>의 주연, 각본, 연출, 제작을 했다. 2013년 작인 <건 우먼>은 유바리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고, 2015년 일본영화감독협회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사무라이 어벤져>에서 검, <건 우먼>에서 총을 다룬 미츠다케 쿠란도는 신작인 < 가라데 킬 >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무기로 쓰고 있다. 미츠다케 쿠란도는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했으면서도 지극히 일본적인 영화를 만든다. 그것도 B급의 잔혹하고 뒤틀린 영화를. 그걸 일본에서는 ‘에로 그로 넌센스 & 바이올런스’라고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조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는 1930년대 일본에 형성된 오랜 전통이다. <에로틱 그로테스크 넌센스>를 쓴 미리엄 실버버그의 말에 따르면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말은, 정당 정치에 대한 고발이나 거리에 팽배한 호전적 분위기를 무시한 채 감각적 쾌락이 빚어내는 퇴폐에 심취한 것처럼 보였던 데카당트로 표현되는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건 우먼 >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전통이 100여 년 가까이 흐르면서 ‘저패니즘 익스트림’으로 변형되었고 확장되었다. <건 우먼>은 그런 전통의 연장선에 놓인 기묘한 영화다.
< 어미 >는 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하고, 드라마 <청춘의 덫>과 <사랑이 뭐길래> <내 남자의 여자>의 김수현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한 1985년에는 원래 TV 드라마 연출자였던 박철수 감독보다 김수현 작가의 존재감이 더 컸을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와 비디오테이프에 새겨진 타이틀이 ‘김수현의 어미’였으니 말이다. 제목만 보면 그녀가 이전에 썼고, 그 이후로도 썼던 가족드라마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런 오해를 지우고 싶었는지 <어미>의 포스터는 김수현의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새겨놓았다. “신들린 여류 金秀賢 그녀는 지금 살인을 모의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TV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이야기를 만든 김수현 작가의 필모그래피에서 ‘살의’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기록에 따르면, 이두용 감독의 1982년 작 < 욕망의 늪 >에서 남자에 의해 목숨을 위협받는 여성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에 따르면, 1990년에 방영된 드라마 <배반의 장미>에서 과거의 연인이었던 남자( 남성훈 )를 자동차로 들이받아 식물인간으로 만든 여자( 김자옥 )이 있었다. 하지만 < 어미 >는 그보다 더 독한 연쇄살인극이다. 영화의 영문제목이 70년대 할리우드의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를 연상시키는 ‘우먼 레퀴엠’(Woman Requiem)이라는 것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두 모녀의 일상적인 아침이다. 라디오 진행자이자 저명한 작가인 홍 여사( 윤여정 )는 딸에게 먹일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딸과 엄마가 아침에 벌일법한 실랑이가 이어지고, 두 사람은 아침을 먹고 함께 집을 나선다. 그날은 홍 여사의 ‘스케쥴이 애매한 날’이었다. 딸 나미( 전혜성 )는 그런 날이면 엄마가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딸의 예상대로 홍 여사는 역시 홀아비인 최 교수( 신성일 )과 데이트를 한다. 두 사람은 결혼은 하지 않고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는 시간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결혼에 관한 대화 도중 홍 여사는 최 교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둘 다 약다고 해야 할까, 녹슬었다고 해야 할까.” 얼굴에 서운한 기색을 비친 홍 여사를 달래려는 듯 최 교수는 그녀를 다시 침대로 이끈다. 홍 여사는 이제 학교에서 나올 딸을 데리러 가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5분만 기다리게 해”라는 최 교수의 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엄마가 잠시 늦는 사이. 교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나미는 인신매매단에 납치된다. 1980년대는 각종 인신매매 사건과 그로 인한 괴담이 들끓었던 시기였다. 갑자기 봉고차가 나타나 길거리에 있는 여성들을 납치해서 윤락가에 팔아넘긴다는 이야기들이었는데, 당시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여성만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납치해 새우잡이 배에 팔아버린다는 소문이 넘쳐났다. 어쨌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신매매’를 소재로 한 한국영화도 많이 제작됐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삽입한 장황한 자막에는 인신매매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사회정의 등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상 에로영화의 소재로 인신매매를 끌어온 경우가 다반사였다. 또한, 인신매매범을 처단하는 주인공보다는 상처받은 여성의 슬픔이나, 여자를 찾아다닌 연인 혹은 남편과의 재회로 끝나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김효천 감독이 연출한 < 인간시장 2- 불타는 욕망 >처럼 일본까지 가서 악을 처단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 어미 >와 같은 힘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영화는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복수의 주인공이 엄마인 경우는 더더욱. 새끼를 잃은 어미는 새끼를 찾아 나선다. 그동안 나미는 사창가에 팔려가 차라리 도망치는 걸 포기하는 게 나아 보이는 생활을 이어간다. 경찰조차도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던 그때, 한 남자가 홍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인신매매단과 연관된 인물이지만, 홍 여사로부터 돈을 얻기 위해 나미의 행방을 알려주려는 남자의 전화다. 홍 여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사창가를 덮치지만, 때마침 도주를 시도한 나미는 다시 인신매매단에 붙잡혀 삭발을 당한다. 하지만 홍 여사는 포기하는 엄마가 아니다. 그녀는 사창가 포주를 돈으로 매수해 나미의 행방을 알아내고, 딸을 구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딸을 차에 태우고 가던 엄마는 말한다. "아무 힘도 안 빌리고 엄마가 너를 구해냈어. 엄마가 잘했지? 내가 잘했지?" 엄마는 아마도 자신이 직접 딸을 구했기 때문에, 딸이 겪는 상처를 세상에 속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뜻대로 되는 건 없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딸은 집에서 목을 매고 자살한다. 집 밖에 매달린 딸의 시체를 본 엄마는 이성을 던져버린다. 박철수 감독은 엄마의 복수를 과감한 속도로 밀어붙인다. 추적의 과정을 묘사하거나, 엄마의 슬픔을 강조하거나, 살인 대상 앞에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식의 설명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엄마에게는 눈물을 흘릴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슬픔조차 사라진 엄마라는 캐릭터는 < 어미 >의 영화적인 개성 그 자체다. 만신창이가 된 딸을 구할 때도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 소리를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자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엄마는 바로 살인을 감행한다. 이어지는 복수에서 쇠사슬과 염산, 면도칼 등을 이용해 사람을 죽일 때도 홍 여사는 주저하는 법이 없다. 상대가 위협을 느낄 새도 없이, 쇠사슬을 목에 걸어 죽을힘을 다해 당기고, 서늘한 표정으로 염산을 뿌린다. 윤락녀로 위장해 마지막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에서도 엄마는 남자에게 단 세 마디의 말을 한다. “남자는 참 쉽군요.” “딸이 있죠?” “많이 예뻐하죠?” 남자는 여자의 손길에 잔뜩 취한 얼굴로 딸을 매우 예뻐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때 엄마는 면도칼을 물속으로 집어넣고, 욕조에는 시뻘건 물이 차오르고 남자는 비명을 지른다. 관객의 예상하는 타이밍보다 한 발 더 빠른 엄마의 복수는 매우 차갑고 강렬하다. < 어미 >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지막 엄마의 표정을 이야기한다. 복수를 끝낸 엄마가 담배를 피우는 얼굴 위로 ‘어미는 새끼를 지켜야 한다’는 최후 진술 문장이 나타나는 장면. 엄마의 복수를 따라온 영화가 마지막에 찍어놓은 뚜렷한 방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앞의 장면도 못지않게 강렬했다. 마지막 악당을 처단한 엄마가 목욕탕 밖으로 나온 순간, 영화는 몸에 수건을 두른 그녀의 몸을 보여준다. 바스트 샷 보다 더 멀고 넓은 앵글인데도 눈길이 가는 건, 배우 윤여정 의 거칠게 마른 팔이다. 힘줄이 드러나 있을 정도로 앙상한 팔이지만, 상당히 단단해 보이는 팔이었다. 그녀의 팔이 전하는 울림은 상당하다. 홍 여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녀의 팔은 복수를 모두 끝내고도 아직 분노를 이기지 못해 긴장을 당기고 있는 팔이다. 마지막 엄마의 표정이 <어미>라는 이야기의 마침표라면, 윤여정의 팔에 그어진 힘줄은 그녀의 슬픔과 고통이 육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일 것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의 동물적인 기질이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